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즈 레드 / Rose Red

작품 감상문 2007. 5. 12. 01:49 posted by 조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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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se Red

(2002년 TV 미니시리즈)

1981년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하는 유령의 집 영화에 스티븐 킹이 각본을 쓰게 되었다. 그러나 스필버그는 킹의 각본이 너무 폭력적이라는 이유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고, 결국 킹은 영화에서 손을 뗐다. 스필버그는 다른 작가의 각본으로 영화를 완성시켰으니, 그 영화가 바로 <폴터가이스트(Poltergeist)>다.

1996년이 되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스필버그가 또다시 스티븐 킹에게 연락을 해서 또다시 유령의 집 영화를 만들려는데 각본을 쓰지 않겠느냐고 유혹한다. 킹은 유혹에 넘어갔다. 스필버그의 계획은 전설적인 여류 공포소설가 셜리 잭슨의 소설 <The Haunting of Hill House>를 토대로 만든 1963년도 흑백영화 <The Haunting>을 리메이크하자는 것이었다. 스티븐 킹도 인정하는 바대로 스필버그는 굉장히 훌륭한 아이디어맨이다. 스필버그는 원작영화에 자신의 아이디어들을 첨가해서 각본을 써달라고 킹에게 부탁했다. 킹은 각본을 써서 스필버그에게 가져다 줬는데, 각본을 본 스필버그는 "좋기는 한 데 말이지, 좀 활력이 부족한 거 같애. 여기다 내가 이번에 또 생각해낸 아이디어들을 더 집어넣으면 좋겠는데..." 킹은 스필버그의 의견에 따라 그 후로 각본을 2번이나 고쳤지만, 스필버그는 맘에 들어하지 않았다. 애초에 스필버그는 유령의 집에서 벌어지는 모험이야기를 원했던 반면, 킹은 유령의 집에서 벌어지는 무서운 이야기를 원했던 것이다. 결국 <폴터가이스트> 사건 때와 마찬가지로 킹은 영화에서 두손 두발 다 뗐고, 스필버그는 다른 작가의 각본으로 영화를 완성시켰으니, 그 영화가 바로 캐서린 제타 존스가 주연한 <혼팅(The Haunting)>이다.

마음 속으로 유령의 집 영화를 만들고 싶은 열망을 꾹 참고 있던 킹은 드디어 2002년 직접 각본을 쓰고 제작에도 참여해서 3부작 TV미니시리즈 <Rose Red>를 선보였다. 이 작품은 우리나라에 <로즈 레드>라는 제목으로 DVD가 출시되었다.(워너코리아)

심리학 교수인 조이스 리어돈은 "로즈 레드"라는 저택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19세기 초에 지어진 이 집은 악령의 저주가 씌였다고 하여 유명한 곳인데, 수십년간 20명도 넘는 사람들이 그 집에서 실종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최근엔 로즈 레드가 심령현상을 멈추고 있고, 안타깝게도 이 저택은 얼마 안있으면 헐릴 예정이다. 그래서 조이스 리어돈은 전국 각지에서 초능력자들을 불러모아 로즈 레드에서 함께 주말을 보내기로 계획한다. 초능력자들의 힘이 잠들어있는 유령의 집을 깨워 심령현상을 일으키게 만들면 그걸 과학적으로 기록해서 공개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인 것이다. 조이스 박사의 뜻대로 총 9명의 탐험대는 오랫동안 닫혀 있던 로즈 레드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박사의 뜻에 호응에서 로즈 레드는 오랜동안의 잠에서 깨어나 탐험대를 압박하기 시작한다. 탐험대는 너무 무서워서 괜히 들어왔다고 후회하지만 때는 이미 늦어버린 뒤였다.

위에 말한 대로 미니시리즈 <로즈 레드>는 스티븐 킹이 들려주는 유령의 집에 관한 이야기다. 언젠가 스티븐 킹은 유령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은 미친 사람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과연 <로즈 레드>에서는 미친 집이 어떻게 활동하고 생활하는지 부지런히 보여준다.

그렇다고해서 이 미니시리즈가 적나라하게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전형적인 공포영화의 폭력에 열광하는 사람한테는 <로즈 레드>가 한없이 심심한 영화로 기억에 남을 것이다. 포르노가 허용된다고 해서 미국이란 나라가 무한한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만, 엄연히 미국에서는 영화, 음악, 게임 등의 문화상품에 등급제를 시행하고 있다. 그래서 좀 더 많은 이윤을 얻으려는 제작자는 표현수위를 낮춰가면서 청소년층까지 맘놓고 접근할 수 있는 등급을 받으려 애를 쓴다.

TV도 등급제를 실시하기는 마찬가지여서 모든 프로그램은 방송국 윤리규정에 따라야 한다. 스티븐 킹은 자신이 각본을 담당한 미니시리즈 <센트리 스톰(Storm of the Century)> 시나리오집에서 방송국 측의 윤리규정에 따라 이야기를 극장영화와 같이 직접적으로 거칠게 보여줄 수 없는 상황을 언급하고 있다. 킹은 그런 점이 불편하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영화에서처럼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장면을 직접적으로 보여줄 수 없기 때문에 미니시리즈를 만들 때는 어떻게 하면 직접적으로 보이지는 않으면서 영화같은 충격을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고 그 때문에 영화를 만들 때보다 더욱더 창의적으로 일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더욱이 킹의 작품들은 대부분 분량이 많고 등장인물들이 많아서 극장영화보다는 미니시리즈 형식에 더 적합하다고 킹은 말한다. 그래서 자신의 소설 <미래의 묵시록(The Stand)>과 <샤이닝(The Shining)>을 미니시리즈로 만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위에 있는 한국판 <로즈 레드> DVD 표지를 보라. "12세 관람가"라고 붙어있는 파란 딱지가 있을 것이다. 그 정도니 이 작품에서 잔인한 장면을 기대하는 것은 오이를 바라보며 바나나 맛을 기대하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마음가짐일 것이다. 이 작품이 주는 재미는 폭력이 아니라 폭력적인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알콩달콩 인간드라마다.

처음에 탐험대가 로즈 레드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은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 스스로 내부구조를 맘대로 변형시키는 거대한 유령의 집 이곳저곳을 살펴보는 재미가 있다. 그 다음부터는 장르의 공식대로 탐험대 구성원 한명 한명이 차례로 유령의 집으로부터 공격을 받게 되면서 긴장감이 조성된다. 여기서부터 킹의 장기가 나타난다. 위험에 반응하는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거기에 연결되어 나타나는 인물들간의 갈등구조. 처음엔 가볍게 소풍 나오듯이 저택으로 왔다가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벌벌 떨며 삶을 향한 강한 집착을 드러내는 등장인물들이 빚어내는 밀고 당기는 팽팽한 인간드라마를 지켜보며 나는 이 미니시리즈에서 끝까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로즈 레드> 속에서는 얼굴만 보면 딱 이름을 알만한 유명배우는 나오지 않지만 <로즈 레드> 출연진은 모두들 작품내용에 딱 맞는 훌륭한 연기를 펼쳤다. 미니시리즈가 끝난 뒤에도 캐릭터들 하나하나의 이미지가 머리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자꾸만 그리워질 정도였다. <로즈 레드> 배우들의 열연이 있었기에 스티븐 킹의 멋진 각본이 100배는 더 빛날 수 있었다. 사실 이러니저러니해도 내가 영화를 평가하는 기준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여배우들의 외모다. <로즈 레드>에서는 나의 가슴을 적시는 외모의 소유자들이 한 명도 아니고 여러 명 나와서 정말 감동했다(이것이 바로 내가 미니시리즈 끝날 때가지 눈을 뗄 수가 없었던 이유 가운데 한 가지다). 성인 여배우들뿐만 아니라 자폐증 소녀를 연기한 아역배우까지도 나의 가슴을 적셔서, 그녀와는 10년 후에 개인적으로 만나서 계란 노른자를 둥둥 띄운 쌍화차를 딱 한 잔만 시켜놓고 서로 나눠마시며 성인들의 외로운 인생에 관해 토론하고 싶은 간절한 소망마저 들게 했다. 개인적으로 앞으로는 스티븐 킹의 미니시리즈가 계속 이런 훌륭한 수준을 유지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자극적이지는 않지만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공포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로즈 레드>를 보라고 적극 권하고 싶다. 특히 미니시리즈의 마지막 결말이 3부작이라는 시간동안 끌어왔던 긴장감을 일시에 날려버릴만큼 효과적이게 화끈하고 현란한데, 꼭 DVD를 구해서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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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은 자신이 참여한 영화에 카메오 출연하는 것을 즐기는 체질을 타고 났는데, <로즈 레드>에서도 그런 성격을 대담하게 드러냈다. 피자배달원으로 출연한 것이다. 킹의 호언장담대로 피자배달원의 가슴 속에 응어리진 내면의 슬픔을 감동적으로 연기하고 있다. 짧은 순간이지만 그가 왜 공포의 왕이라는 이름을 얻었는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나 무서운 연기력이다.

