Operation Moo [3] by 잭 히트

읽을꺼리 2007. 5. 8. 23:25 posted by 조재형

Operation Moo [3] by 잭 히트

그러나 제시 곤잘레즈라는 사람은 뭔가 알고 있을 것같은 기세였다. 그는 아로요 혼도의 치마요마을 북쪽에 사는 사람이다. 사냥용품 전문회사 '호수-들판 장비와 안내'를 운영하는 사장님이면서, 남는 시간에는 가축을 기른다. 7월 한달동안 3주간격으로 그가 기르던 소 두마리가 의문사했다.

"500파운드짜리 숫소 두마리였수다." 그의 말투는  카를로스 아버지 억양 그대로였다. "몸통 속이 싸그리 없어져 버렸지. 오케이? 불알이나 똥꼬까지 말이우. 너무 적나라하게 말했다면 미안하우. 그치만 사실이 그런걸 낸들 어떡해. 정말 깔끔하게 살을 도려냈더구만. 내장이 다 없어졌어. 오케이? 소 똥꼬에다 진공청소기를 턱 박아놓고서 모조리 빨아들인 것 같아. 어떤 사람들은 개가 소를 죽인 게 아니냐고 그러더군. 뭐 개가 식칼을 들고 다닌다면 충분히 그럴수도 있지. 내 말 알겠수?"

그는 정부가 소를 죽이고 있다는 의견에는 찬성하지 않았다. ("공무원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꾸준히 열심히 일한다는 건 말도 안돼.") 그는 카를로스 아버지처럼 외계인이론도 맘에 들어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마녀의 짓이라고 생각지도 않았다. 그는 여러가지 사실들과 그에 따른 모순들을 열거했다. 소 의문사현상은 주로 미국에서만 일어난다면서, 곤잘레즈는 사이비종교 광신도들의 짓이라고 결론지었다. 새로운 신도를 받아들이는 의식같은 것을 벌이려고 소들을 잔인하게 그들의 입맛에 맞게 살해했다는 것이다.

"하나 물어봅시다. 소들을 숭배하는 나라 있죠? 안그래요?"

"인도를 말하시는 건가요?"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인도에 대해 잘 아슈? 내 말 알겠어요?"

"나, 나, 난-"

"난 그 나라에서 소를 죽인다는 얘긴 들어보지 못했지. 오케이? 내 말은 아마 외계인들이 인도사정을 잘 모를거라 이거지. 오케이? 내 생각에는 어떤 놈들이 소한테 장난치고 있는지는 몰라도 일단 잡히기만 하면, 사람들이 성난 인도인들처럼 광분해서 그 놈들을 무자비하게 죽여버릴 것 같아. 내 말 알겠수?"

소 의문사현상을 설명하는 여러 이론들은 감탄할만큼 다양하다는 생각이 든다. 의문사로 죽은 소들은 모두 같은 모습으로 죽어 있었지만 (그동안 직장부분이 없어져버린 수백장의 소 시체사진을 보아왔으니 내 말을 믿으시길), 그런 현상을 설명하는 두가지 해석 사이에서는 같은 점을 찾아볼 수가 없다. 곤잘레즈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당시에, 나는 앨라바마 파이프 근처에서1992년 잇따라 벌어진 수십건의 의문사를 조사했던 토미 콜이라는 경찰간부와 전화통화를 하기도 했었다. 내가 처음으로 콜을 알게 된 것은 린다 몰튼 호위의 두번째 다큐멘터리 "1993년 이상한 수확"을 보았을 때였다. 기술적으로 최고였던 그 프로그램에서는 복잡한 논리를 전개하며 증거를 제시했다. -그 증거들이 결국 시청자들에게 인간을 납치하고 남은 여가시간에 외계인들이 소들을 살해하고 있다는 결론을 보여준다. 그 프로에서 콜은 호위의 이론을 지지했다. 그러나 나와 통화했을 때, 그는 예전 생각을 버리고, 정부가 고전압 전력선 발사기로 소들에게 유전적인 손상을 초래하는 실험을 하는 것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새로운 소 의문사현상 이론을 발견할 때마다 느끼던 스릴은 점점 약해져갔고, 미스테리를 밝히는 데는 별 진전이 없었다. 나는 수백가지 뉴스기사들로 가득찬 나의 서류철을 검토해 보기로 했다. 서류철을 통해 각 뉴스마다 하나씩 등장하는 소 시체를 접하며 소 의문사현상의 역사를 죽 훑어 내려갔다. 30여년간의 의문사를 한꺼번에 둘러보니 한가지 명확한 단서가 보였다: 특이한 공통점- 공통점이 없는 요소들을 한군데 모아놓고 보니 하나의 공통점이 보이게 된 것이다. 수많은 의문사이론들은 아무때나 불쑥불쑥 등장하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 시대의 사회문화적 불안감을 증폭시켰던 특정한 범죄의 등장에 맞춰서 의문사이론들이 생겨나는 경향이 있다.

60년대 후반과 70년대 초반 소 의문사현상을 다룬 뉴스들은 이상하게 변해버린 히피들을 비난하다가 (1969년에 Charles Manson이라는 살인마히피는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후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정신이상 미치광이들을 언급하는 쪽으로 관심을 바꾸었다. -이 시기에는 Charles Whitman, Richard Speck, Zebra Killer같은 사이코살인마들이 설쳐댔다. 70년대말 미국이 Reverend Sun Myung Moon(통일교 문선명목사)의 신도 늘리기작전과 Jim Jones의 종말론 사기로 떠들썩할 때는 소 의문사 뉴스들이 사이비종교의 짓이라고 단정하는 경향이 있었다. 1980년대 초반에는 정부 음모이론이 무성했다. 1980년대 후반은 악마숭배의식에 관한 소문이 대인기였다. 그리고 지금 세기말 천년왕국의 도래에 대한 집착이 심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외계인이론만큼 활발하게 논의되는 소재는 없다.

나는 그도안 외계인이론 취재를 꺼려왔다. 탐정을 자처하는 나의 본능적 감각이 외계인이론의 가능성을 아주 낮게 평가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는 사이비종교쪽을 더 부각시키고 싶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인터넷을 돌아다닐수록 외계인이론이 상당히 신빙성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점점더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나는 소 의문사-외계인이론의 전문가 린다 몰튼 호위를 만나보기로 결심했다.

