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 Cell

작품 감상문 2007. 5. 12. 22:57 posted by 조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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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l

(2006년 소설)

어느 날 갑자기 휴대폰으로 통화하던 모든 사람들이 좀비 같이, 이성을 상실한 괴물로 변한다. 그 휴대폰 좀비들은 이런 갑작스런 사태를 가까스로 모면한 정상적인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살인한다. 세상이 완전히 휴대폰 좀비들의 손에 떨어진 가운데 휴대폰이 없어 좀비가 되지 않은 만화가 클레이는 집에 있는 아내와 아들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먼 길을 떠난다. 과연 그의 아내와 아들은 무사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휴대폰 좀비들로 변했을 것인가?

스티븐 킹 소설 <Cell>은 황금가지 출판사를 통해 <셀>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번역출간되었다.

<셀>은 홍보과정에서 좀비소설로 알려졌고 이 소설의 앞에는 킹이 좀비 장르의 거장들, <나는 전설이다>의 리처드 매드슨과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의 죠지 로메로에게 감사를 표하는 헌사를 적어놓기도 했지만, 엄밀히 따져 <셀>에 나오는 인간 괴물들은 전통적으로 공포 장르에서 다루어왔던 좀비와는 좀 다르다. 좀비라고 하면 죽은 사람이 살아난 괴물을 일컬었지만, 공포장르가 발전하면서 좀비의 의미가 점차 변형되더니(드라큐라를 봐! 이젠 마늘 정도는 우습게 씹어먹을 수 있게 됐다고!) 스티븐 킹의 <셀>에 이르러서는 휴대폰 통화하다 돌아버리는 인간 괴물이 등장했다. 뭐랄까 최첨단 통신기기를 매개로 한 신세대 좀비의 출현이라고나 할까?

<셀> 출간 직후 인터뷰에서 킹은 이젠 거의 모든 사람들이 휴대폰을 가지고 있지만, 킹 본인은 아직도 휴대폰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셀>에서 휴대폰이 없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활약시키고 싶었다고 말했다(이런 말 때문에 나는 <셀>의 주인공이 삐삐를 이용해 좀비를 물리칠 거라고 예상했었다 -_-).

아마도 <셀>을 전형적인 좀비소설로 예상했던 사람이라면 주인공이 전기톱을 가지고 좀비떼 속으로 뛰어들어가 좀비들을 대량학살하는 이야기를 기대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셀>은 좀비의 학살로 독자에게 쾌감을 선사하는 소설이 아니다. 좀비떼를 전멸시키는 장면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주인공이 가족을 찾아가는 여정 중에 겪게 되는 여러 일들 중 하나이고 그런 좀비 학살을 위해 주인공이 혼자서 주먹질로 수천의 좀비를 패죽이는 천하무적의 힘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소설 맨처음에 휴대폰 통화로 인해 출현한 인간 좀비들의 폭력성이 갑작스레 온세상을 휩쓰는 아비규환의 현장을 자세하게 보여준다. 그로 인해 좀비들과 주인공인 클레이의 맞대결이 펼쳐질 것 같지만, 이 소설은 좀비 학살보다는 클레이가 아내와 아들을 만나기 위해 고향집을 찾아가면서 겪는 여러가지 소소한 일들과 그 속에서 만나는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에 많은 장면을 할애한다. 소설 내내 좀비를 학살하는 장면이 쉴새없는 액션으로 펼쳐지는 소설을 기대했던 사람이라면 실망할 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에서는 좀비를 학살하는 장면보다는 좀비로 인해 클레이가 받는 엄청난 압박감과 긴장감이 더욱 강조된다. 소설을 읽다보면 좀비들의 힘이 너무나 압도적이라서 과연 클레이가 그들을 이겨낼 수 있을 지, 과연 클레이가 제대로 힘이나 써볼 수 있을 지 걱정이 될 정도이다. 좀비들한테 완전히 우롱당하고 끌려다니는 클레이가 너무 불쌍했다. 그런 암울한 상황 속에서 급기야 작은 틈을 발견해내고 그 틈을 이용해 반격하고야 마는 클레이의 활약이 정말 짜릿했다.

특히 좀비들의 대표자 격인 하버드 좀비와 클레이가 벌이는 팽팽한 기싸움이 볼만한테, 소설 후반부에서 버스에 올라탄 하버드 좀비한테 속마음을 숨기려고 기를 쓰는 클레이의 아슬아슬한 심리전이 긴박감 넘치게 펼쳐진다. 그런 위기의 순간을 최후에 압도적인 방법으로 끝장내는 장면은 읽으면서 막혔던 숨통이 뻥 뚫리는 쾌감을 선사했다. 그런 후련한 순간에 '하버드'라는 단어를 가지고 말장난치는 스티븐 킹의 유머 감각에 나는 웃음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스티븐 킹, 당신은 정말 장난꾸러기~~♥

클레이는 고향집으로 가는 동안 여러 명의 친구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들과 동고동락하는 동안 클레이는 또 하나의 가족을 이룬 듯한 정을 느끼게 된다. 소설 속에서는 어쩔 수 없는 불행한 일들로 인해 클레이와 친구들한테 불행한 일들이 많이 생긴다. 그런 장면들을 읽으면서 정말 무지 슬펐다. 아, <셀> 감상문을 쓰니까 또 그 슬픈 장면들이 머리 속에 떠오르네. 아, 눈물 난다. ㅜ_ㅜ <셀>이라는 소설이 독자들의 가슴 속에 깊은 인상을 남겨준다면, 그것은 좀비를 학살하는 장면 때문이 아니라 클레이 일행들이 겪는 안타까운 사건들이 선사하는 애절한 슬픔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 또 눈물 난다. ㅜ_ㅜ

나는 소설 <셀>이 무척 재미있었다. 좀비들이 마구 활개치는 초반의 폭력적 장면들, 클레이가 친구들을 만나는 장면들, 좀비들이 클레이 일행을 마구 괴롭히는 장면들, 클레이 일행이 좀비들한테 반격하는 장면들, 클레이 일행이 불행한 일들을 맞이하는 장면들. 어느 장면 하나 버릴 것이 없었고, 나는 도저히 책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슬픈 장면이 나오는 장면에서는 어쩔 수 없이 책에서 눈을 떼고 눈물을 삼킬 수 밖에 없었다. 아, 또 눈물 난다. ㅜ_ㅜ

그런데 이 소설의 결말에 대해 일부 해외 독자들 사이에 불만이 있었다. "난 이 소설 재미있게 읽었다. 그런데 결말이 왜 이렇게 불성실하냐? 내게 확실한 결과를 알려줘!" 대충 이런 식의 불만이다. 왜냐하면 스티븐 킹이 <셀>의 결말을 확실하게 보여주지 않고 도중에 소설을 마무리했기 때문이다. 불만을 제기하는 독자들의 심정이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간다. 소설을 읽는 동안 독자는 클레이의 심정에 동조하게 되고 그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게 된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독자는 클레이가 소설 마지막에 가서 행복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소설 내내 엄청난 고생을 감수하며 먼 여행을 치러냈는데 결말에 클레이한테 적절한 보상이 없다면 독자는 얼마나 분통 터질까? 독자들은 나쁜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클레이가 행복을 선사받길 원한다. 그런데 킹은 소설 끝 장면을 속 시원히 보여주지 않고 끝냈다. 클레이는 과연 행복해졌을까? 불행해졌을까?

<셀> 결말과 관련해 독자들의 항의가 빗발쳤던 모양이다. 급기야 2006년 3월 24일에 킹은 자신의 공식사이트에 <셀> 결말과 관련해 아주 짧은 글을 올렸다. 이 글에서 킹은 말한다. 소설의 마지막 3분의 1 분량 속에 나온 정보로 판단하건대 클레이의 노력이 좋은 결실을 맺었을 것으로 스티븐 킹 본인은 무척 확신한다고.

킹의 의견과는 상관 없이 소설 맨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나서 나는 책을 덮고 눈을 감았다. 책 마지막 페이지 이후의 장면이 머리 속에 떠올랐다. 나의 결론은 해피 엔딩. 어떤 이들은 비극적 엔딩이 작품성과 예술성을 확보해 준다고 철썩 같이 믿고는 해피 엔딩을 경멸하고 비극적 엔딩이 표방하는 슬픔의 근원은 어디일까라는 문제로 별의별 궤변을 늘어놓지만, 나는 해피 엔딩이 좋다. 아주 좋다. <셀>처럼 주인공의 슬픔이 그만 끝나기를 바라게 된 경우라면 나의 해피 엔딩 사랑은 더욱 절실해진다. 나는 <셀>의 주인공 클레이가 행복한 결말을 얻게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희망한다. 나는 그렇게 바란다. 아까 전에 스티븐 킹의 의견과는 상관 없이 나만의 결말을 생각했다고 말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나와 스티븐 킹의 의견이 해피 엔딩으로 똑같잖아! 오옷! 역시 나랑 스티븐 킹은 잘 통해. 이러니 내가 킹 아저씨의 빠돌이가 될 수 밖에 없지. 아 좋아, 좋아, 좋아! >_<

소설 <셀>과 관련해 재미있는 이벤트가 있었다. 정보, 표현, 청원의 자유를 보호/증진시키는 비영리 단체 First Amendment Project가 펼치는 자선경매 행사에 스티븐 킹이 동료 작가들과 함께 참여한 것이다. 킹은 이 경매에서 최고가로 낙찰된 사람한테 소설 <셀> 속에 출연할 수 있는 권리를 주었다. 그 경매 결과 팸 알렉산더라는 여성이 25,100달러로 소설 등장 권리를 낙찰 받았다. 그녀는 열렬한 스티븐 킹 팬인 brother(오빠일까? 남동생일까?)한테 출연 권리를 선물하고 싶어 경매에 참여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그녀의 brother(오빠일까? 남동생일까? -_-;;)의 이름과 외모 등에 관한 인적사항이 스티븐 킹 측에 전달되었고, 정말로 그녀의 brother(오빠일까? 남동생일까? -_-;;) 이름이 소설 <셀> 속에 등장하게 되었다. 그 행운의 이름은 "Ray Huizenga"이다.

<셀>을 읽다가 "Ray Huizenga"라는 이름이 정말 소설 속에 등장하는 것을 보고는 재밌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 수록 그 남자가 부러워졌다. 나는 자선경매로 소설 속에 등장하게 된 그 이름이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엑스트라 역할(어쩌면 행인 3 또는 좀비 3425)로 나올 것이라고만 예상했었는데, 막상 소설을 읽어보니 그 이름이 꽤 많은 분량에 걸쳐 나왔고, 게다가 주인공 클레이한테 중요한 기회를 만들어주는 비중 있는 조연이었던 것이다. 경매 낙찰 가격이 무척이나 고액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 정도면 킹의 팬으로서는 감수할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셀> 경매 때는 집을 담보로 해서 대출을 받으려고 했던 사람도 있었다). 나중에 또 다른 자선경매 행사가 열린다면 나도 참여해서 킹의 소설 속에 출연하고 싶어졌다. 다만 나는 베드씬 및 러브씬에 "집중적"으로 출연하고 싶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경매 자금으로 쓸 돈을 많이 벌어놔야 겠다. -_-;;

소설 <셀>은 <호스텔>의 엘리 로스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질 예정이라고 한다. 소설의 결말을 영화에서는 어떻게 처리할 지 궁금하다.

2006년 11월 5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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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g of Susannah

The Dark Tower 6

(2004년 소설)

다크 타워 5탄 <Wolves of the Calla>에서 스티븐 킹은 맨마지막 칼라 마을의 대결투를 위한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틈틈이 여러 가지 설정들을 뿌려놓았다. 그 설정들은 5탄의 내용 속에서 싹을 틔우지 못하고 그냥 씨앗 상태로 땅 속에 잠든 상태였다. 독자들의 궁금증을 증폭시킨 채. 그리고 이제 그 설정들이 한데 뭉치기 시작했다. 다크 타워 6탄 <Song of Susannah>를 통해서! 설정의 씨앗들이 싹을 틔우고 줄기를 키우고 잎을 내밀고서 독자들을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을 보세요, 독자님들! 우리가 얼마나 멋있는지 감상해 보시라니까요! 비록 아직 꽃을 피우지는 못했지만(하지만 그 꽃이 "장미"꽃이라는 것은 예상할 수 있겠지요, 현명한 독자님들?) 꽤 볼만하답니다. 그러니 어서 우리들을 보러 다크 타워 6탄 <Song of Susannah>의 세계로 들어오세요!

다크 타워를 향한 여정 속에서 칼라 마을의 결투를 치러낸 롤랜드 일행에게 치명적인 위험이 다가온다. 그들은 뿔뿔이 흩어져 끝을 알 수 없는 모험 속으로 빠져든다. 그 모험 속에서 허우적댈 수록 "끝"이 임박했다는 예감은 더욱 강해져만 가고, 그 끝이 죽음일지라도 운명의 끝을 보기 위해 그들은 한 발 한 발 발걸음을 내딛는다.

