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의 한 [2] by 조재형

읽을꺼리 2007.05.08 23:45 posted by 조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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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고양이는 아내와 동우에게 뗄래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나만 봤다하면 아내와 동우는 고양이 자랑하느라 바빴다. 나는 마치 고양이 서커스단의 단장이 된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매일매일 조련사들-아내와 동우-이 단장인 나에게 찾아와 시시콜콜한 훈련성과를 보고하는 듯한 기분. 단장님 오늘은 고양이들이 훌라후프를 30분이나 돌렸습니다 단장님 오늘은 고양이들이 거리로 나가 시민들한테 서커스표를 팔았습니다 단장님 오늘은 고양이들이 쓰레기 분리수거를 했습니다. 물론 아내와 동우가 내게 해 준 얘기들은 좀 더 그럴 듯한 현실적인 얘기들이었다. 이를테면 이런 것.

동우: "아빠! 나 고양이 만졌어. 고양이들이 이젠 내 옆에도 막 오고 내가 등을 쓰다듬어도 가만있어!"

아내: "자기야! 이젠 고양이들이 여기가 자기 집처럼 편안한가봐. 장독대로 쓰는 저기 작은 창고 있지? 가끔씩 그 속에서 고양이들이 자고 가나봐. 낮에 창고에서 나오는 걸 여러번 봤어."

식구들의 말에 나는 나름대로 대꾸를 해주지만, 식구들은 별로 개의치 않았다.

동우에게: "그러지마, 동우야. 함부로 만지다 고양이가 우왕! 하고 문다, 물어. 그럼 얼마나 아픈데. 잘못하면 아주아주 나픈 병에 걸릴 수도 있어. 개한테 물리면 광견병, 고양이한테 물리면 광...고양이병."

아내에게: "뭐야? 그럼 혹시 우리 이사오기 전부터 원래 이 집 창고에서 숨어 살던 고양이들인가? 우리가 새로 이사와서 경계를 하다가 이제는 안심이 돼서 창고에서 다시 살겠다 이건가? 쫓아내는 게 좋겠어. 창고 속에다가 고양이들이 똥싸고 오줌싸고 냄새가 이만저만이 아닐 꺼야. 병균이 우글거릴 거야."

그러나 식구들은 내 의견과는 반대로 고양이들과 너무도 친하게 지냈다. 고양이들도 우리 식구들의 우호적인 태도를 눈치챘는지, 이제는 마루에까지 올라와서 낮잠을 잘 정도로 경계심이 누그러졌다.

그 속에서도 나에 대한 경계심은 남아 있었다. 내가 나타난다고 무조건 도망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2m 정도의 거리를 두고서 내가 그 안으로 접근하기만 하면 슬그머니 달아나 버렸다. 나는 그저 다른 식구들과는 달리 내가 먹을 것을 아무 것도 던져주지 않으니까 고양이들이 싫어하는가보다 라고 생각했다. 뭐 그리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내가 이 시골 구석까지 내려온 것은 고양이 사육하려고 그런 건 아니니까. 내가 진짜 정성으로 돌보아야 할 것은 집필 중인 소설이니까.

그러던 어느 날 오후. 나는 집필실에서 한창 작업 중이었고, 아내는 낮잠을 자고 있었다. 동우 혼자 마당에 나가 있었는데, 갑자기 울부짖는 고양이 소리가 들리더니 동우가 비명을 지르며 울음을 터뜨렸다. 노트북 화면 속의 소설에 푹 빠져 있던 나는 화들짝 놀라 마당으로 뛰쳐 나갔다. 처음에는 부들부들 떨면서 마당에 서있는 동우의 뒷모습만 보였다. 그러다가 동우 발 밑에서 무언가를 허겁지겁 먹고 있는 어미 고양이와 새끼를 발견했다. 그 순간 교양이들의 눈이 내 시선과 마주쳤다. 고양이들은 땅에 떨어져 있던 빵같은 것을 덥석 물고는 장독대 위로 뛰어올라 담장 쪽으로 사라졌다. 동우의 발밑으로 빨간 액체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동우에게 다가갔다. 동우는 맨처음의 커다랗던 비명소리와는 달리 이제는 숨죽여 흐느끼고 있었다. 뭔가 엄청난 고통을 속으로 꾸역꾸역 참고 있는 사람처럼. 잘못 건드리면 참고 참았던 고통이 터져버려 온동네가 떠나가 버릴듯한 울부짖음이 튀어 나올 것만 같았다. 덜컥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조심스레 동우 앞으로 걸어갔다.

오 맙소사. 동우는 오른손을 허공에 쳐든 채 말없이 떨고 있었다. 오른손이 손목에서부터 손등까지 여러 갈래로 길게 찢겨져 있었다. 고양이 발톱이 할퀴고 지나간 흔적이었다. 손등이 길다랗게 찢어진 상처 아래쪽은 아예 피부가 왕창 벗겨져서 흔들거리고 있었다. 조금만 잘못하면 손등의 피부는 완전히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나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을 느꼈다. 동우의 피부가 벗겨진 자리에 손 근육과 뼈가 훤히 들여다 보였다. 피아노 건반처럼 손등 속의 새하얀 뼈들이 쉴새없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동우만큼이나 손뼈들도 놀라서 발작하는 중이었다. 동우의 손등을 따라 쉴새없이 흐르는 피는 손가락을 따라서 방울방울 떨어지고 있었다. 내 귀에는 그 핏방울들이 마당에 떨어지며 내는 뚝!뚝!뚝!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동우는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흐느끼고 있었다. 온통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이었다. 가늘게 닫혀진 동우의 눈이 나를 발견했다. "어떡해... 나 어떡해? 고양이가..." 침을 흘리며 떨리는 아이의 입술이 나에게 물었다.

나는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조금 전까지 집중해서 쓰던 소설 속의 현실과 지금 마당에서 겪고 있는 진짜 현실이 뒤섞여서 정신이 혼란스러웠다. 아이에게 뭐라고 말해주어야 할까?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때 뒤늦게 잠에서 깨어난 아내가 안방 문을 열고 나왔다. 아내는 순식간에 아이의 발 밑에 흐르는 빨간 액체의 의미를 알아 차렸다. 소리를 지르며 동우 앞으로 뛰어나왔다. 손등의 상처를 보고는 완전히 흥분해서 아이의 어깨를 붙들고 거칠게 흔들어댔다. "왜 그래? 이거 어떻게 된 거야?"

나는 아내가 아이를 자꾸 흔들면 손등 피부가 완전히 떨어져 버릴 거라는 생각을 했다. 아내의 손목을 붙잡아 동우의 어깨에서 떼어냈다. 아내의 손이 처음엔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내가 아내의 손목에 힘을 주자 순순히 아이의 어깨에서 풀어졌다. 내가 너무 지나치게 힘을 주었던 탓인지, 아내가 아픈 소리를 냈다. 아내가 나를 무서운 눈으로 째려보았다.