[4]편으로 이어집니다.

Operation Moo [2] by 잭 히트

읽을꺼리 2007. 5. 8. 23:22 posted by 조재형

Operation Moo [2] by 잭 히트

그리고 지금 나는 "화산" 곁에 무릎 꿇고 앉아 사라져버린 직장부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몇가지 간단한 메모를 하며 이 사건이 도대체 어떤 존재의 짓일까 알아내려 애쓰고 있다. 나는 법의학자는 아니지만 패트리샤 콘웰의 법의학 미스테리소설들을 많이 읽었기 때문에, 삽입지점(칼날이 최초로 들어간 곳)과 칼날이 움직인 자국이 사건해결의 증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황소에 나있는 상처들은 누가 보더라도 다른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둥근 모양이었고, 모양에  흐트러짐이 없이 아주 깔끔하게 잘려 있었다... 마치 레이저광선으로 절단한 것처럼. (여지껏 소 의문사현상을 다룬 기사치고 레이저광선 얘기를 빠뜨린 기사는 없었다. 나라고 빠뜨릴 수는 없겠죠?) 자, 만약에 당신이 황소 항문을 잘라낸다면 (당신이 정말로 그런 짓을 할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다), "둥근" 모양으로 잘라 내겠습니까? 내 말은 단순히 칼로 항문을 직선으로 쭉 잘라 속살을 확 끄집어 내는 게 더 쉬운 방법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지금 논리적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논리는 소 의문사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의 가장 중요한 핵심요소이다. 예를 들자면, 돌아오는 길에 카를로스는 화산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었다. 그 애는 정부가 의문사현상의 주범이라는 이론을 들어 보았다고 말했다. 정부가 신형 레이저빔을 테스트하기 위해 소들을 이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년은 그 이론을 믿지 않았다.

"정부가 그런 짓을 할 리 없어요." 카를로스가 말했다. "정부라면 자기들이 필요한 소쯤이야 얼마든지 살 수 있잖아요. 그러니 그 이론은 말도 안되는 얘기죠." 카를로스는 마녀이론이 더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이 근처에는 아직도 마녀의식을 하고 있는 늙은 아줌마들이 있어요." 소년은 자기가 들었던 몇가지 얘기들을 말해 주었다. 그 중 한가지는 아투로라는 남자의 아내가 죽었던 이야기였다.

"그녀는 건강했었어요. 정말로 몸이 튼튼하고 건강했다구요. 그녀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을 때, 그녀의 남편이 집 주위에서 12~15마리정도 되는 부엉이를 봤대요."

카를로스가 의미심장한 눈길로 나를 쳐다보았다. 차를 타고서 회색빛 고원지대 위에 카페트처럼 깔린 자갈길 위를 달리고 있던 나는 소년에게 무기력한 바보같은 미소를 지었다.

"부엉이는 마녀를 상징해요." 소년이 설명해 주었다. "부엉이들은 계속 머물러 있다가, 그녀가 죽고 난 뒤에는 전부 사라졌어요. 장례식날에 아줌마 두명이 관 속에 누워있는 여자를 보더니, 미친듯이 웃어댔어요.  그 아줌마들이 죽은 여자를 보고 막 웃어댔다구요." 소년은 놀라움과 두려움에 휩싸인 눈치였다.

카를로스 말에 따르면, 이 지역 사람들은 아직도 그 아줌마들이 마녀라고 믿고 있단다. 또다른 이야기는 사냥꾼들이 숲에 들어갔다가 치마요마을의 마녀 중 한명과 마주쳤던 내용이었다. 그 당시 마녀는 으슥한 곳에서 눈이 쌓여 있는데도 맨발로 서 있었단다. 이런 얘기들을 정황증거로 깔아놓고, 카를로스는 결론을 추리해냈다.

"아마도 마녀가 되려면 소의 신체부위가 필요한가봐요. 당사자가 여자라면 숫소의 생식기가 필요하겠죠. 또 당사자가 남자라면 암소의 생식기가 필요할 거구요." 카를로스가 말했다. "내 생각엔 그럴듯한 이론인 것 같아요."

나는 카를로스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마녀들이 왜 냄새나는 소 직장부분도 가져가는 걸까?

"그게 바로 소 의문사현상의 문제점이에요." 소년은 내 생각을 알아차린 듯이 말했다. "머리를 굴려서 해답을 발견해낼 때마다 또다른 문제점이 튀어나온다는 거죠."

치마요마을의 카를로스 집에 돌아와서는 카를로스 아버지의 트럭 뒤에 렌트카를 주차시켰다. 청자켓에 청바지를 차려 입은 카를로스 아버지는 커다랗고 길게 늘어진 콧수염 밑으로 틈만 나면 웃음을 흘리는 크고 건장한 남자였다. 그는 철공소를 운영한다.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철공소 직원들은 작업장 안에서 부지런히 용접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카를로스 아버지는 친구와 함께 부업으로 가축들을 기르고 있었다. 그가 말하길 가끔씩 소들을 돌보라고 고용한 파트타임 카우보이가 목장 안에서 죽은채로 누워 있는 화산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 소에게 일어난 사건에 대한 소감을 묻기도 전에, 그는 "외계인의 짓이라고 생각하는 동부지방 여인"의 의견에 찬성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는 그가 소 의문사현상의 유명한 전문가인 린다 몰튼 호위를 알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펜실베니아에 살고 있는 그녀는 두권의 저서와 두편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온갖 게시판과 웹사이트에 격렬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그녀의 작품들은 소 의문사현상이 부드러운 조직을 얻으려는 외계인의 짓이라고 주장한다. ("부드러운 조직"의 절단/"부드러운 조직"을 검사 등과 같이 "부드러운 조직"이란 말은 이쪽 분야에서 수도없이 사용되는 전문용어같은 존재다.)