다크 타워 6탄 <Song of Susannah>를 읽으며 느낀 것은 비밀을 알아가는 즐거움과 짜릿함이었고, 그에 비례해 더욱 간절해져만 가는, 비밀의 끝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5탄에서 궁금증만 일으켰던 여러 가지 사실들이 6탄에서는 하나둘씩 정체를 드러낸다. 다크 타워 시리즈에 애정을 갖고 있는 독자라면 흥분하지 않을 수 없는 거대한 사실들의 정체!

롤랜드 일행들이 직접 몸으로 부딪혀가며 비밀의 정체를 한 꺼풀씩 벗겨내는 과정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이중 인격도 모자라 삼중 인격까지 난리치는 그 혼란스런 와중에 수잔나가 낯설고도 익숙한 도시를 헤매고 다니는 처절한 모습. 자신의 운명과 직접 대면하기 위해 담담하게 태평스런 미소를 짓는 롤랜드의 모습. 칼라 마을과는 달리 고독하게 전투를 벌여야하는 상황에서 죽음을 무릅 쓰는 제이크의 모습. 그 모든 인물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롤랜드 일행한테는) 낯선 배경 속에서 신비스런 모습으로 펼쳐진다.

<Song of Susannah>는 다크 타워 완결편 7탄으로 가기 위한 관문이다. 6탄에서 다크 타워와 롤랜드를 둘러싼 여러 가지 비밀들을 알려주지만, 그것 마저 7탄에 펼쳐질 최후의 비밀들을 위한 떡밥인 것이다. 아주아주아주 큰 떡밥! 5탄과 마찬가지로 6탄에서도 맨마지막에 긴박한 위기를 던져주고는 가차없이 냉정하게 이야기를 딱 끝낸다. 독자로서는 아주 완전히 미칠 지경인 것이다. 게다가 6탄 마지막에는 킹이 독자들한테 다크 타워 시리즈의 집필에 엃힌 역사를 자세히 친절하게 알려주는 글이 등장한다. 그 글의 결말을 읽고 나면 독자들은 이성을 잃고 소리칠 수 밖에 없다. 완결편 7탄을 읽고 싶어! 궁금해 미치겠어! 미치겠어! 미 치겠어! 도레"미"파솔라시도! 레"미"파, 레"미"파! (썰렁해도 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나의 개그 본능~♡♥)

6탄의 스포일러를 피해 감상문을 쓰려니 할 말이 별로 없다. -_-;; 시리즈 소설에서는 아주 작은 사실이라도 결론적으로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할 수 밖에 없다. 아직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이 소설을 미래에 읽게 될 독자들의 즐거움을 위해 나는 기꺼이 과묵해지고 싶다. 깜짝선물은 "깜짝" 선물이어야만 한다. 사전에 미리 선물의 정체를 알고 받는 깜짝선물은 깜짝선물이 아니다(그리고 나는 언젠간 꼭 다크 타워 시리즈가 국내에 번역출간 되리라 확신한다, Ka!).

나는 이 다크 타워 6탄 <Song of Susannah>를 손에 땀을 쥐어가며 너무나도 재미있게 읽었다. 사실 이 책의 약 3분의 2 지점에서 롤랜드가 기묘한 체험을 하는 장면에서는 너무 짜릿해서 코피를 터뜨릴 뻔 하기까지 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장면은 무척 자극적이었다. 아아, 내 코피. 정말이지 다크 타워 시리즈는 스티븐 킹이 독자들을 위해 마련한 종합선물세트라는 생각이 든다. 아아, 행복해.

나는 6탄을 방금 전에 다 읽었다. 5분 뒤 지금 나는 이 감상문을 쓰고 있다. 이 감상문도 이제 다 끝나간다. 감상문을 쓴 다음에 내가 무슨 일을 할 것 같은가? 그렇다. 다크 타워 완결편 7탄 <The Dark Tower>를 주문하기 위해 서점으로 달려나갈 계획이다. 이 세상 그 어떤 재미난 책도 다크 타워 7탄을 향한 지금 나의 열망을 막을 수는 없다. 이게 다 <Song of Susannah>가 너무나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아, 너무 좋아!

2006년 10월 10일 작성

p.s.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이 작품을 "수재나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2020년 번역출간했다.


※ 경고: 이 글 속에는 다크 타워 6탄 <Song of Susannah>에 관한 "중요한 스포일러"가 들어있습니다. 민감하신 분들은 주의하세요.

킹 사이즈의 도전

레이 루시어/포틀랜드 프레스 해럴드 기자

2004년 2월 29일


거의 10년 전 내가 처음으로 스티븐 킹한테 전화를 시작했을 때, 오로지 원했던 것은 얼굴을 맞대고 앉아서 하는 대면 인터뷰였다.

그 대신 어찌된 영문인지 킹을 향한 나의 끈질긴 추적은 그 작가가 곧 출간될 그의 다크 타워 시리즈 중 한 편 속에 나를 집어넣도록 했다. 이 기상천외한 뜻밖의 상황전개에 관해 이야기해 볼까나.

하지만 나는 내 자신의 일을 천천히 음미할 여유가 있다. 내가 이야기를 시작할 테니 그런 다음엔 당신이 판단해보라. 즉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공포소설가가 나의 희생을 가지고 재미있게 장난 치고 있는 것인가?

메인 주를 담당하는 연예부 기자로서, 나는 반드시 메인 주의 가장 거물급 유명인사와 함께 실질적이고, 깊이 있는 인터뷰를 가져야만 한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의 자존심은 그런 인터뷰를 필요로 했다(나의 편집자들도 물론이었고).

이 수많은 세월 동안 공포의 대가를 쫓아다니는 것은 소설보다도 기묘했다.

나는 1996년에 그의 소설 <Thinner>가 영화로 개봉되었을 때 처음으로 인터뷰를 요청했고, 이 때쯤 연예부 일을 맡았던 참이었다.

나는 뱅고어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 전화해서, 어떤 종류든지 간에 괜찮다며 인터뷰를 요청했고, 거절당했다. 그러고 나서 1997년에 다음 번 거대한 스티븐 킹 관련작품 "샤이닝" 미니시리즈가 나왔을 때, 나는 다시 요청했다.

또 다시, 운이 없었다.

킹과 관련된 전국적인 뉴스가 터질 때마다 언제든지, 1년에 두세 차례 정도 나는 계속해서 인터뷰를 요청했다. 어쨌든 간에 포틀랜드 프레스 헤럴드/메인 선데이 텔레그램은 메인 주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신문이었고, 킹은 공개적으로 자신의 생각들을 나타내는 자발적이고 솔직한 태도로 유명하다. 심지어 그는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잡지에 정기적으로 대중문화 칼럼을 연재하고 있기도 하다.

여러 해에 걸쳐, 킹의 매우 친절한 개인 비서 마샤 드필립포는 내가 매번 인터뷰 거절 통지를 받을 때마다 그것이 개인적인 악감정이 있어 그런 것은 아니라고 느끼게끔 해주려고 최선을 다해 주었다.

"스티븐이 외부 행사에 참석 중이에요." 그녀가 나한테 그렇게 이야기해 줄 터였다. 또는 "스티븐이 플로리다의 집에 머무는 중이에요"라거나 "스티븐이 한창 집필 중이에요." 만약 그가 집필 중 또는 여행 중 또는 단순히 호흡 중이 아니라면 분명히 그가 나한테 인터뷰해 줄 시간을 내주겠지, 나는 그렇게 내 자신을 달랬다.

(명확하게 밝혀두자면, 킹이 지난 8년간 나에게 전화 인터뷰를 3차례 응해주었다는 사실을 여기에 말해두어야 겠다. 그리고 그 중 두 번은 지난 6개월 동안 이루어진 것이었다. 매번 우리는 짧게, 아마도 15분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그런 "전화" 인터뷰만 갖는 것은 칠면조 사냥꾼이 그냥 깃털 몇 개만 가지고서 집에 돌아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끔 했다. 나는 그 새를 통째로 필요로 했던 것이다.)

1999년에, 그의 첫 번째 장편소설 <캐리> 출간 25주년을 맞이하여, 나는 킹의 인생과 대중문화에 끼친 그의 영향력을 아우르는 긴 기사를 썼다. 나는 인터뷰를 따내려고 노력했고, 이 무렵엔 내 동료들이 킹과 실질적인 인터뷰를 하려는 내 필사적이고도 애처로운 시도들을 소상하게 눈치챘다.

그래서 1999년 4월 1일 만우절에, 동료 한 명이 짓궂은 장난을 쳐서, 그녀의 어머니가 킹의 비서인 척 하면서 나한테 전화하게 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만약 내가 킹을 포틀랜드 미용실에서 만나서 그에게 우선 점심식사로 포틀랜드 포도주와 치즈를 사줄 수 있다면 인터뷰가 가능하다고 나한테 이야기했다.

나는 그 장난에 거의 넘어갈 뻔 했다. 내 창피스러움이 거의 끝장을 볼 뻔 했다.

그 "캐리" 출간 기념 기사가 나가고 나서, 나는 1999년 4월 21일, 포틀랜드 공공 도서관 행사에서 킹을 보았다. 그는 나한테 그것이 "좋은 기사"였다고 말했고 그러고는 나중에 시간 되면 나랑 길게 이야기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인터뷰를 향해 착착 전진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다 1999년 6월 19일, 그가 러벨에 있는 그의 별장 근처에서 산책을 하는 동안 승합차량에 받히는 교통사고가 났다. 킹은 4미터를 튕겨나가 복합 골절 및 폐 출혈 부상을 당했다.

한 동안 그는 어떠한 인터뷰도 하지 못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만나서 하는 인터뷰를 얻지 못했다.

킹이 건강을 회복해 다시 작품활동으로 돌아가자마자, 그리고 새로운 종이책, 전자책, TV 영화 등등을 발표하기 시작하자마자, 나는 또 다시 인터뷰 요청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킹에 대한 나의 굳건한 관계를 복구하기 시작했는데, 어 그러니까 인터뷰를 요청한 것이었는데, 그는 정중히 거절한다. 그러다 나는 킹의 전화번호를 얻고 싶어하는 탬파 트리뷴의 스포츠 기자한테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탬파 베이 데블 레이스 야구팀이 무시무시한 연전연패를 시작하던 날 킹이 그 경기장에 와있었던 적이 있었다. 스포츠 기자는 불가사의 현상의 대가 킹이 불행한 데블 레이스 야구팀한테 저주를 걸었느냐하는 것에 관해 재미있는 기사를 만들어내고 싶어했다. 이 때까지 그 작가에 대한 나의 추적생활 속에서, 킹은 약 6년의 기간 동안 나한테 딱 한 차례 응답 전화를 걸어준 적이 있었고, 그것은 내가 이미 그에 관한 기사를 쓰고 난 후였다. 바꿔 말하자면, 그 응답 전화는 나한테 아무 소용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탬파 기자한테 킹의 사무실 전화번호를 알려주었고, 큭큭거리면서 말했다. "에헴, 당신한테 행운이 있기를 빌겠습니다. 그는 나한텐 결코 응답 전화를 해주지 않더라고요."

그 다음 날, 여러분 주목하시라, 바로 그 다음 날, 탬파 기자가 나한테 전화를 걸어 감사의 인사를 했다. "킹은 정말 굉장하던데요." 그가 말했다. "내가 연락하고 나서 막바로 전화를 해주더라고요."

이 얼마나 멋진가.

나의 거듭된 인터뷰 실패는 편집실 안에서 유명한 농담거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작년, 나는 필사적인 심정이 되었다. 애걸복걸과 아부가 해답인 듯 싶었다. 나는 킹에게 편지를 써서, 정식적으로 대면 인터뷰를 요청했다.

나는 야구를 향한 우리의 공통된 사랑에 관해 재미있는 얘기들을 첨가해서 나의 단조로운 편지에 양념을 쳤다. 나는 심지어 그에게 뇌물까지 보냈다. 9월 초에 열리는 포틀랜드 시 독스 야구팀 경기 입장권 두 장. 그는 열렬한 야구팬이고 수많은 레드 삭스 팀 경기에 참석하곤 했던 것이다.

비록 나는 그것이 너무 막연한 시도라는 것을 알았고, 내 딸이 바로 나흘 전에 태어난 상황이긴 했지만, 나는 그 시 독스 경기에 내 몸을 이끌고 갔고 내가 킹을 위해 구입했던 두 자리가 비어있는 것을 무표정한 눈빛으로 응시했다.

그러고 나서 9월 말, 킹이 전미도서상을 수상했고 그래서 나는 그의 사무실에 나의 일상적인 인터뷰 요청들 중 하나를 했다. 내게 운이 좋았던지, 그는 그의 수상에 관한 특별한 전국적인 언론보도에 정신이 없었으며, 그래서 그는 다정한 지역신문 기자, 즉 나한테 이야기를 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그 9월의 전화 인터뷰 동안, 우리는 약 15분간 대화를 나눴다. 그는 인터뷰를 원하는 나의 수많은 요청들과 야구경기 입장권에 정중히 답례를 한 것이었다.

그는 그 해 말에, 어쩌면 12월에 나와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나눴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11월에 전미도서상을 받으러 갔을 때 킹은 병에 걸렸다. 폐가 오그라들어 폐렴을 일으킨 것이었고, 그것은 교통사고 후 그의 폐 일부가 붕괴된 채로 남아있어서 증세가 악화된 것이었다. 그는 약 한 달 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었고, 플로리다로 가서 아직도 요양 중이다.

