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내 꿈은 만화가였다. 잘 그리지도 못하면서 누런 16절지에 연필로 꾹꾹 눌러가며 열심히 그렸다. 세월이 흐른 지금은 만화원고들이 다 없어졌지만, 그 중에서 운좋게 살아남은 몇장의 원고를 소개한다. 오래되어 종이가 심하게 변했지만, 고전만화라 생각하고 봐주세요. 서투른 그림 속에 제법 철학이 흐른다. 뿌듯~.
이 만화는 여름방학때 '검은 마인'이라는 추리소설을 읽고서 그대로 그려본 것이다.
행인; 달구경하는 것은 내 취미야.
-바람이 분다.
행인: 내 가발이 바람에 날려 가는군. 가발아 돌아오라. (가발을 집는다) 엉? 그림자가 가발을 잡고 놓아주지 않잖아? 앗! 그림자가 움직인다.
-그림자가 웃는다.
그림자: 하하하
행인: 그림자가 웃었어. 아이고 어쨌든 난 기절이다.
(다음날 TV뉴스)
아나운서: 안녕하십니까. 아침뉴스입니다. 요즘 거리에는 검은 마인이라 불리는 괴인이 나타나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있읍니다. 특히 이 검은 마인은 아무리 문단속을 잘한 집이라도 왔다갔다하는 정말 귀신같은 존재입니다.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약 30명인데 놀랐을뿐 다치거나 금품을 빼앗기지 않았읍니다. 그러나 이 괴인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 지금은 '~습니다'가 문법에 맞다. 그러나 나 어릴때는 '~읍니다'가 문법상 올바른 표현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그당시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
(신문기사)
-믿을 수 없는 존재. 정말 귀신일까? 아니면 사람의 장난일까?
(며칠후 신문기사)
-경찰은 무엇하는 거냐? 남의 집을 마음대로 드나드는 마인을 그대로 두면 안된다. 빨리 체포하라.
(치안본부 - 이 명칭을 통해 우린 여기서 또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
-관계자외 출입금지-
형사: 반장님. 그리 심려하지 마세요.
반장: 이봐! 이것이 단순히 사람의 장난이라고 생각하나? 지금 검은 마인은 자기 힘을 자랑하고 있는거야. 마인의 웃음, 무엇을 뜻하는지 아나?
검은 마인: 하하하. (알통 = 힘자랑)
반장: 자기의 힘을 완전히 자랑했다고 생각하면 마인은 어떤 짓을 할지 몰라.
-상징적으로 식칼을 든 강도와 금고의 돈을 훔쳐가는 절도의 모습이 묘사된다.
반장: 그러므로 우리는 하루속히 검은 마인을 잡아야 해.
해설: 검은 마인은 어떤 일을 저지를까요? 그것은 검은 마인이 나타난지 한달이 지난 후에 명백히 드러났읍니다. -궁금증을 유발시키기 위한 물음표 등장.
누구나 자기 마음 속에 열렬히 좋아하는 스타를 가지고 있겠지요. 그 대상이 이효리일 수도 있고, 김혜수일 수도 있고, 전지현, 또는 고소영, 또는 김희선, 또는 이영애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제 경우엔 너무 많지만(앞의 여섯 명 포함), 그 중 넘버원은 미국의 소설가 스티븐 킹입니다. 학교 다닐 때, 처음으로 그의 소설 <그것(IT)>을 읽어 보고는 킹 특유의 강렬한 분위기에 홀라당 반해 버렸습니다.
스티븐 킹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소설가인 것은 확실하지만, 상대적으로 한국에서는 그의 인기가 낮은 지라 그의 이름을 조금이나마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이렇게 팬페이지를 만들었습니다. 이것을 보고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들추어 보는 계기가 조금이라도 만들어질 수 있다면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교보문고같은 대형서점에서 킹의 소설이 베스트셀러 순위에 진입하는 것을 보는 것이 꿈입니다.
저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를 하자면 남자구요, 낼 모레면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구요, 장래희망은 착하고 쎅쉬한 아내를 만나서 아들딸 하나씩 낳고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피한 인생을...
그리고 저는 스티븐 킹 소설 <미저리>와 <스탠드>를 번역했습니다(황금가지 출판사). 킹의 팬인 저로서는 무한한 영광이지요.
조재형 번역~♡
조재형 번역~♡
아, 그리고 제 이메일 주소는 아래와 같습니다. 이메일 보내실 일이 있으면 이 주소로 보내시면 됩니다.