"난 외계인 짓이라고 생각 안해요. 오케이?" 나에게 윙크하며 카를로스 아버지가 말했다. 그는 우리 둘 다 합리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환기시키려 했다. "외계인이 겨우 소 한마리 잡으려고 여기까지 날아올까? 오케이?" 눈동자를 굴리며 그가 물었다. "만약 이렇게 멀리 지구까지 날아올 정도의 능력을 가진 외계인이 소를 잡으려고 작정했다면 지금쯤 우리나라 목축업은 다 거덜났을걸. 내 말 알아듣겠어요?"

터무니없는 외계인 음모론을 던져 버리고, 카를로스 아버지는 진지하게 또다른 가능성을 내놓았다.

"뉴욕에서 어떤 남자가 죽는 사건이 벌어질 수 있겠죠. 안 그래요?" 그의 말은 속삭이는 것처럼 조심스러웠다. "사람들이 죽은 남자의 심장을 로스엔젤레스로 가져가서 다른 사람에게 이식해 줄 수 있어요. 안 그래요? 그럼 이식받은 사람은 몇년정도 더 살 수 있어요. 사람들은 한 사람에게서 피를 뽑아서 그걸 다른 사람에게 수혈할 수도 있고요. 전부다 가능한 일이죠. 그렇죠? 인간의 능력으로 가능해요. 악마숭배자들에게 피는 파워를 상징하지.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거든요. 피는 파워다. 그럼 심장은 뭐냐? 심장은 생명이다. 오케이? 그 악마숭배 놈들이 동물들의 피랑 심장을 누군가에게 갖다 바치는 건 아닐까요? 그런 행동이 그 동물의 파워를 바치는 거라고 믿을테니까."

내가 그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알아보려는 듯 그가 나를 바라보았다.

"파워라는 건 결국," 그는 최후의 멋진 한마디 대사를 뽐내기 위해 오랫동안 뜸을 들였다... "파워니까."

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 놈들이 소의 생식기를 가져가는 건 누군가를  위해 생명을 바친다는 뜻으로 해석이 가능한 거죠. 황소의 파워를 바친다는 거지." 그리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데 소 혀와 눈알은 도대체 왜 그러는건지 나도 모르겠다우."

[3]편으로 이어집니다.

Operation Moo [1] by 잭 히트

읽을꺼리 2007. 5. 8. 23:20 posted by 조재형
1967년 이후로 미국에서는 10,000마리가 넘는 소들이 "부드러운 조직들"이 제거된 채로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누구의 짓일까? 악마숭배자? 외계인? 생명과학 연구소? 미국 국방성 비밀조직? 이제 집념의 저널리스트 한명이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돌진한다. 그리고 마침내 밝혀지는 냉혹한 진실. (글의 출처는 미국 남성잡지 GQ 97년 2월호입니다.)

Operation Moo [1] by 잭 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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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글은 소설이 아닙니다. 잭 히트란 사람이 직접 취재해서 작성한 논픽션입니다. 또한 사건묘사에 있어서 과격한 표현이 있을 수도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뉴멕시코 고원지대 숲 속에서, 나는 몸을 웅크리고 앉아 무게가 1800파운드 나가는 황소의 시체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름이 "화산"인 그 소는 싸늘하게 식은 채 누워 있었다. 죽은 후 생기는 경직현상때문에 소다리는 죽은 소 특유의 우스꽝스런 자세로 뻣뻣해져 있었다. 내가 비행기를 타고 나서도 몇시간이나 차를 몰아 여기까지 온 것은 순전히 이 죽은 소를 보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지금 여기 현장에서 벌어진 사건은 잡지같은 데 쉽게 내보낼 수 없는 수준이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구역질나고 불쾌한 말들이 튀어 나올테니, 지금 옆에 애들이 있다면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 좋을 듯 싶다. 자 그럼 이제 시작해 볼까. 지금 내가 쭈그리고 앉아서 보고 있는 소의 살이 움푹 패인 부분은 "화산"의 항문이 잘려나간 상처이다. 항문 바깥쪽인 직장부분은 완전히 없어져 버렸다. 그 자리를 대신해서 꼬리 밑에는 누군가가 커피깡통으로 항문 속을 다 긁어낸 것 같이 구멍이 뚫려 있다.

여기서 끝내고 싶지만 -진심이다- 할 말이 더 남아있다. 살아 생전엔 "화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졌었던 소의 성기가 자랑스럽게 매달려 있던 부위는 연한 흰색의 달걀모양 흔적만 남아 있었다. 맙소사. 성기가 완전히 없어진 것이다. 그리고 화산의 우람한 고환이 붙어있어야 할 곳엔 -오 맙소사- 짧막한 혈관 하나가 삐죽 튀어나온 구멍이 입을 쩍 벌리고 있다. 그리고 냄새. 주위의 공기는 맹렬하게 코를 자극하는 냄새로 들끓고 있었다. 그 바람에 내 눈엔 눈물이 흘렀다. 찢어진 상처들의 날카로운 끝부분은 이제 하얀 구더기들로 인해 녹아내리고 있었다. 내 귀에는 조그맣게 바람빠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눈알이 없어진 화산의 왼쪽 눈엔 소름끼치는 죽음의 눈구멍만이 남았다. 소의 벌어진 입 안에는 혀가 없었다. 왼쪽 앞다리 밑으로는 상처가 나 있었다. 나를 이 곳 현장까지 안내해 주었던 어린 소년이 능숙하게 소 발굽을 들어 올렸다. 작은 파리들 한무리가 튀어 나오더니 날아가 버렸다. 나는 들어올려진 다리 사이로 난 검은 고깃덩어리들의 터널 속을 들여다 보았다.

"우리 아버지가 이 구멍 속을 보시더니," 아이가 겁먹은 목소리로 말했다. "소 심장이 없어졌대요." 나는 그 꼬마의 말을 믿는다.

카를로스  트루질로 주니어는 14살 소년이며, 화산을 소유한 목장주 아들이다. 그 아이는 나이키 자켓에 커다란 테니스신발을 신고 있는 보통소년이다. 카를로스 주니어는 뉴멕시코 치마요 마을에 있는 자기 집에서부터 나와 같이 멀고 후덥지근한 길을 동행해 주겠다고 했었다. 그래서 지리적인 특징을 알려주는 옛 스페인어 이름이 붙은 자잘한 부락들(페냐스코, "큰 바위"란 뜻)을 지나 여기 화산이 누워있는 고원지대 목장(라노 데 예구아, "바다의 평원"이란 뜻)까지 오게된 것이다. 태초에는 강바닥이었을 수도 있는 여기 고원지대 오르막길을 올라가느라 내 렌트카가 낑낑대며 덜컹거리는 동안, 카를로스는 내게 소 의문사현상에 대해 잘 알고 있냐고 물어왔다.