나는 병원에서 막 퇴원한 사람들한테 인터뷰 요청을 밀어부치는 습관이 없었다. 하지만 TV 시리즈 "스티븐 킹의 킹덤"이 3월에 방영을 시작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또 다시 인터뷰를 요청해 보았다.

나는 항상 똑같던 그 정중한 거절을 받을 것이라 짐작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내가 받은 응답은 더욱 나빴다. 내가 받았던 것은 어렴풋한 희망의 빛이었다. 비서 드필립포가 킹의 사무실에서 내 전화를 받고는 말했다. "레이, 당신이 전화해줘서 기뻐요, 내가 금요일에 당신한테 전화하려던 참이었는데."

나는 생각했다. 와우, 이게 바로 그것이 틀림없어. 나는 대면 인터뷰를 따낸 거야.

"좋은 뉴스를 먼저 원해요 아니면 나쁜 뉴스를 먼저 원해요?" 드필립포가 쾌활하게 물었다.

나쁜 뉴스? 안돼, 절대 안돼. 좋은 뉴스, 어쩔 수 없다면, 좋은 뉴스 먼저.

"좋은 뉴스는 스티븐이 당신 이름을 책 속에 사용할 수 있도록 당신 허락을 받고 싶어해요, 내 생각엔 올해 말에 나올 예정인 "다크 타워" 6탄이나 7탄 때문인 것 같아요." 드필립포가 그렇게 말하는 동안, 내 심장엔 흥분과 두려움이 기묘하게 뒤섞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는 그 책 속에서 '포틀랜드 프레스 헤럴드의 레이 루시어'라고 표기된 신문기사 한 토막을 원해요. 그는 이 지역의 실제 이름들을 원하는 거구요 그것이 소설에 현실감을 불어넣기를 원해요. 너무 걱정은 마세요, 당신은 악당 캐릭터로 등장하는 게 아니니까, 하지만 난 그것에 관해 너무 많은 것을 말할 수는 없어요."

응? 뭐라고요? 음, 물론이죠.

나는 너무 어안이 벙벙해서 돌아가는 사정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나랑 두 번 전화통화를 했었던 킹이, 10여 차례가 넘는 나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해왔던 킹이 나를 책 속에 등장시키길 원하다고?

그런데 나쁜 뉴스는 뭡니까?

"왜냐하면 그는 폐렴에서 회복 중이거든요." 드필립포가 나한테 이야기했다. "스티븐은 그 TV 시리즈와 관련해 어떠한 홍보활동도 하고 있지 않아요. 그의 폐가 완전히 회복하려면 6개월이 걸릴 거라고 의사들이 그러더라구요, 그러니 그는 모든 활동을 중단할 수 밖에 없지요."

나는 킹의 집에 저녁식사 초대를 받았다가, 그 다음엔 킹의 집에서 나 혼자 식사를 해야한다는 소식을 들은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며칠 뒤 나는 킹이 보내온 이메일을 받았으며, 그것은 그가 내 이름을 사용할 수 있도록 정식 허가서에 서명해달라고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친애하는 레이, 곧 출간될 내 장편소설 <Song of Susannah>(다크 타워 6탄)의 끝부분에서는, (메인 주) 선데이 텔레그램 신문에서 발췌한 허구의 1999년 6월달 기사가 등장하는데요, 그것은 러벨에서 승합차량과 충돌한 결과로 나의 죽음을 보도하는(물론 허구의 설정이지요) 매우 커다란 기사 제목을 드러내고 짧은 관련기사로 이어집니다.

그 기사의 필자로 당신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다면 저는 무척 기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도 기뻐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러한 부탁에 조금이라도 이의가 있으십니까? 만약 이의가 없으시다면, 출판사한테 확실한 답변이 될 수 있도록 허가서의 하단에 당신의 이름을 서명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스티븐 킹."

그래서 내가 그 글을 읽은 바로는, 스티븐 킹은 내가 그의 부고 기사 같은 것을 쓴 것처럼 보이게 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킹을 향한 나의 집념이 얼마나 오랫동안 꼬여왔는 지를 알고 있는 나의 편집자는 어쩌면 그가 나를 갖고 노는 것일 거라고 말했다. 어쩌면 내가 그와 얼굴을 맞대고 인터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의 시체를 앞에 두는 것일 뿐이라고 그가 말하려 하는 것일 거라고.

어쩌면.

나는 허가서에 서명했고, 킹한테서 조금도 정보를 얻지 못한 채로 "스티븐 킹의 킹덤"에 관한 기사를 써보기로 했다.

그러자, 불쑥 튀는 총알처럼, 나는 드필립포한테서 이런 이메일을 받았다.

"레이, 당신이 허가서에 서명해서 기꺼이 당신 이름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었다고 스티브한테 이야기했을 때, 나는 당신이 <스티븐 킹의 킹덤>에 관해 인터뷰를 요청했었다는 사실도 언급했답니다. 만약 당신이 다음 주 화요일이나 수요일에 짧은 전화통화를 할 수 있다면, 그가 흔쾌히 홍보활동 중단에 예외를 두겠다고 말했어요. 그가 허용한 유일한 나머지 예외적인 인터뷰는 뉴욕타임스 밖에 없어요."

아무 것도 없는 것보다는 전화 인터뷰가 낫지, 나는 그렇게 여겼다.

그래서 2월 20일에, 킹이 플로리다 사라소타 인근에 있는 그의 집에서 나한테 전화했다. 그는 "안녕하세요, 저는 스티브입니다"라는 활기찬 인사로 대화를 시작했다.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나는 그의 죽음에 관한 허구의 기사에다가 왜 내 이름을 사용하길 원했는지 킹에게 물었다. 왜 나에요, 당신이 상대하는 그 수많은 기자들 중에서?

"왜냐하면 당신은 나에 관해 다수의 기사를 써왔기 때문이죠. 나는 메인 주 지방에서 활동하는 사람을 등장시키길 원했거든요." 킹이 말했다. "나는 (영화 평론가) 마티 멜츠의 이름을 사용하는 건 원치 않았어요, 그는 내 죽음에다가 별 세 개 반(★★★☆)을 주었을 테니까. 그 사람은 모든 것에다가 별 세 개 반을 주잖아요."

유쾌하고 짧았던 대화의 말미에, 나는 대면 인터뷰 얘기를 꺼내보기로 결심했다. 나는 내 편집자들이 정말로 그것에 관해 "나를 닥달하고 있다"고 킹한테 이야기했다.

"그렇군요, 그게 어떤 기분일지 저도 알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이번 TV시리즈를 위해 더욱 많은 홍보활동을 하라고 나를 닥달하고 있고, 내 아내는 홍보활동을 조금도 하지 말라고 나를 닥달하고 있거든요." 킹이 말했다. "우리는 아마도 여름에 그 (대면) 인터뷰를 하게 될 것입니다."

여름? 좋지. 그 때쯤엔 스티븐 킹 소설 속에 등장한 것 때문에 내가 아마 아주 유명해져서 사람들이 나를 인터뷰하려고 난리를 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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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lves of the Calla

The Dark Tower 5

(2003년 소설)

다크 타워 3탄 <The Waste Lands>가 나온 이래로 오랫동안 후속편이 안 나와서 팬들의 마음을 졸이게 했던 스티븐 킹은 4탄 <Wizard and Glass>를 한참 뒤에 발표하지만, 4탄이 나온 후 또 다시 5탄의 출간 소식은 기약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러던 와중에 킹은 산책을 나갔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죽음의 문턱을 경험하게 된다. 너무나 심각한 부상을 입었기에 각종 언론매체는 킹의 사고 소식을 알렸다(심지어 우리나라 신문에도 킹의 사고 소식이 실렸다!). 그러자 다크 타워 시리즈의 팬들은 킹이 위독한 상태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면서도 행여나 킹이 죽게 되면 다크 타워 시리즈가 영원히 미완성인 상태로 종말을 맞이할까봐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사람의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판국에 팬이란 사람들이 소설이나 걱정하고 있다니! 하지만 다크 타워의 완결을 누구보다도 더 바란 사람이 있었다. 바로 스티븐 킹이다.

가까스로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돌아온 스티븐 킹은 다크 타워 시리즈가 그 동안 얼마나 위태로운 상태에 있었는지 절절히 실감하게 된다. 사람의 목숨이란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법. 오늘 멀쩡하다가도 내일 꼴까닥할 수 있는 것이다. 한가롭게 산책 나갔다 죽을 뻔한 킹 본인이 그 사실을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잖은가. 스티븐 킹은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집필을 시작한 다크 타워 시리즈의 완결을 더 이상 미루다간 뜻밖의 사고로 완결을 짓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게다가 그는 일생을 바쳐 집필해온 다크 타워 시리즈가 그가 집필한 다른 단행본 소설보다 판매량이 떨어진다는 사실이 아쉬운 참이었다. 독자들은 완결되지도 않은 시리즈 소설을 선뜻 읽기가 불편한 것이리라 킹은 짐작한다. 그래서 그는 결심한다.

다크 타워 시리즈 집필에 열심히 매달려서 이번에는 시리즈를 꼭 완결시키자!

킹은 다크 타워 시리즈를 7탄으로 완결짓기로 하고, 5, 6, 7탄을 한꺼번에 집필해냈다. 그리하여 5탄은 2003년, 6, 7탄은 2004년에 미국에서 출간되었다.

다크 타워 5탄: 전원일기 버전


 배추 수확을 앞둔 양촌리 마을에 우체부 아저씨가 찾아온다.

그는 자그마한 배추밭에 서서 설악산 흔들바위 만큼 알차게 자란 배추들을 바라보고 있는 응삼이한테로 간다. 그는 응삼이한테 전기요금 고지서, 수도요금 고지서, 전화요금 고지서, 국민연금 고지서, 의료보험 고지서, 기타 등등 별의별 고지서들을 한아름 안겨준다. 방금 전까지 흐뭇해하던 응삼이의 얼굴에 잠시 짙은 그늘이 진다. 그러나 응삼이는 다시 배추밭을 바라보고는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그런데 우체부 아저씨가 아직도 그의 곁에 붙어있다.

"아니, 아저씨, 왜 아직도 우두커니 서계세요? 혹시 무슨 하실 말씀 있으신 거에요?"

"자네 말이 맞네." 우체부가 씁쓸한 웃음을 터뜨린다. 슬그머니 배추밭을 훑어본다.

"배추밭, 그렇다면 하실 말씀이란 게 혹시..."

"맞아. 늑대파."

"늑대파!"

"그들이 양촌리로 오고 있어. 내가 읍내에서 그들이 조직원들한테 연락하고 있는 것을 봤지."

응삼이는 입술을 꽉 다문 채 발 아래만 내려다보고 있다. 이윽고 그가 간신히 입을 연다. "얼마나 걸릴 까요?"

"한 달."

"한 달이면 우리 양촌리 마을에 도착한다..."

"부디 양촌리에 큰 탈 없기만을 바라겠네. 그럼 나는 바빠서 이만."

나쁜 소식을 전하느라 식은 땀을 흘리던 우체부는 황급히 길을 떠나고, 응삼이는 마을 회의를 소집한다.

약 3시간 뒤, 양촌리의 거의 모든 남자들이 마을 회관에 모인다. 회의를 소집한 응삼이가 앞에 나가 마이크를 잡는다.

"양촌리 주민 여러분, 긴급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이렇게 마을 회의를 소집했습니다."

"혹시 응삼이 자네 장가간다는 얘기 아녀? 혹시 쌍봉댁하고 정분 난겨?" 회관 안에 폭소와 환호성이 넘쳐난다. 그러나 굳은 표정의 응삼이를 보고는 서서히 침묵 속에 빠져든다.

응삼이가 목에 힘을 주어 말한다. "늑대파가 양촌리로 오고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겁에 질려 수군거린다.

"우체부 박씨 아저씨가 전해준 확실한 소식입니다. 한 달 뒤 여기에 도착할 거라고 합니다." 응삼이가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뜬다. "여러분 모두 늑대파를 잘 아실 겁니다. 양촌리 주민이라면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죠. 늑대파는 깡패들입니다. 도시에 나가 깡패짓을 하다가 심심해지면 몇 년에 한 번씩 양촌리 마을에 쳐들어옵니다. 우리 양촌리 배추를 약탈하러 오는 거죠! 우리의 배추를 뺏어다가 장난치려고!"

