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의 한 [6] by 조재형

읽을꺼리 2007.05.08 23:57 posted by 조재형
사용자 삽입 이미지
11.

악몽에서 깨어난 시간은 오전 10시쯤이었다.

잠에서 깨어나 방을 둘러보니 가관이었다. 술병들이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었고, 말라붙은 피가 방바닥에 여기저기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그리고 식칼 한자루와 차갑게 식은 채 죽어있는 작은 강아지가 있었다. 나는 내 이름으로 불리던 불쌍한 강아지가 내가  부엌에서 가져온 식칼에 배가 갈라져 죽었던 것을 기억했다. 아니, 죽은 다음에 배가 갈렸던 건가? 뭐, 순서는 상관없다. 결과적으로 죽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으니. 안주랍시고 잘라먹은 강아지 내장 일부분이 쩌억 벌어진 강아지 뱃속에서 뽑혀 나와 있었다. 그리고 내가 그랬던 기억은 안나는데 강아지 목이 절단되어 머리가 빈 소주병 주둥이에 꽂혀 있었다. 술김에 그랬나보다. 소주병의 강아지 얼굴에서는 한쪽 눈알이 길게 힘줄을 늘어뜨린 채 눈구멍에서 쑥 빠져 나와 있었는데, 나머지 한쪽 눈알은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지금 내 뱃 속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강아지가 불쌍했다. 자기는 원치도 않았는데, 내 이름으로 불리며 온갖 학대를 다 받고, 제대로 먹지도 못한 채 결국 이렇게 살해되다니. 내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나의 불행을 강아지에게 분풀이한 못난 내 자신이.

잔인하게 살해된 강아지를 보니 간밤의 악몽이 떠올랐다. 시골의 외딴 집 안방에서 벌어지던 살육의 현장이. 악몽의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떠올랐다. 너무나 괴로웠다. 그 악몽을 잊고 싶었지만, 내 바램과는 달리 자꾸만 자꾸만 눈 앞에서 아른거렸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밖으로 나왔다. 정처없이 떠돌아 다녔다. 거리의 행인들이 나를 힐끔힐끔 쳐다봤다. 나는 그 시선의 의미를 알고 있다. 한때는 TV에 나와서 "화가 난 고양이가 나에게 원한을 품었나 봅니다. 짐승이 인간한테 그런 감정을 품어서 보복을 했다는 생각이 허황되게 들리겠지만, 하여튼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어찌됐건 잡히면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같이 웃기는 소리를 해대던 나를 행인들이 아직도 알아보고 쳐다보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폐인이기 때문에 혐오의 눈길로 쳐다보는 것이었다. 재수없으면 다가와서 한푼 달라고 구걸당하기 딱 좋은 그런 종류의 거지같은 인간으로 전락한 덕분이었다. 나는 그동안 술에 찌들어 살면서 한번도 씻지도 머리를 자르지도 옷을 갈아입지도 않고 지냈다. 그동안 거울을 보지는 않았지만, 내 하고 다니는 꼬락서니나 몸에서 풍기는 냄새가 어떨지는 뻔했다. 나를 보고 슬슬 피해가는 사람들이 전혀 원망스럽지 않았다. 난 그런 꼴을 당할만 했다.

그보다 지금 견딜 수 없는 것은 지난 밤의 악몸이 도무지 눈 앞에서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미치도록 고통스러웠다.

이게 다 그 요물 고양이가 하는 짓이야. 그 암컷 년이 내 가족을 몰살시키고 욕보이고서도 만족못하고 나를 미치게 만들어서 자살이라도 하게 만들려고 내 꿈에까지 나타나 나를 괴롭히는거야.

나는 무작정 거리를 달렸다. 바람이 내 얼굴을, 내 몸을, 내 썩어버린 마음을 후려치면서 달아났다. 언제까지고 나를 괴롭힐 것 같은 어미 고양이의 저주가 제발 사라지기를 어딘가에 존재할지도 모를 전지전능한 존재에게 기도했다. 아마도 슬럼프의 신한테였을 것이다. 슬럼프의 신이시여! 제발 저를 인생의 슬럼프에서 빠져 나오게 하소서! 겨우 이런 지랄같은 꼴을 당할려고 제가 이제까지 살아온 겁니까! 겨우 이런 꼴을 당할려고!

가슴이 폭발할 것 같이 고동치고 있었다. 숨을 헐떡이며 달리기를 멈췄다. 사람들이 지나는 길 한복판에 큰 대자로 누워 버렸다. 예쁜 하늘이 보였다. 나처럼 구질구질하지 않은 순수하고 멋진 하늘이었다. 그림책에 넣어도 될 만큼 근사한 하늘이었다.

아내의 모습이 떠올랐다. 악몽 속에서 동우를 안은 채 고양이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아내의 안타까운 모습이 떠올랐다. 아내의 단호한 말소리가 내 귓가에 울려 퍼졌다.

왜 이러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너희들이 원망스러워. 죽어서도 너희들을 못 잊을거야. 네가 얘네들 전부 다 끌고 온거지? 우리 남편이 너한테 꼭 복수해 줄꺼야.

우리 남편이 너한테 꼭 복수해 줄꺼야... 꼭 복수해 줄꺼야.

아내의 그 말이 생각나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머리 속이 터져버릴 것 같이 찌릿찌릿했다. 견딜 수 없이 극심한 에너지같은 것이 온 몸을 휘감았다. 나도 모르게 허공에 대고 고함을 질렀다.

나는 이제까지 간밤의 악몽은 그저 악몽이라고만 생각했다. 더 심하게 생각해서 어미 고양이의 저주라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나는 간밤의 악몽이 전해주는 의미를 깨달았다.

우리 남편이 꼭 복수해 줄꺼야.

아내가 나에게 메시지를 전해준 것이다. 저승에 있는 아내가, 원한에 사무쳐 죽은 아내가 이승에 남아 바보같이 허무한 짓꺼리나 하고 있는 남편에게 꿈을 통해 메시지를 전해주려 한 것이다. 나는 이렇게 원통하게 죽었다고, 허탈하게 인생을 끝내야 했다고, 그러니 남편인 당신이 가만있으면 안된다고, 원한을 풀어달라고, 꼭 복수해 달라고.

지금 당장.

나는 누워있던 길바닥에서 일어났다. 길을 걷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허름한 식당에 들어갔다. 설렁탕 한그릇을 시켜 먹었다. 요 몇 달새 처음으로 먹어보는 제대로 된 식사였다. 열 숫갈쯤 떠먹고 있을 때, 속이 울렁거렸다. 식당 화장실로 가서 정신없이 토했다. 뱃 속에 들은 것을 다 토해내고 나서도 한동안 계속 헛구역질을 해댔다. 눈물이 흘렀다. 눈물을 닦고 세면대에서 얼굴을 씻었다. 다시 식당으로 돌아와 남은 설렁탕을 국물 한방울 남김없이 다 비웠다. 그러고 나서도 한그릇을 더 시켜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서는 고속버스 터미널로 갔다. 거기서 버스를 타고 서울을 떠났다.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던 시골집에 도착한 것은 어두워지기 시작한 오후 6시였다.

시골집은 폐허처럼 변해 있었다. 누군가 대문 옆에 검은색 스프레이로 '재수없는 집'이라고 낙서를 해놨다. 대문은 한쪽이 떨어져 나가 기울어져 있었다. 마루를 비롯해서 집안 곳곳이 부서지고 깨져 있었다.

마당에 들어서니 기와지붕에 난 커다란 구멍이 보였다. 고양이들이 뚫어 놓은 구멍. 그 구멍 주위로 잡초들과 넝쿨식물들이 어지럽게 피어 있었다. 구멍을 보는 순간 가슴 속에 싸늘한 냉기가 느껴졌다.

나는 어미 고양이가 새끼 고양이를 데리고 나타나던 장독대를 바라보았다. 전주인이 남기고 갔던 커다란 항아리들이 다 깨져 있었다.

장독대 밑 창고 건물로 들어가봤다. 새기 고양이를 때려 죽인 쇠파이프를 발견했던 곳이면서, 망할 놈의 고양이들이 제 집처럼 드나들던 곳이기도 했다. 창고 입구에는 아직도 녹 슨 쇠파이프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저번 것보다 약간 길고 굵은 것이었다. 이런 것에 한번 정통으로 맞는다면 코끼리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서 무심코 창고 안을 둘러보았는데, 예전에 보았던 종이박스가 아직도 있었다. 고양이들이 들어가 잠자리로 삼던 박스였다.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일부러 가서 박스 안을 들여다 보았다.

당첨!

박스 안에 새끼 고양이들이 있었다. 박스 안을 가득 채울만큼 많았다. 바로 이것이다. 아내는 이런 것을 알리려고 나에게 악몽을 꾸게 한 것이다. 그 고양이 년이 수많은 놈팽이들과 씹질을 했으니 지금쯤은 틀림없이 새끼들을 낳았을 것이고 그런 꼴을 가만 놔두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처참하게 죽어간 동우를 생각한다면, TV에 머리가 터져 죽었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면 그 암컷의 새끼들을 방치해 둬선 안된다고.

나는 종이박스를 들고 마당으로 나왔다. 박스가 움직이자 조용히 있던 새끼 고양이들이 갸냘픈 울음소리를 냈다. 악몽 속에서와는 달리 그 녀석들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대충 이런 것이 아닐까? 얘들아 우리 지금 이사가는 거니? 그래. 너희들 모두 이사보내 줄게. 저 세상으로. 거기가면 엄마 고양이를 대신해 동우라는 착한 애가 너희들을 돌봐줄꺼다. 아주아주 아아주 잔인하게 말이다.

종이박스를 거꾸로 뒤집어 흔들었다. 새끼들이 마당 바닥으로 쏟아졌다. 전부 15마리였다. 죄다 각양각색이었다. 까만 놈, 하얀 놈, 노란 놈, 파란 놈, 빨간 놈, 점박이 놈, 줄무늬 놈, 심지어는 기형인 놈도 두 마리 있었다. 다리가 전혀 없이 몸통만 있는 놈과 눈이 다섯 개 달린 놈. 별로 놀랄 것도 없다. 난잡한 집단 성행위의 결과물이라면 이 정도는 되야 하지 않을까? 태어난지 얼마 안된 듯 전부 다 주먹만한 크기였다. 제대로 걸어다니지도 못했다. 마당에 엎어져서 울어대기만 하고 있다.

나는 새끼들을 죄다 밟아 죽였다. 머리통을 밟아 죽였다. 아마 나한테 TV가 있었다면 그걸로 이 새끼들 머리를 쳐죽였을 것이다. 그 와중에 제법 자신의 죽음을 알고 있는 듯 몇몇은 꾸물꾸물 기어서 도망을 치고 있었다. 그런 놈들도 하나도 빠짐없이 밟아 죽였다. 전부다 머리가 터지면서 피를 예쁘게 쏟아냈다.

모두다 완전히 죽은 것을 확인하고 나니 오줌이 마려웠다. 집필실로 쓰던 작은 방으로 들어가서 오줌을 쌌다. 한때는 신성한 문학작품의 탄생을 염원하던 곳. 오늘 보니 딱 화장실로 그만이었다. 김건모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방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오줌을 뿌리고 다녔다.

생리현상을 해결하고 나서 안방으로 갔다. 고양이들이 몸통 박치기를 해대서 떨어져 나간 문짝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피로 가득했던 바닥의 장판도 없어져 버렸다. 그냥 맨 시멘트 바닥이 드러나 있었다. 그래도 그 날의 비릿한 피냄새는 아직 남아 있었다. 그때처럼 숨을 못 쉴 정도로 지독하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그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천장에 난 구멍으로 오후의 마지막 햇빛이 흐릿하게 들어왔다. 구멍 주위로부터 넝쿨식물들이 들어와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온 방 안을 가득 채우게 될 것 같았다.

방 한가운데에 털썩 주저 앉았다. 어미 고양이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창고에서 가져 온 쇠파이프를 옆에 놓고 가끔씩 담배를 피워대며 시간을 죽였다.

이윽고 어둠이 찾아왔다. 달빛이 강해서 아주 안보일 정도는 아니었다. 희미하게 사물을 구분할 수 있었다. 완전한 암흑이었더라도 상관없다. 지금 있는 안방과 같이 좁은 곳에서 그 년과 엉켜 붙어 싸운다고 내가 크게 불리한 건 아니었다. 적어도 내 느낌으로는 그랬다. 일단 내 손에만 잡히면 그 년이 아무리 앙탈을 부리더라도 꽉 움켜쥐고 쇠파이프로 절단을 내 줄 것이다.

안방 가장자리는 많이 어두웠지만 내가 있는 주변은 비교적 밝았다. 위를 올려다 보았다. 지붕에 뚫린 구멍으로부터 달빛이 쏟아져 들어와 내 주위를 비추고 있었다. 마치 3류 캬바레 댄스홀 무대에서 홀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듯 했다. 그렇다, 이건 나를 위한 무대였다. 내가 주인공이 되어 악당을 물리쳐야 하는 나만을 위한 무대였다.

어린 시절에 자주 가던 오락실이 생각났다. 그 곳에 가면 항상 구경하던 전투기 게임이 있었다. 돈이 없었기 때문에 거의 맨날 남들이 하는 것을 구경만 했다. 그러다 어쩌다 엄마가 갑작스럽게 기분이 좋아져서 돈이라도 주게 되면 나는 여지없이 오락실로 달려가 그 오락을 했다.

나는 "착한" 전투기를 조종했다. 그러고 있으면 위에서 "나쁜" 전투기들이 쏟아져 내려와 나한테 해꼬지를 하려고 총알세례를 퍼부었다. 나는 그 놈들을 전부 쳐부쉈다. 하지만 이건 서막에 불과했다. 잔챙이들을 물리치면 첫판 두목 전투기가 등장한다. 그 놈은 먼저 전멸한 조그만 전투기들과는 달리 덩치가 엄청나게 커서 내 전투기의 총알 몇방으로는 끄떡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녀석이 강력한 총알을 비오듯이 쏟아냈다. 그 빗발치는 총알세례 속을 피해 다니는 것은 어린 나로서는 불가능한 임무였다. 그래서 나는 항상 첫판을 못 넘기고 죽고 말았다. 그래도 돈만 생기면 그 오락만 하고, 돈이 없으면 남이 하는 것을 구경이라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동전을 넣고 경쾌한 음악이 울리면서 착한 전투기가 막 비행을 시작할 때 오락기 화면 한가운데에 영어로 글씨가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이다.

Good Luck !

게임이 시작될 때마다 항상 나타났던 글씨였겠지만, 그때서야 비로소 눈여겨 보기 시작했던 것이다. 영어를 몰랐던 나는 중학교에 다니는 동네 형한테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굿 럭이었다.

'행운을 빕니다'라는 뜻이었다. 맘에 들었다. 그 때부터 오락을 할 때면 항상 그 영어문장이 뜰 때마다 마음 속으로 굿 럭을 외쳤다. 첫판을 무사히 넘길 수 있기를 바라면서.

하지만 그 후로도 그 오락을 하면서 첫판을 깬 적은 없었다.

갑자기 왜 오락실 추억이 생각났는지는 몰랐다. 별로 기분좋은 추억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 나는 항상 그 오락 앞에서 항상 패배자였던 것이다. 굿 럭은 헛된 환상이었다.

