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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zard and Glass

The Dark Tower 4

(1997년 소설)

1991년 다크 타워 3탄 <황무지(The Waste Lands)>를 발표하고 나서 스티븐 킹은 다크 타워 팬들의 한숨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롤랜드 일행과 미치광이 기관차 블레인이 대결하는 긴박한 장면에서 3탄이 갑작스럽게 끝나 버린 것이다. 그 대결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서 미칠 것 같던 팬들은 어서 다크 타워 4탄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킹은 다작을 하는 작가니까 4탄이 금방 나오겠거니하고.

하지만 킹은 또다시 다크 타워 팬들의 한숨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3년이 지나도 도무지 다크 타워 4탄이 나오지가 않는 것이다. 3탄을 그렇게 애간장 태우게 끝내놓고 왜 4탄이 나오지 않는 것이야! 그런데 다크 타워 팬들이 기다림에 지쳐 홧김에 다단계 판매에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집을 나서려는 순간, 그러니까 정확히 1997년에, 드디어 다크 타워 4탄 <Wizard and Glass>가 나왔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만사 제쳐놓고 서점에 달려가 <Wizard and Glass>를 사서 책을 펼친 순간, 그들이 본 것은...

...롤랜드 일행과 미치광이 기관차 블레인의 결투였다. 롤랜드 군단(롤랜드, 에디, 수잔나, 제이크, 오이)이 다크 타워 3탄에서 미처 못 끝냈던 기관차 블레인과의 결투를 숨가쁘게 진행하고 있었다. 결투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이기면 살고 지면 죽는다. 그런데 제한시간은 자꾸만 다가오고, 결투는 잘 풀리지 않는다.

나도 다크 타워 3탄 <황무지>를 끝까지 보고 그 대결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서 몸이 달았던 사람 중 한 명이다. 4탄 <Wizard and Glass>에서 그 대결을 마저 지켜볼 수 있어 재밌었다. 롤랜드 일행이 차례로 나서서 블레인과 대결을 벌이는 부분이 쉴새없이 펼쳐진다. 한마디로 말해서 정겨운 만담의 향연이랄까. 엄청난 대사들이 영어로 된 수수께끼 문장들을 마구 토해내는데,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나중에 한국말로 번역하게 될 사람은 상당히 머리가 아플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말이지 블레인과의 대결장면은 번역가의 센스를 고통스럽게 시험하게 될 것이다.

근데 사실 따지고 들자면 롤랜드 일행이 대결을 마무리 짓는 방식은 블레인과 맺었던 암묵적인 규정을 치사하게 위반한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죽음의 시간은 다가오는데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아주 작은 틈이 보인 것이다. 그냥 포기하고 앉아서 죽느니 불확실한 가능성에라도 매달리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롤랜드 일행은 도박을 걸었다. 그 도박이 도리어 죽음을 불러올 수도 있는 것이지만, 어쩌겠는가? 어설프게나마 방법은 그것뿐인데. 그들의 시도는 무모했으나, 다행스럽게도 스티븐 킹의 의지가 그들을 응원하고 있었다. 아~ 정말 다행이다.

그렇게 블레인과의 대결을 마무리 짓고서 롤랜드 일행은 또다시 다크 타워를 향한 끝없는 여행을 계속한다. 그런데 길을 걷는 동안 계속해서 신경을 긁어대는 기기묘묘한 소음이 들려온다. 다들 괴로워하는데 롤랜드만이 자기는 예전에 이미 겪어본 것이라며 여유를 보인다. 그러자 나머지 일행들은 그 옛날 얘기를 들려달라고 조르는데, 롤랜드는 괜히 딴청을 부린다. 그러다 어느 날 밤 모닥불을 피워놓고 모두들 빙 둘러앉은 자리에서 롤랜드는 그 기기묘묘한 소음과 관련된 자신의 옛날 이야기를 들려준다. 놀랍게도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롤랜드의 첫사랑 이야기였다~♥

슬픈 가정사로 인해 14살에 총잡이가 된 롤랜드. 북서쪽에서 일어난 전쟁의 불길을 피해, 아버지의 지시로 롤랜드는 절친한 친구인 커스버트와 앨라인과 함께 남동쪽의 작은 마을로 파견된다. 그 마을은 정말로 순박한 시골 인심이 살아숨쉬는 곳인 것만 같았다. 가는 곳마다 중앙도시에서 온 롤랜드 일행을 환대한다. 그러나 사실 그 곳은 양의 탈을 쓴 늑대와 맞먹는 음흉한 음모가 도사린 도시였다. 늙었지만 정력은 살아숨쉬는 시장, 권력 지향의 보좌관, 눈웃음 살살 치는 보안관, 시장의 사설 경호원으로 고용된 큰 관 사냥꾼 3인조, 사람 좋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목장 조합 임원들, 언덕 위에 사는 마녀, 그리고 신비로운 존재 "마법사의 무지개"가 얽히고 설켜서 고약한 음모를 만들어 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사실을 간파한 롤랜드와 그의 친구들은 어떡해든 좋은 해결방법을 모색해 보려 하는데, 그만 예상못한 복병을 만나고 말았다.

롤랜드가 첫사랑의 열병을 앓게 된 것이다. 그의 상대는 그 시골 마을에서 우연히 만난 수잔이라는 쭉쭉빵빵 소녀. 롤랜드는 자신도 주체못할 정도로 그녀에게 빠져들 게 되는데, 아~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그녀에겐 가슴 아픈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축제의 날 밤에 늙었지만 정력은 살아숨쉬는 시장에게 씨받이로 팔려가야 하는 몸이었다. 롤랜드, 어쩔 것이냐. 너의 14살 첫사랑을 그냥 떠나보낼 것이냐?

롤랜드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 참 흥미로웠다. 시골 마을의 음모를 분쇄하는 이야기와 롤랜드의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가 동시에 펼쳐진다. 초반과 중반의 이야기 전개는 여유롭다. 음모도 사랑도 느긋하게 진행된다. 여러 가지 자잘한 사건과 사고들이 느슨하게 이어지다 후반부로 갈수록, 수잔이 롤랜드와 이별할 수밖에 없는 축제의 날로 갈수록 마을의 음모도 롤랜드의 사랑도 정신없이 현란하게 휘몰아친다. 특히 축제가 가까워질수록 마을이 스산하게 변모하는 장면과 갑자기 피가 낭자하게 흩날리는 잔인한 장면들을 묘사하는 킹의 필력이 멋지다.

후반부는 정말이지 폭력과 사랑이 교차하며 폭발하는 숨막히는 장면의 연속이었다. 그 중에서도 롤랜드가 정신에 붕괴를 일으키며 겪는 체험들은 그가 다크 타워를 향한 인연을 제공해주는 중요한 장면이었다. 그의 미래를 보여주는 장면임과 동시에 다크 타워의 정체를 어렴풋이나마 보여주는 장면이어서 흥미진진했다.

이렇게 롤랜드가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자 일행들은 그의 안타까운 사연에 가슴 아파한다. 그리고 다크 타워를 향한 여행을 계속하는데, 길 앞을 녹색 궁전이 가로 막고 있다. 그리로 들어간 롤랜드 일행은 신비롭고도 고통스럽고도 슬픈 체험을 하게 된다.

이 장면에서 롤랜드 일행들이 녹색 궁전을 목격하고 그 곳 안으로 들어가서 겪는 체험들이 긴장감있고 신비롭게 펼쳐진다.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 지 가슴을 졸이며 읽었는데, 바로 전에 롤랜드가 들려줬던 옛날 이야기와 겹쳐지면서 위기가 닥쳐오는 장면이 짜릿했다.

녹색 궁전의 모험을 마친 롤랜드 일행은 다크 타워를 향한 여행을 또다시 이어간다.

다크 타워 4탄인 <Wizard and Glass>는 전작인 3탄 이후로 후속편을 기다려왔던 내게 굉장한 재미를 안겨 주었다. 4탄은 크게 "블레인과의 결투", "수잔과의 첫사랑", "녹색 궁전의 모험"으로 이어지는 3부분으로 나눌 수가 있는데, 가장 큰 분량을 차지하고 가장 읽는 이의 마음을 촉촉히 적셔주는 부분은 역시 롤랜드와 수잔의 첫사랑이 그려지는 부분이다. 롤랜드가 평화로워 보이는 시골 마을에서 겪는 사건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나오는 서부영화를 연상시킬 만큼 경쾌하고 발랄한 총격전을 보여 주었다. 악역으로 나오는 큰 관 사냥꾼 3인조의 리더 요나의 카리스마가 장난 아니었고 그에 맞서는 나이 어린 롤랜드와 친구들의 박력도 만만치 않았다.

롤랜드와 수잔의 사랑과 관련해서는 이 책의 첫부분에 인용된 세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모습처럼 허락받지 못할 사랑에 괴로워하는 연인의 모습을 절절하게, 그러면서도 격렬하게 보여주었다. 역시 팔팔한 아이들의 사랑이어서 그런지 정열적이었다. 스티븐 킹은 <Wizard and Glass> 후기에서 나이 들어 어린 나이에 느끼는 사랑의 감정을 쓰려니 너무 힘들었다고 토로했는데, 내가 읽은 롤랜드와 수잔의 사랑은 킹의 고백이 농담이라고 여겨질 만큼 화려하고 뜨겁고 멋졌다.

<Wizard and Glass>에서는 그간 별로 속내를 알 수 없던 롤랜드의 과거가 대단히 많이 보여져서 읽는 이를 만족시킨다. 비록 그 과거가 무척 가슴 아픈 일들의 연속이라서 읽는 이의 마음을 슬프게 하지만. 거기다가 <Wizard and Glass>에서는 킹의 소설 <스탠드(The Stand)>와 관련된 얘기들이 틈틈이 나온다. <스탠드>를 읽은 독자들은 그 장면에서 무한한 흥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다크 타워 시리즈를 죽 읽으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Wizard and Glass>에서도 자꾸만 롤랜드 일행의 다크 타워를 향한 여행에 불행한 결말이 벌어질 듯한 암시가 여러 차례 언급된다. 궁금하다. 과연 이 다크 타워 시리즈가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그것을 알기 위해 난 다크 타워 5탄으로 달려가고야 말 것이다. 으으~ 빨랑 읽고 싶어 미치겠다. 역시 난 다크 타워 시리즈에 중독된 것이 틀림없다.

p.s. 2013년 황금가지출판사에서 "Wizard and Glass"를 "마법사와 수정 구슬"이라는 제목으로 번역출간했다.

슬립워커스 / Sleepwalkers

작품 감상문 2007. 5. 12. 22:23 posted by 조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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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eepwalkers

(1992년 영화)

<Sleepwalkers>는 스티븐 킹이 쓴 창작 시나리오를 가지고 만들어진 최초의 영화다. 우리나라에는 <슬립워커스>라는 제목으로 비디오와 DVD로 출시되어 있다.

내가 젊었을 때(=아기 피부를 간직하고 있던 시절) 이제 막 스티븐 킹의 팬이 되어가고 있을 무렵 <슬립워커스>라는 영화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의 기존 소설을 각색한 영화가 아니라 창작 시나리오로 만든 첫 영화라니 궁금했다. 어떤 내용일까?

어느 한적한 마을의 고등학교에 음흉한 미소를 질질 흘리는 남학생이 전학 온다. 엄마와 단 둘이 사는 그 남학생은 굉장히 예쁜데도 불구하고 그 때 마침 애인이 없던 여학생에게 접근한다. 여학생은 그 남학생에게 점점 더 끌리게 되고 행복한 앞날을 꿈꾸게 되는데, 그 남학생과 그의 엄마가 슬립워커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정말 몰랐다. 진짜로 몰랐다. 하지만 시나리오를 쓴 스티븐 킹의 배려로 그 어여쁜 여학생도 슬립워커의 존재를 알게 된다.

이 영화는 처녀의 원기를 빨아먹고 사는 슬립워커라는 괴물 종족을 다룬 이야기다. 인간의 모습으로 위장하고 다니다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짐승 같은 모습으로 변신하는 괴물 종족 슬립워커. 괴물이 나오니까 이 괴물이 인간들을 농락하며 압도적인 공포를 선사해주는 영화가 될 것 같지만, 영화를 보면 그렇지가 않다.

<슬립워커스> 영화의 도입부에서는 이 괴물 종족들의 과거 활약상(=인간들을 막 못살 게 괴롭힌다)을 암시하는 고대 문서들을 보여주며 한껏 폼을 잡지만, 현대에 이르러 슬립워커들은 전설의 존재일 뿐이다. 영화 속에 나오는 슬립워커 엄마와 아들은 자신들의 종족들을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하고 언젠가 만날 수 있겠지하는 희망만 품고 쓸쓸히 살아갈 뿐이고, 현재로서는 슬립워커가 자기들 둘 뿐이니 우린 죽으나 사나 단결해야 한다면서 상부상조 정신을 강조하다 그만 금단의 사랑으로까지 치닫고 만다. 그 뿐이 아니다. 외롭게 살아가는 괴물들이지만 입은 고급이라서 인간 처녀들의 원기를 빨아 생명을 유지하느라 인간을 습격하고 나면 성난 인간들의 공격을 피해 이 마을 저 마을 떠돌아다니며 살 수밖에 없다.