"진정해. 당신까지 흥분하면 동우는 어떡하라구. 방에 가서 소독약하고 깨끗한 천 여러장 가져와. 손등을 감싸게 깨끗한 천으로 말야." 나는 침착하게 보이려 애썼다. 그래도 목소리는 좀 떨리고 있었다. 아내는 군말없이 안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무릎을 꿇고서 동우의 눈에 시선을 맞췄다. "동우 손에 뚜껑 열렸네. 손에 바람 들어가서 춥겠다. 하지만 걱정마. 아빠가 병원 데리고 가서 고쳐줄께. 그러기 전에 우선 손에 열린 뚜껑 닫아야겠다."

나는 활짝 벗겨져 있는 동우의 손등 피부를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살짝 잡았다. 손등 속에서 하얀 손가락 뼈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 흔들거림에 자칫하면 손등 피부는 금방이라도 손등에서 떨어져 나갈 듯이 애처롭게 손등 가장자리에 매달려 있었다. 그런 피부를 조심조심 원래의 손등 자리에 덮어 놓았다. 손가락 뼈들이 난리치는 통에 덮어 놓은 손등 피부가 들썩거렸다.

나는 동우의 상처 난 손등을 양손으로 꼭 감싸 쥐었다. 동우의 손이 내 손 안에서 떨리고 있었다. 동우는 아무말도 못하고 계속 울기만 했다. 난 울지 말라고, 이젠 괜찮다고 말해 주었다. 차츰 동우의 손이 안정을 되찾는 듯 했다. 아이 손의 흔들거림이 점점 잦아들더니 평온을 되찾았다.

아내가 내가 말한 물건들을 들고 나왔다.

나는 아내에게서 건네 받은 소독약 연고를 동우의 상처난 손등에 발라 주었다. 우선은 벗겨졌던 피부의 경계선에, 그 다음은 손목에서부터 내려온 길다란 세로줄들에. 손등 피부를 들추어내서 그 안에다가도 소독약을 발라주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괜히 세균에 감염될 것 같아서 그만 두었다. 상처에 연고를 바르고 나니 확실히 피는 별로 흐르지 않았다. 마당에 흥건히 흘러내린 핏물을 봐서는 이미 나올만한 피는 다 나와버린건지 모르겠지만. 연고 다음에는 아내가 갖고 나온 흰 수건을 동우의 손에 칭칭 감았다. 이것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응급처치는 끝이었다. 잘 한건지는 모르겠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종합병원 응급실 레지던트 솜씨 같았다.

나는 동우를 등에 업고 마을 이장 집으로 찾아갔다. 평소에 별로 왕래도 없었지만, 지금 그런 걸 따질 처지가 아니었다. 읍내 병원으로 가기 위해 마을 앞으로 하루에 5번만 찾아오는 시골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릴 수는 없었다. 이장 승용차를 얻어타고 우리 부부는 동우와 읍내 병원에 가서 정식으로 치료를 했다. 의사는 우려할 만한 정도의 상처는 아니라며 안심시켜 주었다. 병원에 올때까지 내내 안절부절 못하던 아내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안심을 했다.

치료받고 손에 붕대를 감은 동우를 데리고 우리 부부는 또다시 이장의 승용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차에서부터 잠이 든 동우를 안방에 눕혔다. 아내와 나는 말없이 아이를 바라 보았다.

한동안 눈물만 흘리던 아내가 갑자기 나를 향해 소리쳤다.

"그러게 왜 이런 촌구석에 살자고 그랬어? 꼭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살아야 소설 쓰는거야? 봐! 이렇게 동우가 다치고 그러잖아! 우리 아들 좀 봐!"

"지선아, 진정해. 애 다친 거 갖고 왜 여기 이사온 거까지 들먹거리구 그래? 고양이 위험하다고 내가 그렇게 얘기했는데도, 먹을 거 줘가면서 집안으로 끌어들인 건 너잖아." 평소같았으면 난 아내와 대판 싸웠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지금의 나는 평소의 상태가 아니었다. 내 머리 속은 심각한 두려움에 떨리고 있었다. "진정해. 손등에 상처난 것 뿐이야. 그딴 걸로 생명에 지장생기는 거 아니잖아."

"아무리 그래도 넌 아들이 다쳤는데 아무렇지도 않니? 아까부터 계속 왜 그렇게 무덤덤하니? 나 혼자 호들갑 떠는 거야? 그리고 그렇게 무섭게 쳐다보지 좀 마. 기분 나뻐."

"내 눈? 내가?"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더 이상 아내와 말장난하고 싶지 않았다.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디가?"

"이젠 너도 고양이들이 싫어졌지? 난 훨씬 옛날부터 맘에 안들었어. 그 새끼들 다 죽여버릴꺼야."

마당으로 나왔다. 동우가 흘린 핏자국이 검게 변색된 채 말라있었다. 그걸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천장을 장독대로 사용하고 있는 작은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창고는 문도 없이 출입구가 뻥 뚫려 있는 구조였다.

창고 속에서 퀴퀴한 냄새가 눈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창고 특유의 냄새인지, 고양이들이 남기고 간 냄새인지 구분이 안갔다. 이사오던 날 호기심에 한번 들어와 보고난 뒤로는 처음으로 들어와 보는 창고였다.

대낮인데도 어두컴컴한 창고 안에는 전에 살던 집주인이 들여놓은 온갖 잡동사니들이 멋대로 쌓여 있었다. 녹 슨 농기구들, 기계부품들, 썩은 목재들, 플라스틱 물통들... 쓰레기라고 불러도 손색없는 물건들이 잔뜩 있었다.

아내는 창고 안에서 고양이들이 잠을 자는 것 같다고 말했었다. 그 말을 떠올리며 창고 속을 둘러 보았다. 썩은 목재들이 세워져 있는 사이로 종이박스가 하나 있었다. 위가 트인 종이박스 속에는 낡은 옷들이 깔려 있었다. 고양이들이 종이박스 속에서 옷가지들을 이불 삼아 잠자는 것 같았다. 어쨌든 지금은 고양이들이 없었다. 있었더라면 당장 내 손에 맞아 죽었을 것이다.

그냥 나오려다 창고 입구에 세워져 있는 쇠파이프들을 발견했다. 그 중 골라 손에 들었다. 어른 팔뚝만해서 묵직한 게 손에 잡고 휘두르기에는 딱 안성맞춤이었다. 휘둘러서 뭔가를 두들겨 패기에는 더욱 안성맞춤이었다. 파이프 몸체에는 여기저기 하얗고 노란 이끼같은 것들이 들러 붙어 있었지만, 상관하지 않고 덥석 잡고서 마당으로 나왔다.