그 때 마당에서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렸다.

어미가 나타난 것이다. 마당에 죽어있는 제 새끼들을 목격하고 숨이 끊어질 듯한 거칠은 비명소리를 길게 내지르고 있는 것이다. 자식의 죽음을 맞이한 어미만이 낼 수 있는 비명소리를.

나는 쇠파이프를 집어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어나보니 천장에서 내리쬐는 달빛 조명이 지금의 상황을 연극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정말이지 나를 위한 최상의 무대였다.

마당에서 어미가 이리저리 미친 듯이 날뛰는 소리가 들렸다. 온몸에 복받치는 분노를 주체할 수가 없나보다.

나는 제자리에서 가만히 기다렸다. 마루쪽에 시선을 고정한 채.

어둠 속에서 검은 물체가 마루로 올라섰다. 나와 정면으로 마주보고 섰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격렬하게 그르렁대고 있는 검은 실루엣의 물체는 두 눈이 악마처럼 빨갛게 빛나고 있었다.

"잘 있었냐, 고양아. 내가 너 만나기 전에 미리 네 새끼들한테 인사 좀 했다." 손에 들고 있는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말했다. 묵직하게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고요한 시골집 방 안에 울려 퍼졌다. "넌 내 새끼 손을 긁어놨었어. 그래서 난 네 새끼를 죽였지. 그랬더니 넌 내 새끼에다가 내 마누라까지 죽여놨더군. 일이 점점 커져 버렸어.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어. 여기서 당사자끼리 끝장을 보자구. 결국 너와 나 둘 중에 누군가 하나가 죽어야 끝나는 게임이었어. 자, 덤벼봐! 이 썅년아!"

어미 고양이가 귀를 찢을 듯한 날카로운 고함소리를 지르며 나에게 달려 들었다. 순간 덜컥 겁이 났다. 이러다 나 죽는 거 아냐? 저 고양이는 요물이야. 나한테 원한을 품고 있어.

아니야, 넌 오락실에서 첫판도 못 넘기던 그 옛날의 꼬마아이가 아니야. 넌 어른이야. 넌 이 게임에서 이길 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어. 넌... 제기랄! 넌 소설가잖아! 뭐든 상상하는대로 이루어낼 수 있잖아! 제발 이번엔 이길 수 있다고 억지로라도 생각을 해보란말야! 바보야! 아내의 목소리가 나의 머리 속에 울려 퍼졌다.

나는 마음 속으로 마법의 주문을 외쳤다.

굿 럭!

붉은 빛을 흘리며 내 얼굴을 향해 뛰어 오른 어미 고양이의 괴물같은 두 눈을 향해 나는 쇠파이프를 힘껏 휘둘렀다.

- The End -

(조재형 2001. 12. 10.)

고양이의 한 [5] by 조재형

읽을꺼리 2007.05.08 23:54 posted by 조재형
사용자 삽입 이미지
10.

나는 예전부터 생각했었다. 꿈이란 것은 온몸이 극장좌석에 꽁꽁 묶인 채 원치도 않는 영화를 억지로 보는 것과 같다고.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자신의 의지로 꿈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다. 어떤 알 수 없는 복잡한 사정으로 갑작스럽게 터무니없이 꿈이 끝나버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술에 취해 강아지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씹어 먹던 그 날 밤에 나는 악몽을 꿨다. 아무리 애를 써도 도망칠 수 없는 끔찍한 악몽을.


꿈 속의 배경은 시골에 있던 우리집이었다. 명색이 악몽인데 바로 그 장소 말고 더 어울리는 데가 또 어디 있을까?

마당에 아내와 동우가 있었다. 아내는 젖은 빨래를 빨랫줄에 널고 있었고, 동우는 마루로 올라가는 굵은 돌계단에 앉아 포켓몬스터 그림 동화책을 읽고 있었다. 이사오던 날 봤었던 냐옹이가 피카츄 목을 물어뜯는 자극적인 표지의 동화책.

동우가 읽고 있는 동화책 제목은 마치 불행을 암시하는 복선같았다. 피카츄 조심해! 냐옹이 화났다! 그렇다. 화난 고양이는 정말로 위험한 존재라는 것은 동화책에도 나오는 아주 기초적인 상식인 것이다.

동화책을 읽고 있던 동우가 아내에게 물었다. "엄마, 고양이 인제 안 와?"

"왜?" 아내는 빨래를 줄에 거느라 동우를 쳐다보지 않고 말했다.

"심심해."

"오겠지."

"아빠가 그랬는데, 고양이들이 나한테 미안해서 안오는 거래. 나도 미안한데. 내가 그때 호떡 가지고 놀려대서."

"다음에 오면 잘 해주면 되지. 고양이들 찾아오면 엄마랑 같이 고양이한테 맛있는 거 많이많이 주자."

"......엄마," 아내는 빨래그릇에서 물에 푹 젖은 셔츠 하나를 꺼내 들고 힘껏 흔들었다. 묵직한 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셔츠가 부풀어 올라 펴졌다. 아내가 그 셔츠를 빨랫줄에 널었다. 동우가 부르는 소리를 못들었나 보다. "엄마, 엄마, 저기,"

"엄마 바쁜데 왜 자꾸 그래?" 빨래그릇에서 커다란 담요를 꺼내든 아내가 마지 못해 동우를 쳐다봤다. 붕대를 감아맨 동우의 오른손이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다. 아내가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장독대였다.

장독대 위에 수십마리의 고양이들이 모여 있었다. 40마리 정도 되었다. 지난번에 지붕 위에서 섹스쇼를 벌이던 멤버들 외에 별의별 떨거지들이 죄다 모인 것 같았다. 수컷들이었다. 모두들 아내와 동우를 내려다보고 있다. 음흉한 미소를 지으면서.

고양이들 맨 앞은 내가 그토록 증오하던 어미 고양이였다. 어미 고양이도 다른 고양이들처럼 내 가족을 내려다보며 웃고 있었다. 앞으로 벌어질 일을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나오는 모양이었다.

어미 고양이를 선두로 해서 고양이들은 여유있는 걸음으로 장독대 계단을 내려왔다. 내 가족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일부는 사람이 밖으로 도망가지 못하도록 나무대문을 막아섰다. 고양이들은 징그럽게 웃기만 할 뿐 아무런 소리도 없이 조용했다.

누가 봐도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는 상황이었다. 놀란 동우가 포켓몬스터 그림동화책을 땅에 떨어뜨렸다. 엄마한테 쪼르르 달려가 엄마 뒤에 숨었다. "엄마, 고양이들 무서워."

아내는 갑작스런 사태에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며 고양이들을 훑어보기만 할 뿐 속수무책이었다. 빨랫줄에 걸려던 담요를 쥐고 있는 두 손이 떨리고 있었다. 겁먹은 동우가 아내의 치마를 잡고 칭얼거렸지만 아내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고양이들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 사람들과의 거리가 좁혀질수록 고양이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져갔다. 싸늘하게 굳은 표정이 사람을 노려보고 있었다. 고양이가 막다른 길에 몰린 쥐를 바라보는 표정, 호랑이가 덫에 걸린 토끼를 바라보는 표정, 주사기를 든 실험실 연구원이 철창 속의 원숭이를 바라보는 표정.

"야 이 새끼들아, 니들 뭐야." 아내가 눈치를 살피며 소리를 질렀다. 목소리에 두려움이 실려 있었다. "안 꺼져? 저리 안 가? 죽고 싶어?"

고양이들은 아내의 협박에 아랑곳하지 않고 아내 쪽으로 걸어왔다.

아내가 빨래그릇을 걷어찼다. 속에 든 빨래가 쏟아지고, 빈 그릇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마당에 굴렀다. 몇몇 고양이들이 놀라서 뒤로 물러났을 뿐 대부분은 꿈쩍하지 않았다. 이제 거리는 4∼5미터 정도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아내는 천천히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아내의 치마를 잡고 있던 동우도 따라갔다. 동우는 콧물을 흘리고 있었다. 콧물이 주르륵 흘러 입 안으로 들어갔다. 보통 때였으면 아내가 정성스럽게 콧물을 닦아 주었겠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지금은 비상사태였다. 아내는 마루 쪽으로 뒷걸음질쳐 가고 있었다. 달려가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달리기 시작하면 약삭빠른 고양이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그 즉시 달려들어 결판을 냈을 것이다.

고양이들이 다가왔다. 어미 고양이가 동우가 떨어뜨린 포켓몬스터 동화책을 밝고 지나갔다. 냐옹이가 피카츄를 물어뜯는 동화책 표지 위에 어미 고양이의 발자국이 찍혔다. 그 뒤로 수십마리의 수컷 고양이들 발자국이 이어졌다. 이젠 정말 아내와 고양이들 거리가 지척이었다. 고양이가 맘먹고 훌쩍 뛰어오르면 바로 아내를 덮칠 수 있을 정도의 거리였다.

고양이들도 그걸 알 수 있을 것이다. 고양이들의 눈빛이 번뜩였다. 이제는 뜸들이는 시간이 끝났다는 신호일까?

바로 그 때 아내가 손에 들고 있던 담요를 고양이들 쪽으로 냅다 던졌다. 물에 젖어 무거워진 담요는 멀리 날아가진 못했지만, 어미 고양이를 포함해서 일곱 마리 정도의 고양이들이 담요 속에 묻혀 버렸다. 마당에 떨어진 담요 주위의 고양이들이 순간적으로 놀라서 흩어졌다. 담요 속에서는 갇혀버린 고양이들이 나오려고 소리를 지르며 발버둥치고 있었다.

아내가 황급히 뒤로 돌아섰다. 치마를 잡은 채 콧물을 흘리고 있던 동우를 힘껏 안아 올렸다. 그와 동시에 아내는 마루 쪽으로 뛰쳐 나갔다. 아내는 눈을 부릅 뜨고 있었다. 오직 방 안으로 피신해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을 것이다. 몇걸음만에 마루 위로 올라서는데 성공했다.

"엄마! 고양이가 쫓아와! 빨리, 빨리, 빨리!" 아내의 어깨 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동우가 엄마를 재촉했다.

담요 때문에 순간적으로 흐트러졌던 고양이들이 정신을 차리고 아내를 쫓아오고 있었다. 담요 속에 있던 고양이들도 다 빠져나와 인간사냥에 동참했다.

젖은 담요 속에서 빠져 나오느라 온몸의 털이 물기에 눌러붙은 어미 고양이가 처음으로 울부짖었다. 악몽 속에서 나는 그 고양이가 내지르는 소리의 뜻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어디서 감히 저 년이 잔머리를 굴려! 뭐하는 거야, 니들! 빨리 가서 저 년을 잡아! 멀뚱멀뚱 서있으라고 니들한테 다리 벌린 줄 알어? 어서 빨리 저 씨발년을 잡으란 말야!" 갑작스런 아내의 반격에 대책없이 당하고 만 것이 분한 듯 소리를 질러댔다.

동우를 안고 있는 아내가 신발을 신은 채로 황급히 마루를 뛰어 다녔다. 한쪽 팔은 동우를 안고, 나머지 한쪽 팔이 힘겹게 안방 문을 잡았다. 안방 문은 가늘고 긴 나무막대들이 가로세로 촘촘히 얽혀서 만들어진 문짝에 문풍지가 발라져 있는 미닫이 문이었다. 급하게 문을 잡느라 아내가 잡은 문 손잡이 주위의 문풍지에 구멍이 뚫렸다. 아내가 문을 왼쪽으로 밀쳐 열었다.

아내가 안방으로 발을 내딛었을 때, 쫓아온 고양이들 중 제일 선두에 있던 놈이 아내의 등을 뒤에서 덮쳤다. 갑작스런 충격에 아내는 동우를 안방 바닥에 떨어뜨렸다. 동우 위로 아내가 엎어졌다. 밑에 깔린 동우가 아프다고 소리를 질렀다. 붕대를 감은 동우의 오른손이 아내의 팔에 깔려 있었다. 손등의 붕대가 빨갛게 물들었다. 아내를 덮친 고양이가 아내의 목덜미를 물고 늘어졌다. 그 하얀 목에 금새 핏물이 흘러 내렸다. 엎어진 자세에서 아내는 몸을 돌려 고양이 몸통을 잡았다. 놈을 떼어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고양이는 입을 꽉 다문 채 발톱으로 아내의 몸을 마구 할퀴어 대고 있었다. 아내의 옷 등쪽이 길게 찢어졌다. 아내가 있는 힘껏 몸부림을 치며 고양이 머리통을 잡고 밖으로 떼어 내려 애썼다. 아내의 입에서 고통의 신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내가 팔에 힘을 주면 줄수록 목에 박힌 고양이 이빨이 전해주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 정도로 심해졌을 것이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아내가 온 집안이 떠나갈 만큼 큰 비명소리를 질렀다. 뜨거운 핏물로 범벅이 된 목에 핏줄이 불끈 솟았다. 경직된 아내의 팔이 드디어 고양이를 목에서 떼어냈다. 그대신 아내의 목 한웅큼이 떨어져 나갔다. 김이 피어나는 뜨거운 피가 줄줄 흘러 내렸다. 아내는 고양이를 집어 던지고는 황급히 일어섰다. 엄마 밑에 깔렸던 동우는 바닥에 엎어진 채 울고 있었다. 아내는 동우를 돌볼새도 없이 서둘러 안방 문을 닫았다. 그리고 오래되어 녹이 슬어있는 문빗장을 걸어 잠궜다.

아내는 서랍장 위에 놓인 스탠드를 집어 들었다. 조금 전까지 사람 목을 물고 뜯느라 입가에 피가 잔뜩 묻은 고양이를 향해 휘들렀다.

"씨발놈아, 저리 가!"

고양이는 아내가 휘두르는 스탠드를 요리조리 피해다녔다. 아내는 방 구석에 달아난 고양이한테 스탠드를 집어 던졌다. 쇠로 만들어진 무거운 스탠드 손잡이가 고양이 목에 떨어졌다. 고양이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방바닥에서 떼굴떼굴 굴렀다. 아내는 고양이 옆에 떨어진 스탠드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바닥에서 지랄을 떨고 있는 고양이를 내리쳤다. 고양이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네 번을 더 후려치자 고양이는 움직임을 멈췄다. 몸통은 납작해져 있었고, 머리는 터져 있었다.

아내는 바닥에 쓰러져 울고 있는 동우에게 다가갔다. 아이의 오른손 붕대는 예전의 하얀색이 아니라 온통 피로 물든 빨간색이 되어 있었다. 아내는 동우를 껴앉고 소리내어 울었다. "이리와 동우야. 엄마한테서 떨어지면 안돼."

"엄마, 목에서 피난다."

"괜찮아. 조금 있으면 다 나아." 아내는 목덜미로 손을 갖다댔다. 상처에 손이 닿아서 아내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아내는 목에 닿았던 손을 놀라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손이 온통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빨간 페인트 통에 한참을 담궜다 꺼낸 손 같았다. 아내의 눈에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입술이 부들부들 떨렸다. "조금 있으면 다 나아."

고양이들은 아내와 동우에게 이 상황을 곰곰히 따져볼 여유를 줄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고양이들이 닫힌 안방 문 앞에 몰려와 있었다.

