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무지 / The Waste Lands (다크 타워 3)

작품 감상문 2007. 5. 12. 01:44 posted by 조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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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aste Lands

The Dark Tower 3

(1991년 소설)

스티븐 킹의 다크 타워 시리즈 3탄 "The Waste Lands"는 국내에 "황무지"(황금가지출판사, 잎새출판사)라는 제목으로 번역출간되어 있다. 내가 이 소설을 처음으로 읽었던 것은1995년. 2001년에 들어와 다크 타워 1탄과 2탄을 읽기 훨씬 전이었다. 그래서 예전에 "황무지"를 읽으면서는 거대한 이야기의 스케일에 감탄하면서도 소설 속에서 문득문득 드러나는 전편과의 연결고리는 전혀 이해하지도 못한 채 그냥 그런가보다하고 넘겨버렸다. 하지만 이번에 정식으로 1탄과 2탄을 읽고 난 뒤, 3탄 "황무지"를 읽어보니 전편들과의 연관성을 완전히 이해하며 읽는다는 것이 얼마나 흥미로운 일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역시 시리즈소설은 순서대로 읽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롭다.

다크 타워 2탄 "태로우 카드 The Drawing of the Three"에서 엄청난 활약을 벌인 덕에, 마지막 총잡이 롤랜드에게는 동료 둘이 생겼다. 우울했던 뒷골목 생활에서 벗어나 착실하게 살아가는 여린 성격의 청년 에디(하지만 기분이 나쁘면 롤랜드랑 맞먹으려고 든다). 롤랜드를 죽음으로까지 몰고 갈 뻔 했던 데타 워커와 오데타 홈즈라는 상반된 두 개의 인격이 합체해 탄생한 사려깊은 성격의 여인 수잔나(하지만 기분이 나쁘면 욕도 잘 한다). 롤랜드는 둘에게 총잡이 훈련을 시키며 다크 타워 세계를 여행하고, 그러는 중에 에디와 수잔나는 동료의 벽을 뛰어넘어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그런데 롤랜드에게 문제가 생겼다. 마음 속에 두 개의 마음이 서로 으르렁거리며 제이크라는 이름의 소년과 만난 적이 있다, 아니라는 문제로 다툼을 벌이고, 롤랜드는 어느 쪽이 사실인지 기억도 못한 채 혼란에 빠지면서 서서히 미쳐간다.

혼자만 미치면 심심하다. 뉴욕에 사는 제이크라는 소년도 미치고 환장하는 중이다. 마음 속에 두 개의 마음이 으르렁거리며 나는 죽은 적이 있다, 아니다라는 문제로 다툼을 벌이고, 제이크는 어느 쪽이 사실인지 기억도 못한 채 혼란에 빠지면서 서서히 미쳐간다.

모든 것은 당사자끼리 만나면 다 해결되는 법. 다크 타워의 세계에서는 롤랜드 일행이, 현실세계의 뉴욕에서는 제이크가 서로를 만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다가, 이차저차해서 여차저차한 방법으로 마침내 제이크가 다크 타워 세계로 들어가 롤랜드 일행을 만나게 된다. 그 뿐 아니라 너구리 비슷하게 생긴 "오이"라는 동물까지도 합세함으로써 롤랜드 일행은 전부해서 4명+1마리라는 막강한 멤버로 완성된다.

하지만 또다시 롤랜드 일행에게 위기가 닥친다. 다크 타워가 있는 엔드 월드(End-World)까지 가려면 미드 월드(Mid-World)를 거쳐가야 하는데, 그 지역은 오염되어 있어 맨몸으로 통과할 수가 없다. 음속을 돌파하는 초스피드로 미드 월드를 횡단한다는 전설의 폭주기관차 블레인을 타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롤랜드 일행은 블레인을 찾아 러드라는 도시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만 제이크가 틱톡맨이라는 근육청년에게 끌려가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발생하고, 롤랜드 일행은 둘로 쪼개져서 롤랜드는 사라진 제이크의 뒤를 쫓고 에디와  수잔나는 블레인을 찾아 폭력도시 러드를 정처없이 방황하게 된다. 헤어진 롤랜드 일행은 다시 웃으면서 만날 수 있을 것인가? 웃으면 복이 온다던데...

다크 타워 3탄 "황무지"는 롤랜드와 제이크의 만남을 그리는 전반부와 러드에서의 모험을 그리는 후반부로 나눌 수 있다.