나는 소년에게 공식 언론보도에 따르면 1960년대 중반에 시작되어 전국적으로 10000마리가 넘는 소들이 의문의 죽음을 당했으며, 화산은 소 의문사현상의 가장 최근 희생소라는 것을 설명해 주었다. 이렇게 죽은 소들사이에는 놀랍도록 일치되는 면이 많다는 것도 말했다. 사건보도기사들은 각 희생소들의 일치되는 면을 나같이 겁많은 도시인들도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용어를 사용해 알려준다. 소의 "부드러운 조직들"은 "절단"되었고, 직장부분은 "적출"되어 "제거"되었으며, 생식기 -음경과 음낭 또는 질과 유방- 는 "레이져빔"이나 "외과적인 수술"같은 것으로 잘려졌고, 눈은 "숫가락같은 걸로 뽑혀 나갔으며", 체내기관들은 사라지고, 몸통 속은 "혈액이 말라 있었다." 나는 화산의 시체에 접근하거나 외부로 떨어져 나가는 발자국이 전혀 없었다는 점도 소년에게 말했다.

나는 사우스 캐롤리나, 찰스톤의 고등학교를 다니던 1970년대부터 소 의문사현상에 강한 흥미를 느꼈고, 시골에서 벌어지는 의문사에 관한 이야기들을 탐독했다. 수년간 나는 소 의문사현상이 속출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신문의 작은 기사들과 가끔씩 방송되는 텔레비전 프로에 주목했었다. 그 현상은 항상 한꺼번에 발생했다. 사실은 화산이 죽기 며칠 전에도, 타오스 지역에 인접한 곳의 한 농부가 3주간격으로 두마리 각기 다른 소가 의문사했다고 밝혔다.

내가 알기로 공식적인 조사활동을 시작한 곳은 뉴멕시코 가축관리국이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유타주와 캐나다 서스캐처원 무스죠에서 사건보도가 흘러나왔다. 나는 소 의문사현상을 다루는 웹사이트들을 매일 둘러본다. 초자연적인 현상을 주제로 한 사이트들을 돌아다니는 것이 아침시간의 자연스런 일상이 되었다. 그런 곳에는 의문사현상에 열광하는 팬들이 모여든다. Deja News와 Hyperspace Research Institute와 alt.alien.research와 Zeta Talk와 AUFORA홈페이지와 the Astronauts of Zion.

나는 카를로스에게 소 의문사현상의 최초 희생자는 사실 레이디라는 이름의 말이었다고 알려 주었다. 1967년 9월 콜로라도의 산루이스계곡에 화산과 흡사한 모습으로 죽어 있는 것이 발견된 것이다. 그 후 의문의 죽음은 줄곧 소들한테만 일어났다. 각 사건들은 언제나 놀랍도록 유사한 점이 많았기 때문에 예외를 찾아보기란 매우 힘들었다. 그러던 중 소 한마리가 나뭇가지들 위에 얹혀있는 채로 죽은 것이 발견되었다. -마치 소가 하늘에서 나무 위로 뚝 떨어진듯이. 또하나  특이한 사례에서는 뉴멕시코 둘체 근처에서 소 시체가 굵은 나뭇가지 두개에 꽉 끼어버린채 허공에 떠 있는 것이 목격되었다.

나는 카를로스에게 신문이나 방송은 이렇게 수시로 발생하고 있는 현상에 대해 제대로 보도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히려 언론매체들은 사건들을 내버려 두었고, 1994년 유타주의 KUTV에서 마이클 로손 기자가 보도한 "누가 또는 무엇이 소들을 이렇게 살해하고 있는가?"한 뉴스를 끝으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로손의 뉴스보도는 의문사현상을 언급한 가장 최근의 주류언론이었지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저널리스트 존 F 케네디 주니어가 등장하면서 기록이 깨졌다. (*역자주: 이 기사가 발표될 당시는 케네디 주니어가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었지만, 몇 년후 비행기 추락사고로 부인과 함께 사망하고 말았다.)

"17살때 아주 무서운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케네디 주니어는 자신이 창간한 정치잡지 George 96년 12월호에 칼럼을 썼다. "그 죽은 소는 완전히 피가 말라 있었습니다. 유방과 생식기관들 모두가 제거되어 있었씁니다." 미국 35대 대통령 아들은 내가 소 의문사현상을 설명하는 말투 그대로 칼럼을 전개시켰다. "날카로운 도구같은 것으로 주둥이가 잘려 있었고 윗입술, 혀, 한쪽 눈알이 제거되었습니다. 잘린 상처 주위의 털들은 하나도 흐트러지지 않았습니다. 주변 진흙땅에는 핏자국이나 발자국같이 눈에 보이는 가해자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칼럼 마지막을 전통적이면서도 오싹한 문장으로 끝맺음했다. "미스테리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내가 마지막으로 카를로스에게 했던 말은 미스테리를 해결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모든 의문들을 밝혀내고 싶다. 소 의문사현상 뒤에는 과연 누구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는가? 이런 현상이 1960년대에 시작되어 아직까지 계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저널리스트로서가 아니라 탐정의 자세로 그런 의문들에 다가서고 있었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스티븐 킹의 <불면증> 패러디

읽을꺼리 2007. 5. 8. 23:12 posted by 조재형
이 글은 스티븐 킹 소설 <불면증>을 제가 패러디한 것입니다.

불 면 증


- 원작: 스티븐 킹 / 작업: 조재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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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살의 나이에도 노익장을 과시하며 힘차게 살아가던 김노인. 몇 달째 불면증에 시달리며 잠을 한숨도 못 이루고 있었다.

'아~ 금방이라도 잠들 것같이 피곤한데, 왜 잠이 안오는 거냐.' 김노인은 벌써 몇시간째 침대에 누워 이리 뒤척거리다 저리 뒤척거리다 요리 뒤척거리다 조리 뒤척거리다 몸부림을 치면서 잠을 이루려 기를 쓰고 있었다.