영화의 주인공격인 괴물이 이렇듯 연약한 면모를 보여주니 공포스러운 면은 많이 깎인다. 게다가 처녀를 납치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슬립워커가 자꾸만 기회를 놓치고 도리어 공격까지 받는 상황이 자주 연출되니 주객이 전도된 듯한 기분이다. 또한 공포영화에서 카리스마를 자랑해야할 괴물이 자기 몸에 상처가 나는 상황들 속에서 자꾸 썰렁한 농담을 해대니 보는 사람으로서는 기분이 오묘해지기도 한다.

또한 괴물의 모습을 드러내는 슬립워커의 분장 또한 어설픈 티가 많이 난다. 딱 보면 인형옷을 뒤집어 썼다는 생각이 들고 그런 면에서 괴물로서의 공포스런 면모는 또다시 상당히 깎인다.

킹이 소설로 썼으면 좀 더 실감나게 묘사됐을 내용이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어긋나 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바로 내가 젊었을 때(=아기 피부를 간직하고 있던 시절) 동네 비디오 대여점에서 영화 <슬립워커스>를 빌려다 보고 느꼈던 인상이다.

그 후 세월은 흘러 현대과학의 급속한 발달로 인해 비디오 테이프에 이어 DVD 매체가 등장했고, 우리나라에 영화 <슬립워커스> DVD가 출시되기에 이르렀다. 이 영화 DVD가 나오면서 출시사에서 홍보했던 내용은 무삭제 그대로 국내에 출시했다는 것이었다. 국내에 나왔던 <슬립워커스> 비디오가 삭제판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던 나는 무삭제의 매력에 풍덩 빠져보고 싶어서 DVD 타이틀을 샀다. 그리고 정말로 오랜만에 <슬립워커스> 영화를 감상했다.

비디오로 봤을 때는 영화가 실망이었지만, 이번에 DVD로 보니 상당히 재밌었다.

예전에는 실망스런 요소로 느껴졌던 요소들이 지금 보니 아기자기하게 느껴졌다. 영화는 여전히 공포를 전해주기엔 역부족이지만, 부담없이 볼 수 있는 B급 공포영화로는 제격이었다. 스티븐 킹의 B급 정서가 유감없이 발휘된 영화였던 것이다. 한 판의 축제같은 B급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좋아할만 하다.

게다가 비디오로 봤을 때는 지나쳤던 슬립워커의 슬픈 면모가 가슴 절절하게 느껴졌다. 내가 나이를 먹어서 궁상맞게 감상적이 됐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암튼지간에 DVD로 보면서 슬립워커의 눈물 겨운 투쟁에 정말로 진짜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마음 같아선 내가 미녀를 잡아다 슬립워커한테 선물해 주고 싶은 심정이기도 했었...으나, 미녀가 있으면 내가 사귀어야지 왜 남을 주나?

영화 전반부를 장식하는 아들 슬립워커의 엄마를 향한 극진한 효도, 영화 후반부를 장식하는 엄마 슬립워커의 아들을 향한 극진한 애정. DVD로 영화를 보는 내내 이들 모자의 고독과 삶에 대한 집착이 슬프게 느껴졌다. 정말 이런 부분은 킹이 소설로 펴냈다면 더욱 멋지게 묘사되었을 것 같은 부분이다.

그리고 영화의 수준은 곧 그 영화에 나오는 여배우들의 수준이 좌우한다고 믿는 나의 입장에서 이 영화는 정말 걸작이었다. 엄마 슬립워커를 연기한 여배우의 농염한 매력과 슬립워커의 함정에 빠져드는 여고생을 연기한 여배우의 앵두같은 싱그러움에 나는 침을 흘리며 이성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카메오 출연한 인물들이 의외로 쟁쟁하다. 영화 첫부분에서 <스타워즈>의 제다이 마크 해밀이 나오더니 영화 중간쯤에 이르러서는 클라이브 바커, 존 랜디스, 토브 후퍼, 조 단테와 같은 공포영화계의 유명인들이 얼굴을 비춘다.

카메오는 아니지만 이 영화에서 돋보이는 배우는 영화 후반에  경찰로 나와 대단한 활약을 보여주는 론 펄먼이다. 영화 <헬보이>의 주인공일 뿐만 아니라 TV시리즈 <미녀와 야수>에서 야수 역할을 맡았던 이 배우의 파릇파릇한 모습을 보는 것이 재미있다. 야수나 헬보이가 아니라 그냥 사람 역할로 나오는데도 그의 독특한 얼굴은 너무도 강렬하다. 솔직히 괴물같은 슬립워커의 모습보다 론 펄먼의 맨얼굴이 더 무서웠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이 영화에서 가장 강렬한 카리스마를 발산하는 인물은 바로 스티븐 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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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과 클라이브 바커

킹은 영화 속에서 묘지 관리인으로 카메오 출연하는데, 묘지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때문에 정신을 못차리고 방황하는 고도의 심리연기를 보여준다. 그것도 잠깐 얼굴을 비치는 식이 아니라 꽤 긴 시간동안 나와서 영화를 이끌어 나간다. 특히 보안관에게 자신의 심정을 고백하려다 처참하게 무시당하는 순간 킹의 표정연기는 절묘하다고까지 표현할 정도로 감칠맛 난다. 예전에 비디오로 볼 때도 킹의 출연장면에 무한한 쾌감을 느꼈지만, 이번에 DVD로 보면서도 역시 무한한 쾌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영화 <슬립워커스>는 무섭지는 않다. 의외로 슬픈 영화다. 안 보면 후회할 만한 걸작이라고는 못 하겠지만, B급 정서에 충실한 슬픈 공포영화를 보고픈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게다가 스티븐 킹의 연기력을 그동안 과소평가했던 사람들한테는 강제로라도 권하고 싶다.

이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에서 여성이 감미롭게 읊조리는 노래가 무척 좋다. 오늘밤도 그 노래를 따라부르면서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으으음~ 음음~ 으으음~ 음음, 으으음~ 음음~ 으으음~ 음음, 으으음~ 음음~ 으으음~ 음음(무한반복).

스켈레톤 크루 / Skeleton Crew

작품 감상문 2007. 5. 12. 22:18 posted by 조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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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eleton Crew

(1985년 단편집)

스티븐 킹의 단편집 <Skeleton Crew> 서문에서는 단편소설의 경제적인 약점을 소개하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해 단편을 완성하느라 들인 시간과 노력을 따져보면 장편소설에 비해 작가가 받는 돈이 적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굳이 단편을 쓰는 이유는?

킹은 자꾸만 머릿 속을 맴도는 단편의 소재를 작가가 글로 풀어놓았을 때의 행복감을 말한다. 쓰고 싶은 글을 실제로 써냈을 때의 그 느낌. 오렌지를 쥐어짰을 때 나오는 그 노란 국물 속에 담긴 우주 삼라만상의 오묘한 진리가 독수리 오형제의 끝말 잇기 놀이가 나트륨에서 중단될 때의 그 나른함과 어울려 아름다운 미녀의 입술이 구청에서 예산이 남아돌아 멀쩡한 걸 들어내고 금방 깔아놓은 새 보도 블록에 스칠 때의 그 건강한 에로티시즘이 한 데 어우러진 바로 그 느낌. 한 마디로 말해서 기분 최고라는 얘기다.

어떤 이들은 단편소설 쓰기를 그저 장편소설 쓰기에 도전하기 전에 의례히 치러야 하는 연습 정도로 취급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단편집은 시시해서 안 읽고 장편소설이 읽는 데는 최고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마라톤 선수가 100미터 달리기 선수 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마라톤은 마라톤이고 100미터 달리기는 100미터 달리기고 단편소설은 단편소설이고 장편소설은 장편소설이고 핑클은 결국 핑클인 것이다. 그 어느 것도 한 쪽의 노예가 아니라 각자가 고유의 영역을 가지면서 각자의 멋과 맛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Skeleton Crew>는 <스티븐 킹 단편집(Night Shift)>에 이은 킹의 두 번째 단편집이다. 이 단편집에 실린 22편의 작품들을 읽어보면 스티븐 킹이 단편을 쓰며 느꼈을 그 기쁨을 어느 정도는 함께 느낄 수 있을 것이며, 단편을 절대 깔보지 않는 착한 어른으로 성장할 것을 굳게 다짐하게 될 것이다.

<Skeleton Crew>는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스켈레톤 크루>라는 제목으로 번역출간했다.


1. The Mist

엄청난 폭풍이 밤새 마을을 강타한다. 무너지고 쓰러지고 부서지고 난장판이다. 호숫가에 사는 데이빗은 아내를 집에 남겨두고 아들과 함께 마을에 있는 슈퍼마켓에 당장 필요한 물품을 사러 간다. 밤새 폭풍을 겪은 마을 사람들이 물건을 사느라 슈퍼마켓은 분주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호수 저편에서 보이던 이상하리만치 하얀 안개가 어느새 마을을 덮친다. 슈퍼마켓 안의 사람들은 이제 밖으로 나갈 수 없다. 나가면 하얀 안개 속에서 죽는다. 어쩌나. 사람들은 동요하며 이상한 행동을 보이기까지 하는데, 급기야 안개는 슈퍼마켓을 점점 더 조여오고, 우리의 주인공은 결단의 순간을 맞이한다.

아아, 너무 엄청나게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이상한 안개가 몰고온 죽음의 공포를 너무도 음산하게 그려냈다. 사실 안개 속의 공포란 것이 다분히 만화적인 모양새를 띄고 있는데, 그것을 상황과 맞물려서 긴박감 넘치게 진행시키는 킹의 필력이 멋지다. 주인공 남성이 슈퍼마켓 속에 고립되어 있으며 겪는 막막한 심정이 내 가슴 속에도 전해지는 듯 했다.

이 이야기의 절정이라면 주인공 일행과 심술궂은 할머니와의 대결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 전까지 온갖 야리꾸리한 언변으로 상황을 이상하게 몰고 갔던 할머니와 맞서는 주인공 일행의 활약상에 난 박수를 치고 말았다. 답답했던 슈퍼마켓 속의 상황을 시원하게 깨부수는 멋진 장면이었다.

소설을 읽고 나서 자연스레 주인공의 앞날을 상상해보게 되는 결말의 여운도 상당히 좋다. 이 소설은 단편집 <Skeleton Crew> 안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작품인데, 그러면서도 "고립"이라는 설정을 이렇게까지 처절하고 스릴있게 이끌어간 킹의 능력에 새삼 감탄했다.

이 멋진 소설은 킹 원작영화 <쇼생크 탈출>, <그린 마일>의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이 영화로 만들었으며, 우리나라에는 "미스트"라는 제목으로 개봉하였다.


2. Here There Be Tygers

초등학교 3학년 수업시간. 우리의 주인공 소년 찰스는 죽을 지경이다. 오줌이 마려워서. 아아... 좋아하는 여자애한테 쪽팔리는 것도 감수하고, 무서운 여선생님의 꾸중도 감수하면서, 찰스는 수업시간 중에 화장실에 가고야 만다. 그리고 그 곳에서 88 서울 올림픽 마스코트를 만나게 된다.

짧으면서도 상당히 귀여운 단편이다. 다 읽고나면 찰스의 행동이 귀여워서 빙긋 웃음을 짓게 된다.

어린 나이에 화장실에서 상당히 괴상망칙한 체험을 하게 되었으면서도, 생리현상에 충실한 순수한 동심의 세계를 펼쳐보이는 찰스의 앞날이 기대되는 바이다. 화장실과의 인연이 그의 장래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길 기대해 본다.


3. The Monkey

할은 다 큰 성인으로서 아내와 아들 둘을 거느린 한 집안의 가장인데, 어린 시절의 상처를 가슴에 안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린 시절의 상처가 다시 열리기 시작한다. 죽음을 부르는 원숭이 장난감이 과거로부터 돌아온 것이다!

이 소설에서 죽음을 부르는 원숭이 장난감은 나도 어릴 때 가지고 있었다. 태엽을 감으면 원숭이가 손에 든 심벌즈를 땀을 뻘뻘 흘려가며 쳐대는 것이다. 땀을 흘리진 않았던가? 하두 오래 전 일이라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하여튼 나는 그 원숭이 장난감을 갖고 놀면서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킹은 그 장난감에서 죽음의 이미지를 보았다니 역시 이것은 평범남과 천재의 차이겠지?