"야 이년아, 문 열어!"

"독 안에 든 쥐 꼬라지구만."

고양이들 발이 문풍지를 푹푹 뚫고 들어왔다. 문짝은 금새 구멍 투성이가 되었다. 뚫린 구멍으로 고양이들이 눈을 들이대고 안방을 엿보았다다. 옛날에 전통혼례를 올린 신혼부부의 첫날밤에 신방을 엿보려고 발버둥치는 음큼한 동네사람들 같은 모습이었다. 문짝 구멍에 들이댄 고양이 눈알들이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문짝에 눈이 달려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고 년 참 탐스럽게도 생겼다."

"조금만 기다려. 네 보지를 물어뜯어 줄 테니까."

아내와 동우는 부둥켜 앉고 울면서 방문의 구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고양이들의 붉은 눈알을 두려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잠시 후 고양이들 눈이 문짝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조용해졌다. 태풍 전의 고요 같았다. 아내와 동우는 문짝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갑자기 문짝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정말로 부서질 듯이 순간적으로 문짝이 휘어지는 것이 보였다. 문을 고정하고 있는 녹 슨 빗장이 덜그럭거렸다. 아내와 동우는 깜짝 놀라 몸을 떨었다. 비명을 질렀다. 보통의 교양있는 사람들이 평상시에는 도저히 낼 수 없는 품위없는 비명소리였다. 공포에 휩싸인 사람만이 낼 수 있는 미친듯한 날카로운 비명소리. 품위고 교양이고 체면이고 벗어버린 가식없는 순순한 공포의 비명소리.

고양이들이 문짝을 박살내려고 문에 달려들어 몸통을 세게 부딪힌 것이다. 화들짝 놀란 아내가 문으로 달려갔다. 문짝 양 옆 가장자리를 손으로 눌렀다. 문이 그냥 부서지게 놔둘수는 없는 것이니까.

쿵쿵! 고양이들의 몸통 박치기가 계속 이어졌다. 그럴때마다 아내는 움찔했다. 문짝은 위태롭게 흔들거렸다. 팔힘만으로는 부족했던 아내는 아예 몸 전체로 몸짝을 눌렀다. 그래도 고양이들이 문짝에 부딪치는 순간에는 여지없이 문이 흔들렸다. 문틀을 이루고 있는 나무막대들이 금새 부러질 것만 같았다.

안타까운 동우가 엄마를 도와주려고 문짝을 몸으로 막았다.

아내는 동우에게 소리쳤다. "안돼! 저리가, 동우야. 다쳐!"

"이리로 고양이들 들어오면 어떡해." 울쌍이 된 동우가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가 막을 수 있어." 아내가 몸을 돌려 등으로 문을 막아섰다. 두 손은 문짝 가장자리를 꼭 잡고 있었다. 고양이들이 부딪히자 아내의 몸이 비틀거렸다. 이내 다시 자세를 바로 잡았지만 아내의 얼굴에는 불안한 표정이 가득했다. 점점 힘이 빠지고 있는 것이다. 아내는 고양이들 때문에 정신이 없는 듯 했지만, 목의 상처에서 너무나도 많은 출혈이 계속되고 있었다. "동우야, 저기 핸드폰 갖고와."

동우가 서랍장 위 TV 옆에 놓여 있는 핸드폰을 재빨리 가져와 아내의 손에 쥐어 주었다. 아내가 핸드폰 번호를 눌렀다. 전화가 119 구조대로 연결되었다. 아내는 위기의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또박또박 현재 상황과 주소를 불러 주었다. 전화를 받고 있는 119 접수요원은 아내의 설명이 잘 이해 안되는 것 같았다. 아내가 되풀이해서 고양이 얘기를 해야만 했다. "내 말 못 알아들어요? 고양이라구요, 고양이! 고양이가 우리 가족을 죽일려고 그런다구요. 나랑 내 아들 말이에요. 당신 귀 먹었어? 빨리 이리로 와서 우릴 살려달란 말야!" 답답했던 통화가 겨우 끝났다. 아내가 핸드폰을 집어 던졌다.

나에게 핸드폰이 있었다면 아내는 나에게도 전화를 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그 때 나는 핸드폰이 없었다. 시골로 이사오면서 외부와 완전히 단절한 채 집필에만 전념한답시고 핸드폰을 처분해 버린 것이다. 그 때 내가 핸드폰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아니 핸드폰이 없었더라도 읍내 시장에서 집으로 전화 한통화만 했더라도 사정은 이렇게 나빠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계속해서 문짝이 흔들거렸다. 아내는 기진맥진한 듯 했다. 목에서 흐른 피가 등을 지나 문짝의 하얀 문풍지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아내는 힘든 상황 속에서도 문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썼다. 온 정신을 등이 닿아있는 문짝에 집중시키느라 시선은 방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동우는 훌쩍거리면서 아내가 집어던진 핸드폰을 주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자꾸만 눈길은 불안하게 버티고 서있는 엄마를 향하곤 했다. 엄마의 핑크색 블라우스는 목에서 새어나온 피로 물들어 검붉은 색으로 변해 있었다. 불현 듯 동우는 무슨 소리를 들었다. 고양이들이 문짝에 부딪히는 쿵소리가 아닌 전혀 다른 소리. 무언가 조금씩 허물어지는 소리였다. 아이의 붉게 물든 붕대 위로 흙가루가 떨어지고 있었다. 동우는 흙가루의 움직임을 거슬러 올라 천장을 보았다.

천장이 뚫리고 있었다.

"엄마! 저기 천장 좀 봐!" 놀란 동우가 아내에게 뛰어 들었다. 두려운 마음에 아내를 꽉 껴앉는다.

자꾸만 위태롭게 흔들리는 문짝에 시달리고 있는 아내도 천장을 보았다. 아내의 얼굴에 절망스런 표정이 피어났다.

천장에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조금씩 천장 구멍에서 흙가루가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단추구멍만하던 천장이 점점 더 넓어져 갔다.

"안돼." 아내의 입에서 안타까운 탄식이 흘렀다.

조금씩 떨어지던 흙가루가 이제는 덩어리 채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구멍이 넓어지는 속도는 흙을 긁어대는 사각사각 소리와 함께 점점 속력을 더해갔다.

넓어진 구멍으로 지붕으로 올라간 고양이들이 흙을 긁어대는 발들이 쉴새없이 들락날락거렸다. 고양이들은 신이 나서 고함을 질러댔다.

"엄마, 무서워. 우리 이제 죽는 거야?" 엄마를 올려다보는 아이의 눈에 눈물이 흘렀다.

"아니. 이제 조금 있으면 119 아저씨들 올거야. 아까 엄마가 전화하는 거 봤지? 금방 온댔어. 어쩌면 아빠도 지금쯤 집에 거의 다 왔을지도 몰라."

세차게 문짝에 충돌하는 고양이들 때문에 아내의 몸이 비틀거렸다. 아내는 등으로 문을 막고 두 손으로 문 양쪽을 단단히 잡고는 있었지만, 어쩐지 맥이 풀린 모습이었다. 천장에 난 구멍을 보는 순간부터 자신이 질게 뻔한 게임에서 공연히 헛수고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 같다. 진짜 게임이었다면 그냥 쉽게 지금의 게임을 포기해 버리고 다음 게임을 다시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쉽게 쉽게 되풀이할 수 있는 게임이 아니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운명의 갈림길이었다. 그리고 상황은 점점 천길 낭떠러지로 아내와 동우를 몰아가고 있었다.

동우를 안심시키려고 별의별 말을 다 꾸며내면서도 아내는 천장 구멍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천장 구멍으로 고양이들이 내려올 때까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남았는지, 그동안 정말 운좋게도 하늘이 도와서 구조될 확률은 얼마나 될는지 헤아려 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은 점점 흘러갔고 최악의 상황이 닥쳐 버렸다.

천장에서 커다란 흙뭉치가 한꺼번에 여러개 떨어져 내렸다. 안방 속에 뿌연 흙먼지가 가득 날렸다. 아내와 동우는 눈을 찌뿌린 채 두려운 순간을 맞이했다.

흙먼지가 진정되자 천장이 드러났다. 솥뚜껑만한 커다란 구멍이 천장에 나 있었다. 어미 고양이를 비롯한 20마리정도 되는 고양이들이 구멍 주위에 모여 얼굴을 들이대고 있었다.

"언니, 나 왔어." 어미 고양이가 징그러운 웃음을 지으며 울음소리를 냈다. 이 년의 울음소리는 아내와 동우에게는 그저 고양이 울음소리로만 들렸겠지만, 악몽 속의 나에게는 그 뜻이 똑똑하게 들렸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저 암컷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사랑이 가득 넘치는 정겨움의 표시가 아니라는 사실은 아내와 동우도 눈치챘을 것이 분명하다.

어미가 천장 구멍에서 훌쩍 뛰어내려 안방에 가볍게 착지했다. 그 뒤를 이어 수컷들도 안방에 도착했다.

"결국 이렇게 될 걸 이 난리를 피운거냐? 씨발아." 수컷 중 하나가 아내에게 으르렁거렸다.

안방에 내려온 고양이들은 아내와 동우에게 다가가지 않고 지켜보고만 있었다. 우리 가족이 어떻게 나오는지 지켜보는 것 같았다.

아내는 문짝에서 벗어나 동우를 데리고 방구석으로 갔다. 마루에 있는 고양이의 몸통 박치기 한방에 금새 문짝이 부서지며 안방으로 떨어져 내렸다.

아내가 마루 쪽을 내다보았다.

수십마리의 고양이들이 마루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장독대에 나타났을 때보다 그 수가 더욱 불어나 있었다. 그 많은 고양이들을 헤치고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내가 마루 위의 고양이들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 방문을 잡고 있는데 온정신을 쏟던 아내가 무릎을 구부리고 앉아 동우를 꼭 안으며 말했다.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엄만 너를 사랑해. 동우도 엄마 사랑하지?"

"119 아저씨들 안오는거지? 아빠도 안오는거지? 우리 이제 죽는거지?" 동우가 눈물을 흘렸다. 피로 물든 손 붕대로 눈물을 닦았지만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엄마랑 같이 가야될 것 같다." 이제껏 목에서 그렇게 많은 피가 흘렀는데도 꿋꿋이 버텨왔던 아내가 동우를 보면서 체념의 말을 했다.

어디로 가냐는 물음 대신 동우는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왜 이러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너희들이 원망스러워. 죽어서도 너희들을 못 잊을거야." 아내가 어미 고양이를 노려보며 말했다. "네가 얘네들 전부 다 끌고 온거지? 우리 남편이 너한테 꼭 복수해 줄꺼야." 아내가 울고 있는 동우 얼굴에 키스했다. 동우가 엄마를 꼭 껴안았다. "동우야, 엄마가 너 끝까지 못 지켜줘서 미안하다."

동우는 아무말도 못하고 울기만 했다. 그런 아이를 바라보며 아내도 흐느껴 울었다.

드디어 어미 고양이가 공격명령을 내렸다. "재미없다. 확 쓸어버려."

안방과 마루에서 대기하던 고양이들이 한꺼번에 부둥켜 안고 있는 아내와 동우에게 몰려 들었다. 수십마리가 덮쳐오자 아내는 금새 방바닥으로 무너졌다. 동우를 아래로 놓고 몸으로 아이를 감싸서 최대한 고양이들의 손길을 막으려 안간힘을 썼다.

등을 내보인채 무너져 있는 아내를 수컷 고양이들이 떼로 몰려들어 공격했다. 아내는 옷이 뜯겨 나갔다. 피로 물든 블라우스도, 멋진 꽃무늬가 박혀있는 치마도 가차없이 날아갔다. 날카로운 고양이들 발톱이 아내의 하얀 피부를 할퀴고 지나갔다. 억센 고양이들 송곳니가 아내를 물어뜯었다. 아내의 등과 옆구리에서 피가 분출했다. 등 피부가 벗겨져 척추뼈가 드러났다. 아내가 격심한 고통 속에서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곧이어 고양이들이 아내의 얼굴을 물어뜯었다. 이제 아내는 목까지 터져버려 비명소리 조차 지를 수 없었다. 그저 맥없는 바람소리만 구멍 난 목에서 새어 나왔다. 아내는 핏덩이가 돼버렸다.

동우를 보호하던 아내가 옆으로 쓰러졌다. 죽음 앞에 고스란히 노출돼 버린 동우가 몸을 웅크렸다. 아내를 공격하던 고양이들 중 일부가 동우한테 달라붙었다. 옷을 찢고 맨살이 드러나자 냉혹하게 아이마저 피바다를 만들었다. 붕대가 다 풀어진 오른손도 고양이들의 먹이가 되었다.

완전히 발가벗겨진 아내와 동우를 고양이들이 물어뜯고 할퀴었다. 방 안에는 온통 죽어가며 신음하는 사람소리와 살육의 쾌감에 환호하는 고양이들 소리와 피비린내로 가득했다. 방바닥이 사람이 흘리는 핏물로 물들었다. 바닥에서 난리치는 고양이들의 몸에도 피가 흠뻑 묻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며 어미 고양이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였다.

고양이들에 의해 똑바로 눕혀진 아내의 몸이 남김없이 난자당하고 있었다. 어미 고양이가 아내를 둘러싸고 있는 수십마리 고양이들한테 소리쳤다. "유방이라구, 유방! 그 씹쌔기가 지 마누라한테서 제일 좋아하는 게 그 유방이라구! 거길 싸그리 터뜨려버려!"

명령대로 고양이들이 아내의 가슴을 집중적으로 물어뜯었다. 금새 가슴이 뜯겨 나가고 그 자리에서 피가 들끓었다. 파헤쳐진 가슴 속으로 가슴뼈가 드러났다.

"이 조그만 놈을 저기로 끌고 가자." 동우에게 가 있는 고양이들이 외쳤다. 고양이들이 피투성이가 되어 신음을 내고 있는 동우를 낮은 서랍장 쪽으로 끌고 갔다.

그 순간 놀랍게도 이제는 얼굴도 가슴도 심지어는 성기까지도 뜯겨버려 온전한 사람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상태가 된 아내가 손을 뻗어 동우의 왼손을 붙잡았다. -동우의 오른팔은 고양이들에 의해 찢겨 나갔다.- 아내는 동우를 곁에서 떨어지게 할 수 없다는 듯 잡은 손을 단단히 붙들었다. 아내는 몸을 일으키려고 몸부림치기까지 했다. 발끈한 고양이들이 아내 몸 위에 올라가 더욱 세차게 물어 뜯었다. 애처롭게 몸부림치던 아내의 몸은 완전히 생기를 잃었다. 그러나 아들의 손을 움켜쥔 엄마의 손은 고양이들이 아무리 물어뜯어도 떨어지지 않았다. 고양이들은 아내의 손목을 팔에서 뜯어냈다.