"황무지" 전반부에서는 2탄 "태로우 카드"에서 롤랜드가 죽을 힘을 다해 가며 시간의 흐름을 엉망으로 만든 덕에 정신착란을 일으키는 롤랜드와 제이크의 방황과 슬픔을 묘사하고 있다. 누구에게 하소연을 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닌 탓에 혼자서 마음 속으로 끙끙 앓으며 몸부림치는 모습이 나의 눈물샘을 적셨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제이크였는데,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적응하지 못하고 다크 타워 세계로 들어가야한다는 강박관념에 휩싸여 아무 문이나 닥치는대로 열어보고 다니는 모습을 접하면서 웃음이 나오기도 했기만 "쯧쯧, 어린 것이 어쩌다 저런 지경에까지..."하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소설 전반부는 이렇게 방황하는 인물들이 조금씩 조금씩 서로의 세계와 접근하는 모습을 보여주다 마침내 꽝하며 서로의 세계가 충돌하는 클라이막스를 보여준다. 이 부분은 정말이지 멋진 영화의 한 장면같다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는데, 2탄에서 선보였던 문의 이미지와 유령의 집, 악마가 출몰하는 유적지, 자아분열, 섹스, 폭력, 광기, 환상이 한데 어우러져 박진감 넘치고 긴박감은 더 넘치는 스펙타클한 모습을 보여주어서  이 장면을 읽는 내내 머리 속이 찌릿찌릿 전율할 수 밖에 없었다. 소설읽기의 즐거움을 한껏 만끽할 수 있었다. 이렇게 멋진 장면이 벌어졌는데도 제이크가 다크 타워의 세계로 못들어가서 롤랜드와 만날 수 없었다면 나는 열받아서 소설책을 숯불갈비집에 팔아넘겼을 것이다. 다행히도 제이크가 롤랜드의 품에 안길 수 있게 돼서 개인적으로 소설 속 등장인물들과 함께 기뻐했다.(숯불갈비집에 팔려가지 않게 돼서 소설책도 기뻤을 것이다.)

소설 후반부에서 제이크의 납치로 인해 롤랜드 일행이 둘로 쪼개지는 장면은 독자들의 가슴을 둘로 쪼갤만큼 안타까운 일인데, 이제까지 오손도손 뭐든지 함께 했던 일행들이 낯설은 도시 러드 속으로 아무런 기약없이 뿔뿔이 흩어지는 쓸쓸한 기분이 참으로 불길했다. 그것은 이제까지 러드를 삭막하고 위험하고 폭력적인 도시로 충실히 묘사한 스티븐 킹 덕분이다. 초토화된 기계문명의 잔해 속에서 인간학살이 일상다반사로 일어나는 러드 속의 주민들 모습이 처량하면서도 끔찍하게 등장한다. 오래 전에 세상을 뒤엎은 엄청난 사건이 일어나서 그 결과 모든 세상이 타락했으며, 그 변화의 중심에 다크 타워가 있으므로 다크 타워를 바로잡으면 세상을 구할 수 있다는 롤랜드의 말이 인상적이다. 롤랜드 힘내! 절대로 다크 타워의 길을 포기하면 안돼! 내가 당신을 응원하고 있단말야! 당신의 앞길을 막는다면 스티븐 킹이라도 용서하지 않겠어!

소설 속에서도 언급되지만 러드에서 롤랜드와 제이크가 겪는 모험은 다크 타워 1탄 "총잡이 The Gunslinger"에서 벌어졌던 사건의 변주다. 그 때 그 모험이 다른 모습으로 변형되어 또다시 재현되는 것. 롤랜드의 말처럼 Ka(운명)는 돌아가는 바퀴와 같아서 돌다보면 또다시 제자리로 오게 되있는 것이다. 1탄을 읽었던 독자라면 러드에서 롤랜드랑 헤어지며 "그 때처럼 또 나를 버리면 안돼"라면서 울먹거리는 제이크의 심정을 뼛 속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 다시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며 이를 악물고 총을 빼들어 제이크를 구하러 달려가는 마지막 총잡이 롤랜드의 모습. 감동이었다. 멋졌다. 반해 버리고 말았다.

