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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rts in Atlantis

(1999년 소설집)

 고등학교 졸업반이 된 스티븐 킹은 돈을 벌기 위해 공장에서 일했다. 낮에는 학교가서 수업받고, 그 후로는 거의 자정이 될 때까지 단순하지만 위험한 공장 일에 시달리는 생활을 매일 반복하며 돈을 벌었다. 소설가의 꿈을 키우며 투고하는 원고들은 허구헌날 퇴짜맞고, 고된 일상은 한도끝도 없이 계속되자, 킹은 삶에 지친 젊은 대한민국 청년들이 마지막 탈출구로 생각하는 일을 결심하게 된다. "확 군대나 가버릴까?" 그 당시 60년대는 베트남전이 한창이어서 대학에 들어가지 못한 청년들은 징집되어 전쟁터로 보내지던 시기였다. 킹은 엄마에게 군대 가겠다고 말했다. 전쟁을 직접 겪고 나면 멋진 소설을 쓸 수 있을 거라는 흐뭇한 계획과 함께.

킹의 엄마는 그 말을 듣고 버럭 화를 냈다. "병신같은 소리하지마, 스티븐. 너같이 눈도 안좋은 애가 어딜 간다는 거냐. 전쟁터에 나갔다간 제일 먼저 총맞아 죽을 거다. 죽은 다음에 소설 쓸래?"

결국 킹은 엄마의 뜻대로 할 수 밖에 없었다. 장학금을 신청하고, 대출을 받고, 공장에서 일해서 번 돈으로 겨우겨우 대학에 진학했다. 그리고 대학에서 베트남전을 지켜보았다.

킹에게 베트남전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60년대는 어떤 의미로 기억되고 있을까? 킹은 자신의 생각을 담아 1999년에 "Hearts in Atlantis"라는 소설집을 발표했다. 그 소설집을 우리나라에서는 문학세계사에서 "내 영혼의 아틀란티스"라는 제목으로 번역출간하였다.

"내 영혼의 아틀란티스"는 5편의 소설이 모여 있는 소설집이다. 각 작품마다 시간과 장소는 다르지만, 과거의 사건과 인물들이 불쑥불쑥 등장해서 작품들간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주면서 스티븐 킹이 생각하는 60년대가 미국인들에게 남긴 교훈을 독자들에게 이야기해 준다. 그럼 5편의 소설을 차근차근 살펴 보도록 합시다.


<1960년. 노란 코트를 입은 험악한 사나이들 Low Men in Yellow Coats>

11살 소년 바비 가필드는 "인생은 불공평해"라고 말하기를 좋아하는 홀어머니와 함께 살며, 돈에 쪼들려 산다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지 실감하며 지내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바비가 사는 아파트에 테드 브로티건이라는 노인이 이사를 온다. 바비는 테드와 친해지는데, 테드가 노란 코트를 입은 사나이들에게 쫓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바비는 테드와 같이 있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상황은 점점 불리하게 돌아가고, 바비의 인생에 커다란 변화가 생긴다.

"노란 코트를 입은 험악한 사나이들"은 "내 영혼의 아틀란티스"에 실린 5편의 소설 중 가장 길다. 그리고 이 소설집에서 유일하게 공포소설이라고 부를만한 작품이다. 직접 읽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나머지 4편의 작품들은 공포소설이 아니고 순수소설이다. 내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이 소설집에서 첫번째 이야기가 제일 재미있고 흥미진진했다.

 테드는 거의 매일 아파트에 숨어 지내는데, 바비는 그를 대신해 밖에 나가 노란 코트의 사나이들이 오는지 망을 봐주게 된다. 놈들이 나타나면 특별한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에 조금만 주의깊게 살펴 본다면 그들의 접근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특별한 일들이라는 것이 아주 별나서, 아주 사소한 것에도 의미를 부여해서 불안감을 만들어 내는 킹의 솜씨에 잔잔한 흥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은 테드와 노란 코트의 사나이들이 만들어 내는 긴장감 외에도 바비가 여자친구 캐롤 거버, 남자친구 존 설리반, 그리고 윌리 시어먼을 비롯한 불량학생들과 겪는 사건들이 맞물려 돌아간다. 그리고 이 사건들을 통해 바비는 점점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고 성장의 아픔을 겪게 된다. 이 소설 끝에 가면 독자들은 바비라는 소년과 한마음이 되어 그의 아픔에 슬픔을 느끼게 될 것이다. (슬픔을 못 느꼈다면 이 소설을 대충대충 건성으로 읽은 것이다.)

테드는 바비에게 윌리엄 골딩의 소설 "파리대왕"을 추천해 준다. 무인도에 표류한 아이들이 동물적인 본능에 사로잡혀 탐욕스런 살인을 벌인다는 내용이다. 여러분도 시간이 있으면 "파리대왕"을 한번 읽어보시길. "파리대왕"은 "내 영혼의 아틀란티스" 맨끝 이야기까지 줄기차게 등장하면서 이 소설 전체의 주제를 상징적으로 나타내준다.

"노란 코트를 입은 험악한 사나이들"은 스티븐 킹이 창조한 다크타워의 세계와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소설 속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이상한 세계의 묘사에 의아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크타워에 대해 몰라도 소설 이해에는 별 지장이 없으니, 그러려니하고 자연스럽게 읽어나가면 된다. (물론 다크타워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이 소설 속에서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바비의 엄마다. 그녀는 맨날 바비를 구박하고 심지어는 소설 속에서 여러차례 심각한 분위기를 초래하는 인물로 그려지는데, 나쁜 사람같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참 인간적으로 연민을 느끼게 된다. 무책임한 남편의 죽음으로 힘겹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험한 꼴을 당하고도 아들 앞에서 의연해져야 하는 그녀에게 누가 돌을 던질 수 있단 말인가? 돌 대신 돈다발을 던져주기 바란다.

나는 이 소설의 주인공 바비가 불가사의한 어둠의 힘과 접촉한 뒤로 거친 폭력성향에 사로잡히는 것을 보면서 또다른 킹의 소설 "로즈 매더"의 여주인공이 결말부분에서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끌어 안고 사는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스티븐 킹 소설의 주인공들은 엄청난 공포와 위기를 겪고 나면 인간의 연약함에 좌절을 느끼고 어둠의 감정에 끌려 다니는 걸까? 킹을 개인적으로 만나서 물어보고 싶어진다.


<1966년. 내 영혼의 아틀란티스 Hearts in Atlantis>

두번째 소설 "내 영혼의 아틀란티스"는 이 소설이 수록된 소설집과 제목이 같다. 그만큼 이 소설집의 주제가 잘 드러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도박의 세계에 와있는 듯한 느낌이 더 강하게 들지도 모른다.

이 소설은 대학 신입생 피트 라일리가 기숙사에서 트럼프카드 놀이의 일종인 하트에 빠져 학업도 팽개치고 노름에 목숨거는 상황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낙제를 받아 학교에서 쫓겨나면 꼼짝없이 베트남전에 끌려가야하는 상황인데도 기숙사 친구들과 하트에만 열중한다.(하트가 그렇게 좋은건지 체험해 봅시다. 컴퓨터에 보면 지뢰찾기, 솔리테어같은 미니게임들과 함께 나란히 하트게임이 들어있으니 즐겨보시라. 내가 하트게임을 하는 상대는 고소영, 김희선, 김혜수! 만약 컴퓨터에 하트게임이 깔려 있지 않다면 인터넷 게임자료실을 뒤지면 금방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하트로 청춘을 보내고 있는 동안 캠퍼스의 학생들 중에는 반전데모에 열심인 이들도 있다. 피트가 사귀고 있는 캐롤 거버(첫번째 이야기에서 바비의 여자친구로 등장했던 인물)도 그런 운동권학생 중 한명인데, 피트는 그런 그녀를 불안하게 지켜보고 있다. 어느날 캠퍼스에 둥근 원 속에 새발자국이 찍힌 것 같은 모양을 한 평화의 기호와 함께 베트남전을 비난하는 낙서가 그려지고, 기숙사에서는 낙서의 범인을 색출하기 위해 학생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은다. 그리고 그 곳에서 벌어지는 재치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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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두번째 소설은 소설집과 같은 제목을 한 것부터 시작해 여러가지로 범상치 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학업을 중단하고 엄마에게로 돌아간 캐롤은 한번 읽어보라면서 피트에게 "파리대왕" 소설책을 보내주는데, 그 책 속에 위의 배너에 보이는 암호 "사랑+평화=정보"를 써넣었다. 도대체 그게 뭔 뜻이란 말인가?("정보"라는 단어는 미국의 고전 TV시리즈 "죄수"라는 생소한 프로에서 따온 말로서, 한국의 독자인 나로서는 그저 대책없이 그런가보다할 뿐이다.) 단순과격한 B급예술의 세계를 동경하는 B급소년인 나로서는 이런 심오한 상징과 주제 앞에서는 자꾸만 작아진다. 암호의 뜻은 잃어버린 인간의 낙원 아틀란티스대륙으로 가는 정보를 얻으려면 사랑과 평화가 꼭 있어야 한다는 뜻인가? 사랑과 평화가 함께 하면 유익한 정보가 굴러 들어올 것이라는 뜻인가? 모르겠어...모르겠어...

더 당황스러운 건 주인공 피트는 캐롤이 적어 보낸 이 암호를 보고는 막 울어버린다는 것이다. 아니 얘가 왜 우는 걸까? 스티븐 킹이 어떤 의미를 넣어서 집필한 부분일텐데, 난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괴로웠다. 남들이 재미있는 얘기를 하면서 막 낄낄 웃고 난린데, 나 혼자 못 알아듣고 눈만 껌뻑껌뻑 어리둥절해하는 듯한 느낌에 빠져 괴로웠다. 역시 난 B급이 체질이야. 나에게는 "미녀와 왕송충이"같은 소설이 어울리는데. (더 당황스러운 건 이 암호가 소설집 끝에서 또다시 등장한다는 것이다. 도대체 뭔 뜻이길래...)

소설 마지막에서 세월이 흘러 나이 든 피트와 친구가 "그때 우리는 누구나 우리가 현재의 모습과는 다른 무엇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그게 아니었지", "황금인간이라고 생각했지. 나중엔 정신을 차렸지만 말이야." 등등의 말을 할 때도 혼란은 계속됐다. 도대체 무엇을 반성하고 있는 것인지? 하트나 치며 사회에 관심을 두지 않던 거? 반전데모하던 거? 사랑과 평화의 의미를 잘못 이해하던 거? 나에게는 의문의 연속이었다.

이 소설은 베트남전을 경험못한 미국의 신세대 젊은이들이 선뜻 공감하기 어려운 정서를 깔고 있다고 생각한다. 소설의 많은 부분을 하트얘기로 채우고 정작 베트남전과 반전데모에 관련된 주제는 심오한 암호같은 표현들에 가려져 버린 것 같다. 뭔가 아련한 슬픔같은 것이 느껴지는 것 같은데, 그게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소설의 3분의 2까지는 정말 좋았다. 세상에 이렇게 재미있는 소설이 있네하고 감탄하며 읽었지만, 마지막 3분의 1- 피트가 캐롤의 암호를 보는 순간부터 내가 감당키에는 버거운 관념의 세계로 올라가 버린다.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을 좀 더 명확하게 표현했더라면 좋았을텐데. 내 생각엔 스티븐 킹이 자기 세대의 과거사를 "우린 그땐 그랬었지!" 식으로 좋게좋게 표현하다보니 좀 오버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난 이 소설에서 심각한 주제는 지나치고 그냥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사랑, 질투, 집착, 두려움, 때늦은 후회)를 느끼며 편안하게 읽었다.