사실 어른이 조그만 장난감 하나 갖고 식은 땀을 흘리고 무서워하는 것은 참 우스운 모습이지만, 스티븐 킹이 창조한 세계 속에서는 이것이 당당하게 생과 사를 가르는 중대사가 된다. 어린 시절의 비극을 현재의 가족에게 물려주지 않으려 원숭이 장난감 때문에 방황하는 중년남성의 고뇌. 캬~~ 이거 정말 계란말이에 소주 안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상당히 가슴 아픈 인생사다.

할이 과거의 악몽을 물리치는 과정이 잔잔하게 그러다 아슬아슬하게 그러다 격렬하게 펼쳐진다. 원숭이를 정글로 돌려보내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 소설을 읽고나면 할의 그 후가 궁금해진다. 소설 속에서는 무능력한 가장으로서 큰 아들과 상당히 마찰이 있었고, 그 부분이 소설의 전반부를 암울하게 장식한다. 소설이 끝난 후로 할의 가정은 화목해졌을까? 원숭이 장난감의 안부 만큼이나 궁금하다.


4. Cain Rose Up

방학을 맞아 기숙사에 있는 학생들은 짐을 싸서 집에 가느라 분주하다. 하지만 학교생활이 파탄난 개리쉬는 그럴 기분이 아니다. 그는 기숙사 방문을 걸어잠그고 자신의 감정을 과격한 행위예술로 승화시키느라 바빠진다.

스티븐 킹의 건조한 묘사가 죽 이어지는 소설이다. 개리쉬가 친구들과 마주치며 그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대화를 나누다가 소설 막판에 드디어 그에게 "의미"있는 행동을 폭발시키는 맛이 달콤쌉싸름하다. 이걸 보고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고 했다간 지렁이들이 기분 나빠하겠지? 일단은 지렁이 대신 쥐며느리로 해두자.


5. Mrs. Todd's Shortcut

캐슬록 마을의 호머는 토드 부부의 여름 별장 관리인이다. 여름이면 경치 좋은 캐슬록 마을로 놀러오는 토드 부부를 위해 오늘도 호머는 별장 관리에 여념이 없는데, 토드 부인의 별난 취미가 그의 발목을 잡는다. 그녀의 취미는 자동차로 지름길 찾아가기. 그녀는 자기가 지름길을 찾아냈다며, 말도 안되는 엄청난 짧은 시간 안에 읍내까지 도착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 정상적인 주행으로는 그렇게 빨리 갈 수가 없다고 호머가 믿지 않으려 하자 토드 부인은 오기가 생긴다. "좋아요, 호머. 우리 내기합시다." 끈질긴 사모님의 유혹 앞에 호머는 무너지고 드디어 그는 토드 부인의 차에 올라탄다. 어디 정말 그렇게 빨리 갈 수 있는 지름길이 있는지 볼까? 토드 부인의 차가 출발하는 순간부터 호머에게는 놀라움이 끊이질 않는다.

토드 부인의 스피드를 향한 집념이 종횡무진하는 멋진 소설이다. 옆에서 지켜보는 호머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소설이 그녀의 이상하리만치 놀라운 운전실력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그녀가 큰소리치는 운전실력의 비밀을 옆에서 보는 호머 만큼이나 나도 놀라고 말았다. 운전의 비밀이 하나하나 벗겨지면서 도리어 토드 부인의 아름다움의 비밀은 하나하나 늘어만가니, 난 그녀가 너무 멋져 침을 흘릴 지경이었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한 편의 멋진 영화를 보는 듯 했다. 특히 맨마지막 장면이 끝내준다. 푸른 밤하늘을 배경으로 이제까지의 이야기 전개를 놀라운 모습으로 마무리짓는 환상적인 결말이 깊은 여운을 남겨 주었다. 아아~ 그 장면이 눈 앞에 선하구나.

토드 부인 같은 여자를 만났다니 호머가 부럽다. 나도 토드 누나 처럼 야생마 같은 누나가 모는 차에 같이 타고 싶다. 정말 착한 남동생으로 잘 지낼 자신 있는데.


6. The Jaunt

아주 먼 미래, 뉴욕 터미널에서 마크 가족이 화성으로 이민갈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우주선을 타고 가는 게 아니다. Jaunt라는 물체이동 방식으로 몸이 순식간에 뉴욕에서 화성으로 뿅하고 날아가는 것이다. 불안해하는 아이들을 달랠 겸 마크는 아이들에게 1987년에 빅터라는 과학자가 Jaunt를 발명하게 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다 드디어 마크 가족이 Jaunt할 차례가 오게 된다.

이 소설에 나오는 Jaunt라는 급속 이동방식은 아무래도 알프레드 베스터의 SF소설 <타이거! 타이거!>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스티븐 킹은 이 단편에서 1987년에 정부의 쥐꼬리만한 지원을 받으며 물체이동 연구에 몰두하는 과학자 빅터의 모습을 먼 미래의 뉴욕인 마크의 입을 빌어 보여준다. 정말이지 빅터의 연구과정은 무척 재미있다. 얼떨결에 실험에 성공하고 나자 그 결과를 다시 재현해 보려고 금붕어와 쥐를 이용해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점점 더 결론에 접근해가는 과정이 아기자기하다.

그렇게 Jaunt가 실용화되고 나서 그에 따른 암울한 부작용들을 나열하는 부분도 흥미롭기 그지 없다. 아, 이게 이렇게도 이상한 방식으로 오용될 수도 있구나하는 재미가 새록새록 느껴진다.

그러다 이렇게 신기술의 경연장으로 아름답게 끝맺음할 줄 알았던 이 단편소설이 결말에서는 생호러로 변한다는 것이 무척 맘에 들었다. 아, 역시 킹 아저씨가 짱이다.


7. The Wedding Gig

한 재즈 밴드가 조폭의 여동생 결혼식에서 피로연 연주를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는다. 드디어 결혼식 날, 재드 밴드는 피로연 현장에 모여 연주 준비를 하게 되는데, 과연 순조로운 연주가 될 것인지는 스티븐 킹의 손에 달렸다.

이 단편소설은 밴드 연주자가 바라본 시각에서 부드럽게 흘러간다. 피로연 연주 제의를 받는 순간부터, 결혼식 당일 날의 현장, 그리고 그 뒤의 후일담까지 담담하게 일어나는 일들을 이야기해 준다. 밴드가 피로연 현장에서 겪게 되는 당혹스런 일도 지나고 나면 다 추억으로 남는 법. 아무렴. 우리 인생의 모든 일들은 추억이라는 이름의 잡탕찌개가 되어 버리는 법이지.

이 단편소설을 통해 킹은 아웅다웅하는 우리네 인생이 결국엔 재즈와 같다고 말하고 싶은 걸까? 글세, 난 인생이 핑클의 발라드 음악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는데.


8. Paranoid: A Chant

이것은 스티븐 킹이 쓴 시다. 자신이 정부 조직에 감시당하고 있으며, 방심하는 순간 끌려간다고 생각하는 한 인물의 단호한 의지를 표현한 시다.

이 시를 읽고 난 다음 한국 영화 "지구를 지켜라"를 보면 인생에 득이 되면 됐지 해가 될 것은 없다.


9. The Raft

두 쌍의 남녀 대학생들이 인적 없는 호숫가로 놀러간다. 놀러간 것 까지는 좋은데, 호수 위에 떠있는 뗏목까지 헤엄쳐갔다는 것이 문제다. 그들은 그 뗏목에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는 처지가 되기 때문이다. 뗏목 밖에서는 시커먼 죽음의 그림자가 그 철없는 대학생들을 노리고 있다.

정말 재밌는 소설이다. 좁은 공간에 고립되어 징징 대는 대학생들의 모습이 처절하게 묘사되고 있다. 4명 사이의 미묘한 애정관계가 죽음의 뗏목 위에서 주인공에게 바람직한 방식으로 정착되는 과정이 흥미롭다. 역시 주인공이 최고인 것이다.

이 소설에는 호수의 축축하고 음산한 적막감이 절묘하게 등장인물들을 압박하고 있다. 죽게 생겼는데 어디다 하소연할 데는 없고, 미치고 환장하는 설정인 것이다. 이 소설을 지하철역 같이 사람이 마구 붐비는 장소에서 읽으면 오히려 더 재밌을 것이다. 그나저나 이 소설의 뒷부분을 읽으며 든 생각은 인간의 생리적 욕구가 무척 강하다는 사실이었다. 남자로서 참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이것이 남자의 숙명인가. 여자의 불행인가. 분명한 것은 허리가 강해야 좋다는 것이다.

이 소설의 제목은 원래 <The Float>이었다. 이 작품과 관련된 일화를 킹 자신이 직접 잡지 뉴요커 2002년 4월호에 기고했었다.

Cone Head -- 스티븐 킹


1970년 봄, 내 나이 22살 때, 나는 메인주 오로노의 경찰에 체포되었다. 차를 몰고 가다 신호등에 걸려 정지하고 있을 때, 고무로 만들어진 삼각뿔 모양의 도로 표시물을 서른 개도 넘게 가지고 있었던 것이 발각된 것이다. 유니버시티 모텔에서 밤새 롱아일랜드 아이스티 칵테일을 엄청나게 마셔대다가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문제의 삼각뿔 표시물 중 하나가 내 차에 부딪친 것이 사건의 시작이었다. 그 놈의 삼각뿔이 내 고물 포드 스테이션 왜건 자가용 밑으로 튀어들어가 자동차 밑바닥의 소음기를 긁어 놓았던 것이다. 그 날 낮에 오로노 시청 인부들이 도로에다 페인트로 횡단보도 그리는 것을 목격했었기 때문에, 그 이후 인부들이 도로에다 삼각뿔 표시물을 놔두고 갔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술주정뱅이의 논리적인 심사숙고의 결과로, 나는 마을을 천천히 돌아다니면서 -천천히, 안전하게, 정신 똑바로 차리고- 도로에 있는 모든 삼각뿔 표시물을 수거하기로 마음 먹었다. 한 개도 빠짐없이 전부 다. 날이 밝으면 시청에 가서 수거한 삼각뿔들과 내 고장난 소음기를 보여주며 시민의 정당한 분노를 표시할 생각이었다.


예전부터 나를 싫어할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던 오로노 경찰은 -나는 베트남전을 반대하는 악질 "히피"였으니까- 나를 체포한 것 때문에 얼씨구나하며 기쁨의 환호성을 질러댔다. 내 스테이션 왜건에서 경찰이 찾아낸 삼각뿔들은 절도죄로 옭아매기에 충분한 수량이었다. 체포 당시 나는 첫 번째 장소에서의 삼각뿔 수거를 끝내고 두 번째 장소로 이동 중이었다. 그때 만약 내가 삼각뿔 백 개 정도를 가지고 있었거나 내 아파트에 삼각뿔을 은닉하고 있었다면, 지금 이 글은 특수절도죄를 이야기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수 개월이 지났다. 나는 메인대학을 졸업했다. 재판에서 절도죄를 선고받을까봐 불안해하면서, 그 와중에 교사 자리를 알아보러 다녔다. 하지만 취업은 쉽지 않았고, 교사 대신 브루어타운 근처 주유소에서 기름 넣는 일을 했다. 주유소 사장은 여자였다. 정확한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일하는 사람들은 그녀를 엘렌이라고 불렀다. 엘렌은 멀지않은 미래에 절도죄를 따지는 재판에 내가 출석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급료는 쥐꼬리만큼만 주면서(시간당 1달러 60센트였을 것이다), 그녀가 그런 것까지 알아야할 권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는 한창 가격파괴 바람이 불어닥쳐서, 내가 일하던 95번 도로 주유소에서는 휘발유 1갤런을 29센트에 팔고 있었다. 하지만 여러분, 가격파괴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기름을 만땅 채워넣은 손님은 사은품으로 유리컵(볼품없지만 탄탄한 식당 물컵)이나 빵(특별히 길쭉한 카스테라 빵)을 골라 가질 수 있었다. 만약 주유소 직원이 "손님, 오일 체크해 드릴까요"라고 말하는 것을 깜빡 잊으면, 기름값 마저도 공짜였다. 만약 주유소 직원이 "손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깜빡 잊어도, 기름값은 공짜였다. 그렇다면 이렇게해서 발생하는 공짜기름에 따른 손실은 과연 누가 책임지게 되었을까? 그렇다. 나처럼 툭하면 깜빡하는 주유원이 불쌍하게도 금전적인 책임을 뒤덮어 쓰는 것이다. 그래서 그 당시는 너무 쪼들린 나머지 가끔씩 저녁식사로 술 한잔에 콘플레이크 과자를 말아먹고는 했다.


그 시절에 나는 올드타운 출신의 태비사 스프루스라는 여성을 만나고 있었고, 결혼하자고 청혼을 하고야 말았다. 그녀는 청혼은 받아들였지만, 저질 휘발유를 주유하는 일보다 좀 더 나은 직업을 찾아보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나는 그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어느 누가 손님들한테 "유리컵으로 하실래요 아니면 빵으로 하실래요"하고 묻는 것이 지상최대의 임무인 남자랑 결혼하고 싶겠는가?


