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의 아이들 [1] by 클라이브 바커

읽을꺼리 2007.05.09 00:52 posted by 조재형
 스티븐 킹이 "호러의 미래"라고 격찬했던 클라이브 바커는 소설(피의 책), 영화(헬레이져), 그림, PC게임(언다잉), 액션피겨인형(Tortured Souls) 등 공포에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공포영화 감독/제작자로서 유명하지만, 사실 그는 이제까지 수십편의 소설을 발표한 소설가입니다.

   지금 소개하는 단편 "바벨의 아이들"은 바커의 단편집 "피의 책(The Books of Blood)" 제5권에 등장하는 작품으로서, 스티븐 킹의 단편 "옥수수밭의 아이들"을 방불케하는 멋진 낯선 마을 이야기입니다.

바벨의 아이들 [1] by 클라이브 바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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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왜 바네사는 표지판 하나 붙어있지 않는 낯선 길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것일까? 어디로 향하는 길인지는 오직 하나님 혼자서만 알 수 있을 것같은 낯선 길의 유혹을 말이다. 너무하다 싶을만큼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것에 열광적인 그녀의 행동은 과거 여러차례 말썽을 일으키고는 했다.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던 알프스에서의 조난사고. 강간당할 위기에 처했던 마라케치에서의 사건. 칼을 먹어삼키는 차력사의 수제자와 함께 했던 로워 맨하탄 벌판에서의 모험. 이렇게 과거의 쓰라린 경험들이 그녀에게 값비싼 교훈을 알려 주었건만, 목적지가 명확히 정해진 길과 어디로 향하는지 모를 낯선 길을 앞에 두게 되면, 그녀는 언제나 아무런 거리낌없이 낯선 길을 선택했다.

지금 상황이 바로 그런 경우다. 이쪽 길은 키스노스 해안을 따라 굽이굽이 흘러가는 길이다. 이 길은 과연 그녀에게 어떤 경험을 선사해줄 것인가? 수풀이 우거진 울퉁불퉁한 맨땅을 달리는 드라이브-우연히 야생염소와 마주칠 수도 있을 것이다-와 도로가 지나는 절벽에서 바라보는 푸른 에게해의 풍경같은 것은 빼고 말이다. 에게해 풍경쯤이야 그녀가 묵고 있는 메리카베이의 호텔방에서도 심지어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는 상태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으니까. 반면에 그녀가 지금 멈춰있는 교차로에서 뻗어나가는 나머지 길들은 목적지가 너무나도 확실히 정해져 있었다. 한쪽은 베니스풍 요새 유적이 있는 로트라로 가는 길. 다른 한쪽은 드리오피스로 가는 길. 로트라든 드리오피스든 그녀는 어느 쪽도 방문해 본 적이 없었지만, 둘 다 매력적인 마을이라는 소리는 들었었다. 하지만 목적지가 너무나도 뻔히 정해져 있다는 사실때문에 그녀는 흥미를 잃었다. 하지만 교차로의 나머지 이쪽 길은 어디로 가게 될 지 알 수는 없지만 -정말로 막막한 길이다- 적어도 확실하게 그녀를 이름도 정해지지 않은 미지의 장소로 인도해 줄 것이다. 그것은 무시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고집스럽게 이쪽 길로 차를 몰았다.

도로(급속도로 오솔길로 변해가고 있었다) 양쪽으로 보이는 풍경은 무척 지루했다. 차로 달리면서 지켜보고 있자니 당초 예상했던 염소들과의 만남이 성사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고, 드문드문 보이는 식물들은 영양실조의 기색이 역력했다. 이 섬은 파라다이스가 아니었다. 그림같이 멋진 화산이 있는 산토리니나 호화로운 해변과 그보다 몇 배는 더 호화로운 호텔들로 가득한 마이코노스-사이클라데스의 타락한 소돔이라 불리는 곳-와는 다르게, 키스노스는 여행객에게 자랑할만한 것이 없었다. 하지만 바로 그 점때문에 그녀는 이 섬을 찾아온 것이다. 될 수 있는 한 멀리 시끌벅적한 사람들로부터 떨어지기 위해서. 의심할 여지없이 지금 달리고 있는 이 길은 그녀에게 더욱 완벽한 평온함을 선사해 줄 것이다.

하지만 왼편에 늘어선 낮은 언덕들쪽에서 들려온 고함소리는 평온함을 추구하고픈 그녀로서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절박한 경고를 담고 있는 고함소리. 털털거리는 그녀의 렌트카 속에서도 고함소리는 생생하게 들려왔다. 그녀는 고물차를 세우고, 엔진을 껐다. 또한번 고함소리가 울려 퍼졌는데, 이번엔 총소리도 함께였다. 잠시 침묵 후에 두번째 총성이 터졌다. 생각할 것도 없이 그녀는 차문을 열고나와 오솔길에 발을 내딛었다. 바깥 공기는 야생화들의 향기로 가득했다. 차 안을 맴돌던 역겨운 휘발유 꼬랑내를 말끔히 날려버렸다. 자연의 향기를 만끽하고 있을 때, 세번째 총소리가 났다. 그녀는 언덕 꼭대기로 올라가고 있는 한 사람을 발견했는데 -너무 멀어서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다. 그녀의 남편이었더라도 몰라봤을 것이다- 그 사람은 잠시 후 봉우리 아래로 사라져버렸다. 총성이 서너발 울려퍼지고 나서, 그 사람을 추격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총이 또 한 발 발사됐다. 총을 쏘는 모습이 사람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허공을 겨냥하는 것을 보고, 그녀는 마음이 놓였다. 추적자들은 쫓고 있는 사람을 죽이려는 게 아니라 멈추게 하려고 경고사격을 하는 것이었다. 추적자들의 모습은 조금 전의 도망자만큼이나 희미했지만, 한가지 불길한 점이 있었다. 추적자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람에 흐느적거리는 검은 옷을 걸치고 있었다.

다시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계속할 것인지 아니면 언덕에 올라 저들이 벌이는 술래잡기의 정체를 알아볼 것인지 결정하지 못하고, 그녀는 차 옆에 서서 망설였다. 총소리는 확실히 유쾌하지 못한 소리였지만, 그렇다고해서 그녀가 지금같은 미스테리의 현장에서 등을 돌리고 외면하는 일이 가능한 일이던가? 검은 옷의 사람들은 사냥감을 쫓아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녀는 잠시동안 그들이 떠난 자리를 응시하더니, 가능한 한 자세를 낮추면서 그들이 있던 지점을 향해 출발했다.

지형이 눈에 띄는 특징없이 단조로워서 거리를 제대로 가늠하기가 힘들었다. 모래투성이 언덕들은 어느 것이나 죄다 똑같아 보였다. 나무들 사이를 돌고 돌아 거의 10분이 지났을 때, 그녀는 도망자와 추적자들이 사라진 지점이 어디였는지 도저히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와 함께 그녀는 온통 잡풀이 무성한 언덕 위에서 완전히 길을 잃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고함소리와 총소리는 하나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녀와 함께 하는 소리라곤 갈매기소리와 발 아래에서 성가시게 울려퍼지는 매미소리뿐이었다.

"씨팔." 그녀가 말했다. "내가 지금 뭐하는거야?"

그녀는 근처에 있는 가장 큰 언덕을 골라 모래흙에 익숙치 않아 고생하고 있는 발을 이끌고 꼭대기까지 터벅터벅 걸어 올라갔다. 잘하면 차를 두고 온 오솔길을 발견하든지 아쉬운대로 바다라도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만약 절벽들이라도 보게 되면, 차를 두고 왔던 지점을 어림잡아 정확한 방향을 정해서 쭉 가보면 얼마 안있어 오솔길에 닿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언덕들에 둘러싸여 고립되어 있었다. 사방을 아무리 둘러봐도 어느 게 어느 건지 도저히 분간할 수 없는 똑같은 모양의 봉우리들이 오후 햇살 속에 불쑥 솟아나 있었다. 다급해진 그녀는 손가락에 침을 묻혀 머리 위로 올려 보았다. 언젠가 바람이 바다쪽에서 불어온다고 주워들었었기 때문에 바람방향만 알게 되면 정확한 탈출방향을 정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바람은 거의 무시해도 좋을만큼 약하게 불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녀에겐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녀는 오솔길이 있을법한 방향을 결정하고서 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숨돌릴 틈 없이 5분동안 언덕들을 오르락내리락하다가 힘겹게 봉우리에 올랐어도, 그녀는 자신의 차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그대신 아까 전의 언덕 꼭대기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이 발견되었다. 하얀색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감시탑이 서있고 높은 벽이 건물들 주위를 둥글게 둘러싸고 있는 것으로 보아 요새처럼 보였다. 도망자와 추적자들 모두가 이 곳에서 나온 것이며, 이런 곳에는 가까이 가지 않는 게 신상에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그녀의 마음 속에  떠올랐다. 그렇지만 건물들 속의 누군가에게 길을 물어볼 엄두도 못내고 무턱대고 이 황무지를 배회하다가 영원히 그녀의 차를 찾지 못한 채 방황하게 되지는 않을까? 게다가 건물들 모양새를 보니 별로 위험할 것 같지도 않았다. 밝은 색으로 칠해진 벽 위로 삐죽 나온 잎사귀 한 장으로 봐서는 그 안에 정원이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적어도 시원한 그늘 정도는 얻을 수 있겠지. 이제까지 걸어오던 방향을 바꿔 그녀는 건물촌의 입구쪽으로 향했다.

그녀는 오래된 철문 앞에 도착했다. 안도감이 들면서 피로가 밀려왔다. 언덕들을 헤매느라 지친 허벅지와 정강이가 부르르 떨렸다.

거대한 양쪽 철문 중 한 쪽이 열려 있어서, 그녀는 그리로 들어갔다. 철문 뒤에 펼쳐진 마당은 잘 다듬어져 있었는데, 군데군데 비둘기 똥이 얼룩져 있었다. 똥 싼 장본인들 중 몇몇이 나무 위에 앉아서 그녀를 보고 울어댔다. 지붕이 씌워져 있는 길들이 마당으로부터 뻗어나가 건물들이 몰려있는 미로 속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모험을 앞에 두고 낯선 길을 좋아하는 그녀의 괴팍스런 마음은 한껏 부풀어 올랐고, 맘에 드는 길을 하나 골라 걸어갔다. 햇빛을 피해 길을 걸어가니 평범한 모양의 벤치들이 늘어선 통로를 걷게 되었고, 그 다음에는 작은 울타리 벽이 둘러쳐진 곳에 도달하게 되었다. 울타리 벽 한 쪽엔 햇빛이 쏟아지고 있었는데, 그 벽이 움푹 들어가 있는 부분에 성모 마리아상이 서있었다. 그 유명한 성모 마리아의 아이는 행복에 겨운 표정으로 손을 들어올린 채 엄마 품에 안겨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 조각상을 보고 있으니, 이제까지 품어왔던 의문이 확 풀렸다. 외진 장소, 고요함, 단정하게 꾸며놓은 마당과 길. 이 곳은 종교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확실했다.