아,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2000년 12월부터 스티븐 킹 "홈페이지"를 운영하다가 2007년 5월부로 스티븐 킹 "블로그"를 시작했습니다.
1) 파란만장한 스티븐 킹의 인생 2) 최대 라이벌 작가 리처드 바크먼 소개 3) 스티븐 킹의 음악혼
위와 같은 3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하겠습니다.
※ 파란만장한 스티븐 킹의 인생
We Never Sleep 우리는 잠들지 않는다
스티븐 킹은 1947년 9월 21일, 메인주 포틀랜드에서 태어났다. 방문 판매원이었던 아버지는 담배사러 간다고 집을 나갔다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 후로 스티븐 킹은 아버지를 보지 못했다.
스티븐 킹과 형 데이빗 킹은 홀로 생계를 떠맡은 어머니를 따라 여기저기 이사를 다니며 힘든 생활을 했다. 어린 스티븐은 그의 형이 발행하던 동네신문 '데이브의 잡동사니'에 글을 쓰면서 글쓰기에 재미를 붙였다. 애들이 만드는 동네신문이라 집에서 등사기계로 찍어내고, 발행부수는 겨우 20부 정도였다. 신문의 글이 어느 정도 호응을 얻은데 힘입어, 스티븐은 직접 쓴 단편소설들을 신문찍던 등사기계로 인쇄하여 동네주민들에게 팔아 30센트나 벌었다! 그리고는 학교로 진출해서 선생님들한테 발각될 때까지 친구들한테 소설을 팔았다.
이 시기에 킹은 많은 단편소설을 썼는데, 대다수가 '3인조와 가스등 서적'이라는 회사에 의해 출판되었다. 사실 그 회사는 스티븐 킹, 데이빗 킹, 크리스 체슬리 세명의 아이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이들이 셀프 출판한 마지막 작품은 2부작으로 구성된 '별에서 온 침략자들'이었다.
대부분 킹의 많은 초기작품들은 SF였는데, 과학적 지식의 부족으로 세부묘사가 좀 빈약했지만, 그 또래의 아이들에게는 인기였다. 스티븐 킹이 공포소설 쓰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1959년 이모집에서 낡은 SF잡지와 공포잡지들로 가득한 박스를 발견하고 부터이다. 잡지를 통해 러브크래프트, 로버트 블록, 잭 피니 등의 작가에게 영향을 받아 그는 공포소설 쓰기에 열중하였고, 1965년 만화잡지에 '나는 소년 도굴꾼이었다 I Was A Teenage Grave Robber'를 발표하게 되었다. 스티븐 킹이 최초로 작품을 정식판매하게 되는 때는 그 후 1967년 잡지 'Startling Mystery Stories'에서 '유리복도 The Glass Floor'라는 그의 소설을 사들였을 때이다.
1988년에 있었던 인터뷰에서 킹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불공평하다는 감정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내 기억으로는... 우리 어머니는 홀몸이셨는데, 내가 2살 때 어머니의 남편이 그녀를 버리고 갔기 때문이었죠. 그 덕분에 어머닌 온갖 궃은 일들을 닥치는 대로 해야했습니다. 우리는 거의 빈털터리나 다름없었어요. 우리 생활은 점점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어갔고, 그 시대에 누려야 할 동등한 기회 따윈 아무데도 없었어요. 형과 나는 열쇠 아이(부모가 일하러 나가서 집이 잠겨 있기 때문에 집 열쇠를 가지고 다니는 아이)란 말이 생기기 전부터 이미 열쇠 아이었어요. 어머니는 여성 근로자가 되서 힘들게 생활해야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별로 힘든 내색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난 바보가 아니었고, 주위 상황이 다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누구는 이용당하고 누구는 다른 사람을 부려먹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느낌은 오늘날 내 작품 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스티븐 킹은 1966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오로노의 메인대학에 들어갔다. 대학시절에는 태비사 스프루스라는 여자를 만나게 된다. 그는 1970년에 대학을 졸업해서 영어교사 자격을 얻게 되었고, 1971년에는 결혼을 해서 태비사 스프루스라는 여자를 태비사 킹 Tabitha King으로 만들어 주었다.