그 다음에는 부엌으로 들어갔다. 냉장고 속을 뒤져 고등어 두 마리를 찾아냈다. 그 와중에 하얀 냉장고 여기저기에 쇠파이프를 잡았던 손에서 옮겨온 얼룩이 묻었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고등어 두 마리를 부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마당 한쪽 구석에 놓아두었다. 그러고 돌아서려니 좀 찝찝했다. 마당에 고등어 두 마리만 덜렁 놓여져 있으면 고양이들이 의심할지도 몰랐다. 다시 부엌에 들어가 쓰레기 봉투를 들고 나왔다. 쇠파이프로 고등어를 두드려 팼다. 고등어가 너무도 간단하게 박살났다. 대가리고 몸통이고 할 것 없이 산산조각났다. 그 부서진 고등어를 쓰레기 봉투 안에 주워 담고, 봉투 끝을 묶어 놓았다. 그리고는 아내가 쓰레기 봉투를 밖에 내다놓기 전에 임시로 놓아두는 부엌 옆의 수돗가에 놔두었다. 미끼가 완성된 것이다.

부엌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문턱이 높았다. 다리를 들어올려 문턱을 지나면 바로 아래에 있는 굵직한 돌계단 2개를 밝고 내려가야 했다. 나는 부엌으로 들어가 신고 있던 구두를 벗어던졌다. 고양이에게 접근할 때 구두소리를 내면 곤란할테니까. 나는 양말만 신은 채로 문턱 밑의 돌계단에 완전히 엎드렸다. 높은 문턱을 방패 삼아 내 모습이 은폐될 것이다. 고개를 살짝 들어 밖을 내다보았다. 여기서는 고양이들이 우리집으로 들어오는 장독대도, 고등어 미끼가 있는 수돗가도 다 잘 보였다. 녹 슨 쇠파이프를 힘껏 쥐어 보았다.

고양이 새끼들, 나타나기만 하면 다 죽여버릴테다.

그 후 몇시간을 계단에 엎드린 채 하염없이 고양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아내가 부엌에 들어와서 저녁상을 차렸다. 아내가 여기서 뭐하는 있는 거고, 냉장고 안에 둔 고등어는 어디 갔으며, 시커멓게 묻은 얼룩은 뭐냐고 물었다.

"고양이들한테 우리 가족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 주겠어. 물론 그 놈들이 후회할 때는 이미 저 세상에 간 뒤겠지만."

아내는 상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면서 동우랑 같이 저녁 먹자고 말했지만, 나는 아무말도 않고 그저 엎드려 있었다. 일일이 대꾸하기도 귀찮았다.

잠시 후 저녁을 다 먹은 아내는 상을 부엌에 갖다 놓고 나가면서, 밤새 이러고 있을 거냐고 물었다. 내가 아무런 대꾸를 안 하자 그냥 방에 들어갔다. 그리고 밤 10시가 되었을 때, 아내가 다시 나와서 잠 안 잘 거냐고 물었지만 이번에도 역시 아무 대답이 없자 그냥 방으로 들어갔다.

오랜 시간을 부엌 계단 위에서 망을 보면서 나는 오늘 낮에 고양이한테 상처입은 동우를 보았을 때부터 느꼈던 기분의 정체를 음미해 볼 수 있었다.

소설가가 느끼는 무거운 기분의 정체.

그건 바로 슬럼프가 찾아왔다는 신호였다.

나는 여기 시골로 이사오기 전까지 오랜 기간동안 슬럼프에 시달려 왔었기 때문에 슬럼프가 찾아오는 기분을 잘 알고 있다. 슬럼프가 '나 왔수다'하고 말하고 찾아오는 것은 아니지만, 정상적인 컨대션인 때와 슬럼프 때와는 확실히 머리에서 느끼는 기분상태가 틀리다.

지금 내 머리 속은 오늘 아침에 막 일어났을 때 느끼던 상쾌한 기분이 아니었다. 무거운 돌덩이 하나가 꽉 들어 찬 느낌, 머리 속이 빈틈없이 콘크리트로 채워진 느낌이다. 아무리 글을 쓰려고 해도 벽이 가로막는 듯한 막막한 두려움에 시달리게 하는 느낌.

슬럼프가 확실했다. 나는 이제 글을 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원인은 고양이였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처음부터 고양이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어미 고양이가 화근이었다. 이사오던 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자기 거시기를 애무하고, 내가 아내 가슴 주물럭거리는 것을 장독대 위에서 지켜보고, 동우의 손을 긁어놓고, 덕분에 이제까지 한번도 거른적이 없던 오후 집필시간을 오늘 공치게 만들었다. 처음부터 우리 집에 얼씬도 못하게 했어야 했는데.

고양이는 요물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매우 미묘한 감정상태를 연속적으로 이어나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이 어떤 계기로 인해 도중에 끊어지게 되면 슬럼프가 되는 것이고, 그걸 원래대로 복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누구도 장담할 수가 없다. 때로는 몇 십초만에 정상을 되찾기도 하지만, 때로는 평생을 슬럼프에 시달리다 작가를 포기하게 되는 수도 있다. 언제쯤 다시 글을 쓸 수 있을지는 고대로부터 작가들의 창작활동을 괴롭히는 것을 삶의 낙으로 삼아온 슬럼프의 신만이 알고 있으리라.

소설가로서의 마지막 돌파구로 여기 시골까지 이사왔는데, 또다시 슬럼프에 빠지면 이번엔 또 어떻게 헤어나올 수 있을까? 불안했다. 이렇게 작가생활이 쓸쓸히 끝날 수도 있었다. 글쓰는 일을 포기하고 나면 무얼하면서 먹고 살 수 있지? 난 별로 할 줄 아는 게 없는데. 어떡하든 이제 막 찾아온 슬럼프를 벗어나야만 했다. 어제까지도 순조롭게 집필하던 소설이 아까워서라도 무슨 방법이든 짜내야 했다. 글쓰기 공포증에 시달리기 시작한 내 머리 속을 확 뚫어줄 수 있는 방법을.

그렇다. 고양이다.

고양이로 생긴 문제는 고양이로 풀어야 했다. 단순히 혼내주는 것만으로는 불안하다. 동물들이란 아이큐가 심각하게 낮은 존재라서 혼쭐이 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다 잊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꼬리를 흔들며 다시 나타나게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성가신 고양이로 인해 나의 미묘한 감정상태는 다시 흔들려 버리고 슬럼프는 계속 나와 함께 붙어다닐 것이다.

확실하게 죽여 버려야지. 가능하다면...

고대인들이 풍년을 기원하며 신에게 사람을 제물로 바쳤듯이, 나도 순조로운 창작활동을 기원하며 고양이를 슬럼프의 신에게 제물로 바칠 것이다. 예전의 슬럼프를 가족들의 행복한 서울생활을 제물로 바쳐 벗어났듯이, 이번 슬럼프의 제물은 고양이였다.