스티븐 킹, 당신을 골든 글로브상 남우 카메오부문 후보로 추천합니다~.

<로즈 레드> DVD 속에는 주목할 만한 2가지 스페셜 피처가 들어있는데, 내용도 좋지만 한글자막이 들어있어서 더욱 재미있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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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는 <Bad House: The Making of Rose Red>라는 제목의 제작 다큐멘터리다.

스티븐 킹을 비롯한 제작진, 배우들이 등장해서 <로즈 레드>를 만드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배우들이 자신의 배역에 관해 설명을 하고, 제작자가 작품제작의 어려움을 얘기하고, 스탭들이 각자 맡은 분야의 작업을 보여주는 데다가, 작품 속에 사용된 여러 소품들, 특수분장, 기계조작 인형, 저택 미니어처, 위험한 장면의 스턴트, 특수효과 실제장면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 미니시리즈가 얼렁뚱땅 대충대충 설렁설렁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스티븐 킹의 이름에 걸맞게 무척 정성을 들여 만들어졌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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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는 <Unlocking Rose Red: The Diary of Ellen Rimbauer>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다.

이것은 미국에서 미니시리즈가 ABC방송을 통해 방영되기 앞서 분위기 조성을 위해 방송에 내보냈던 다큐멘터리다. 본편 미니시리즈를 보기에 앞서 이 다큐멘터리를 먼저 보면 더 실감나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실제인물들이라고 주장하는 인물들이 우루루 몰려나와 "로즈 레드는 진짜 있다니까요!", "정말 있었던 일이에요!", "꼭 로즈 레드의 비밀을 파헤치고 말거에요!"라고 주장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너무너무 재밌다. 설상가상으로 스티븐 킹이 등장해서 "이렇게 믿기지 않겠지만 진짜진짜 있는 실화를 발굴해서 여러분 앞에 공개하게 되서 가슴이... 가슴이... 설렌다"라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 것을 들으니, 정말 소설가는 얼굴이 두꺼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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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시리즈 <로즈 레드> 방영에 때맞춰 미국 서점에는 <The Diary of Ellen Rimbauer: My Life at Rose Red>라는 책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19세기 초 로즈 레드 저택에 살던 안주인 엘렌 림바우어가 쓴 일기장인데, 미니시리즈에 등장하는 조이스 리어돈 교수가 일기장을 발견하게 되었고 자신의 연구성과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편집해서 책으로 펴냈다는 설명이 붙어있다. 실제로 책에는 저자의 이름이 나와있지 않고, 조이스 리어돈 편집이라고만 나와있다.

출판사에서 이 책의 저자를 절대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별의별 소문이 다 돌았다. 스티븐 킹이 썼다, 킹의 아내 태비사가 썼다, 웃기네 킹의 아들 오웬이 쓴거라네, 호박에 줄긋지 마라 다른 전업작가가 쓴 것이다. 하지만 미니시리즈 각본을 스티븐 킹이 썼고, 킹은 예전에도 리처드 바크먼이란 가명으로 책을 내서 사람들을 속인 적이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혹시나 하면서도 이 책을 스티븐 킹이 썼을 거라 믿고 구입했다. 덕분에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1년 뒤 출판사에서는 실제 저자를 공개했는데...

이 책에서는 엘렌 림바우어가 일기를 통해 로즈 레드 저택이 만들어지는 불길한 과정, 완공된 뒤에 벌어지는 기분 나쁜 일들, 이유없이 사라지는 사람들, 내부구조가 자꾸만 변하는 로즈 레드의 모습 등을 자세하게 밝히고 있다. 미니시리즈 이전의 과거에 로즈 레드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자세히 소개한 것이다. 미니시리즈 <로즈 레드>가 만족할만한 시청률을 올렸기 때문에, 이 책도 스티븐 킹이 제작에 참여한 가운데 -각본은 쓰지 않았다- 미니시리즈로 만들어지고 있다.

황무지 / The Waste Lands (다크 타워 3)

작품 감상문 2007. 5. 12. 01:44 posted by 조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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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aste Lands

The Dark Tower 3

(1991년 소설)

스티븐 킹의 다크 타워 시리즈 3탄 "The Waste Lands"는 국내에 "황무지"(황금가지출판사, 잎새출판사)라는 제목으로 번역출간되어 있다. 내가 이 소설을 처음으로 읽었던 것은1995년. 2001년에 들어와 다크 타워 1탄과 2탄을 읽기 훨씬 전이었다. 그래서 예전에 "황무지"를 읽으면서는 거대한 이야기의 스케일에 감탄하면서도 소설 속에서 문득문득 드러나는 전편과의 연결고리는 전혀 이해하지도 못한 채 그냥 그런가보다하고 넘겨버렸다. 하지만 이번에 정식으로 1탄과 2탄을 읽고 난 뒤, 3탄 "황무지"를 읽어보니 전편들과의 연관성을 완전히 이해하며 읽는다는 것이 얼마나 흥미로운 일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역시 시리즈소설은 순서대로 읽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롭다.

다크 타워 2탄 "태로우 카드 The Drawing of the Three"에서 엄청난 활약을 벌인 덕에, 마지막 총잡이 롤랜드에게는 동료 둘이 생겼다. 우울했던 뒷골목 생활에서 벗어나 착실하게 살아가는 여린 성격의 청년 에디(하지만 기분이 나쁘면 롤랜드랑 맞먹으려고 든다). 롤랜드를 죽음으로까지 몰고 갈 뻔 했던 데타 워커와 오데타 홈즈라는 상반된 두 개의 인격이 합체해 탄생한 사려깊은 성격의 여인 수잔나(하지만 기분이 나쁘면 욕도 잘 한다). 롤랜드는 둘에게 총잡이 훈련을 시키며 다크 타워 세계를 여행하고, 그러는 중에 에디와 수잔나는 동료의 벽을 뛰어넘어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그런데 롤랜드에게 문제가 생겼다. 마음 속에 두 개의 마음이 서로 으르렁거리며 제이크라는 이름의 소년과 만난 적이 있다, 아니라는 문제로 다툼을 벌이고, 롤랜드는 어느 쪽이 사실인지 기억도 못한 채 혼란에 빠지면서 서서히 미쳐간다.

혼자만 미치면 심심하다. 뉴욕에 사는 제이크라는 소년도 미치고 환장하는 중이다. 마음 속에 두 개의 마음이 으르렁거리며 나는 죽은 적이 있다, 아니다라는 문제로 다툼을 벌이고, 제이크는 어느 쪽이 사실인지 기억도 못한 채 혼란에 빠지면서 서서히 미쳐간다.

모든 것은 당사자끼리 만나면 다 해결되는 법. 다크 타워의 세계에서는 롤랜드 일행이, 현실세계의 뉴욕에서는 제이크가 서로를 만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다가, 이차저차해서 여차저차한 방법으로 마침내 제이크가 다크 타워 세계로 들어가 롤랜드 일행을 만나게 된다. 그 뿐 아니라 너구리 비슷하게 생긴 "오이"라는 동물까지도 합세함으로써 롤랜드 일행은 전부해서 4명+1마리라는 막강한 멤버로 완성된다.

하지만 또다시 롤랜드 일행에게 위기가 닥친다. 다크 타워가 있는 엔드 월드(End-World)까지 가려면 미드 월드(Mid-World)를 거쳐가야 하는데, 그 지역은 오염되어 있어 맨몸으로 통과할 수가 없다. 음속을 돌파하는 초스피드로 미드 월드를 횡단한다는 전설의 폭주기관차 블레인을 타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롤랜드 일행은 블레인을 찾아 러드라는 도시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만 제이크가 틱톡맨이라는 근육청년에게 끌려가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발생하고, 롤랜드 일행은 둘로 쪼개져서 롤랜드는 사라진 제이크의 뒤를 쫓고 에디와  수잔나는 블레인을 찾아 폭력도시 러드를 정처없이 방황하게 된다. 헤어진 롤랜드 일행은 다시 웃으면서 만날 수 있을 것인가? 웃으면 복이 온다던데...

다크 타워 3탄 "황무지"는 롤랜드와 제이크의 만남을 그리는 전반부와 러드에서의 모험을 그리는 후반부로 나눌 수 있다.