러드에서 롤랜드 일행이 겪는 일들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모두들 앞일을 예측할 수 없는 상대와 맞부딪쳐서 순간순간 목숨을 걸고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 모습이 흥미롭게 펼쳐지는데, 그런 모습들을 통해 롤랜드 일행이 운명이라는 고리로 단단히 엮인 진정한 동료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롤랜드 일행은 알게 모르게 서로의 과거 속에서 공통적인 경험을 공유하고 있고, 각자가 겪었던 사소한 과거의 체험들이 현재의 위기를 해결하는 중요한 열쇠로 작용한다. 그들이 부딪치는 위험들은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 중 한 명이라도 없었다면 롤랜드의 모험은 실패로 돌아갔을 것이다. 위기의 순간에 동료랍시고 나같이 어리버리한 녀석이 있었다고 상상해보라! 모두들 당장 몰살이다. 그들이 모인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Ka에 의해 오래 전부터 정해진 것이었다. 앞으로도 그들은 함께 하는 현재의 경험들을 소중히 간직해서 둥글게 둥글게 돌아가는 Ka 속에서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며 출몰하는 위험한 순간들을 꿋꿋이 헤쳐나가게 될 것이다.

3탄 "황무지"에서는 1탄 "총잡이"를 읽었던 독자라면 깜짝 놀랄만한 인물이 등장한다. 1탄 마지막에 검은 남자가 자기가 마음 속으로 두목님으로 모시고 있다고 자랑하던 멀린이 깜짝출연하는 것이다. 잠깐 등장하지만 그 압도하는 위엄과 카리스마는 잊을 수가 없다. 근육청년 틱톡맨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며 "틱톡맨씨, 우리 함께 손을 잡고 악의 무리 롤랜드 일당을 물리쳐서 다크 타워를 지켜냅시다! 모여라 꿈동산아~"하고 절규하는 장면에서는 섬칫한 느낌까지 받았다. 1탄에서 검은 남자는 롤랜드가 다크 타워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쓰러뜨려야하는 존재로 멀린을 언급하는데, 멀린도 죽여버릴 상대로 롤랜드 일행을 언급하고 나니 앞으로의 전개가 점점 흥미진진해진다. 카리스마의 마법사 멀린과 카리스마의 무법자 롤랜드가 정면으로 맞서는 그 순간, 상상만 해도 흥분된다. 멀린은 틱톡맨에게 자신을 소개하며, 자기는 영원불멸의 이방인이며 어느 시대에서나 존재해왔던 초월적인 존재이며 여러가지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다고 자랑한다. 마술사로도 불리고 마법사로도 불리고 멀린이라고도 불렸지만 정말 그런 존재였는지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다만 그는 틱톡맨에게 자신을 그저 리처드 패닌이라고 불러달라고 요구한다.(머릿글자가 R.F.인 것으로 봐서 "황무지"에 등장하는 멀린은 킹의 소설 "The Eyes of the Dragon"이나 "미래의 묵시록 The Stand"에 등장하는 악역의 화신 랜들 플랙이 분명하다고 스티븐 킹 팬들은 부르짖는다.)

멀린의 카리스마도 인상적이지만, 소설 후반부의 진정한 카리스마 덩어리는 미치광이 기관차 블레인이다. 오랜 세월동안 전설로만 잊혀지내다가 롤랜드 일행의 방문을 받고 광분하는 그 폭력적인 모습이 귀엽기까지 했다.(아마도 내가 블레인에게 당하는 피해자가 아니라서 귀엽다는 생각을 했겠지. 러드의 주민들은 블레인에게 엄청나게 피해를 당한다.) 블레인은 어떤 때는 쾌활한 아이같은 모습을 보여주는가 하면 어떤 때는 인간을 능가하는 기계 본연의 차가운 본성을 드러내는 1초 뒤를 예측하기 힘든 위험한 존재다. 러드 주민들에게 후려친 블레인의 엄청난 폭력 앞에서 롤랜드 일행은 기를 못펴고 슬금슬금 눈치만 보게 되는데, 소설 마지막에서 롤랜드가 블레인과 결투를 벌이는 모습은 의외의 충격을 선사한다. 총알 한방 쏘지않는 조용한 결투지만 엄연히 롤랜드 일행의 목숨이 달려있는 위험한 상황에서 태연하게 냉정하고 단호한 행동으로 승부하는 롤랜드의 모습에서 주인공으로서의 배짱과 결단이 눈이 부시도록 빛났다. 롤랜드, 그는 진정한 승부사였던 것이다! 갑작스러운 당황스런 전개에 눈을 휘둥그렀게 뜬 채 아무말도 못하고 롤랜드만 바라보고 있는 에디, 수잔나, 제이크, 오이와 함께 나 자신도 숨을 죽이며 롤랜드와 블레인의 결투를 지켜봤다.