그녀는 10대 시절부터 쭉 무신론자였고, 지난 25년간 교회 문턱을 넘어본 적도 거의 없다. 현재 41살이 된 그녀가 과거를 따져보니, 이 곳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자신이 침입자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종교사원을 방문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 그렇지 않은가? 단지 오솔길로 가는 방향을 찾으려는 것 뿐이다. 이 곳에서 사람을 만나 길을 물어보고, 그 즉시 떠나면 그만이다.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조각상을 지날 때, 그녀는 누군가 엿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로널드와 함께 했던 결혼생활에서 그녀가 터득한 민감한 육감이 제공하는 믿을 수 있는 정보였다. 석달 전에 끝장난 그녀의 결혼생활 내내 화이트홀이나 워싱턴의 비밀정보부 뺨치는 별의별 방법으로 그녀를 감시하던 남편의 의처증으로 인해 그녀의 육감은 단련돼왔던 것이다. 지금 그녀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고, 수많은 눈이 그녀를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마당을 내려다보고 있는 건물들의 작은 창문들을 곁눈질로 살펴 보았고, 창문 중 한 군데서 뭔가 움직이는 것을 본 것도 같았지만, 아무도 그녀를 소리쳐 부르지는 않았다. 여기엔 무언의 의식, 침묵의 서약같은 것을 철저히 수행하는 수도사들이 살고 있어서, 그들과 대화하려면 손짓, 발짓을 총동원해야하는 걸까? 뭐, 그렇다면 그렇게하는 거지 뭐.

그녀 뒤에서 뛰어오는 발소리가 났다. 여럿이서 그녀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통로 아래쪽에서는 철문이 쿵하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불길한 예감에 그녀의 심장은 미친 듯이 두근두근 춤을 추며 온몸을 흐르는 핏 속에 경고신호를 보냈다. 흥분한 심장이 그녀의 얼굴에 튀어올라올 지경이었다. 피곤한 두 다리가 또다시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황급히 뛰어오는 발소리의 주인공들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바로 그 때 마리아상의 머리가 슬쩍 움직이는 것을 보게 되었다. 마리아상의 푸른 눈이 마당을 가로질러 걸어온 그녀의 행적을 쭉 지켜봤던 것이며, 지금의 그녀의 등 뒤로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장승처럼 꼿꼿이 서있었다. 그녀는 등 뒤에 성모상이 있으니 섣불리 도망가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찌됐건 하늘로 솟을 생각일랑 아예 하지 않는 게 좋았다. 수도원 그늘 속에서 수녀님 3명이 수녀복을 펄럭거리며 나타난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수녀들의 턱에 난 턱수염과 그들이 손에 들고 있는 반짝거리는 자동소총은 수녀님이 그리스도의 신부라는 환상을 깨뜨려 버렸다. 그녀는 어색하고 이상한 수녀들의 모습에 웃음을 터뜨릴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수녀들이 그녀의 심장을 향해 무기를 겨누고 있었다.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수녀들은 한마디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렇기는 해도 수녀처럼 차려입은 중무장한 남자들이 사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이 별로 좋은 일은 아니라는 것은 분명했다.

거룩하신 자매님들 셋이 -이 사람들은 그녀가 마치 로마 교황청을 박살낸 죄인이라도 되는 듯이 다루었다- 그녀를 마당에서 끌어내고는 몸수색을 샅샅이 실시했다. 좀 투덜대기는 했어도 그녀는 그들의 무례한 행동에 순순히 응했다. 수녀들이 겨누고 있는 총구가 한 순간도 그녀를 떠나지 않고 있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복종만이 최선의 행동일 듯 싶었다. 몸수색이 끝나자 수녀들이 그녀에게 다시 옷입을 시간을 주었다. 그리고는 그녀를 작은 방으로 데리고 가서 감금해 버렸다. 잠시 후 수녀 한 명이 맛좋은 렛시너 포도주 한 병과 함께 그녀가 시카고에서 맛 본 적 있는 속이 깊은 접시에 담긴 피자 한 판을 가지고 왔다. 오늘 일어난 석연찮은 일들에 대해 자축이라도 해야하는 걸까? 어찌됐든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신세가 된 그녀로서는 아무런 의욕도 생기지 않았다.

*     *     *     *     *     *     *     *

"착오가 있었던 것 같네요." 몇시간에 걸친 심문 끝에 반들반들한 콧수염의 남자가 바네사의 진술에 호의를 나타냈다. 바네사는 이 남자가 비록 요새 경비대 제복같은 것을 입고는 있지만, 여자 수도원장이 되기 위한 실적을 쌓으려고 불쌍한 민간인을 희생양으로 만들려는 야망은 없다는 것을 알고는 안심했다. 그의 사무실-진짜 그런 용도로 사용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은 별다른 장식이 꾸며져 있지는 않았는데, 유일하게 눈길을 끄는 장식품은 인간 해골이었다. 해골은 아래턱이 없었는데, 책상 위에 앉아서 텅빈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콧수염 남자는 옷을 제법 맵시나게 차려입고 있었다. 나비 넥타이는 반듯하게 매었고, 바지에는 칼같은 주름이 잡혀있다. 남자는 차분한 어조로 영어를 말했는데, 그녀는 그의 말 속에 담긴 색다른 억양을 감지했다. 프랑스인? 독일인인가? 그가 책상 서랍에서 초콜렛을 꺼내는 것을 보고 나서야, 그녀는 그가 스위스사람일 거라고 확신했다. 그가 주장하는 바로는, 그의 이름은 미스터 클라인이었다.

"착오라구요?" 그녀가 말했다. "당연하지. 당신 말대로 착오가 있었던 게 틀림없다구요!"

"우리는 당신 차를 발견했습니다. 당신이 묵고 있다는 호텔쪽도 체크해 봤습니다. 이제까지 한 당신의 진술은 사실이더군요."

"난 거짓말쟁이가 아니에요." 그녀가 말했다. 미스터 클라인이 우호의 표시로 초콜렛을 건네주었지만, 그녀는 전혀 우호적인 상태가 될 생각이 없었다. 이 곳에 있는 수많은 건물들 속 수많은 방들 중 하나, 별다른 장식도 없는 밋밋한 작은 방에 시계도 없이 갇혀 있어 정확히는 장담할 수 없었지만, 그녀는 현재 시간이 밤이 꽤 깊은 때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미스터 클라인과 그의 부하랑 함께 하는 심문시간이 너무도 오랫동안 계속되어, 그녀는 몸도 마음도 녹초가 되었다. "늦게라도 당신이 내 말귀를 알아듣게 돼서 다행이네요." 그녀가 말했다. "그럼 이제 나를 호텔로 돌려보내주는 거죠? 피곤해 죽을 지경이에요."

클라인이 고개를 저었다. "안됩니다." 그가 말했다. "허락할 수 없어 유감입니다."

바네사는 벌떡 일어나서, 격한 동작으로 의자를 뒤엎어 버렸다. 의자소리가 난 지 1초도 안되서 문이 열리더니 턱수염 자매님 하나가 권총을 손에 들고 나타났다.

"괜찮아, 스타니슬라우스." 클라인이 큰소리로 말했다. "제이프 부인이 내 목을 절단낸 것도 아닌데 뭐."

스타니슬라우스 자매님은 문을 닫고 나갔따.

"왜?" 바네사가 말했다. 그녀의 분노는 경비원의 출현때문에 좀 수그러 들었다. "왜 안된다는 건데?"

클라인은 깊은 한숨을 쉬고 나서, 한 시간 전부터 놓여있던 커피 주전자에 손을 대보고는 아직도 온기가 남아있는지 살펴봤다. 그는 컵에 커피를 따르고나서 대답했다. "제이프 부인, 내 생각에는 당신이 지금 상황을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가능한 한 신속하게 당신을 풀어드리겠다고 내가 개인적으로 약속하겠습니다. 그때까지는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지금 상황을 그저 게임이라고 생각하세요... " 그의 얼굴이 약간 찌푸려졌다. "... 사람들은 원래 게임을 좋아하잖습니까."

"누가 그 따위 소릴 해요?"

클라인이 표정을 찡그렸다. "신경쓰지 마요." 그가 말했다. "당신이 아는 것이 적으면 적을수록, 우리가 당신의 기억을 없애기 위해 괴롭히는 일도 적어질 것입니다."

그녀는 해골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이 모든 게 하나도 이해가 안돼." 그녀가 말했다.

"굳이 이해할 필요까진 없습니다." 미스터 클라인이 대답했다. 그는 식어버린 커피를 마시고 말을 계속했다. "제이프 부인, 당신은 이 곳에 발을 들여놓는 안타까운 실수를 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 우리도 당신이 들어오도록 방치한 실수를 한 것이구요. 평상시에는 당신이 목격한 것보다 우리의 경비태세가 훨씬 철저합니다. 그런데 당신은 우리의 경계가 느슨해진 순간에 이 곳에 들어오게 된 것이고... 그 다음은 우리가 아는 바대로-"

"이봐요," 바네사가 말했다. "나는 이 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알고 싶지도 않아요. 내가 원하는 건 그저 내가 묵고 있는 호텔로 돌아가서 남은 휴일을 평화롭게 끝마치는 것 뿐이라구요." 심문관의 얼굴표정으로 보건대, 그녀의 호소는 별로 설득력을 얻지 못한 것 같았다. "내가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는 거에요?" 그녀가 말했다. "나는 아무 짓도 않했어요. 아무 것도 보지 않았구요. 도대체 뭐가 문제에요?"

미스터 클라인이 일어섰다.

"문제라," 그는 혼잣말을 하듯 조용히 중얼거렸다. "문제가 하나 있긴 하지." 하지만 그는 그 문제가 무엇인지 말해주지 않았다. 그 대신 부하를 불렀다. "스타니슬라우스?"

문이 열리고 수녀가 들어왔다.

"제이프 부인을 방으로 모시고 가주게."

"우리 대사관에 정식으로 항의하겠어요!" 분노로 불타오르며, 바네사가 말했다. "나한테는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구요!"

"제발 부탁입니다." 씁쓸한 표정으로 미스터 클라인이 말했다. "소리 지른다고 아무 것도 도움이 될 건 없어요."

수녀가 바네사의 팔을 잡았다. 그녀는 그의 권총이 자신을 겨냥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

"같이 가실까요?" 그가 정중하게 물었다.

"안가면 안될까?" 그녀가 말했다.

"장난치지 마쇼."

[2]편으로 이어집니다.

K박사의 연구 [2] by 김동인

읽을꺼리 2007.05.09 00:47 posted by 조재형

오후 한 시쯤 손님들이 왔네, 원래 착하고 교제성이 없는 박사는 정신을 못 차려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하며 일변 웃으며 연거퍼 복동아 수남아를 찾으며, 조수들을 꾸짖으며 어리등등한 모양이야.