"황무지" 전반부에서는 2탄 "태로우 카드"에서 롤랜드가 죽을 힘을 다해 가며 시간의 흐름을 엉망으로 만든 덕에 정신착란을 일으키는 롤랜드와 제이크의 방황과 슬픔을 묘사하고 있다. 누구에게 하소연을 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닌 탓에 혼자서 마음 속으로 끙끙 앓으며 몸부림치는 모습이 나의 눈물샘을 적셨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제이크였는데,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적응하지 못하고 다크 타워 세계로 들어가야한다는 강박관념에 휩싸여 아무 문이나 닥치는대로 열어보고 다니는 모습을 접하면서 웃음이 나오기도 했기만 "쯧쯧, 어린 것이 어쩌다 저런 지경에까지..."하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소설 전반부는 이렇게 방황하는 인물들이 조금씩 조금씩 서로의 세계와 접근하는 모습을 보여주다 마침내 꽝하며 서로의 세계가 충돌하는 클라이막스를 보여준다. 이 부분은 정말이지 멋진 영화의 한 장면같다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는데, 2탄에서 선보였던 문의 이미지와 유령의 집, 악마가 출몰하는 유적지, 자아분열, 섹스, 폭력, 광기, 환상이 한데 어우러져 박진감 넘치고 긴박감은 더 넘치는 스펙타클한 모습을 보여주어서  이 장면을 읽는 내내 머리 속이 찌릿찌릿 전율할 수 밖에 없었다. 소설읽기의 즐거움을 한껏 만끽할 수 있었다. 이렇게 멋진 장면이 벌어졌는데도 제이크가 다크 타워의 세계로 못들어가서 롤랜드와 만날 수 없었다면 나는 열받아서 소설책을 숯불갈비집에 팔아넘겼을 것이다. 다행히도 제이크가 롤랜드의 품에 안길 수 있게 돼서 개인적으로 소설 속 등장인물들과 함께 기뻐했다.(숯불갈비집에 팔려가지 않게 돼서 소설책도 기뻤을 것이다.)

소설 후반부에서 제이크의 납치로 인해 롤랜드 일행이 둘로 쪼개지는 장면은 독자들의 가슴을 둘로 쪼갤만큼 안타까운 일인데, 이제까지 오손도손 뭐든지 함께 했던 일행들이 낯설은 도시 러드 속으로 아무런 기약없이 뿔뿔이 흩어지는 쓸쓸한 기분이 참으로 불길했다. 그것은 이제까지 러드를 삭막하고 위험하고 폭력적인 도시로 충실히 묘사한 스티븐 킹 덕분이다. 초토화된 기계문명의 잔해 속에서 인간학살이 일상다반사로 일어나는 러드 속의 주민들 모습이 처량하면서도 끔찍하게 등장한다. 오래 전에 세상을 뒤엎은 엄청난 사건이 일어나서 그 결과 모든 세상이 타락했으며, 그 변화의 중심에 다크 타워가 있으므로 다크 타워를 바로잡으면 세상을 구할 수 있다는 롤랜드의 말이 인상적이다. 롤랜드 힘내! 절대로 다크 타워의 길을 포기하면 안돼! 내가 당신을 응원하고 있단말야! 당신의 앞길을 막는다면 스티븐 킹이라도 용서하지 않겠어!

소설 속에서도 언급되지만 러드에서 롤랜드와 제이크가 겪는 모험은 다크 타워 1탄 "총잡이 The Gunslinger"에서 벌어졌던 사건의 변주다. 그 때 그 모험이 다른 모습으로 변형되어 또다시 재현되는 것. 롤랜드의 말처럼 Ka(운명)는 돌아가는 바퀴와 같아서 돌다보면 또다시 제자리로 오게 되있는 것이다. 1탄을 읽었던 독자라면 러드에서 롤랜드랑 헤어지며 "그 때처럼 또 나를 버리면 안돼"라면서 울먹거리는 제이크의 심정을 뼛 속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 다시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며 이를 악물고 총을 빼들어 제이크를 구하러 달려가는 마지막 총잡이 롤랜드의 모습. 감동이었다. 멋졌다. 반해 버리고 말았다.

러드에서 롤랜드 일행이 겪는 일들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모두들 앞일을 예측할 수 없는 상대와 맞부딪쳐서 순간순간 목숨을 걸고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 모습이 흥미롭게 펼쳐지는데, 그런 모습들을 통해 롤랜드 일행이 운명이라는 고리로 단단히 엮인 진정한 동료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롤랜드 일행은 알게 모르게 서로의 과거 속에서 공통적인 경험을 공유하고 있고, 각자가 겪었던 사소한 과거의 체험들이 현재의 위기를 해결하는 중요한 열쇠로 작용한다. 그들이 부딪치는 위험들은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 중 한 명이라도 없었다면 롤랜드의 모험은 실패로 돌아갔을 것이다. 위기의 순간에 동료랍시고 나같이 어리버리한 녀석이 있었다고 상상해보라! 모두들 당장 몰살이다. 그들이 모인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Ka에 의해 오래 전부터 정해진 것이었다. 앞으로도 그들은 함께 하는 현재의 경험들을 소중히 간직해서 둥글게 둥글게 돌아가는 Ka 속에서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며 출몰하는 위험한 순간들을 꿋꿋이 헤쳐나가게 될 것이다.

3탄 "황무지"에서는 1탄 "총잡이"를 읽었던 독자라면 깜짝 놀랄만한 인물이 등장한다. 1탄 마지막에 검은 남자가 자기가 마음 속으로 두목님으로 모시고 있다고 자랑하던 멀린이 깜짝출연하는 것이다. 잠깐 등장하지만 그 압도하는 위엄과 카리스마는 잊을 수가 없다. 근육청년 틱톡맨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며 "틱톡맨씨, 우리 함께 손을 잡고 악의 무리 롤랜드 일당을 물리쳐서 다크 타워를 지켜냅시다! 모여라 꿈동산아~"하고 절규하는 장면에서는 섬칫한 느낌까지 받았다. 1탄에서 검은 남자는 롤랜드가 다크 타워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쓰러뜨려야하는 존재로 멀린을 언급하는데, 멀린도 죽여버릴 상대로 롤랜드 일행을 언급하고 나니 앞으로의 전개가 점점 흥미진진해진다. 카리스마의 마법사 멀린과 카리스마의 무법자 롤랜드가 정면으로 맞서는 그 순간, 상상만 해도 흥분된다. 멀린은 틱톡맨에게 자신을 소개하며, 자기는 영원불멸의 이방인이며 어느 시대에서나 존재해왔던 초월적인 존재이며 여러가지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다고 자랑한다. 마술사로도 불리고 마법사로도 불리고 멀린이라고도 불렸지만 정말 그런 존재였는지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다만 그는 틱톡맨에게 자신을 그저 리처드 패닌이라고 불러달라고 요구한다.(머릿글자가 R.F.인 것으로 봐서 "황무지"에 등장하는 멀린은 킹의 소설 "The Eyes of the Dragon"이나 "미래의 묵시록 The Stand"에 등장하는 악역의 화신 랜들 플랙이 분명하다고 스티븐 킹 팬들은 부르짖는다.)

멀린의 카리스마도 인상적이지만, 소설 후반부의 진정한 카리스마 덩어리는 미치광이 기관차 블레인이다. 오랜 세월동안 전설로만 잊혀지내다가 롤랜드 일행의 방문을 받고 광분하는 그 폭력적인 모습이 귀엽기까지 했다.(아마도 내가 블레인에게 당하는 피해자가 아니라서 귀엽다는 생각을 했겠지. 러드의 주민들은 블레인에게 엄청나게 피해를 당한다.) 블레인은 어떤 때는 쾌활한 아이같은 모습을 보여주는가 하면 어떤 때는 인간을 능가하는 기계 본연의 차가운 본성을 드러내는 1초 뒤를 예측하기 힘든 위험한 존재다. 러드 주민들에게 후려친 블레인의 엄청난 폭력 앞에서 롤랜드 일행은 기를 못펴고 슬금슬금 눈치만 보게 되는데, 소설 마지막에서 롤랜드가 블레인과 결투를 벌이는 모습은 의외의 충격을 선사한다. 총알 한방 쏘지않는 조용한 결투지만 엄연히 롤랜드 일행의 목숨이 달려있는 위험한 상황에서 태연하게 냉정하고 단호한 행동으로 승부하는 롤랜드의 모습에서 주인공으로서의 배짱과 결단이 눈이 부시도록 빛났다. 롤랜드, 그는 진정한 승부사였던 것이다! 갑작스러운 당황스런 전개에 눈을 휘둥그렀게 뜬 채 아무말도 못하고 롤랜드만 바라보고 있는 에디, 수잔나, 제이크, 오이와 함께 나 자신도 숨을 죽이며 롤랜드와 블레인의 결투를 지켜봤다.