이제까지 두번째 이야기에 대해 별로 안좋은 얘기들만 죽 늘어 놓았지만, 사실 이 소설은 정말 재미있다. 진짜다.(불꽃튀는 러브신도 나온다.) 철없는 대학 신입생들과 하트도박과 평화기호 낙서사건이 어울려 돌아가며 아기자기한 재미를 선사한다. 특히 기숙사 안에서 낙서의 범인색출을 놓고 벌어지는 기숙사측과 학생들의 기싸움/말싸움은 소설읽기의 재미를 선사해 주었다. 여러분도 꼭 이 소설을 읽어 보고 자신만의 느낌을 가져보기를 추천한다. 여러분이 이 소설을 읽고나면 나를 욕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렇게 멋진 소설에 도대체 흠잡을 데가 어디있느냐고. 그때는 제가 단순미학을 추구하는 B급소년이라는 것을 감안해서 용서해주시길 바래요. (나쁜 점만 말하다가 막판에 가서야 좋은 얘기를 늘어놓다니. 마치 병주고 약 준 느낌이다. 스티븐 킹 미안해요. 나중에 만나면 한잔 살께요. 막걸리 좋아하시죠?)


<1983년. 장님 윌리 Blind Willie>

세번째 이야기 "장님 윌리"는 첫번째 이야기에서 바비와 캐롤을 괴롭히던 불량학생들 중 한명인 윌리 시어먼이 주인공이다. 이 소설은 그의 하루 일과를 집요하게 추적한다.(너무 집요해서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는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부상을 입고 시력이 약해진다.(그러나 완전 장님은 아니다.) 현재는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가는 곳마다 가명을 쓰고 변장을 하고는 거리에서 상이용사 장님으로 행세하며 구걸을 한다. (수입은 굉장히 좋다. 사무실까지 갖추고 있을 정도니.) 사업에 어려운 점은 좀 있지만 그런대로 참아 넘기며, 집에서는 사랑받는 남편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며 하루 일과를 평화롭게 마감한다.

이 소설은 윌리가 겪는 베트남전의 상처와 혼란을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그토록 괴로워하는 베트남전이지만 그걸 구실로 거리에서의 구걸에 이용하는 모습은 참 아이러니하다. 먹고 살려고 과거의 악몽을 매일같이 끄집어내 돈벌이에 이용하다니. 참으로 끔찍한 인생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자신의 모습을 가명 속에 감추고 사는 일에 익숙해진 것 같다. 소설 마지막에 가면 그는 자신의 사업에 방해되는 일을 해결하기로 결심하는데, 그때마저도 가명을 지어내서 자신을 합리화시킨다. 그야말로 전쟁이 만들어낸 모순적 인간이라 할만하다.

이 소설은 1994년 다른 작가들과의 공동작품집 "Antaeus No 75/76"과 1997년 킹의 한정판 소설집 "Six Stories"에 실렸었던 것을 "내 영혼의 아틀란티스" 분위기에 맞게 고쳐 쓴 것이다.


<1999년. 우리는 왜 월남에 갔던가 Why We're in Vietnam>

네번째 이야기 "우리는 왜 월남에 갔던가".

첫번째 이야기에서 바비 가필드의 친구로 나왔던 존 설리반의 이야기다. 그는 지옥같던 월남전에서 돌아온 뒤로 중고차 판매를 하며 그럭저럭 지내지만, 수십년 전 전쟁의 악몽으로부터 전혀 자유롭지 못하다. 전쟁터에서 동료가 살해했던 베트남 할머니 귀신이 그를 졸졸 따라 다니기까지 한다. 그런 그가 동료 참전용사의 장례식에 갔다오는 길에 일생일대의 초자연적 현상과 만나게 된다.

존이 동료의 장례식장에서 예전의 부대장교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과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겪는 일이 번갈아가며 서술되는 형식으로 소설이 진행된다. 소설 내내 전쟁의 후유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가 흘러 나온다. 그리고 소설은 그런 전쟁 후유증은 죽을 때까지 갖고 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환상적"으로 보여준다.

앞서도 말했듯이 "내 영혼의 아틀란티스"에서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은 소설은 첫번째 얘기 "노란 코트를 입은 험악한 사나이들"이었지만, 가장 인상깊게 읽은 소설은 네번째 얘기 "우리는 왜 월남에 갔던가"이다. 흔히 문학평론가들이 남미문학을 말할 때 '마술적 리얼리즘'이란 용어를 쓰곤 하는데, 그게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이 네번째 얘기가 그런 용어에 딱 어울릴 것 같다. 네번째 이야기 마지막 부분에 가면 환상이 극에 달해 도리어 현실처럼 느껴지는 장면이 등장한다. 나는 그 장면에서 흐르는 강렬한 에너지에 이끌려 마구 폭주하며 읽었었다. 요근래 책을 읽으며 흥분해 보긴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그 장면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에 대해 입도 뻥끗 안하겠다. 여러분도 모두들 책을 구해서 읽어보고 나와 같은 감정을 느껴봤으면 좋겠다. 정말 멋져!


<1999년. 밤의 거룩한 장막이 내리다 Heavenly Shades of Night are Falling>

마지막 다섯번째 이야기 "밤의 거룩한 장막이 내리다"는 아주 짧다. 다섯번째 소설이라고 말하기보다는 앞선 네가지 이야기들을 차분하게 정리하는 에필로그 정도로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들이 과거의 중요한 장소와 물건들과 뜻하지 않게 만나게 되어 지난 날들을 돌아보고 아련한 감정한 빠진다는 내용이다. 잔잔한 마무리가 소설집의 끝을 장식하며, 독자들의 머리 속에 앞의 네가지 이야기들을 다시 한번 생각나게 만들고, 마음 속을 따뜻한 감정으로 물들게 할 것이다.


평소 킹의 작품들 속에서 -예를 들자면 Different Seasons같은 작품들- 비쳐지던 문학적 감성을 사랑했던 독자라면, "내 영혼의 아틀란티스"가 멋진 선물이 될 것이다. 그만큼 이 소설집은 킹이 거친 공포의 세계를 잠시 접어두고, 메마른 인간의 마음과 아픔의 인생을 직접적으로 다룬 문학소설이다. 평소 킹은 자신이 그저그런 대중소설 작가라고 겸손하게 말하곤 했지만(그의 진짜 속마음은 알 길이 없다), 이번 소설집은 그의 능력이 결코 공포장르에만 제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렸다.

"내 영혼의 아틀란티스"는 "공포소설"로서의 재미는 덜하지만, "소설"로서의 재미는 뛰어나다. 많은 사람들이 이 소설집을 통해 스티븐 킹의 감수성과 가까워지는 기쁨을 누리길 기대한다.

"내 영혼의 아틀란티스"는 안소니 홉킨스 주연으로 영화화되었다. 국내에는 "하트 인 아틀란티스"라는 제목으로 비디오와 DVD가 출시되었다. 원작소설을 읽고난 후 영화를 보게 되면 감회가 새로울 것이다.

마지막으로 "내 영혼의 아틀란티스"와 관련있는 작품을 하나 소개하면서 이 감상문을 끝맺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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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의 "출판인생 25주년 기념파티"에서는 참석자들에게 얇은 책 한권이 선물로 주어졌다. 그 책은 킹이 설립한 출판사 Philtrum Press에서 펴낸 것인데, 검은색 표지에 평화의 기호가 그려져 있었다. 책의 제목은 "The New Lieutenant's Rap". "내 영혼의 아틀란티스" 중 네번째 이야기 "우리는 왜 월남에 갔던가"를 킹이 다시 쓴 것인데, "우리는 왜 월남에 갔던가"보다 분량이 더 많고 줄거리도 좀 다르다고 한다. 그리고 "The New Lieutenant's Rap"은 킹이 직접 손으로 쓴 자필원고가 그대로 인쇄되어 있다. 더 좋은 것은 이 책과 함께 평화의 기호 장식이 달린 목걸이도 선물로 따라왔다는 것이다. 기념파티에 모인 사람들 정말 좋았겠다. (이제 알겠죠? 킹과 개인적으로 친하게 되면 공짜선물의 행운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그 후 "The New Lieutenant's Rap"은 킹의 팬들 사이에서 수집용으로 거래되었는데, 가격이 수천달러를 호가한다. (이제 알겠죠? 그 기념파티에 모였던 사람들이 선물받은 책을 팔아 한몫 단단히 챙겼다는 것을!)

I Was a Teenage Grave Robber

작품 감상문 2007. 5. 12. 00:03 posted by 조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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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s a Teenage Grave Robber

(1965년 단편소설)

 스티븐 킹의 논픽션 "유혹하는 글쓰기(On Writing)" 속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킹이 베스트셀러 작가로 성공해서 LA의 한 서점에서 사인회를 하고 있을때, 어떤 아저씨가 종이원고를 들고서 킹 앞에 섰다. 킹은 그 아저씨의 정체를 알고는 깜짝 놀랐다.

1960년 14살이 되던 해, 킹은 Spacemen이란 SF잡지에 소설을 투고했었다. 킹이 기억하기로는 원고를 투고한 건 그때가 난생 처음이었다. 그러나 보냈던 원고는 잡지에 실리지 못했다. 그러니까 투고해서 퇴짜맞은 것도 그때가 난생 처음이었다.

유명작가가 된 킹의 사인회에 나타난 아저씨는 바로 그 옛날 Spacemen 잡지의 편집인이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종이뭉치는 그 옛날 킹이 난생 처음으로 투고했었던 소설원고였다. 11살때 엄마한테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았던 타자기로 완성시킨 원고. 잡지 편집인은 얼굴도 모르는 한 소년이 보냈던 퇴짜원고를 20년이 넘도록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스티븐 킹에게 원고에 사인해 달라고 말했다. 킹은 당황스런 마음으로 원고에 사인해 주었다. (편집인의 집 얘기가 나오는 걸로 봐서, 그 후 킹은 편집인의 집을 방문했던 것 같다.)

인기작가가 되어서 20년전 어릴 때 썼던 자신의 소설을 만나본 기분은 어떤 것일까? 글쎄... 내가 인기작가가 되어 본 적이 없으니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 인기작가가 어릴 때 썼던 소설을 접하게 된 팬의 기분은 어떤 것일까? 그건 내가 경험해 보았으니 말해줄 수 있다. 하늘이 무너지고 바다가 갈라지는 느낌이었다고. 우주 끝까지 달려가 하나님과 점심을 같이 먹고 다시 지구에 돌아와 핑클 콘서트에 참석해서 "핑클짱!"을 외치며 눈물을 흘리는 느낌이었다고...

지금 소개할 단편소설 "I Was a Teenage Grave Robber"는 1965년 킹이 19살 때 Comics Review 잡지에 발표했던 소설이다. 잡지에 실리는데 성공한 최초의 스티븐 킹 소설이다. 그전까지는 잡지사로부터 퇴짜맞았다는 통지서만 잔뜩 받았었다. 이만하면 꽤 의미깊은 작품 아닌가? 그런데 Comics Review에 실렸던 것은 무시해도 좋을 정도로 의미가 없었나보다. "On Writing"에서 킹은 이 소설이 66년 Stories of Suspense 잡지에 실렸던 것을 최초의 잡지출판이라고 말하고 있다. 내가 읽은 원고도 66년도 원고다. 이 잡지에 실렸다고 킹이 직접적인 원고료를 받았던 것은 아니었다. 이 잡지는 공포장르의 팬들이 모여 만든 팬잡지였기 때문이다.(요즘 만화동아리에서 펴내는 동인지 정도의 개념이다.) Stories of Suspense에 실리면서 편집인이 이 소설의 제목을 "In A Half World Of Terror" 로 바꾸어 놓았다. 그래도 킹은 처음 자기가 붙인 제목이 더 맘에 든다고 한다. 나도 처음 제목이 더 맘에 든다. "I Was a Teenage Grave Robber". 우리말로 하면 "나는 무덤파는 청년이었다" 정도? 왠지 뭔가 불길한 일이 일어날 듯한 직설적인 멋진 제목 아닌가?