신사 숙녀 한 오십 명쯤 초대한 사람이 거진 모인 뒤에 두 시에 식당은 열렸네, 박사의 취지 설명이 있었은 뒤에 I신문사 주필 W씨의 답례로써 시식회가 시작되었어, 그런데 시작되자마자 어떤 신문기자 한 사람이 박사를 찾데그려.

"K박사."

"네?"

"이 ○○병에서 향기롭지 못한 내음새가 좀 납니다그려."

"?"

이때에 박사의 얼굴의 변화는 내 일생에 잊지 못하겠데, 문득 하얘지더니 웃음 비슷한 울음 비슷한 변한 얼굴을 하더니 별한 신음을 하면서 벌떡 일어서서 연구실로 가, 그래서 나도 따라가려니까 박사는 가던 발을 다시 돌이키며 나를 붙잡더니 내 귀에다 대고 작은 소리라고 하기는 하지만 그리 작은 소리도 아니야, 그런 소리로써

"야단났네그려, 스캇톨이나 인돌의 반응은 없었지?"

내야 인돌이 뭐인지 스캇톨이 뭐인지 아나, 박사가 시키는  대로 할 뿐이지, 더구나 반응인지야 알 리도 없잖아.

그래도 박사의 그 표정을 보니깐 모른다고 그러지도 못하겠데그려, 그래서

"확실히 없었습니다."

고 그랬네, 그러하니깐 그래도 아직 미안한지

"야단났네, 큰일났어."

하면서 어쩔 줄을 모르데그려.

"아 선생님 걱정하실 게 뭡니까 지금 모두들 맛있게 잡숫는데- "

사실 말이지, 한 사람이 그런 질문을 하기는 했다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모두 맛있게 먹고 있어. 내 말을 듣고 그 양을 보더니야 박사는 마음이 놓이는지 숨을 내어쉬며-

"좌우간 반응은 없었겠다. 확실히 없었어. 여보게 C군, 그 성명서 돌리게."

하데그려.

문제는 이게 문제일세. 한창 맛있게들 먹는 판에 당신네들이 먹고 있는 것이 똥이외다고 알게 하여 놓으면 무사할는지 이게 의문이야. 그러니 안 돌릴 수도 없고 그래서 그 인쇄물을 갖다가 복동이와 수남이를 시켜서 돌렸네그려. 그러니깐 어떤 사람은 받아서 주머니에 넣고, 어떤 사람은 식탁 위에 놓고, 어떤 사람은 읽어 보는데 나는 슬며시 빠져서 다른 방으로 가버렸지, 달아는 났지만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귀를 기울이고 있노라니깐 무엇이 왹왹하며 콰당콰당해 뛰어가 보았지. 하니깐 부인 손님 두 사람과 신시 한 사람이 입에 손수건을 대고 게워내는데, 그리고 몇 사람은 저편으로 변소변소 하면서 달아나고, 다른 사람들은 영문을 모르고 중독되었다고 의사를 청하라고 야단인 가운데 박사는 방 한편 모퉁이에 눈만 멀진멀진하면서 서 있데그려. 이게 무슨 꼬락서닌가 망신이데그려. 그래서 박사에게가서 웬 셈입니까고 물었더니 박사는 우들우들 떨면서

"야단났네, 망신이야, 큰일났어, 야 수남아."

하더니, 우물쭈물 저편 방으로 달아나 버리고 말데그려. 그래서 하는 수 있나. 그래도 이런 일이 생기지나 않을까 해서 내가 몰래 진토제를 준비해 두었던 것이 있기에 내다가 임시 조수며 복동이 수남이를 시켜서 (초대 받았던 의사 몇 사람까지 협력해서) 간호들을 한 뒤에 박사는 몸이 편치 않아서 못 나온다고하고 사과를 한 뒤에 손님들을 보내버렸지.

시식회는 이렇게 흐지부지 끝이 났네그려.

그런 뒤에 박사의 침실에를 가 보았더니 박사는 몸에 신열까지 나고 헛소리를 탕탕하고 있지 않겠나. 나도 미안스럽기도 하거니와 딱하데, 그래서 얼음을 갖다가 박사의 머리를 식히면서 한참 간호하니깐야 정신을 좀 차려. 그리고 연하여 야단이다, 망신이다, 어쩌나를 연발하는데 거북상스럽데, 한참 정신없이 눈을 한군데만 향하고 있다가는

"여보게 C군 이 일을 어쩌나, 야단났네그려, 이런 괴변이 어디 있겠나?"

하고 하는데 내니 무어라고 대답하겠나,

"뭘하리까?"

이런 대답은 하지만 참 거북상스럽기가 짝이 없데. 소위 사회의 일류라는 사람들을 초대하여다가 똥을 멕여 놓았으니 이런 괴변이 어디 있겠나, 세상사에 어두운 박사는 이렇게까지 될 줄은 뜻도 안하였겠지만 나 역시 뜻밖일세그려. 아니 나는 이런 일이 있지 않을까 예감은 했었지만 박사의 그 걱정하는 태도를 보니깐 예상 이외로 나도 겁이 나데그려. 내 생각으로는 대상인 피해자(?)를 개인 개인으로 여겼지 그것이 합한 <사회>라는 것을 생각 안했네그려. 그러니 이제 사회의 명사 숙녀들을 똥을 멕여 놓았으니 말썽이 안 생기겠나.

그러는 동안에도 연하여 신문기자가 찾아오며 전화가 오는 것을 복동이를 시켜서 모두 거절하여 버린 뒤에 그날 오후 종일과 밤을 새워 가지고 협의한 결과 말썽이 좀 삭아지기까지 박사와 나와 어떤 시골에 한두달 숨어 있기로 작정을 하였네, 그리고 목적지는 박사의 토지가 몇백 정보 있는 T군의 박사의 사음의 집으로 작정하였네그려. 그리고 이튿날 아침 첫차로 그리로 뺑소닐 쳤지.

그런데 우리의 생각으로는 신문에서 꽤 왁자지그르할 줄 알았더니 비교적 말이 없데그려. I신문 잡보란에 조그맣게 ○○떡 시식회라 하는 제목 아래 간단히 기사가 날 뿐 그 굉장한 사건이며 ○○병의 원료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어, 아마 신문사에서도 창피스럽던 모양이야. K역에서 내려서 T군을 가는 자동차를 기다리기 위해서 어떤 여관에서 묵은 뒤에 이튿날 아침에야 우리는 그 신문기사를 보았는데 이 기사를 보더니 박사는 적이 안심이 되는지 처음으로 조금 웃데그려. 그러더니 갑자기 T군은 그만두고 그 역에서 머지 않은 Y온천장으로 가자데그려, 내야 이의가 있을 리가 있나. 온정으로 갔지.

온정에서도 박사는 생각만 나면 그 이야기만 하자네그려.

"C군 스캇톨의 반응은 확실히 없었지? 혹은 좀 있었던가. 왜들 토해. C군 반응은 확실히 없었나? 아무래도 있은 모양이야."

"반응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혹은 없었다해두 게우는 게 당연하지요. 누가- "

"C군!"

박사는 이런 때는 꼭 역증을 내데그려. 그러나 이렇게 되면 내 성미도 그리 곱지는 못하니까 막 쏘아주지.

"똥 먹구 구역 안 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똥?"

한 뒤에는 일어서서 뒷짐을 지고 한참 그치데그려, 그러다가

"자네 오핼세. 과학의 힘으로 부정한 놈은 죄 없애버린 게 왜 똥이야. 오핼세."

한 뒤에는 또 이유도 없이 하하하하 웃지.

"선생님, 그렇지 않어요. 분석해 보면 아무리 정한게라 해두 똥으로 만들은 것을 먹고야 왜 구역을 안해요? 세상사는 그렇게 공식대로 되는 것이 아니니깐요."

"공식? 아무리 생각해두 자네 오해야 그렇진 않으리."

"그럼 왜들 게웠어요."

"글쎄 반응은 없었는데, 혹은 있었든가...... "

단순한 박사는 아직껏 손님들의 게운 이유를 스캇톨이나 인돌이 좀 남아서 대변 특유의 내음새가 난 데 있는 줄만 알데그려.

한인은 연정을 <오매불망>이라고 형용했지만 박사와 ○○병의 새야말로 오매불망인 모양이야. 우두커니 앉았다가도 문득 스캇톨이 있었나 한숨을 하고는 쉬고 하네, 자다가도 세척이 부족한 모양이야하면서 벌떡 일어나네그려, 곁에서 보는 내가 참 미안하고 딱하데, 너무 민망스러워서,

"선생님 인전 그 생각은 잊어버리시구려."

하며는

"잊지 않자니 헐 수 있나?"

하고는 또 한숨을 쉬네, 여간 민망스럽지 않데, 사실 말이지 귀한 발견이야. 귀한 발견이 아닌가, 아무도 돌아보지 않고 헛되이 땅속에서 썩어 버리는 폐물 가운데서 평균 오할 약의 귀중한 자양품을 얻어낸다하는 것은 인류 경제 문제의 얼마나 큰 발견인가. 우리의 인습 때문에 비위가 받지를 않으니 말이지 그것을 만약 어떤 사람이 원료를 비밀히 해가지고 대량으로 만들어서 판다할지면 우리 인류에게 얼마나 큰 공헌인가. 그래서 어떤 날 저녁을 먹다가 박사에게 그 떡을 학분광의 나라 독일 학계에 발표해 보면 어떻느냐고 물어 보았지. 하니깐 대답도 없어. 그리고 나도 그 말만 한 뿐 잊어버리고 말았었는데 박사는 잊지 않았던 모양이야.

그날 밤 한잠 들었다가 목이 너무 말라서 깨어서 물을 먹으려는데 박사가 그냥 안 잤댔는지

"독일도 틀렸어."

하데그려. 나야 자다 주먹이라 무슨 뜻인지를 알겠나. 그래서 그저 네네 하면서 물을 먹고 다시 누우니까

"○○떡은 독일도 자미가 없어."

하고 다시 주를 놓데그려. 그 소릴 들으니까 펄덕 졸음이 천 리 밖으로 달아나는데 그렇지 않아도 이즈음 늘 민망스럽던 판에 박사가 밤에 잠도 안 자고 그 생각을 하고 있었나 하니깐 막 눈물이 나오려데그려. 그래서 왜 그렇느냐고 물으니까

"독일서는 공기에서 식품을 잡는 것을 연구해서 거진 성공했다니까 이것은 그다지 센세이션을 일으킬 것이 못될 것 같어."

하면서 또 한숨을 쉬데그려. 나도 할말이 없어서 그것도 그렇겠읍니다 하고 다시 먹먹히 있노라니깐 또 찾지 않겠나-

"C군 자나?"