스티븐 킹은 산업용 세탁공장에서 일을 시작했고, 그 다음엔 건물 경비원이었다가, 1971년 가을 마침내 메인주에 위치한 햄든 공립학교의 영어 선생님이 되었다. 그래도 생활이 안정될 만큼 돈을 벌지 못해서, 날아 들어오는 청구서들을 처리하느라 곤란을 겪었다. 킹은 근무 외의 시간에 글을 계속 써왔는데, 1973년 3월 2500달러의 선금을 받고서 더블데이 출판사와 '캐리'라는 소설의 출판계약을 맺었고, 덕분에 태비사는 최악의 생활 환경에서 구출되었다! 그러나 실제 책이 출간된 것은 더 시간이 지나서였다.
생계에 몸부림치던 킹의 가족들에 도움을 준 것은 캐리의 출판 계약이었지만, 1973년 5월 12일에 걸려온 한통의 짧은 전화는 킹의 가족들 인생을 영원히 바꿔 놓았다. 더블데이가 '캐리'의 페이퍼백 출판권을 뉴 어메리칸 라이브러리(NAL)에 넘기면서 400,000달러를 받았는데, 킹이 그 금액의 절반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그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스티븐 킹은 아내 태비사에게 헤어드라이기를 선물했다고 한다. 이제 지긋지긋한 가난은 끝났다. 74년 출간된 '캐리'는 순식간에 인기를 끌었다. 스티븐은 과거와 달리 온종일 아무 때나 글쓰기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킹의 어머니는 캐리의 출판 계약 소식은 들었지만, 실제 출간된 책은 보지도 못한 채 세상을 뜨고 말았다.
최초 제목이 'Second Coming'이었던 킹의 두 번째 소설 '살렘스 롯'이 출간되고서 킹에게는 공포소설가라는 딱지가 붙어다녔지만, 그로서는 별로 걱정하지 않았을 것 같다. NAL에게 두 번째 소설의 페이퍼백 출판권을 넘기는 대가로 킹은 500,000달러의 절반을 받았으니까.
그 후, 킹은 계속적인 집필 활동을 통해 베스트셀러를 쏟아냈고, 이제는 미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공포소설가가 되었다. 40편이 넘는 소설을 펴냈는데 죄다 베스트셀러가 되어, 이제는 킹의 세탁물 목록을 적어서 책으로 내도 날개 돛친 듯 팔릴 거라는 말을 들을 정도이다.
킹은 1999년에 교통사고를 당해서 작가 생활에 위기를 맞았다. 집 근처를 산책하던 중 달려드는 밴 승합차에 충돌해서 사경을 헤맸다. 가까스로 의식을 되찾은 후에는 다시 예전처럼 글을 쓰지 못할것이라는 두려움에 빠지기도 했지만, 툭툭 털고 일어나 이제는 또다시 사람들에게 끔찍한 공포를 안겨주기 위해 책상 앞에서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킹 집주소: 47 West Broadway Bangor, Maine 04401 USA
킹 사무실 주소: 49 Florida Avenue Bangor, Maine 04401 USA
스티븐 킹의 집
아내 태비사 킹
※ 최대 라이벌작가
리처드 바크먼 Richard Bachman 소개
리처드 바크먼은 뉴욕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 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젊은 시절에는 해양 경비대에서 4년을 복무했고, 그 후 10년간은 선원생활을 했다.
바크먼은 마침내 뉴햄프셔의 시골에 정착해서 중간 정도 규모의 목장을 운영하였다. 소들이 축사 안으로 들어간 뒤 밤이 되면, 그는 글을 썼다. (그는 고질적인 불면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바크먼에게는 아내와 아들 하나가 있었는데, 아들이 그만 6살때 스티븐 킹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불행한 사고로 죽었다. 우물에 빠져 익사한 것이다. 1982년 바크먼은 뇌종양이 발견되어 제거 수술을 받았다.
1985년에 갑작스럽게도 바크먼은 필명(筆名)암이라는 희귀한 병에 걸려 죽고 말았다. 너무 급속도로 퍼지는 악성암이어서 의사도 손을 쓸 수가 없었다.
리처드 바크먼은 1977년 '분노 Rage'를 시작으로 1994년 '통제자들 The Regulators'까지 전부 6권의 소설을 남겼다.(통제자들은 사망후 출간) 리처드 바크먼의 작품을 편집했던 사람이 공교롭게도 스티븐 킹의 편집인이기도 한 찰스 베럴이어서, 스티븐 킹은 줄곧 리처드 바크먼과 비교되어 왔다. 바크먼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스티븐 킹은 언짢은 기분을 감추지 않았다. "구역질나게 더러운 인간... 그 사람이 죽어버려서 기쁩니다."