위에 보이는 그림은 66년 발표될 당시 소설에 붙어있던 삽화이다. 초췌한 모습의 남자가 해골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고, 그 옆에서 갈기갈기 찢어진 원피스를 걸친 섹쉬한 여자가 불편한 자세로 해골을 쳐다보고 있다. 그 두사람 주위에는 정체불명의 눈동자들이 어둠 속에서 번뜩이고 있으며, 삽화 밑에는 편집인이 지어 붙였다는 제목 "In A Half World Of Terror"가 떡하니 버티고 있다.

대니는 무척 불행한 청년이다. 사고로 부모를 잃고서 어렵게 생활하다 사기까지 당해서 힘들게 들어간 대학을 어쩔 수 없이 휴학하게 된다. 앞길이 막막한 그는 비밀스러운 연구를 하고 있는 와인바움 박사로부터 아르바이트 제의를 받는다. 보수는 좋았지만, 그 아르바이트란 밤중에 몰래 공동묘지에 가서 무덤을 파고 시체를 빼내오는 일이었다. (이 대목에서 박사는 대니에게 자신의 일을 합리화시킨다. "연구소같은 데서 일하는 과학자들은 시체를 기증받는다든지 해서 여러가지 합법적인 경로로 실험재료를 맘껏 얻을 수 있지만, 나같이 고독하게 홀로 연구를 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그런 혜택이 없으니 내가 직접 실험재료를 구할 수 밖에 없지.") 그놈의 돈때문에 대니는 무덤을 파고 시체를 박사에게 전해주게 되고, 두둑한 보수와 함께 다음에 또 도와달라는 말을 듣는다.

시체를 건드렸다는 것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가던 대니는 난폭한 친척 아저씨한테 끌려가던 아름다운 아가씨 비키를 구해주게 된다. 대니는 비키를 사랑하게 되고, 둘은 극장에서 영화를 보며 데이트한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도중, 와인바움 박사의 조수가 대니를 찾아 극장으로 전화를 걸어온다. 대니가 전화를 받자-

"극장에서 빨리 나와! 우리를 살려-"

갑자기 조수가 말을 않더니 비명소리만이 들린다. 그리고 전화가 끊어진다. 위급상황임을 직감한 대니는 차를 몰고서 비키와 함께 와인바움 박사의 집 겸 연구소에 도착한다. (이때 감탄스럽게도 비키가 박사의 집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 "나 이 집 알아요! 예전에 친척아저씨가 이 집에서 박사를 도와 일했어요. 아저씨가 점심 도시락을 놓고 가서 여기로 내가 직접 도시락을 갖고 왔었죠. 아저씨는 이런 데 함부로 오면 안된다고 막 화를 냈지만요.") 어쨌거나 대니와 비키는 으스스한 비명이 울려 퍼지는 와인바움 박사의 집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정말 겁도 없는 애들이죠?

나는 이 단편소설을 읽느라고 정말 눈이 아팠다. 이 소설이 실렸던 Stories of Suspense가 몇 십년 전에 나온 팬잡지니까 요즘 잡지같은 깔끔한 모습은 전혀 없다. 위의 삽화를 보면 알겠지만 펜으로 쭉쭉 그린 그림이고, 킹의 소설은 타자기로 친 원고가 그대로 실려 있다. 게다가 내가 읽은 원고는 그 잡지를 복사해 놓은 것이어서 어느 페이지는 너무 흐려서 글씨들이 제대로 보이지 않고, 또 어느 페이지는 너무 진해서 뒷페이지 글씨랑 겹쳐서 복사되어 혼란스러웠다. 너무 흐리거나 너무 진해서 잘 알아볼 수 없는 글씨들은 추리해 가면서 짐작으로 읽을 수 밖에 없었다. 너무 고단한 작업이었다. 나는 이제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독하려고 몸부림치던 나폴레옹시대 프랑스 고고학자의 심정을 이해할 수가 있을 것 같다.

힘들게 읽었지만, 내용은 내가 좋아하는 B급 공포소설 특유의 단순하면서도 과격한 내용이어서 즐거웠다. 결말에 가면 대니는 사건현장에서 박사의 일기장을 발견하고서 사건의 전모를 알게 된다. 박사가 실험을 위해 시체들에 방사능을 투사하자 시체에 우글거리던 조그만 구더기들이 돌연변이를 일으켜서 커지고 엉겨 붙더니 거대한 구더기로 탈바꿈한 것이다. 쉽게 말해 구더기들이 변신합체해서 왕구더기가 되어버렸다. 그 결과 시체 3구에서 나온 구더기들이 왕구더기 3마리로 변했던 것이다. 왕구더기들은 시체가 있던 유리관을 부수고 나와서는 박사와 조수를 꿀꺽!

결국 대니와 비키는 구더기들을 처치하게 되는데, 내 생각엔 왕구더기들을 그대로 놔뒀더라면 더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었을 것 같다. 왕구더기가 자라서 괴물 왕파리가 되는 것이다!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다니다 마음에 드는 인간이 있으면 급강하하여 형편없이 울퉁불퉁한 송곳니들로 사람머리를 어그적 어그적~. 인간과 괴물 왕파리의 목숨을 건 한판승. 무승부는 전혀 없는 그 처절한 대결이 흥미롭지 아니한가? 패배는 죽음뿐이닷! 왕파리는 패배한 인간의 몸에 알을 낳고 그 알에서 또다시 왕구더기가 나오고 그 구더기가 또다시 왕파리가 되고... 돌고 돌고 돌고... 이거 완전히 에일리언 곤충버전이군.

사람이 늙으면 애가 된다는 말이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어린 시절에 향수를 느끼게 되고 어린 시절의 행동을 하게 된다. 요즘 킹의 작품을 보면 초자연적인 공포보다는 인간 존재의 어두운 면에 치중해서 무겁고 진지한 감이 있는데, 가끔씩은 초심(初心)으로 돌아가 어린 시절에 썼던 것 같이 단순하고 발랄한 B급 공포소설도 발표했으면 좋겠다. 그러기엔 이제는 너무 유명해져서 안될까? 그래도 최소한 왕파리가 나오는 소설은 꼭 써줬으면 좋겠다. 난 B급을 사랑하니까. I Was a Teenage Grave Robber 같은 멋지고 발랄한 소설을 읽으면 너무 좋아서 막 환장하니까.

악몽과 몽상 / Nightmares & Dreamscapes

작품 감상문 2007. 5. 11. 23:59 posted by 조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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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ghtmares & Dreamscapes

(1993년 단편집)

Nightmares & Dreamscapes는 Night Shift와 Skeleton Crew에 이은 스티븐 킹의 세번째 단편집이다. 이 단편집은 나의 스티븐 킹 독서인생에서 두번째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이다. 첫번째로 중요한 작품은 It 이다. It은 내가 맨처음 읽은 킹의 작품이어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작품이고, Nightmares & Dreamscapes는 It을 읽고 나서 그 다음에 두번째로 읽은 킹의 작품이라서 두번째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작품이다. (너무 당연한 얘긴가?)

It을 읽고나서 킹이라는 작가에게 너무 반한 나머지 나는 한달동안을 벼르고 별려서 책방으로 달려가 Nightmares & Dreamscapes (제목이 너무 길어서 N&D로 줄여 부르고 싶다)를 샀다. 킹이라는 남자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서였다. (이거 완전히 연애감정 비슷해지는군.) 그리고는 단편집을 읽으며 너무 행복했다. 왜냐! 너무나도 푸짐한 킹의 단편들을 맘껏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N&D는 예전에 나왔던 단편집 Night Shift의 두배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을 자랑한다. N&D에 소개되는 단편은 총 24편이나 된다.

N&D는 스티븐 킹이 팬들을 위해 마련한 뷔페다. 맘껏 골라먹는 재미가 있는 뷔페. 나는 그 뷔페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즐기는 동안, 킹이라는 작가가 감탄할만한 독특한 상상력의 소유자이면서 그 상상력을 글로 풀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독특한 상상력의 소유자는 이 세상에 많고많지만 그 상상력을 글로써 효과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N&D 이후로도 그의 작품을 계속 구해서 읽어나가기로 결심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만약 내가 N&D를 못 읽었다면 킹이라는 작가는 한번 읽고서 그냥 지나치는 작가가 됐을 것이고, 그 결과 오늘날 여러분이 지금 방문하고 있는 이 홈페이지도 생겨나지 못했을 것이다. (너무 거창하게 표현하니까 마음이 뿌듯하다.)

N&D에 소개된 단편들은 모두다 하나같이 독특하고 나름대로의 분위기를 간직한 멋진 작품들이다. 우리나라에도 번역되어서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책 앞에는 킹이 쓴 서문이 나와 있고, 책 뒤에는 작가후기도 나와 있어서 그 둘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특히 작가후기에는 책 속에 소개된 주요단편들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어서 유익했다. 자 그럼 거두절미하고, 본격적으로 N&D의 세계를 탐사해 봅시다!


1. Dolan's Cadilac

매우 평범한 남자의 아내가 조폭두목 돌란에게 살해당한다. 가슴 속에 짐작할 수 없을 정도의 한을 품은 매우 평범한 남자는 캐딜락을 타고 다니는 돌란에게 복수할 기회만을 노린다. 그는 드디어 매우 평범하지 않은 특별한 복수방법을 생각해내게 되는데, 그 실행과정이 너무나 처절하다.

정날 너무나 멋진 소설이다. 소설 내내 흐르는 그 처절한 분위기는 읽는이를 압도한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평범한 남자와 돌란이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은 마치 옆에서 목격하는 것처럼 생생하게 전해진다. 그 짜릿한 감동의 순간!

어느날 스티븐 킹은 차를 타고 가다가 도로공사 중인 곳에서 교통체증에 시달린다. 그 때 킹의 차 바로 앞차가 캐딜락이었고, 그 근처에 하필 캐딜락만한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걸 보고 문득 킹의 머리 속에 Dolan's Cadilac의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한다. 그러나 이 소설은 막상 쉽게 쓰여지지 않았다. 킹은 팬들과 비평가들에게 수시로 과학적/기술적 세부묘사가 빈약하다는 비판을 들어왔다. (특히 그를 자주 괴롭힌 비평가 이름이 N&D 작가후기에 실명으로 지목된다.) 더우기 Dolan's Cadilac은 주인공의 복수과정에 매우 수학적이고 물리학적인 설명이 필요한 소설이어서, 킹은 많이 고심했다. 그러다 어려서부터 천재라는 말을 듣고 자란 그의 형 데이브 킹에게 도움을 청했다.

킹의 설명에 의하면, 형 데이브는 아이큐가 150이 넘고, 18살에 대학을 졸업해 곧장 고등학교 수학교사로 일했으며, 25살에 메인주 행정관리가 되었다. 정말 부러운 인생이 아닐수 없다. 형은 동생의 SOS 요청을 받고서 비디오테이프를 보내왔다. 그 테이프에는 움직이는 자동차의 물리적 특성에 관한 자세한 설명이 들어 있어서, 킹은 무사히 Dolan's Cadilac을 끝마칠 수 있었다. (킹에게 찍힌 그 비평가가 Dolan's Cadilac을 읽고 무슨 말을 했을지 궁금하다.) 형제는 용감했다...인가?