물론 동우를 해꼬지한 복수도 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일석이조의 효과였다.

고양이들이 쉽게 내 손에 걸려들까? 그 재빠른 놈들이.

마음 속에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머리 속의 슬럼프 장벽이 더욱더 두꺼워지고 무거워졌다. 어쨌든 시도는 해야만 한다. 죽이지는 못하더라도 한번 혼쭐이 나면 다시는 우리집에 안 찾아 올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나니 시간은 새벽 2시를 넘고 있었다. 달도 없는 캄캄한 밤에다 아내와 동우가 잠든 방에는 불이 꺼져 있었지만, 마루에 환하게 불을 켜놓고 있었고 집 앞에 세워진 가로등 불빛도 함께 어우러져 마당 전체는 물론 장독대까지도 훤히 볼 수 있었다.

초저녁부터 쭉 엎드린 자세로 있었지만, 난 전혀 피곤하지도 졸리지도 않았다. 슬럼프에 대한 두려움이 나의 모든 신경을 흥분상태로 만들었다. 오직 고양이들을 기다리는 일에 모든 신경이 집중되어 있었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고양이 두 마리가 장독대 위에 모습을 나타냈다. 나쁜 새끼들, 역시 모습을 나타냈군. 먹이를 주면서 잘 대해주던 아이를 상처 입히고는 뻔뻔스럽게 또 나타났군. 그러니 아이큐 낮은 짐승이지.

나는 혹시나 고양이들 눈에 띌까봐 문턱 밑으로 더욱 몸을 수그렸다.

고양이들이 창고 옆에 난 계단을 통해 장독대에서 마당으로 느릿느릿 내려왔다. 놈들은 잠시 불꺼진 방을 기웃거리더니 수돗가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정확히 나의 미끼에 걸려들었다. 쓰레기 비닐을 발톱으로 뜯고서 속 안의 내용물을 다 끄집어 내고 있었다. 물론 그 속에는 내가 정성껏 먹기 좋게 다듬어 놓은 고등어 두 마리가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쇠파이프를 손에 들고 부엌에서 살금살금 걸어 나왔다. 구두를 벗어 던진 양말차림이어서 걷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서두르지 말자고 다짐하며 아주 조금씩 수돗가의 고양이들에게 다가섰다.

내게서 등을 돌리고 있는 고양이들은 고등어를 먹느라 정신없었다. 놈들이 쩝쩝거리며 입을 놀리는 소리가 들렸다. 오냐, 이놈들아, 마지막 만찬이니 맛있게 먹어라.

나와 고양이와의 거리가 많이 좁혀졌다. 하지만 아직 쇠파이프의 사정권은 아니었다. 난 딱 두 발자국만 더 걸어가서 액션을 취해야겠다고 결정했다. 어미 고양이의 대가리를 쇠파이프로 후려칠 것이다.

그 때 느닷없이 새끼 고양이가 고등어를 먹다 말고 뒤를 돌아봤다. 녀석의 시선이 나의 시선과 정통으로 부딪혔다. 새끼 고양이가 나를 보더니 무표정하게 짧은 울음소리를 냈다. 냐아아아옹∼.

예정에 없던 돌발상황에 난 당황했다. 바보같이 서투르게 어색한 동작으로 어미의 머리를 향해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쇠파이프는 벌써 몸을 피해 달아나는 어미 고양이의 머리를 빗나가서 땅에서 길게 솟아오른 수도 파이프를 때렸다. 깡! 하는 타격소리가 고요한 새벽에 울려 퍼졌다.

나는 휘청거리며 몇번 더 쇠파이프를 휘둘렀지만 붕붕 허공 가르는 소리만 났을 뿐, 도망치는 고양이들에게 닿지도 않았다.

고양이들이 쏜살같이 마당을 가로질러 창고 옆 계단을 향해 도망치고 있었다. 집 대문이 닫혀 있고 담장도 높아서 고양이들이 밖으로 나가는 유일한 길은 장독대로 올라가는 방법 뿐이었다.

고양이들이 계단을 향해 훌쩍 뛰어 올랐다.

나는 급한 마음에 수돗가 물받이 통에 있는 플라스틱 바가지를 고양이들한테 집어 던지며 쫓아갔다. 한심하게도 바가지는 고양이들 위에 있는 계단을 맞고 튕겨 나가고 말았다.

어미 고양이는 가뿐하게 계단을 달려 장독대로 올라갔다. 나의 사정권에서 완전히 벗어나 버린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행운이 찾아왔다.

바로 윗계단을 때리고 떨어지는 바가지에 놀랐는지, 새끼 고양이가 계단에서 발을 헛딛어 마당으로 떨어진 것이다. 그렇더라도 떨어진 즉시 다시 계단으로 뛰어올랐다면 동작이 굼뜬 나를 따돌리고 무사히 장독대 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새끼 고양이는 마당에 떨어져서 당황한건지 아니면 나이가 어려서 상황판단이 잘 안되는 건지, 다시 계단으로 갈 생각은 못하고 마당을 미친 듯이 헤매고 다녔다.

장독대 위에서 어미가 새끼를 향해 목이 찢어질 것처럼 거칠게 소리질렀다.

나는 우연히 찾아온 행운을 놓치지 않으려 일단 장독대 계단을 막아섰다. 그리고 새끼가 생각할 틈을 주지 않으려고 그 즉시 마당 한쪽 구석으로 몰았다. 몸을 지그재그로 이리저리 흔들며 구석으로 유인했다. 허둥대며 날뛰던 새끼는 내 몸을 피한답시고 뛰어다녔지만 내 의도대로 나와의 거리는 점점 좁혀지는 가운데 마당 한구석에 몰리고 말았다.

한 발자국 정도의 거리까지 좁혀졌다. 나는 쇠파이프를 들어 올렸다.

그 순간 새끼는 구석에서 튀어나와 필사적으로 내 오른쪽으로 도망쳤다. 고양이가 지나가면서 구두없이 양말만 신고 있는 내 발을 스쳤다. 그 간지러운 털의 느낌은 기분 나쁘게 소름끼쳤다. 그와 동시에 어떤 확신을 심어주기에 충분한 느낌이기도 했다. 나는 몸을 틀며 정확히 내 발 밑을 내달리는 새끼 고양이에게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퍽. 쇠파이프가 정확하게 고양이 머리에 맞았다. 단 한방에 새끼 머리가 박살났다. 발 밑을 스치는 고양이 털이 전해준 민감한 확신이 인도하는 대로 휘두른 단 한방에.