다크 타워 3탄 "황무지"를 읽으며 다크 타워 특유의 분위기를 듬뿍 맛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교차하고 시간과 공간이 뒤틀리며 과학과 마법이 얽히고 신화와 전설이 진실과 삐딱하게 만나는 복잡미묘한 분위기. 이렇게 멋진 소설을 그 작은 머리 속에서 뽑아낸 스티븐 킹의 능력에 감탄할 수 밖에 없다. 다크 타워 시리즈를 읽으며 항상 느끼는 거지만 나의 마음은 이제 다음 편을 읽고야 말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활활 타오르고 있다. 4탄 "Wizard and Glass"여 기다려라. 내가 꼭 너의 책장을 넘겨주마. 오늘 밤엔 왠지 미치광이 폭주기관차 블레인을 타고 다크 타워가 서있는 엔드 월드로 가는 꿈을 꿀 것만 같다.

다크 타워 시리즈는 아직까지 정식으로 영화화된 적이 없으므로, 당연히 "황무지"도 영화로 볼 수가 없다. 하지만 그냥 넘어가면 아쉬워서 한 영화를 소개하겠다.

스티븐 킹은 오래 전부터 원하는 사람들한테 단돈 1달러만 받고 자신의 단편소설을 단편영화로 만들 수 있도록 허락해 주고 있다.(엄청난 돈이 될 수도 있는 영화화 권리를 그렇게 헐값에 넘기는 통에 킹의 매니저는 홧병이 났다고 한다.) 단, 킹은 여기에 두 가지 조건을 걸었다. 첫째, 완성된 영화를 상업적으로 이용해선 안되고, 둘째, 완성된 영화의 카피본을 킹에게 하나 보내주어야 한다. 덕분에 킹의 집에 가면 단편영화들이 엄청나게 쌓여있다고 한다. 인기있는 단편소설의 경우 수십편의 각기 다른 버전으로 완성된 같은 제목의 영화들이 넘쳐난다고 한다. 이렇게 킹에게 1달러를 주고 단편영화를 만든 사람들을 "달러 베이비(Dollar Baby)"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킹의 단편영화를 만들고 싶어하는 달러 베이비들이 우글우글하다.

이런 달러 베이비 중에서 가장 유명해진 사람은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이다. 그는 킹의 단편 "Woman in the Room"을 단편영화로 만들었는데, 병든 어머니를 안락사시킨 아들이 겪는 불안과 공포를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이렇게해서 킹의 눈에 확 띄게 된 프랭크 감독은 정식으로 장편영화에 도전해 연달아 스티븐 킹 원작영화 "쇼생크탈출"과 "그린마일"을 성공시키며 킹의 사랑을 듬뿍 받는 인생대역전의 주인공이 되었다.

지금 간단히 소개할 것은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의 영화 "마제스틱"이다. 짐 캐리가 주연한 이 영화는 기억을 잃어버리게 된 헐리우드 시나리오 작가가 마제스틱이라는 극장과 인연을 맺게 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영화 속에서 짐 캐리가 시나리오를 쓴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되는 장면이 나온다. 그 흑백영화 제목이 "사막의 해적들"인데 위기의 순간에 어여쁜 여주인공을 구하러 정의의 사도가 등장하는 순간, 기쁜 마음에 여주인공이 그를 애타게 부른다. "롤랜드!" 그렇다. 다크 타워 시리즈의 주인공 롤랜드와 같은 이름인 것이다.

소설 "황무지"에서 뉴욕의 제이크가 다크 타워 세계의 기억을 잃고 거리를 헤매다 다크 타워의 세계와 겹쳐지는 환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부분이 있는데, 제이크가 맨처음 환상의 세계에 들어서며 만나게 되는 건물은 극장. 그 극장의 이름은 "마제스틱". 그렇다. 프랭크 감독의 영화 속에서 기억을 잃은 짐 캐리가 만나게 되는 극장과 같은 이름인 것이다.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의 영화 "마제스틱"은 킹의 열렬한 팬으로서 감독 자신이 영화 속에 귀여운 요소들을 집어넣은 깜찍한 영화이다. 물론 이런 요소들은 역시 킹의 팬이 아니라면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영화 자체로도 다른 영화들에 꿀리지 않는 멋진 영화이니, 가까운 동네 비디오가게에서 꼭 구해다 보시기를 권합니다. DVD로도 출시되어 있음.

런닝맨 / The Running Man

작품 감상문 2007. 5. 12. 01:42 posted by 조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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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unning Man

(1982년 리처드 바크먼 소설)

2025년의 미국은 모든 국민들에게 TV가 무상으로 지급되는 곳이다. TV에서는 하층민들이 출연하는 각양각색의 위험한 게임쇼가 하루종일 방송되어 시청자들의 생활에 아무 생각없는 웃음과 아무 생각없는 활력을 선사해 준다. 2025년의 미국 사회에서 전문기술을 지닌 사람들은 넉넉한 생활을 영위하지만, 별다른 기술이 없는 단순 노동자들은 목숨을 위협하는 열악한 근무환경과 최악의 임금에 시달리며 혹사당하고 있다.

바로 이 때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처절한 질주극이 시작된다.

벤은 한 집안의 가장이지만, 실업자가 되어 생기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18개월된 그의 딸이 병에 걸려 고통을 겪고 있다. 의사를 찾아가 약을 처방받아야 하지만 그럴 돈이 없다. TV를 보던 벤은 자신도 다른 하층민들처럼 게임쇼에 출연해서 돈을 벌어 보기로 결심한다. 벤의 아내는 남편의 목숨을 담보로 돈을 받을 수는 없다며 반발하지만, 가족을 위하려는 절박한 남편의 마음을 꺾을 수는 없었다. 벤은 게임쇼를 제작하는 방송사 빌딩으로 가서 다른 하층민들과 함께 게임쇼 출연을 신청한다. 철저한 신체검사와 심리검사를 거쳐 부적격자들은 귀가조치된 가운데, 남은 신청자들은 각양각색의 게임쇼들에 배치된다. 그 중에서도 벤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특별히 융숭한 대접을 받게 되는데, 그 이유는 단 하나.

TV를 통해 방송되는 수많은 게임쇼 가운데서도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살인 게임쇼 <러닝맨>에 출연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러닝맨에 출연한 사람치고 살아남은 사람은 하나도 없는 죽음의 게임쇼다. 출연자는 30일동안 전국을 도망다니며 살아있기만 하면 엄청난 상금을 받게 된다. 하지만 출연자는 헌터라고 불리우는 경찰들의 추적을 받게 되는데, 발견 즉시 살해되는 것이 게임의 규칙이다. 또 규정에 따라 출연자는 일정한 시간마다 자신의 모습을 비디오테이프에 담아 방송국에 보내야 하는데, 보내지 않으면 평생을 지명수배당하게 된다. 러닝맨이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이유는 시청자 참여 프로그램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출연자를 발견한 시민이 신고를 하면 포상금을 받게 되는데, 그 신고가 헌터들의 출연자 사살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었을 때는 더 큰 포상금을 받게 된다.

이제 벤은 러닝맨 출연자로서 온 시민들과 경찰들의 살인표적이 되어 도시를 도망다녀야 한다. 과연 그는 30일동안 무사히 도망자로서의 삶을 유지할 수 있을까?

"The Running Man"은 스티븐 킹이 리처드 바크먼이란 필명으로 발표한 소설이다. 이 작품은 킹이 교사생활을 하던 시절 눈이 많이 내리던 어느 추운 2월의 휴가기간동안 72시간만에 완성한 소설이다. 그야말로 스티븐 킹의 왕성한 창작력을 증명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은 72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에 집필했던 영향인지, 장면전환이 짧고 신속하게 이루어진다. 100을 시작으로 장면이 바뀔 때마다 99, 98, 97...하는 식으로 카운트다운하듯이 숫자를 매겨 놓아서 도망다니는 벤의 긴박한 상황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장면들이 도망자 벤의 시점에서 묘사되고 있어서, 읽는이가 쉽게 벤이라는 인물의 절박한 마음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The Running Man"에서는 초반부분을 벤이 방송국 고층빌딩에서 다른 신청자들과 뒤섞여 신체검사와 심리검사를 받는 장면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처음 겪는 낯선 환경에서의 초조함, 가족에 대한 그리움, 검사결과에 따라 배정받게 될 게임쇼에 대한 두려움, 하층민들을 벌레만도 못하게 취급하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 그 분노에 뒤따르는 삐딱한 시선 등이 뒤엉킨 벤의 심리가 건조하게 묘사되고 있다. 이 장면에서는 벤이 앞으로 어떤 위치에 놓이게 될 지 벤과 마찬가지로 나도 너무도 궁금해서 가슴을 졸이며 읽어나갔다. 그리고 페이지를 넘길수록 죽음의 게임쇼에 가까워지는 벤의 모습을 지켜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이런 안타까운 심정은 벤이 드디어 러닝맨 게임쇼 무대에 올라가는 장면에서 극에 달했다. 벤은 마치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무대로 끌려 나가고 방청객들의 야유를 받는다. 그는 마치 사회에 존재해서는 안 될 위험인물처럼 다루어지고, 방송에서는 그의 이미지를 조작해서 더욱 난폭한 인물로 만들어버리고, 그에게 폭력적인 언행을 강요한다. 게임쇼에서는 위험인물인 벤이 거리로 풀려나가는 즉시 시민들의 자발적인 신고를 부탁하는 멘트가 계속 이어진다. 게임쇼를 매개로 온 나라가 한 사람에게 위협을 가하는 상황. 이것이 미래의 모습이란 말인가?