나는 길을 가다 아이디어를 찾아내서 이처럼 멋진 소설을 써내는 스티븐 킹의 꼼꼼하고 냉철한 관찰력에 감탄하고 말았다. 나도 길을 걸으면서 지나치는 여성들의 얼굴과 몸매를 꼼꼼하고 냉철하게 관찰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나중에 나도 킹처럼 뭔가 대단한 일을 저지르지 않을까?

Dolan's Cadilac은 영화제작이 진행되고 있다. 조폭두목 돌란역에 크리스찬 슬레이터가 예정되어 있다는데, 부디 소설만큼이나 분위기있고 처절한 영화가 탄생하기를 기대해본다.


2. The End of the Whole Mess

천재 동생을 둔 형이 동생의 착한 행동을 고백하는 형식의 소설이다. (천재동생의 실제 모델은 킹의 형 데이브였다.) 평화로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착하게 되어 전쟁도 사소한 다툼도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동생이 일을 저지른다. 그리고 동생의 바램대로 세상 모든 사람들이 착하게 변모하게 된다. 그러나 인위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진 일인만큼 세상사람들은 그만큼의 부작용에 노출되게 된다.

차분하게 전개되는 이 소설은 동생을 바라보며 연민을 느끼는 형의 시선이 잘 드러나있다. 동생의 행동으로 세상이 이상하고 끔찍한 모습으로 변하게 되는 과정이 진지한 분위기 속에 흥미롭게 묘사되었다. 특히 맨마지막 부분을 마무리짓는 스타일에서 킹의 솜씨가 돋보인다. 그 기괴하고 씁쓸한 분위기의 마무리가 나처럼 섬세한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만든다. 이 소설대로 인간들이 쓸모없게 되면 세상은 누가 지배하게 될까? 나는 닭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3. Suffer the Little Children

초등학교 여교사 미스 시들리는 아주 무서운 선생님이다. 수업중에 딴짓하는 아이들을 따끔하게 혼내주는 일에 발군의 실력을 보인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는 우연히 반 아이 중 한명이 괴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더 끔찍한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괴물로 변하는 아이들의 수가 점점더 늘어만 간다는 것이다. 이런 열악한 교육환경 속에서 과연 미스 시들리의 눈높이 교육은 무사히 실현될 수 있을 것인가?

Suffer the Little Children은 원래 78년도 킹의 첫 단편집 Night Shift에 수록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책의 분량이 너무 두꺼워질것을 우려한 편집자와의 투표 끝에 탈락하고만 비운의 단편이다. (그때 킹이 탈락후보로 생각한 작품은 Gray Matter였다. 맥주을 잘못 마신 아버지가 괴물로 변한다는 단편.) 이런 멋진 소설이 탈락이었다니! 난 이 소설이 매우 맘에 들었다. 주인공이 처한 위기상황이 점점더 그녀를 압박하는 전개가 흥미진진했다. 킹도 Suffer the Little Children이 레이 브래드버리라는 작가의 소설분위기를 간직하고 있어서 맘에 쏙 든다고 말했다. (레이 브래드버리는 SF작가라는 꼬리표가 붙어다니지만,-대표적으로 시공사에서 출간된 "화씨 451도"- 실제로는 SF보다는 다른 형식의 소설이 더 많다고 한다. 그의 소설 Something Wicked This Way Comes는 공포소설 베스트 10에 선정된 불후의 명작이다. 도대체 어떤 책인지 구경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


4. The Night Flier

3류잡지 기자가 비행기를 몰고 다니며 엽기적 살인행각을 벌이는 흡혈귀를 추적한다. 흡혈귀를 쫓는 사람의 심정은 어떤 것일까? 잠자다 깜짝 놀라 모기를 쫓는 혼란스런 아저씨의 심정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을까?

The Night Flier에서 기자로 등장하는 Richard Dees는 79년작 Dead Zone에서도 등장했던 인물이라고 한다. (나는 데드존을 아직 못읽어봤음.) 자칫하면 1회용으로 끝날수도 있었을 지나가는 캐릭터를 다시 불러내 재활용하는 킹을 통해 우리는 그의 섬세한 캐릭터사랑을 엿볼수 있다. (뭔 소리냐?)

비행기를 조종하는 흡혈귀가 등장하므로 비행기와 공항이 자주 등장하는 소설이다. 주인공 기자도 비행기를 몰게 되는데 그 격렬한 착륙순간의 묘사가 일품이다. 후반부에 기자가 흡혈귀와 직접 마주치게 되는 장면은 긴장감의 극을 달린다. 연약한 인간과 상대적으로 강자인 흡혈귀의 만남은 읽는이에게 인간은 약자일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마늘을 다져서 온몸에 마구마구 발랐더라면 흡혈귀도 조금은 무서워하지 않았을까? 마늘인간 대 흡혈귀의 대결이라...)

The Night Flier는 영화화되었으며, 국내에 "나이트 플라이어"라는 제목으로 비디오출시되었다. 동네 비디오가게에 가보면 있을 것이다. 만약 없다면 비디오가게에서 난동을 부려서 (자기 손을 깨물어 피를 쪽쪽 빨아먹는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주인아저씨가 테이프를 구해오게 만들자. 난 영화는 보지 못했지만, 국내 극장개봉 당시 영화잡지들의 평은 별로 호의적이지 못했다.


5. Popsy

한 남자가 쇼핑센터에서 서성거리던 꼬마를 유괴한다. 꼬마를 차에 집어넣고 쏜살같이 운전해서 도주하는데, 꼬마가 손목에 채워진 수갑을 고장낼 정도로 무척 힘이 세다. 주사바늘로 겨우 꼬마를 진정시키지만, 꼬마가 자꾸만 "팝시가 와서 유괴범을 혼내줄것이다"라고 겁을 준다. 그럼에도 유괴범은 흔들리지 않고 운전을 계속 하는데, 뭔가 불길한 일이 일어나려 하고 있었다.

참으로 오묘하고 재미있는 소설. 군더더기없이 스피드있는 전개에 공포소설 특유의 분위기가 원없이 묻어나는 정통호러. 유괴범의 시점에서 사건이 벌어지니 흥미만점의 스릴이 만발한다.


6. It Grows on You

스티븐 킹 초기 작품들의 무대가 되었던 캐슬록마을 노인들이 모여서 언덕위의 집을 이야기한다. 캐슬록마을 언덕 위에는 집 한채가 서있다. 공장을 운영하는 부유한 남자의 집인데 공장이 다른 마을에 있어서 캐슬록 경제에 별 도움이 되지 않고, 굉장히 비대한 몸집의 부인이 있으며, 그 부인이 기형아를 출산했고, 언덕 위의 집을 지을때 캐슬록마을 사람들을 인부로 쓰지 않고 다른 마을사람들을 데려다 쓰는 등의 일로 캐슬록 마을사람들은 그 언덕 위의 집을 두고 별의별 안좋은 소문을 다 만들어낸다. 그런데 그 언덕 위의 집이 점점더 커진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오랜 세월을 지나는 동안 조금씩 조금씩 방이 늘어나고 새로 지붕이 올라가고 해서 집이 커지는 것이다. 과연 그 속에 숨어있는 기괴한 사연은?

It Grows on You가 처음 발표되었을 때는 캐슬록마을과 전혀 상관없는 얘기였지만, N&D에 수록하면서 킹이 캐슬록을 배경으로 다시 고쳐썼다고 한다. 노인들이 모여서 대화를 나누는 내용이므로 소설은 참으로 여유롭게 느리게 진행된다. 소설내용이란게 언덕 위 집에 이런저런 소문이 도는데 집이 또 커졌더라는 식으로 느릿느릿 반복되다보니 참을성없는 사람이라면 책을 덮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결말부분에 나오는 음산한 여인의 행동만으로도 충분히 참고 읽을만한 가치는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7. Chattery Teeth

세일즈맨이 집에 돌아가는 길에 아들에게 줄 선물로 태엽을 감으면 덜그럭거리며 걸어가는 이빨모양 장난감을 산다. 그리고 스티븐 킹의 음모에 의해 히치하이킹하는 껄렁껄렁한 소년을 차에 태워주게 된다. 자 이제 세일즈맨과 껄렁소년과 덜그럭이빨 사이에 진퇴양란-쓰리쿠션-삼각관계가 형성되고, 그들의 앞날에 처절한 폭력이 난무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이빨장난감이다. 그래서 기뻤다. (뭔 소리냐?)

이 소설은 두편의 에피소드가 합쳐진 믹 개리스 감독의 TV영화 "Quicksilver Highway"의 첫번째 에피소드로 만들어졌다.


8. Dedication

사고로 죽은 폭력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소설가로 키워낸 흑인여성이 주인공이다. 아들의 첫 소설책이 그녀에게 도착하자 감격한 그녀는 친구에게 자신이 아들을 재능있는 사람으로 태어나게 하려고 얼마나 "헌신"적인 행동을 했었는지 고백한다. 오래전에 막 아들을 임신했었을때 호텔청소원으로 일하던 그녀가 맡은 방에 유명한 소설가가 투숙한다. 아주아주 인간성이 나쁜 작자였다. 하지만 뱃속의 아이를 위해서라면 어떤 엽기적인 일이든지 할 수 있는 것이 어머니의 마음이라서...

킹이 Dedication을 쓰게 된 동기는 수년전에 아주아주 너무나 위대한 대소설가를 만났을 때였다.(지금은 고인이 된 그 양반의 이름을 킹은 밝히지 않았다.) 존경하던 그 사람을 만나고 보니 실망스럽게도 인간성이 개떡같은 사람이었다. 킹의 고민은 그때부터 계속된다. 그토록 훌륭한 작품을 탄생시킨 재능있는 소설가가 왜 인간성은 수준이하인 것일까? 고민끝에 킹은 Dedication을 쓰게 된다. 이 소설에서는 재능있는 소설가의 인격적 결함의 이유를 설명해주지는 않지만, 임신한 흑인여성이 겪게 되는 신비스런 체험이 스산하게 펼쳐지고 있다. 거기에다 의문에 싸인 할머니의 등장이 읽는이를 더욱 긴장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할머니의 과격한 활약상에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게 된다. 이 소설 너무 멋진 심리소설이다. 과격한 액션은 안나오지만 인물들의 심리가 빚어내는 음산한 분위기는 이 소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스티븐 킹 당신은 천재야!

Dedication은 그후 Dolores Claiborne이라는 작품을 쓰는데 밑거름이 된 작품이라고 한다.


9. The Moving Finger

한 남자가 자기집 화장실에서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를 듣게 된다. 조심조심 화장실에 가보니 세면대 물빠지는 구멍으로부터 손가락 하나가 삐죽 나와서 움직이고 있다. 그 손가락모양의 생명체는 세면대 밑의 구불구불한 파이프관을 타고서 구멍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그 손가락의 정체는 대체 뭘까? 보통사람같으면 경찰에 신고했겠지만, 소심한 주인공은 그만 자기 혼자서 손가락을 상대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불행이 시작된다.

너무너무 신기한 소설이다. 자신의 집 화장실 세면대에 손가락이 불쑥 나와 있다면 얼마나 공포스러울까? 발가락이었다면 코미디였겠지만, 손가락이었으니 공포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킹은 개인적으로 이 소설처럼 아무 이유없이 사건이 벌어지는 소설을 좋아한다고 한다. 괴물이 나타났는데 이유가 중요한가? 중요한 것은 이 괴물과 어떤 시간을 보내느냐하는 것이다. 나도 이렇게 단순과격한 면도 너무나 좋아한다. 그리고 이 소설 The Moving Finger는 아무이유없이 공포스런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남자의 이야기를 너무나 명확하게 흥미로운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역시 Simple is Beautiful이다.