사실 리처드 바크먼은 스티븐 킹의 필명이다. 위의 약력은 전부 킹이 꾸며낸 것이다. 킹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필명을 써서 6권의 책을 펴냈던 것이다. 스티븐 킹은 대중적 인기에도 불구하고, 평론가들에게는 그저 그런 싸구려 작가 취급을 받아왔는데 리처드 바크먼으로 책을 내자 평론가들로부터 '새로운 신인의 탄생!'이라는 찬사가 터져 나왔다고 한다.(킹은 몰래 숨어서 얼마나 고소해했을까?) 이런 킹의 이중생활은 스티브 브라운이라는 서점 아르바이트 직원이 진실을 밝혀냄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자 평범한 수준이던 리처드 바크먼의 소설 판매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자, 그럼 스티브 브라운이라는 아르바이트생은 어떻게 리처드 바크먼의 정체를 밝혀내게 되었는가? 아래에 본인이 직접 이야기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적어 놓았다.
* * * * * * * 리처드 바크먼 소설 'Thinner'의 홍보용 견본책을 읽었을 때, 나는 두 페이지만 읽고서도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은 스티븐 킹이 썼거나 그의 스타일을 완벽하게 모방한 사람이 쓴 것일 거다." 나는 정말 킹이 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장난 삼아서, 나는 지하철을 타고 국회 도서관에 가서 저작권 서류를 둘러보았다. 바크먼의 가장 오래된 작품을 제외한 전부가 커비 맥컬리라는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었다. 커다란 단서였다. 맥컬리라면 스티븐 킹의 에이전트가 아닌가. 그러나 결정적인 단서는 아니다. 맥컬리가 관여하는 작가가 한둘이 아니었으니까. 가장 오래된 작품의 저작권 정보는 너무 오래 전이라 국회 도서관의 컴퓨터 검색 시스템에 입력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쯤에서 포기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끝장을 보기위해, 도서관 직원에게 문서 보관실에서 직접 찾아달라고 떼를 썼다. 그 직원은 갔다와서 내게 저작권 서류를 건넸다. 서류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메인주 뱅고어, 스티븐 킹>. 난 모든 서류들을 복사해서 집에 가지고 왔다.
나는 킹을 존경하고 좋아한다. 그를 상처받게 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모든 서류를 카피해서 내가 발견한 사실을 설명하는 편지를 썼다. 이번 일에 관련된 사정을 설명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고 쓰고서, 만약 무슨 문제꺼리가 있다면 나에게 알려 달라, 그러면 입을 꾹 다물고 있겠다고 얘기했다. 난 그 우편물을 커비 맥컬리/스티븐 킹 앞으로 보냈다. 나는 기껏해야 답장 정도는 오겠지라고 생각했다.
2주일이 지났다. 내가 일하는 대형 서점에서 방송이 흘러나오는 소리를 들었다. "스티브 브라운, 스티브 브라운. 5번 회선에 전화가 와 있습니다." 전화를 받자, 목소리가 들렸다. " 스티브 브라운? 나는 스티븐 킹입니다. 그래 좋아요. 내가 바크먼이란 걸 당신이 알게 됐군요. 내가 바크먼이란 건 나도 알고 있답니다. 자, 그럼 이제 우리 뭘해야 될까요? 상의해 봅시다."
편지를 보낼때 내 전화번호나 심지어 내가 일하는 서점 이름 조차 밝히지 않았으므로, 그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줄 가능성은 없었다. 그런데 그는 그날 오후 내내 나를 찾으려고 워싱턴의 모든 서점들에 전부 전화를 걸어봤다는 것이다!
어쨌든 우린 한동안 통화를 했고, 그는 전화번호부에 올라와 있지도 않은 그의 집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저녁에 연락하라고 말했다. 나는 밖에 나가서 전화에 연결하는 녹음기를 구해다가 3일밤을 계속 그와 전화 인터뷰를 나눴다. 인터뷰 내내 그는 편안해했고, 아주 유머스러웠다. 내가 그의 정체를 알아낸 것을 그다지 염려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매우 정중한 태도였으며, 우리가 얘기 나눈 주제에 관해서 다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테니 내 인터뷰가 유일하게 분량이 많은 인터뷰 자료가 될 거라고 했다.