이 작품은 물론이고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다른 많은 작품들에서는 미래사회의 모습을 부정적으로 예상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가 되는 현재의 우리 사회 모습이 별로 바람직하지 못한 것도 이유가 될 것 같다. "The Running Man"에서 나타나는 노동자들의 처지는 열악하기 그지없는데,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도 별로 좋지는 않다. 기업들은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정규직 대신에 언제든지 부담없이 해고할 수 있는 계약직 사원의 비중을 점점 늘이고 있고, 그 와중에 전문지식으로 무장한 인재들에 대한 대우는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기업들은 사회적인 책임은 전혀 안중에 없이 정리해고의 효율성만을 강조하고 있고, 직원의 대량해고를 통해 기업의 이익을 창출한다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단순무식한 방법을 애용하는 경영인을 무슨 대단한 경영의 귀재인 양 영웅시하고 있다. 그리고 상층민과 하층민간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으며, 이런 경제적인 신분은 자식들에게도 그대로 굳어지는 경우가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현재 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현실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자신은 중산층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현실이고, 현재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과연 미래는 어떻게 될까? 지금보다 더 나아질까, 아니면 더 나빠질까? 점쟁이가 아닌 이상은 오래오래 살아남아서 직접 미래를 목격해보는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은하철도 999"라는 만화영화를 아시는지? 그 만화영화에서는 철이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은하철도를 타고 여행하는데, 결국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몸을 뜯어고쳐 기계로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에 화들짝 놀라서 그만 포기하고 철이는 그냥 인간으로 살아가게 된다. 나는 정말이지 그런 것이 가능하다면 서슴없이 기계의 몸을 택하고 싶다. 그래서 백년, 천년, 만년 후의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 내 눈으로 직접 목격하고 싶다. 정말 그 때가 되면 일부일처제가 무너지고 자유로운 섹스가 당연시 될까? 역시 내 관심사는 항상 빨간색이다. 에로틱한 빨간색. 미래사회에 갑자기 변태로봇이 나타나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게 된다면 그게 바로 나일 가능성이 크다.)

벤은 도망자 생활을 하는 내내 경찰들의 추적에 시달리게 되고, 그 때마다 아슬아슬하게 탈출하게 된다. 그 중 가장 인상깊은 장면은 비행기를 타고 공항을 빠져나가려던 순간에 경찰들은 물론이고 수많는 구경꾼들과 방송국 카메라에 둘러싸이게 되는 소설 후반부의 장면이다. 나는 이 때 그때까지 벤이 해왔던 것처럼 격렬한 폭력행사를 통해 위기를 벗어나가겠거니 했는데, 이게 웬 걸. 그는 뜻밖에도 인간적인 동정심에 호소하는 방법을 쓴다. 이 장면을 읽으며 나는 정말이지 무척 신선하고 머리와 가슴이 따뜻해지는 감정을 느꼈다. 뒤통수를 때리는 느닷없는 반전이었다고나 할까. 벤에게서 매우 인간적인 연민을 느끼는 동시에, 스티븐 킹이 독자들의 감정을 쥐고 흔든다는 느낌을 강렬하게 받았다. 지금 생각해봐도 참 멋진 장면이었다.

"The Running Man". 이 소설은 빠른 스토리 전개와 도망자가 펼치는 목숨을 건 액션을 만끽할 수 있는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러닝맨에 발탁되기까지의 긴장감도 좋았고, 절박함에 몸부림치는 도피생활도 좋았고, 마지막 결말부분의 숨막히는 대결구도는 너무너무 좋았다.(감동적인 마지막 결말은 절대 밝히고 싶지 않다.) 진정한 액션소설을 원하는 분에게 이 소설을 강력추천한다. "The Running Man"은 도서출판 민을 통해 "헌터" 또는 "런닝맨"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번역출간되었다.

소설 "The Running Man"은 현대 액션영화의 아버지로 칭송받고 있는 아놀드 슈월츠제네거 주연으로 영화화되었다. 그런데 미래사회에서 목숨을 건 게임쇼를 벌인다는 기본설정만 빼고는 원작소설과 완전히 다른 영화가 되었다. 아놀드의 굳센 액션과 추적자로 등장하는 아저씨들의 기상천외한 몸놀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엎친 데 덮친 겪으로 이 영화는 프랑스의 한 감독이 자신의 영화를 표절했다는 이유로 법원에 소송을 걸었고 프랑스 법원으로부터 표절이 확실하다는 판결을 얻어내기도 했다. 이런저런 논란이 있지만, 아놀드가 주연한 이 영화는 액션영화로서는 엉망이라고 할 수 없다. 나는 중학생 때 이 영화를 보았는데, 그 때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아놀드의 기백과 용기에 감동해서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감상했던 기억이 있다. 이 영화는 "러닝맨"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비디오출시되어 있다. 액션영화에 조예가 깊은 동네 비디오가게라면 구비하고 있을 것이니, 웬만하면 빌려다 볼 것을 추천한다. 오래된 영화이기는 하지만 보고 나면 테이프 대여비가 하나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이 영화는 국내에 <런닝 맨>이라는 제목으로 DVD가 출시되어 있다.

미저리 / Misery

작품 감상문 2007. 5. 12. 01:40 posted by 조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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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ery

(1987년 소설)

[나는 미치광이 살인마 여자가 어슬렁거리는 허름한 집에서 소설을 쓰고 있다. 내가 소설작업을 하고 있는 곳은 3층에 있는 후덥지근한 방 안이다. 방 끝에 달려 있는 문은 다락방과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나는 안다 -나는 알고 있다- 그 여자가 다락방에 있다는 것을, 그리고 얼마 안 있으면 내가 치는 타자기 소리에 이끌려 그 여자가 나를 찾아오리라는 것을(어쩌면 그 여자의 정체는 타임스 북리뷰 Times Book Review에서 일하는 비평가일지도 모른다). 하여튼 결국 그 여자는 아이들의 장난감 상자에서 툭 튀어나오는 무시무시한 스프링 인형처럼 방문을 박차고 뛰어 들어온다. 백발이 성성한 머리에 미치광이의 눈을 마구 부라리는 그 여자는 소리를 질러대며 고기 써는 식칼을 휘두르고 있다. 그러면 나는 도망치기 시작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집이 바깥으로 폭발해 버리고 -집이 점점 더 팽창해서 거대해진다- 그 속에서 나는 완전히 길을 잃고 만다. 이런 악몽에서 깨어나고 나면, 나는 허둥지둥 옆에서 자고 있는 아내를 꽉 껴앉는다.]

위의 글은  스티븐 킹의 공포문화 비평서 "Danse Macabre"에 나오는 글인데, 킹이 10년 동안이나 자신을 수차례 괴롭혀온 악몽에 대해 말하고 있다. 소설가가 이렇게 강렬한 충격을 남기는 꿈을 자꾸만 꾸게 되면 언젠가는 그 꿈을 소재로 소설이 나오게 되진 않을까? 바로 그런 악몽의 이미지가 물씬 풍기는 스티븐 킹의 소설이 발표되었으니, "Misery"다. 우리나라에는 "미저리"(황금가지 출판사), "미져리"(성정출판사)라는 제목으로 번역출간되었다. (킹의 글쓰기 지침서 "유혹하는 글쓰기 On Writing"에서는 "미저리"가 탄생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1980년대 초, 아내와 함께 영국여행가던 비행기 안에서 꿨던 꿈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슈퍼울트라하이클래스프리미엄스페셜 베스트셀러 소설가 폴 셀던은 로맨스소설 미저리시리즈로 인해 유명한 사람이다. 미저리시리즈로 인해 경제적으로는 성공했지만, 비평가들에게는 무시당하는 것이 분하고 원통해서 미저리시리즈를 완결시켜 버리고 중후한 주제에 웅장한 문체, 선명한 상징체계를 가진 "작품"을 만들고자 노력했고, 마침내 새로운 소설을 완성하고야 만다. 폴은 소설완성이 너무 기뻐 차를 몰고 밖에 나갔다가 외딴 시골마을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의식을 잃는다.