이 소설의 끝부분은 명확한 결말을 보여주지는 않고 독자의 상상력을 꿈틀거리게 만든다. 화장실에서 기진맥진해 버린 우리의 주인공은 어떻게 되었을지 참 궁금하다.


10. Sneakers

계약직으로 음악스튜디오에서 믹싱일을 하는 남자가 겪는 오싹오싹 공포체험. 그가 스튜디오건물 화장실에 갔을때, 좌변기 첫째칸의 닫혀진 문 밑으로 운동화를 보게 된다. 변기에 앉아있는 사람(?)이 신고 있는 운동화. 여기까진 아무 이상이 없다. 그런데 그 후로 화장실에 갈때마다 항상 첫째칸의 닫힌 문 밑으로 그 운동화를 보게 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운동화 곁에는 죽은 파리들이 쌓이고. 과연 그 첫째칸에는 어떤 사람(?)이 앉아 있는 것일까? 아르바이트생은 그 생각에 괴로워하며 몸부림친다. 부르르르~

개인적으로 N&D에서 가장 오싹한 상황을 설정한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화장실에 갔는데 항상 같은 자리에 같은 사람이 앉아 있다면 너무 무서운 나머지 변비에 걸리지 않겠는가? 더우기 그 사람(?)의 신발 주위에 죽은 파리들이 널려 있다면 너무너무 무서운 나머지 그때의 변비는 유산균 요구르트 한상자로도 치유될 수 없는 불치병이 될 것이 틀림없다.

Sneakers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계속 첫째칸 속의 인물이 주는 긴장감이 이어지다가 결말이 너무 싱겁게 끝나는 감이 있다는 것이다. 과거의 어두운 비밀이 폭로되고나서 뭔가 또다른 사건이 이어질것 같은데 이제 그만~이라면서 끝을 내니까, 마치 나이트갔다가 댄스타임에 신나게 막춤만 추고 정작 부루스타임에서는 밖으로 쫓겨난 듯한 기분이다. 나이트에서 부루스를 추지 못했다면 나이트에 아니간 것만 못하지 아니한가!


11. You Know They Got a Hell of a Band

두 남녀가 자동차로 여행하다 그만 길을 잃고 Rock and Roll Heaven이라는 동네에 들어오게 된다. 그 동네는 유명한 락음악인들이 사는 동네였다. 죽은 음악인들이. 이 동네의 시장님은 누구일까요? 정답은 책 속에.

이 소설은 왜 락스타들은 어린 나이에 죽거나 약물과다 복용과 같은 끔찍한 상황에서 죽을까하는 의문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킹은 화려한 면에 가려진 그들의 어두운 면에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매우 심각하지는 않다. 이 소설은 킹을 비롯한 수많은 공포작가들이 즐겨쓰는 전형적인 낯선 마을이야기이다. 길을 잃고 낯선 마을에 들어섰는데 정말로 이상한 마을이더라는 형식. 그 낯선 마을의 공포를 이 소설은 락스타들을 이용해서 흥미롭게 보여준다.


12, Home Delivery

섬마을 처녀 매디는 강압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탓에 매사에 수동적이고 나약한 성격이다. 그러다 섬마을 청년을 만나 결혼하면서 사랑의 힘으로 비로소 자신과 남편의 삶에 긍정적인 자신감을 갖게 된다. 그러나 첫아이를 임신하고 얼마 안되서 남편은 새우잡으러 바다에 나갔다 거센 파도에 휩쓸려 익사한다. 무너지는 매디의 마음. 그러나 이야기는 이제부터다. 온세상이 왠일인지 좀비세상이 된 것이다. 무덤에서 기어나온 좀비가 세상사람들을 공격하더니 급기야는 백악관을 공격해 대통령까지도 먹어치운다. 매디가 사는 섬도 비상사태다. 하나뿐인 마을무덤에서 좀비들이 뛰쳐나온 것이다. 그리고 불쌍한 주인공 매디에게도 두려운 선택의 순간이 돌아오고야 말았다. 그녀의 비극에 누구나 마음이 아플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좀비라는 캐릭터를 매우 좋아한다. 외모같은 겉치례에 별로 신경쓰지 않는 그 소탈한 모습.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절대로 뛰어다니지 않은 그 여유로움. 먹을 것이 생기면 모두 모여 함께 뜯어먹는 정다운 공동체의식. 세상사람들이 좀비와 같은 자세로 살아간다면 이 세상은 지금보다 백배정도 나은 모습이 될 것이라고 감히 생각한다.

Home Delivery에는 내가 좋아하는 좀비가 우글우글 등장한다. 그래서 신났다. 게다가 보너스로 우주전쟁이야기도 나온다. 그래서 또 신났다. B급 호러소설다운 활기찬 소재와 사건전개가 기분 좋았다. 그런데 안그래도 불쌍하게 성장한 여주인공이 너무도 가혹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그래서 마음이 아팠다. 왜 착한 사람들은 행복을 얻기가 이다지도 힘든 것인가? 재기발랄한 B급 호러소설 속에 단단히 자리잡고 있는 슬픔의 정서로 인해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슬픔을 승화시켜 희망을 잉태시키는 작가의 긍정적인 시선에 나도 모르게 기쁨의 눈물이 한줄기 흘렀다. (뭔 소리냐?)

킹은 조지 로메로 감독의 좀비영화 3부작을 모티브로 해서 동료작가들과 단편집을 펴내기로 하고서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그래서 탄생한 단편집의 이름은 "Book of the Dead".


13. Rainy Season

한 부부가 7년에 한번씩 이상한 비가 쏟아지는 마을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된다. 그런데 하필 그 부부가 마을에 묵게 된 날이 7년에 한번 있는 바로 그 날일 줄이야! 역시 N&D의 13번째 소설 속 주인공다운 억세게 재수나쁜 부부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마을사람들 말대로 이상한 비가 쏟아지게 된다. 이름은 들어봤나? 두꺼비-비. 콩쥐의 밑빠진 항아리를 막아주던 그 착한 두꺼비와는 전혀 차원이 다른 두꺼비들이 7년만에 공중낙하를 시작했다.

거친 매력을 발산하는 이 소설에 관해 별로 할 말은 없다. 그러나 한가지 당부하고 싶은 말은 있다. 낯선 마을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됐을때는 반드시 "오늘이 그 날인가요?"하고 물어보아야 한다. 그래서 "네, 오늘이 바로 그 날입니다"라는 대답을 듣게 되면 그 즉시 그 마을에서 도망나와야한다. 재수없게 걸리면 죽음이니까.


14. My Pretty Pony

하얀 사과꽃이 아름답게 휘날리는 과수원에서 할아버지가 어린 손자에게 시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강의를 시작한다. 인간의 일생을 통해 3종류의 시간을 경험하게 되며, 시간이란 성질 고약한 조랑말과 같아서 정신 똑바로 차리고 지켜보지 않으면 금방 달아나버리고 만다는 내용의 강의였다. 꼬마가 할아버지의 오묘한 사상을 전부다 깨달은 것 같지는 않지만, 어쨌든 두사람은 서로의 입장에 만족하고 밥먹으러 집으로 돌아간다.

80년대 초반 리처드 바크먼(스티븐 킹의 필명)은 My Pretty Pony라는 소설을 완성하려고 기를 쓰고 있었다. 그 소설은 살인 청부업자가 의뢰를 받고서 동료들과 함께 결혼식장에 난입해 범죄조직의 거물들을 살해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의뢰가 성공적으로 끝난뒤 의뢰인이 배신을 해서 청부업자의 동료들을 하나씩 죽이고 청부업자마저도 쫓기는 신세가 된다. 그 청부업자의 필사적인 질주가 장엄하게 펼쳐지는 내용이었는데, 그만 리처드 바크먼이 집필 도중 죽고 말았다. 죽은 리처드가 남긴 원고는 6번째 챕터까지 완성한 My Pretty Pony와 조지 스타크라는 필명으로 완성시킨 Machine's Way 뿐이었다. (Machine's Way는 후에 스티븐 킹의 이름을 달고 The Dark Half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스티븐 킹은 My Pretty Pony가 너무도 형편없는 소설이어서 폐기처분했는데, 그 속에서 아주 인상깊은 장면이 있었다. 소설중 청부업자가 어린시절을 떠올리며 할아버지의 가르침을 회상하는 장면이었다. 킹은 그 회상장면만을 뽑아내 My Pretty Pony라는 같은 제목의 단편소설을 만들어 발표하게 되었다.

N&D에 소개된 My Pretty Pony는 줄거리에서 금방 느낄 수 있듯이 굉장히 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건조한 단편소설이다. 공포소설도 아닐뿐더러 별다른 사건도 일어나지 않아서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읽지 않으면 수면제로 작용하기 쉬운 위험한 소설이다. 철학개론과 같은 두꺼운 인문학 서적을 만화책 보듯이 즐기며 읽을수 있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이 소설에 도전해 볼 것을 권한다. 후회는 없을 것이다.


15. Sorry, Right Number

유명한 공포소설가의 아내 캐이티는 어느날 저녁 전화 한통을 받게 된다. 상대방은 막 흐느끼며 "제발- 빨리..."라는 어리둥절한 말만 남긴채 전화를 끊어버린다. 캐이티는 전화했던 사람이 자기가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 주인공을 찾기위해 돌아다닌다. 그리고 결국 전화했었던 주인공을 알게 된다.

Sorry, Right Number는 소설이 아니라 시나리오다. 그 목적에 걸맞게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하던 TV시리즈 Amazing Stories (SBS에서 방영했었고, 국내에 비디오로도 출시됨.) 중 한편으로 제작되기 위해 이 시나리오는 보내졌다. 그러나 스필버그는 좀 더 밝은 분위기의 시나리오를 원한다면서 슬프게도 킹의 시나리오를 퇴짜놓았다. (스필버그, 좀 먹고 살만하다고 이래도 되는거냐!) 결국 이 시나리오는 Monsters라는 또다른 TV시리즈 중 한편으로 제작되어 방송을 탔다.

스필버그는 싫어했지만, 나는 Sorry, Right Number를 읽고서 너무 좋았다. 시나리오의 흐름을 따라 아무 생각없이 읽어나가던 나를 깜짝 놀라게 하면서 묵직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었다. 해피엔딩도 좋지만 슬픈 엔딩을 겪고나면 나의 감정도 한층 성숙해지는 느낌이 든다.


16. The Ten O'clock People

골초 애연가인 피어슨은 문득 사람행세를 하며 돌아다니는 괴물들을 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자기뿐만 아니라 다른 골초 흡연자들도 괴물들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조직을 결성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고, 피어슨은 그 조직의 모임에 참석하게 된다. 그리고 모임은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스티븐 킹은 1992년 여름 어느날 정확히 10시에 길을 걷다가 으리으리한 빌딩 앞에서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담배피는 장면을 목격한다. 대부분의 빌딩들이 실내금연인 관계로 담배피는 사람들은 할 수 없이 휴식시간을 이용해 밖에 나와 담배를 피는 것이다. 당연히 그 신기한 광경은 킹의 머릿 속에서 The Ten O'clock People이라는 멋진 소설로 만들어졌다.