응삼이가 주먹을 불끈 쥐며 열변을 토한다. "우리가 남의 도움을 바랄 수는 없습니다. 경찰이 인력 구조조정한답시고 양촌리에 남아있던 작은 파출소 마저 없애버린 지가 20년입니다. 경찰은 우리의 불행을 수수방관하기만 합니다. 고작 하는 일이라곤 늑대파가 우리 배추밭을 약탈한 뒤에 느긋하게 경찰차 타고 나타나 피해 상황를 수첩에 적어가는 일이 전부입니다. 그들이 다시 찾아오는 때는 또 다시 늑대파가 휩쓸고 간 뒤에 피해 상황이나 적어가려고 오는 때일 뿐이죠. 저는 농협에 빚이 7천만원 있습니다. 또 저는 매달 내야하는 세금 고지서들이 있습니다." 응삼이가 우체부 아저씨한테 받았던 고지서들을 앞에 집어던진다. "고지서가 10개도 넘습니다! 올해는 가뭄이 들어 고추, 깻잎이 말라죽어 3백만원 손해 봤습니다. 농사 밖에 모르는 저는 빚더미에 올라앉았습니다. 그런데 테레비를 보십시오! 좋은 나라 운동본부에 보니까 수십억 세금을 체납한 개자식은 집으로 찾아온 세무서 직원들 앞에서 거드름 피우며 온갖 땡깡을 피우더라구요. 세무서 놈들은 그 놈들 앞에서 굽신거리기나 하고!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같은 농사꾼들이 어디 세무서 직원 앞에서 큰소리 한 번 낼 수 있습니까? 어떤 놈들은 별별 나쁜 짓을 다해도 떵떵거리고 사는데, 우리는 그저 남들 앞에서 찌그러져 살아갈 뿐입니다.

그런데 이제 늑대파 놈들이 또 양촌리로 쳐들어 온다고 합니다. 우리의 피 같은 배추를 약탈하러요. 양촌리 배추가 어떤 배춥니까. 삼성 그룹 구내식당에서도 웃돈 얹어주며 사가는 고품격 배추의 선두주자 아닙니까! 배추는 양촌리의 희망이고 양촌리의 영혼입니다. 그런 귀중한 배추를 늑대파에게 고스란히 내줄 수는 없습니다. 더 이상 그럴 수는 없습니다. 저는 그 놈들과 맞서 싸우겠습니다. 양촌리의 희망과 영혼을 지키기 위해서! 여러분도 동참해 주십시오."

그러자 양촌리 마을의 유지인 김회장(최불암)이 자리에서 일어나 한 마디 한다.

"응삼이 자네 뜻은 잘 알겠네. 하지만 늑대파 놈들이 잔인하기로 유명하다는 건 자네도 잘 알잖나. 그 동안 놈들은 배추에만 손댔지 마을 주민들한테는 손대지 않았잖아. 섣불리 나섰다가는 배추는 물론 마을 주민의 목숨도 위태로워질 걸세."

마이크를 쥔 응삼이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그의 눈에 분노의 핏발이 선다. "그럼 김회장님은 이번에도 순순히 배추를 늑대파한테 내주자는 말씀이십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하네. 게다가 특이하게도 그 놈들은 배추를 다 가져가는 것도 아니잖아. 어떤 변태적인 이유가 있는 지는 몰라도 배추 두 개당 하나씩만 빼앗아가잖나."

"아니, 반만 빼앗기니까 우린 반만 먹고 떨어지자 이겁니까? 배추는 우리의 자존심입니다. 그런 식으로 계산기 두드릴 일이 아니라구요."

"하지만 빼앗아간 배추 마저도 늑대파는 나중에 우리한테 돌려주잖나. 결국 우리는 배추를 다 갖게 되는 거야. 그저 배추의 반을 잠시 동안 놈들한테 맡겨둔다고 생각하면 맘이 편할 걸세."

"그것은 비겁한 변명입니다. 늑대파는 배추를 빼앗아서 나중에 시들어빠진 우거지로 만들어 갖다주잖아요. 김회장님은 그게 좋으세요? 한창 김장철에 높은 값에 팔 수 있었던 배추를 김장철이 훨씬 지난 다음에 썩어빠진 우거지로 받아서, 어디다 팔 수도 없어서 그냥 개밥으로나 주는 게 좋으시단 말씀이신가요? 그건 변명입니다. 폭력에 시달리다 시달리다 폭력을 합리화하기 위해 약자가 만들어내는 환상일 뿐이라구요!"

이 때 일용이가 조용히 일어선다. 그도 응삼이와 마찬가지로 늑대들이 양촌리 배추를 희롱하는 것에 대항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항상 일용 엄니(김수미)를 잘 돌봐주는 최불암 가족이 고마운 나머지 최불암 편을 들고야 만다. "이봐, 응삼이. 진정해. 나도 늑대파가 맘에 들지는 않아. 하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는 게 필요해. 우리는 농사꾼이야. 늑대파는 깡패라고. 어떻게 우리 같은 농사꾼들이 전문 파이터들과 맞서 싸울 수 있겠어? 그건 우리의 희생만 불러일으킬 뿐이야. 우리는 마을을 꾸려나가야 해. 우리가 없어지면 양촌리는 누가 지키지? 여자들과 아이들만 남은 마을을 원하는 거야? 우리가 마을을 꾸려나가는 것이 중요해. 배추는 어쩔 수 없는 희생양일 뿐이야. 배추에 마을의 목숨을 걸 수는 없는 거야. 자네는 테레비에서 이종격투기 경기를 너무 많이 봐서 현실 판단을 그르치고 있는 거라고. 응삼이 자네는 크로캅이 아니야, 나도 최홍만은 아니고."

응삼이는 너무 분해서 눈물이 날 것만 같다. 뭐라고 대꾸를 해야 할텐데, 확실한 대답이 생각나지 않는다. 일용이 말대로 그들은 결국 힘 없는 농사꾼인 것이다.

그 때 마을 회관 문이 활짝 열리고, 마을 입구에서 구멍가게를 꾸려나가는 쌍봉댁이 뛰쳐 들어온다.

"여러분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제 말 좀 들어보시랑께요."

"어허, 남자들이 중요한 회의하는 데 어디서 아녀자가 끼어드는겨!" 완고하기로 유명한 양촌리 할아버지 삼인방이 노발대달한다.

쌍봉댁은 그들을 달래기 위해 구멍가게에서 가져온 '사랑과 우정의 상징' 양파링을 한 봉지씩 건넨다. 겨우겨우 할아버지들이 화를 누그러뜨린다. 첫 번째 할아버지는 쌍봉댁이 건넨 양파링을 우정으로 받아들이고, 두 번째 할아버지는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세 번째 할아버지는 사랑 45%, 우정 55%로 받아들인다.

쌍봉댁이 그윽한 눈길로 응삼이를 바라본다. 용감한 응삼씨, 제가 뒤에서 항상 지켜보고 있어요, 화이팅이에요! 그러고는 마을 회관에 모인 남자들을 향해 말한다.

"여러분! 늑대파를 물리칠 방법이 있습니다. 지금 양촌리 마을 5.5킬로미터 밖에 방위들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방위들한테 늑대파를 물리쳐달라고 부탁하면 되요."

그러자 최불암의 막내 아들이자 양촌리 청년회장인 유인촌이 일어나 점잖게 타이른다. "쌍봉댁 아주머니, 아주머니께서 응삼이한테 마음이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응삼이 편을 들고 싶으신 거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야부리를 치시면 안되죠. 방위는 수십년 전에 없어졌습니다. 병무청에 전화 한 번만 때려보면 다 알 수 있는 현대인의 상식이란 말입니다. 방위가 지금 있을리가 없지요. 혹시 공익이랑 헷갈리신 것 아닙니까?"

"아니, 내가 무식하기로서니 그런 것도 모를까봐서 그래? 우리 마을 옆을 지나가고 있는 사람들은 방위 맞어. 내가 확실히 물어봤다니까. 게다가 그냥 방윈 줄 알아? '전투'방위란 말야! 특공무술로 단단히 무장하고 칼퇴근의 자존심으로 약자를 위해 싸우는 전설의 전투방위란 말야!"

전투방위! 양촌리 사람들은 오래 전에 멸종된 줄로만 알았던 전투방위가 실존한다는 소리에 동요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자 그 여세를 몰아 쌍봉댁이 열변을 토한다. "늑대들한테 당하고 살지 맙시다. 전투방위들의 도움을 받아 녀석들을 물리칩시다. 전투방위들한테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하자구요. 이번이 절호의 기회입니다. 고추 달고 세상에 태어났으면 다들 고추 값을 해야할 거 아냐. 맨날 고추 자랑만 하지 말고 진짜로 고추 힘 좀 내보라구요, 다들!"

쌍봉댁의 파워풀한 연설에 감동 받은 사람들이 39초간 침묵에 휩싸인다. 그러자 노마 아빠(이계인)가 일어나 쌍봉댁의 말에 지지를 표한다. "쌍봉댁 말이 맞수다! 옛말에 이르기를 고추가 서 말이래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잖수!"

그러자 7초간 침묵이 흐른 후 누군가 소리친다. "노마 아빠 고추부터 꿰어보지 그래?!" 마을 회관 안이 폭소의 도가니로 변한다. 쌍봉댁은 얼굴을 붉히며 손으로 살며시 미소 짓는 입술을 가린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며 응삼이는 희망을 느낀다. 이번에야 말로 늑대파들을 물리칠 운명의 기회라는 것을 깨닫는다. 양촌리는 늑대파를 이겨낼 것이다. 그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이번에는 꼭 이겨낼 것이다.

다크 타워 5탄 <Wolves of the Calla>는 존 스터지스 감독의 영화 "황야의 7인"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황야의 7인"은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7인의 사무라이"를 리메이크한 것이다). 그래서 5탄의 무대가 되는 칼라 브린 스터지스 마을의 이름은 존 스터지스 감독의 이름에서 따왔다.

평범한 농촌 마을 칼라에 자꾸만 늑대들이 처들어와 약탈을 하자 농부들은 더 이상 당하고만 살 수 없다는 절박한 위기감을 느끼고 때마침 다크 타워를 향해 마을 주변을 지나고 있던 최후의 총잡이 롤랜드 일행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이에 요청을 수락한 롤랜드 일행이 마을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늑대들과 대결을 펼치는 것이 다크 타워 5탄의 주된 줄거리다.

소설 속에서도 언급되지만, 롤랜드 일행이 칼라 마을에서 겪는 일들은 다크 타워 4탄 <Wizard and Glass>에서 젊은 시절의 롤랜드 일행이 겪었던 모험을 연상시킨다. 마을로 들어가 이곳 저곳을 둘러보며 마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여유로운 행동을 통해 여러가지 정보를 얻고 마지막에는 나쁜 세력과 한바탕 굵고 짧은 액션 대결을 펼치는 것이다.

<Wolves of the Calla>에서 롤랜드 일행이 보고 듣는 칼라 마을의 이색적인 여러 광경들이 독자의 호기심을 잔뜩 북돋아준다. 마법과 과학이 제멋대로 널부러진 듯한 마을의 환경 속에서 도를 깨우치기라도 한 듯 알듯 모를듯한 미소를 짓는 롤랜드의 색다른 모습이 인상적이다. 마을 속에서 롤랜드 일행이 수집한 정보들을 짜맞추고 늑대들과의 대결 계획을 차근차근 진행시키는 믿음직한 롤랜드의 모습. 정보를 통제하고 때로는 정보를 누설하고 때로는 정보를 위조해내는 그의 첩보활동이 느릿느릿 여유롭게 진행되는 스토리 전개에 맛깔스런 조미료 역할을 한다.

그러고는 마침내 롤랜드 일행이 칼라 마을 주민들과 힘을 합쳐 수십 마리의 늑대들과 맞서싸우는 대결의 순간! 오옷, 너무 짜릿했다. 권총에서 나오는 매캐한 화약 연기 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 자극적인 싸움의 현장을 묘사하는 강렬한 묘사가 내 맘을 설레게 했다. 나는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쉬지 않고 그 장면을 거침없이 읽어나갈 수 밖에 없었다. 멋져! 멋져! 멋져!

그 대결의 현장에서 마을 여자들이 사용하는 무기가 또 인상적이다. 행주대첩에서 아녀자들이 사용했다는 행주치마 이래로 칼라 마을의 여자들이 늑대들한테 사용하는 무기가 나를 흥분시켰다. 아, 누나들 너무 멋지셔요.

<Wolves of the Calla>는 대부분의 분량을 롤랜드 일행이 칼라 마을에서 펼치는 첩보전에 할애하고 맨마지막에 늑대들과의 대결을 보여주는 구조로 되어있는데, 그런 틈틈이 또 다른 모험을 배치하고 있다. 롤랜드 일행은 다크 타워의 존재를 연상시키는 장미를 구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 장미는 이제 불가사의한 위험에 처해있는데, 롤랜드 일행이 힘을 쓰지 않으면 장미는 죽고 말 것이다. 그래서 롤랜드 일행은 칼라 마을을 구하랴, 장미를 구하랴, 시간은 촉박하기만 한데 골치 아프게 머리를 짜내야 하는 어수선한 상황에 처한다. 캬캬캬, 주인공들의 고생은 독자들의 행복이다.

이 장미를 구하려 애쓰는 과정에서 선보이는 여러 장면들이 스티븐 킹 팬들에게는 너무나도 짜릿한 쾌감을 전해줄 것이다. 시간과 공간을 거침없이 휘저어 다니는 와중에 엿보이는 여러가지 설정들과 등장인물들과 사건들의 연속이 앞선 다크 타워 시리즈 전반을 뒤돌아보게 만듬과 동시에 그런 요소들을 가지고 앞으로 다크 타워 6탄에서 펼쳐내 보일 킹의 이야기를 너무나도 궁금하게 만든다.