고양이들이 동우를 서랍장으로 끌고갔다. 동우의 왼손에 엄마의 오른손이 단단히 붙어있는 채로. 동우의 머리가 서랍장 바로 밑에 왔다. 서랍장에는 25인치 TV가 놓여 있었다. 고양이들 몇마리가 서랍장으로 올라갔다. 낑낑대며 TV를 동우쪽으로 밀었다. 조금씩 조금씩 커다란 TV가 동우 머리가 누워있는 서랍장 끝으로 밀려나갔다. 동우는 의식이 혼미해져서 자기 머리 위로 평소에 즐겨 보던 TV가 다가오는 것도 모른채 신음소리만 내고 있었다. TV가 서랍장 끝에 다왔다. 방바닥에 있던 고양이들 몇마리가 더 가세해서 힘껏 TV를 밀었다. 서랍장 끝에서 밀려나 균형을 잃고 잠시 허공과 서랍장 사이에서 비틀거리던 25인치 TV가 떨어져 내렸다. 그 시커먼 몸체가 정확히 동우 머리 위에 떨어졌다. 단단한 물건이 퍽 박살나는 소리와 함께 동우의 머리가 TV 속에 파묻혔다. TV와 충돌하는 순간 동우의 몸이 한번 크게 꿈틀거리더니 완전히 움직임을 멈췄다. TV 밑으로 검은 피가 흘러 나왔다.

피로 온통 젖어버린 수컷 고양이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자 이젠 일이 다 끝난 거 같다."

어미 고양이가 안방을 천천히 둘러봤다. 아내와 동우가 신체 곳곳이 갈갈이 찢기고 박살난 채 완전히 죽어 있었다. "그렇군." 암컷이 껄껄대며 미친 듯이 웃어댔다.

"네 자식 복수를 도와줬으니 약속을 지키시지."

"그래, 저번처럼 우리한테 다 대줘야지."

수컷들이 신이 나서 웅성거렸다. 전부들 눈이 번뜩거리며 생기에 넘쳤다.

"그래야지." 어미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이렇게 간단한 일로 다리 벌릴 걸 그동안 그렇게 비싸게 굴었나?" 수컷들이 낄낄대며 웃어댔다.

"나한테는 이게 중요한 일이니까." 어미가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 밖으로 나가자." 몸에 표범같은 점들이 박힌 수컷이 말했다.

"그냥 여기서 해." 몸에 피 한방울 묻지 않은 어미 고양이가 사람의 피로 질척거리는 방바닥에 등을 대고 누웠다. 수컷들이 어미의 제안에 당황했다. "왜? 그 새끼가 돌아올까봐 겁나? 뭐가 겁나? 마누라랑 아들새끼까지 이렇게 해놓고서. 그 놈 보이기만 하면 잡아 먹으면 되지, 안 그래?" 어미가 다리를 벌렸다. 빨간 속살이 드러났다. 암컷의 속살은 아내와 동우가 죽어가는 모습에 잔뜩 흥분해서 끈적하게 젖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수컷들이 입맛을 다셨다.

"자, 그럼 즐겨볼까?"

수컷들 수십마리가 어미 고양이에게 몰려 들었다. 하드코어 포르노쇼가 우리집 안방에서 벌어졌다.

악몽 속에서 난 그 망할 년이 섹스하는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아야만 했다. 수십마리의 수컷이 들락날락거리는 모습을. 어미 고양이가 방바닥과 수컷들 몸에 묻은 피를 흥건히 뒤집어 쓴 채 쉴새없이 쾌락의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지루하게 계속되던 섹스가 다 끝난 후 고양이들이 밖으로 흩어졌다. 어미 고양이는 마지막까지 안방에 남아 우리 가족의 시체에 침을 뱉은 후 여유있게 사라졌다. 나는 그 년의 가랑이에서 수십마리의 수컷 고양이가 뿜어놓은 정액이 줄줄 흐르는 것을 보았다. 역겨웠다.

악몽은 마지막 장면은 내가 읍내 시장에서 강아지를 사오던 날 황급히 안방으로 들어섰을 때 보았던 장면이기도 했다. 고양이들이 벌인 아수라장이 끝난 후의 안방 모습이 보였다. 여기저기 엉망으로 어질러진 안방이 피바다가 되어 그 한가운데에 아내와 동우가 흉칙한 모습으로 죽어 있었다.

그 장면을 마지막으로 나는 악몽에서 깨어났다.

[6]편으로 이어집니다.

고양이의 한 [4] by 조재형

읽을꺼리 2007.05.08 23:50 posted by 조재형
사용자 삽입 이미지
7.

다음날 아침, 잠을 깼을 때는 지난 밤의 고양이 신음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내가 아내와 충동적으로 섹스를 벌이던 때에 고양이들이 떠나갔는지, 아니면 우리 부부의 섹스가 끝난 후에도 고양이들이 한참동안 더 섹스쇼를 벌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아내에게 너무도 열중해서 섹스가 끝난 후에는 기진맥진한 상태로 곧바로 곯아 떨어졌다.

어쨌든 고양이들은 다 가버렸다. 그래서 조용하다. 다행이다. 아침에도 그 자식들이 그 난리를 치고 있었다면 난 화가 나서 돌아버렸을 것이다.

어미 고양이는 왜 수컷들까지 데리고 와서 우리집 지붕에서 난리를 친 것일까?

잘은 모르겠지만 정말 재수없는 고양이였다. 다음에 또 얼씬거리면 그때는 정말로 슬럼프의 신에게 바치는 제물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지난 밤의 섹스 때문인지 아침에 보는 아내의 얼굴에는 붉게 음탕한 기운이 서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내가 나를 보고 미소 지었다. 오랜만에 남편 노릇 톡톡히 했다는 칭찬의 미소일까?

아침을 먹고 어제도, 그저께도, 그그저께도 그랬던 것처럼 집필실로 들어갔다.

오늘은 좀 쓸 수 있을까?

노트북을 켜고 원고 파일을 열어 지난 번에 쓰다만 마지막 부분을 보았다. 마지막 부분. 동우가 고양이한테 손등을 다쳤을 때, 막 쓰고 있던 부분 말이다. 그 날 이후로 나는 그 부분에서 한 글자도 더 쓰지 못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원고를 보기만 해도 전해지는 중압갑, 키보드에 손을 올려 놓기만 하면 느껴지는 막막함. 슬럼프는 나를 떠날 생각이 없나보다. 게다가 지난 밤의 결렬한 애정생활로 인해 피곤하기까지 했다.

나는 원고쓰기를 포기하고 -며칠째 계속 슬럼프가 당연스런 일상으로 느껴졌다- 노트북으로 지뢰찾기 게임을 했다. 한참을 그러다 싫증나서 그냥 아무 생각없이 뒹굴거렸다. 그마저도 조금 지나자 답답해졌다. 피곤한 데 잠이나 잘까?

바깥바람을 쐬고 오면 좀 나아질지도 모른다.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나는 옷을 챙겨 입었다.

"어디 가?" 아내가 물었다.

"잠깐 바람 좀 쐬고 올께. 머릿 속이 답답해서 소설이 잘 안 써지네. 한번 휘하고 나갔다 오면 다 잘 될거야." 아내의 불룩한 가슴을 가볍게 만졌다. "갔다 올께요, 가슴씨."

철이 없다는 아내의 핀잔을 뒤로 한 채, 집을 나섰다. 버스 정류장에서 30분을 기다려 버스를 잡아 타고 읍내로 나갔다.

읍내에는 제법 큰 시장이 있다. 도시의 쇼핑센터같은 화려함이나 편리함같은 것은 없지만,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구경할 꺼리가 많고 가끔씩은 약장수 차력쇼같은 것까지 볼 수 있는 재미있는 곳이었다.

시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장사하는 모습들을 둘러보고 나니 머리 속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 것처럼 시원해졌다. 진작에 외출 한번 하는 건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분이 좋아져서 이제는 예전처럼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은 강한 예감이 들었다.

결국 나에겐 기분전환이 필요한 거였어. 이제까지 왜 그 좁은 골방에만 틀어 박혀서 슬럼프를 벗어나려고 발버둥쳤을까? 곤경에 빠진 인간은 항상 시야가 좁아지는 법이거든. 가족들 데리고 바닷가 같은 데 갔다오면 기분이 더 나아질지도 몰라. 집에 돌아가서 아내에게 말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고 돌아다니고 있는데, 개장수 할아버지가 눈에 띄었다. 빨간 고무통에 강아지들을 담아 놓고 팔고 있었다. 강아지들 모두 예쁘고 귀여웠다. 이 놈, 저 놈 만져보고 쓰다듬고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동우 생각이 났다.

고양이가 오지 않은 다음부터 그 애는 활력이 없어졌다. 엄마가 놀아주지 않을 때는 그냥 혼자 놀아야 했으니까. 내가 읍내로 나올 때도 동우는 안방에서 게임기를 가지고 놀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 애가 게임할 때의 표정을 안다. 시무룩하고 지친 표정. 매일 같은 게임만 해대서 이제는 눈 감고도 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른 것이다. 그래도 달리 할 수 있는 놀이가 별로 없으니 동우는 게임만 해댄다.

동우에게 강아지를 사줘야겠다고 결심했다. 요물같은 고양이보다는 강아지가 아이의 정서에는 더 좋겠지. 온몸이 푹신한 하얀 털로 가득한 강아지를 샀다. 태어난 지 얼마 안됐는지 내 주먹보다도 덩치가 작았다. 개장수는 작은 종이박스에 강아지를 담아 주었다. 나는 그 길로 곧장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종이박스 안의 강아지를 만지작거리며 동우를 생각했다. 강아지를 받으면 얼마나 기쁜 표정을 지을까? 설마 아내가 귀찮게 웬 강아지냐고 화를 내지는 않겠지? 아내에게도 바람 쐬러 우리 식구 모두 바닷가에 한번 갔다 오자고 말하는 것도 꼭 잊지 말고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시골 생활에 지친 아내도 굉장히 기뻐하겠지? 그러고 보면 기분전환은 나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에게 필요했던 것이다. 나 혼자서 슬럼프에 허우적대느라 식구들 생각을 진작에 못했던 것이다. 나는 새로운 가능성에 기분 설레였다. 다시 한번 심기일전해서 소설에 도전해 보는 거야.

마을 정류장에서 버스를 내려 집을 향해 걸어 갔다.

도중에 마을 이장을 만났다. 이장은 고양이한테 상처 입었던 애는 어떠냐, 그 강아지는 왠거냐, 요새 소설은 어떻게 됐냐, 별의별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물어봤다. 그냥 대충대충 대답하고 서둘러 빠져 나왔다. 그 후로 집이 있는 산골짜기로 걸어가는 동안 마을 사람들 여럿을 만났다. 한껏 기분이 좋았던 나는 흔쾌히 먼저 아는 척을 했다. 그 사람들은 생전 마을 사람들 거들떠보지도 않고 지내던 외지인이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러는지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그렇게 들뜬 마음으로 집에 왔다. 강아지 상자를 안고 있는 팔에 힘이 들어갔다. 간만에 식구들한테 깜짝 선물을 줄 생각에 마음이 설렜다.

나무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마당이 보이자마자 나는 우리집에 무언가 큰일이 벌어졌었다는 것을 알았다.

지붕의 기왓장들 일부가 마당으로 떨어져내려 산산조각 나 있었다. 기왓장이 없어진 지붕에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나는 신발도 벗지 않은채 서둘러 마루로 올라갔다.

안방문짝이 방 안에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나는 어지럽혀진 방 안에 누워있는 아내와 동우를 보게 되었다.

결국 나는 동우에게 강아지 선물을 하지도 못했고, 아내에게 바닷가로 기분전환하러 가자는 얘기도 하지 못했다.

죽은 사람한테 그런 것들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내가 집에 도착한 지 30분 후에 119 구조차량이 도착했다. 구조할 사람들은 이미 죽은 뒤에. 구조대원의 전화를 받고 그로부터 또 20분 뒤에 경찰차가 도착했다. 잡아갈 놈들은 이미 모두 다 도망가 버린 뒤에.

8.

그 날 이후로 나는 유명인사가 되었다.

소설가가 겪은 소설같은 악몽!

신문, 방송은 온통 우리 가족의 비극으로 채워졌다. 심지어는 CNN 뉴스시간에도 나의 이야기가 소개됐다. 나에 대한 인터뷰는 물론이고 시골 우리집에도 취재진과 구경꾼들이 몰려 들어 북새통을 이뤘다. 그 작은 시골 마을이 생긴 이래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난리를 쳤다. 내가 겪은 일들은 언론매체에 의해 더욱 극적으로 과장되어 세상 사람들에게 전달되었다.

나는 아내와 동우의 죽음에 고양이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언론 앞에 밝혔다. 시체에 난 할퀸 자국과 물어뜯은 자국, 안방의 핏자국에 들러 붙은 짐승 털들, 마당에 떨어진 동우의 동화책에 남겨진 발자국들, 안방 구석에서 발견된 고양이 시체같은 증거로 보아 확실했다.

나는 얼마전 어미 고양이가 동우의 손을 할퀴었다는 사실을 기자들에게 말했다. 그래서 내가 고양이들을 혼내 주었다는 얘기도 했다. 아마도 그게 고양이를 화나게 한 것 같다고 말해 주었다.

그러나 새끼 고양이를 죽였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냥 몇대 때려 주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어미 고양이가 수컷들을 끌고와 우리집 지붕 위에서 섹스쇼를 벌였고, 그 때문에 성적으로 흥분한 내가 아내를 엎어놓고 뒤치기를 했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밤에 고양이들이 몰려와 소란을 피운 적이 있다고만 말했다. 부끄러운 진실까지 밝힐 필요는 없었다. 나는 그저 고양이들이 일으킨 사건의 핵심적인 내용만 말해 주었다.

"화가 난 고양이가 나에게 원한을 품었나 봅니다. 짐승이 인간한테 그런 감정을 품어서 보복을 했다는 생각이 허황되게 들리겠지만, 하여튼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어찌됐건 잡히면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마을 사람들은 고맙게도 고인이 된 내 가족을 위해 발벗고 나서 주었다. 모두들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노인들이고 한창 농사일에 바쁘고 한마을에 살면서 우리 가족이랑 별로 친분도 없었지만 이장 어른의 지휘 아래 경찰과 합동으로 산을 샅샅이 뒤져 지랄같은 고양이들을 잡아 들였다. 물론 기자들의 카메라가 줄곧 헌신적인 그들의 모습을 찍고 있었다. 나중에는 방송국의 요청으로 자원봉사 사냥꾼들까지 합세했다.

일주일이 조금 못되는 수색작업으로 37마리의 산고양이들이 잡혔다. 대부분은 포획 과정에서 죽었다. 나는 기자들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동물학 교수라는 사람 -방송국에서 불렀을 것이다- 과 함께 잡혀 온 고양이들을 하나하나 살펴 보았다.

모두 다 수컷. 그 망할 놈의 어미 고양이는 없었다.

그렇게 수색작업은 끝났고, 어미 고양이는 코빼기도 볼 수 없었고, 나의 유명세도 차츰 언론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9.

나는 서울로 돌아왔다. 더 이상 시골에 있을 이유가 없었으니까. 그런 참혹한 일이 벌어진 집에서 태연하게 소설이나 쓸 수 있겠는가?

누구와도 만나지 않고 새로 얻은 지하 전세방에 틀어 박혀 술만 마셔댔다. 아내와 동우의 장례식을 치르고, 기자들에 파묻혀 인터뷰 세례를 받고, 시골에서 고양이 수색작업을 지켜보는 어수선한 분위기에서는 가족을 잃은 슬픔이 절절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 당시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위의 의지-주로 언론의 집요한 의지-에 이끌려 피곤하고 정신없는 상태였다. 나 자신의 처지를 차분히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다.