그 인터뷰를 다듬고 발표할 곳을 찾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 그 동안에 킹이 나에게 연락을 해서 점점 많은 사람들이 Thinner를 읽고서 그를 의심하고 있다고 전해주었다. 마침내 나는 인터뷰 내용을 워싱턴 포스트에 발표했다. 그리고 온 세상에 퍼져 나갔다.
흥미있는 사람을 위해 알려주겠다. 내 인터뷰(워싱턴 포스트가 삭제했던 내 지저분한 표현들도 포함했다)는 언더우드/밀러의 킹에 관한 에세이 모음집 '공포의 왕국 Kingdom of Fear'에 수록되어 있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내 편지에 연락 전화번호가 없었는데도 킹 본인이 자신의 의사로 나에게 전화를 했고, 내가 아니라 그의 제의로 길고긴 인터뷰가 나에게 주어졌다는 것이다. 내 생각엔 그는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질 거라 예상하고 있었고, 뉴욕타임즈같은 것이 아니라 워싱턴에 사는 무명의 서점 직원에 의해 밝혀지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다.
또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모든 것이 킹에 대한 존경심에서 비롯된 것이고, 나에게는 단지 멋진 게임이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번 일을 돈벌이에 이용하지 않았다. 킹은 오리지널판 바크먼 시리즈의 서문에 내 이름을 언급해 주었는데, 현재 버전에서는 빠져 있다.
※ 스티븐 킹의 음악혼
캐시 골드마크와 스티븐 킹이 혼신의 힘을 다해 듀엣곡을 열창하고 있다. 곡목은 '겉표지로 책을 판단할 순 없어 You Can't Judge A Book By The Cover'.
스티븐 킹은 락앤롤 밴드에서 리듬 기타와 보컬을 맡고 있기도 하다.
1992년 마이애미에서 열린 미국 출판인협회(ABA)회의에서는 작가와 출판계 종사자들로 이루어진 The Rock Bottom Remainders라는 밴드가 출연해 흥을 돋구었다. 스티븐 킹도 여기에 참여해서 나름대로 음악혼을 불태웠다. 캐시 골드마크라는 출판업자가 작가들을 출판 사인회에 데려다 주며 운전을 하다가 작가들로 이루어진 밴드는 어떨까?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라 실행에 옮긴 것이다. 그러나 그 밴드는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한 번 솟구친 스티븐 킹의 음악혼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킹은 밴드 멤버들에게 1993년 마이애미에서 열리는 ABA회의에서 또다시 공연을 하자고 제안했고, 거기다 한술 더 떠서 미국 5대도시 순회 콘서트도 갖자고 했다. 이런... 너무 도가 지나친 거 아냐? 하지만 킹의 꿈은 실현되었다. '3 Chords and an Attitude Tour'라는 슬로건으로 1993년 5월 프로비던스, 노스햄프턴, 캠브릿지, 워싱턴, 필라델피아, 애틀란다, 내쉬빌, 그리고 마이애미까지 미국 순회콘서트를 열어 공연을 가졌다. 이때 공연을 사진으로 찍고, 밴드 멤버들(즉, 인기 작가들)이 각 파트를 맡아 집필해서 'Mid-Life Confidential: The Rock Bottom Remainders Tour America with Three Chords and an Attitude'라는 길고긴 제목의 책을 냈다. 스티븐 킹을 포함한 15인의 미국 인기작가들이 미국 락음악 역사상 가장 미스테리한 순회 콘서트에 관해 쓴 책이었다.
그리고 친절하게도 콘서트에 못가서 아쉬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CD음반이 나왔다. '당신의 본업을 팽개치지 마라' 레코드사에서 출시된 '소설보다 색다른 Stranger Than Fiction'이라는 더블CD앨범이다.
이 음반에서 스티븐 킹은 '보 디들리'와 '스탠 바이 미'를 열창했고, 캐시 골드마크와 듀엣곡 '겉표지로 책을 판단할 순 없어'를 불렀다. 킹의 노래실력은 그의 소설만큼이나 기괴하다고 한다. 이 소설가들 밴드의 전반적인 음악 실력은 어떨까? 메탈리카가 소설을 쓰는 정도의 수준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게 뭐 대수인가? 이 밴드는 동료들간의 친목을 위해, 창작의 고통에서 잠시 벗어나는 기쁨을 위해, 색다른 모습을 원하는 팬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