1970년 8월이 왔고, 삼각뿔 절도를 심리하는 재판날짜도 왔다. 나는 엘렌에게 그 날 오후는 일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내 피앙새의 친척이 죽어서 피앙새를 장례식에 데려다줘야 한다는 핑계를 댔다("여자친구"보다는 "피앙새"라는 말이 좀 더 신뢰감있게 들린다). 엘렌은 내 핑계를 믿는 것 같았다. 그리고 까놓고 말해서 장례식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피앙새 친척의 장례식이 아니라 나의 장례식이었지만. 나는 뱅고어 지방법원에 출석해서 열심히 내 자신을 변호했지만, 바보같이 칭얼대기만 했다. 나는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래도 백 달러 벌금형으로 끝난 것이 다행이었다. 까딱 잘못했으면 감방에서 6개월동안 놀고 먹을 기회를 얻을뻔 했으니까. 더욱 다행스러운 것은 여자들이 벗고 나오는 'Adam'이라는 잡지에 "The Float"이란 제목의 공포소설을 팔았는데, 수표가 내가 벌금을 내야하는 날짜에 딱 맞춰서 도착한다는 것이었다. [재형이의 해설: "The Float"은 나중에 "The Raft"라는 제목으로 바뀌어 킹의 단편집 "Skeleton Crew"에 수록되었다.]


재판 다음날 주유소에 일하러 갔더니, 엘렌이 웃으면서 나의 불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세상에 뱅고어 지방법원에서 하는 장례식도 있냐며 빈정댔다. 내 재판 바로 뒤에 열리는 재판때문에 엘렌의 친척 -사촌이던가, 조카던가, 아무튼 그 비슷한 것- 이 법원에 와있었던 것이다. 이 무슨 애꿎은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모든 것이 다 잘 풀렸다고 생각한 순간 환상적인 불행폭탄이 날아든 것이다. 전에 주유소에서 나를 봐서 알고 있던 이 친척이라는 나쁜 인간이 법원에서 날 봤다고 여사장에게 말해버린 것이었다.


이렇게해서 나는 23번째 생일을 한달 남겨두고서 백수가 되는 것과 동시에 전과기록도 갖게 되었다. 나는 내가 정말로 나쁜 사람이 되지나 않을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정말로 나쁜 사람이 된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지만, 누군가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도 필요하다고 그럴듯하게 생각을 꾸며대기까지 했다. 아마도 삼각뿔 절도는 인생의 밑바닥으로 추락하는 기분을 맛 본 첫경험이었던 것 같다. 그 해 여름, 나는 인생이라는 쇼에서 우리 모두가 스타가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생의 해피엔딩이라는 것은 -심지어는 중간시절을 해피하게 지내는 것 조차도- 절대로 믿을만한 것이 못된다.


10. Word Processor of the Gods

교사일을 하면서 집에서 시간이 날 때마다 글을 쓰는 리처드는 가정적으로는 불운한 사람이다. 아내와 아들은 그에게 인생의 기쁨이 되어주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리처드는 죽은 조카한테서 워드 프로세서를 선물 받는다. 그리고 그 워드 프로세서와 함께 리처드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이 소설은 작가들을 위한 동화이다. 너무나도 달콤한 동화. 스티븐 킹은 정말로 이런 워드 프로세서를 지하실에 감춰 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루에 두 번씩 군만두를 먹이면서.

실제 작가에게 정말로 이 소설과 같은 기회가 생긴다면 어떤 글을 쓸까? 유명작가들을 불러다 놓고 어떻게 나오는지 한 번 보고 싶다. 나라면 이런 글을 쓸 것이다. "나는 핑클의 남편이다." 나도 모르게 감동의 눈물이 흐른다.


11. The Man Who Would Not Shake Hands

사람들이 모여 포커를 치고 있는데, 한 신사가 찾아온다. 자기도 포커판에 끼워 달란다. 사람들은 포커판에 그를 끼워주는데, 그 신사는 한 가지 부탁의 말을 한다. 무례하게 들리겠지만 자기는 절대로 악수를 안 하는 성격이니, 제발 악수를 청하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그래? 알았수다. 포커판은 돌아가는데, 그러는 와중에 그만 악수가 발생하는 순간이 오게 된다. 포커판의 사람들은 악수가 무기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본의 아니게 깨닫게 된다.

스티븐 킹의 단편집 <Different Seasons>의 겨울 이야기 <호흡법(The Breathing Method)>을 보면 다 큰 어른들이 모여 돌아가며 무서운 이야기를 하며 "어머, 얘~ 그 얘기 너무 무섭다, 얘."하며 수다를 떠는 모임이 나온다. 이 모임은 킹이 소설을 공동집필하기도 한 공포소설가 피터 스트라우브의 소설 <고스트 스토리(Ghost Story)>를 읽고는 그 소설 속에 나오는 이야기 모임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낸 것이다.

이 단편소설은 바로 그 <호흡법>에 등장했던 이야기 모임이 다시 나오는 작품이다. 그 모임의 멤버들이 다시 모이고 한 멤버가 자신이 젊은 시절 겪었던 무서운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이다. 악수를 하지 않으려하는 이상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를 말이다.

이 소설은 고전적인 서양 공포소설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 신비로운 이국적인 풍경, 그 곳에서 벌어지는 불가사의한 저주, 그 저주가 문명사회 속에서 벌이는 공포. 그런 내용들이 자극적이지는 않지만, 은은하게 읽는 이를 끌어당긴다.

이야기 모임이 벌어지는 클럽의 집사가 자꾸 신경이 쓰인다. 아주 수상한 인물이다. 나는 이야기 클럽의 멤버들이 집사의 비밀을 캐는 내용의 공포소설을 스티븐 킹이 써주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다. 오늘 밤에도 그런 소망을 담아 텔레파시를 미국으로 보내봐야겠다.


12. Beachworld

우주선 한 대가 모래 행성으로 불시착한다. 끝도 없이 모래로만 가득해서 마치 해변의 모래사장 같이 느껴지는 곳. 이 곳을 어떻게든 탈출해야 한다.

갑자기 환경이 바뀌면 두 가지 선택이 가능하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던가, 아니면 옛날 환경으로 돌아가려 애를 쓰던가. 이 소설에 나오는 인간은 모래 행성의 탈출을 꿈꾸지만, 안드로이드는 적응을 꿈꾼다. 왜일까? 인간보다는 안드로이드가 모래의 아픔을 더 잘 이해하는 탓일까?

이런 얼토당토 않은 개인적 잡담을 뒤로 한 채 이 소설은 사막의 모래바람 처럼 유유히 흘러간다. 유유히 흘러간다. 그래, 모래는 움직이는 거야.


13. The Reaper's Image

너무 위험한 물건이라 박물관에서 치워놓은 골동품 거울이 있다. 그런데 그 거울을 조사하러 한 남자가 온다. 박물관 직원이 제발 보지 말라고, 보고 싶어하는 사람은 간이 부은 게 분명하다고 말리지만, 조사하러 온 남자는 자기는 지방간이 아니라며 기어이 그 문제의 거울을 보려 한다. 정말로 보면 안 되는데.

이 소설은 킹이 18살 때 쓴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나는 18살 때 킹의 머리 속에 얼마나 많은 엉뚱하고 환상적인 이야기들이 꿈틀대고 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에 와서는 킹이 매우 다작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그는 자신이 18살 때 품었던 그 많은 이야기들을 다 풀어놓은 것일까? 내가 킹 아저씨한테 당신의 18살 때 머리 속으로 함께 여행해 봅시다!라고 제안한다면 킹 아저씨도 참 좋아하겠지?


14. Nona

한겨울에 홀로 길을 걸어가야 하는 남자가 있다. 도로 휴게소 식당에서 몸을 녹이다 "노나"라는 이름의 신비로운 여자를 만난다. 그리고 그들은 함께 캐슬록 마을로 향한다. 그들이 가는 길마다 공포가 함께 따라 다닌다. 이른 바 공포의 스토킹.

짧은 분량 안에 대단히 자극적인 폭력들을 함축시킨 소설이다. 노나와 동행하는 주인공 남자도 흥분하지만, 소설을 읽는 나도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줄줄이 이어지는 그 폭력의 종착역은 어디일까? 분명 좋은 곳은 아닐테지?

우연히 노나를 만난 남자의 본능적인 일탈이 폭력과 맞물려서 읽는 이의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강력한 흡입력의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역시 남자는 여자를 잘 만나야 한다는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하지만 "잘"이라는 말 속에는 언제나 너무나도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이 문제다.


15. For Owen

킹이 막내아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며 함께 나눈 대화를 감동적으로 풀어낸 시다.

이 시에서 두 부자는 과일들이 다니는 학교에 관해 심도있는 대화를 나눈다. 이런 학교에서 "맥주 안주에는 과일 샐러드가 최고지."라는 말을 하게 되면 수업 분위기가 매우 나빠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16. Survivor Type

외과의사가 마약 운반을 하다 바다에서 조난을 당해 무인도에 떠내려오게 된다. 그리고 무인도에서 건강하게 잘 먹고 잘 사는 법을 터득한다.

줄거리 요약을 너무 압축시켜서 왠지 어설픈 작품 같지만, 이 소설 상당히 매력적이다.

무인도에 홀로 남겨진 의사의 일상을 생존과 결부지어 매우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 놓았으며, 그 속에서 느끼는 의사의 분노와 무기력함이 히로뽕과 코카인의 가슴 떨리는 첫날밤을 보는 듯한 황홀경을 연출하고 있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정말로 무인도에 표류한 주인공이 되는 양 흥분하면서 읽었다. 배고파도 이를 악물고 살아야 해! 넌 죽어선 안 돼!

먹을 게 별로 없는 무인도에서 먹을 것을 찾아 헤매며 갖은 고초를 겪는 의사가 잠깐잠깐씩 하는 딴 생각들이 무척 재미있고 의미심장하다. 심각한 주인공이 불쑥불쑥 딴 생각을 해대는 그 리듬이 절묘하게 반복되면서 이 소설의 읽는 맛을 더욱 깔끔하게 해주었다.

점점 사태가 악화되면서 의사가 매번 자신에 대해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그 순간"이 닥쳐올 때마다 이 소설을 읽는 독자는 커다란 재미를 느낀다. 아, 얄궃은 독자의 운명이여! 주인공의 불행을 뜯어 먹고 사는 구나! 스티븐 킹의 소설을 읽으면 허기질 걱정은 안해도 된다.


17. Uncle Otto's Truck

이 소설의 주인공에게는 괴짜 큰아버지 오토가 있다. 오토는 원룸 집을 짓고 혼자 사는데, 길 건너편에는 수십 년째 고장나서 방치되어 있는 트럭이 주저앉아 있다. 주인공이 들를 때마다 오토는 저 망할 놈의 트럭이 자기를 죽이려고 움직이고 있다고 말한다. 주인공이 보기에는 그저 고장나서 멈춰있는 고물 트럭일 뿐이다. 하지만 오토는 하루 종일 문에 서서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트럭을 감시한다.

나는 이 소설을 읽고 나서 묵직한 감정의 여운이 오래도록 가시질 않았다. 그 정도로 읽는이의 가슴을 아련하게 맛사지해주는 멋진 소설이다.

이 소설에 나오는 트럭은 오토의 젊은 시절과 관련해서 원한이 서린 물건이다. 그 원한이 생기게 된 사연이 재미있게 소개되고, 그 뒤로 세월이 흘러 트럭에 대한 공포스런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늙은 오토의 심정이 비장하게 나온다. 조카는 고물 트럭이 움직이는 게 안 보이는데, 큰아버지는 그걸 왜 못보느냐며 안타까워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에서 트럭의 움직임을 시계의 시침에 비유하는 큰아버지의 비유가 참으로 인상 깊었다.

그리고 이 소설은 결말의 절정부분이 무척 환상적이어서 내 마음을 놀라게 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글을 읽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던 것이다. 아아~ 너무 멋진 장면이었고, 이런 소설을 쓰는 킹이 참 부러웠다.


18. Morning Deliveries (Milkman #1)

우유배달원 스파이크는 오늘도 열심히 우유를 배달하러 온동네를 휘젖고 다닌다. 아주 위험한 방식으로.

이 단편은 스티븐 킹이 쓰다만 장편소설에서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그래서 이 단편은 이야기의 맥락이 제대로 설명이 되질 않고 애매하게 나온다. 그냥 우유배달원이 배달하는 장면만 나온다. 그 위험한 배달의 이유라든가 결말이라든가 하는 것은 나오질 않는다. 그러므로 이 단편은 우유배달원의 행적을 따라 즐겁게 동행하는 기분으로 읽으면 된다. 소설이 전개되는 리듬은 무척 경쾌하다. 그렇다고 춤을 추며 읽으라고 권유하지는 않겠다.