조그만 고양이 머리는 산산이 부서져서 목에서 떨어져 나갔다. 머리는 이제 큼직한 몇가지 파편들로 쪼개져 있었다. 머리가 없어졌는데도, 몸통이 꿈틀거리며 요동쳤다. 목에서는 핏줄기가 죽죽 뿜어져 나왔다. 잠시 후 머리 없는 몸통은 움직임을 멈췄고, 목에서 나오던 피의 양도 점점 줄어 들었다.

등 뒤로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뒤돌아 보았다.

장독대로 도망갔던 어미 고양이가 어느새 마당에 내려와 있었다. 어미가 나를 노려봤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대신 어미의 무표정한 얼굴이 나에게 묻고 있었다.

이게 뭐야? 내가 이 정도 대접을 받을 정도로 니네 가족한테 죽을 죄를 진 거니? 넌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한 거야?

난 정말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했지? 내가 정말 바라던 게 이런 거였을까?

머리 속이 혼란스러웠다. 조금 전까지 글쓰기 인생에 슬럼프가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이 놈의 시골생활에서도, 아니 내가 죽는 날까지 아무런 소설도 나오지 못할 거라고 두려워했다. 실제로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쓰려고 시도해 보지도 않고서 성급하게 고양이와 슬럼프를 연관시켰다. 슬럼프에 관해서는 내가 전문가라는 생각에 빠져서.

어쩌면 시골에서 글을 쓰는 동안 알게 모르게 소설이 성공해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쌓였는지도 몰랐다. 그 스트레스를 동우가 다치는 사고를 빌미삼아 고양이들한테 풀려고 했던 건지도 몰랐다. 확실치는 않다. 그랬던 건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조금 전까지는 확실히 고양이들을 죽이고 싶었다. 그렇게 되면 확실히 슬럼프 걱정없이 완벽하게 멋진 소설을 일사천리로 완성시킬 수 있다는 환상에 젖었었다. 슬럼프의 신이 고양이의 목숨을 먹고 내 창작능력을 도로 토해낼 것이라는 환상.

환상은 사라지고 죽은 고양이만이 남았다. 슬럼프의 신이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

힘이 풀린 난 쇠파이프를 마당에 떨어뜨렸다.

어미 고양이가 새끼에게 다가갔다. 어미는 이제 나같은 건 신경쓰지도 않았다. 내 옆을 무심히 지나서 이제는 아무 움직임도 없는 새끼의 몸통으로 다가갔다. 흩어진 새끼 머리 파편들을 묵묵히 훑어보고 나서, 어미는 새끼 몸통을 덥석 물었다. 몸통을 입에 물고는 그대로 마당을 지나 창고 계단을 올라 장독대까지 올라갔다.

어미가 새기를 입에 문 채 아주 잠깐동안 나를 바라봤다. 세로로 찢어진 검은 눈동자가 나에게 원한의 메시지를 남겼다.

꼭 갚아주겠어.

어미는 장독대 담장을 타고 넘어 우리집 밖으로 사라졌다.

나는 고양이가 사라진 뒤에도 우두커니 장독대를 바라보며 서있었다. 이제까지 내가 벌인 일들이 꿈만 같아서 쉽사리 헤어날 수 없었다.

조금 전에 마당에서 벌어졌던 고양이와의 추격전은 끝나고 다시 조용한 새벽이었다. 아내는 잠이 깊이 들었는지 나와 보지도 않았다. 우두커니 나혼자 마당에 서서 대책없이 멍하니 있기만 했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 바닥을 내려다봤다. 어미가 새끼를 물고 가면서 새끼의 목에서 새나온 핏자국이 마당에서 장독대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쇠파이프로 새끼 머리를 부숴 버렸던 자리에는 큼직하게 시뻘건 피터지는 자국이 남았다. 내 발 밑 여기저기에 새끼 머리 파편들이 어질러져 있었다.

나는 그 파편들을 빠짐없이 주웠다. 머리통, 뇌수, 눈알, 아래턱 등이 조각조각 모아졌다. 모두다 피에 흠뻑 젖어 있었다. 나는 파편들 전부를 힘껏 담장 밖으로 던져 버렸다. 밖은 산이니까 들짐승이나 새들, 아니면 땅 속의 미생물같은 것들이 알아서 처리해 줄 것이다. 쇠파이프도 가만 놔두고 싶지 않았다. 역시 담장 밖으로 던져 버렸다. 마당에는 고양이들이 쓰레기 봉투에서 파헤친 고등어를 비롯한 음식쓰레기들이 널려 있었다. 일일이 손으로 집어서 봉투에 담고 묶었다.

이제는 내 자신을 돌아볼 차례였다.

입고 있는 셔츠며, 바지며, 양말까지도 말이 아니었다. 녹슬고 이끼낀 쇠파이프에서 묻은 이상한 얼룩에, 고등어 비린내를 비롯한 음식 썩는 냄새에, 고양이한테서 묻은 시뻘겋다 못해 까맣게 보이는 피에 젖어 있었다. 전부다 벗어버리고 벌거숭이가 되었다. 부엌에 들어가 커다란 쓰레기 봉투를 가져와 옷가지들을 전부다 담았다. 그리고는 방금 전에 수습한 음식쓰레기 봉투와 함께 대문 밖에 있는 쓰레기통에 갖다 버렸다. 며칠 후면 쓰레기차가 와서 처리해 줄 것이다.

그 다음엔 뒤집힌 채 마당에서 뒹굴고 있는 -고양이들한테 집어던지는 용도로 사용했던- 바가지를 집어서 수돗가로 왔다. 바가지 한가득 물을 담아 몸에 끼얹으며 목욕을 했다. 몸은 시원했지만, 머리를 짖누르는 무거운 기분 -슬럼프!- 은 사라지지 않았다.

목욕을 끝내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은 후 방에 들어갔다. 평소 때는 동우는 자기 방에서 잤지만, 오늘만큼은 엄마랑 안방에서 같이 자고 있었다. 나는 옷장에서 속옷과 츄리닝을 꺼내 입었다.

그리고 이불 위에 누웠다. 곧바로 잠이 들었다.

4.

다음날 오후 늦게 서야 일어났다. 머리 속이 숨막히게 답답했다.

슬럼프!

어제 저녁을 굶어서인지 뱃속이 밥 달라고 난리였다. 나는 세수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서둘러 아내가 차려준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밥상머리에 앉은 아내는 별로 말이 없었다. 마당의 고양이 핏자국이랑 대문 밖의 쓰레기 봉투들을 보았다면 뭔가 이상한 낌새를 챘을 텐데. 알고도 모른 척 하는 건지도 몰랐다. 어제 새벽에도 안방 문을 가만히 열고서 내가 하는 모든 행동들을 속속들이 다 지켜보고 있었는 지도 모른다. 상관 않기로 했다. 아내가 먼저 말을 꺼내지 않은 한 구태여 밝히고 싶지 않았다.

꾸역꾸역 밥을 다 먹고 나서, 마당으로 나갔다.