다크 타워 5탄에서는 롤랜드 일행이 자꾸만 강박증에 시달린다.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말을 하는 와중에도 그들의 강박증은 없어질 줄을 모른다. 불쑥 이상한 말을 내뱉고 그러고는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잘 몰라서 불안해하고 때로는 짐짓 무시해버리는 척하는가 하면, 위험이 닥쳤을 때마다 그런 이유 없는 강박적인 말이 불쑥 튀어나와서 위험을 벗어나게 되는 상당히 안이해보이는 스토리 전개를 보여준다. 롤랜드 일행이 그런 강박증 때문에 답답해하기도 했지만, 책을 읽고 있는 나도 답답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그러나 스티븐 킹은 답을 주지 않는다. 답은 다음 번 다크 타워 책들 속에 나오게 되겠지. 아아, 호기심에 불타는 나 같은 독자는 속만 태울 뿐이다. 어흑.

게다가 <Wolves of the Calla>에서는 롤랜드 일행한테 균열이 생기기까지 한다. 외부의 요소로 인한 균열이 아니라 내부의 요소로 인한 균열인 것이다. 착한 마음, 굳센 체력을 유지해도 다크 타워에 갈까말까한 판국에 동료들 사이에 균열까지 생기다니! 과묵하지만 항상 능력있는 롤랜드 마저도 그 균열 앞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내비치다니 이거 참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과연 롤랜드 일행이 계속 뜨거운 동료애를 유지할 수 있을 런지 귀추가 주목된다.

아, 그리고 다크 타워 5탄을 읽기 전에 킹의 또 다른 소설 <살렘스 롯>을 읽어두는 게 좋다. <Wolves of the Calla>에서는 여러 페이지에 걸쳐 <살렘스 롯>의 내용을 자세하게 까발리고 있으니까. 스포일러 있어도 상관없는 분들한테는 아무렇지도 않겠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은 반드시 미리 <살렘스 롯>을 읽어두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을 것이다.

스티븐 킹은 다크 타워 3탄 <황무지(The Waste Lands)>를 통해 이야기의 최고 절정에서 갑자기 책을 끝내버림으로써 독자들을 미치고 환장하게 만든바 있는데, 이번 다크 타워 5탄도 그에 못지 않은 카리스마를 뽐낸다. 늑대들과의 대결이 끝나고 이제 이야기를 차분하게 마무리지을 분위기겠거니 하는 마음이 들 때면 갑자기 이야기가 급반전되어 위기가 형성되고... 엄청난 비밀이 폭로되더니... 거기서 책은 끝난다. 그러고는 스티븐 킹이 말한다. "독자 여러분, 다크 타워 6탄을 기대하셔용~♥♥" 아아, 미치겠어. 궁금해. 궁금해. 도대체 다음 이야기는 어떻게 되는 거야?

다크 타워 5탄 <Wolves of the Calla>는 그 전의 1, 2, 3, 4탄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전개를 위한 복선들을 깔아놓는 관문이다. 과거의 설정들 위에 새롭게 깔리는 여러 가지 기묘한 설정들. 다크 타워 팬이 어찌 이런 멋진 모습을 외면할 수 있으랴. 예전에는 다크 타워 시리즈를 순서에 상관없이 아무 책이나 먼저 읽어도 된다고 생각했었는데, 5탄을 읽고 나니 시리즈는 역시 순서대로 읽어야만 한다는 것을 실감했다. 순서대로 읽지 않는다면 5탄이 선보이는 여러가지 설정들에서 짜릿한 쾌감을 얻는 기회를 놓치게 될 것이다(예를 들어 5탄을 먼저 읽고 나중에 3탄을 읽으면 슬픈 독서가 된다).

다크 타워 5탄을 읽고 나니 롤랜드 일행이 다크 타워로 가는 여정을 어떻게 진행시켜 나갈지 너무나 설레였다. 호기심으로 충만했고 너무도 궁금했다. 그래서 서점으로 달려가 다크 타워 6탄을 구입하고 말았다.

아아, 6탄도 읽어야지. 안 읽으면 미칠 것 같다. 나는 다크 타워에 얽매인 노예가 된 것 같다. 롤랜드, 나 좀 도와줘! 스티븐 킹 아저씨가 나를 중독자로 만들어 버렸어! 나 좀 도와줘! 다크 타워 시리즈 읽느라 연애할 시간도 없어!(아, 이건 비겁한 변명인가... -_-;;)

2006년 9월 24일 작성.

p.s. 2017년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이 소설을 "칼라의 늑대들"이라는 제목으로 번역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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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thing's Eventual

(2002년 단편집)

스티븐 킹의 단편집 <Everything's Eventual>을 읽었다.
         (이 단편집은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모든 일은 결국 벌어진다"라는 제목으로 번역출간했다.)

         이 책의 서문에서 킹은 자신이 소유한 라디오 방송국의 계속되는 적자를 만회하고자 이벤트를 계획했던 일을 소개한다. 그런데 그 이벤트를 미처 실행하지도 못하고 포기하면서 킹은 과거에 힘을 발휘하던 분야가 오늘날에 와서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현상을 실감했던 것이다.

스티븐 킹의 그러한 실감은 단편소설에 대한 염려로 이어진다. 미국에서는 작가들이 단편소설을 쓰더라도 발표할 지면이 별로 없으며, 출간되는 단편집에 대한 호응이 적다는 것이다. 단편소설이 역사의 유물이 되어가고 있는 것일까? 다시 예전의 활력을 되찾을 수는 없는가?

그런 의문을 제기하며 킹은 자신의 단편집 <Everything's Eventual>을 통해 14편의 단편을 독자들 앞에 풀어놓는다. 그리고는 독자들에게 묻는다. 어떻습니까? 읽을만 합니까? 팍팍 빠져듭니까? 단편소설의 매력이 듬뿍 느껴지십니까?

다년간 "조재형의 스티븐 킹 사이트"를 방문하면서 킹의 작품들에 대해 내가 쓴 감상문을 읽어본 사람들은 킹의 질문에 대해 내가 어떤 대답을 내놓을지 대충 짐작이 갈 것이다. "스티븐 킹 아저씨, 이번 단편집도 너무 좋았어요. 우왕~ 너무너무 재미있고 너무너무 유익하고 너무너무 환상적이었어요. 아저씨, 땡큐~♥"

아아~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킹의 단편집 <Everything's Eventual>이 들려주는 주옥같은 단편소설 14작품을 살펴보도록 하자.


1. Autopsy Room Four

중년남성 하워드 코트렐은 불현 듯 정신을 차리게 된다. 처음에 어리둥절하던 그가 차츰 주위의 소음들을 통해 짐작해 보니 지금 있는 곳은 해부실이고 그는 해부실 탁자 위에 시체로 누워 있다. 살아있는데 시체 취급하다니! 그는 자신의 의사를 표시하려 하지만 이런 맙소사! 몸이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말도 나오지 않는다. 그냥 의식만 있을 뿐이다. 그러는 가운데 해부실에 있는 사람들이 그를 해부할 시간이 점점 다가온다.

단편집 <Everything's Eventual>의 맨처음을 장식하는 단편 <Autopsy Room Four>. 정말 재기발랄한 소설이었다.

해부시간이 점점 다가오는 긴박한 순간에 자신이 시체가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해부실 사람들한테 알리려 온갖 방법으로 애를 쓰는 주인공의 활약이 눈부시다. 스티븐 킹이 한정된 공간과 한정된 인원을 가지고 얼마나 상황을 극적으로 끌고갈 수 있는 지 새삼 감탄했다. 해부실 탁자 위의 주인공 남자는 자신이 해부될 것을 상상하며 별의별 생각을 다하는데 이 부분이 정말 실감나는 공포다. 그러다 죽을 수 만은 없다고 생각해서 나름대로 살아보겠다고 별의별 짓을 다하는데 이 부분이 정말 실감나는 유머다.

이렇듯 이 단편은 공포와 유머가 서로 주거니 받거니 교차하는데 그 교차하는 타이밍이 절묘하고 매우 효과적이다. 독자의 마음을 조이고 푸는 그 압박장치의 효율이 극대화된 작품이며, 그 압박장치를 쥐고 흔든 당사자인 킹의 재능에 나는 박수를 보냈다(킹 아저씨, 내가 보낸 박수 잘 받았죠?).

게다가 이 단편의 결말은 너무나 아름답다. 뭐랄까... 고요한 12월의 까만 밤하늘을 향해 소리없이 솟았다가 역시 소리없이 활짝 터지는 내성적인 폭죽의 화려함을 겸비한 결말이라고나 할까. 처음에 이 단편의 결말을 접하고 무척 놀랐고 지금도 그 놀라움을 감출 길이 없다. 스티븐 킹, 당신은 정말 멋쟁이~~♥


2. The Man in the Black Suit

1914년, 9살 소년 개리가 혼자서 개천에 낚시를 하러 간다. 한참 낚시에 열중하고 있을 때, 으슥한 숲 속에서 검은 양복을 빼입은 남자가 나타난다. 그 남자가 개리한테 다가온다. 개리는 그 사람의 얼굴을 보는 순간 직감한다. 이 남자는 사람이 아니라 악마다! 그런데다가 검은 양복을 입은 악마는 개리한테 무서운 말들을 마구 쏟아내기 시작한다. 개리는 너무 무서워 죽을 지경이다. 우왕~ 어떡해~ 어떡해~ 나 어떡해~~

단편 <The Man in the Black Suit>을 읽으며 개리가 너무 불쌍해서 혼났다. 악마한테 농락당하는 그 모습이 어찌나 안타깝던지. 악마의 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개리의 속마음이 절절하게 묘사되고 있으며, 그에 발맞추어 어린애한테 상처를 입히는 악마의 악랄함도 화끈하게 묘사되고 있다. 특히 악마의 개성이 여러 장면을 통해 잘 드러나고 있는데, 글을 읽다보면 내가 직접 그 악마와 대면하고 있는 것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이 단편을 읽고 나서 묘한 느낌을 받았다. 사실 이 단편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치부할 수도 있는 소박한 괴담일 수도 있다. 소년과 악마의 만남이 엄청난 대사건으로 발전하지는 않는다. 엄청나게 심오한 작품성을 들이대는 단편소설도 아니다. 마치 TV에서 하는 예쁜 단막극을 감상한 기분이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고 나면 뭔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느긋한 여운이 느껴진다. 이 알 수 없는 거대한 느낌은 어인 일이란 말인가? 나는 생각한다. 그것이 바로 이 소설의 마력이라고. 그리고 킹은 이 마력을 마구마구 휘두른 개구장이 마법사라고.

이 단편은 오 헨리 상과 월드 환타지 상을 수상했다. 이 단편소설의 마력에 푹 빠진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니었나 보다.


3. All That You Love Will Be Carried Away

알피 짐머는 전국 방방곡곡을 떠도는 세일즈맨이다. 그는 더 이상 우울한 인생에 대한 미련을 못 느끼고 자살을 결심한다. 더 이상 사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 그래서 추운 겨울날 모텔방에 투숙하고서 자살을 준비한다. 그러는 와중에 개인적인 보물을 꺼내본다. 그것은 낡은 공책 한 권. 그가 수년간 전국을 돌아다니는 동안 고속도로 휴게소, 공중화장실, 공중전화 박스 등등 온갖 장소에서 수집한 낙서들을 기록한 공책이다. 그 낙서들은 그냥 지나치기에는 상당히 독특하고 재치있는 낙서들이다. 공책을 뒤적이며 상념에 젖던 알피는 문득 정신을 차린다. 아 참! 나 자살하려던 참이었지. 그래서 자살을 시도한다.

별다른 대사없이 거의 알피 짐머의 심리묘사로만 이루어진 단편소설이다. 이렇게 심리묘사로만 진행하는 소설은 자칫 독자들한테 지루함을 안겨주기 쉬운데, 종잡을 수 없는 자살자의 심리를 재치있게 끌고 가는 스티븐 킹의 필력에다, 주인공의 취미가 낙서수집이라는 독특한 취향이 어우러져 결말까지 이야기를 술술 진행시킨다.

이 소설 속에서 우왕좌왕하는 알피의 심정을 지켜보고 있으면 "자살하는 사람이 사실은 삶에 대한 애착이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다"라는 말이 문득 떠오른다. 이 단편은 잡지 편집자의 권유를 받아들여 킹이 결말을 수정했다고 하는데, 나는 킹이 원래 의도했던 결말도 충분히 멋지다고 생각한디. 이 소설은 세상의 모든 알피 짐머들에게 킹이 보내는 응원가니까.


4. The Death of Jack Hamilton

1934년, 은행을 턴 죄로 세 사람(존 딜린저, 호머 밴 미터, 잭 해밀턴)이 경찰한테 한창 쫓기는 중이다. 그 와중에 잭이 심각한 부상을 입어 맘대로 운신을 할 수가 없게 되고 나머지 두 사람은 부상당한 동료의 목숨을 구하려고 애를 쓴다.

이 단편은 위에 언급한 대로 나머지 두 사람이 부상당한 잭 해밀턴의 목숨을 구하려고 애를 쓰는 이야기다. 이 단편에는 극적인 결말이나 놀라운 반전이나 신나는 활극 같은 것이 없다. 그저 물 흐르듯이 유유히 잔잔하게 이야기는 흘러간다.