'아니지. 어차피 죽으면 영원히 잘텐데, 이렇게 잠에 집착할 필요가 있을까? 그래 궁상떨지 말고 과감하게 일어나자.' 김노인은 충혈된 눈을 비비며 침대에서 일어나 책상 앞으로 갔다. 책상에는 그가 오래전에 우체국예금으로 구입한 인터넷 PC가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놓여 있었다. '이참에 인터넷을 배우는 거야. 나같은 늙은이라도 배울건 배워야 돼.' 막연한 두려움에 컴퓨터를 멀리했던 김노인은 용기를 내어 교재(제목: 이 책 읽어도 인터넷 못하면 당신은 사과껍질만도 못한 인간!)를 앞에 놓고 인터넷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과연 듣던 대로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였다. 교재를 따라 컴퓨터화면을 여기저기 눌러보니 신기한 정보들이 막 쏟아져 나왔다. 생각만큼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이런 것도 모르고 그동안 잠 안온다고 투덜대기만 했으니, 난 참 바보였어. 그러나 이제는 과거의 내가 아냐. 나도 이젠 어엿한 정보화시대의 신세대야.' 김노인은 불면증에 시달린 후 처음으로 삶의 희열을 느끼며 열심히 마우스를 움직여 인터넷 서핑을 즐겼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암초가 김노인의 앞을 가로막았다.

경고! 성인정보는 돈을 내셔야 합니다. 안 그러면 국물도 없습니다.

         갑자기 뜬 경고메시지에 김노인은 혈압이 솟구쳤다. "이럴수가! 언제부터 세상이 이렇게 각박해졌단 말이냐! 동방예의지국에 어른공경하는 흐뭇한 전통은 어디로 사라진거냐. 나같은 늙은이는 경로우대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 그는 성인사이트에 들어가려고 별짓을 다 했지만 허사였다. 오랜만에 젊은 아낙네의 모습을 통해 청춘을 되찾으려던 김노인의 야심은 자본주의의 벽 앞에서 좌절당하고 말았다. 마우스를 쥔 김노인의 손이 분노로 떨리고 있는동안 어느덧 날이 밝고 말았다.

          어수선한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그는 공원으로 산책나갔다. 몇 달째 계속된 불면증과 인터넷 좌절로 인해 그는 무척 피곤했다.

김노인의 앞으로 어린 꼬마가 지나갔다. '요즘은 어린애들도 인터넷 도사라던데, 쟤한테 물어볼까? 얘야~ 공짜로 사이트에 들어가는 패스워드 좀 가르쳐 주라. 아냐, 안돼. 어떻게 이 나이가 돼서 꼬마한테 그런 걸 물어보나.' 하지만 그는 곧 마음을 고쳐먹었다.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모르면서도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다. 늙은이라도 모르는 것이 있으면 어린이에게라도 물어서 알아야 한다."

그는 꼬마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꼬마 앞에 이상한 괴물녀석이 보였다. 꼬마만한 작은 키의 대머리였다. 커다란 눈엔 눈꺼풀이 없었으며, 귀끝이 뾰족했다. 그리고 녀석은 커다란 가위를 손에 들고 꼬마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서고 있었다. 대머리녀석이 바로 코 앞인데도 꼬마아이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 기색이었다. 내가 잠을 못 자서 헛것을 보고 있는건가? 김노인은 충혈된 눈을 손으로 비벼보았으나 여전히 대머리 괴물이 보였다. 대머리가 꼬마를 보며 기분나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커다란 가위를 치켜들었다.

꼬마에게 무슨 해꼬지를 하려는 게 분명해. 설마 저 커다란 가위로 꼬마를... 김노인은 황급히 몸을 날렸다. 일제시대 때 나까무라 순사한테 10원을 주고 배웠던 '힘껏 뛰어올라 두팔벌려 두발모아 중력무시 공중낙하' 기술을 발휘했다. 체력을 심하게 소모시키는 큰 기술이었지만, 대한민국의 장래를 짊어지고 갈 새싹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에 주저하지 않고 나섰다.

뻑! 김노인의 중력을 무시한 기습공격에 대머리녀석은 나가떨어졌다. "아니, 저 늙은이가 어떻게 날... 인간에게는 내가 안 보일텐데. 일단 후퇴다. 너 다음에 또 만나면 죽음이야! 밤길 조심해." 대머리녀석은 공원숲으로 달려가더니 커다란 나무 속으로 사라졌다. 마치 나무 속으로 흡수된 듯한 모습이었다.

어떻게 저런 일이... 김노인은 괴물녀석이 들어간 나무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짝짝짝. 등뒤에서 박수소리가 들렸다. 김노인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훌륭하십니다." 조금전의 대머리녀석과 똑같이 생긴 몸집이 작은 대머리 두녀석이 그를 향해 박수를 치고 있었다. "어린 생명을 구하셨습니다."

"너희들은 누구냐? 사람이냐 아니면 포켓몬스터냐? 피카츄?"

"아 긴장하지 마세요. 우린 당신을 해치지 않습니다." 오른쪽에 서있던 대머리가 말했다. "우린 인간이 아닙니다. 우린 인간의 생명을 관리하는 고차원의 존재들입니다. 저는 박사1이고 이 친구는 박사2라고 합니다."

"정말입니다. 거짓말 아닙니다." 왼쪽에 있는 박사2가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웃기지마. 생명을 관리한다니. 너희랑 똑같이 생긴 아까 대머리 녀석은 꼬마아이를 해치려고 했어!" 김노인이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녀석 때문에 꼬마에게 말도 못건넸어. 물어볼게 있었는데."

"저런 뭔가 급한 질문이었던 것 같은데 유감입니다. 그러나 우린 그 대머리녀석과는 틀립니다. 우린 인간의 생명이 타고난 수명대로 다할 수 있도록 관리하지만, 그 박사3 녀석은 재미로 인간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놈입니다." 박사1이 침착하게 말했다.

"뭐라고 어떻게 그럴수가..." 김노인은 왠지 박사1의 말에 믿음이 갔다.