이제 아무도 찾지 않는 -몇몇이 위로방문차 찾아왔지만 나는 그냥 무시해 버렸다- 연립주택 지하에 틀어박혀 있으니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슬픔에 술을 먹지 않고는 도저히 배겨낼 수 없었다.

나는 우리 가족을 사랑했다. 예전에 문학기자 같은 사람들과 인터뷰할 때는 마치 글쓰기가 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허풍떨기도 했지만, 사실 난 우리 가족을 글쓰는 것보다 몇억만배 정도 더 사랑했다. 내가 소설을 쓰면서 괴로워했던 것은 작품이 완성되지 못할 것 같다는 이유보다는 팔릴 소설을 못 쓰면 우리 가족들을 쫄쫄 굶기게 될 지도 모른다는 이유가 더 컸다. 나는 어떻게든 이 세상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특기인 글쓰는 일로 우리 가족을 남부럽지 않게 행복한 생활을 누리게 하고 싶었다. 실제로 그런 행운의 작가들이 이 세상에는 굉장히 많이 존재하니까.

나는 어떻게든 우리 가족들한테 아픔을 주는 사람이 되긴 싫었다.

그런데 나는 우리 가족을 시골 촌구석으로 끌어 들였고, 고양이가 우리 가족들에게 접근하는 것을 방치했으며, 어미 고양이가 앙심을 품도록 동우의 상처를 빌미로 또 슬럼프를 빌미로 새끼 고양이를 죽여 버렸고, 결국 아내와 동우는 다른 평범한 사람들은 상상치도 못할 극심한 고통 속에서 인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가족의 죽음은 고스란히 나의 고통으로 돌아왔다.

맨정신으로는 그 거대한 고통을 감당할 수 없어 가족들이 죽은 뒤로 거의 2달 동안을 술에 쩔어 살았다. 강아지와 함께. 동우에게 선물하려고 읍내 시장에서 샀던 그 하얀 강아지말이다.

일부러 챙긴 것은 아니었는데, 전세방에 짐을 풀고 보니 강아지도 실려 있었다. 그래서 그냥 방에다 놔두었다. 특별히 돌봐주지는 않았다. 먹이를 준 적이 한번도 없어서 강아지는 내 술안주 쪼가리나 훔쳐 먹으면서 연명했고, 방에다 오줌을 싸든 똥을 싸든 치우지 않고 그냥 놔두었다.

지하 전세방의 모습은 엉망이 되었다. 불도 제대로 안켜서 어두운 방 안에는 개 배설물에 이리저리 널린 술병들, 김치같은 술안주들이 어울려서 누구나 감탄할 만한 악취 중의 악취가 가득했다. 난 방 안을 치우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냄새가 나같은 놈에게 딱 어울리는 냄새라고 생각했다. 가족을 지키지 못한 나같은 좃같은 놈한테는.

강아지에게는 내 이름을 붙여 주었다. 나는 술에 잔뜩 취하면 강아지의 이름을 부르며 욕을 했다. 강아지 이름은 내 이름이니 나한테 욕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니 어쩌면 내 이름을 구실로 강아지에게 모든 잘못을 떠넘기려는 것인지도 몰랐다. 시장에서 너를 사지 않고 서둘러 집에 왔었어도 가족을 살릴 수 있었어!

어쨌든간에 나는 "이름"을 하염없이 불러대며 강아지한테 온갖 욕을 다했다. 이 씨발놈아, 이 좃같은 놈아, 이 똥같은 놈아, 이 참새 보지같은 놈아, 이 개같은 놈아.... 웃다가 울다가 정신없이 욕하면서 술을 들이부으면서 나의 무능력함을 자책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다.

오후 내내 잠으로 시간을 보내다 밤에서야 깬 것이었다. 창문을 통해 옆집의 불빛이 희미하게 나의 방을 비췄다. 나는 더듬더듬 술병을 찾아 또 버릇대로 소주를 마셨다. 2병을 단숨에 비웠다. 머리 속이 빙빙 돌았다. 방에 앉아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물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한가운데에 앉아있는 기분이었다. 내 주위가 온통 비현실적인 몽롱하고 흐릿한 분위기로 변했다.

고개를 돌려 옆을 봤다. 강아지가 있었다. 먹을 것을 못먹어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병에 걸린건지 배를 드러낸채 방바닥에 누워 있었다. 평소대로 욕을 한바가지 퍼부어 주었어야 했다. 하지만 그 날은 그렇지 못했다. 머리 꼭대기까지 얼큰하게 올라온 취기 속에서, 옆집 조명이 연출하는 무겁고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강아지의 불룩하게 솟은 하얀 배가 빛을 내고 있었다. 캄캄한 밤하늘에 홀로 떠있는 보름달같이 눈부신 빛을 내고 있었다.

나에게 빛은 어울리지 않어. 나는 어둠 속에 찌그러져 있어야 마땅한 놈인데. 저 지랄같은 개새끼는 왜 저렇게 환하게 빛나는 거지? 뭐가 좋다고?

빛을 꺼뜨리기로 했다. 그래야만 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술이 그렇게 하라고 속삭였다.

부엌에서 식칼을 가져왔다. 식칼을 주제넘게 빛을 내고 있는 강아지의 배에 갖다댔다. 강아지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이미 강아지가 죽어 있었는지, 아니면 배를 드러내고 누워 있었어도 숨은 붙어 있었던 건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동물보호협회나 보신탕 금지 추진본부나 개사랑 동호회 같은 데서는 중요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주저않고 단숨에 강아지 배를 갈랐다. 순식간에 강아지 배에서 빛이 사라졌다. 배가 식칼에 잘리고 갈라지면서 속이 드러났다. 뱃속에서 검은색 어둠이 뿜어져 나왔다. 어둠의 피가 분출했고, 어둠의 내장이 튀어나왔다.

죽은 강아지에 대한 눈꼽만큼의 연민도 없이 계속 소주를 마셨다. 어두운 방 안에 어울리지 않게 깝죽대던 빛이 사라져서 기분이 좋았다.

빛은 타인의 것, 어둠은 나의 것. 어둠은 당연히 나의 것. 패배자의 것. 실패자의 것. 미친 놈의 것.

나는 어둠을 내 것으로 만들었다. 갈라진 강아지의 뱃 속에서 흘러나온 꼬불꼬불한 내장을 식칼로 잘라가면서 씹어 먹었다. 씹을 때마다 입 안 가득 국물이 흘러 나왔다. 무척 질겼는데, 별다른 맛이 느껴지진 않았다. 술에 단단히 취했던 탓이겠지. 그래도 맛있는 음식이라도 되는 듯이 강아지의 내장을 술안주로 삼아 꾸역꾸역 먹었다.

술에 취한 건지, 배가 부른 건지 나는 방바닥에 그대로 엎어져 잠이 들었다.

그리고 꿈을 꿨다. 아내와 동우와 고양이가 나오는 꿈을. 악몽을.

[5]편으로 이어집니다.

고양이의 한 [3] by 조재형

읽을꺼리 2007.05.08 23:47 posted by 조재형
사용자 삽입 이미지
5.

슬럼프에 관한 내 생각은 반은 맞았고, 반은 틀렸다.

반은 맞았다. 슬럼프가 온 것이 틀림없다는 내 예감은 적중했다.

집필실에 들어와 노트북 컴퓨터를 켜고 어제까지 쓰다만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보았다. 머리가 무거웠다. 그 다음 문장을 어떤 식으로 이어나갈 것인지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머리 속에 글쓰기를 방해하는 커다란 장벽이 생긴 것이다.

반은 틀렸다. 고양이를 죽이면 나를 성가시게 하던 슬럼프의 원인이 사라져 다시 원래처럼 빛의 속도로 글을 쓸 수 있다는 생각은 물거품이 되었다. 새끼 고양이를 살해하고 말았는데도, 나는 이렇게 슬럼프에 시달리고 있다! 슬럼프의 신이시여,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제 정성이 부족한 겁니까?

나는 이제 한 글자도 쓸 수 없는 지독한 슬럼프를 앓고 있었다. 노트북 컴퓨터 속의 소설 원고는 한 글자도 추가되지 않은 채 내 무능력의 명확한 증거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괴로워하는 나를 아랑곳 하지 않고 유유히 흘러만 갔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훌쩍 일주일도 지났다.

내가 하는 일이라곤 식구들한테 글 쓴다고 속이고, 집필실에 틀어 박혀 속만 태우는 것이었다. 소설가로서의 최후를 걱정하며 마지막 힘을 다해 노트북을 켠다해도 하는 일이라곤 고작 지뢰찾기나 카드게임으로 하루를 꼬박 보내는 것이었다. 이제는 노트북 속의 소설파일을 열어보는 것조차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파일을 연다고 해도 한 문장도 떠오르지 않는 괴로움만 더해질 뿐이었다. 차리리 집필실 바닥에 벌렁 드러누워 잠을 잤다. 정말이지 내 처지는 근로의욕을 상실한 게으른 노숙자와 다를 바 없었다.

슬럼프의 신은 새끼 고양이만으로는 성이 안 찬 것일까? 원래대로 어미 고양이를 죽였다면 이런 비참한 결과는 오지 않았겠지?

난 은근히 어미 고양이를 기다렸다. 다시 눈에 띄면 아예 요절을 내고 싶었다. 새끼 고양이를 끝장냈을 때처럼 걷잡을 수 없는 분노에 확 불타올라서 모든 것을 제껴두고 나서는 짓은 하지 않았지만, 마당에 나갈 때마다 장독대를 볼 때마다 어미 고양이를 볼 수 있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고양이는 오지 않았다.

아내도 동우도 고양이를 보지 못했다. 식구들은 아예 고양이 얘기를 꺼내지도 않았다. 그저 묵묵히 시골생활의 무료함을 버텨내고 있을 뿐이었다. 아내와 동우는 내가 고양이한테 한 짓을 다 알고 있는 걸까? 상관없다. 지금 내 코가 석자다. 식구들 기분까지 눈치볼 처지가 아니었다.

나는 어미 고양이가 내 앞에 나타나기를 고대했다. 그래서 슬럼프의 신을 위해 내가 또다시 뭔가 뜻깊은 일을 벌일 수 있기를 소원했다.

그리고 나는 소원대로 어미 고양이를 또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6.

밤이었다.

잠을 자다 깼다.

이상한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내 잠을 깨운 이상한 소리는 우리 집 천장에서 나오고 있었다.

돌아누운 아내의 등쪽을 향하고 누워 있던 나는 그 소리를 따라 천장 쪽으로 몸을 뒤척였다.

천장에서 나는 소리가 내 귀를 간지럽혔다. 그리고 내 아랫도리를 묵직하게 만들었다. 그 소리는 여자의 신음소리였다. 그냥 신음소리가 아니라 적나라한 포르노 영화같은 데 나오는 과장된 여자의 신음소리였다. 섹스의 쾌감을 견디다 못해 흐느끼듯 토해내는 숨막히는 육체의 언어. 신음소리 나는 천장을 바라보며 한동안 가만히 누워 있었다. 여자의 신음소리 같지만 정말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미친 여자가 야밤에 남의 집 지붕에 올라가 신음소리를 흘리고 있겠는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마당으로 나갔다. 잠이 덜 깨서 몽롱한 기분이었다. 달빛이 쏟아져 밝아진 마당의 분위기는 몽롱한 기분을 더욱 부추겼다.

지붕을 쳐다봤다.

꽉 찬 보름달 아래 우리집 지붕 위에 고양이들이 모여 있었다. 고양이들 무리 속에서 마당에서까지도 들릴만한 여자의 신음소리가 흐르고 있었다.

마당에서는 지붕 위의 사정을 자세히 볼 수 없어서 장독대로 올라갔다. 얼마 전까지도 어미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가 놀러오던 그 장독대로.

장독대에 서서 지붕 위의 광경을 보니 넓고 넓은 우주 공간에 붕 떠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지붕 위에서는 대략 20마리 정도의 고양이들이 둥글게 원을 그리며 모여 있었다. 각양각색의 고양이들이었다. 짙은 줄무늬가 있는 놈, 표범처럼 둥근 점들이 있는 놈, 아예 온몸이 새까만 놈, 정반대로 온몸이 눈처럼 하얀 놈 등등 고양이 전시장을 방불케 했다. 그런 고양이들이 모인 원 안에서 고양이 두 마리가 섹스를 하고 있었다.

동물의 왕국 같은 다큐멘터리를 보면 동물들이 섹스하는 장면이 심심찮게 나온다. 원숭이류 중에는 인간과 비슷한 체위를 하는 것들도 있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동물들은 항상 같은 체위를 고집한다. 암컷의 뒤를 수컷이 덮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지붕 위에서는 고양이라는 짐승이 너무나 인간적인 행위를 천역덕스럽게 벌이고 있었다. 암컷은 지붕 위에 누워 있었고, 수컷은 암컷의 몸 위에 올라타고서 열심히 허리운동을 하고 있었다. 수컷이 허리 돌리는 폼이 인간 뺨치게 능숙했다. 암컷은 수컷의 등을 끌어안고서 수컷의 움직임에 리드미컬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암컷의 입에서는 쉴새없이 인간같은 신음소리가 튀어 나왔다. 그 소리가 매우 자극적이어서 내 츄리닝 바지 앞이 불룩 튀어 올랐다. 고양이 암컷과 수컷의 긴 꼬리가 단단히 얽혀서 섹스의 흥분을 움켜쥐고 있었다.

그런 둘의 섹스를 지켜보고 있는 다른 고양이들의 모습도 꼭 사람같았다. 놈들은 서로의 귓 속에 대고 소근거리는가 하면, 굉장한 음담패설이라도 들은 듯 폭소를 터뜨리며 옆에 있는 고양이의 팔을 툭 치기도 했다.

환상일까? 고양이들이 저럴 리가 없어. 꼭 사람같잖아!

나는 섹스에 한창 열중인 암컷 고양이의 모습을 유심히 보았다. 장독대와 지붕 사이가 고양이의 땀구멍까지 들여다 보일 정도로 가까운 것은 아니었지만, 난 단번에 암컷을 알아볼 수 있었다.

얼마 전까지 우리집에 놀러오던 그 어미 고양이었다. 내 아내와 아들의 사랑을 받던 고양이, 내 아들의 손을 할퀴고 간 고양이, 덕분에 나의 슬럼프 공포증을 유발해 슬럼프의 신 앞으로 새끼 고양이 목숨을 바치게 만든 빌미를 제공했던 고양이. 바로 그 어미 고양이였다. 노란 털에 검은 줄이 쳐진 암컷 고양이.

내 집에서 뭐하는 짓이지? 불룩 튀어나온 츄리닝 바지 속의 물건이 단단히 염원하는 것과는 달리 나의 머리 속은 어미 고양이가 하는 짓이 못마땅하고 한편으로는 무섭기도 했다.

"훠어이 훠어이, 이 놈들아! 당장 꺼지지 못해?" 나는 손을 휘휘 저어가며 고양이들한테 소리쳤다.