킹이 이 단편의 끝에 적은 해설을 보면 세 사람은 실존인물 같고, 특히 존 딜린저는 매우 유명했던 갱인 것 같다. 킹은 유명한 갱들을 가지고 우울하지만 어쩐지 아름다운 추억이 느껴지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싶었던가 보다.

그  세 사람이 경찰의 눈을 피해 도망다니는 모습이 소설 내내 추억의 앨범을 펼친 듯 아름다운 분위기로 펼쳐진다. 특히 그들이 평범한 시민의 차를 (강제로) 얻어타고 내빼는 장면이나 소설 마지막에 은신처에서 벌어지는 눈물의 서커스를 묘사하는 부분은 마치 무표정한 일상을 찬란한 무지개에 얹어 확대시킨 것 같은 묘한 색깔을 보여준다.

소설 내내 별다른 자극적인 전개를 보여주지는 않지만, 묘한 색깔을 보여주는 애잔한 복고풍 분위기가 맘에 들었다.


5. In the Deathroom

미국인 플레처는 남아메리카의 어느 나라에서 신문기자로 위장해 스파이 행위를 하다 붙잡힌다. 그리고나서 끌려간 곳은 지하 고문실. 두 사람의 심문관과 무장 경비원과 고문 기술자에 둘러싸인 플레처는 죽음의 문턱에 다가선 것을 실감한다. 심문관은 자기들이 묻는 말에 사실대로만 말하면 미국으로 무사히 돌려보내주겠다고 말하지만 플레처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그러는 순간 고문 기술자는 플레처를 향해 애정의 미소를 보내며 즐거워 한다.

도무지 끝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는 소설이었다. 밀폐된 고문실에서 과연 플레처의 운명이 어떻게 결판날 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그만큼 고문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독자의 마음을 잔뜩 조여온다. 심문관들이 던지는 무거운 질문들. 경비원의 위압적인 자세. 고문 기술자의 나긋나긋한 변태적 취향. 그들을 상대하며 시시각각 마음의 갈등을 일으키면서 말 한마디 한마디를 신중하게 내뱉으면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플레처의 모습. 아아~ 나는 너무 긴장해서 책장을 자꾸만 넘길 수밖에 없었다.

스티븐 킹은 이 단편이 카프카의 소설과 비슷한 분위기라고 평하면서, 이 작품의 결말만큼은 아무리 비현실적으로 받아들여지더라도 카프카의 소설과는 다른 분위기의 결말을 내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 단편의 결말에 대해 어떤 이는 말도 안되는 안이한 결말이라고 비난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이 단편의 결말이 무척 좋았다. 멋있었다. 마치 겨울부터 하루도 빼먹지 않고 헬스클럽에서 매일 3시간씩 운동기구들과 씨름한 끝에 여름에는 새하얀 바닷가 백사장을 찾아가 가랑이의 불룩함을 돋보이게 해주는 초미니 삼각수영복 팬티를 입고서 여자들한테 아름다운 근육을 자랑하게 된 어느 노력파 청년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은 멋진 결말이었다. 이 단편의 쿨한 결말을 읽고 나니 중후한 색소폰 소리가 울려퍼지는 매력적인 배경음악이 내 귀에 들리는 것만 같다.


6. The Little Sisters of Eluria

이 단편소설은 다크 타워 시리즈의 외전이다. 다크 타워 1탄에서는 총잡이 롤랜드가 검은 옷의 남자를 쫓아 사막을 건너는 모험을 겪은 끝에 결국 그 남자를 만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단편 <The Little Sisters of Eluria>는 롤랜드가 사막에 도착하기 전 어느 과거시기에 검은 옷의 남자를 쫓아 정처없이 다크 타워의 세계를 헤매던 젊은 시절의 롤랜드를 등장시키고 있다.

검은 옷의 남자를 쫓아 정처없이 헤매던 롤랜드는 엘루리아라고 하는 마을에 들어서게 된다. 이 마을은 사람들이 살던 곳이었으나 무슨 이유에선지 지금은 폐허로 변해 버렸다. 호기심에 엘루리아 마을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롤랜드는 습격을 받게 되고, 너무 아프게 맞아 정신을 잃고 만다. 그러고나서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 지는 몰라도 롤랜드가 눈을 떠보니 신비로운 빛깔의 천막이 쳐진 진료소 안에 와있는 것이다. 우울하게도 그는 꽁꽁 묶여있는 상태. 더 우울하게도 그는 그 진료소를 관리하는 엘루리아의 작은 자매님들의 방문을 받게 된다. 더더더 우울하게도 그 자매님들의 정체는 생명를 다스리는 간호사들이 아니라 죽음을 다스리는 간호사들이었다. 롤랜드는 도망가고 싶지만 몸이 꽁꽁 묶였는데 어찌하란 말인가? 과연 젊은 시절의 롤랜드는 다크 타워 근처에도 못 가보고 이렇게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인가?

이 단편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숨막히는 긴장감에 몸을 떨어야만 했다.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중환자의 몸으로, 게다가 단단히 묶여있는 몸으로 롤랜드가 당하는 고통이 장난이 아니었고, 그런 그가 어떻게 이 천막 진료소를 탈출할 수 있을 지 너무도 궁금했다. 게다가 그의 싱싱한 육체를 노리고 상당히 변태스럽게 집적대는 자매들의 무시무시한 행동은 이 단편의 뜨거운 분위기에 더욱 불을 붙였다. 으으~ 그 자매님들이 롤랜드의 XX를 가지고 장난치는 장면은 정말 압권!

총만 있으면 누구도 두렵지 않던 청년 롤랜드가 침대에 결박당한 상태로 온갖 수모를 당하는 그 답답한 처지를 처절하게 그리면서도 가끔씩은 번뜩이는 재치로 독자의 마음을 흔들어놓는 스티븐 킹의 글솜씨. 새삼 감탄했다. 특히 소설 후반부에서 롤랜드가 탈출의 실마리를 잡고 처절하게 노력하는 부분에서는 짜릿한 쾌감을 느꼈고, 롤랜드의 성공을 응원했다.

게다가 이 소설은 가슴을 저미는 아련한 슬픔을 안겨주기까지 하니 나는 이 소설을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크 타워 시리즈의 팬이라면, 특히 총잡이 롤랜드의 매력에 푹 빠진 사람이라면 이 단편소설이 정말 맘에 쏙 들 것이다. 내 맘엔 쏙쏙쏙 들었다.


7. Everything's Eventual

새파랗게 젊은 청년 딩크는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니한테서 떨어져 나와 혼자 살고 있다. 왜냐면 어느 날 갑자기 그에게 근사한 집이 한 채 생겼기 때문이다. 덤으로 멋진 차도 한 대 생겼다. 그런데 딩크가 하는 일이 뭔지 아는가? 그는 일주일에 한 번씩 돈을 버린다. 한 주도 빼놓지 않고 꼬박꼬박. 도대체 왜 그런 바람직하지 않은 짓을 하는 것인가?

이 단편소설을 읽는 순간부터 나는 묘한 매력에 휩싸였다. 딩크의 생활이 너무나 신기한 일 투성이였기 때문이다. 일주일마다 돈을 버리고도 여유있는 인생이라니! 소설에서는 초반에 딩크의 일주일 스케줄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는데,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무척 부러운 인생이다. 마치 피터팬처럼 꿈동산에 사는 듯한 인생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그런 인생 대박을 터뜨렸지?

스티븐 킹은 조금씩 조금씩 딩크가 현재의 삶을 살게된 내력을 풀어나간다. 천천히 느릿느릿, 그러다 점점 속도를 높여서 나중에는 마구마구 이야기를 휘몰아친다. 딩크가 겪은 과거와 현재를 알면 알수록 나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찼다. 그는 너무나 특별한 사람이었고, 너무나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가득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킹은 어느 날 문득 한 청년이 하수구에 돈을 갖다 버리는 이미지가 떠올라서 그것을 별다른 어려움없이 이 단편소설로 풀어냈다고 하는데, 정말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멋진 단편이 순간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니 정말이지 글쓰기의 세계란 오묘하기만 하다.

이 소설의 결말에서는 딩크가 어떤 조치를 취하는데, 나는 그것이 실패로 돌아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방이 그런 정도는 미리 예상하고 대처하는 방법을 만들어 두고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 단편의 결말지점에서부터 또다시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질 것만 같다. 한마디로 말해 딩크의 모험 제 2부. 스티븐 킹이 제 2부를 써준다면 나는 기꺼이 감사히 읽을 것이다.


8. L.T.'s theory of pets

L.T.와 룰루 부부는 개 한 마리와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는데, 고양이는 L.T.를 유난히 따르고 개는 룰루를 유난히 따른다. 바꿔 말하면 고양이는 룰루를 유난히 따르지 않고 개는 L.T.를 유난히 따르지 않는 것이다. 이렇듯 부부 사이에 각자 편애하는 동물이 생기다 보니 이상하게도 부부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급기야 어느 날 아내 룰루는 개를 데리고 집을 나가 버린다. 그제서야 L.T.는 떠나간 아내를 목놓아 불러본다. 룰루~ 보고 싶어 여보~ 하지만 공허한 메아리만 울릴 뿐.

이 단편소설은 상당히 웃긴다. 애완동물을 키우며 벌어지는 한 가정의 수난이 스티븐 킹 특유의 유머를 통해 유쾌하게 그려지고 있다. 물론 소설 속 주인공들은 괴로운 심정이겠지만. 특히 남편 L.T.가 아내를 차지하기 위해 개와 벌이는 신경전이 정말 웃긴다. 문득 어쩐지 무서운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웃긴 걸 어떡해! 남편과 아내가 두 동물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이 유머러스하게 그려지는 가운데 점차로 부부 사이가 틀어지는 과정이 나온다. 하지만 그런 과정마저도 유머러스하게 그려지고 있다. 소설을 읽다보니 웃음과 함께 "아, 이 사람들, 애완동물 잘못 키워서 인생 파난나는 구나"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고양이와 개를 키우는 소재를 가지고 이렇게 웃음보따리를 풀어놓는 킹의 유머감각이 좋았다. 사소한 일상을 아기자기하게 엮어놓는 구성력이 돋보였다. 이 단편이 정말 맘에 쏙 들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웃음이 다가 아니다. 아내가 집을 나갔다는 사실을 초반부터 대놓고 밝혔음에도 시종일관 폭소의 도가니를 연출하던 이 소설은 후반부에 슬픔을 등장시키더니 마지막엔 난데없이 생호러를 내놓는다. 난 이렇게 갑자기 소설의 분위기가 급변하는 것에 놀랐다.

눈길을 끄는 것은 결말의 생호러가 이야기를 속시원히 풀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초지종을 확실히 알 수 없는 궁금하고 무서운 상황을 툭 던져놓고는 소설은 끝난다. 웃음이 나왔을 때까지, 또는 슬픔이 나왔을 때까지 이 단편의 매력에 맘을 푹 빼았겼던 독자라면 갑작스레 무서운 공포를 내놓음과 동시에 애매하게 끝을 맺는 것에 분노라든가 울분을 느낄 지도 모르겠다.

난 이 소설의 끝맺음에 분노나 울분을 느끼지는 않았다. 이 소설이 무척 맘에 든다. 하지만 마지막의 무서운 설정이 어떤 진실을 품고 있는 지는 무척이나 궁금하다. 킹을 실제로 만나게 된다면 물어보고 싶다. 당신의 소설 <L.T.'s Theory of Pets>의 맨마지막에 나오는 사건은 과연 어떻게 된 것입니까? 딴사람들한테 소문 안 낼테니 나한테만 말해봐요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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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은 단편집 <Everything's Eventual>에서 가장 맘에 드는 단편이 바로 <L.T.'s Theory of Pets>라고 말한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작품을 낭독할 기회가 있을 때면 이 작품을 읽는 것을 좋아했다. 청중들을 처음에는 마구 웃기다가 후반부에 가선 울리다가 맨마지막에 가선 기겁하게 만드는 분위기가 좋았다는 것이다.

1988년 킹이 자신의 소설 <자루 속의 뼈(Bag of Bones)>를 홍보하기 위해 런던을 방문했을 때, 홍보행사의 일환으로 그는 영국의 팬들 앞에서 또다시 단편소설 <L.T.'s Theory of Pets>를 읽어주었다. 그 때의 낭독실황이 <Stephen King Live!>라는 오디오북으로 나와 있다. 그리고 이 낭독은 그 후 <L.T.'s Theory of Pets>라는 제목을 달고 또다시 오디오북으로 나왔다. 이 두 버전은 모두 1988년에 런던에서 있었던 스티븐 킹의 실제낭독을 수록하고 있는데, 먼저 나온 <Stephen King Live!> 오디오북은 특별히 스티븐 킹과의 인터뷰를 덤으로 수록하고 있다.