폴은 다리부상을 당해 스스로 움직일 수도 없는 상태에서 의식을 되찾는다. 그는 낯선 방 안에서 침대에 누워 있었고, 침대 옆에서는 거구의 여자가 폴의 책을 손에 든 채 앉아있다. 그는 묻는다. "여기는 어디죠?"

"콜로라도의 사이드와인더." 그녀가 대답한다. "그리고 내 이름은 애니 윌크스에요. 나는-"

"알겠어요." 폴이 말한다. "당신은 나의 넘버원 팬이로군요."

"네, 맞아요." 애니가 웃으며 말한다. "그게 바로 저에요."

애니는 부서진  차 안에서 의식을 잃고 있던 폴을 발견하고는 자기 집까지 데려와서 정성으로 간호했던 것이다. 폴은 처음엔 생명의 은인인 그녀를 감사하게 생각할 뻔도 했지만, 곧 그녀를 무서워하게 된다. 그녀는 폴의 존재를 외부에 알리지 않고 자기 집에다 감금해 놓는다. 그리고는 장난감 다루듯 폴을 막 갖고 논다. 상태를 더욱 악화시킨 것은 미저리였다. 애니는 시골에 사는 관계로 미저리시리즈의 최신작을 페이버백으로 뒤늦게 구입해서 읽게 되었는데, 폴이 미저리시리즈를 완결지었다는 사실에 분노를 터뜨리고는 미저리시리즈의 새로운 작품 "Misery's Return"을 쓰도록 강요한다. 안쓰면 애니의 손에 죽는다. 폴이 무슨 힘이 있겠는가? 그는 애니가 준 고물타자기로 "Misery's Return"을 집필하는 한편 어떻게 하면 애니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 잔머리를 굴리기 시작한다. 과연 그는 애니의 감금, 협박, 고문, 성희롱, 폭행, 말장난에서 무사히 탈출할 수 있을 것인가? 모든 것은 "미저리"를 쓴 스티븐 킹의 결정에 달린 것이고, 나같은 독자들은 킹의 결정을 가슴 졸이며 지켜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소설 "미저리"를 읽는 동안 나는 폴의 고통을 함께 하며 정말 안타까운 심정을 느껴야만 했다. 그는 다리부상으로 제대로 서지도 못하고 휠체어에 앉아있어야 하는데, 애니는 그런 약점을 이용해 별의별 행패를 다 부린다. 자칭 팬이라는 사람이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폴은 인간적인 자존심같은 것은 벗어던지고 오직 살기위해 눈물겨운 행동들을 벌이게 된다. 오죽 안타까웠으면 나는 도끼를 들고 애니의 집을 찾아가 폴을 구출해 주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그렇지만 애니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항상 독자는 책을 통해 작가가 던져주는 내용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한다. 결말같은 것에 불만이 있더라도 그걸로 끝이다. 이미 나온 책을 바꿀 수는 없으니까. 일부 독자들은 작가에게 편지를 쓰거나 전화를 해서 욕을 하며 스트레스를 푼다지만 그런 짓을 한다고 책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이미 출간된 작품은 고정불변. 그런데 작가를 자신의 손아귀에 넣을 수 있다면, 그리고 작가에게 자신의 결말을 강요해서 작품을 쓰도록 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참으로 귀가 솔깃해지는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작가와 독자 사이에 진정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게 된다고나 할까. 좋게 말하면 그렇다는 것이고, 솔직하게 말하면 작가의 창작의 자유를 침해하고 협박하는 것이다. 아마 나도 그런 상황이 온다면 킹을 닥달했을 것 같다-"이봐요, 스티븐 킹. 나는 당신의 넘버원 팬이랍니다. 그런데 당신 작품 다 좋은데 왜 좀 더 에로틱하게 쓰지 않는 거요? 난 야한 게 좋단말야! 베드신하구 러브신을 왕창 많이 듬뿍 넣어서 작품을 써달란 말이야! 제목은 <애마부인의 공포>나 <저주받은 젖소부인> 혹은 <변강쇠가 월하의 공동묘지에서 떡을 치는 까닭은> 정도가 좋겠어."

폴에게 갖은 폭행과 망언을 퍼붓는 애니지만, 단순히 사이코로만 나오지는 않는다. 그녀가 폴이 쓴 "Misery's Return" 초고의 잘못된 점을 하나하나 지적하며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폴 셀던 조차도 그녀에 대해 감탄하게 된다. 소설 속에서 애니의 성격은 꼼꼼하고 치밀한 것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좋은 점은 거기까지다. 그 꼼꼼하고 치밀한 성격이 폴을 학대하는 좋은 구실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갑작스럽게 신경질적인 성격으로 돌변해서는 냉정하게 폭력을 휘두르는 위험한 사람인 것이다. 소설 중반쯤에 폴이 신문기사 스크랩북을 통해 애니의 폭력으로 얼룩진 과거를 알게 되는 장면에 이르면 애니의 광기어린 카리스마는 극에 달한다. 그리고 몰래몰래 잔머리를 굴리던 폴의 계획들이 한순간에 수포로 돌아가고 갑작스럽게 신체훼손이 이루어지는 장면을 접하게 되면 애니 윌크스가 뿜어대는 그 엄청난 에너지의 충격과 전율때문에 정신을 못차릴 정도가 된다.

스티븐 킹은 소설을 쓸 때 미리 고정된 스토리를 정해 놓는 것보다는 흥미로운 상황을 정해놓고 그 속에서 캐릭터들이 자유롭게 행동하도록 풀어줌으로써 자연스럽게 스토리가 만들어지는 것을 선호한다고 말했었다. 바로 그런 좋은 예가 소설 "미저리"일 것 같다. 이 소설에서는 공간적 배경으로는 애니의 집 안이 거의 유일한 곳이고, 나오는 인물이라고는 폴과 애니 두 사람이 거의 전부다. 강제로 갇혀있는 소설가는 어떻게 될까라는 단순한 상황설정이지만, 그 속에서 벌어지는 폴과 애니의 심리적인 투쟁이 어떻게 전개될지 흥미진진해서 손에 땀을 쥐고 기대를 하게 된다. 독자의 예상을 한발 앞서 꺽어버리는 긴장감 넘치는 전개를 길고긴 소설 안에서 일관되게 유지한 스티븐 킹의 능력이 인상깊었다. 이 소설을 다 읽고나서는 공간적 배경과 등장인물의 수가 단순한 까닭에 연극으로 만들어도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꽤 훌륭한 심리극이 될 것 같다.

폴 셀던이 "Misery's Return"을 집필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한편의 소설이 탄생되는 과정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단순한 착상이 소설로 만들어지는 과정, 원고용지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생생한 상상력을 자극시키는 마법의 구멍을 탐색하는 모습, 진행되던 소설의 전개가 꽉 막혀버렸을 때의 고통, 순식간에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의 기쁨, 작품을 완성하고 난 후의 안도감 등등이 마치 스티븐 킹의 일상을 엿보는 것 같다.

폴 셀던은 강요된 소설을 쓰는 내내 자신을 아라비안 나이트에 등장하는 세헤라자데라는 여성과 동일시한다. 아라비아의 왕은 자신의 아내가 바람피는 것에 충격을 받아 여성을 불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자꾸만 새로운 여성과 하룻밤을 보내고는 다음날이면 가차없이 사형에 처한다. 그런데 세헤라자데라는 여성은 왕과 하룻밤을 보냈으면서도 죽지 않고 살아남아서 계속 생명을 유지하게 된다. 그 이유는 매일밤 왕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 주는데 재미있을만하면 날이 밝아서 그 뒷얘기가 궁금한 왕은 세헤라자데를 살려둘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해서 천일동안 계속된 그녀의 얘기들을 모아놓은 것이 아라비안 나이트이다.

폴은 "Misery's Return"을 애니의 취향에 맞게 쓰지 않으면 자신이 애니에게 살해된다는 것을 한탄하며 매일매일을 집필에 매달린다. 그 집필과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더 처절하게 변한다. 폴은 자기가 애니 윌크스라는 여신에게 봉사하는 세헤라자데라고 생각하며 슬픔에 젖는데, 나중에는 예전부터 자신의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던 세헤라자데 근성을 깨닫게 된다. 이 부분에서는 좀 더 기발한 공포소설을 요구하는 팬들과 문학작품을 요구하는 비평가들 사이에서 심하게 마음고생하던 시절의 킹의 모습이 연상되기도 한다. (스토리만을 쫓아가던 독자에게는 좀 지루한 장면으로 다가올 수도 있지만, 소설가의 내면이 궁금햇던 사람에게는 재미있는 장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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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보이는 그림은 소설 "미저리" 페이퍼백에 실렸던 속표지의 그림인데, 소설 속에서 폴 셀던이 집필했다는 "Misery's Return" 표지를 가상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폴 셀던의 미저리시리즈는 여주인공 미저리가 겪는 모험과 사랑과 우정을 그려나가는 로맨스소설로 설정되어 있다.