19. Big Wheels: A Tale of the Laundry Game (Milkman #2)

세탁공장에서 일하는 록키는 부하 직원을 데리고 술에 취해 음주음전을 하다가 자동차 검사기간을 넘기게 될까봐 늦은 시각에 정비소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고 다닌다. 그러다 외잔 곳에 있는 한 정비소를 우연히 찾아 들어갔는데, 알고 보니 그 정비소 사장이 록키의 학교 동창인 거였다. 그래서 그들은 웃음꽃을 피운다. 하하하!

이 단편 역시도 킹이 예전에 쓰다만 똑같은 장편소설에서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그렇지만 <Morning Deliveries>보다는 이야기의 전개가 더 흥미롭다. 록키가 동창을 만나서 예전 시절을 회상하며 서로 대화를 나누는 부분은 입가에 미소가 번질 정도로 상당히 재미있고 등장인물들의 엄청난 입담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하지만 우유배달원 스파이크가 별안간 등장하는 장면부터는 뭐가 뭔지 모를 이야기 전개로 돌아가 버린다. 그렇다. 스파이크가 문제인 것이다. 해답은 스티븐 킹에게 물어보면 된다.


20. Gramma

11살 소년 죠지는 어찌어찌하다 보니 숨이 오락가락하는 생명이 위태로운 할머니와 단 둘이 집에 남게 된다. 평소에도 무섭다고 생각한 할머니였지만, 단 둘이 있다보니 더 무서워지고, 그러다보니 무서운 일이 정말로 일어나 버린다.

이 단편을 읽으며 킹이 펼치는 소년의 심리묘사에 감탄했다. 나 같으면 소년의 심리에 대해 몇 줄 쓰면 별로 쓸 말도 없을 것 같은데, 킹은 정말 자세히도 치밀하게 술술 묘사해 나간다. 행여나 할머니가 숨이 끊어졌나 싶어 할머니 방을 기웃거리면서도 무서운 할머니에 대한 생각에 자꾸만 부엌에서 안절부절하는 소년의 심리가 정말이지 숨이 막힐 지경이다. 계속 이어지는 소년의 안절부절 심리묘사를 읽다가 "그렇게 무서우면 속 편하게 집을 확 가출해 버려!"라고 소년을 충동질하고 싶어지기까지 했다.

죠지가 할머니를 무서워하는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 소설의 전개과정에서 드러난다. 그 내용이 정말 환상적이고 으스스한데, 그런 집안에서 자라난 소년의 걱정스런 마음을 더욱 공감가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소설 마지막의 그 격렬한 절정 부분은 그야말로 숨막히는 스릴과 서스펜스의 연속이었다. 어린 소년과 연약한 할머니의 애증관계에서 이런 멋진 움직임이 나오다니. 절정 부분에서 거칠게 휘몰아치는 압력 높은 단단한 묘사가 일품이다.

이 단편은 미국에서 1980년대에 리메이크로 제작된 TV시리즈 <환상특급(The Twilight Zone)>의 한 에피소드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것을 우리나라에서도 방송했었기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 추억의 스토리로 남아있다.


21. The Ballad of the Flexible Bullet

젊은 작가의 집에서 조촐한 저녁 파티가 열린다. 그 자리에서 늙은 편집자가 파티에 모인 사람들에게 자신이 예전에 겪었던 격렬한 체험을 이야기해 준다. 그 편집자가 탱탱한 피부를 유지하던 시절, 엄청난 인기를 끌다 두문불출하는 어느 작가가 쓴 단편소설 "The Ballad of the Flexible Bullet"을 입수하게 된다. 그 시점부터 편집자는 두문분출 작가에게 영향을 받으며 둘다 서서히 광기의 세계로 접어들게 된다.

이 단편소설은 단편집 <Skeleton Crew> 중에 수록된 작품 중에서 가장 나의 마음을 흥분과 감동으로 몰아넣었던 소설이다. 이야기가 전개되며 차츰차츰 밝혀지는 두문불출 작가의 행동과 그에 따른 편집자의 심리 상태가 흥미진진하면서도 동화적이면서도 충격적이다. 난 정말이지 이런 식의 이야기를 꾸며낸 스티븐 킹의 사고방식이 부러울 따름이다.

미친다는 것이 딱딱한 총알이 순식간에 팍하고 뇌를 관통하는 식이 아니라, 탄력 넘치는 총알이 서서히 뇌를 압박해오는 느린 과정이라고 항변하는 이 소설의 내용은 스티븐 킹이 선사할 수 있는 최고의 환상을 선사해 준다. 한 작가의 소설로 인해 점점 미쳐가는 편집자의 인생이 기구하게 펼쳐지는데, 또 그에 맞장구를 쳐서 친절하게도 자꾸만 광기 어린 사건들을 만들어주는 킹이 참으로 장난꾸러기다.

특히 압권은 초췌해진 편집자가 텅 빈 아파트에서 자신의 타자기와 마주하게 되는 장면이다. 난 정말이지 그런 식의 장면이 나올 줄은 몰랐는데, 과감하게 그런 식의 전개를 펼친 킹의 대담함에 놀라고 말았다. 이 장면을 읽으면서 무척 맘에 들었다. 이 장면을 쓰면서 입가에 미소가 끊이질 않았을 것 같은 킹의 모습이 내 머릿 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이 소설의 매력이라면 상당히 유치한 설정들을 줄줄이 늘어놓으면서도 그 유치함을 묵직한 쾌감으로 승화시키는 이야기 전개의 용감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용감한 자가 미인을 차지한다는 말이 스토커들 사이에서 유행이라는데, 이 단편소설은 유치함을 과감히 까발리는 용기로써 나의 마음을 차지해 버렸다. 핑클의 음악을 접한 이래로 이런 황홀한 기분 처음이다.

편집자가 광기에 집착하게 되는 시초가 되는 두문불출 작가의 단편 "The Ballad of the Flexible Bullet"은 소설 속에서 제목만 언급되고 정작 어떤 내용인지는 밝혀주지 않는다. 그래, 아마도 이 단편소설 자체가 바로 "The Ballad of the Flexible Bullet"이겠지. 그렇다면 이 단편은 스티븐 킹이 독자들에게 보내는 광기의 초대장일 것이다. 이 단편을 읽고나서 미친 사람이 있다면 내게 연락주기 바란다. 킹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도록 국제 변호사를 알아봐 주겠다.


22. The Reach

스텔라 할머니는 한 번도 육지에 나가본 적 없는 섬 주민이다. 옛날에 한 번 섬과 육지 사이의 해협이 엄청난 추위 때문에 얼어서 할머니 남편이 그 빙판을 걸어서 육지에 나가본 적이 있었지만, 그 때도 할머니는 따라나서지 않았다. 누군가가 왜 한 번도 육지에 나가려 하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할머니는 그저 그럴 필요성을 못 느껴서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럴 필요성이 생기는 때는 언제란 말인가? 그러다 갑자기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추위가 찾아와 두 번째로 해협이 얼어 버리는 일이 발생하고, 할머니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해협으로 나서게 된다.

누구에게나 그리고 어떤 일이든 "때"라는 것이 있다. 또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이 있기도 하다. 어떴든지 간에 사람은 어느 순간이 되면 자신에게 버거운 결단을 내려야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그것을 피하려 요리조리 애쓰다 험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과감히 그것을 맞아들이는 담담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 소설은 때를 알고 그 때를 담담하게 맞아들여 반갑게 악수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단편소설은 1982년도에 월드 환타지 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을 보면 정말 상탈 만한 전형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와 아울러 단편집 <Skeleton Crew>의 맨마지막을 장식하는 작품다운 아련한 여운을 독자들의 가슴 속에 남겨 주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아아~ 드디어 킹의 단편집 <Skeleton Crew>에 수록된 모든 작품들에 대한 감상을 끝마쳤다. 너무 힘들었다. 단편들을 소개하며 자세한 줄거리 까발리기를 피하기 위해 (불법적인 거 빼고) 갖은 노력을 다했다. 힘든 노력의 연속이었지만, 너무도 재밌고 멋진 단편집이었기에 후회는 없다. 이젠 푹 자야겠다. 핑클의 감미로운 음악을 들으며.

캐슬록의 비밀 / Needful Things

작품 감상문 2007. 5. 12. 22:14 posted by 조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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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edful Things

(1991년 소설)

스티븐 킹의 초기 작품들을 보면 캐슬록이라고 하는 가상의 마을을 무대로 하고 있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지금 소개하는 소설 <Needful Things>도 그런 작품 중 하나이며, "마지막 캐슬록 스토리"라는 부제를 달고 출간된 소설답게 캐슬록을 직접적인 공간적 배경으로 하는 스티븐 킹의 장편소설 중 마지막 작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도서출판 대성을 통해 <캐슬록의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번역출간되었다.

일상이 무료한 작은 마을 캐슬록에 "Needful Things"라는 새로운 가게가 문을 연다. 이 가게는 골동품 가게인데, 손님이 원하는 모든 것을 갖춰놓고 있다고 큰소리 뻥뻥치는 자신만만한 가게다. 처음에는 어색해서 출입을 주저하던 캐슬록 마을 주민들은 가게 안에 들어갔다 가게 주인의 매력에 푹 빠져 허우적대기 시작한다. "Needful Things"의 주인은 르랜드 건트라는 노신사다. 황홀한 눈빛, 단정한 옷매무새, 매혹적인 말솜씨. 그와 마주친 사람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그의 팬이 되어 버린다. 그 결과 "Needful Things"는 캐슬록 주민의 사랑을 독차지하게 된다.

그런데 이 르랜드 건트는 가게를 찾아온 주민들을 한 사람씩 일대일로 만나 개인별 맞춤상담하는 것을 은근슬쩍 동네 고양이도 모를 정도로 은밀하게 추진한다. "Needful Things"의 고요한 실내 속에서 건트는 일대일로 마주한 손님을 엄청나게 화려한 매력으로 압도한다. 그 매력에 정신 못차리고 횡설수설하는 손님에게 건트는 슬쩍 물건을 내민다(이것은 어설픈 다단계 판매원의 물건 떠넘기기 수법과는 격이 다른 아방가르드하고 판~타스틱한 판매 마케팅 기법이다). 그 물건을 본 손님은 화들짝 놀라서 콩딱콩딱 뛰는 심장을 꾸짖지도 못하고 방치할 수 밖에 없다. 왜? 손님이 마음 속으로 가지고 싶다고 열망하던 귀한 물건이 바로 눈 앞에 있으니까. "Needful Things"의 주인 르랜드 건트는 손님이 말하지 않아도 그 사람이 원하는 물건을 알아서 대령하는 놀라운 장사꾼이니까. 손님은 자기가 원하던 물건이 눈 앞에 있지만, 비쌀까봐 아무 말도 못하고 망설인다. 하지만 뛰어난 장사꾼 건트는 돈과는 상관없이 이 세상 모든 물건은 거래가 가능하다는 신념을 가진 혁신적인 사고의 소유자다. 돈 걱정은 하지 말라고 손님을 안심시킨 건트는 우아하게 묻는다.

"저와 거래를 하시겠습니까?"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갖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힌 손님은 물건을 받아들고 기꺼이 거래에 응한다. 물건을 소유하는 대가로 손님은 건트가 제시하는 사소한 소원을 들어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까. 그렇게해서 수많은 캐슬록 주민들이 "Needful Things"를 들락날락거리면서 자신들이 그토록 원하는 귀한 물건들을 가질 수 있었고, 건트가 제시하는 사소한 소원들을 야무지게 들어주었다.

하지만 캐슬록에 "Needful Things"가 생긴 이후로 마을은 점점 썩어가고 있었으나, 마을 주민들은 눈치 채지 못했다. 건트가 구해다 준 주옥같은 귀중한 물건들에 넋을 잃고 있었으니까.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우리나라 옛말이 바야흐로 스티븐 킹의 소설 속에서 완벽히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소설 <캐슬록의 비밀>에서는 첫부분에 캐슬록 마을 주민들 사이의 세력관계를 소상히 알려주고 시작한다. 사람 사는 곳이 어디나 그렇듯 캐슬록도 주민들간에 안 좋은 감정들이 쌓여 있다. 그런 것들이 주먹질과 같은 직접적인 폭력으로 발전하지 않고 수 년간 쌓여왔는데, 캐슬록에 가게를 개업한 르랜드 건트는 인간을 능가하는 막강한 능력을 이용해 주민들 사이에 가로놓인 보이지 않는 감정의 지뢰밭을 들쑤셔 놓는 것이다.