동우녀석이 장난감 자동차를 굴리며 놀고 있었다.

마당에는 핏자국이 많이 희미해져 있었다. 동우가 흘렸던 것도, 새끼 고양이가 흘렸던 것도 전부 다 말이다. 아내가 물청소라도 한 것 같았다.

나는 동우에게 갔다. 오른손은 붕대를 하고 있어서 왼손으로 장난감 자동차를 굴리며 놀고 있었다. 놀고 있는 폼이 이제는 별로 아프지 않은 것 같았다. 다행이었다.

나를 보자 동우가 웃었다. "아빠, 잠꾸러기. 지금 일어나면 어떡해. 소설 언제 써?"

소설얘기에 무겁운 머리가 더 신경 쓰였다. 하지만 애써 동우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화제를 딴데로 돌려야지. "이제 손 안 아퍼?"

"움직이려고 하면 쪼끔 아프고 간지럽고 그래. 근데 많이 안 아퍼. 엄마가 며칠 있으면 다 낫는대."

"그것 참 다행이다."

"근데 오늘은 고양이들 안 왔어. 꼭 만나서 사과해야 되는데."

가슴이 놀라서 움찔했다. 오늘 새벽에 있었던 일들이 머리 속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쇠파이프, 새끼의 박살난 머리, 어미의 눈빛. 원한을 품은 눈빛.

꼭 갚아주겠어!

동우랑 고양이 얘기하기 싫었다. 아니 어느 누구와도 다시는 고양이 얘기하기 싫었다. "아빠는 이제 글쓰러..."

동우가 성한 왼쪽 손으로 내 손목을 잡았다. 자기 말을 아빠가 꼭 들어줘야 한다는 듯이. 비겁하게 피하면 안된다는 듯이.

"어저께 엄마가 호떡 먹으라고 후라이팬에 구워 줘서 마당에서 먹었어. 엄마가 2개 줬는데 하나 먼저 먹고 남은 것도 또 먹을려고 그러는데 고양이가 왔었거든. 엄마 고양이랑 새끼 고양이랑. 자기들도 호떡 달라고 막 내 바지 잡고 그래서 나도 화가 나고 그러니까 고양이들 골탕 먹으라고 장난쳤어." 동우는 입 안이 마른 듯 침을 꿀꺽 삼켰다. "음, 그래서 '이거 먹어'하면서 호떡을 고양이들한테 주는 척하다가 고양이들이 잡을라고 그러면 '뻥이야'하고 약올리면서 호떡을 고양이들이 못잡을만치 높게 들었어.

그래도 고양이들이 자꾸 달라고 그래서 내가 계속 그렇게 장난쳤어. 한 열번정도. 그랬드니 화났나봐. 엄마 고양이가 이렇게..." 동우가 붕대를 칭칭 동여맨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어저께는 막 아프고 그래서 고양이가 막 밉고 그랬는데, 오늘 생각해 보니까 내가 잘못했어. 아빠, 그치? 내가 잘못했지?"

"글쎄. 고양이들이 먼저 우리 동우한테 귀찮게 매달리고 그랬으니..." 동우가 내가 새벽에 한 짓을 알면 뭐라고 할까? 나보고 고양이를 찾아가 사과하라고 그럴까?

"엄마한테도 말해봤는데, 내가 잘못했대. 그래서 아까부터 마당에 나와서 고양이들 기다렸어. 근데 아직도 안 와."

고양이들은 오지 않을 꺼야. 아빠한테 험한 꼴을 당했거든.

"동우한테 아프게 해서 고양이들도 미안하니까 안 오는 건지도 몰라. 조금만 더 기다려 보다가 안 오면 방에 들어가서 놀아. 아빠는 글쓰러 들어갈께."

내 손목을 잡고 있는 동우의 손을 부드럽게 떼어내고 집필실로 도망쳤다.

정말이지 고양이 얘기는 이제 입에 담고 싶지 않았다.

[3]편으로 이어집니다.

고양이의 한 [1] by 조재형

읽을꺼리 2007.05.08 23:42 posted by 조재형
한국 공포장르의 고전 "전설따라 삼천리"와 "전설의 고향"의 전통을 오늘날에 되살려, 고양이를 소재로 공포소설을 써 보았습니다. 많이 미흡한 작품이지만, 그러려니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 보세요.

경고: 소설 내용 중에는 자극적인 성묘사와 잔인한 살인장면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읽는 사람에 따라서는 정신적인 후유증이 생길 수도 있으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고양이의 한(恨)

사용자 삽입 이미지
1.

'새 소설은 언제 나오나요?'

그 당시 만나는 문화계 인사들은 항상 이렇게 물었다.

그럼 나는 항상 거의 똑같은 대답을 해주었다. 한창 집필 중이죠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출판사에 원고를 넘길 날이 얼마 안 남았어요. 이번엔 정말입니다. 아, 정말이라니까요.

나는 소설가다. 3년동안 아무런 글도 못 쓰고 있는 한심한 소설가. 언제나 사람들 앞에서는 글을 쓰느라 바쁜 척 온갖 엄살을 다 떨면서도, 막상 집필할 때 쓰는 노트북 컴퓨터를 앞에 두고는 멍하니 게임이나 하고 포르노나 보고 있는. 뭐 간판만 소설가지 백수나 다름없다. 아니 백수인 것이 확실하다.

그래도 처음부터 내 인생이 이렇게 한심했던 것은 아니다. 이래뵈도 꽤 이름있는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나름대로 화려하게 등단했던 몸이다. 팍 까놓고 말해서 그때도 그 문학상을 주관하는 출판사에 아는 형이 있어서 돈을 발라가며 로비를 해서 얻은 상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내 작품이 문학상 수상작으로서의 자질이 어느 정도는 있었으니까 로비도 먹혀 들어간 것이다. 아무나 돈 싸들고 간다고 문학상을 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상을 탄 후 나는 5개월 뒤에 장편소설을 출간했다. 상을 수상했던 덕분인지 출판 불황이다 뭐다했어도 꽤 팔려 나갔다. 어떤 평론가는 나에게 '한국문학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거대한 재목'이라는 극찬까지 해주었다. 물론 내가 사주는 술을 떡이 되도록 처먹고 술김에 한 말이기는 해도. 그 후 1년 뒤 또 한 편의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번엔 반응이 없었다. 출판사도 나도 이만저만 실망한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기분 나쁘게 평론가와 신문기자들이 내 소설을 비난했다. 신인다운 패기 없이 같은 주제를 가지고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다고. 잔뜩 화가 난 나는 서둘러 5개월 뒤 단편소설집을 펴냈다. 이번엔 정말 300권도 팔리지 않았다. 출판사 사장마저 나를 외면하고 있었다.