"네?"

"안 자나"?

"네?"

"일본은 어떨까 나라는 좁고 백성은 많은...... "

"말씀 마십쇼. 일인에게는 소위 결백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そ うへ入(똥 먹어)라는 것은 욕이 아닙니까. 어림도 없읍니다."

"그래도 일인들은 더러운 목간물을 벌걱 벌걱 들어마시지 않나?"

"그게야- 그래두 ○○떡은 안 먹습니다."

"안 먹을까...... "

"안 먹지 않고요."

박사는 또 한숨을 쉬네.

"선생님 그것을 미국에다 발표해 보면 어떻습니까."

"미국놈은 먹어 줄까?"

"먹을 건 모르지만 그놈들은 아무것이든 신기한 것과 과학이라는 데는 머리를 싸매고 덤벼드는 놈이니깐 혹은 좋다 할지도 모르지요."

"글쎄- "

이러한 말을 주고받고 하다가 아무런 해결도 얻지 못하고 자고 말았지.

온정에는 한 달 남짓이 묵어 있었는데 박사의 ○○떡에 대한 집착은 조금도 줄지 않데그려. 그 지독한 집착심이야...... 이러구러 한 달 남아나 지난 뒤에 인제는 돌아가자고 온정을 출발해서 K역까지 왔다가 여기까지 온 이상에는 박사의 토지도 돌아볼 겸 T군까지 다녀 가자는 의논이 생겨서 우리는 T군으로 갔었네그려.

양력 이월 초승인데 혹혹 쏘는 바람을 안고 자동차로 두 시간이나 흔들리면서 T군까지 가니깐 정신이 다 없어지데, 눈이 보이지를 않고 다리가 뻗뻗하며 코가 굳어진 것 같고 몸의 혈액 순환까지 멎은 것 같어. 그것을 겨우 자동차에서 내려서 (면장 노릇 하는) 박사의 사음의 집을 찾아갔지. 머리가 휑한 정신이 없는 것을 그 집을 찾아 들어가니깐 반갑게 맞으면서 자기네들은 모두 건넌방으로 건너가며 큰방을 우리에게 내어주어. 그래서 우리는 들어가서 다짜고짜로 자리를 펴고 누웠지.

방을 절절 끓여 놓고 두어 시간 자고 나니깐 정신이 좀 들데, 박사도 그때야 정신이 드는지 부시시 일어나더니 토지를 돌아보러 나가자데그려. 세수들을 하고 옷을 든든히 차린 뒤에 사음의 아들을 불러서 앞세우고 그 집을 나서려는데 개가 한 마리 변소에서 뛰쳐나오면서 컹컹 짖겠지. 보니깐 변소에서 똥을 먹고 있던 모양이라 입에 잔뜩 발라가지고 그 더러운 입을 쩍쩍 벌리며 따라오데그려, 사음의 아들은 개를 쫓아 버리노라고 야단인데 가는 박사에게 개도 ○○떡을 먹다가 온다고 그러니깐 박사는 눈살을 잔뜩 찌푸리더니

"에 더러워 C군 실험실과는 다르네. 이놈의 개 오지 마라 가!"

하며 슬슬 피하며 나가는 모양은 요절하겠데. 박사의 토지라는 것은 꽤 크데. 이백 몇 십 정보라는데 말은 쉽지만 눈으로 덮인 무연한 벌판인데 어디까지가 경계인지 좀체 모르겠데. 그것을 한 번 다 돌아보고 사음의 집까지 돌아오니깐 벌써 저녁때가 되었어.

몸도 녹일 틈이 없이 저녁상을 들여왔데그려. 시장하던 김이라 상을 움켜안고 먹지. 더구나 내가 좋아하는 개고기가 있데그려. 그래서 밥은 제쳐놓고 개고기만 뜯어먹고있지. 박사도 괜찮은 모양이야. 글쎄 한 달 남아를 일본 여관에 묵노라고 고기는 맛까지 거의 잊게 되었네그려. 그런 판이니까 오래간만에 만나는 고기라 박사도 한참 고기만 뜯더니

"C군."

하고 찾데그려.

"왜 그러십니까."

"이런 시굴서도 암소를 잡는 모양이야."

".......?"

"고기 맛이 썩 부드러운데 암소고기야."

"선생님 개고기올시다."

"개?"

"아까 그 짖던 개요. 돌아올 때는 안 보이지 않습디까."

"아까 그? 그 똥 먹던?"

"그럼요."

박사는 덜컥 젓가락을 놓데그려. 그러더니 얼굴이 차차 하얘지더니 히끈 저편으로 돌아 앉겠지.

그러고 힉힉 두어 번 숨을 들여쉬더니 확하니 모두 토해 버리데그려.

왜 그러십니까고 나도 먹던 것을 집어치우고 박사에게로 가서 잔등을 쓸어주니까 가만 있게, 가만 있게 하면서 연하여 힉힉 소리를 내데그려. 그것을 한 십분 동안이나 쓸어주니깐 좀 진정되는지

"안됐네. 이것 주인 몰래 치우세."

하면서 손수 걸레로 모두 훔쳐서 문밖에 내어놓기에 나는 그것을 집어다가 대문 밖에 멀리 내버리고 도로 들어오니깐 박사는

"에 속이 편찮어, 야- 수남- 야- 상치워라."

하더니 베개를 내리고 벌떡 눕고 말데그려. 상을 치운 뒤에 사음이 불을 켜 가지고 들어왔는데 박사는 돌아누운 대로 그냥 모른 체하기에 몸이 곤하신 모양이라고 사음을 내보내고 나도 베개를 내려서 드러누웠더니 한참있다가 박사가 돌아누운 대로 찾아

"C군."

"네?"

"개고기하고 돼지고기하고 어느 편이 더 더러울까?"

"글쎄 돼지가 더 더러울걸요."

"그럴까. 둘 다 마찬가지겠지. 마찬가지야, 소고기두 마찬가지구."

혼잣말같이 이렇게 중얼거리더니 또 잠잠해 버려. 나도 곤하던 김이라 어느 틈에 잠이 들었는지 모르지. 좌우간 나는 입은 채로 잠이 들고 말았는데 아마 박사가 그렇게 한 게야. 자리를 모두 펴고 옷을 벗겨서 이불속에 집어넣었데그려. 내야 알 리가 있나. 이튿날 아침에 깨어서야 처음 알았지.

이튿날 아침 눈을 부시시 뜨니깐 박사는 언제 깼는지 벌써 깨어 있다가 내가 눈을 뜨는 것을 보고 C군 하데그려. 그래서 대답을 하니까

"일인도 안 먹을 께야."

또 자다 주먹일세그려.

"네?"

"○○병은 일인도 안 먹을 께야.목간물은 벌걱 벌걱 먹어두."

"네- 아마- "

"돼지고긴 좋아두 개고긴 못 먹겠거든. 자네 개고기 잘 먹나?"

"육중문왕(肉中文王)입니다."

"그럴 께야."

하더니 한숨을 내어쉬어.

그때부터 박사의 입에서는 ○○병의 문제는 없어졌네그려.

그뒤에 집에 돌아와서도 박사는 ○○병의 문제는 집어치우고 전자와 원자의 관계의 연구를 쌓는 중이니깐 이제 언제 거기 대한 무슨 발명이나 발견이 나올 테지. 그리고 이번 것은 그 ○○병과 같이 실패에 안 돌아가기를 나는 진심으로 바라네.

이것이 C가 들려준 바 K박사의 연구의 성공에서 실패로 또다시 일전(一轉)하여 회개까지의 경로였었다.

< The End >

K박사의 연구 [1] by 김동인

읽을꺼리 2007.05.09 00:45 posted by 조재형

   김동인(1900~1951)님은 한국 소설계의 거장입니다. 학교 다닐 때 김동인님의 단편 "광염 소나타"를 읽고 뜨겁게 감동했었습니다. 그 작품 속에는 스티븐 킹이나 클라이브 바커 전혀 부럽지 않은 엄청난 광기의 세계가 숨어있었던 것입니다. 한국에도 이런 작가가 있었다니!

   지금 소개하는 "K박사의 연구"는 김동인님의 무서운(?) 이데올로기가 유감없이 표출된 굉장한 소설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K박사의 연구에 동참합시다. 두려워 말고~.

K박사의 연구 [1] by 김동인

(1929년 12월. 잡지 "신소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네 선생은 이즈음 뭘하나?"

나는 어떤 날 K박사의 조수로 있는 C를 만나서 말 끝에 이런 말을 물어 보았다.

"노신다네."

"왜?"

"왜란?"

"그새 뭘 연구하고 있었지?"

"벌써 그만뒀지."

"왜 그만둬?"

"말하자면 장난이라네. 하기야 성공했지. 그렇지만 먹어 주질 않으니 어쩌나."

"먹다니?"

"글쎄. 이 사람아, 똥을 누가 먹어."

"똥?"

"자네 시식회에 안 왔었나?"

"시식회?"

C의 말은 전부 <?>였었다.

"시식회까지 모를 적에는 자네는 모르는 모양일세 그려. 그럼 내 이야기 해줄께 웃지 말구 듣게."

이러한 말끝에 C는 K박사의 연구며 그 성공에서 실패까지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     *     *     *     *     *     *     *     *     *     *

         맬더스라나.

        [사람은 기하학급으로 늘어 가고 먹을 것은 수학급으로밖에는 늘지 못한다]고 이런 말을 한 사람이 있지 않나. 박사의 연구도 이 말을 근본삼아 가지고 시작되었다네.

어떤 날(여름일세) 박사는 책을 보고 있고 나는 다른 생각을 하면서 같이 앉았었노라는데 박사가 머리를 번듯 들더니

"자네 똥 좀 퍼오게."

하데그려. 이게 무슨 말인지 알 수 있겠나. 그래서 똥이란 대변이느냐고 물었더니 대변 아닌 똥도 있느냐고 그래. 그래서 무슨 검사라도 할 일이 있는가 하고

"뉘 변을 말씀이외까."

했더니 벌꺽 성을 내면서 뉘 똥이던 퍼오라데그려, 너무 어망처망하여 가만 있었지. 글쎄(의사는 아니지만) 검사라도 할 양이면 뉘변이던 지적을 해야 하지 않는가. 그래서 박사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노라니깐 채근도 없어. 흥 잊었구나 하고 다시 앉으려 하니까,

"퍼왔나?"