이건 마치 도미노를 세워놓는 것과 같다. 도미노 막대기들을 바닥에 세워놓는 것은 상당히 지루하고 귀찮은 일이다. 각각의 도미노들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도록 수많은 도미노들을 일일이 손으로 세워놓는 고단하고 반복적인 작업. 하지만 그 수많은 도미노들을 다 세워놓고 보면 뿌듯한 것이다. 게다가 드디어 첫 도미노를 쓰러뜨리자마자 그 뒤를 이어 연쇄적으로 도미노들이 쓰러지는 모습을 바라볼 때의 쾌감은 나이아가라 폭포 밑에서 세차게 쏟아지는 물줄기를 온몸으로 맞으며 "나는 자연인이다아아아아~~~"를 외치는 기분과 맞먹고 자시고 할 정도로 대단한 것이다. 힘들게 도미노 세워놓고 허무하게 죄다 쓰러뜨리다니 이게 뭔 쓸데없는 짓이냐고? 모르시는 말씀. 더욱더 힘들게 세워진 것일 수록 그 모든 도미노들을 엎을 때의 쾌감도 더욱 배가된다. 그 힘든 노력의 결과물을 단 한 방에 쾅! 이것을 두고 업계에서는 파괴의 미학이라고도 부른다지. 더욱이 르랜드 건트처럼 캐슬록같은 거대한 마을을 놀이판 삼아 벌이는 공포의 도미노 놀이라면 그 쾌감은 나같이 순박하고 착한 청년의 상식으로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짜릿짜릿할 것이 분명하다.

<캐슬록의 비밀>은 이렇게 건트가 상거래를 위장해 벌이는 음흉한 사기극을 독자들이 소설 내내 지켜보도록 하고 있다. 캐슬록 주민들이 불쌍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마음 속에 도사린 추한 욕망들이 농락당하는 것을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들이 자신도 모르게 인간 도미노가 되어 조용하던 캐슬록을 어수선한 아수라장으로 만들어놓고야 마는 모습은 한 편의 코미디로까지 보인다.

그런데 이런 모든 과정과 결과들을 지켜보며 안 좋은 기분을 느끼는 독자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특히나 인간행동과학에 평소 조예가 깊은 사람이라면 더욱. "인간이 행동을 결정하는 방식에는 수많은 변수가 존재한다. 그런 수많은 변수들에 대한 제대로 된 고찰도 없이 <캐슬록의 비밀>에서는 캐슬록 주민들이 완벽하게 건트의 의도대로 움직인다. 이건 그저 작가 스티븐 킹이 주도하는 작위적인 전개방식일 뿐이다. 현실에서는 절대 이런 행동패턴이 나올 수가 없지롱. 이건 인간의 이성과 감성을 기계적으로 짜맞춘 것에 불과하단 말이야!"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캐슬록의 비밀>에서는 르랜드 건트같은 초인적인 존재가 있지 않은가? 그가 얼마나 대단하고 끈질긴 존재인지는 소설 속에서 줄기차게 묘사되고 있다. 그는 사람들이 꿈에도 염원하던 물건을 구해다주는 대가로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기를 강요한다. 잘 안 들어준다 싶으면 끈질기게 사람을 졸라댄다. 심지어는 사람의 꿈 속에서도 나타나 강요하고, 깨어있는 사람의 머릿 속에도 들어가서 커다란 목소리로 물건을 사 간 대가를 치르라고 강요하고야 마는 것이다. "내 물건 떼먹고 니가 잘 먹고 잘 살 줄 알았냐?" 이렇게 초현실적인 존재가 소설 속에 등장하니 초현실적인 결과가 소설 속에 나타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뭐 소설이 다 그렇고 그런 거지. 어허, 장사 하루 이틀 하나?

게다가 나는 스티븐 킹의 팬이 아니던가? 킹이 정성껏 진수성찬을 차려놓았는데, 뒤돌아서서 궁시렁대고만 있을 사람이 아니다. 나는 스티븐 킹이 차려낸 <캐슬록의 비밀>을 너무도 맛있게 먹었다. 부스러기 하나 남김없이 깨끗하게 먹어치웠다. 또 먹고 싶다. 스티븐 킹 선생, <캐슬록의 비밀> 속편을 만들어 주시오~~.

내가 <캐슬록의 비밀>을 읽고 느낀 것은 착각의 위대함이다. 사람은 누구나 착각을 하며 산다. 어떤 생각 많은 사람은 인간을 착각의 동물이라고까지 말해서 교과서에 실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런 착각이 지나치면 믿음이 된다. 그리고 그 믿음이 지나치면 "힘"을 발휘한다.

착각믿음

이러한 3단계 연결방식을 사업으로 연결시킨 이가 바로 르랜드 건트인 것이다. 착각에 빠지기 쉬운 인간의 감정에 미끼를 던져주어 믿음으로 발전시키고 그러한 잘못된 믿음들을 응집시켜 결국엔 엄청난 힘을 발휘하게 만든 것이다. 착각의 늪에 빠진 캐슬록 주민들은 자신들이 헛것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자기가 원하는 것만 보고 자기가 원하는 것만 듣고 자기가 원하는 것만 느꼈다. 이렇듯 착각은 사소한 것이지만, 그 이면에는 강력한 잠재력이 숨어있었다. 이러한 착각의 위대함은 소설 마지막의 클라이막스에서 상황을 역전시키는 아이러니한 계기로까지 발전되어 이 소설을 감칠맛나게 하고 있다. 아아, 그 역전하는 순간의 뭉클하는 기분은 정말 멋졌다. 역시 착각은 위대해!

아무튼 착각은 자유지만, 그것이 잘못된 믿음으로까지 발전해서 잘못된 힘을 행사하는 단계로까지 발전하지 않도록 나부터도 조심해야 겠다.

나는 언젠가는 어쩌면 이효리 누나랑 결혼할 수도 있을 것 같다라는 착각 → 매일 3번씩 효리 누나 브로마이드 사진을 바라보며 내가 진정으로 효리 누나를 사랑하면 그 누나도 나를 사랑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믿음 → 착각이 결국 을 발휘해 나는 본격적으로 효리 누나를 스토킹하기 시작 → 마침내 연예정보 프로그램 생방송 섹션TV에 내가 나옴("이효리 씨 집에 침입해 냉장고를 뒤져 이효리 씨가 평소 즐겨먹던 명란젓을 훔쳐가려던 스토커가 경찰에 체포됐습니다.")

스티븐 킹의 소설 <캐슬록의 비밀>을 통해 느낀 대로 나는 결국 이효리 누나를 포기해야 하나? 왠지 아쉬운데...

물고 물리는 인간관계를 이용해 한 편의 신나는 마당극을 펼친 <캐슬록의 비밀>을 무료한 일상에 지친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무료한 인생 속에 도사린 착각의 위대함이 절절하게  감동으로 다가올 것이다.

앞서 도서출판 대성을 통해 국내에 번역판이 나왔다고 했는데, 나는 영문판으로만 읽어서 번역판의 상태가 어떤지 잘은 모른다. 그런데 예전에 서점에 갔다가 번역판을 훑어본 적이 있었는데, 우연히 번역자 후기를 읽어보았다. 놀랍게도 거기에는 원문에서 4페이지 가량을 삭제했다는 고백이 실려 있었다. 너무 오래 전에 읽은 글이라서 삭제 이유가 분명하게 나와 있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삭제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국내 번역판을 읽게 될 독자들은 이 점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물론 번역판이 한 종류 뿐이니 선택의 여지가 없지만...

소설 <캐슬록의 비밀>은 영화로 만들어져 국내에 <욕망을 파는 집>이라는 제목으로 비디오 출시 되었다. 명배우 막스 폰 시도우가 르랜드 건트 역을 맡아서 놀라운 연기력을 보여 주었다고 하니, 궁금하신 분들은 동네 비디오가게로 달려가서 뒤져보면 된다. 혹시라도 동네 비디오가게 사장님이 <욕망을 파는 집> 비디오 테이프를 건네주며, "나와 거래를 할래? 이 세상 모든 물건은 거래가 가능하니까. 테이프를 넘기는 대가로 내 요구를 들어주렴."과 같은 쓸데없는 소리를 말하거들랑, 그저 아무일 아니라는 듯이 전국비디오대여점연합회에서 책정한 공식대여료만 지불하고 테이프를 들고 나오도록 하자. 아, 그리고 반드시 테이프 반납기일을 엄수하도록. 안 그러면 너무도 무서운 사업가의 독촉에 시달릴 것이다. 조심해야 한다. 괜히 캐슬록 주민들이 미쳐버린 것이 아니다. 

p.s. 소설 "Needful Things"는 "캐슬록의 비밀"이란 제목으로 번역서가 나왔다가 절판되었는데, 2020년 엘릭시르 출판사에서 "욕망을 파는 집"이라는 제목으로 번역서를 출간했다.

스탠드 / The Stand

작품 감상문 2007. 5. 12. 02:10 posted by 조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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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and

(1978년, 1990년 소설)

소설 <샤이닝(The Shining)>을 완성하기 5년쯤 전에, 나는 한 달 동안 <The House on Value Street>라는 새 소설을 쓰는 일에 착수했다. 그것은 부유한 집안의 딸 패티 허스트가 SLA(캘리포니아를 거점으로 활동한 좌파 폭력조직)에 납치된 뒤 세뇌당해(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사회정치적인 현실에 눈을 뜨게 된 것이라고 평가할 지도 모르겠지만) 은행털이에 가담하게 되고 로스 앤젤레스에 있는 SLA 은신처에서 벌어진 경찰과의 총격전에서 달아나 -당연히 내가 쓰는 소설에서 그 은신처는 밸류 스트리트에 있었다- 전국을 떠돌며 도망자 생활을 하다 결국 체포되어 온 미국을 발칵 뒤엎은 실제사건을 소설로 쓰는 것이었다. 나에게는 매우 구미가 당기는 주제였는데, 수많은 논픽션 책들이 그 사건을 다루었지만, 나로서는 그 사건에 얽힌 모든 부조리한 상황들을 성공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것은 오직 단 하나의 소설-바로 내가 쓰는 소설-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소설가라는 사람은 결국 신이 내려보낸 거짓말장이기 때문에, 머리와 용기를 꽂꽂이 세우고 자신의 일에 충실하기만 하면, 거짓말 속에서도 살아숨쉬는 진실을 찾아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소설을 쓰지 못했다. 나는 구할 수 있는 모든 조사자료를 다 긁어모은 다음(그 당시는 아직도 패티가 잡히지 않고 도주 중이어서 나는 더욱 흥미를 느꼈고, 내 나름대로 결말을 생각해 두고 있었다), 소설을 향해 공격을 시작했다. 나는 소설 한쪽 귀퉁이를 공격해 봤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른 쪽을 공격해서 잠시나마 가능성을 맛보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내가 만든 모든 등장인물들이 호레이스 맥코이의 소설 <They Shoot Horses, Don't They?>에 등장하는 댄스 마라톤에 빠져 허우적대는 듯한 참담함만을 맛볼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사건의 중간부분에서부터 소설을 시작해 보려고도 했다. 심하게 글이 막힐 때마다 때때로 나를 구해줬던 방식대로 사건이 연극무대 위에서 벌어진다고 상상해 보기도 했다. 그 어떤 방식도 효험이 없었다.

멋진 소설 <The Hair of Harold Roux>에서 작가 토머스 윌리엄스는 긴 소설을 쓴다는 것이 넓디넓은 시커먼 들판에 등장인물들을 한데 모아놓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등장인물들은 작가가 만들어낸 작은 모닥불 주위에 빙 둘러서서 불길에다 손을 녹이며, 열기만큼이나 더욱 환히 빛나도록 모닥불이 더 크게 타오르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때때로 불이 꺼지면, 모든 빛이 다 사라져버리고, 등장인물들은 어둠 속에 묻혀 버린다. 이것은 소설 집필과정에 대한 사랑스러운 은유법이지만, 아무래도 내 방식은 아니다... 아마도 너무 부드러운 은유법이라서 내 방식과는 맞지 않는 것 같다. 나는 항상 장편소설을 커다란 검은 성채라고 생각해 왔다. 무력이나 책략에 의해 경비탑이 무력화된 성채다. 이 성으로 통하는 모든 입구가 훤히 열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격렬한 포위공격 같은 것은 필요치 않아 보인다. 성 외벽에 끌어올려져 있던 다리가 땅에 내려와 있다. 모든 문들이 열려 있다. 성벽 위에 붙어있는 감시탑에 활쏘는 병사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문제는 성 안으로 무사히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오직 단 하나뿐이라는 것이다. 섣부르게 나머지 다른 길들로 들어섰다가는 어딘가에 은밀히 매복하고 있던 적들로부터 기습을 당해 전멸하고 말 것이다.