소설 "미저리" 본문 속에는 폴이 집필하는 "Misery's Return" 원고 중 일부가 여러차례 삽입되어 있다. 여주인공 미저리를 살리기 위해 그녀를 사랑하는 두남자가 목숨을 건 모험을 펼치는 내용인데, 폴 셀던과 애니 윌크스의 처절한 투쟁 못지 않게 매력적인 내용을 보여주고 있다. 스티븐 킹이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정말로 "Misery's Return"을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아~, 스티븐 킹, 긴장하지 마요. 난 애니 윌크스처럼 강요하지는 않으니까.

그나저나 "Misery's Return" 표지에 보이는 남자 주인공의 얼굴은 영락없는 스티븐 킹. 이것이야말로 베스트셀러 작가의 특권이란 말인가? 여주인공 미저리의 다리를 움켜쥔 스티븐 킹의 손이 무척이나 부럽다. 부럽다. 부럽다. 부럽다.

소설 "미저리"에는 공포소설 특유의 괴물이 등장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인간 자체가 괴물이다. 인간 심리가 부딪치며 벌이는 처절한 공포를 좋아하는 스릴러 팬에게 적극추천한다. 단순한 배경 속에서 펼쳐지는 복잡미묘한 거침없는 전개에 감격의 눈물이 쉴새없이 흐르게 될 것이다.

누가 나를 도와주세요 제발 한번만 살려주세요

이러다가 정말로 제명에 죽지 못할것 같아요

내가 어디있든지 내가 무엇을 하고 있든지

나의 여자 친구는 어떻게 알고 귀신같이 나타나


보고 싶어 그랬어 너를 너무 사랑하니까

함께 있고 싶은데 그런 적이 없잖아

위의 글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순수발랄한 천재적인 음악그룹 쿨의 노래 "미절(Misery)"의 가사 중 일부이다. 가요에도 쓰여질만큼 "미저리"는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악녀의 대명사하면 미저리라고 굳어져서, 조금만 무서운 행동을 하는 여자가 있으면 "미저리냐?"하는 소리가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었다. 조금 아쉬운 점은 이렇게 국내에서도 미저리가 유명해진 것이 스티븐 킹의 소설보다는 영화 "미저리"때문이라는 것이다.

스티븐 킹의 소설 "미저리"는 로브 라이너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었고,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했다. 여기서 애니 윌크스를 실감나게 연기한 캐시 베이츠는 그 덕분에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그 여세를 몰아 또다른 스티븐 킹 원작영화 "돌로레스 클레이본"에서도 주인공을 연기했다. "미저리"는 유명한 영화라서 동네 비디오가게에 가면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없다면 그 동네 비디오가게는 영화의 기본이 부실한 가게, 주인의 영화적 역량이 부실한 가게로 불러도 손색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가게주인 앞에서 그렇게 불렀다가는 맞아죽을 수도 있으니 알아서 조심하도록 하자.) 영화는 원작소설에 비해 과격한 부분들이 상당부분 순화되었지만, 애니와 폴 사이에 펼쳐지는 긴장의 순간들을 멋지게 재현했으니 꼭 보도록 하자. 후회는 없을 것이다.

(이 감상문은 사라락님이 기증해주신 책을 읽고 쓰게 되었습니다. 사라락님, 귀한 책을 선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크리스틴 / Christine

작품 감상문 2007. 5. 12. 01:37 posted by 조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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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ine

(1983년 소설)

스티븐 킹 소설 "Christine"의 첫문장을 보는 순간 나는 이 소설과 사랑에 빠질 것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것은 삼각관계에 빠진 사랑이야기다.]

삼각관계! 이 얼마나 인간의 본능을 자극하는 무시무시한 단어인가! 대중문화 속에서 너무나 흔하게 사용되는 소재이면서도, 언제나 열광적인 호응을 이끌어내는 효과만점의 소재다. 그런데 삼각관계의 한 축을 이루는 쪽이 인간이 아니라면? 괴물 자동차라면? 궁금하다면 스티븐 킹의 소설 "Christine"을 읽어보면 된다.

자동차는 흔히 여성적인 존재로 취급되곤 한다. 자동차 뒷부분을 보며 "엉덩이 예쁜데!"라고 한다거나, 멋진 곡선의 차체를 보며 "몸매 잘 빠졌네!"라고 말하기도 한다. 신차 발표회를 보면 차 옆에는 거의 항상 예쁜 누나들이 요염한 포즈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레이싱 경기장에 가보면 수영하다 달려왔는지 수영복만 입은 누나들이 자동차 사이를 설치고 다니기도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자동차는 여성, 특히 섹시한 여성의 화신인 것처럼 남성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렇다고는해도 대부분의 남성들은 여성을 연상시키는 멋진 자동차보다는 실제 여성을 더 선호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 여자보다 자동차가 더 좋다고 열변을 토하는 고등학생이 한명 있다.

고등학교 졸업반인 아니는 전형적인 왕따이다. 남학생들로부터도 여학생들로부터도 외면당하는 아니지만, 어린 시절부터 단짝 친구인 데니스가 항상 옆에서 챙겨주는 관계로 그럭저럭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

어느날 아니는 데니스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다 길 옆에 세워져 있던 크리스틴이라는 자동차를 보고는 첫눈에 반해 버린다. 아니는 크리스틴과 사랑에 빠진 것이다. 크리스틴은 완전히 고물이었고, 그 차의 주인인 리베이라는 기분나쁜 노인은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부르지만 크리스틴이 너무나 맘에 든 아니는 돈을 꿔가면서까지 크리스틴을 사고야만다. 데니스도 아니의 부모도 여러가지 이유로 아니가 자동차 사는 것을 만류하지만, 이제까지 착하게 순응하며 살아왔던 아니는 격렬하게 화를 내며 그들의 의견을 완강하게 묵살해 버린다. 아니는 그때부터 크리스틴에게 달라붙어 수리하는데 온 정성을 쏟아붓는다. 그리고는 고물덩어리였던 크리스틴을 전문가도 놀랄만한 솜씨로 완전히 새 자동차인 것처럼 복원시킨다. 아니는 크리스틴을 통해 삶의 힘을 얻는다.

그러는 동안 학교에는 레이라는 매력적인 여학생이 전학온다. 그전같으면 제풀에 포기했겠지만, 아니는 크리스틴을 만난 이후로 여드름도 싹 없어지고 활력이 넘쳤기 때문에 과감하게 대쉬해서 레이와 사귀는데 성공한다. 그렇치만 레이는 아니를 따라 크리스틴을 타보는 순간 깨닫는다. 크리스틴은 단순한 자동차가 아니라는 것을. 끔찍한 괴물이라는 것을. 크리스틴에게서 몇차례 기분나쁜 경험을 하게 되고 아니의 성격도 자동차때문에 다혈질로 변해가자 레이는 아니에게 말한다. "나와 크리스틴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해. 하나만 선택해서 나머지 다른 쪽은 잊어버려." 그러자 괴물 자동차인 크리스틴은 레이를 없애버릴 계획을 세운다. 이것이야말로 사랑의 삼각관계. 아니와 레이와 크리스틴을 잇는 공포의 삼각형이다.

그뿐이 아니다. 아니 곁에 크리스틴이 생긴 순간부터 별의별 일들이 벌어진다. 학교 깡패들이 아니가 고생해서 수리한 크리스틴을 다 때려부수고, 아니는 주차장 주인의 심부름으로 밀수에 가담하게 되고, 잇달아 발생하는 자동차 살인사건에 의심을 품은 형사가 아니를 찾아오고, 게다가 단짝친구인 데니스는 아니를 배신하기까지 한다. 아니와 크리스틴은 분노에 치를 떤다. "X새끼들아! 우리들의 앞을 가로막으면 가만두지 않겠어. 다 죽여버릴거야!" 그래서 정말로 죽음의 파티가 벌어지게 된다.