나는 점점 더 초조해지고 있었다. 처음의 반짝 성공 후 실패를 거듭한 전업소설가로서 예전 작품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한 걸작을 내놔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들어 온종일 괴로워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게다가 그 동안 나는 결혼을 해서 아들까지 두고 있는 몸이었기에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 더욱 짓눌리고 있었다. 언제까지나 아내가 온갖 아쉬운 소리를 해대며 친정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을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빨리 뭔가 쓰자. 돈이 될만한 걸작을.

어떻게 쓰면 그렇게 될까?

내 머리 속은 돌멩이들로 가득 찬 듯이 무거웠다. 그 무거운 머리에서는 아무리 노력을 해봐도 단 한 줄의 글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하릴없이 3년을 놀았다. 웃음을 잃어 가는 아내와 날이 갈수록 성장해서 4살이 된 아들을 멍하니 쳐다보면서.

그러다 문득 환경을 바꿔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답답하고 삭막한 도시에서 벗어나 탁트인 시골에서 살면 도시생활로 무거워진 머리가 한결 가벼워지지 않을까? 환경을 바꾸면 생활이 바뀔테고, 그러면 안써지던 글도 잘 써지겠지. 유명한 소설가들도 다들 시골에서 전원생활을 하며 글쓰고 작품을 발표하면서 잘먹고 잘살고 있지 않던가?

그 즉시 시골에서 살만한 집을 알아보았다. 까마득한 산골에 있는 시골집을 소개받았다. 맘에 쏙 들었다. 완전히 도시와 격리되어 모든 것을 잊고 집필에만 열중하기에는 그만이었다. 집주인이 도시로 이사가고 나서 오랫동안 비워놨던 집이라서 임대료도 거저나 다름없었다. 나는 아내에게 그 곳으로 이사가자고 졸라댔다. 딱 일년이야 그 동안 소설을 완성시켜서 그 다음엔 꼭 서울로 올라 올 거야. 도시에서만 자라난 아내는 망설였지만, 이번이 소설 인생에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기회라고 설득하는 내 앞에서 결국 오케이하고 말았다. 그녀도 백수로 망가져가는 내 모습을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간단히 집수리를 해놓고 우리 식구는 시골집으로 이사했다. 이삿집 트럭이 시골마을 입구에 도착했을 때는 마을 사람들이 나와서 환영까지 해주었다. 젊은 사람들은 죄다 떠나버려 노인들만 우글거리는 마을이라 우리 가족이 무척 반가웠을 것이다. 마을 청년회 회장이라는 사람의 나이가 64살이니 나는 이 마을에서 애기나 마찬가지였다. 작년에 칠순잔치를 했었다는 이장님은 젊은 사람들이 마을에 살게 돼서 기쁘다며 오래오래 이 마을에서 잘 살으라고 침을 튀겨가며 말했다. 물론 난 속으로는 '오래오래 여기서 썩으라니 택도 없는 소리 마슈!'라고 생각했지만, 공기좋은 곳에서 살게 되어서 너무 좋다고 괜히 기쁜 척을 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원래 내 계획은 딱 일년만 살다가 이 마을을 뜨려고 했었다. 끝내주는 소설 하나만 완성시키고 나면. 이 마을은 내게 있어 그저 성공을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우리집은 마을 뒷산 언저리에 있었다. 마을에서도 좀 떨어져 있어서 누군가 기를 쓰고 들르지만 않는다면 아주 조용하게 지낼 수 있는 곳이었다. 나무대문을 열고서 들어서니 넓은 마당을 지나서 마루가 보이고 그 양옆으로 방이 있었다. 왼쪽의 넓은 방은 안방이었고, 왼쪽의 작은 방 두개는 각각 내 집필실과 아들 녀석의 방이었다. 아내는 서울에서 전세로 살던 연립주택보다 시원시원하게 넓어서 좋다고 말하며 웃었다. 정말 좋아서 웃은건지 애써 좋은 척 했던 건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우리는 일을 저질렀고, 이제부터는 이 시골 구석에서 생활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동우녀석은 마당을 깡총깡총 뛰어 다녔다. 이사오기 전에는 동네 친구들과 헤어진다고 울고불고 난리였는데, 이제는 좀 괜찮아진 모양이다. 애들은 그게 좋다. 뭐든 안좋은 일들을 금방금방 잊을 수 있으니.

이삿짐 차가 가버리고 나서 아내와 나는 집 앞에 풀어놓은 자잘한 짐들을 부지런히 날랐다. 가구는 전에 살던 집주인이 남겨 놓고 간 것을 그대로 쓰기로 했다. 사치를 부리기엔 우리 가족은 가난했다.

"아빠 저거 봐!" 이불을 옮기려는데 동우가 내 바지를 붙잡고 소리쳤다.

마당 왼쪽에는 작은 창고가 있었고, 창고 옆에 붙은 시멘트계단을 올라가면 창고 지붕이 장독대였다. 집주인이 남겨놓고 간 커다란 항아리들이 조용히 앉아있는 곳이었다. 항아리 위에 고양이 두 마리가 엎드리고 앉아서 나와 동우를 쳐다보고 있었다. 노란 털 사이로 검은 줄이 쳐져 있는 귀여운 고양이들이었다. 하나는 꽤 컸지만, 나머지 하나는 새끼였다.

"엄마고양이랑 새끼고양인가봐." 작은 상자를 옮기던 아내가 나와 동우 옆에 와서 말했다. "너무 귀엽다 그치?"

"응 귀여워. 고양이, 고양이, 고양이다." 동우는 조금전까지 펄쩍 뛰어 다니던 것과는 달리 내 옆에서 얌전히 서 있었다.

고양이들은 움직임이 없었다. 굳은 표정으로 눈도 한번 깜빡거리지 않았다. 그냥 우리 가족을 바라볼 뿐이다.

"엄마고양인지 아빠고양인지 그냥 보고 어떻게 알아?" 언제나 새끼 옆에 붙어 있는 동물을 보면 누구나 암컷일거라고 짐작한다. 수컷은 언제나 새끼를 팽개치고 다니는 책임감 없는 나쁜 놈이라는 법칙이라도 존재하는 것 같다. 남자는 다 그런거라고. 정말 섭섭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알아 거시기 까봤어?' 라고 아내에게 묻고 싶었지만, 아이 교육상 좋지 않을 것 같아서 그만 두었다. "아빠고양이가 엄마고양이가 시장간 동안 새끼고양이를 돌봐주고 있는 지도 모르잖아. 동우야 그치?"

"글쎄, 내 동물적인 직감으로는 엄마고양이가 맞는 것 같애."

동물적인 직감? 요즘 네 살짜리 꼬마들은 어디서 그런 끔찍한 표현을 배우는 걸까? TV에서 그런 것도 가르쳐 주나?