내가 쓰고자 했던 패티 허스트 소설의 경우에, 나는 무사히 들어갈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을 전혀 찾아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6주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무언가가 내 마음 속을 아주 조용히 성가시게 만들었다. 그것은 전에 읽었던 신문기사의 내용이었다. 유타 주에서 생화학무기 유출사고가 일어났다는 신문기사. 저장실로부터 온갖 나쁘고 역겨운 병원균들이 뛰쳐나와 양들을 떼죽음 시켰다. 그리고 그 뉴스기사에서는 만약 바람이 반대방향으로 불었더라면 솔트레이크 시티에 사는 순진무구한 시민들에게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었다. 그 신문기사를 생각하고 있자니 죠지 R. 스튜어트가 쓴 소설 <Earth Abide>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스튜어트의 소설에서는 전염병이 돌아 인류 대부분을 몰살시키는데, 때마침 뱀에 물려 면역이 생기게 된 주인공이 살아남아 인류가 사라진 이후 일어나는 자연 생태계의 변화를 목격한다. 이 스튜어트의 길고긴 소설의 전반부는 황홀하다. 후반부는 결말을 향해 더욱 힘차게 치고 올라간다. 스토리의 비중이 덜한 대신 생태학적인 면이 더욱 부각된다.

그 당시 우리 가족은 콜로라도 주 보울더에 살았는데, 아바다 시에서 나온 교회 전도 차량이 정기적으로 돌아다니며 확성기로 방송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어느 날 나는 전도하는 사람이 원고 읽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모든 세대에서 꼭 한 번씩은 전염병이 사람들 속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나는 그 소리가 맘에 들었다 -성경 구절처럼 들렸는데 사실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그 문장을 적은 다음에 타자기 위에다 붙여 놓았다. 모든 세대에서 꼭 한 번씩은 전염병이 사람들 속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이 문장과 유타 주 생화학무기 유출 신문기사와 스튜어트가 쓴 멋진 소설에 대한 나의 기억이 패티 허스트와 SLA에 대한 생각과 이리저리 얽히고 설켰다. 그리고 어느 날 타자기 앞에 앉아서 벽을 타고 들려오는 소름끼치는 설교방송과 보기만 해도 사람 불안하게 만드는 타자기에 끼워놓은 텅 빈 원고종이 사이에서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고 있었을 때, 나는 글을 썼다. 무언가를 꼭 써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세상이 끝장나 버렸지만, SLA의 모든 조직원들은 면역이 생겨서 살아 남았다. 뱀에게 물렸던 것이다. 나는 내가 써놓은 글을 잠시 바라보다, 또다시 타자기를 두드렸다. 더 이상 석유 부족은 없다. 유쾌한 기분이 드는 글이었지만, 한 편으로는 무서운 기분이 드는 글이었다. 세상에 더 이상 사람들이 없으니, 더 이상 석유 송유관도 필요가 없다. 나는 더 이상 석유 부족은 없다 문장 밑으로 빠르게 글을 이어갔다. 더 이상 국가간 냉전은 없다. 더 이상 환경오염은 없다. 더 이상 악어 핸드백은 없다. 더 이상 범죄는 없다. 휴식의 계절. 나는 마지막 문장이 맘에 들었다. 내가 꼭 써버리고 싶어하던 그 무언가를 찾은 기분이었다. 나는 그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작은 카세트 플레이어에서 흘러나오는 이글스 노래를 들으며 한 15분 정도를 가만히 앉아있다가 글을 썼다. 도널드 디프리즈는 다크맨(dark man)이다. 디프리즈(SLA의 리더)가 흑인이었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뜻은 아니었다. 패티 허스트가 가담했던 은행강도 사건을 보도한 기사에 실린 사진을 보면 디프리즈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이 내 마음 속에 갑자기 떠올랐기 때문이다. 사진 속에서 그는 무식하게 커다란 모자를 쓰고 있어서, 얼굴은 그저 어림짐작으로만 살펴 볼 수 있을 뿐이다. 나는 얼굴 없는 다크맨이라는 문구를 쓰고는 위를 올려다 보았다. 또다시 타자기 위에 붙여놓은 오싹한 짧은 문장이 눈에 띄었다. 모든 세대에서 꼭 한 번씩은 전염병이 사람들 속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그것이 바로 시작이었다. 그 뒤로 나는 2년 동안을 꼬박 언제까지고 끝이 없을 것 같은 <The Stand>라는 제목의 소설을 쓰는 데 매달렸다. 이 소설을 쓰는 동안 나는 친구들에게 요즘 나만의 작은 베트남 전쟁을 치르고 있노라 하소연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죽도록 고생해서 수백페이지를 쓰고 나서야 겨우 터널 끝이 보일락 말락 할 거라고 죽는 소리를 해댔던 것이다. 완성된 원고는 1200페이지가 넘었고, 내가 좋아하는 볼링공 무게와 같은 5킬로그램 무게를 자랑했다. 어느 6월의 따뜻한 밤, 나는 그 원고를 유엔 플라자 호텔에서 13블럭 떨어져 있는 내 담당 편집자가 사는 아파트에 가지고 갔다. 아내는 그녀 본인만이 알고 있을 독특한 이유로 인해 그 거대한 원고 전체를 비닐랩으로 싸주었다. 그것을 받아든 나는 세네번 정도 원고뭉치를 이쪽 팔에서 저쪽 팔로 번갈아가며 들고가다가,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나는 지금 3번가 거리를 걷다 죽을 것이다. 출동한 응급구조대가 하수구 속에서 큰 대자로 뻗어 심장마비로 죽어있는 나를 발견할 것이다. 응급구조대가 발견한 내 괴물원고는 비닐랩 속에 들어있는 채로 쭉 뻗은 내 손 옆에 의기양양하게 드러누워 있을 것이다. 괴물원고가 결국 나를 누르고 승리자가 되었다.

내가 정말로 <The Stand>를 증오한 적은 여러 차례 있었지만, 그 소설을 억지로 쓰고 있다는 느낌을 가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소설 속에서 보울더에 모여든 사람들이 심각한 불행을 겪고 있었을 때 조차도, 나는 소설을 통해 터무니없이 유쾌상쾌통쾌한 기분을 만끽하고 있었다. 나는 매일 아침 타자기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올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랜들 플랙이 까마귀로도 변하고 늑대로도 변하는 세상, 석유 욕심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영혼을 두고 커다란 전투가 벌어지는 그  세상 속으로 빠져들고 싶어 한 시도 기다릴 수가 없었다. 전세계가 무덤으로 변했는데, 그 위에서 나 혼자 흥겹고 즐겁게 탭댄스를 추는 것 같은 기분에 도취되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 소설을 쓰는 동안은 전세계, 특히 미국에게도 고통스런 시기였다. 역사적인 제 1차 석유파동이 일어났고, 닉슨 행정부가 불행한 결말을 맞이해서 역사적인 최초의 대통령 사임이 있었고, 동남아시아에서 벌어진 전쟁에서 처참하게 패배했고, 낙태의 자유 논쟁에서 시작해 무서운 속도로 치솟는 인플레이션 사태까지 국내문제로 어수선한 시국이었다.

나는 어땠냐고? 나는 직업적인 괴로움에 지긋지긋하게 시달리고 있었다. 그 4년 전에 나는 시급 1달러 60센트를 받으며 대형 세탁공장에서 시트천을 다림질하고 있었고, 누추한 트레일러 하우스 보일러실 안에서 소설 <캐리(Carrie)>를 쓰고 있었다. 그 때 1살 정도였던 내 딸은 맨날 여기저기서 얻어 온 옷만 입히고 있었다. 그 1년 전에 나는 아내 태비사와 결혼하느라 양복을 빌려입을 수 밖에 없었는데, 그마저도 나한테는 몸에 맞지 않게 너무 큰 양복이었다. 근처에 있는 햄든 고등학교에 교사 자리를 얻게 돼서 나는 세탁공장에 이별을 고했지만, 아내 태비사와 나는 교사 연봉이 6400달러여서 내 세탁공장 봉급보다 별로 많지도 않다는 것을 알고는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래서 다음 해 여름방학 때는 다시 세탁공장 일에 손댈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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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글은 스티븐 킹이 쓴 공포비평서 <죽음의 춤(Danse Macabre)>에 나오는 내용이다.

윗글에서 언급된 스티븐 킹의 소설 <The Stand>는 우리나라에 번역출간 되었다. 정음문화사에서 <미래의 묵시록>이라는 제목으로 펴냈었고(삭제판), 황금가지 출판사에서는 <스탠드>라는 제목으로 펴냈다(완전무삭제판).

미군 비밀연구소에서 애지중지하던 치명적인 세균무기가 그만 세상 밖으로 유출되는 사건이 일어나 버린다. 세상 사람들은 전염성 강한 세균무기에 감염되어 다 죽어버린다. 그러나 예외없는 법칙은 없다는 말대로 인류가 다 죽은 마당에 행운인지 불행인지 살아남은 소수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자꾸만 두 가지 꿈을 번갈아 꾸게 된다.

하나는 쭈글쭈글 할머니가 기타를 튕기며 노래를 하며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꿈. "♬~날 보러 와요, 날 보러 와요. 괴로울 땐 나를 보러 오세요, 슬퍼질 땐 나를 보러 오세요. 우리 모두 모여 다같이 착하게 살아 BOA요."

또 하나는 시커먼 남자가 으스스한 목소리로 사람들을 협박하는 꿈. "♬~학교 가기 싫은 사람, 회사 가기 싫은 사람 모여라. 하여튼 거칠게 막가는대로 놀고 싶은 사람 여기 모여라. 안 모이면 나한테 혼날 줄 알아. 뭐? 싫어? 싫으면 시집 가!"

텅 빈 세상에 홀로 남겨진 전국 각지의 생존자들은 두 가지 꿈에서 갈등하다 적성과 취향을 고려해 한 쪽을 선택하게 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할머니가 있는 콜로라도 주 보울더에, 또 어떤 사람들은 시커먼 남자가 있는 라스베가스에 모여든다. 하지만 모름지기 사람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줄을 잘서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말이 있다. 할머니가 있는 보울더 쪽 사람들은 착하게 살고 싶었지만, 시커먼 남자 랜들 플랙이 "관리"하는 라스베거스 쪽은 사정이 달랐다. 랜들 플랙은 오직 인간의 고통을 위해 태어난 인간이 아닌 존재였으며, 그는 보울더 쪽 사람들을 확 쓸어버리기 위해 전쟁을 준비한다. 일이 이쯤되자 착하게 살고 싶은 보울더 쪽 사람들도 어쩔 수 없이 그에 맞설 준비를 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들은 거대한 랜들 플랙의 힘에 압도되어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데다 업친데 앗싸 덮친 격으로 내분이 일어나기까지 한다. 그리고 계속 두 집단이 맞부딪칠 결전의 시간은 다가오는데.... 과연 보울더에 붙은 사람과 라스베거스에 붙은 사람 중 누가 더 줄을 잘 선 것인가? 최후에 웃는 자는 과연 누가 될 것인가? 과연 그 최후에 웃는 웃음이란 것이 진정으로 기쁨의 웃음이 될 것인가? 끝은 그저 끝일 뿐인가? I don't know.

내가 처음 <스탠드>를 손에 쥐었을 때 처음 생각난 것은 킹의 또다른 소설 <IT>이었다. <IT>만큼이나 두껍고 무거웠기 때문이다. 내가 읽은 <스탠드> 영문 페이퍼백은 1141페이지짜리였다. 그 묵직한 무게감에 나는 설레이기 시작했다. 과연 이 거대한 책은 <IT>만큼이나 나에게 재미와 흥분과 쾌감과 황홀과 아름다움을 선사해 줄 것인가? <스탠드>를 다 읽고 나서 나는 이 거대한 책이 그 부피만큼이나 나에게 거대한 재미와 거대한 흥분과 거대한 쾌감과 거대한 황홀과 거대한 아름다움을 선사해 주었다는 것을 눈물을 흘리며 콧물을 쏟으며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과거는 마법의 시대였다. 과학지식이 없었기에 마법 내지는 마법에서 생겨난 속설들을 무조건 막연히 믿고 의지하는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였다. 그러나 현대로 접어들면서 과학의 시대가 찾아왔다. 마법으로 알고 있던 것들이 사실은 대부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간단한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마법은 과학에게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과학은 마법의 영역을 차지해 버렸다. 그런데 이렇게 마법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면 재미없다. <스탠드>를 집필하면서 스티븐 킹은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세상에 전염병이 퍼져 나간 후 마법이 생겨 났도다." 인간의 과학이 만들어낸 세균무기로 인해 인류가 파멸하면서 과학의 시대는 엉망진창이 되었다. 그 틈을 비집고 마법같은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과학의 시대를 살던 사람들은 마법의 시대가 컴백한 것에 적응이 안돼 고통스러워하며 혼란을 겪는다. 그 혼란의 한가운데에 마법이 인간에게 주는 공포와 두려움과 불안감을 그대로 간직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존재 다크맨 랜들 플랙이 있다.