하면서 일어서데그려. 자 이렇게 채근까지 하는 것을 보면 농담도 아니야, 할 수 없이 변소에 가서 내음새나는 것을 조금 퍼다가 박사께 드렸네그려. 그것을 힐끗 보더니 조금만 퍼왔다고 또 성을 내거든, 나도 슬그머니 결이 나데그려. 그래서 다시 가서 한 바가지 드북히 퍼왔지. 그러니깐야 만족하다는 듯이 웃더니 실험옷의 팔을 걷으면서 나도 연구실로 가자고 그래,

자네나 아다시피 내야 이학상 지식이야 어디 조금이라도 있나. 단지 박사의 서기로 들어가 있는 사람이니깐 좌우간 알던 모르던 따라 들어갔지. 박사는 똥을 떠 가지고 현미경으로 시험관에 넣어서 끓이며 세척하며 전기로 분해하며 별별짓을 다 해보더니 그래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지 저녁까지 굶어 가면서 밤새도록 가지고 그러데그려. 아무리 전기 환기 장치를 했다해도 그 내음새는 참 죽겠데. 코가 저리고 눈이 쓰리고 나는 참다 못해서 슬그머니 나와 버렸네그려. 그랬더니 새벽 두 시쯤 찾아. 그래서 가보니깐,

"이게 새 똥이냐, 낡은 똥이냐?"

또 묻데그려, 내니 어찌 알겠나, 변소에서 퍼온 뿐이지. 변의 신구야 알 리가 있겠나. 그래서 모르겠다고 그러니깐

"낡은 겐 모양이군. 다 썩었어. 낡은 게야."

혼자서 중얼중얼하더니 나더러 새 똥을 좀 누라데그려. 나도 성미가 그다지 곱지 못한 사람이라 마렵지 않노라고 해버리니깐 박사는 근심스러이 머리를 기웃기웃하더니,

"나두 그리 매렵지 않은걸.'

하면서 그릇을 가지고 저편 방에 가더니 마렵지 않다던 사람이 웬걸 그다지 누었는지 한 그릇 무더기 담긴 것을 가지고 들어오데그려, 아, 우습기도 하고 잠 못 자는 것이 일변 성도 나고 그래서 "밤참으로는 넉넉하겠읍니다."고 쏘아 주려다가 그래도 박사가 <마지메>하게 들여다보고 있는 것을 보니깐 그러지도 못하겠어. 그래서

"전 먼저 자겠읍니다."

하고 나와서 내 방으로 가서 자버렸지.

그 이튿날부터는 박사는 꼭 연구실에 틀어박히었는데 음식까지 그 내음새나는 방에서 먹고 하는데 오히려 불쌍하데, 땀을 빽빽 흘리면서 더러운 물건을 이리 주물고 저리 주무는 양은 우습기도 하거니와 한쪽으로 생각하면 그 사치하게 길러나고, 아무 고생이며 더러움을 체험해 보지 못한 박사가 연구 때문에 얼굴을 찌푸리고 내음새나는 방에서 음식까지 먹으며 밤잠까지 못 자며 돌아가는 것은 어떻게 엄숙해 보이기도 하고 존경할 생각도 나데.

이러구러 몇 달이 지났네. 무얼 하는지는 모르지만 대변을 분석해 가지고 무슨 유효성분을 얻어 보려는 것은 알겠데. 좌우간 낡은 똥은 쓸 수가 없다 해서 그 뒤부터는 집안 하인의 변까지 죄 그릇에 누어서 박사의 연구실로 들어가게 되었네그려. 그러니깐 변소는 늘 소변밖에는 아무것도 없었지. 집안 사람이래다 박사와 나와 행랑 식구 세 사람과 식모 하나 침모 하나와 사환애 둘이었는데, 때때로는 그 아홉 사람의 것으로도 부족될 때가 있어 그런 때는 박사는 가족이 이십 인이며 삼십 인이며 하는 사람들을 슬며시 부러워하는 기색까지 보이는데 연구 재료가 부족해서 박사가 안타까와 하며 발을 동동 구를 때는 너무 미안스러워서 될 수만 있으면 서너 동이씩 만들어 보고 싶데.

그러는 동안에 시골 계신 할머님이 세상을 떠나서 나는 시골 내려가서 한 달쯤 있다가 가을에야 다시 올라왔네그려. 그래서 곧 박사네 집으로 가서 짐을 풀은 뒤에 복동이(사환애)에게 물으니깐 박사는 역시 연구실에 있다 하기에 들어가서 인사를 드렸네, 박사는 무엇을 먹고 있었는데 몹시 반겨하면서 와서 같이 먹자고 그래, 오래간만에 맡으니깐 내음새는 꽤 지독하데,

연구실 한편 모퉁이에 조그만 책상을 놓고 거기서 박사는 점심을 먹고 있는데 나도 오라기에 교자를 하나 끄을고 그리로 갔지. 점심조차 떡 비슷한 것인데 맛은 <고깃국물을 조금 넣고 만들은 밥>이랄까 좌우간 그 비슷한 맛이 나는 아직껏 먹어 보지 못한 물건이야. 그래서 혹은 양식인가 하고 두어덩이 소금을 찍어서 먹으니깐

"맛 좋지?"

하고 묻데그려, 그래서 괜찮다고 하니깐

"똥내도 모르겠지?"

하고 또 묻데그려.

"?"

아닌게 아니라 내음새가 좀 나기는 하는 것을 이 방안의 공기 탓이라고 하고 그냥 먹었네그려.

그렇지만 박사의 그 말을 듣고 나니깐 혀 아래서 맑은 침이 핑그르르 돌더니 걷잡을 새 없이 구역이 나겠지. 그래서 변소로 가려고 일어서려다 그만 그자리에 욱하니 토하여버렸네.

"왜 그러나? 왜 그래 야 복동아, 수남아."

하면서 박사는 일어서서 나를 붙들어다가 소파에 뉘이려데그려. 아, 결도 나고 성도 나고 그래서 괜찮다고 하고 박사를 밀쳐 버리고 대체 그 먹은 것이 무엇인가고 물었네. 둔감한 박사는 내가 토한 원인을 그 때야 처음으로 알은 모양이데그려.

"먹은 것? 응 그것 말인가? 그것 때문에 토했나? 난 또 차멀미로 알았군. 그건 순전한 자양분일세. 하하하하하(박사는 웃을 경우에는 웃을 줄을 모르고, 웃지 않을 경우에는 잘 웃는 사람이라네) 건락(乾酪), 전분 지방 등 순전한 양소화물(良消化物)로 만들은 최신최량원식품(最新最良原食品)."

"원료는- 그- "

"그렇지 자네도 아다시피 그- "

나는 그 말을 채 듣지도 않고 다시 일어서면서 토했지. 좀 메스껍기도 하고 성도 나는 김에 박사의 얼굴을 향하여 토했네그려. 박사도 놀란 모양이야.

"아- 이 사람두. 야 수남아- 복동아- "

그때 결나는 것을 보아서는 박사를 한 대 쥐어박고 싶기는 하지만 꿀꺽 참고 내 방으로 돌아와서 이불을 쓰고 눕고 말았지. 그뒤 사흘 동안을 음식 하나 못 먹고 앓았네. 글쎄 구역에 음식을 어찌 먹겠나. 아무것이라도 뱃속에 들어만 가면 잠시를 머물러 있지 않고 도로 입으로 나오데그려. 아무것을 먹어도 그 내음새가 나는 것 같아.

박사는 미안한지 진토제를 주면서 잠시도 내 곁을 떠나지 않고 몸소 간호하겠지. 그러면서 연거퍼 자양분만 뽑아서 정제한 것이니깐 아무 불쾌할 리가 없다고 설명해 주네그려. 아닌게아니라 그러고 보니깐 나도 미안하데. 무슨 악의로써 내게다가 그것을 멕인 바도 아니오. 박사 자기도 먹으면서 내게도 좀 준 것이니 말하자면 원망할 것도 없어 박사의 말마따나 무슨 부정한 것이 섞인 배도 아니오, 과학의 힘으로써 가장 정밀히 만들은 것이겠으매 웬만한 음식점의 음식들보다는 훨씬 깨끗할 것일세. 그저 내 비위에 맞지 않는다는 것뿐이지...... 그것을 책임 관념상 박사가 그렇게 미안해 하는 것을 보니깐 오히려 내가 미안해 오데그려. 그래서 사흘째 되는 날 일어났지.

"그 음식이 더럽다는 것이 아니라 내 비위에 맞지 않는 것뿐이니깐 그 마음상만 고치면 되겠지요."

그리고 일어나서 먹기 싫은 음식을 억지로 먹으면서 연구실에 드나들기 시작하였네그려. 처음에는 참 역하데, 박사는 점심은 역시 손수 만들은 음식을 먹는데 그것을 보기만해도 구역이 탁탁 가슴에 치받치는데 참 못견디겠어. 박사는 먹기는 먹으면서도 미안한지,

"이게 어떻담, 하하하하하."

하면서 먹고 해.

그러는 가운데도 박사는 실험을 거듭하여 몇 가지 조미료를 가해서 맛에 대한 연구를 쌓데그려, 그리고 한 가지의 조미료를 더 넣을 때마다 자기가 몸소 맛 본 뒤에는 연대감정인으로 차마 내게는 먹어 보래지 못하고 복동아, 수남아 하여 가지고는 애들에게 먹어 보래지, 그애들이야말로 ありがためりわく(지나친 친절)야, 얼굴이 벌개지면서 주인의 명령이라 거역지는 못하고 입에 조금 넣는처럼 한 뒤에는 삼키지도 않고

"먼저번 것보담도 더 좋은걸요."

하고는 달아나고 하는 양은 가련해. 그럴 때마다 정직한 박사는 <득의만면>해 가지고 그러려니 그러려니 하면서 상금으로써 그애들에게 오십 전씩 준다네, <감정료>지.

박사의 말을 의지하건대 똥에는 음식의 <불능소화물> 즉 섬유며 <결체조직>이며 각물질이며 <장관내분비물의 불요분(不要分)> 즉 코라-고산(酸), 띄스린 <담즙점액소>들 밖에 부패산물인 스캇톨이며 인들이며 지방산들과 함께 아직 많은 건락과 전분과 지방이 남아 있는데 그것은 사람 사람에게 따라서 혹은 시간을 따라 각각 다르지만 그 양소화물이 삼 할에서 내지 칠 할까지는 그냥 남아서 홍문으로 나온다네그려. 그리고 그 대변 가운데 그냥 남아 있는 자양분은 아무도 돌아보는 사람이 없이 헛되이 썩어 버리는데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추출할 수만 있다 하며는 그야말로 식료품 문제에 위협 받는 인류의 큰 복음이 아닌가. 그래서 연지구지하여 그 방식을 발견하였다나. 말하자면 석탄의 완전연소와 마찬가지로 자양분의 완전소화를 계획하여 성공한 셈이지, 즉 대변을 분석해서 그 가운데 아직 삼 할 혹은 칠 할이나 남아있는 자양분을 자아내어 그것을 다시 먹자는 말일세그려.