9. The Road Virus Heads North

공포소설가 리처드는 우연히 어떤 집 앞에서 헌 물건들을 싸게 파는 것을 보게 된다. 그는 여러 잡동사니 중 그림 하나에 마음을 빼앗긴다. 그 그림의 제목은 "The Road Virus Heads North"였으며, 자동차 운전대를 잡고 있는 기이한 인상의 한 남자를 묘사한 그림이었다. 리처드는 그 그림의 기괴한 분위기가 맘에 들어 돈을 주고 구입한다. 그러고나서 집에 오는 도중에 그 그림을 문득 보았는데 놀라고 만다. 그림이 변해있었던 것이다. 아주 불길한 모습으로.

킹은 그림이 변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한다. 나도 무척 좋아한다. 사진 같은 게 변하는 이야기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왠지 그림이 변하는 이야기라면 무턱대고 무서워진다. 물감을 찍어바른 그림 속에는 무언가 알 수 없는 힘이 숨겨져 있을 것만 같다.

이 단편 <The Road Virus Heads North>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꾸만 변하는 그림 때문에 수난을 당하는 공포소설가에 대한 이야기다. 그림이 변한다는 것을 알기 시작하고 나서부터 불안에 떠는 리처드의 심리가 오밀조밀하게 그려지고 있으며, 그 불길한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 갖은 묘안을 짜내며 고군 분투하는 처절한 모습이 실감났다.

나는 이 소설의 불안감을 자극하는 묘사가 무척 맘에 들었는데, 마지막 결말은 싱거웠다는 생각이 든다. 할 이야기가 더 남아있는데도 매정하게 딱 자르고 "끝"을 외친 듯한 느낌이다. 왜일까? 스티븐 킹은 그 그림이 더 심각하게 변해서 자신을 덮칠까봐 무서워서였을까? (이쯤되면 나는 과대망상인가? -_-;;)

그런데 스티븐 킹의 사무실에는 이 소설에 나온 기괴한 그림이 실제로 걸려있다고 한다. 오호~~ 만약 내가 스티븐 킹의 사무실에 놀러가게 된다면 그 그림 앞에서 손가락으로 브이자를 그리며 킹과 함께 사진을 찍어보고 싶다. 그런데 혹시 사진을 찍는 즉시 그 그림이 나를 추적해서 덮치면 어떡하지? (이쯤되면 나는 정말 과대망상인가? -_-;;)


10. Lunch at the Gotham Cafe

결혼생활이 끝장났다. 스티브에게 작별인사를 남기고 무정한 아내 다이앤은 떠나갔다. 격렬한 고통에 괴로워하는 스티브. 급기야 원만한 이혼합의를 위해 점심식사 자리가 만들어진다. 다이앤과 그녀의 변호사, 스티브와 그의 변호사가 모여 이혼을 협의하는 점심식사 자리. 내키지 않는 자리였지만 다이앤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용기을 내어 스티브는 약속장소인 고담 카페 안으로 들어선다. 그러나 그 고담 카페 안에 들어선 즉시 그는 뭔가 어긋난 상황에 말려들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이 단편소설. 정말 대단한 폭력의 파노라마였다. 좁은 공간배경, 단촐한 등장인물들을 가지고 어마어마한 출력을 가진 폭력의 제트엔진을 순식간에 달아오르게 만든 화끈한 소설. 결말까지 힘차게 전진하는 이야기 전개에 나는 황홀감을 느끼고 말았다. 고담 카페에서 제공하는 특별요리는 스티븐 킹의 일격필살이었다.

소설 초반에는 처량한 스티브의 애달픈 사연에 연민을 느꼈다가 그가 고담 카페에 들어선 이후에는 뭔가 일어날 듯한 불길한 기운을 느꼈다가 그 다음에는 숨쉴 틈 없이 몰아치는 폭력의 롤러코스터에 정신을 빼앗겼다. 폭력이 이루어지는 현장과 관련인물들의 움직임이 치밀하게 펼쳐진다. 소설 제목만 봤을 때는 카페에서 이혼을 하네마네 한 바탕 부부싸움을 벌이는 내용인 줄 알았는데, 뜻밖의 이야기 전개에 놀랐다. 역시 스티븐 킹은 화끈하게 피를 보는 구나. 멋지다.

화끈한 폭력이 이루어지는 와중에도 킹은 짓궂은 유머를 곁들여 놓았다. 카페 주방에서 벌어지는 한 차례의 발차기. 그 어리둥절한 행동에 나는 빙긋 웃을 수밖에 없었다. 소설 속 당사자는 무척 열받았지만, 한창 진지한 상황 속에서 나온 그 황당한 발차기는 폭력의 성찬에 곁들여진 맛깔난 디저트였다.

이혼을 협의하기 위한 식사자리가 난장판으로 돌변하는 내용을 다룬 이 소설이 맘에 들었다. 폭력이 다 지나가고 나서 그 폭력의 원인을 곰곰히 파헤쳐주는 자상한 설명도 재밌었다. "미칠" 지경이었다! 킹의 글솜씨는 언제나 나를 흥분시킨다.


11. That Feeling, You can Only Say What It Is in French

캐롤은 남편 빌과 함께 여행을 떠난다. 비행기를 탄 뒤 렌트카를 대절해 도로를 달린다. 그런데 도로 주변으로 펼쳐지는 풍경을 보고 있는 캐롤은 어쩐지 프랑스어 한 마디가 생각난다. 데자부(deja vu). 주변의 경치가 왠지 낯익은 것이다. 이상하다, 처음 오는 곳인데, 이상하다, 이상하다, 이상하다...

이 소설의 소재는 스티븐 킹 이전에도 수많은 작가들이 써먹었고 스티븐 킹 이후에도 수많은 작가들이 써먹을 것이 분명한 낯익는 소재다(역시 나도 데자부에 시달리는 것인가?). 비슷한 류의 다른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이 소설도 정해진 수순을 밝아간다. 그렇긴해도 나는 이 소설 속에서 펼쳐지는 킹의 느긋한 이야기 전개가 맘에 들었다. 평범한 밀가루 반죽이 있는데 조금씩 조금씩 비틀고 보니 꽈배기가 돼있는 듯한 반가운 기분이다. 꽈배기는 흔한 군것질거리지만 이건 다르다. 스티븐 킹이 만들었으니까! 꽤 맛있다구!

내가 너무 킹의 글에 중독돼 있어서 그런 면도 있겠지만, 흔한 소재에 흔한 전개라도 킹이 내보이는 독특한 분위기는 내 마음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하다. 스티븐 킹 아저씨, 또 꽈배기 만들어줘잉, 또 먹고 싶어잉~~♥


12. 1408

마이크 엔슬린은 으시시한 장소를 체험하고 난 뒤 그 경험담을 책으로 써내는 것이 직업이다. 그런 그에게 절호의 장소가 걸려든다. 뉴욕에 있는 돌핀 호텔의 1408호. 수십명의 사람들이 투숙했다가 죽어나갔다는 공포의 객실인 것이다. 그는 위풍당당하게 그 호텔로 쳐들어간다. 호텔 지배인은 큰일난다며 만류하지만, 마이크는 자신있다며 공포의 객실 1408호에 들어가고 만다. 그리고는 꽝!

이 단편 <1408>을 읽고 나는 충격을 받았다. 아니 이렇게 재미있는 소설이 있다니! 나는 너무 충격을 받아 등을 대고 누워 뒤집어진 거북이 마냥 두손 두발을 허우적대기까지 했다. 알을 낳는 거북이의 눈에 눈물이 맺히듯, 나의 눈에도 눈물이 촉촉히 맺혔다. <1408> 너무 재밌어서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원래 이 소설은 킹이 <유혹하는 글쓰기(On Writing)>에서 원고의 퇴고 과정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사례로 일부만 쓴 것이었다. 그런데 쓰다보니 글에 매혹당해서 결국 완성시키고 말았다. 킹의 심정을 나도 알 것 같다. 이렇게 재미있는 글을 완성 안시키면 사람도 아니다.

글의 초반에 1408호에 들어가려는 마이크를 만류하는 호텔 지배인의 활약이 재밌다. 마이크를 조용히 불러서 1408호에 들어가면 왜 안 돼는지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는데, 그 객실에서 죽어나간 사람들의 사연들을 조목조목 열거하는 지배인의 말솜씨가 발군이다. 내가 듣기에도 그 객실에 들어가면 안 될 것 같다. 그런데도 기어이 고집을 부리는 우리의 멋진 마이크씨.

그가 1408호가 있는 복도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긴장의 연속이다. 그가 조심조심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내딛는 것부터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더니 객실에 정말로 들어가며 이곳저곳을 살피며 괴상망측한 체험을 경험하는 그 장면은 황홀한 이미지의 연속이다. 그러고나면 어느덧 이 소설은 막강한 힘을 터뜨리며 폭발한다. 위기의 발단, 전개, 완료가 한 순간도 책에서 눈을 뗄 수 없는 막강한 글빨에 의해 독자를 거칠게 불잡아놓고 놔주질 않는다. 아아~ 너무나 행복한 구속이었어.

이 단편소설은 처음에 오디오북으로 선을 보였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다보면 음향효과가 들린다면 더 효과적이었을 거라고 짐작되는 부분이 있다. 기회가 된다면 오디오북으로도 들어보고 싶다.


13. Riding the Bullet

이 단편 <Riding the Bullet>은 국내에 <총알차 타기>라는 제목으로 단행본이 나와 있고, 나는 예전에 이 단편에 관해 감상문을 적어 놓았다.

스티븐 킹은 이 단편이 인터넷에 공개되었을 당시의 세상이 떠나갈 듯한 유명세를 떨떠름해 한다. 인터넷 단편소설 <총알차 타기>와 관련해 전자서적의 미래, 인터넷 환경의 진보, 디지털 매체의 보안성과 같은 면만 화제에 올랐다는 것이다. 정작 그 소설의 내용에 대한 비평은 뒷전이었다.


14. Luckey Quarter

달린은 모텔의 객실을 청소하는 가난한 여인이다. 이것저것 원하는 것이 많은 자식들의 마음을 들어줄 길 없어 속상한 어머니다. 그녀가 혹시나하고 기대하는 것은 객실의 팁봉투에 손님들이 남겨놓는 팁. 혹시나 손님이 팁봉투에 어마어마한 거액을 남겨놓고 가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기대를 하고 322호실로 청소를 하러 들어갔다. 팁봉투를 슬그머니 열어보았다. 어헉, 봉투 안에는 달랑 25센트 동전 한 닙뿐. 얄미운 메모가 적혀있다. "이 동전은 행운의 동전입니다. 정말이에요. 아 정말이라니까요! 일단 한 번 믿어주세요. 행운을 주는 동전이라구요!" 달린은 어이가 없어 경찰에 그 손님을 신고하고 싶은 심정이 된다.

이 단편은 단편집 <Everything's Eventual>를 마무리하는 맨마지막 단편이다. 맨마지막을 장식하는 단편답게 잔잔한 여운을 남겨준다.

달린이 팁으오 동전 한 닙을 받아든 순간부터 펼쳐지는 사건들은 환상의 연속이다. 꿈같은 일이다. 믿기지 않는 일이다. 그러니 행운이라 불리우는 것이겠지.

행운의 동전과 달린 사이에 벌어지는 일들을 재치있게 연결하는 킹의 솜씨가 매력적인 단편소설이다. 다이아몬드여, 영원히!


이로써 단편집 <Everything's Eventual>에 실린 14작품 모두를 살펴보았다. 단편집을 읽으며 쾌감을 느꼈지만 이렇게 감상문을 쓰니 또다시 쾌감이 느껴졌다. 킹이 펼쳐내는 세계는 정말 다양하고 오묘하기만 하다. 앞으로도 계속 킹이 만들어내는 세계 속에서 맘껏 수영하고 싶다.

이 단편집에 실린 몇몇 단편들과 관련있는 책 두 가지를 소개하고 넘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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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킹이 소유한 소형출판사 Philtrum Press는 스티븐 킹의 한정판 단편집 <Six Stories>를 펴냈다. 이 단편집은 제목처럼 킹의 단편 6작품을 수록하고 있다. 수록작품은 <Lunch at the Gotham Cafe>, <L.T.'s theory of pets>, <Luckey Quarter>, <Autopsy Room Four>, <The Man in the Black Suit>, <Blind Willie>.

<Blind Willie>는 킹의 또다른 단편집 <내 영혼의 아틀란티스>에 수록되었던 단편 <장님 윌리>의 오리지날 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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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스티븐 킹의 오디오북 <Blood and Smoke>가 나왔다. 이 오디오북은 킹의 단편 3작품을 수록하고 있다. 수록작품은 <Lunch at the Gotham Cafe>, <1408>, <In the Deathroom>이다.

이 오디오북에 실린 단편들은 모두 담배를 주요 소재로 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오디오북의 포장이 어느 유명한 담배갑을 연상하게 한다. 더욱이 이 오디오북의 옆면엔 담배갑을 패러디해서 경고문구가 붙어있다. <경고: 날이 어두어진 후에 청취하면 공포, 전율, 극심한 망상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스티븐 킹의 "열렬한" 팬이라면 이 오디오북을 구입할 가치가 있다. 이 오디오북에 수록된 3작품을 스티븐 킹이 직접 읽어주니까.


단편집 <Everything's Eventual>의 서문에서 킹은 수록된 14작품의 순서를 트럼프 카드를 돌려서 정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다음 단편집의 작품수록 순서는 타로 카드를 돌려서 정하겠다고 예언하고 있다.