이 소설은 보기에 따라선 위험한 소설이다. 마치 흡연을 조장하는 것 같기도 하다. 골초가 되어서야 이 세상의 위험한 진실을 볼 수 있게 된다는 설정이 참으로 오묘하다. 하지만 그런 쓸데없는 걱정을 떨쳐버리기만 한다면, 이 소설은 신나는 소설임에 틀림없다. 특히 결말부분에서 주인공이 골초로서의 자아를 인식하고 사회 속에서 자신의 진정한 역할을 찾아 맹렬하게 활동하는 모습은 흐뭇하다 못해 담배라도 한대 권해주고 싶은 욕구를 느끼게 해준다. (도대체 뭔 소리냐?)


17. Crouch End

영국의 Crouch End 경찰서에 행색이 엉망인 미국여성이 뛰어 들어와 울부짖는다. "제 남편을 찾아주세요. 괴물들이 제 남편을 잡아갔어요!" 그녀는 영국경찰들에게 미국에서 남편과 함께 영국여행왔다가 Crouch End라는 마을에서 괴물들에게 쫓긴 얘기를 들려준다.

낯선 마을의 공포가 숨가쁘게 펼쳐지는 소설이다. 낯선 상황에서 사람이 느끼는 감정의 격렬함이 잘 묘사되어 있으며, 마을 입구에서 놀고 있는 두명의 무서운 어린이들이 보여주는 소름끼치는 상황들은 이 소설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이 소설을 읽고나니 낯선 여인에게서 그녀의 향기를 맡을 수도 있겠구나하는 소설과 전혀 상관없는 쓸데없는 생각이 들었다.


18. The House on Maple Street

엄마가 재혼을 했는데, 새아빠는 매우 독선적인 사람이어서 제멋대로인데다가 엄마를 슬프게 만든다. 이런 새아빠를 속수무책으로 바라보아야만 하는 아이들. 그러나 어느날 아이들은 집안 내부에서 무언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집 속에서 무엇인가가 막 자라나고 있었다. 과연 이 집의 운명은 어찌될 것인지...

스티븐 킹은 삽화집을 선물받았다. The Mysteries of Harris Burdick. 킹뿐만 아니라 아내 태비사도 독특한 삽화가 즐비한 그 삽화집을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킹, 태비사, 아들 오웬은 삽화집에서 맘에 드는 그림을 하나씩 골라서 그 그림을 소재로 이야기를 한편씩 써보기로 했다. 그 결과 킹이 만들어낸 얘기가 The House on Maple Street이다. (N&D에는 이 소설의 소재가 되었던 삽화가 책 3분의 2 지점쯤에 끼워져 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아이들의 과격한 플레이가 인상적인 소설이다. 결말에 가면 가정이 평화를 되찾은 듯해서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아이들은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셈이 되어서 기분이 묘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책 속에 들어있는 예쁜 삽화를 보고 있으면 동화틱한 기분이 들어 이 소설이 더할나위없이 유쾌하게 느껴지는 등 읽는이의 컨디션에 따라 무궁무궁진한 감정의 변화를 만끽할 수 있는 신비한 소설이다.


19. The Fifth Quarter

현금수송차량이 괴한들에게 털리고, 강탈당한 돈은 섬에 묻혀진다. 돈이 묻힌 지점을 표시한 지도는 4조각으로 나뉘어져 괴한들끼리 나누어 갖고서 나중에 함께 모여 돈을 찾기로 하는데, 고새를 못참아 괴한들간에 남의 지도조각을 뺏기 위한 음모가 벌어져 살인에까지 이른다. 이에 용감히 행동에 나선 우리의 주인공은 돈을 위해 지도조각을 찾아나선다. 그러나 지도를 가진 괴한들의 저항은 만만치 않다.

한편의 멋진 범죄소설이다. 지도를 찾기위한 죽음의 액션이 심각하게 펼쳐진다. 후반부에 컴컴한 집안에서 벌어지는 육탄전은 읽는이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 것이다.

이 소설을 두고 킹은 이렇게 말했다. "바크먼의 소설. 아니면 혹시 조지 스타크의 소설." 그러나 이 소설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는 바크먼 외에 킹이 비밀리에 간직했던 또다른 필명 John Swithen을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리처드 바크먼에, 조지 스타크에, John Swithen까지. 킹은 필명창조에 중독되어 있는 것일까? 다음번에 새로운 필명을 만들때는 "조재형"으로 해주었으면 좋겠다.


20. The Doctor's Case

추리소설 역사상 가장 유명한 명탐정 셜록 홈즈. 그의 곁에는 항상 홈즈의 명석한 추리력에 가려 별로 빛을 못보는 동료 왓슨(직업은 의사)이 있었다. 홈즈를 바라보는 왓슨의 눈빛은 어느샌가 싸늘한 장동건 눈빛이 되어 "내가 니 시다바리가!?"라는 말을... 차마 내뱉지는 못하고, 그냥 홈즈를 부러운 눈길로 지켜보아야만 했었다. 그런 왓슨이 100살을 바라보는 연로한 노인이 되어(홈즈는 오래전 사망), 예전에 홈즈와 함께 맡았던 한 사건을 회상한다. "그때 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홈즈보다 먼저 사건을 해결했었지. 흐흐흐..."

해운업으로 엄청난 부자가 된 앨버트 헐. 그는 집안에선 아내와 세 아들에게 폭군이었다. 그러던 그가 자신이 병에 걸려 죽을 것임을 예감하고 새로운 유언장을 작성한다. 그리고 어느날 아침 식구들을 모아놓고 새로운 유언장 내용을 읽어준다. 아내와 세 아들에게 땡전 한푼 줄 수 없다는 내용. 망연자실한 가족들을 뒤로 하고 헐은 자신의 서재로 들어가 문을 잠근다. 그리고 얼마뒤 서재 안에서 비명소리가 들려 사람들이 가보니 헐이 등에 칼이 꽂힌채 숨져있었다. 꼭꼭 잠겨진 서재에서의 살인. 이건 홈즈가 그토록 좋아하는 완벽한 밀실살인 아니던가! 그래서 홈즈와 오늘의 주인공 왓슨이 출동한다. 그리고 왓슨은 홈즈보다 앞서서 사건의 미스테리를 해결한다. 과연 범인은 누구인가? 참고로 헐의 가족들 중에서 막내아들 이름이 스티븐이다. 뭔가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The Doctor's Case는 킹이 쓴 추리소설이다. 일생일대의 활약을 보인 왓슨을 주인공으로 해서 밀실살인의 비밀을 하나하나 흥미롭게 풀어나간다. 소설 분위기는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는 홈즈와 경시청 경찰 레스트레이드 사이의 밀고 당기는 신경전 덕분에 경쾌하고 밝은 분위기를 보여준다. 거기다 난생처음 사건을 해결하는 왓슨의 감개무량이 더해져 분위기는 완전 UP! (그전까지 레스트레이드는 맨날 헛다리만 짚는다며 왓슨을 무시했었다.) 하지만 결말에 가서 사건의 어두운 진실 앞에서 홈즈, 왓슨, 레스트레이드 세사람이 내리는 용기있는(?) 결단은 읽는이의 가슴 속을 촉촉히 적셔준다. 수긍이 가는 멋진 결말이었다고 생각한다.


21. Umney's Last Case

대공황 시절 갱들이 판치고 온갖 추악한 범죄가 벌어지고 있을때, 여기 거친 매력을 발산하며 의뢰받은 사건해결을 위해 거칠게 생활하는 하드보일드 사립탐정 엄니가 있다.(나는 이상하게도 주인공 이름을 말할때마다 왠지 전원일기 생각이 난다. 일용엄니.) 사립탐정 엄니는 어느날 문득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불길하게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혼란스러워진다. 참담한 심정으로 탐정사무실에 앉아있는데, 왠 노인이 한명 들어온다. 그의 손에는 작은 플라스틱 가방같은게 들려있다. 그게 뭐지?

"이건 워드프로세서라는 물건이지. 지금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는 물건이니 네가 모르는게 당연해. 내 운동화가 리복이라는 걸 모르는 것처럼."

당신 누구야?

"나는 너를 창조한 사람이다."

그리고 엄니는 신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그의 인생은 송두리채 꺽인채 파멸을 향해 치닫게 된다.

Umney's Last Case는 내 생각에 단편집 N&D에서 가장 멋진 분위기의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주인공 탐정의 삶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한순간에 무너져내리는 상황이 건조한 문체 속에 진지하고 애처롭게 묘사된다.

스티븐 킹은 이 소설 속에서 대학시절부터 존경했던 하드보일드 소설가 레이몬드 챈들러의 문체를 시험해 보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Umney's Last Case에는 암울하고 무겁지만 그래서 더욱 매력적인 분위기를 가진 인물들, 배경들이 잘 묘사되고 있다. 스티븐 킹은 이 소설이 N&D에 수록된 작품들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간다고 말했다. 소설 전반부에 엄니가 주변건물들, 주변인물들이 예전과 달라진 모습을 보이는 것에 갈등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하루아침에 바보가 돼버린 느낌이었겠지. 만약 내가 어느날 잠에서 깨어보니 사람들이 나를 톰 크루즈라고 부르고, 내 방이 단란주점으로 개조되어 있고, TV에서는 나를 파렴치범으로 공개수배하고 그러면 나도 미쳐버릴 것 같다. 이 소설에서 무엇보다 맘에 드는 것은 결말부분이다. 엄니의 앞으로의 행동을 암시하는 마무리는 짜릿한 전율을 느끼게 해준다. 정말 강추!


22. Head Down

Head Down은 소설이 아니라 수필이다. 킹의 아들 오웬이 속해있는 야구팀이 리틀야구대회에 출전해서 경기를 벌이는 모습을 따뜻한 시선으로 묘사한 수필이다.

개인적으로 이 글을 읽으며 야구에 관련된 영어단어가 수시로 튀어나와서 너무 골치아팠다. 게다가 왜 그리도 분량이 많은지... 야구를 주제로 쓴 글이 어떤 모습을 보일 수 있는지 궁금한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수필이다.

정작 이 수필에서 내가 관심을 가진 것은 야구가 아니라 수필 첫페이지에 있는 한줄의 문장이었다.

Owen is broad-shouldered and heavily built, like his old man.

(오웬은 자기 아버지를 닮아 떡 벌어진 어깨에 다부진 체격을 갖추고 있다.)

농담인가, 진담인가? 이 짧은 문장을 통해 나는 스티븐 킹이 평소에 자기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역시 스티븐 킹도 인간이었다.


23. Brooklyn August

이번엔 소설도 아니고 수필도 아니고 시다. 야구를 주제로 한 시. 야구를 주제로 쓴 시가 어떤 모습을 보일 수 있는지 궁금한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시다.


24. The Beggar and the Diamond

너무나도 불쌍한 행색의 거지가 비참한 인생을 사는 것을 본 천사가 너무 슬퍼서 하늘나라에 있는 신에게 찾아온다. 신은 천사의 말을 듣고는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다이아몬드를 거지가 있는 바로 옆에 떨어뜨려준다. 그러나 거지는 바로 옆의 다이아몬드를 보지 못하고 답답하게 딴소리를 해댄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보고 당황한 천사에게 신은 알쏭달쏭한 화두를 던져준다.

N&D에 나오는 모든 단편을 다 읽었다. 그러면 바로 뒤에 스티븐 킹이 쓴 작가후기가 나온다. 작가후기도 다 읽었다. 휴~ 이 책 다 읽었네하고 방심하고 있으면 깜짝 놀라게 된다. 작가후기 바로 뒤에 The Beggar and the Diamond라는 아주 짧은 단편이 떡하니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단편은 킹이 독자들을 위해 마련한 깜짝선물같은 것이다. 아니면 멋진 레스토랑에서 식사후에 나오는 상큼한 아이스크림 디저트같은 것이라고 표현해도 킹은 화내지 않을 것이다.