그러니까 사람이 하루에 세 끼씩 먹는 가운데 두 끼는 보통 음식을 먹고 한 끼분은 그 새로운 주식품을 먹으면은 이 지구상의 식료원품이 삼 할 이상 늘어가는 셈 아닌가. 이 지구에 지금보다 인구가 삼 할쯤 한 오천만 명쯤은 더 많아져도 박사의 연구가 실현만되면 걱정이 없는 셈일세그려. 맬더스도 이후에 이런 천재가 나타날 줄은 몰랐기에 그런 걱정을 했지.

좌우간 그러는 동안에 조미(調味)에 대한 연구까지 끝나지 않았겠나. 나는 첫번 모르고 한 번 먹을 뿐 그 뒤에는 절대로 입에 대지도 않았고 박사도 내게는 권하지도 않았으니깐 모르지만 내음새는 마지막에는 꽤 좋은 내음새가 나데. 스끼야끼 비슷하고도 더 침이 도는 내음새야, 내음새뿐으로는 구미도 들데, 그만큼 되었으니깐 이제 남은 것은 <발표>라 하는 과정일세 그려. 박사는 어림도 없이 발명 경로를 신문에 발표한  뒤에 시식회를 열겠다고 그래. 그것을 내가 우쩍 말렸지. 나는 먹어도 못 보았지만 짐작컨대 맛은 괜찮은 모양인데-

그러니깐 그 맛있는 것을 먼저 먹여 놓은 뒤에 이것의 원료를 발표해야지. 먼저 원료를 발표하면 시식회에는 한 사람도 나오지도 않을 것일세그려. 그렇지 않나. 그래서 말렸더니 박사도 그럴듯한지 내 의견대로 하자고 그러더먼. 그리고 박사와 나와 의논한 결과 그 발명품의 이름은 박사의 이름을 따라 ○○병(餠)이라 하기로 하고 그 ○○병에 대한 성명서를 박사가 초(草)하였네. 지금 똑똑히 기억지는 못하지만 대략 이런 뜻이야.

- 생거(M.Sanger)라 하는 폭녀가 나타나서 산아제한을 주장한 것을 일부 인도주의자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거기도 상당한 근거가 있는 것을 어찌하랴. 위생관념이 많아 가면서 년(年)년이 사람의 죽는 율은 주는데 그에 반하여 이 지구는 더 커지지 않으니까 여기 사람의 나아갈 세 가지의 길이 생겼으니 하나는 <도로 옛날로 돌아가서 이 세상에서 위생이라 하는 것을 없이하고 살인기관으로 전쟁을 많이 하여 사람의 수효를 도태하는 것>이요, 또 하나는 <사람의 출세(出世)를 적게 하는 것>이요, 나머지는 <아직껏 돌아보지 않던 데서 식원료를 발견하는 것>이다. 여인인 생거는 이미 있는 인명을 없이하자 할 용기는 못 가졌었다. 여인인 생거는 신국면 발견이라 하는 천재적 두뇌도 못 가졌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고식적 구제책을 발견하였으니 그것이 <산아제한론>이다.

그러나 독창력과 발명력을 가진 오인은 그러한 고식책으로써는 만족지 못할지니 오인의 연구는 여기서 비롯하였다. 오인의 매일 배설하는 대변에는 아직 많은 자양분이 남아 있으니 그 전분량의 삼 할 내지 칠 할-평균 잡아서 오 할 약(弱)이나 되는 자양분은 헛되이 땅 속에서 썩어 버린다.

(그리고 대변에 대한 분석표며 그 밖 숫자가 있지만 그것은 약해 버리세.)

이것을 헛되이 썩여 버릴 필요는 없다. 이것을 자아낼 수만 있다 하면 자아내어 가지고 오인의 식탁에 올리는 것이 오인의 가장 정당한 행위라 아니할 수 없다. 각 가지로 각 방면에서 일어나는 온갖 고식적 문제도 그 근본을 캐자면 인류의 식료품 결핍이라는 무서운 예감 때문에 생겨난 신경과민적 부르짖음이라 할 수 있으니 인류의 생활이 유족하여지면 온갖 문제와 그 문제의 근본까지 저절로 사라질 것이다. 오인의 연구는 여기서 출발하였다.

(그리고 연구의 경로도 약해 버리지.)

이러한 동기 아래서 이러한 경로를 밟아서 생겨난 이 ○○병을 귀하의 식탁에 바치노니 고평(高評)을 바란다. 운운,

이것을 인쇄소에 보내서 썩 맵시나게 인쇄를 해왔겠지, 그리고 크리스마스를 기회로 박사댁에서 시식회를 열기로 각 방면에 초대장을 보냈네그려. 그 초대장에는 그저 ○○병이라 할 뿐 원료며 그 동기에 대해서는 찍소리도 없는 것은 다시 말할 필요는 없겠지.

크리스마스 한 사나흘 전부터는 꽤 분주하데. 겨울이라 대변의 자양분이 썩을 염려는 없어, 그래서 소제부에게 부탁해서 열 통을 사들였네그려, 그리고 그것을 분석하고 처리하고 하노라고 사나흘 동안은 박사, 나, 수남이, 복동이 임시 조수 두 사람, 모두 다 똥속에서 살았네그려, 더럽기가 짝이 있겠나, 에이 구역나, 생각만 해도 구역이 나서 못 견디겠네, 박사도 미안하긴 한 모양이야, 누가 청하지도 않는데 연방 조선호텔 한턱 쓰지하면서 복동아, 수남아, 하면서 돌아가네그려, 크리스마스 전날은 밤까지 새워 가면서 모두 만들어 놓은 뒤에 당일 아침에는 집을 씻느라고 또 야단이지 글쎄 이 방 저 방 할 것 없이 모두 똥내가 배어 들은 것을 어찌하나. 아닌게아니라 독한 놈의 내음샌데 배어들은 다음에는 빠지질 않아, 물로 약품으로 씻다못해서 마지막에는 향수를 막 뿌려서 내음새를 감추도록 해버렸지.

[2]편으로 이어집니다.

아이 오브 비홀더 [3] by 로드 설링

읽을꺼리 2007.05.09 00:39 posted by 조재형

39. 어둠 속에 서있는 병실 안의 사람들.

무거운 침묵이 계속 되다가, 간호사 한 명이 기겁을 하며 어쩔줄을 모른다. 다른 간호사는 자기도 모르게 양손으로 얼굴을 가려서 눈 앞에 펼쳐진 믿을 수 없는 광경을 외면하려 애쓴다.


40. 의사의 손 근접촬영.

의사가 가위를 떨어뜨린다.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 어둠 속 다른 사람들 곁으로 피한다.


의사의 목소리: 안 변했어!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

 

41. 자넷 클로즈업.

그녀가 얼굴을 들어올린다. 그녀의 얼굴은 매우 아름답다. 그녀를 보면 누구나 호감을 가질만큼 매력적이다.


42. 자넷의 뒤에서 바라보는 시점.

그녀가 천천히 일어선다. 손을 들어올리더니, 고개를 숙여 양손에 얼굴을 묻는다. 주위는 조용한 가운데, 그녀가 최대한 감정을 억제하며 흐느낀다. 그러다 얼굴을 들어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죽 훑어보던 그녀가 갑자기 몸을 틀어 문을 향해 도망친다. 그러나 의사가 서둘러 앞을 막고 그녀를 붙잡는다.


의사: (병실 안에 있던 마취사에게) 빨리 주사를 놔요. 이렇게 돼서 정말 유감이군.

(간호사에게) 불 좀 켜요!


어둠 속에 있던 간호사가 전기 스위치쪽으로 간다.


43. 간호사의 손 근접촬영.

스위치를 켠다.


44-47. 두 명의 간호사, 마취사 그리고 의사의 모습이 차례대로 클로즈업된다.

각자의 얼굴이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다. 코, 눈, 입, 귀, 모든 것이 다. 마치 만화에 나오는 괴물같다. 그림이 생명을 얻어 살아난 듯한 모습들이다.


48. 마취사 근접촬영.

주사기를 들고 있는 마취사가 천천히 자넷에게 걸어간다. 그녀는 의사에게서 빠져나오려 몸부림치고 있다. 마취사가 주사바늘을 치켜드는 순간, 반항하던 자넷이 의사를 뿌리치더니 황급히 문을 열고 복도로 뛰쳐나간다.


49. 복도를 뛰어가는 자넷을 멀리서 촬영.

복도를 걸어가던 의사들과 간호사들을 놀래키며, 자넷이 달리고 있다. 그들 모두 방금 전 병실 안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상하고 흉칙스런 얼굴을 하고 있다.


50. 자넷의 병실 문 급접촬영.

의사가 뛰쳐나온다.


의사: (고함친다) 저 환자 잡아! 저 여자를 잡으라구!

 

51-53. 여러 각도에서 잡은 자넷의 모습.

그녀가 텅 빈 복도를 달린다.


54. 엘리베이터 운전원 근접촬영.

운전원이 엘리베이터 문을 여는 순간, 자넷이 그 앞을 지나간다. 다른 사람들처럼 운전원도 만화 괴물캐릭터같은 모습이다.


55. 수술실 의사 근접촬영.

수술실에서 나오던 한 의사가 수술마스크를 벗고 있을 때, 자넷이 그 앞을 뛰어간다. 그 의사 얼굴도 엘리베이터 운전원과 똑같다.

(자넷이 복도를 뛰어다니는 모습에 지도자 연설이 배경음으로 깔린다.


지도자의 목소리: 이제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다양성이 인정되는 사회라는 것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그 따위 사회는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정신나간 사람들은 여러분에게 소릴지르고 고함치고 헛소리를 해대면서 이제는 생명력을 잃어버린 퇴폐적인 과거시대의 모습들을 불러내,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에게 평등이란 것은 기회의 평등, 신분의 평등, 거창한 평등일 뿐입니다! 그들은 평등이라는 것이 형식과 신념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식으로 어처구니없이 불합리한 미친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가지 언어를 쓰고, 제멋대로 자라나서, 혼혈로 얽히고 설킨 수없이 다양한 인종들이 우리 지구를 뒤덮고 침투해서 타락시키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습니다!

(흥분해서 소리를 지른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오직 단 하나의 목표만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오직 단 하나의 표준! 오직 단 하나의 방식! 오직 단 한 종류의 인간! 오직 단 하나의 가치! 오직 단 하나의 도덕! 오직 단 하나의 규범! 오직 단 하나의 통치이념!

(또다시 언성이 높아진다) 우리는 인정할 수 없습니다... 과거시대의 감상주의가 침투해 우리의 확고한 의지를 무력화시키려는 상황을 결코 인정해서는 안됩니다. 다양성을 원하는 욕구가 암세포처럼 퍼지는 것을 우리는 과감히 제거해야만 합니다!


56. 뛰어가는 자넷.

복도를 따라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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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오브 비홀더 [2] by 로드 설링

읽을꺼리 2007.05.09 00:28 posted by 조재형

16. 실내. 병실. 밤. 자넷 타일러의 붕대얼굴 옆면을 근접촬영.