킹의 이 말은 다음 단편집이 또 나올 예정이라고 예고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그의 다음 단편집이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으련다. 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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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irl Who Loved Tom Gordon

(1999년 소설)

"엄마 아빠 만나야한다 생각하며 무서움 이겨"

[2004.08.04]

(::지리산 실종 41시간만에 극적 구조된 열한살 정희재군::)

“추위와 무서움은 어느정도 견딜수 있었지만 엄마 아빠를 보고싶은 마음은 정말 참기 어려웠습니다.” 3일 오전 10시30분쯤 경남 함양군 마천면 지리산 백무동 계곡 폭포 주변에서 실종 41시간만에 119구조대에 의해 극적으로 구조된 정희재(11·서울 D초등 4년)군은 부모님을만나야 한다는 희망 하나로 고통을 이겨냈다고 말했다.

정군이 발견된 곳은 지난 1일 오후 7시쯤 실종된 장터목산장~세석산장 등산로에서 4㎞ 정도 떨어진 지역이다.

사고 당일 정군은 아버지 정하이(37·회사원)씨와 가족, 친지 등 7명과 함께 장터목 산장에서 세석산장쪽으로 이동하던중 “앞서가라”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혼자 앞서가다가 길을 잃었다.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으로 배낭을 멘 상태였다.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정군은 아무리 아빠, 엄마를 불러도 대답이 없어 “이젠 정말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사람처럼 보이는 물체가 있어서 달려가 보면 나무였고 또 사람이겠지 싶어 기뻐 달려가 보면 바위만 서 있었을 뿐”이라고 당시의 악몽을 떠올렸다.

그러나 정군은 “계곡의 물을 마시며 배고픔을 달랬고, 밤에는 바위 틈에서 배낭 속에 들어있는 침낭을 꺼내 잠시 잠을 청하기도 했다”며 “비가 올 때는 ‘산에서 비를 맞고 잠을 자면 체온이 떨어져 죽을수 있다’는 아버지의 말을 생각하며 침낭을 머리에 뒤집어 쓴 채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고 말했다. 정군은 밤에 겁이 날때면 “우리나라 산에는 사나운 짐승은 살지 않는다”는 아버지의 말을 떠올리고 “부모님을 만나야 한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불안과 초조를 이겨냈다”고 말했다.

정군은 산을 내려오던 중 미끄러져 이마와 무릎에 가벼운 타박상을 입었을 뿐 매우 건강한 상태였으나 약간의 탈진증세를 보여 함양 성심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부모와 함께 이날 오후 집으로 돌아갔다. 정군 구조에 나선 경남도 소방본부 관계자는 “지리산은 산세가 험한데다 이동통신이나 소방 및 경찰 무전기조차 불통인 지역이 많아 조난 구조 구급업무에 상당한 차질을 빚고 있다”며 “등산을 할 때에는 항상 일행과 함께 행동하고 특히 어린이는 보호자의 10m 이내에서 행동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창원〓정대선기자)

9살 소녀 트리샤 맥팔랜드는 메이저리그 야구팀 보스턴 레드 삭스팀의 열렬한 팬이면서, 그 중에서도 레드 삭스팀의 구원투수 톰 고든을 무지무지하게 좋아한다. 그런 트리샤가 가족과 함께 산에 갔다가 한 순간의 실수로 순식간에 길을 잃고 만다. 아무리 둘러봐도 가족은 커녕 지나가는 등산객 코빼기도 보이질 않는다. 그 때부터 트리샤는 산을 빠져나가기 위해 이곳저곳을 헤매고 다닌다. 별의별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다 당하지만 그녀에겐 힘이 돼주는 것이 있다. 바로 등에 짊어진 배낭 속에 들어있는 워크맨! 워크맨에서 나오는 라디오 야구 중계를 통해 레드 삭스 팀과 톰 고든 선수의 활약을 전해듣는 것으로 고달픈 탈출 인생에 위안을 얻는다.

그러나 산에서 조난당한 지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사흘... 트리샤의 생존을 향한 의지는 거의 바닥나고 이제는 현실과 환상이 제대로 구분이 되지 않는 지경까지 이른다. 그런데 트리샤는 직감한다. 무언가 자신의 뒤를 쫓고 있다는 것을. 그렇다. 강력하고 날카로운 발톱을 휘두르는 조난자들의 신이 트리샤를 노리고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트리샤, 힘내라, 도망쳐! 네가 그렇게도 좋아하는 톰 고든 아저씨가 너를 구해 줄 거야. 그는 "구원" 투수잖아!

레드 삭스 팀의 열렬한 팬인 스티븐 킹이 그 팀의 구원투수 이름이 제목으로 들어간 소설을 썼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야구소설인 줄로 짐작했다. 그러다 나중에 그 소설 줄거리는 제목에 나오는 그 구원투수를 좋아하는 한 소녀가 산 속에서 조난당하는 내용이라는 것을 들었을 때, 난 소설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오묘한 기분에 빠져 별로 흥미를 갖지 못했다. 그러나 스티븐 킹 소설 <The Girl Who Loved Tom Gordon>을 읽고 난 지금. 난 행복하다. 이 소설은 내게 책읽는 재미를 듬뿍 안겨준 어여쁜 소설이었다. 감동의 눈물이 흐른다.

이 소설을 읽으며 나는 킹이 리처드 바크먼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했던 소설 <The Running Man>이 생각났다. 소설 <The Running Man>은 각 장마다 100부터 시작해서 차례로 줄어드는 카운트 다운 숫자를 붙였고, 주인공의 행적을 집요하게 보여주며 빠른 속도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소설 <The Girl Who Loved Tom Gordon>은 야구경기처럼 소설의 각 장마다 1회, 2회 같은 이닝수를 붙였고, 주인공의 행적을 집요하게 보여주며 번개와 같은 속도로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소설 <The Running Man>은 성인 남자가 주인공이었지만 소설 <The Girl Who Loved Tom Gordon>은 연약한 소녀가 주인공이어서 읽는 사람을 더욱 긴장하게 만든다.

9살 소녀 트리샤가 산 속에서 온갖 고생을 다 겪기 때문에 독자들은 긴장의 끈을 놓칠 수가 없다. 정말이지 내 입으로는 표현의 한계를 느끼고, 이 소설책을 직접 읽어야만 실감할 수 밖에 없는 별의별 위기상황들이 등장해서 트리샤를 괴롭힌다. 산에서 일어날 수 있는 위기의 온갖 유형들이 총집합했다고 보면 된다. 정말이지 내가 그 온갖 고생을 겪었다면 10초만에 자살했을 거다.

그런 고생 중 가장 압권은 새끼 송어와의 대결장면이었다. 헤밍웨이 소설 <노인과 바다>를 찜쩌먹을 듯한 대단한 기세로 트리샤가 새끼 송어와 처절한 대결을 펼치다 비위 상하는 순간을 맞이하지만, 그 순간을 강력한 추진력으로 밀어붙여 마무리짓는 과감한 모습에 나는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위기들 속에서 트리샤는 자꾸만 상처를 입기에 독자들은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지만, 그런 상처를 딛고 자꾸만 트리샤는 불끈불끈 일어서기에 방금 전까지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던 독자들은 울다웃어 엉덩이에 뿔난 송아지처럼 느닷없이 흥분하며 트리샤를 응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힘내라, 힘, 힘내라, 힘, 젖먹던 힘까지~, 싸워라, 싸, 싸워라, 싸, 싸워서 이겨라~♥

그래도 소설 속의 위험들은 내가 봐도 너무 심한 것들 일색이어서 트리샤가 안쓰러웠다. 스티븐 킹의 소설을 읽으며 자주 느끼는 감정이지만, 이번에도 나는 소설 속으로 뛰어들어가 트리샤를 팍팍 구해주고픈 충동에 시달렸다. 갖은 고생을 겪으며 애가 실성을 한 나머지 웃다가 울다를 반복하다 급기야는 허깨비로 나타난 톰 고든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수준으로까지 발전한다.

소설 속에서 트리샤는 톰 고든을 자꾸만 생각하고 산 속에서 유일한 친구로서 그를 상상해 내고 그가 자신을 구원해 주리라 생각한다. 처음엔 애가 맛이 갔구나 정도로만 생각되던 톰 고든의 존재가 소설이 진행되면서 독자의 뇌세포를 후려치는 장치로 급격하게 상승하는 모습이 상큼했다. 그런 의미에서 어두운 밤에 달빛을 받으며 숲 속에 주저앉은 트리샤가 워크맨 이어폰을 귀에 꽂고 톰 고든의 경기를 들으며 희망을 갖는 그 처량한 장면이 아름답고도 환상적인 느낌을 가져다 준다.

이야기는 점점 처절하게 진행되는데 가끔씩 빙긋 웃을 수밖에 없는 유머가 쏠쏠하게 등장해서 독자들을 간지럽힌다. 기본적으로 스티븐 킹 본인이 유머러스한 사람이니 그렇겠고, 게다가 이 소설에 나오는 비련의 여주인공 트리샤의 생각과 행동이 가끔씩 너무 웃기고 너무 귀엽다. 이런 딸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책을 읽는 동안 자꾸만 나를 괴롭힐 정도였다(딸을 낳아줄 와이프 구하는 중). 특히나 트리샤가 산 속에서 오랫동안 헤매다 초현실주의 삼인조와 만나는 장면이 압권이었다. 삼인조가 자꾸만 이상한 소리를 해대니까 울컥 열받아서 트리샤가 "아저씨, 술 드셨어요?"를 연달아 부르짖는 그 장면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굉장했다.

아, 그렇다. 조난자들의 신이 있었다. 그 녀석이 트리샤를 농락하듯 접근하는 분위기는 이 소설에서 가장 큰 긴장감을 형성한다. 독자들이 폭력을 예감하는 안타까움에 몸서릴 칠 무렵 트리샤와 조난자들의 신이 정면대결하는 바로 그 순간! 나는 이 장면에서 너무 흥분해서 혈압이 올랐다. 9살 소녀의 모습이라고는 믿기지 않는(그러나 스티븐 킹의 묘사력에 의해 믿을 수밖에 없는) 트리샤의 엄청난 카리스마가 책을 완전히 장악했다. 산에서 만신창이가 되어 금방이라도 죽을 듯한 그 아이가 조난자들의 신과 당당히 대결하는 그 장면은 최근에 내가 전혀 경험하지 못한 전율과 쾌감의 비빔밥을 선사해 주었다. 오예, 베이비!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스티븐 킹이 너무 존경스러웠다. 손주들을 두고 있는 할아버지인 그가 9살 꼬맹이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설을 썼다니. 그 소설에 내가 울고 웃고 급기야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니.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아이가 된다던데 그 말이 사실일까? 아무튼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킹의 마음 속엔 아직도 동심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와 아울러 야한 것만 밝히고 주색에 탐닉하는 나의 정신세계를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재미있고 신나고 흥분되는 소설 <The Girl Who Loved Tom Gordon>. 나는 너무 재미있는 나머지 마지막 3분의 1 분량은 생계를 팽개치고 앉은 자리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다 읽어 버렸다. 그 정도로 몰입감이 대단한 스피드 있는 소설이었다. 이 소설은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톰 고든을 사랑한 소녀>라는 제목으로 번역출간하였다.

소설에서 알 게 모르게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톰 고든 선수는 스티븐 킹이 이 소설을 쓸 당시 레드 삭스 팀의 구원투수로 맹활약했지만, 그 후로 시카고, 휴스턴 등을 거쳐 2005년 현재 뉴욕 양키스 팀 선수가 되어 레드 삭스의 적군이 되었다. 역시 냉정한 승부의 세계인가. 소설 속에서 트리샤가 말한 대로 세상은 이빨을 갖고 있어서 여차하면 물어뜯게 마련인가 보다.

아, 그렇다. 난 이 소설을 읽으며 한 가지 의미심장한 사실을 발견했다. 트리샤는 배낭 속에 든 물건들을 먹고 사용하며 힘든 산 속 생활을 견뎌내는데, 신기하게도 그 물건들의 쓰레기를 산에다 마구 버리지 않고 꼬박꼬박 배낭 속에 집어넣는다. 그렇다. 자연보호가 그녀를 산 속에서 구원한 것이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자연을 보호할 줄 아는 심성 고운 어린이라면 마땅히 구원받을 자격이 있는 것이다. 트리샤를 본받아 나도 자연보호를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하지만 산 속에서 조난당해 죽도록 고생하는 삶을 살기는 싫다.

(소설은 영문판으로 읽었지만 위에 있는 표지는 일본어판의 표지다. 일본 출장 가서 구입한 귀한 일본어판을 선뜻 내게 선물해준 어떤 멋진 분에게 감사하는 의미로 그 책표지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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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 소설 <The Girl Who Loved Tom Gordon>은 그림책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책장을 펼치면 그림이 입체적으로 튀어나오는 팝업북 그림책이다.

소설을 너무 감동깊게 읽고 난 지금, 그림책에 대해서는 딱 한 가지 생각만 떠오른다. 사고 싶다.

...그래서 결국 그림책 구입했다. 대만족이다! 소설을 무척 재미있게 읽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맘에 들어할 만한 멋진 그림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