박사2가 두 팔을 쫙 벌리고 외쳤다. "모든 것이 신의 뜻입니다. 인샬라관세음보살오마이갓! 신께서 우리들을 만드셨고, 박사3도 만드신 겁니다."

"아니 어떻게 신이 그런 망나니같은 박사3을 만들었지?"

"창조행위를 많이 하다보면 어쩌다 불량품도 나오는 거 아니겠습니까? 신께서 하시는 일에 어찌 우리같은 미물이 불평을 하리요, 인샬라관세음보살오마이갓!" 박사1도 두 팔을 쫙 벌리고 외쳤다. "사실 우리들이 김노인 당신 앞에 나타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김노인은 우연이라는 것을 평생 믿어본 적도 없었지만, 지금에 와서 이 대머리박사들을 만나고 보니 무엇이든 못 믿을 것이 없었다.

"우리는 당신에게 부탁할 일이 있습니다. 인간의 생명을 관리한다는 우리들도 손을 쓸 수가 없는 어려운 일입니다."

"아니 우리 인간을 관리한다는 당신네들도 못하는 일을 어떻게 나같은 인간이 할 수가 있어?"

"제 말을 끝까지 들어보세요, 끝까지." 박사1은 침착하게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마치 대학생이 초등학생을 앞에 놓고 불법과외를 가르치는 듯한 분위기였다. "지금 당신이 살고 있는 마을 사람들은 두패로 갈라져 온통 대립과 충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닭파와 계란파의 다툼이죠.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의 싸움에서 먼저 주도권을 잡기 위한 것입니다. 서로 자기파의 주장이 옳다면서 조금도 타협을 보려고 하지 않죠."

"당신은 어느쪽이죠? 닭이 먼절까요, 계란이 먼절까요." 박사2가 박사1의 말을 가로막으며 김노인에게 물었다.

"글쎄, 난 닭과 계란이라는 이분법적인 흑백논리에는 반대지. 내 생각에는 닭도 계란도 먼저가 아냐. 제일 먼저인 것은 고구마야."

"................그게 무슨 뜻이죠?" 박사1과 박사2가 굳은 표정으로 동시에 물었다.

"그냥 농담 한번 해본 건데,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마. 보기보단 유머감각이 없구만. 하긴 인간을 관리하는 몸이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겠지. 스트레스를 받다보면 웃음이 점점 없어지지. 스트레스 해소에는 그저 지렁이랑 팔씨름하는 게 최곤데... 이것도 농담인데 역시 안 웃는구만. 자네들 병원 한번 가봐야겠어. 심각해."

박사1이 억지로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서둘러 용건을 말했다. "계란파의 대부 아리까리박사가 와서 강연회를 합니다. 아리까리박사 잘 아시죠? 뉴스같은 데 나와서는 '계란 후라이같이 야만적인 음식을 먹지 맙시다. 그대신 켄터키치킨은 막 먹읍시다'같이 닭파를 자극시키는 망언을 일삼는 과격파 인사입니다. 그런 아리까리박사가 오늘 저녁 여기 마을회관에서 '계란을 우대하고 닭 위에 군림하는 사회를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수많은 계란파 조직원들 앞에서 강연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그 정보를 입수한 닭파는 음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강연이 시작되면 강연회장에 난입해서 계란파가 지켜보는 가운데 계란 후라이를 50개나 만들어 먹어치울 예정입니다. 그리고는 '우리는 계란 후라이를 먹은게 아니다 달걀 후라이였을 뿐이다'라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변명을 늘어 놓으며 계란파의 이념적인 분열을 시도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세계는 멸망입니다."

"으~ 계란 후라이를 만들어 먹다니, 그것도 50개씩이나. 인간으로서 어쩌면 그렇게 잔인한 짓을 할 수가!" 박사2는 머릿가죽을 마구 꼬집으며 절규했다.

"세상이 멸망? 뭔소리여? 겨우 우리 마을의 다툼 정도로 세상이 망해?"

"카오스이론이란게 있죠." 박사1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너무 잘난체하는 것으로 비쳐지지 않게 애쓰는 눈치였다. "중국에서 나비 한 마리가 날개짓 한번만 해도 반대편 미국에서는 그것 때문에 태풍이 몰아치는 법입니다. 사소한 사건 하나가 대재앙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아까 말한대로 닭파의 강연회장 난동으로 결국 계란파는 계란과 달걀의 이념노선 차이로 인해 보수적인 계란파와 진보적인 달걀파로 갈라지게 됩니다. 그러자 뒤늦게 계란파도 가만있질 않고 반격에 나서게 되죠. 결국 계란파의 교란작전에 휘말려 닭파도 영계에 대한 입장차이로 인해 실증적 사고를 중시하는 닭파와 추상적 개념을 중시하는 영계파로 분열될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다툼의 주체가 2개에서 4개로 늘어나 버리는 것입니다. 완전 혼란상태가 되는 것이죠. 그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로 당신의 마을에 국한되던 싸움이 인터넷, 국제항공, 위성방송, KFC 등을 통해 전세계로 퍼지게 되고 끝없는 싸움 끝에 인류는 멸망할 것입니다. 그리고나면 전세계는 닭이 지배하게 되는 것이죠."

"닭이?" 김노인은 미래의 현실에 충격을 먹었다.

"후후후, 놀라셨습니까? 그럴 수밖에 없죠. 계란이 나서기엔 팔도 다리도 콧구멍도 아무것도 없으니 결국 닭이 나설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어요?" 박사2가 냉소적인 태도로 말했다. 결국은 닭이 최고라는 듯이.

"그러니 이 모든 파멸의 발단이 되는 오늘 강연회에서 닭파의 난동을 막아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대가!" 박사1의 손가락이 김노인의 가슴을 콕 찍었다.

"당신들이 직접 하지그래?"

"저희는 닭 알레르기가 있어서..." 박사2가 약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나같은 늙은이가 뭘 하겠어? 닭파가 몰려오는데 힘없는 내가 뭘 어떡해 하지? 가뜩이나 요즘 불면증 때문에 잠을 통 못자서 죽겠는데."

"바로 그겁니다. 불! 면! 쯩! 김노인 당신은 그 불면증으로 인해 다른 인간들에겐 없는 초능력이 생겼습니다."