병실 끝에 의사와 간호사의 그림자가 보인다. 그들의 대화는 자세히 들리지 않는다. 웅얼거리는 그들의 말 속에서 가끔씩 "체온", "혈압", "갑상선", "주사"같은 단어들이 튀어나온다. 마침내 의사가 카메라와 침대쪽으로 한걸음 내딛는다. 얼굴은 어둠 속에 가려져 있다.


의사: (뒤를 돌아보며) 간호사, 11시쯤에 다시 체크해요. 그때가서 환자에게 진정제 투약하구.


간호사: 알겠습니다, 선생님.


의사가 침대로 다가서고, 카메라는 빙 돌아서 의사 뒤에 위치한다. 의사가 침대로 와서 자넷의 팔을 잡고 잠시 맥박을 잰다. 환자를 내려다보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의사: 오늘 저녁은 날씨가 따뜻했습니다, 미스 타일러.


자넷: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확실하진 않았지만.


의사: (옷깃을 매만지며) 아주 따뜻했어요, 진짜루. 얼마 안있으면 당신 붕대를 풀을 거에요. 좀 불편하더라도-


자넷: 얼굴에 붕대감고 있는 거 익숙해요.


의사: 그렇겠군요. 당신이 여기에 온 게... 벌써 9번째? 9번째던가?


자넷: 11번째죠.

(그녀의 붕대얼굴이 의사를 향하는 동안 잠시 침묵) 가끔씩 내 인생 전부를 어두운 동굴 속에서만 살아왔다는 생각을 해요. 벽이 죄다 엷은 거즈붕대로 이루어진 동굴. 동굴 입구에서 불어오는 바람에서는 항상 마취약과 소독약 냄새가 나죠.

(잠시 침묵) 선생님, 그래도 동굴 속의 삶은 편안해요. 너무나도 개인적인 삶이에요.

(얼굴을 돌린다) 아무도 나를 볼 수 없어요.

(잠시 침묵) 전 이제 희망이 없는거죠, 그렇죠, 선생님? 제 얼굴은 치료가 불가능할 거에요.


의사: (맥박 재던 환자 손목을 내려놓으며) 그렇게 단정짓긴 어렵습니다. 지금까지 당신의 증세는 약물이나 주사 또는 그 밖에 어떠한 치료법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실 미스 타일러 당신때문에 우리는 무척 괴로웠어요. 우리가 무슨 방법을 쓰든지 전혀 차도가 없으니. 하지만 우리는 이번 마지막 시도에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물론 장담은 못합니다.-결과는 붕대를 풀어봐야 알겠죠. 당신의 증세는 성형수술로 간단히 고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참 안타깝습니다. 골격, 피부타입... 수많은 요소들이 성형수술을 불가능하게 했습니다.


그가 몸을 돌린다. 카메라가 그의 움직임에 맞춰 원형으로 움직이므로, 화면에 그의 모습 전체가 잡히지는 않는다.


의사: (생각에 잠겨있다가) 11번째 입원이라.


침묵. 그는 침대 옆 작은 탁자로 가서, 탁자 위를 가볍게 두드려댄다.


17. 의사의 손가락 근접촬영.

손가락이 탁자를 두드린다.


18. 자넷이 있는 곳에서 몸을 축 늘어뜨린 의사쪽을 바라보는 시점.

침묵이 이어지다 결국 자넷이 침묵을 깨뜨린다.


자넷: 이번 치료가 마지막이죠? 이제 더이상 저는 치료받을 수 없겠죠.


의사: 11번까지가 규정이니까.

(어깨를 으쓱거린다) 11번 다음부터는 치료가 금지되어 있으니까.


자넷: 이제 어떡하죠?


의사: 흠, 미스 타일러는 마음이 조급해진 모양이군요. 이번에 마지막 시도로 했던 주사요법이 효과가 있을 겁니다. 붕대를 풀기 전까진 뭐라 딱 부러지게 말할 수는 없지만.


자넷: 그런데 이번에도 치료가 실패하면-그 땐 어떡해요?


의사: 그 땐 그때가서 또 방법이 있죠.


자넷: 어떤?


의사가 몸을 돌린다. 그의 등이 카메라에 잡힌다.


19. 의사의 등

(자넷을 바라보고 있다)


의사: 정말 몰라요?


자넷: (작은 소리로) 알아요.


의사: (침대로 다가서며) 물론 미스 타일러도 이러한 규정들이 왜 존재하는 것인지 충분히 이해하겠죠? 우리들 모두는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이 될 수 있도록 가능한 한 많은 기회를 부여받을 수 있습니다. 당신이 이제까지 입원하면서 들어간 시간과 돈과 노력을 생각해 봐요. 그 모든 것이 다 당신의 외모를-


그가 갑자기 말을 멈춘다. 적당한 말을 찾느라 고심하는 듯 고개를 떨군다.


자넷: 제 외모를?


의사: (손짓하며) 외모를 정상으로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당신의 희망대로.


20. 다른 각도에서 찍은 자넷.

팔꿈치로 몸을 지탱하며, 그녀가 침대에서 일어난다.


자넷: 선생님? 저, 밖에 나가도 돼요? 잔디밭에 좀 앉아있으면 안될까요? 아주 잠깐동안만. 꽃향기를 맡고 싶어요. 그냥... 그냥 맑은 공기를 느끼고 싶어요. 난 그저... 그저...

(그녀는 침대에 꽂꽂이 앉아있다. 목소리 톤에 힘이 들어가고 긴장감이 생기면서 거칠어진다) 믿고 싶은 거에요, 선생님! 나는 지금 정상이다라고 믿고 싶다구요. 지금처럼 밤에 밖에 나가 어둠 속에 앉아있으면, 모든 세상이 어둡다라는 걸 실감하게 되잖아요. 나도 남들처럼 어두운 세상의 일원이 되는 거에요. 얼굴에 붕대를 감은 괴상하고, 추하고, 보기 흉한 여자가 아니에요... 붕대때문에 혼자서만 어둠의 세계 속에 사는 유별난 존재가 아닌 거에요.


카메라가 그녀의 얼굴을 근접촬영한다. 이제 그녀의 목소리는 찢어질듯 날카롭고 불안정하다.


자넷: 나도 똑같아지고 싶어! 보통 사람들처럼 되고 싶다구요. 도와주세요, 선생님.

(흐느끼는 목소리로) 제발 저를 도와주세요.


카메라가 선회하며 어둠 속에 서있는 의사를 주시한다. 잠깐동안의 침묵 끝에, 의사가 조용히 말한다.


의사: 미스 타일러,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내 말 알겠어요? 혼자가 아닙니다. 당신과 같은 불행을 타고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당신같은 외모를 가진 사람들. 최후에 선택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만... 만약 이번에 했던 마지막 치료가 실패로 돌아간다면... 당신은 마음 편히 당신과 같은 종류의 사람들이 모여있는 특별구역으로 갈 수 있습니다.


자넷: (괴로운 목소리로) 나같은 사람들이라니!

(잠시 침묵) 모여 있다구요, 선생님? 모여 있는 게 아니죠, 격리돼 있는 거죠. 선생님 말씀은 갇혀있다는 걸 뜻하는 거에요. 선생님은 지금 수용소를 말하는 거잖아요.

(슬픔과 분노로 인해 날카롭게 고함지른다) 기형아들을 가둬놓는 수용소!


의사: (자넷에게 소리지르며) 미스 타일러! 정부는 자비를 베풀고 있어요. 당신이 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 것도 바고 그 때문입니다. 정부는 당신을 위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다 취하고 있는데. 그런데도 미스 타일러 당신은 이성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다니. 당신이란 존재는 원래대로라면 도저히 살 수 없단 말입니다...

(잠시 머뭇거리다 황급히 입을 연다) 정상인들과 함께는 도저히.


21. 자넷을 근접촬영.

붕대가 실룩거린다. 그 속의 얼굴이 일그러지기라도 하는 듯이.


자넷: 저도 사회에서 정상인들과 잘 살아갈 수 있어요. 마스크를 쓰거나 이렇게 붕대를 감고 다닐 수 있잖아요. 난 아무한테도 피해를 주지 않는다구요. 난 그저 조용히 내 삶을 살면 그만이에요. 일자리를 얻어서. 아무 일이나.

(격앙된 목소리로 변하며) 도대체 당신들이 잘 나면 얼마나 잘 낫길래. 이 놈의 정부란 건 또 뭐야? 이 모든 규정과 법규와 관습을 누가 만든 거죠? 정상인들과 다르게 생겨먹은 사람들은 격리돼야 한다니. 선생님, 정부는 하나님이 아니잖아요.


의사: (굳은 목소리로) 미스 타일러, 제발!


자넷: 정부는 하나님이 아니에요. 정상인들과 다르게 태어난 사람들을 죄인 취급할 권리가 정부한테는 없어요. 보기 흉하게 생긴 걸 범죄라고 주장할 권리가 정부한테는-


의사: (고함을 지르며) 미스 타일러, 무례한 언행을 당장 멈추시오! 지금, 미스 타일러, 지금 즉시!


카메라가 자넷을 비춘다. 그녀는 침대에서 빠져나와 머리를 푹 숙인 채 잠시동안 가만히 서있다. 그리고는 손을 앞으로 내민 채 천천히 병실을 가로질러 창문 앞에 선다. 창문을 만지고는, 붕대가 감겨있는 뺨을 창문에 갖다댄다.


22. 외부에서 창문을 바라보는 시점.

자넷의 손이 창틀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서 열려있는 창문 아랫부분에 닿는다. 열린 틈으로 그녀의 손이 들락날락거린다.


자넷: (조용한 소리로) 바깥세상의 밤이 느껴져요. 밤 공기가 느껴져요. 꽃냄새도 맡을 수 있어요.

(의사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양손이 얼굴붕대를 만지고 있다. 아주 작은, 조용한 소리로) 제발 이것 좀 풀어주세요. 제발 이것 좀 벗겨주세요.

(그러다 고함을 지른다) 이것 없애달란 말야!


그녀가 고함치며 붙잡고 있던 붕대를 손톱으로 마구 할퀸다.


23. 실내. 접수 데스크 뒤 작은 방 벽에 붙어있는 표시장치.

표시장치에 "307"이라는 숫자가 번쩍번쩍거린다. 배경음으로 붕대를 풀어달라고 외치는 자넷의 고함소리가 들린다. 간호사가 급히 카메라 앞을 지나간다. 카메라가 자넷의 병실을 향해 복도를 달려가는 간호사 뒤를 쫓아간다.


24. 실내. 창문 밖에서 병실 안을 들여다보는 시점.

의사가 난폭하게 몸부림치는 자넷의 몸과 한쪽 팔을 잡고 있다. 이제 막 병실로 뛰어들어온 간호사가 자넷의 나머지 한쪽 팔을 잡는다. 두사람이 환자를 침대로 끌고 간다. 이 장면은 판토마임처럼 인물들의 움직임이 강조돼야 한다. 마침내 침대에 눕혀진 자넷이 얌전해진다. 간호사는 병실 문을 지나 밖으로 나간다.