섹스쇼 구경에 열중하던 고양이들의 시선이 장독대 위의 나에게로 모아졌다. 섹스쇼의 두 주인공들도 하던 짓을 멈추고 나를 쳐다봤다. 고양이들이 거의 동시에 나를 향해 짧은 울음소리를 냈다. 그리고 섹스쇼는 계속 진행됐고, 구경꾼 고양이들도 쇼 관람에 열중했다. 저 놈들이 나한테 야유를 보냈어, 나를 무시했어.

고양이들은 나를 외면했지만, 어미 고양이만은 달랐다. 계속해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자극적인 신음소리를 쉴새없이 내뱉으면서. 어미는 웃고 있었다. 어미의 눈웃음은 나를 향해 말하고 있었다. 이리로, 지붕으로 올라와, 나랑 같이 놀자.

물론 나는 지붕으로 올라 갈 수 없었다. 담장과 지붕 사이의 거리는 오밤중에 건너기에 만만치 않았다. 이런 얘기를 하는 것조차 터무니없는 일이다. 내가 정말로 저 어미 고양이랑 섹스를 하고 싶은 기분이라도 들었다는 것인가? 아니다. 절대 아니다. 그렇치만 내 츄리닝 바지 앞이 솟아오른 이유를 누군가가 묻는다면...

갑자기 어미 고양이의 시선이 나에게서 멀어졌다.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며 불규칙한 빠른 울음소리를 냈다. 부둥켜 안고 있던 수컷의 허리 움직임이 순식간에 격렬해 지는 순간이었다. 두 마리의 고양이가 미친 듯이 흔들리며 날카로운 소리를 질러댔다. 장난하듯 지켜보던 구경꾼들도 진지한 자세로 변했다.

마침내 섹스는 끝났다. 더 이상 신음소리도 없었다. 수컷은 죽은 듯이 어미 고양이의 몸 위에 축 늘어져 있었다. 어미 고양이가 기분좋은 웃음을 흘리며 또다시 나를 쳐다봤다. 이리로, 지붕으로 올라와, 나랑 같이 놀자, 이젠 네 차례야.

나의 츄리닝 바지는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섹스를 끝낸 수컷이 느릿느릿 몸을 일으켰다. 수컷이 구경꾼들 옆으로 걸어갔다. 구경꾼 고양이들은 수컷한테 소리를 지르고 툭툭 건드리고 난리가 났다. 수컷의 축 늘어진 성기가 드러났다. 그것은 사람의 성기랑 크기나 모양이 똑같았다. 어떻게 사람보다 훨씬 작은 고양이가 그런 물건을 가질 수 있었을까? 내가 잘못 본 것일까? 아닐 것이다.

나는 이미 이사오던 날에 어미 고양이의 성기를 직접 목격하지 않았던가. 사람의 그것을 꼭 빼닮은 것을.

이번에도 내 눈은 자연스레 어미 고양이의 성기로 향했다. 수컷이 떠나버려 누워 있는 어미가 다리를 벌리고 누워 있는 모습이 정면으로 보였다. 내 츄리닝 바지는 텐트 수준을 넘어 에펠탑 수준으로까지 불끈 솟았다. 어미의 성기는 예전보다 더 자극적인 모습으로 나를 흥분시켰다. 잔뜩 클로즈업된 포르노 영화의 성기 확대장면을 보는 기분. 어미의 성기는 수컷이 흘리고 간 하얀 액체로 범벅이 되어 번들거리고 있었고, 섹스의 흥분으로 한껏 부어 올라 있었다. 숨을 쉬려는 것인지 아니면 입맛을 다시는 것인지 성기는 힘겹게 꿈틀거렸다.

어미가 누운 채로 구경꾼 고양이들을 둘러봤다. 구경꾼들이 얌전하게 어미를 주시하고 있었다. 잠시 뜸을 들인 어미가 무리 중 한 고양이를 앞발로 가리켰다. 다른 고양이들의 입에서 실망의 한숨소리가 나왔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행운의 수컷이 태연하게 어슬렁거리며 어미한테 접근했다. 수컷이 어미의 정면에 와서 서자, 어미가 수컷의 아랫도리로 앞발을 갖다댔다. 살살 문지르며 애무하는 것이다. 수컷의 사람같은 물건이 부풀어 올랐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 것보다 컸다. 나도 사우나같은 데서 지지않는 정도의 수준이었지만, 그 놈의 물건은 그 이상이었다. 믿기지 않았지만, 직접 내 눈으로 보았으니 확실한 것이었다. 구태여 내 몸을 꼬집어 보지 않아도 꿈이 아닌 것은 확실했다.

수컷이 한껏 발기된 성기를 어미한테 밀어 넣었다.

아! 아앗!

나는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전율을 느꼈다. 삽입 순간에 어미 고양이가 내뱉은 짧은 신음소리는 정말 사람의 목소리였다.

아니야, 사람의 목소리가 아냐. 요물의 목소리야. 저 년은 요물이야. 인간을 홀리는 요물귀신이야.

수컷의 허리운동이 시작되고 어미는 자극적인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어미는 섹스의 쾌락을 쫓느라 이제 나같은 것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나는 장독대에서 내려왔다.

지붕 위에서 벌어지는 고양이 섹스쇼는 내가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다. 마땅히 고양이들을 쫓을 수 있는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고, 생각이 나더라도 실행에 옮길 힘도 없었다. 잠에서 덜 깬 몽롱한 기운에 멍하기만 했다.

안방으로 들어와 다시 이불을 덮고 누웠다. 아내는 내가 방을 나설 때와 똑같이 등을 돌린 채 열심히 잠자고 있었다.

나는 천장을 향해 누워 잠을 청했다. 하지만 신경쓰이게도 어미 고양이의 신음소리가 쉴새없이 또렷이 들렸다. 수컷 고양이는 별 소리를 안내는데, 왜 유난히 어미는 시끄러운 걸까?

너 들으라고 일부러 그러는거야.

마음 속이 심란해서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눈을 떴다. 어두운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우주같이 넓게만 보이는 어두운 천장이 내 머리 속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천장이 투명하게 사라졌다. 보름달과 별무리들이 어우러진 밤하늘이 펼쳐졌다. 내 바로 앞에 고양이들이 둥글게 원을 이루며 모여 있었다. 밑에서 쳐다보는 시점이라 고양이들의 엉덩이, 발, 꼬리같은 것만 보였다. 고양이들 가운데에 수컷에게 엉켜붙은 어미의 뒷모습이 있었다. 어미의 엉덩이가 벌어져 있었다. 수컷이 힘껏 허리를 내지를 때마다 어미의 몸뚱아리가 세차게 흔들렸다. 단단히 엉겨붙은 고양이들의 꼬리는 뻗치는 쾌감을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듯 꿈틀거렸다. 나의 상상력은 그런 세세한 모습까지도 다 볼 수 있었다.

내 성기는 무너질 줄 모르고 계속 츄리닝 바지 속에서 힘을 주고 있었다. 나는 변태인 것이 확실했다. 인간이 고양이들의 교미에 흥분해서 잠을 못 이루다니.

아랫도리에서 뻗치는 기운에 압도되어 더 이상 천장을 바라보고 누워 있을 수 없었다. 아내 쪽으로 돌아누웠다. 어슴푸레한 어둠 속에서 아내의 뒷모습이 실루엣으로 보였다. 이불을 들추고 아내 쪽으로 바짝 붙었다.

아내의 가슴을 만졌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내의 유방. 나의 보물 1호. 아내의 얇은 런닝을 통해 부드럽고 탄력있는 유방의 감촉이 전해졌다. 확 달아오른 기운에 나는 아내의 등에 내 몸을 붙였다. 나의 성난 아랫도리가 아내의 엉덩이에 닿아 헐떡거렸다.

"으음, 왜 그래? 잠 안 자?" 아내가 내 손길에 잠을 깼다. "이거 무슨 소리야?" 아내도 고양이의 신음소리를 들었다.

"고양이들이 우리 집에 소풍 왔어."

"뭐?"

나는 잠이 덜 깬 아내를 엎드리게 만들었다. 아내의 잠옷 바지를 벗겼다. 그 속의 하얀 팬티도 벗겼다. 그리고는 아내의 살찐 엉덩이를 끌어 안았다. 미칠 것 같았다. 나는 아내의 엉덩이를 덮쳤다.

천장에서는 계속해서 어미 고양이의 음탕한 신음소리가 들려 오고 있었다.

우리집 천장에서는 고양이들이 너무나 인간적인 섹스를 펼치고 있는 가운데, 나는 아내와 함께 너무나 짐승같은 섹스를 벌였다. 그 순간 나는 짐승이 되었다.

[4]편으로 이어집니다.

고양이의 한 [2] by 조재형

읽을꺼리 2007.05.08 23:45 posted by 조재형
사용자 삽입 이미지
3.

고양이는 아내와 동우에게 뗄래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나만 봤다하면 아내와 동우는 고양이 자랑하느라 바빴다. 나는 마치 고양이 서커스단의 단장이 된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매일매일 조련사들-아내와 동우-이 단장인 나에게 찾아와 시시콜콜한 훈련성과를 보고하는 듯한 기분. 단장님 오늘은 고양이들이 훌라후프를 30분이나 돌렸습니다 단장님 오늘은 고양이들이 거리로 나가 시민들한테 서커스표를 팔았습니다 단장님 오늘은 고양이들이 쓰레기 분리수거를 했습니다. 물론 아내와 동우가 내게 해 준 얘기들은 좀 더 그럴 듯한 현실적인 얘기들이었다. 이를테면 이런 것.

동우: "아빠! 나 고양이 만졌어. 고양이들이 이젠 내 옆에도 막 오고 내가 등을 쓰다듬어도 가만있어!"

아내: "자기야! 이젠 고양이들이 여기가 자기 집처럼 편안한가봐. 장독대로 쓰는 저기 작은 창고 있지? 가끔씩 그 속에서 고양이들이 자고 가나봐. 낮에 창고에서 나오는 걸 여러번 봤어."

식구들의 말에 나는 나름대로 대꾸를 해주지만, 식구들은 별로 개의치 않았다.

동우에게: "그러지마, 동우야. 함부로 만지다 고양이가 우왕! 하고 문다, 물어. 그럼 얼마나 아픈데. 잘못하면 아주아주 나픈 병에 걸릴 수도 있어. 개한테 물리면 광견병, 고양이한테 물리면 광...고양이병."

아내에게: "뭐야? 그럼 혹시 우리 이사오기 전부터 원래 이 집 창고에서 숨어 살던 고양이들인가? 우리가 새로 이사와서 경계를 하다가 이제는 안심이 돼서 창고에서 다시 살겠다 이건가? 쫓아내는 게 좋겠어. 창고 속에다가 고양이들이 똥싸고 오줌싸고 냄새가 이만저만이 아닐 꺼야. 병균이 우글거릴 거야."

그러나 식구들은 내 의견과는 반대로 고양이들과 너무도 친하게 지냈다. 고양이들도 우리 식구들의 우호적인 태도를 눈치챘는지, 이제는 마루에까지 올라와서 낮잠을 잘 정도로 경계심이 누그러졌다.

그 속에서도 나에 대한 경계심은 남아 있었다. 내가 나타난다고 무조건 도망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2m 정도의 거리를 두고서 내가 그 안으로 접근하기만 하면 슬그머니 달아나 버렸다. 나는 그저 다른 식구들과는 달리 내가 먹을 것을 아무 것도 던져주지 않으니까 고양이들이 싫어하는가보다 라고 생각했다. 뭐 그리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내가 이 시골 구석까지 내려온 것은 고양이 사육하려고 그런 건 아니니까. 내가 진짜 정성으로 돌보아야 할 것은 집필 중인 소설이니까.

그러던 어느 날 오후. 나는 집필실에서 한창 작업 중이었고, 아내는 낮잠을 자고 있었다. 동우 혼자 마당에 나가 있었는데, 갑자기 울부짖는 고양이 소리가 들리더니 동우가 비명을 지르며 울음을 터뜨렸다. 노트북 화면 속의 소설에 푹 빠져 있던 나는 화들짝 놀라 마당으로 뛰쳐 나갔다. 처음에는 부들부들 떨면서 마당에 서있는 동우의 뒷모습만 보였다. 그러다가 동우 발 밑에서 무언가를 허겁지겁 먹고 있는 어미 고양이와 새끼를 발견했다. 그 순간 교양이들의 눈이 내 시선과 마주쳤다. 고양이들은 땅에 떨어져 있던 빵같은 것을 덥석 물고는 장독대 위로 뛰어올라 담장 쪽으로 사라졌다. 동우의 발밑으로 빨간 액체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동우에게 다가갔다. 동우는 맨처음의 커다랗던 비명소리와는 달리 이제는 숨죽여 흐느끼고 있었다. 뭔가 엄청난 고통을 속으로 꾸역꾸역 참고 있는 사람처럼. 잘못 건드리면 참고 참았던 고통이 터져버려 온동네가 떠나가 버릴듯한 울부짖음이 튀어 나올 것만 같았다. 덜컥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조심스레 동우 앞으로 걸어갔다.

오 맙소사. 동우는 오른손을 허공에 쳐든 채 말없이 떨고 있었다. 오른손이 손목에서부터 손등까지 여러 갈래로 길게 찢겨져 있었다. 고양이 발톱이 할퀴고 지나간 흔적이었다. 손등이 길다랗게 찢어진 상처 아래쪽은 아예 피부가 왕창 벗겨져서 흔들거리고 있었다. 조금만 잘못하면 손등의 피부는 완전히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나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을 느꼈다. 동우의 피부가 벗겨진 자리에 손 근육과 뼈가 훤히 들여다 보였다. 피아노 건반처럼 손등 속의 새하얀 뼈들이 쉴새없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동우만큼이나 손뼈들도 놀라서 발작하는 중이었다. 동우의 손등을 따라 쉴새없이 흐르는 피는 손가락을 따라서 방울방울 떨어지고 있었다. 내 귀에는 그 핏방울들이 마당에 떨어지며 내는 뚝!뚝!뚝!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동우는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흐느끼고 있었다. 온통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이었다. 가늘게 닫혀진 동우의 눈이 나를 발견했다. "어떡해... 나 어떡해? 고양이가..." 침을 흘리며 떨리는 아이의 입술이 나에게 물었다.

나는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조금 전까지 집중해서 쓰던 소설 속의 현실과 지금 마당에서 겪고 있는 진짜 현실이 뒤섞여서 정신이 혼란스러웠다. 아이에게 뭐라고 말해주어야 할까?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때 뒤늦게 잠에서 깨어난 아내가 안방 문을 열고 나왔다. 아내는 순식간에 아이의 발 밑에 흐르는 빨간 액체의 의미를 알아 차렸다. 소리를 지르며 동우 앞으로 뛰어나왔다. 손등의 상처를 보고는 완전히 흥분해서 아이의 어깨를 붙들고 거칠게 흔들어댔다. "왜 그래? 이거 어떻게 된 거야?"

나는 아내가 아이를 자꾸 흔들면 손등 피부가 완전히 떨어져 버릴 거라는 생각을 했다. 아내의 손목을 붙잡아 동우의 어깨에서 떼어냈다. 아내의 손이 처음엔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내가 아내의 손목에 힘을 주자 순순히 아이의 어깨에서 풀어졌다. 내가 너무 지나치게 힘을 주었던 탓인지, 아내가 아픈 소리를 냈다. 아내가 나를 무서운 눈으로 째려보았다.