"내가? 난 아무렇지도 않은데?"

"아니오. 벌써 당신은 초능력자입니다. 이렇게 우리들을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 증거입니다. 우리는 다른 인간들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뭐? 그러고 보니 조금 전의 꼬마는 박사3이 커다란 가위를 들고 다가오는데도 보지 못했어. 멀리 떨어진 나도 보았는데..."

그때 갑자기 축구공 하나가 총알같이 날아와서는 박사2의 안면을 정통으로 강타했다. 박사2는 갑작스런 충격에 비명 한번 내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어찌나 심하게 공에 맞았던지 얼굴 전체가 찌그러진 주전자처럼 움푹 주저앉았다.

축구유니폼을 입은 청년이 김노인쪽으로 뛰어왔다. "할아버지 안다치셨어요? 죄송합니다. 저는 사실 월드컵 꿈나무입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 예선전을 앞두고 슈팅연습을 하다 시속 300km짜리 울트라메가톤급 폭탄슛을 날렸는데, 그만 이쪽으로 날아가고 말았네요. 정말 괜찮으신거죠?" 김노인이 괜찮다고 하자 월드컵 꿈나무 청년은 축구공을 들고 가버렸다. 가면서 쓰러져 있는 박사2의 얼굴을 밟고 지나가서 박사2가 숨넘어가는 비명소리를 질렀지만, 월드컵 꿈나무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아니 나의 베스트 프랜드가!" 박사1이 잔뜩 슬픈 표정을 지으며 박사2에게 다가갔다.

그때 갑자기 스쿠터를 탄 중국집 배달원이 박사1의 몸을 들이받았다. 전속력으로 달려오던 스쿠터에 부딪힌 박사1은 공중으로 날아갔다가 한참만에 땅에 떨어졌다. 어찌나 충격이 심했던지 눈이 빙빙 돌아가고 있었다.

배달원이 스쿠터에서 내려 김노인에게 뛰어왔다. "할아버지 안다치셨어요? 죄송합니다. 저는 사실 요 밑에 신장개업한 중화요리집 '광란의 짱깨반점' 수석 배달원입니다. 지금 당장 맛있는 짜장을 먹지 못하면 자살하겠다는 성질 급한 손님의 주문을 받고서 조급한 마음에 과속을 하다 그만 이렇게 부딪히게된 것입니다. 정말 괜찮으신거죠?" 김노인이 괜찮다고 하자 중국집 수석 배달원은 스쿠터를 몰고 가버렸다. 스쿠터가 굴러가면서 쓰러져 있는 박사1의 몸통을 밟고 지나가서 박사1이 처절한 비명소리를 질렀지만, 수석 배달원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정말 내 눈에만 저 대머리박사들이 보이는구나. 지긋지긋하던 불면증 때문에 이런 희안한 능력이 생기다니' 김노인은 박사들이 걱정되었다. "이봐들, 괜찮아? 병원에 안가도 괜찮겠어? 충격이 심한 것 같은데."

"괜찮습니다. 저희는 연약한 인간이 아니니까요. 이런 정도는 아무것도..."

박사들이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박사1은 콜록거리며 기침을 하다 피를 한 바가지나 쏟았다. 박사2는 축구공에 맞은 코가 깨져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고 있었다. "우린 강합니다. 마징가제트보다 더" 박사2가 움푹 패인 얼굴로 힘겹게 미소를 지었다. 벌린 입안에는 이빨이 왕창 부러져 버렸고 없어진 이빨 틈으로 피가 물처럼 줄줄 흘러나왔다. 박사1은 일어서다가 털썩 쓰러졌다. 박사2가 부축해주어서 겨우 일어섰다. 김노인은 박사1이 박사2에게 조심스레 귓속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나 갈비뼈가 다 부러진 것 같아. 부서진 뼈들이 폐를 찌르네. 숨쉬기가 곤란해. 이거 업무중 사고로 인한 산재처리 될까?"

"인샬라관세음보살오마이갓!" 박사2는 조금전처럼 두팔을 쫙 벌리고 외치려다 관두고 턱을 잡고 눈물을 한방울 흘렸다. 아무래도 턱이 산산조각난 것 같았다. "모든 것은 신의 뜻이니까 난 잘 모르겠어. 나도 얼굴뼈가 왕창 무너져 내렸어. 성형수술 해야될텐데 큰일이다. 성형수술은 산재처리 힘들다던데."

"하여간에 얘기하던 거나 끝내자구. 내가 당신들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치고. 그런데 겨우 이런 능력가지고 어떻게 닭파를 막아내나?" 김노인이 비실거리며 정신못차리는  박사들을 재촉했다.

박사1이 아픈 몸임에도 불구하고 정성껏 대답했다. "아까도 말했듯이 불! 면! 쯩! 그것 때문에 다른 초능력들이 억수로 많이 생겼습니다. 그 능력들을 잘 발휘하면 닭파쯤 막아내는 건 일도 아닙니다. 당신은 사람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능력 등을 비롯해 합계 38가지 초능력을 이미 지녔습니다. 불면증에 시달리면서부터."

"글쎄. 내가 다른 사람들 생각도 읽을 수 있다고? 난 못 느끼겠는데."

"지금은 바빠서 안되고 이따가 여기 공원에서 다시 만나서 자세한 초능력 사용법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강연회가 오후 8시에 열리니까 그 전에 오후 6시에 만나기로 하죠."

"아니 왜 지금 다 말해주지 않고."

"죄송합니다. 지금이 저희 점심시간이라서. 늦게 가면 식당 아줌마가 밥을 안 줍니다. 먹자고 사는 인생인데 끼니는 꼬박꼬박 챙겨야지요." 박사1이 입에서 피를 질질 흘리며 말했다.

"그럼 이따봐요. 빠이빠이." 박사들은 공원잔디밭 쪽으로 걸어갔다. 곧이어 스르르 사라져갔다.

김노인은 그들이 망가진 몸을 하고 점심을 제대로 먹을수나 있을지 궁금했지만, 이내 자신의 문제로 생각을 옮겼다. '내가 정말 초능력을 가졌단 말인가? 불면증 때문에? 저들 말마따나 대머리박사들을 볼 수 있고, 게다가 사람의 생각도 읽을 수 있다?"