The Beggar and the Diamond는 힌두교 설화를 킹이 각색한 것이다. 아주 짧은 글이지만 읽고 나면 이게 무슨 뜻을 담고 있는 글일까하고 고개가 갸우뚱해지게 만든다. 아마도 읽는이에 따라서 다양한 느낌을 받을 것 같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읽고나면 매우 재밌다는 점이 마음에 쏙 드는 단편이다.


끝났다. 드디어 Nightmares & Dreamscapes의 모든 단편들을 모조리 소개해버린 것이다. 정말 길고긴 투쟁이었다. 이젠 더 쓸 말도 더 쓸 힘도 없다. 이젠 쉬고 싶다. 푹~.

p.s. 이 단편집은 2019년 우리나라에 "악몽과 몽상"이라는 제목으로 번역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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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ximum Overdrive

(1986년 스티븐 킹 감독-각본-출연 영화)

예전에 동네 비디오가게에서 "슬립워커스"라는 영화를 빌려다 본 적이 있다. 스티븐 킹이 최초로 오리지널 영화시나리오에 도전한 작품이라고 해서 잔뜩 기대하고 봤다가 슬픔을 맛보았다. 이상하게 지루했던 그 영화에서 나를 사로잡았던 것은 엄마 슬립워커스로 열연한 여배우의 도발적 매력과 슬립워커스의 유혹을 받는 여학생으로 열연한 여배우의 건강한 에로틱이었다. 그 뿐. 그 영화는 두여성을 빼면 아무런 흥미도 느낄 수 없었다. 그런데 영화 중간쯤에 난 두번 놀라고 말았다.

첫번째 놀란건 스티븐 킹이 어벙한 묘지관리인으로 출연한 것이다. 그때는 킹이 영화카메오로 출연하는 것을 취미로 즐긴다는 사실을 몰랐던 때여서 너무 놀랐다. 킹은 영화속에서 묘지에서 일어난 사건에 놀라 현장에 출동한 경찰들에게 횡설수설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그때 경찰로 출연한 사람들은 영화감독들이다. 존 랜디스(런던의 늑대인간), 클라이브 바커(헬레이져), 토브 후퍼(텍사스 전기톱살인사건), 조 단테(그렘린). 하여간에 킹의 모습을 책표지의 고정된 사진이 아니라 움직이는 모습으로 자세히 볼 수 있어서 신기하고 기뻤다.

두번째로 놀란 건 킹의 연기력이 굉장히 뛰어났다는 것이다. 어리둥절해서 횡설수설하는 묘지관리인의 모습을 놀라울 정도로 리얼하게 연기하는 것을 보고 감동했던 기억이 난다.(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그는 배우소질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슬립워커스가 비록 지루한 영화였지만 킹의 열연을 본 것만으로도 돈내고 비디오테이프 빌려온 본전은 뽑았다는 생각이 들어 보람있었다. (그후로 내가 본 영화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작품으로는 Langoliers를 꼽고 싶다) 혹시나 조바심에서 하는 말이지만, 영화속 킹의 분위기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나 브래드 피트로 상상하는 우를 범하지 말도록 당부하고 싶다.

그후 시간이 흘러 나는 바로 지금 소개할 Maximum Overdrive에 관한 소문을 듣게 되었다. 이 영화는 킹의 단편집 Night Shift 중 Trucks라는 단편을 각색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Maximum Overdrive는 스티븐 킹이 시나리오를 썼을 뿐 아니라 직접 감독도 하고 출연도 했다는 사실이다.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춤까지 췄다. 킹의 팬이라면 정말 기대되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난 이 영화를 보는 것을 주저했다. 슬립워커스의 지루한 악몽이 되살아났을 뿐 아니라 이 영화가 미국개봉 당시 감독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별로 성공하지 못해서 "한눈팔지 말고 소설이나 써라!"라는 고마운 충고까지 울려 퍼졌던 문제작이라는 것이 맘에 걸렸다. 이 영화가 졸작이라는데 반대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오랜시간을 방황했는데, 결국 이 영화를 빌려보기로 결단을 내리고 말았다. 영화가 아무리 재미없더라도 슬립워커스처럼 흐뭇한 누나들이 출연할 것만 같았고, 아무리 엉망일지라도 킹의 감독실력을 확인하고 싶었으며, 감동적인 킹의 연기를 다시 한번 온몸으로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네 비디오가게로 달려 갔는데, 그런 영화는 없다는 주인아저씨의 말씀! 왜 이렇게 우리 동네는 문화의 불모지인지 가슴아팠다. 어쩔수 없이 그 후로도 오랜 시간을 방황하다 2001년에 들어서야 겨우 테이프를 구해서 볼 수 있었다.

국내출시명은 "맥시멈 오버드라이브"다. 위에 보이는 그림이 바로 국내출시 테이프표지다. 주인공인 에밀리오 에스테베스가 우리를 향해 강력한 눈초리로 말하는 것이 느껴지지 않는가? "이 영화를 꼭 보세요. 한마디로 죽음입니다. 제가 이렇게까지 망가지면서 찍은 영화는 이 영화가 처음입니다." 특이한 것은 테이프케이스에는 감독이 존 카펜터라고 나와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카펜터의 명성을 판매량과 연결시키기 위한 업체측의 잔머리인것 같은데, 킹의 팬으로서 정말 화나는 일이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는 친절하게도 한글자막으로 "스테핀 킹 감독"이라고 유머러스하게 진실을 말해준다)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르며 Maximum Overdrive를 보기 시작했다. 오프닝에 "스티븐 킹 영화 a film by Stephen King"이라는 자막이 떠오를때 얼마나 흥분되던지. 오냐 얼마나 졸작인지 내가 당당하게 평가해주마! 이 영화의 줄거리는 테이프케이스 뒷면에 자세히 나와있다.

[1987년. 지구는 거대한 혜성 RHEA-M의 궤도를 스쳐 지나간다. 바로 그때, 지구의 모든 기계가 반란을 시작한다. 인간의 의지로 움직이던 기계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동작하면서 옛주인들을 습격한다. RHEA-M 혜성의 영향권 내에 속한 8일간 지구는 일대 살육의 현장으로 변한다. 인간의 모습은 자취를 감추고 기계의 굉음만이 요란한 한 마을에 일단의 젊은이들이 RHEA-M의 무시무시한 파워에 대항하여 무기를 들었다.]

바로 이것이다. 저절로 움직이는 기계들에 맞서 싸우는 인간들의 처절한 투쟁! 기계라고 표현되었지만, 영화 속에서 주로 등장하는 것은 거대한 트럭들이다. 저절로 움직이며 사람죽이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트럭들이 고속도로 휴게소를 포위하게 되는데, 휴게소 안에 갇히게 된 사람들이 위기를 돌파하는 과정이 그려지고 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에밀리오지만, 트럭쪽에서도 주인공격인 트럭이 나온다. 장난감회사 운송트럭인데, 트럭 앞에는 커다란 악마얼굴이 붙어있고 뒷쪽에는 기분나쁜 삐에로(It의 페니와이즈?)가 그려져 있다. 이 놈이 화날때는 악마의 눈에 불이 켜진다. 이 매력적인 트럭을 앞세운 폭주트럭들이 사람들을 차례로 깔아뭉개는 장면들이 이 영화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이 사나운 트럭들의 공격(나중에는 건설장비들까지 달려온다) 앞에서 과연 에밀리오를 비롯한 사람들은 어떻게 몸부림칠 것인가.

결론적으로 말해서 나는 이 영화를 아주 재미있게 보았다. 졸작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킹이 조롱받을 정도로 잘못을 저지른 영화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슬립워커스보다는 10배정도 좋았다. 영화사이트 IMDB에 가보면 방문객들이 Maximum Overdrive에 점수를 준 결과가 나와있다. 1006명이 점수를 주었는데 평균을 내보니 10점 만점에 3.9점이다.(여러분도 지금 투표에 참가할 수가 있다. 나는 10점을 주려다 차마 그러지 못하고 울면서 뛰쳐나왔다.) 이 영화가 졸작이라고 인정받고 낮은 평가를 받는 것은 킹의 소설 속에서 보이는 실감나는 압도적인 공포가 없기 때문인 것 같다. 사실 이 영화는 엑소시트스나 오멘같은 영화에 비하면 코미디영화라고 불러도 손색없을 정도로 전혀 무섭지 않다. 그리고 원작소설을 읽은 팬이 아니라면 영화가 축축 처지면서 지루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킹은 최선을 다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분야를 열심히 만든 죄밖에 없다. 그는 B급영화의 열렬한 팬이다.

그가 집필한 호러비평서 Danse Macabre를 보면 킹이 얼마나 B급공포영화들에 애착을 가지고 성장했는지 잘 나와있다. 그는 극장에서 원숭이 털옷을 입고 어항을 머리에 뒤집어 쓴 괴물과 고무옷을 입고 기어가는 왕거머리 같은 괴물들이 나오는 B급 공포영화들을 관심있게 보며 소설가로 성장해 온 것이다. 그런 그가 생전 처음으로 만든 영화가 익숙한 B급 공포영화의 뒤를 따랐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듯 싶다. (Maximum Overdrive가 B급이라는 증거는 결정적으로 영화 맨뒤에 나오는 자막에 있다. 그 자막은 기계들의 반란이 어떻게 해결되는지를 설명해주는데, 읽어보면 황당해서 웃음이 터진다. B급이 아니고서는 시도할 수 없는 대담한 내용이니, 여러분도 직접 이 영화를 보고 내가 느꼈던 기분을 함께 하시길.)

나도 B급 영화의 열렬한 팬이다. B급 액션영화(LA용팔이), B급 공포영화(월하의 공동묘지), B급 에로영화(애마부인), B급 멜로영화(내가 버린 여자)를 너무도 사랑한다. B급 영화는 지루하면서도 허술한 내용전개가 역설적이게도 매력적으로 작용하여 인간의 굳어버린 가녀린 감정선에 불을 땡긴다. 그런 점을 나는 좋아한다. 그런 나 자신은 당연히 스티븐 킹의 B급영화 Maximum Overdrive를 미워할 수가 없다. 당당히 만점 10점을 주고 싶다. 너무 재밌어서 오랜만에 막 웃을 수 있었던 공포영화였다. 류승완 감독의 다찌마와 Lee를 보고 박수칠 수 있는 사람이라면, Maximum Overdrive를 보고도 감탄사가 튀어나올 것이다. "숨어있는 걸작"이라는 말과 함께.

Maximum Overdrive에는 여러 배우들이 나와 B급영화다운 연기를 펼치는데, 가장 돋보이는 사람은 뭐니뭐니해도 스티븐 킹이다. 영화 맨앞에 아주 짧게 등장하지만 확실하게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명연기를 보여준다. 킹이 다가선 현금지급기가 asshole이란 단어를 화면가득 쏟아내자 그는 화들짝 놀라는 연기를 펼치며 아내를 부른다. "여보, 얘가 나보고 asshole이라고 놀려!" 이 장면에서 킹의 아내 태비사가 출연했으면하고 바랬지만 나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서 영화 속에서는 에밀리오의 파트너로 거친 매력을 발산하는 누님 한분이 출연해 주셔서 너무 고마웠다. (전문용어로 이런 여성을 "야생녀"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러나 그 누님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배우는 막 결혼식을 올린 신부로 나온 여성이다. 성숙한 외모와는 달리 어쩌면 그렇게 예쁘고 앙증맞은 목소리를 낼 수 있는지 너무 신기하고  흥미진진했다. 내 생각에는 이 영화를 밝은 분위기로 만드는데 단단히 한몫 한 것 같다. 여러분도 영화를 직접 보고 이 분의 목소리를 들을때 어떤 기분이 느껴지는지 체험해 보셨으면 좋겠다. 이 분의 명랑한 목소리만으로도 이 영화를 강력추천!