"진정해. 당신까지 흥분하면 동우는 어떡하라구. 방에 가서 소독약하고 깨끗한 천 여러장 가져와. 손등을 감싸게 깨끗한 천으로 말야." 나는 침착하게 보이려 애썼다. 그래도 목소리는 좀 떨리고 있었다. 아내는 군말없이 안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무릎을 꿇고서 동우의 눈에 시선을 맞췄다. "동우 손에 뚜껑 열렸네. 손에 바람 들어가서 춥겠다. 하지만 걱정마. 아빠가 병원 데리고 가서 고쳐줄께. 그러기 전에 우선 손에 열린 뚜껑 닫아야겠다."

나는 활짝 벗겨져 있는 동우의 손등 피부를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살짝 잡았다. 손등 속에서 하얀 손가락 뼈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 흔들거림에 자칫하면 손등 피부는 금방이라도 손등에서 떨어져 나갈 듯이 애처롭게 손등 가장자리에 매달려 있었다. 그런 피부를 조심조심 원래의 손등 자리에 덮어 놓았다. 손가락 뼈들이 난리치는 통에 덮어 놓은 손등 피부가 들썩거렸다.

나는 동우의 상처 난 손등을 양손으로 꼭 감싸 쥐었다. 동우의 손이 내 손 안에서 떨리고 있었다. 동우는 아무말도 못하고 계속 울기만 했다. 난 울지 말라고, 이젠 괜찮다고 말해 주었다. 차츰 동우의 손이 안정을 되찾는 듯 했다. 아이 손의 흔들거림이 점점 잦아들더니 평온을 되찾았다.

아내가 내가 말한 물건들을 들고 나왔다.

나는 아내에게서 건네 받은 소독약 연고를 동우의 상처난 손등에 발라 주었다. 우선은 벗겨졌던 피부의 경계선에, 그 다음은 손목에서부터 내려온 길다란 세로줄들에. 손등 피부를 들추어내서 그 안에다가도 소독약을 발라주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괜히 세균에 감염될 것 같아서 그만 두었다. 상처에 연고를 바르고 나니 확실히 피는 별로 흐르지 않았다. 마당에 흥건히 흘러내린 핏물을 봐서는 이미 나올만한 피는 다 나와버린건지 모르겠지만. 연고 다음에는 아내가 갖고 나온 흰 수건을 동우의 손에 칭칭 감았다. 이것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응급처치는 끝이었다. 잘 한건지는 모르겠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종합병원 응급실 레지던트 솜씨 같았다.

나는 동우를 등에 업고 마을 이장 집으로 찾아갔다. 평소에 별로 왕래도 없었지만, 지금 그런 걸 따질 처지가 아니었다. 읍내 병원으로 가기 위해 마을 앞으로 하루에 5번만 찾아오는 시골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릴 수는 없었다. 이장 승용차를 얻어타고 우리 부부는 동우와 읍내 병원에 가서 정식으로 치료를 했다. 의사는 우려할 만한 정도의 상처는 아니라며 안심시켜 주었다. 병원에 올때까지 내내 안절부절 못하던 아내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안심을 했다.

치료받고 손에 붕대를 감은 동우를 데리고 우리 부부는 또다시 이장의 승용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차에서부터 잠이 든 동우를 안방에 눕혔다. 아내와 나는 말없이 아이를 바라 보았다.

한동안 눈물만 흘리던 아내가 갑자기 나를 향해 소리쳤다.

"그러게 왜 이런 촌구석에 살자고 그랬어? 꼭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살아야 소설 쓰는거야? 봐! 이렇게 동우가 다치고 그러잖아! 우리 아들 좀 봐!"

"지선아, 진정해. 애 다친 거 갖고 왜 여기 이사온 거까지 들먹거리구 그래? 고양이 위험하다고 내가 그렇게 얘기했는데도, 먹을 거 줘가면서 집안으로 끌어들인 건 너잖아." 평소같았으면 난 아내와 대판 싸웠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지금의 나는 평소의 상태가 아니었다. 내 머리 속은 심각한 두려움에 떨리고 있었다. "진정해. 손등에 상처난 것 뿐이야. 그딴 걸로 생명에 지장생기는 거 아니잖아."

"아무리 그래도 넌 아들이 다쳤는데 아무렇지도 않니? 아까부터 계속 왜 그렇게 무덤덤하니? 나 혼자 호들갑 떠는 거야? 그리고 그렇게 무섭게 쳐다보지 좀 마. 기분 나뻐."

"내 눈? 내가?"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더 이상 아내와 말장난하고 싶지 않았다.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디가?"

"이젠 너도 고양이들이 싫어졌지? 난 훨씬 옛날부터 맘에 안들었어. 그 새끼들 다 죽여버릴꺼야."

마당으로 나왔다. 동우가 흘린 핏자국이 검게 변색된 채 말라있었다. 그걸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천장을 장독대로 사용하고 있는 작은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창고는 문도 없이 출입구가 뻥 뚫려 있는 구조였다.

창고 속에서 퀴퀴한 냄새가 눈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창고 특유의 냄새인지, 고양이들이 남기고 간 냄새인지 구분이 안갔다. 이사오던 날 호기심에 한번 들어와 보고난 뒤로는 처음으로 들어와 보는 창고였다.

대낮인데도 어두컴컴한 창고 안에는 전에 살던 집주인이 들여놓은 온갖 잡동사니들이 멋대로 쌓여 있었다. 녹 슨 농기구들, 기계부품들, 썩은 목재들, 플라스틱 물통들... 쓰레기라고 불러도 손색없는 물건들이 잔뜩 있었다.

아내는 창고 안에서 고양이들이 잠을 자는 것 같다고 말했었다. 그 말을 떠올리며 창고 속을 둘러 보았다. 썩은 목재들이 세워져 있는 사이로 종이박스가 하나 있었다. 위가 트인 종이박스 속에는 낡은 옷들이 깔려 있었다. 고양이들이 종이박스 속에서 옷가지들을 이불 삼아 잠자는 것 같았다. 어쨌든 지금은 고양이들이 없었다. 있었더라면 당장 내 손에 맞아 죽었을 것이다.

그냥 나오려다 창고 입구에 세워져 있는 쇠파이프들을 발견했다. 그 중 골라 손에 들었다. 어른 팔뚝만해서 묵직한 게 손에 잡고 휘두르기에는 딱 안성맞춤이었다. 휘둘러서 뭔가를 두들겨 패기에는 더욱 안성맞춤이었다. 파이프 몸체에는 여기저기 하얗고 노란 이끼같은 것들이 들러 붙어 있었지만, 상관하지 않고 덥석 잡고서 마당으로 나왔다.

그 다음에는 부엌으로 들어갔다. 냉장고 속을 뒤져 고등어 두 마리를 찾아냈다. 그 와중에 하얀 냉장고 여기저기에 쇠파이프를 잡았던 손에서 옮겨온 얼룩이 묻었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고등어 두 마리를 부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마당 한쪽 구석에 놓아두었다. 그러고 돌아서려니 좀 찝찝했다. 마당에 고등어 두 마리만 덜렁 놓여져 있으면 고양이들이 의심할지도 몰랐다. 다시 부엌에 들어가 쓰레기 봉투를 들고 나왔다. 쇠파이프로 고등어를 두드려 팼다. 고등어가 너무도 간단하게 박살났다. 대가리고 몸통이고 할 것 없이 산산조각났다. 그 부서진 고등어를 쓰레기 봉투 안에 주워 담고, 봉투 끝을 묶어 놓았다. 그리고는 아내가 쓰레기 봉투를 밖에 내다놓기 전에 임시로 놓아두는 부엌 옆의 수돗가에 놔두었다. 미끼가 완성된 것이다.

부엌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문턱이 높았다. 다리를 들어올려 문턱을 지나면 바로 아래에 있는 굵직한 돌계단 2개를 밝고 내려가야 했다. 나는 부엌으로 들어가 신고 있던 구두를 벗어던졌다. 고양이에게 접근할 때 구두소리를 내면 곤란할테니까. 나는 양말만 신은 채로 문턱 밑의 돌계단에 완전히 엎드렸다. 높은 문턱을 방패 삼아 내 모습이 은폐될 것이다. 고개를 살짝 들어 밖을 내다보았다. 여기서는 고양이들이 우리집으로 들어오는 장독대도, 고등어 미끼가 있는 수돗가도 다 잘 보였다. 녹 슨 쇠파이프를 힘껏 쥐어 보았다.

고양이 새끼들, 나타나기만 하면 다 죽여버릴테다.

그 후 몇시간을 계단에 엎드린 채 하염없이 고양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아내가 부엌에 들어와서 저녁상을 차렸다. 아내가 여기서 뭐하는 있는 거고, 냉장고 안에 둔 고등어는 어디 갔으며, 시커멓게 묻은 얼룩은 뭐냐고 물었다.

"고양이들한테 우리 가족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 주겠어. 물론 그 놈들이 후회할 때는 이미 저 세상에 간 뒤겠지만."

아내는 상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면서 동우랑 같이 저녁 먹자고 말했지만, 나는 아무말도 않고 그저 엎드려 있었다. 일일이 대꾸하기도 귀찮았다.

잠시 후 저녁을 다 먹은 아내는 상을 부엌에 갖다 놓고 나가면서, 밤새 이러고 있을 거냐고 물었다. 내가 아무런 대꾸를 안 하자 그냥 방에 들어갔다. 그리고 밤 10시가 되었을 때, 아내가 다시 나와서 잠 안 잘 거냐고 물었지만 이번에도 역시 아무 대답이 없자 그냥 방으로 들어갔다.

오랜 시간을 부엌 계단 위에서 망을 보면서 나는 오늘 낮에 고양이한테 상처입은 동우를 보았을 때부터 느꼈던 기분의 정체를 음미해 볼 수 있었다.

소설가가 느끼는 무거운 기분의 정체.

그건 바로 슬럼프가 찾아왔다는 신호였다.

나는 여기 시골로 이사오기 전까지 오랜 기간동안 슬럼프에 시달려 왔었기 때문에 슬럼프가 찾아오는 기분을 잘 알고 있다. 슬럼프가 '나 왔수다'하고 말하고 찾아오는 것은 아니지만, 정상적인 컨대션인 때와 슬럼프 때와는 확실히 머리에서 느끼는 기분상태가 틀리다.

지금 내 머리 속은 오늘 아침에 막 일어났을 때 느끼던 상쾌한 기분이 아니었다. 무거운 돌덩이 하나가 꽉 들어 찬 느낌, 머리 속이 빈틈없이 콘크리트로 채워진 느낌이다. 아무리 글을 쓰려고 해도 벽이 가로막는 듯한 막막한 두려움에 시달리게 하는 느낌.

슬럼프가 확실했다. 나는 이제 글을 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원인은 고양이였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처음부터 고양이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어미 고양이가 화근이었다. 이사오던 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자기 거시기를 애무하고, 내가 아내 가슴 주물럭거리는 것을 장독대 위에서 지켜보고, 동우의 손을 긁어놓고, 덕분에 이제까지 한번도 거른적이 없던 오후 집필시간을 오늘 공치게 만들었다. 처음부터 우리 집에 얼씬도 못하게 했어야 했는데.

고양이는 요물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매우 미묘한 감정상태를 연속적으로 이어나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이 어떤 계기로 인해 도중에 끊어지게 되면 슬럼프가 되는 것이고, 그걸 원래대로 복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누구도 장담할 수가 없다. 때로는 몇 십초만에 정상을 되찾기도 하지만, 때로는 평생을 슬럼프에 시달리다 작가를 포기하게 되는 수도 있다. 언제쯤 다시 글을 쓸 수 있을지는 고대로부터 작가들의 창작활동을 괴롭히는 것을 삶의 낙으로 삼아온 슬럼프의 신만이 알고 있으리라.

소설가로서의 마지막 돌파구로 여기 시골까지 이사왔는데, 또다시 슬럼프에 빠지면 이번엔 또 어떻게 헤어나올 수 있을까? 불안했다. 이렇게 작가생활이 쓸쓸히 끝날 수도 있었다. 글쓰는 일을 포기하고 나면 무얼하면서 먹고 살 수 있지? 난 별로 할 줄 아는 게 없는데. 어떡하든 이제 막 찾아온 슬럼프를 벗어나야만 했다. 어제까지도 순조롭게 집필하던 소설이 아까워서라도 무슨 방법이든 짜내야 했다. 글쓰기 공포증에 시달리기 시작한 내 머리 속을 확 뚫어줄 수 있는 방법을.

그렇다. 고양이다.

고양이로 생긴 문제는 고양이로 풀어야 했다. 단순히 혼내주는 것만으로는 불안하다. 동물들이란 아이큐가 심각하게 낮은 존재라서 혼쭐이 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다 잊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꼬리를 흔들며 다시 나타나게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성가신 고양이로 인해 나의 미묘한 감정상태는 다시 흔들려 버리고 슬럼프는 계속 나와 함께 붙어다닐 것이다.

확실하게 죽여 버려야지. 가능하다면...

고대인들이 풍년을 기원하며 신에게 사람을 제물로 바쳤듯이, 나도 순조로운 창작활동을 기원하며 고양이를 슬럼프의 신에게 제물로 바칠 것이다. 예전의 슬럼프를 가족들의 행복한 서울생활을 제물로 바쳐 벗어났듯이, 이번 슬럼프의 제물은 고양이였다.

물론 동우를 해꼬지한 복수도 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일석이조의 효과였다.

고양이들이 쉽게 내 손에 걸려들까? 그 재빠른 놈들이.

마음 속에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머리 속의 슬럼프 장벽이 더욱더 두꺼워지고 무거워졌다. 어쨌든 시도는 해야만 한다. 죽이지는 못하더라도 한번 혼쭐이 나면 다시는 우리집에 안 찾아 올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나니 시간은 새벽 2시를 넘고 있었다. 달도 없는 캄캄한 밤에다 아내와 동우가 잠든 방에는 불이 꺼져 있었지만, 마루에 환하게 불을 켜놓고 있었고 집 앞에 세워진 가로등 불빛도 함께 어우러져 마당 전체는 물론 장독대까지도 훤히 볼 수 있었다.

초저녁부터 쭉 엎드린 자세로 있었지만, 난 전혀 피곤하지도 졸리지도 않았다. 슬럼프에 대한 두려움이 나의 모든 신경을 흥분상태로 만들었다. 오직 고양이들을 기다리는 일에 모든 신경이 집중되어 있었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고양이 두 마리가 장독대 위에 모습을 나타냈다. 나쁜 새끼들, 역시 모습을 나타냈군. 먹이를 주면서 잘 대해주던 아이를 상처 입히고는 뻔뻔스럽게 또 나타났군. 그러니 아이큐 낮은 짐승이지.

나는 혹시나 고양이들 눈에 띌까봐 문턱 밑으로 더욱 몸을 수그렸다.

고양이들이 창고 옆에 난 계단을 통해 장독대에서 마당으로 느릿느릿 내려왔다. 놈들은 잠시 불꺼진 방을 기웃거리더니 수돗가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정확히 나의 미끼에 걸려들었다. 쓰레기 비닐을 발톱으로 뜯고서 속 안의 내용물을 다 끄집어 내고 있었다. 물론 그 속에는 내가 정성껏 먹기 좋게 다듬어 놓은 고등어 두 마리가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쇠파이프를 손에 들고 부엌에서 살금살금 걸어 나왔다. 구두를 벗어 던진 양말차림이어서 걷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서두르지 말자고 다짐하며 아주 조금씩 수돗가의 고양이들에게 다가섰다.