<스탠드>의 전반부는 세균무기로 인해 치명적인 전염병이 급속도로 퍼지면서 인류를 파멸시키는 모습들을 죽 늘어놓는다. 사람들은 자신이 감염된 줄도 모른 채 막 돌아다니며 만나는 사람들은 물론 그냥 스쳐지나가는 사람들까지도 마구 전염시켜 놓는다. 이 부분을 묘사하는 킹의 글은 흥겨운 리듬이 넘쳐난다. 이쪽 감염, 저쪽 감염, 여기 감염, 저기 감염, 앞집 감염, 뒷집 감염, 옆집 감염, 너도 감염, 나도 감염, 우리 모두 감염. 어디를 가든 거리를 봐도 건물 안을 봐도 온통 전염병에 걸려 죽은 시체들이 즐비하다. 사실 인류의 파멸을 뜻하는 심각한 장면이지만, 그 과정을 묘사하는 글은 경쾌하고 속도감 있게 그려져서 스티븐 킹이 이 장면을 쓰며 즐거워 했을 모습이 눈에 선하다. 물론 나도 즐거웠다. 마치 흐느적대며 흥청거리는 변태파티를 벽에 난 작은 구멍을 통해 몰래 지켜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 짧은 흥청거림이 끝나고 정신을 차리고 보면, 인류는 파멸해 있다. 그리고 살아남은 소수의 사람들이 펼쳐내는 지옥같은 행동들이 소설 속을 가득 메운다. 킹은 그 추악한 모습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정밀하게 독자 앞에 펼쳐 놓는다. 조직화된 사회가 무너지고 난 뒤 살아남은 사람들끼리 시키지도 않았는데 약육강식의 법칙을 충실히 따르며 폭력과 살인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죽이는 모습들은 초반에 잠시 이성을 잃고 흥겨웠던 기분을 뜨끔하게 만든다. 결국 내가 읽고 있는 소설이 스티븐 킹의 무서운 소설이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불어닥친 단편적인 사례들을 거침없이 죽죽 늘어놓으며 암울하고 불안한 상황을 효과적으로 차곡차곡 반듯하게 쌓아놓는 킹의 솜씨가 참 맛깔스럽다.

그러면서 차츰 이 소설을 끌고갈 주요 캐릭터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들도 다른 생존자들과 마찬가지로 망해버린 세상 속에서 갈팡질팡한다. 이전에 있었던 조직화되고 꽉 짜여진 사회가 그대로 존재했다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텐데도, 한결같이 모두들 극단적으로 비참하게 변해버린 상황 속에서 아주 사소한 일로도 괴롭게 몸부림친다. 스티븐 킹은 그들 앞에 괴로운 일들만 잔뜩 선물한다. 이 모두가 의지하던 사회가 사라져버린 탓이다. 그렇게 비참하게 외롭던 그들은 꿈을 통해 신기한 능력을 지닌 할머니와 다크맨 랜들 플랙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비로소 의지할 대상을 알게 되고 기꺼이 한 쪽을 찾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나서 <스탠드>는 할머니와 랜들 플랙을 구심점으로 모여든 사람들이 사회를 조직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주로 할머니를 찾아 모인 보울더 쪽 모습을 보여준다. 그냥 막연히 사람들이 모여서 할머니한테 의지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전염병으로 죽은 시체들을 치우고, 전기를 복구하고, 대표자를 뽑아 사회를 만들어나간다. 그런데 좋은 쪽으로만 나가던 일이 삐그덕거린다. 누군가 술, 돈, 여자를 범죄의 3요소라고 말했었다(아마도 영등포 경찰서 강력계 수사 "부"반장이 했던 말이 아닐까?). 3요소 중 여자문제로 불행의 씨앗이 자라나기 시작한다. 이 모든 것이 랜들 플랙의 강력한 어둠의 힘이 만들어낸 유혹이 빚어낸 결과다. 게다가 랜들 플랙은 할머니를 보고 보울더에 모여든 사람들을 상대로 전쟁준비를 착실히 진행시키고 있었다. 소설 속에서는 이런 위험요소들이 거침없이 쑥쑥 자라나서 독자를 꽉 죄어 버리고 과연 보울더 사람들이 어떻게 이 거대한 악의 화신 랜들 플랙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인지 궁금해서 미칠 지경으로까지 만들어 버린다.

스티븐 킹은 <스탠드>를 쓰면서 톨킨이 쓴 <반지의 제왕>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스탠드>를 평가한 리뷰들 중에서 소설 속에 나오는 주요 캐릭터 스튜 레드먼을 <반지의 제왕>에서 동료 호빗들을 데리고 모험을 떠나는 프로도에 비유한 리뷰가 가장 맘에 들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스탠드>는 <반지의 제왕>이 아니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중간계라는 배경이 <스탠드>에 나오는 전염병으로 파멸한 현대문명과 같을 수가 없는 것이다. <스탠드>에서 <반지의 제왕>같은 대규모 스펙타클 개떼 전투장면을 기대했다가는 매운 슬픔을 맛보게 될 것이다. <스탠드>는 조용한 소설이다. 그대신 <스탠드>는 스티븐 킹의 장기인 치밀하고 자세한 등장인물들간의 심리묘사를 중점적으로 파고 든다. 이런 부분들이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등장인물의 개인적인 느낌과 사연들을 스토리와는 큰 관련이 없는데도 길게 늘어놓는 것이 너무한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로 인해 독자들은 등장인물들을 속속들이 친밀하게 느끼게 된다. 이 소설에는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나온다. 그냥 나왔다 사라지는 엑스트라가 아니라 다들 소설 속에서 나름대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을 별다른 설명 없이 스토리 전개에 필요한 말만 하게 하고 침묵을 지키도록 만들었다면, 독자들은 이 많은 등장인물들이 그저 소모품으로만 느껴지고 이들에게서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스티븐 킹은 그들 모두에게 마음껏 자기들의 느낌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해 주었다. 때로는 그들의 자유 때문에 읽는 독자들이 지칠 수도 있겠지만, 캐릭터들의 자유를 통해 독자들은 그들이 마치 친구라도 되는 것 같은 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길고 긴 소설을 다 읽고 나면 그동안 정 들었던 것 때문에 아쉽고 슬프고 안타까운 감정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공포소설가 클라이브 바커가 자신의 작품관을 밝혔던 말이 <스탠드>에서도 맞아떨어질 것 같다.

[남녀 주인공이 해질녘 손에 손을 잡고 걸어서는 안 된다. 희생이 있어야만 한다. 아마도 많은 상실-사랑의 상실, 수족의 상실-이 있을 것이다. 아무도 생존자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생존자들이 처음 시작할 때와 똑같은 상태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사건에서 사람들의 모습이 변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주 기초적인 방식으로 변형이 일어날 수 있다. 살아서 시작했다가 죽어서 끝나는 것이다. 수족을 잃기도 하고, 제정신을 읽기도 한다.]

<스탠드>에서 결말을 풀어나가는 방식은 읽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느낌이 다를 수도 있다. 추리소설처럼 주인공이 일정한 논리를 가지고 확신에 차서 이차저차해서 여차저차하게 범인을 체포하는 식으로 결말의 스토리 전개가 아귀가 딱딱 들어맞는 과정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스탠드> 결말에서 등장인물들은 자신들의 행동에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 자기가 하는 일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 알지도 못하고 알 수 있는 방법도 없다. 그들은 그저 느낌이 인도하는 대로 몸과 마음을 이끌어 나간다. 그렇게해서 나오는 결말은 그들이 의도해서 나온 결말도 아니고 그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결말도 아니고 그들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결말도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장님이 코끼리 다리 만지는 격이고, 소가 뒷걸음치다 미키 마우스 발 걸어 넘어뜨리는 격이고, 안개 속에서 시력검사하는 격이다. 마지막까지도 주인공들 앞에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어서 그들은 괴로워한다. 길고 긴 소설을 그들과 함께 하느라 이제는 정이 푹 들어버린 나도 그들과 함께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막연한 상황 속에서 괴로워하며 슬퍼했다. 이런 전개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좋았다. 이 소설의 미덕이라면 이렇게 긴 소설 속에서 주인공들과 하나가 되어 알 수 없는 고통스런 미래를 함께 여행한다는 것이다. 그 여행이 마지막까지 불안한 사건의 연속이라해도 좋다. 소설을 읽는 동안 산전수전을 다같이 겪은 정든 동료들을 어찌 독자가 외면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소설은 멋지다. 인간의 위험한 과학적 산물이 빚어낸 파멸에, 그 인간적인 파멸을 더욱 부추기는 악의 화신에, 그 악의 화신을 두려워하면서도 맞서는 인간들의 활약에, 그 인간들의 활약에 자신도 모르게 동화되어 함께 웃고 함께 우는 나의 모습이 더해진 완벽한 환상의 소설이다. 읽고 난 뒤 내가 느꼈던 벅찬 감정을 아무도 몰라준다해도 소설책만은 알고 있으리라. 약자에게도 강점은 있으며, 강자에게도 약점은 있다는 범우주적인 진실을 흥미진진한 방식으로 만끽하고 싶다면,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불가사의한 힘에 의해 미친 듯이 어지럽게 돌아가고 있다는 널뛰기 세계관을 흥미진진한 방식으로 공유하고 싶다면, 스티븐 킹의 섬세한 손길이 빚어낸 소설 <스탠드>를 읽어볼 것을 강력 추천!

<스탠드>를 시종일관 지배하는 공포스런 분위기는 어디로 와서 어디로 사라지는 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신출귀몰한 악의 화신 랜들 플랙에게서 온다. 랜들 플랙은 <The Eyes of the Dragon>, <다크 타워 시리즈> 등 킹의 여러 작품에서 계속 모습을 보이는 악의 화신이다. 그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존재하는 인간이 아닌 존재인데, 스티븐 킹이 악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모든 생각들을 하나로 모아 놓은 총집합체이다. 그는 나타날 때마다 가명을 쓰지만, 항상 이름 머릿글자가 R.F.이기 때문에 척 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사실 랜들 플랙이라는 이름마저도 가명이지만 그의 존재가 가장 인상적으로 강력하게 표출된 작품이 <스탠드>이다 보니 랜들 플랙이라는 이름이 그의 대명사처럼 킹의 팬들 사이에서 인식되고 있다. 썩은 미소를 슬쩍 날리는 것만으로도 나는 새가 어이가 없어 떨어지고 만다는 강력한 카리스마의 화신 랜들 플랙. 앞으로도 수많은 킹의 소설 속에서 계속 만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스티븐 킹이 <스탠드> 원고를 출판사에 넘겼을 때 출판사에서는 분량이 너무 많아서 제작단가가 올라간다며 원고를 적당한 분량이 되게끔 삭제해야 겠다고 말했다. 그 당시 아직은 별로 힘이 없는 작가였던 킹은 출판사의 말을 받아들이며 이왕 삭제를 해야한다면 자기가 직접 하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킹은 전체 원고의 약 4분의 1 정도되는 150,000 단어를 삭제했고, 1978년에 <스탠드>는 삭제판으로 출간되었다.

그런데 그 후 삭제판을 읽고 난 수많은 팬들이 과연 처음 원고는 어땠을지 무척 궁금해하며 처음 원고를 읽고 싶다는 뜻을 강하게 내비쳤고, 킹도 삭제판을 낸 것이 아쉬웠기 때문에 결국 <스탠드>는 1990년 완전무삭제판으로 출간되었다. 킹은 완전무삭제판에서 이전에 삭제당했던 500페이지 정도의 분량을 복원했으며, 몇몇 장면들은 새롭게 고쳐 썼다. 그리고 소설 처음부분과 끝부분을 프롤로그/에필로그 형식으로 새롭게 추가했으며, 삭제판에 나왔던 등장인물들에다 새로운 등장인물들을 추가시켰다. 우리나라에 출간된 것들 중에서 정음문화사의 <미래의 묵시록>은 삭제판을 번역한 것이고, 황금가지 출판사의 <스탠드>는 완전무삭제판을 번역한 것이다.

위에 보이는 표지그림에서 왼쪽이 미국 삭제판, 오른쪽이 미국 완전무삭제판 표지다.

<스탠드>는 TV 미니시리즈로 만들어졌다. 킹이 직접 각본을 쓰고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야심차게 카메오 출연도 한 작품인데, 우리나라에서는 MBC 방송국에서 <미래의 묵시록>이라는 제목으로 방영해서 상당히 좋은 평을 많이 들었다. 그리고 같은 제목으로 국내에 비디오 출시가 되었으니, 혹시라도 동네 비디오가게에 들렀다 우연히 <미래의 묵시록> 테이프를 만나게 된다면 이런 좋은 작품을 구해서 들여다놓은 동네 비디오가게 사장님께 감사하며 힘껏 애정어린 포옹을 해주도록 하자(여사장님이라면 더욱 안성맞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