다크 타워 3탄 "황무지"를 읽으며 다크 타워 특유의 분위기를 듬뿍 맛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교차하고 시간과 공간이 뒤틀리며 과학과 마법이 얽히고 신화와 전설이 진실과 삐딱하게 만나는 복잡미묘한 분위기. 이렇게 멋진 소설을 그 작은 머리 속에서 뽑아낸 스티븐 킹의 능력에 감탄할 수 밖에 없다. 다크 타워 시리즈를 읽으며 항상 느끼는 거지만 나의 마음은 이제 다음 편을 읽고야 말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활활 타오르고 있다. 4탄 "Wizard and Glass"여 기다려라. 내가 꼭 너의 책장을 넘겨주마. 오늘 밤엔 왠지 미치광이 폭주기관차 블레인을 타고 다크 타워가 서있는 엔드 월드로 가는 꿈을 꿀 것만 같다.

다크 타워 시리즈는 아직까지 정식으로 영화화된 적이 없으므로, 당연히 "황무지"도 영화로 볼 수가 없다. 하지만 그냥 넘어가면 아쉬워서 한 영화를 소개하겠다.

스티븐 킹은 오래 전부터 원하는 사람들한테 단돈 1달러만 받고 자신의 단편소설을 단편영화로 만들 수 있도록 허락해 주고 있다.(엄청난 돈이 될 수도 있는 영화화 권리를 그렇게 헐값에 넘기는 통에 킹의 매니저는 홧병이 났다고 한다.) 단, 킹은 여기에 두 가지 조건을 걸었다. 첫째, 완성된 영화를 상업적으로 이용해선 안되고, 둘째, 완성된 영화의 카피본을 킹에게 하나 보내주어야 한다. 덕분에 킹의 집에 가면 단편영화들이 엄청나게 쌓여있다고 한다. 인기있는 단편소설의 경우 수십편의 각기 다른 버전으로 완성된 같은 제목의 영화들이 넘쳐난다고 한다. 이렇게 킹에게 1달러를 주고 단편영화를 만든 사람들을 "달러 베이비(Dollar Baby)"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킹의 단편영화를 만들고 싶어하는 달러 베이비들이 우글우글하다.

이런 달러 베이비 중에서 가장 유명해진 사람은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이다. 그는 킹의 단편 "Woman in the Room"을 단편영화로 만들었는데, 병든 어머니를 안락사시킨 아들이 겪는 불안과 공포를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이렇게해서 킹의 눈에 확 띄게 된 프랭크 감독은 정식으로 장편영화에 도전해 연달아 스티븐 킹 원작영화 "쇼생크탈출"과 "그린마일"을 성공시키며 킹의 사랑을 듬뿍 받는 인생대역전의 주인공이 되었다.

지금 간단히 소개할 것은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의 영화 "마제스틱"이다. 짐 캐리가 주연한 이 영화는 기억을 잃어버리게 된 헐리우드 시나리오 작가가 마제스틱이라는 극장과 인연을 맺게 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영화 속에서 짐 캐리가 시나리오를 쓴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되는 장면이 나온다. 그 흑백영화 제목이 "사막의 해적들"인데 위기의 순간에 어여쁜 여주인공을 구하러 정의의 사도가 등장하는 순간, 기쁜 마음에 여주인공이 그를 애타게 부른다. "롤랜드!" 그렇다. 다크 타워 시리즈의 주인공 롤랜드와 같은 이름인 것이다.

소설 "황무지"에서 뉴욕의 제이크가 다크 타워 세계의 기억을 잃고 거리를 헤매다 다크 타워의 세계와 겹쳐지는 환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부분이 있는데, 제이크가 맨처음 환상의 세계에 들어서며 만나게 되는 건물은 극장. 그 극장의 이름은 "마제스틱". 그렇다. 프랭크 감독의 영화 속에서 기억을 잃은 짐 캐리가 만나게 되는 극장과 같은 이름인 것이다.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의 영화 "마제스틱"은 킹의 열렬한 팬으로서 감독 자신이 영화 속에 귀여운 요소들을 집어넣은 깜찍한 영화이다. 물론 이런 요소들은 역시 킹의 팬이 아니라면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영화 자체로도 다른 영화들에 꿀리지 않는 멋진 영화이니, 가까운 동네 비디오가게에서 꼭 구해다 보시기를 권합니다. DVD로도 출시되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