내게서 등을 돌리고 있는 고양이들은 고등어를 먹느라 정신없었다. 놈들이 쩝쩝거리며 입을 놀리는 소리가 들렸다. 오냐, 이놈들아, 마지막 만찬이니 맛있게 먹어라.

나와 고양이와의 거리가 많이 좁혀졌다. 하지만 아직 쇠파이프의 사정권은 아니었다. 난 딱 두 발자국만 더 걸어가서 액션을 취해야겠다고 결정했다. 어미 고양이의 대가리를 쇠파이프로 후려칠 것이다.

그 때 느닷없이 새끼 고양이가 고등어를 먹다 말고 뒤를 돌아봤다. 녀석의 시선이 나의 시선과 정통으로 부딪혔다. 새끼 고양이가 나를 보더니 무표정하게 짧은 울음소리를 냈다. 냐아아아옹∼.

예정에 없던 돌발상황에 난 당황했다. 바보같이 서투르게 어색한 동작으로 어미의 머리를 향해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쇠파이프는 벌써 몸을 피해 달아나는 어미 고양이의 머리를 빗나가서 땅에서 길게 솟아오른 수도 파이프를 때렸다. 깡! 하는 타격소리가 고요한 새벽에 울려 퍼졌다.

나는 휘청거리며 몇번 더 쇠파이프를 휘둘렀지만 붕붕 허공 가르는 소리만 났을 뿐, 도망치는 고양이들에게 닿지도 않았다.

고양이들이 쏜살같이 마당을 가로질러 창고 옆 계단을 향해 도망치고 있었다. 집 대문이 닫혀 있고 담장도 높아서 고양이들이 밖으로 나가는 유일한 길은 장독대로 올라가는 방법 뿐이었다.

고양이들이 계단을 향해 훌쩍 뛰어 올랐다.

나는 급한 마음에 수돗가 물받이 통에 있는 플라스틱 바가지를 고양이들한테 집어 던지며 쫓아갔다. 한심하게도 바가지는 고양이들 위에 있는 계단을 맞고 튕겨 나가고 말았다.

어미 고양이는 가뿐하게 계단을 달려 장독대로 올라갔다. 나의 사정권에서 완전히 벗어나 버린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행운이 찾아왔다.

바로 윗계단을 때리고 떨어지는 바가지에 놀랐는지, 새끼 고양이가 계단에서 발을 헛딛어 마당으로 떨어진 것이다. 그렇더라도 떨어진 즉시 다시 계단으로 뛰어올랐다면 동작이 굼뜬 나를 따돌리고 무사히 장독대 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새끼 고양이는 마당에 떨어져서 당황한건지 아니면 나이가 어려서 상황판단이 잘 안되는 건지, 다시 계단으로 갈 생각은 못하고 마당을 미친 듯이 헤매고 다녔다.

장독대 위에서 어미가 새끼를 향해 목이 찢어질 것처럼 거칠게 소리질렀다.

나는 우연히 찾아온 행운을 놓치지 않으려 일단 장독대 계단을 막아섰다. 그리고 새끼가 생각할 틈을 주지 않으려고 그 즉시 마당 한쪽 구석으로 몰았다. 몸을 지그재그로 이리저리 흔들며 구석으로 유인했다. 허둥대며 날뛰던 새끼는 내 몸을 피한답시고 뛰어다녔지만 내 의도대로 나와의 거리는 점점 좁혀지는 가운데 마당 한구석에 몰리고 말았다.

한 발자국 정도의 거리까지 좁혀졌다. 나는 쇠파이프를 들어 올렸다.

그 순간 새끼는 구석에서 튀어나와 필사적으로 내 오른쪽으로 도망쳤다. 고양이가 지나가면서 구두없이 양말만 신고 있는 내 발을 스쳤다. 그 간지러운 털의 느낌은 기분 나쁘게 소름끼쳤다. 그와 동시에 어떤 확신을 심어주기에 충분한 느낌이기도 했다. 나는 몸을 틀며 정확히 내 발 밑을 내달리는 새끼 고양이에게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퍽. 쇠파이프가 정확하게 고양이 머리에 맞았다. 단 한방에 새끼 머리가 박살났다. 발 밑을 스치는 고양이 털이 전해준 민감한 확신이 인도하는 대로 휘두른 단 한방에.

조그만 고양이 머리는 산산이 부서져서 목에서 떨어져 나갔다. 머리는 이제 큼직한 몇가지 파편들로 쪼개져 있었다. 머리가 없어졌는데도, 몸통이 꿈틀거리며 요동쳤다. 목에서는 핏줄기가 죽죽 뿜어져 나왔다. 잠시 후 머리 없는 몸통은 움직임을 멈췄고, 목에서 나오던 피의 양도 점점 줄어 들었다.

등 뒤로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뒤돌아 보았다.

장독대로 도망갔던 어미 고양이가 어느새 마당에 내려와 있었다. 어미가 나를 노려봤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대신 어미의 무표정한 얼굴이 나에게 묻고 있었다.

이게 뭐야? 내가 이 정도 대접을 받을 정도로 니네 가족한테 죽을 죄를 진 거니? 넌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한 거야?

난 정말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했지? 내가 정말 바라던 게 이런 거였을까?

머리 속이 혼란스러웠다. 조금 전까지 글쓰기 인생에 슬럼프가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이 놈의 시골생활에서도, 아니 내가 죽는 날까지 아무런 소설도 나오지 못할 거라고 두려워했다. 실제로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쓰려고 시도해 보지도 않고서 성급하게 고양이와 슬럼프를 연관시켰다. 슬럼프에 관해서는 내가 전문가라는 생각에 빠져서.

어쩌면 시골에서 글을 쓰는 동안 알게 모르게 소설이 성공해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쌓였는지도 몰랐다. 그 스트레스를 동우가 다치는 사고를 빌미삼아 고양이들한테 풀려고 했던 건지도 몰랐다. 확실치는 않다. 그랬던 건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조금 전까지는 확실히 고양이들을 죽이고 싶었다. 그렇게 되면 확실히 슬럼프 걱정없이 완벽하게 멋진 소설을 일사천리로 완성시킬 수 있다는 환상에 젖었었다. 슬럼프의 신이 고양이의 목숨을 먹고 내 창작능력을 도로 토해낼 것이라는 환상.

환상은 사라지고 죽은 고양이만이 남았다. 슬럼프의 신이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

힘이 풀린 난 쇠파이프를 마당에 떨어뜨렸다.

어미 고양이가 새끼에게 다가갔다. 어미는 이제 나같은 건 신경쓰지도 않았다. 내 옆을 무심히 지나서 이제는 아무 움직임도 없는 새끼의 몸통으로 다가갔다. 흩어진 새끼 머리 파편들을 묵묵히 훑어보고 나서, 어미는 새끼 몸통을 덥석 물었다. 몸통을 입에 물고는 그대로 마당을 지나 창고 계단을 올라 장독대까지 올라갔다.

어미가 새기를 입에 문 채 아주 잠깐동안 나를 바라봤다. 세로로 찢어진 검은 눈동자가 나에게 원한의 메시지를 남겼다.

꼭 갚아주겠어.

어미는 장독대 담장을 타고 넘어 우리집 밖으로 사라졌다.

나는 고양이가 사라진 뒤에도 우두커니 장독대를 바라보며 서있었다. 이제까지 내가 벌인 일들이 꿈만 같아서 쉽사리 헤어날 수 없었다.

조금 전에 마당에서 벌어졌던 고양이와의 추격전은 끝나고 다시 조용한 새벽이었다. 아내는 잠이 깊이 들었는지 나와 보지도 않았다. 우두커니 나혼자 마당에 서서 대책없이 멍하니 있기만 했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 바닥을 내려다봤다. 어미가 새끼를 물고 가면서 새끼의 목에서 새나온 핏자국이 마당에서 장독대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쇠파이프로 새끼 머리를 부숴 버렸던 자리에는 큼직하게 시뻘건 피터지는 자국이 남았다. 내 발 밑 여기저기에 새끼 머리 파편들이 어질러져 있었다.

나는 그 파편들을 빠짐없이 주웠다. 머리통, 뇌수, 눈알, 아래턱 등이 조각조각 모아졌다. 모두다 피에 흠뻑 젖어 있었다. 나는 파편들 전부를 힘껏 담장 밖으로 던져 버렸다. 밖은 산이니까 들짐승이나 새들, 아니면 땅 속의 미생물같은 것들이 알아서 처리해 줄 것이다. 쇠파이프도 가만 놔두고 싶지 않았다. 역시 담장 밖으로 던져 버렸다. 마당에는 고양이들이 쓰레기 봉투에서 파헤친 고등어를 비롯한 음식쓰레기들이 널려 있었다. 일일이 손으로 집어서 봉투에 담고 묶었다.

이제는 내 자신을 돌아볼 차례였다.

입고 있는 셔츠며, 바지며, 양말까지도 말이 아니었다. 녹슬고 이끼낀 쇠파이프에서 묻은 이상한 얼룩에, 고등어 비린내를 비롯한 음식 썩는 냄새에, 고양이한테서 묻은 시뻘겋다 못해 까맣게 보이는 피에 젖어 있었다. 전부다 벗어버리고 벌거숭이가 되었다. 부엌에 들어가 커다란 쓰레기 봉투를 가져와 옷가지들을 전부다 담았다. 그리고는 방금 전에 수습한 음식쓰레기 봉투와 함께 대문 밖에 있는 쓰레기통에 갖다 버렸다. 며칠 후면 쓰레기차가 와서 처리해 줄 것이다.

그 다음엔 뒤집힌 채 마당에서 뒹굴고 있는 -고양이들한테 집어던지는 용도로 사용했던- 바가지를 집어서 수돗가로 왔다. 바가지 한가득 물을 담아 몸에 끼얹으며 목욕을 했다. 몸은 시원했지만, 머리를 짖누르는 무거운 기분 -슬럼프!- 은 사라지지 않았다.

목욕을 끝내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은 후 방에 들어갔다. 평소 때는 동우는 자기 방에서 잤지만, 오늘만큼은 엄마랑 안방에서 같이 자고 있었다. 나는 옷장에서 속옷과 츄리닝을 꺼내 입었다.

그리고 이불 위에 누웠다. 곧바로 잠이 들었다.

4.

다음날 오후 늦게 서야 일어났다. 머리 속이 숨막히게 답답했다.

슬럼프!

어제 저녁을 굶어서인지 뱃속이 밥 달라고 난리였다. 나는 세수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서둘러 아내가 차려준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밥상머리에 앉은 아내는 별로 말이 없었다. 마당의 고양이 핏자국이랑 대문 밖의 쓰레기 봉투들을 보았다면 뭔가 이상한 낌새를 챘을 텐데. 알고도 모른 척 하는 건지도 몰랐다. 어제 새벽에도 안방 문을 가만히 열고서 내가 하는 모든 행동들을 속속들이 다 지켜보고 있었는 지도 모른다. 상관 않기로 했다. 아내가 먼저 말을 꺼내지 않은 한 구태여 밝히고 싶지 않았다.

꾸역꾸역 밥을 다 먹고 나서, 마당으로 나갔다.

동우녀석이 장난감 자동차를 굴리며 놀고 있었다.

마당에는 핏자국이 많이 희미해져 있었다. 동우가 흘렸던 것도, 새끼 고양이가 흘렸던 것도 전부 다 말이다. 아내가 물청소라도 한 것 같았다.

나는 동우에게 갔다. 오른손은 붕대를 하고 있어서 왼손으로 장난감 자동차를 굴리며 놀고 있었다. 놀고 있는 폼이 이제는 별로 아프지 않은 것 같았다. 다행이었다.

나를 보자 동우가 웃었다. "아빠, 잠꾸러기. 지금 일어나면 어떡해. 소설 언제 써?"

소설얘기에 무겁운 머리가 더 신경 쓰였다. 하지만 애써 동우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화제를 딴데로 돌려야지. "이제 손 안 아퍼?"

"움직이려고 하면 쪼끔 아프고 간지럽고 그래. 근데 많이 안 아퍼. 엄마가 며칠 있으면 다 낫는대."

"그것 참 다행이다."

"근데 오늘은 고양이들 안 왔어. 꼭 만나서 사과해야 되는데."

가슴이 놀라서 움찔했다. 오늘 새벽에 있었던 일들이 머리 속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쇠파이프, 새끼의 박살난 머리, 어미의 눈빛. 원한을 품은 눈빛.

꼭 갚아주겠어!

동우랑 고양이 얘기하기 싫었다. 아니 어느 누구와도 다시는 고양이 얘기하기 싫었다. "아빠는 이제 글쓰러..."

동우가 성한 왼쪽 손으로 내 손목을 잡았다. 자기 말을 아빠가 꼭 들어줘야 한다는 듯이. 비겁하게 피하면 안된다는 듯이.

"어저께 엄마가 호떡 먹으라고 후라이팬에 구워 줘서 마당에서 먹었어. 엄마가 2개 줬는데 하나 먼저 먹고 남은 것도 또 먹을려고 그러는데 고양이가 왔었거든. 엄마 고양이랑 새끼 고양이랑. 자기들도 호떡 달라고 막 내 바지 잡고 그래서 나도 화가 나고 그러니까 고양이들 골탕 먹으라고 장난쳤어." 동우는 입 안이 마른 듯 침을 꿀꺽 삼켰다. "음, 그래서 '이거 먹어'하면서 호떡을 고양이들한테 주는 척하다가 고양이들이 잡을라고 그러면 '뻥이야'하고 약올리면서 호떡을 고양이들이 못잡을만치 높게 들었어.

그래도 고양이들이 자꾸 달라고 그래서 내가 계속 그렇게 장난쳤어. 한 열번정도. 그랬드니 화났나봐. 엄마 고양이가 이렇게..." 동우가 붕대를 칭칭 동여맨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어저께는 막 아프고 그래서 고양이가 막 밉고 그랬는데, 오늘 생각해 보니까 내가 잘못했어. 아빠, 그치? 내가 잘못했지?"

"글쎄. 고양이들이 먼저 우리 동우한테 귀찮게 매달리고 그랬으니..." 동우가 내가 새벽에 한 짓을 알면 뭐라고 할까? 나보고 고양이를 찾아가 사과하라고 그럴까?

"엄마한테도 말해봤는데, 내가 잘못했대. 그래서 아까부터 마당에 나와서 고양이들 기다렸어. 근데 아직도 안 와."

고양이들은 오지 않을 꺼야. 아빠한테 험한 꼴을 당했거든.

"동우한테 아프게 해서 고양이들도 미안하니까 안 오는 건지도 몰라. 조금만 더 기다려 보다가 안 오면 방에 들어가서 놀아. 아빠는 글쓰러 들어갈께."

내 손목을 잡고 있는 동우의 손을 부드럽게 떼어내고 집필실로 도망쳤다.

정말이지 고양이 얘기는 이제 입에 담고 싶지 않았다.

[3]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