Maximum Overdrive 영화음악은 유명한 락그룹 AC/DC가 맡아서 신나는 음악을 들려준다. 기계들이 휩쓸고 지나간 마을에 시체들이 즐비한 상황을 보여주는 끔찍한 장면에서 신나는 락음악이 울려퍼지는 것은 좀 이해가 안가지만, 상식을 뛰어넘는 느닷없는 부조화가 B급영화의 생명이라고 생각하면 수긍이 간다. 어쨌든 음악은 신났다.

킹의 팬이라면 Maximum Overdrive를 볼 것을 권하고 싶다. 하지만 오래전에 출시된 영화라 동네 비디오가게에서 찾으면 없는 경우가 허다할 것이다. 미국에서는 DVD로도 나와있으니 능력되시는 분들은 구해 보시길.(하지만 보고 나서 나를 비난하지는 말기 바란다. B급영화의 감수성을 이해하도록 노력해주시길 바란다.) 당장 구해다 볼 수 없다면 인터넷에서 예고편을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매우 짧은 예고편이므로 과도한 기대는 하지 말기를.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스티븐 킹은 Maximum Overdrive의 흥행실패를 거울삼아 다시한번 영화감독에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만약 그 말이 현실로 이루어져 영화를 만든다면 이번에는 과연 어떤 영화가 나올지 궁금하다. B급도 좋지만, 이번엔 좀 무섭게 만들었으면 좋겠다. B급으로 만들면 나는 좋지만, B급의 환상적인 심오한 세계를 낯설어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악몽으로 다가올 것이다.

통제자들 / The Regulators

작품 감상문 2007. 5. 11. 23:49 posted by 조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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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gulators

(1996년 리처드 바크먼 소설)

언젠가 서울대 영문과에서 심각한 회의가 열렸었다고 한다. 회의주제는 "이번 학기 영문과 교재로 스티븐 킹 소설을 채택할 것인가 말것인가?" 거듭되는 국내석학들의 심사숙고 마라톤 회의 끝에 없었던 일로 하자는 걸로 회의는 끝나버렸다고 한다.

이 사례는 현대 영어권 문학에서 스티븐 킹이 차지하는 위치를 상징하는 듯하다. 킹은 미국에서도 통속소설로 취급하는 공포소설 작가다. 그의 작품들은 세련된 인문학적 지식을 토대로 하는 것도 아니고, 상류층 지식인들이 좋아할 만한 고상한 문체를 사용하는 것도 아니다. 그의 작품들은 50년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호러장르에 충실한 소재를 가지고 속어, 비어, 욕설을 거침없이 당당하게 표현한다. 그러나 삼류공포소설의 요소를 두루 갖춘 그의 소설은 미국 출판계는 물론 세계 출판계를 호령하는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우리나라에는 아직 힘이 미치지 못하고 있지만...) 그는 현대 미국 문학계의 빼놓을 수 없는 유명인사가 된 것이다. 예술적인 소설작품을 발표하는 미국 소설가들은 많지만, 그들이 대중들에게 끼치는 영향력은 스티븐 킹에 비하면 아주 미미한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예술작가인들 대중들이 읽어주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인가? 비평가들에게만 읽히고 비평가들에게만 칭찬받는 작품을 발표하는 일이 작가에겐 즐거울까? 그에 비하면 킹의 작품들은 "읽는" 재미를 위해 부담없이 누구나 선뜻 집어들게 하는 힘을 발휘한다. 그건 노벨문학상 작가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노벨문학상 작가는 읽는 의욕을 저하시키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러니까 스티븐 킹이 제일이다.(말도 안되는 논리지만 밀어 부치자.) 스티븐 킹은 이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소설가다!(역시 난 킹의 열렬한 팬이야.) 스티븐 킹만이 진정한 소설가다!(나도 이렇게까지 뻔뻔스러워질 수가 있구나.)

The Regulators는 또다른 킹의 작품 Desperation과 한날 한시에 동시발표된 소설이다. 그만큼 두 소설간에는 비슷한 점이 많지만, 다른 점도 많다. Desperation이 스티븐 킹의 소설로 발표된데 비해서, The Regulators는 킹의 필명 리처드 바크먼 작품으로 발표되었다. 리처드 바크먼이라는 무명소설가는 1985년에 죽었지만, 아내가 뒤늦게 The Regulators 원고를 찾아낸 덕분에 96년에서야 출간되었다는 오묘한 설명과 함께. Desperation에 등장했던 수많은 인물들이 The Regulators에도 고스란히 등장한다는 것이 흥미롭다. 그러나 그때 그 설정 그대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인물설정을 색다르게 고쳐서 등장시켰기 때문에 Desperation을 막 읽고나서 The Regulators를 펴 든 독자라면 무척 산뜻한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래도 변치않는 인물(?)이 있다. Desperation에 이어서 Tak이라는 악령이 조금도 주눅들지 않은 당당한 모습으로 출연하고 있다.

1996년 7월 15일 오후 3시 45분. 화창한 여름 날씨에 젖어 있는 평화로운 중산층 주거지  poplar street. 두대의 밴 승합차량이 소리없이 들어와서는 주민들을 향해 총질을 해대기 시작한다. 총알세례 속에서 마을은 아수라장이 되고 사람들은 하나둘 목숨을 잃게 된다. 밴에서 총을 쏜 범인들이 나오는데, 놀랍게도 그들은 인간이 아니라 서부영화와 SF 애니메이션 주인공들이다. 더 놀라운 건 그때부터 마을이 점점더 이상하게 지형이 바뀌어 버린다는 것이다. 사막이 생기고, 선인장이 자라나고, 둥그런 덩굴뭉치들이 굴러다니고, 늑대 비스무리한 동물들이 어슬렁대고... 서부영화에 나오는 마을처럼 변모해 간다. 주민들은 고립된 상황 속에서 살 길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게 된다.

줄거리만으로 보면 참 만화적이다. 서부영화와 애니메이션 주인공들이 현실에 나타나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는다. 삼류만화같은 줄거리지만, 스티븐 킹은 이 소설을 절대로 삼류로 전락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소름끼치는 살육의 현장으로 독자를 이끌어 고립된 공간 속에서의 공포와 고통을 날것으로 맛보게 해준다. 밴에서 내린 괴물들이 벌이는 총격전 현장을 액션영화의 한장면처럼 역동적으로 묘사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The Regulators의 서문에 언급한 범죄소설가 짐 톰슨과 서부영화 감독 샘 페킨파의 모습들을 스티븐 킹 식으로 표현한 것 같다.

The Regulators는 소설 속에서 꼬마아이가 즐겨보는 서부영화 제목이기도 하다. 그 영화에서 한 총잡이가 이런 대사를 남긴다. "우린 이 마을을 지도에서 사라지게 만들거야!"

킹은 이 소설을 독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선사하기 위해 여러가지 자료들을  소설 중간중간 틈틈이 보여준다. 맨처음 우체국 소인이 찍혀있는 엽서로부터 시작해 일기, 신문기사, 영화평론서, 완구잡지 기사, 애니메이션 시나리오, 편지, 꼬마가 그린 그림(자동차에 탄 사람들이 집을 향해 총을 쏘고 있는 그림), 영화시나리오 등이 소설 속에 등장한다. 그 효과는 정말 대단해서 수많은 허구의 자료들을 접하는 동안 나는 이 소설이 진짜 일어났던 사건을 쓴 것처럼 실감나게 느껴졌다. 킹은 "읽는" 재미뿐만 아니라 "보는" 재미까지 선사하는 작가라는 것이 실감났다. 킹의 작품들을 보면 어느 순간 글씨체가 바뀐다거나 기호와 그림이 나오는 등 시각적인 면을 자극하는 부분이 많은데, 그런 점이 킹의 소설을 더 매력적으로 읽게 만든다.

Desperation의 Tak이 동물들을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능력을 주특기로 삼았던 데 반해, The Regulators의 Tak은 침투한 인간의 마음 속 생각을 현실에 구체화시켜 환상이 힘을 발휘하게 만든다. 그런 점은 It의 삐에로나 Four Past Midnight의 도서관경찰에 나오는 여자 도서관장과 통하는 부분이다. 어쩌면 그들은 서로 친척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행패를 부리면 스티븐 킹 조차도 말리지 못할 것이다.

The Regulators는 습격받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들을 차근차근 보여준다. 그 속에서는 서로를 도와주는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는가하면, 나 먼저 살겠다고 남을 못살게 구는 이기적인 사람의 모습도 묘사된다. 많은 등장인물들이 아웅다웅하며 움직이는 모습을 읽고 있으면 너무 재미있다.

그 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한 주민이 어깨부상을 당해서 피를 흘리며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이다. 주위 사람들이 도와주려고 하지만 환자는 고통때문에 마구 몸부림치며 정신을 못차린다. 사람들은 허리띠로 두 팔과 몸통을 한데 묶어 환자의 몸을 고정시키려 하는데 환자가 너무 발작하는 바람에 환자의 몸이... 이 소설을 읽으면서 참 복잡한 감정을 느꼈던 부분이다. 결과적으로는 매우 안쓰럽고 섬칫한 장면이지만, 옆에서 환자를 잡고 있다가 놀라는 등장인물의 모습을 생각하면 황당한 웃음이 삐질삐질 새어나왔다. 마치 상가집에 가서 문상하다가 살아생전 고인의 모습을 떠올리고는 상주 앞에서 왈칵 웃음이 터져나와 버리는 격이랄까. 여러분도 한번 그 부분을 읽어보시고 나처럼 황당한 기분을 느끼고 상큼해지시길 기원합니다.

이 소설은 그림으로 시작해서 그림으로 끝난다. 소설 앞머리에 나오는 그림은 총격전이 벌어지는 마을의 약도이다. 손으로 그려진 약도에는 집들이 꼼꼼하게 설명되어 있어서 소설을 읽는동안 많은 도움을 받았다. 소설을 읽다가 약도를 참고해서 '아 지금 얘네들이 있는 위치가 여기구나', '밴이 여기서 나와서 이리로 지나갔군'하는 식으로 구체적인 그림을 머리 속에 그려볼 수 있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국내번역판에는 이 약도가 빠져있어 아쉬웠다.)

소설 맨끝에 나오는 그림은 꼬마아이가 그린 그림 한장이다.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참 뜨거워진다. 잔잔한 에필로그에 딱 어울리는 푸근한 그림이며, 현실에서 고통받던 사람이라도 부디 저세상(?)에서는 행복했으면 하는 바램이 생기게 만드는 그림이다. 저세상이란게 어떤 세상인지 스티븐 킹만이 자세히 알겠지만. 부디 행복하길...

첩혈쌍웅이나 영웅본색같은 홍콩영화 속 장면처럼 처절한 총격전이 일품인 The Regulators를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형제격인 Desperation이 넓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느라 좀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한 느낌이었다면, The Regulators는 고립된 일정한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총격전이기 때문에 빠른 속도감이 느껴지는 액션영화같아서 재밌게 읽을수 있다. 이 소설은 황금가지에서 "통제자들"이라는 제목으로 한국판이 출간되어 있다.

이 소설에서 한가지 아쉬운 점은 왜 마을이 서부시대로 변했는가이다. 사건의 발단이 되는 밴 승합차량은 SF애니메이션 MotoKops의 주인공들 것인데. 마을이 우주공간으로 변하고 우주기지같은 게 등장하고 그랬으면 더 재밌지 않았을까? 그러면 너무 소설이 삼류만화처럼 유치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