그때 김노인 앞으로 근심에 젖은 얼굴을 한 중년남자가 지나갔다. 김노인은 순간적으로 중년남자의 몸에서 나오는 기를 느낄 수 있었다. 남자의 기는 어쩐 일인지 엉덩이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와 동시에 김노인은 그 남자의 생각을 절절하게 느꼈다. "당신 치질있지!"

"아니 그걸 어떻게? 아까부터 근질거려서 죽겠는데." 중년남자는 은밀한 사적인 비밀이 탄로난 것이 부끄러운 듯 황급히 달아났다.

공원잔디밭 옆으로 아름다운 숙녀 한명이 지나가고 있었다. 역시 그녀도 근심에 젖은 얼굴을 하고서. 김노인은 그녀에게 달려갔다. 이번엔 조금전보다 더욱 자신있게 그녀를 향해 소리질렀다. "당신 노팬티지!"

"아니 그걸 어떻게? 아침부터 허전해서 찝찝했는데." 아름다운 숙녀는 얼굴이 빨개져서는 도망치듯이 달아났다.

정말이구나. 김노인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정말 초능력이 생긴 것이다.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니. 이젠 인터넷 성인사이트 따위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 초능력을 맘껏 이용해 큰일을 해내고 말테다!" 김노인은 공원 한가운데서 절규하듯 포효했다. 다른 초능력 따윈 필요없다. 이 능력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는 세상이 온통 자신의 것이 된 듯 했다. 그는 서둘러 공원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오후 6시.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공원에 대머리박사 1과 2가 나타났다. 박사1은 휠체어를 타고 있었고, 박사2는 얼굴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었다. 둘은 인류를 혼돈에서 구해줄 김노인을 기다렸다. 그러나 김노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왜 안올까?" 박사1이 깨진 가슴이 아프지 않도록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잠 자나?"

"그 사람 불면증인데?"

"그럼 밥먹고 있나?"

"그 얘기하니까 나도 배고파."

"배고플 땐 스트레스를 받아서 배꼽에 꽃이 핀다지? 배꽃이라고."

"너 아까 김노인의 썰렁유머에 강렬한 영향을 받았구나."

".......... 미안하다 친구야."

박사들은 한참을 기다렸으나 끝내 김노인은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그 시간 무렵, 어느 어두운 골목길. 가출했으나 돈이 떨어져 방황하고 있는 10대 소녀 앞에 한 노인이 나타났다. 소녀는 기겁을 했다. 노인은 몇 년동안 한숨도 못 잔 것처럼 매우 수척해 보였다. 마치 살아있는 시체처럼. 그가 소녀에게 10만원을 주었다.

"할아버지 이게 뭐에요?"

"네가 방금 마음 속으로 '아~ 10만원만 있으면 디립따 좋겠네. 돈버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할텐데'하고 생각했잖니. 그래서 주는거야."

"아니 제 맘을 어떻게..."

"난 네 생각을 읽을 수 있어. 이제 네 생각을 실천에 옮겨라. 10만원만 벌 수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잖느냐. 이제 돈이 생겼으니 나랑 뭐든지 해야겠지?"

"네? 뭐라구요?"

다음날 조간신문 사회면에 대문짝만한 기사가 났다.

계란파의 대부 아리까리박사 강연회에 닭파 난입. 계란 후라이를 먹어치우는 난동을 부렸음. 일부 계란파에 동요가 있었음. 아리까리박사는 "세상이 말세"라며 신속한 수사를 요구했으나, 경찰과 검찰은 자칫 계란과 달걀의 법적 해석을 둘러싼 양계장 측과의 마찰을 우려해 신중한 자세를 취하고 있음. 한편 야당은 이런 미온적인 태도에 대해 청와대측의 입김이 작용했다며 국정조사권 발동을 요구하고 나섰는데...

그 강연회기사 밑으로 아주 작게 한 노인의 범죄기사가 실려 있었다.

변태영감 10대소녀에게 원조교제 유혹. 소녀의 신고로 쇠고랑. 본인은 자기가 초능력자라며 횡설수설. 한국초능력협회에서는 즉각 변태노인과의 관련을 부인했음. 한편 "네 마음을 보여줘"라는 저서로 유명한 심리학자 왕내숭 교수는 이번 사건에 대해 "우리 사회의 무관심이 만들어낸 안타까운 현실이다, 노친네가 얼마나 외로웠으면 밤에 잠도 못자고 괴로워하다 저지경까지 되었겠느냐"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하여 불면증에 걸린 노인의 힘으로 살아날 수도 있었던 인류는 조용히 파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 THE END -

COMICAL MYSTERY TOUR - 3쿼터 실종사건

읽을꺼리 2007. 5. 8. 00:35 posted by 조재형

이시이 히사이찌는 일본의 4컷 만화가입니다. 그가 아사히 신문에 연재하던 "이웃의 야마다군"은 지브리 스튜디오에 의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화제를 모았습니다. COMYCAL MYSTERY TOUR는 東京創元社에서 발간한 이시이의 단편만화집입니다. 주된 내용은 명탐정 홈즈와 그의 의사친구 왓슨이 겪는 모험담(?)을 다루고 있으며, 틈틈이 유명한 미스테리작품을 패러디한 내용도 있습니다.(그 중에는 스티븐 킹의 작품도 포함되어 있답니다.)

※ 이시이 히사이찌의 "이웃의 야마다군"은 국내에 출간되어 있답니다. 다락원에서 출간한 '네컷만화 속의 일본어: 제2권 아사히신문편'을 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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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인: 실종된 고뜨프리 스톤튼 선수가 3쿼터까지 나타나지 않으면, 우리 캠브리지대학 럭비팀은 옥스포드대학팀에 참패당합니다. 홈즈씨!

홈즈: 그렇겠군요.


홈즈: 실종사건은 가격이 좀 비쌉니다. 선불로 300파운드 주십시오.

의뢰인: 엣, 선불입니까? 예, 좋습니다.


의뢰인: 수사는 극비리에 진행해 주십시오. 홈즈씨.

홈즈; 맡겨만 주십시오, 오바튼씨.


 

홈즈: 좋았어. 옥스포드에 300파운드 전부 걸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