 

25. 실내. 복도. 접수대에 앉아있는 간호사가 보임.

읽고 있는 잡지표지에 간호사 얼굴이 가려져 있다. 자넷의 간호사가 카메라 앞을 지나 접수대 간호사에게 걸어간다.


자넷의 간호사: 의사 선생님이 307호 환자 붕대를 풀기로 결정했어. 선생님이 마취사를 준비시켜 달래.


26. 다른 각도에서 촬영한 접수대 간호사.

그녀가 몸을 돌린다.


간호사 2: 알았어. 그런데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말야, 이런 얼굴기형아들을 배려한답시구,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는 것 같아. 이런 돌연변이들은 애초에 처음부터 확 추방시켜버리는 게 좋잖아?


간호사 2가 다시 잡지를 집어들고는 앉아있는 의자를 다른 방향으로 돌린다.


27. 간호사 2의 등이 보임.

그녀의 어깨 뒤에서 촬영.


자넷의 간호사: 그게 정말 네가 원하는 거야? 만약 네가 그 환자랑 같은 처지였더라도 그랬을까?


간호사 2가 황급히 인터컴 호출기 버튼을 누른다.


간호사 2: 마취사, 이리로 와주세요. 307호입니다. 그래요. 환자가 난폭해질지 모르니까.


28. 실내. 복도의 접수 데스크. 밤.

간호사 한 명과 병원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잡역부 한 명이 빈둥거리고 있다. 잡역부가 손목시계를 들여다 보더니, 접수 데스크에 붙어있는 카운터 위에 놓인 커다란 TV를 쳐다본다.


잡역부: 오늘밤에 지도자께서 연설을 하신다는데. 좀 있으면 하겠다.


그가 일어나서 TV를 켜고는 담배에 불을 붙인다.


29. 성냥 근접촬영.

성냥이 재떨이로 들어간다. 바로 맞은편에 있는 TV 화면 속에는 멀리서 찍은 책상이 보이고, 책상 뒤편에는 어떤 조직을 상징하는 문양이 붙어 있다. 책상에 누군가 앉아있는데, 너무 멀어서 자세히 볼 수는 없고 대략적인 형체만 보인다. 아나운서의 엄숙한 목소리가 나온다.


아나운서: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신사숙녀 여러분, 우리의 지도자십니다.


청중들의 환호성과 박수소리가 나온 뒤, 방금 소개받은 신사의 우렁찬 음성이 들린다.


지도자의 목소리: 안녕하십니까, 신사숙녀 여러분. 오늘밤 나는 여러분에게 영광스러운 통일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하나로 통합된 우리 사회가 주는 궁극의 기쁨과 환희에 대해서 말입니다. 여러분은 물론 과거에 인간의 역사가 방향을 잃고 비생산적으로 타락하고 감상적으로 치우친 나머지, 의견의 차이가 자연스러운 것이며 사회를 건전하게 이끌어간다는 믿음이 팽배하던 시절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실 겁니다. 우리는 또한 그 시절에는 인간은 각자가 다른 존재이고, 개개인의 생각은 다양해서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것이 당연시되어, 세상은 이런 이질적인 요소들이 한데 모여 조화를 이룬다는 이상하고 유치하고 정신나간 생각이 존재했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가 깨달은 것은...


지도자의 목소리가 배경으로 깔리는 가운데, 카메라는 TV 속 지도자를 지나 병원 복도를 향한다. 지도자 연설은 앞으로 전개될 붕대 푸는 장면에서도 계속해서 배경음으로 깔린다.


30. 자넷의 병실 문을 다른 각도에서 촬영.

 

31. 실내. 병실. 밤.

자넷은 이제 병실 중앙에 놓인 의자에 앉아있다. 머리 위에서 하나뿐인 조명이 스포트라이트처럼 앉아있는 그녀를 비추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낮게 중얼거리고 있다. 그들이 그녀 앞을 걸어서 지나칠 때마다, 그녀의 붕대 위로 잠깐잠깐씩 그들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사라진다. 가끔씩 배경음으로 외부의 TV에서 흘러나오는 지도자 연설이 들려오고 있다. 그러다 병실 안에 있는 의사와 다른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대화가 중단된다. 의사의 몸이 카메라 앞으로 나온다. 카메라가 그의 오른손을 비춘다. 손에는 가위를 들고 있다.


의사: 미스 타일러,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이성적으로 행동하겠다고 약속해줘요. 짜증을 내지 마시오. 화를 내지 말아요. 그리고 폭력을 써서도 안됩니다. 알아 듣겠어요?


자넷이 고개를 끄덕인다.


의사: 이제 내가 어떻게 할 건지 정확히 알려 주겠어요. 우선 당신 머리 왼쪽편에 있는 붕대를 자를 겁니다. 그런 다음 아주 천천히 붕대를 풀어나가는 것이죠. 이 과정은 느린 속도로 진행돼서, 당신이 빛에 적응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그 동안의 주사치료가 당신 시력에 영향을 끼쳤을테니까. 붕대를 푸는 동안 당신은 계속 눈을 뜬 상태를 유지하면서, 붕대가 한꺼풀씩 벗겨질 때마다 당신 눈 앞의 빛이 어떻게 보이는지 나에게 말해줘야 합니다.


자넷: (차분한 소리로) 알겠습니다.


32. 다른 각도에서 자넷의 옆얼굴 촬영.

자넷 얼굴 뒤로 의사의 몸이 보인다. 의사가 손에 쥔 가위를 치켜 올린다.


의사: 미스 타일러, 만약 지금부터 당신이 조금이라도 움직이거나 우리를 감정적으로 대하기 시작하면, 나는 지체없이 간호사들이 당신을 붙들고 마취사가 진정제를 투여하도록 만들 거에요. 알겠어요?


자넷: (중얼거리며) 약속해요... 가만 있을께요.


의사: 좋아요. 그럼 시작합시다.


가위가 의사 몸 앞으로 올라와서 카메라쪽으로 접근한다. 가위가 커다랗게 확대되어 화면을 가득 채운다. 가위가 움직이고, 절단된 붕대가 자넷의 머리에서 풀려나가면서 화면을 지나간다.


의사: 미스 타일러, 이제 빛이 보입니까?


자넷: 아주 조금. 보이는 게... 보이는 건 회색빛이에요.


의사: 좋아요, 계속 얌전히 있어줘요.


또다시 붕대 한꺼풀이 화면을 가로질러 풀려지고나서 붕대의 움직임이 멈춘다.


의사: 지금은 어때요, 미스 타일러?


자넷: 더 밝아졌어요. 아주 많이.


의사: 머리 위 조명등을 올려다 보세요.


33. 조명등을 올려다보는 시점.

붕대를 통해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태양빛이 보인다.


34. 의사 어깨 너머로 자넷 얼굴을 내려다보는 시점.

또다시 의사가 붕대 한꺼풀을 풀어버린다.


의사: 이번엔 어때요, 미스 타일러?


자넷: 밝아요, 아주 밝아요.


의사: 좋아요.

(계속 붕대를 풀다가 멈춘다) 미스 타일러, 이제 마지막으로 붕대 한 겹만 남았습니다.


자넷이 고개를 든다.


자넷: 보여요... 선생님 윤곽이 보여요. 아주 희미하지만... 선생님이 보여요.


의사: 미스 타일러, 이제 마지막 한 겹을 풀을 겁니다. 거울을 가져다 줄까요?


침묵이 흐른다.


자넷: 아뇨. 고맙지만 사양할래요. 거울 필요없어요.


병실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보려는 듯이, 자넷이 얼굴을 들어 두리번거린다.


35. 병실 안 사람들을 주욱 비추는 카메라.

마취사 한 명, 간호사 두 명이 어둠 속에 묻혀있다. 긴장한 채 움직임없이 서있다.


36. 다른 각도에서 찍은 자넷.

그녀의 머리 뒤에서 바라보는 시점. 의사가 마지막 붕대를 잡는다.


의사: 미스 타일러, 이제 마지막 붕대를 풀 차례입니다. 하지만 그러기 전에 지금 내가 하는 말을 기억해줘요. 미스 타일러? 내 말 듣고 있어요?


자넷: 네, 듣고 있어요.


의사: 이제까지 우리는 최선을 다해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서 당신을 치료했습니다. 이제 붕대를 풀었을 때, 치료가 성공했으면 모든 것이 다 잘 된 겁니다. 아무런 문제도 없는거죠. 그렇지만 명심해야 됩니다. 만약 이번 마지막 치료도 예상했던 결과를 달성하는 데 실패한 것이면, 당신은 당신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에서 길고 편안한 인생을 살게 되는 겁니다. 이제 곧 우리는 결과를 확인하게 됩니다. 당신을 사회로 무사히 복귀시키느냐... 아니면-


의사의 말이 중단됨.


37. 카메라가 어둠 속에 서있는 병실 안 사람들을 주욱 비춘다.

병실 안 사람들의 모습에 뒤이어 엷은 붕대만 걸치고 있는 자넷의 얼굴이 보인다. 자넷의 얼굴이 명확하게 드러나진 않지만, 눈, 코, 입같은 이목구비의 윤곽을 어느 정도 볼 수 있다.


자넷: 의사 선생님?


의사: 말해봐요.


자넷: 만약 내가 여전히... 여전히 얼굴이 추한 상태면, 그 땐 어떤 다른 조치가 취해질 수도 있나요? 내 생명이... 내 생명이 제거될 수도 있어요?


의사: 어떤 경우에는 말입니다, 미스 타일러... 정부는 삶을 포기한 사람들에게 생명을 끊어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결정이 내려지려면 여러가지 조건들이 고려돼야 합니다.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하죠. 나이... 신체조건... 내 생각엔 당신이라면 당신같은... 당신같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있는 집단으로 옮겨지는 쪽이 유력할 것 같군요.


자넷: 그럼 치료가 실패하면 선생님은 저를 그 곳으로 보낼거라는 뜻인가요?


의사: 결국 그렇게 되겠죠. 미스 타일러, 이제 붕대를 풀겠어요. 얌전히 있어야 됩니다. 눈을 계속 뜬 채로.


38. 의사 뒤에서 바라보는 시점.

의사가 마지막 붕대를 풀기 시작한다. 첫번째 붕대끈이 머리 꼭대기에서 풀려나가고, 두번째 붕대끈이 풀리면서 자넷의 이마가 드러난다. 그 다음 붕대끈이 풀리자 그녀의 눈썹과 눈 윗부분 일부가 드러난다.


의사: 자, 미스 타일러. 이제 진짜 마지막까지 왔습니다. 당신에게 행운이 함께 하길 바랍니다.


의사가 마지막 붕대를 풀기 시작한다.

[3]편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