스티븐 킹의 소설 "Christine"은 스스로 움직이는 괴물 자동차라는 소재를 가지고 숨막히게 격렬한 스토리를 만들어낸 걸작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엔 그저 막연히 "괴물 자동차 소설이면 좀 유치하겠는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읽어보니 장난이 아니었다. 아니가 크리스틴을 보고 첫눈에 반해 버린 것처럼, 나도 소설 "Christine" 첫 페이지를 펼치는 순간부터 첫눈에 반해 버렸다. 마치 나와 스티븐 킹과 크리스틴과의 삼각관계랄까.

이 소설은 크게 3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첫부분은 데니스의 시점으로 전개되고, 두번째 부분은 다양한 사람들의 시점, 특히 아니의 시점으로 전개되고, 마지막 부분은 다시 데니스의 시점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리고 3부분으로 나뉜 소설은 또다시 각각의 소제목을 달고 있는 51개의 작은 단락들로 쪼개져 있다. 소제목 밑에는 항상 자동차를 주제로 한 팝송가사를 붙여 놓았는데, 그렇게까지 자동차를 주제로 한 노래가 많은지 처음 알았다. 인용된 팝송 중에는 밥 딜런의 노래 "From a Buick 6"도 있어서 흥미로웠다. (2002년 9월에는 "Christine"과 맞먹는 스티븐 킹의 또다른 괴물 자동차 소설 "From a Buick 8"이 발표될 예정이다.)

처음에는 데니스의 눈으로 소설이 전개되는 만큼 책을 읽는 독자는 아니와 크리스틴 사이에 벌어지는 은밀하고 무서운 일들을 자세히 알 수가 없다. 그저 천천히 조금씩 뭔가 안좋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은데 정확히 어떤 일들인지는 알 도리가 없는 것이다. 소설이 꽤 진행되고 나서도 크리스틴은 그저 보통 자동차인 것처럼만 등장해서 읽는 사람을 안달나게 만든다. 그렇지만 그 후로는 기분나쁜 노인 리베이와 크리스틴과의 과거, 착한 왕따소년에서 끝없는 분노의 화신으로 변해가는 아니, 크리스틴과 아니를 의심하는 형사의 집요한 접근, 아니를 배신하게 된 데니스의 뜨거운 청춘, 괴물 크리스틴의 무자비한 살육행위가 숨돌릴 틈없이 벌어져서 한도끝도 없는 긴장과 스릴을 선사한다.

우연히 마주친 악마의 자동차 크리스틴 때문에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아니의 모습이 무섭게 묘사되기도 하지만, 언뜻언뜻 자신의 변신을 후회하면서도 이제는 돌이킬 수 없음을 괴로워하는 아니의 모습에서 참 안됐다는 기분이 들었고, 이런 기분은 소설 끝에 가서도 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스티븐 킹은 여러 작품들 속에서 악의 힘에 굴복해서 괴물로 변해가는 인간들을 만들어 내면서도 그들의 인간적인 슬픔을 묘사해서 독자들로 하여금 동정적인 시선을 갖도록 만드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점이 킹의 작품을 매력적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한 요인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Christine" 후반부로 갈수록 눈에 띄는 것은 어릴적부터 붙어다니던 단짝친구인 아니를 배신하게 된 데니스의 마음이다. 소설 후반부는 데니스의 시점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배신으로 인해 죄인처럼 안절부절 못하는 데니스의 심정이 자세히 묘사되고 있다. 그로인해 벌어지는 데니스와 아니 사이의 눈에 보이지 않는 심리전이 박진감 넘친다. 특히 새해를 코 앞에 앞둔 12월 31일 밤,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주고받는 대화 속에 묻어나오는 일촉즉발의 위기감은 크리스틴의 스피드와 파워가 빚어내는 피의 살인극 못지않게 책을 읽는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말 속에 뼈가 있다"는 속담이 실감나는 장면이었다.

그래도 뭐니뭐니해도 이 소설 최고의 볼거리는 맨마지막에 등장한다. 계속되는 의문의 자동차 살인극을 끝내려는 인간과 크리스틴의 대결! 결전의 시간이 될때까지 차근차근 준비를 해나가는 인간의 모습을 지켜보며 느껴지는 두근두근 떨리는 기분. 그리고 마침내 인간과 괴물 자동차 크리스틴의 대격돌!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아수라장의 묘사가 일품이다. 자동차가 충돌하고 부서지고 깨지고 발악하는 격한 순간이 연약한 인간의 죽음을 무릅쓴 절박한 저항과 어우러져 속도감있게 그려지고 있다.

이 소설 끝에는 짧은 에필로그가 있다. 크리스틴과의 한판 승부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을 적어놓은 것인데, 스티븐 킹의 대부분의 작품이 그렇듯 우울한 분위기로 엔딩을 마무리하고 있다. 에필로그를 읽고나서 나는 이 소설이 전해준 깊은 여운에 흠뻑 젖어 잠시동안 멍한 상태에 빠져 있었다. 나를 멍한 상태에 빠져 있게 만든 또 한가지 이유는 킹이 에필로그 마지막에 "Chrisine" 2탄을 암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Christine"을 너무나 인상깊게 흥미롭게 읽었다. 제발 킹이 2탄도 꼭 써주었으면 좋겠다. (사실 킹이 2탄을 써주길 바라는 작품이 한둘이 아니다. 그런 작품들 2탄만 다 써도 킹은 평생 심심하지 않을 것이다.)

"Christine"은 국내에 번역출간되었다. 인의출판사에서 "살아있는 크리스티나"라는 제목으로 펴냈다. 지금은 구하기가 쉽지 않은데, 도서관이나 헌책방같은 데서 만나게 되면 꼭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책을 읽는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을 것이다.

소설 "Christine"에는 돈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다. 출판계에는 선인세제도가 있다. 작품이 완성되기도 전에 출판사측에서 작가에게 미리 일정액의 인세를 지급하는 것이다. 소설이 완성될 때까지 작가는 경제적으로 생활에 안정이 되어 집필에 전념할 수 있고, 출판사는 다른 출판사를 따돌리고 미리 작품의 출판권을 확보할 수 있어서 양쪽에 이익이 되는 제도이다. 선인세로 지급되는 액수는 작가의 유명세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스티븐 킹같은 거물작가의 경우 선인세로만 백만달러 이상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킹은 "Christine"을 집필하면서 선인세로 딱 1달러만 받았다. 그대신 작품이 완성되었을 때 받게 될 정식인세를 올려받는 것으로 출판사측과 계약을 맺었다.(그 정식인세가 몇 %였는지는 모르겠다.) 이 1달러 선인세 계약으로 인해 킹이 예전 작품들 출간때보다 더 경제적으로 이익이 되었는지는 자세히 알려져있지 않다. 그렇지만 그 후로 다른 작품에 대해서도 선인세를 1달러만 받았다는 얘기가 없는 걸 보니 별로 재미를 못 본 것 같다.

"Christine"은 공포영화의 거장 존 카펜터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었다. 국내에는 "크리스틴"이란 제목으로 비디오 출시되어 있다. 동네 비디오가게 주인이 영화에 대해 상당한 수준의 안목을 갖추고 있다면 꼭 소장하고 있을 것이다.

사실 나는 소설 "Christine"을 읽고 나서 영감을 얻어 멋진 이야기를 한편 만들어냈다. 제목은 "살아있는 홈페이지". 대강의 줄거리를 여러분께 소개해 보고자 한다.

주인공인 "나"는 인터넷에 홈페이지를 하나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다. 거의 매일같이 접속해서 홈페이지를 둘러보고, 게시판에 글도 올리고, 틈나는대로 업데이트도 성실히 하는 등 홈페이지 운영에 정성을 쏟고 있는 것이다. 마치 애인 돌보듯이. 그러던 중 "나"는 제1983회 세계 꽃미남 선발대회 참가상에 빛나는 남들보다 월등히 뛰어난 수려한 외모로 인해, 국제적인 음악그룹 핑클의 리더 "효리"와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핑클 팬클럽 남학생들의 눈물을 무시한 채 "나"와 "효리"는 한여름 해운대 해수욕장의 전기난로보다 뜨거운 사랑을 만끽한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나"는 홈페이지 관리에 소홀하게 되어, 홈페이지는 넓고넓은 정보의 바다 인터넷 한가운데 외롭게 홀로 남겨지게 된다. 홈페이지는 자신이 버림받은 것이 "효리"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그녀를 마구마구 미워한다. "나"와 "효리" 그리고 홈페이지 사이에 사랑의 삼각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효리"만 없어지면 "나"의 사랑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한 홈페이지는 "효리"를 살해하려 한다. 그러나 가까스로 죽음의 문턱에서 탈출한 "효리". "나"는 "효리"와의 사랑을 지켜내기 위해 핑클멤버들의 응원을 등에 업은 채, 홈페이지와 목숨을 건 죽음의 대결을 펼치게 된다. 결국 "나"와 홈페이지의 결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