"2 대 1! 우리가 이겼다. 엄마고양이 만세!." 아내가 동우녀석의 손을 흔들며 좋아했다. "아빠가 졌네~."

나는 다수결의 횡포라고 맞서고 싶었지만, 이내 단념했다. 고양이한테 고추가 달렸냐 안 달렸냐하는 사소한 일로 다 큰 남자어른이 -'한국문학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거대한 재목'이라고까지 불렸었던 재능 있는 소설가가- 말다툼을 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난 그렇게 유치한 놈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골똘히 한다는 자체가 나의 유치함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갑자기 나는 머리가 복잡해 졌다. 고양이 한 마리로 나의 정체성이 흔들리다니.

그 때, 어른고양이가 웅크리고 있던 몸을 위로 쭉 폈다. 그러더니 엉덩이를 깔고 항아리 위에 앉아서 뒷다리를 양옆으로 활짝 벌렸다. 하얀 배가 드러난 가운데, 벌어진 다리 가운데에서 짙은 빛깔의 갈라진 속살이 우리 가족을 향해 얼굴을 내밀었다. 고양이는 더 확실하게 보여 주려는 듯, 앞다리로 허벅지 살을 당겼다 놓았다 주물럭거렸다. 허벅지의 움직임에 따라서 고양이의 갈라진 속살은 금붕어의 주둥이처럼 뻐끔뻐끔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했다. 새끼고양이는 자기 엄마가 얼마나 터무니없이 음탕한 짓을 하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무표정하게 엄마의 성기와 놀라고 있는 우리 가족을 번갈아 쳐다봤다.

우리 가족이 자기를 두고 아빠니 엄마니 하는 소리를 알아 들었나? 나는 어미 고양이의 돌발행동에 어쩔 줄 몰라하며 신음소리같은 말 한마디를 내뱉었다. "엄마고양이 맞네."

아내는 멍하니 고양이 거시기를 구경하며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동우도 엄마처럼 넋이 나가있긴 마찬가지였다. 이런 상황을 네 살짜리 사내아이한테 보여 주는 것이 교육적으로 옳은 걸까? 얘는 지금 고양이 거시기를 보고서 어떤 의미를 느낄 수 있는 걸까? 그런 것도 TV에서 가르쳐 주었을까?

"고양아 니들 여기 사니? 만나서 반갑-" 어색한 상황을 무마시키려고 나는 아무말이나 내뱉었다. 장독대 앞으로 몇걸음 나서며 인사를 하려고 손을 들었다.

두 마리의 고양이들은 내가 앞으로 나가려고 발을 떼는 순간 이미 몸을 움찔거렸다. 어미 고양이가 앉아있던 몸을 순식간에 웅크렸다. 고양이들은 장독대에 붙어 있는 낮은 담장으로 올라가 달리더니 우리집 지붕으로 훌쩍 뛰어 올랐다. 담장과 지붕 사이는 거리가 1미터는 좀 넘는 것 같았는데도, 고양이들은 아무 문제없이 지붕에 안전하게 착륙했다. 고양이들은 지붕 위에서 우리 가족의 얼빠진 모습을 힐끔 쳐다보더니, 반대편 지붕으로 사라져 버렸다. 우리집 뒤에 있는 산으로 가는 것 같았다.

"들고양인가?" 아내가 막 잠에서 깨어난 듯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니, 산에 사니까 산고양이라고 해야 할까? 하는 짓이 꽤 야한데?"

"잘 씻지 않아서 가려웠나봐. 자자, 얼른 짐 다 나르고 푹 쉬자."

우리 가족은 다시 이삿짐을 나르기 시작했다. 내 손에 잡힌 짐은 동우의 그림책을 끈으로 묶어놓은 것이었다. 맨 위에 묶인 그림책 제목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피카츄 조심해! 냐옹이 화났다! 포켓몬스터의 주인공 노란 피카츄가 고양이한테 목을 물리는 그림이 표지였다. 목을 물린 피카츄가 괴로운 비명을 지르는데 피카츄를 데리고 다니는 모자 쓴 소년은 그 뒤에서 뭐라고 막 소리지르고 있었다.

냐옹아 피카츄를 죽여! 목을 뜯고 피를 마셔! 이제부터 냐옹이 네가 주인공이다! 피카츄같이 순해빠진 놈은 필요없어. 너처럼 잔인한 놈이 난 좋아!

그림책 표지 속의 고양이 이름이 냐옹이던가? 확실히는 잘 모르겠다. 동그란 얼굴 주위로 수염이 삐죽 튀어나온 그 고양이 그림을 보고 있느려니 방금 전의 고양이들이 생각나서 기분이 묘해졌다. 특히 어미 고양이가 인상에 남았다. 암컷 고양이의 거시기도 인간과 똑같이 생겼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해 주었기에.

그러나 어수선한 이삿짐 정리를 하느라 고양이 생각은 이내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2.

시간이 지날수록 시골집으로 이사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매일 집필실에 눌러 앉아 노트북 컴퓨터로 글을 써나갔다. 글을 쓰는 속도는 내가 생각해도 놀랄 정도로 꾸준히 빨라지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 3년을 백수로 지내며 글 한줄 못쓰고 빌빌대던 사람이 정말 나였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집필 중인 작품의 제목은 "마지막엔 누구나 혼자가 된다". 사업에 실패하고 노숙자로 전락한 한 중년남성이 방황하던 여대생과 만나 격렬한 사랑을 나눈다는 내용이었다. 이 작품에서 나는 밑바닥까지 몰락한 인간이 얼마나 처절하게 거칠어질 수 있는지 묘사하고 싶었다. 이전의 내 작품성향보다 많이 과격한 작품이었다. 내 계획대로만 완성된다면 오랜 동안의 공백을 일거에 무너뜨리는 문제작이 탄생할 것이다. 계획대로만 완성된다면.

나로서는 글이 잘 써져 신났지만, 사실 아내와 동우에겐 많이 미안했다. 모두들 자극적인 도시생활이 그리울텐데도 묵묵히 참고 견뎌 주었다.

그래도 아내와 동우가 힘들어 하는 모습이 자꾸만 눈에 띄었다. 두 사람은 나를 위해 희생하고 있었다. 그들은 웃음을 점점 잃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런 가족들의 모습을 애써 외면했다. 불후의 명작으로 태어날 나의 소설을 위해. 정말 난 웃긴 놈이다.

다행스럽게도 아내와 동우에게 가끔씩 웃음을 되찾아 주는 존재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앞에서 얘기했던 고양이였다. 이사오던 날 마주쳤던 고양이.

엄마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

그 고양이들은 항상 장독대 항아리 위에 앉아서 마당에서 얼쩡거리는 우리 가족을 커다랗고 둥근 눈으로 쳐다 보았다.

반가운 마음에 우리 가족이 한발짝이라도 장독대 쪽으로 다가가면 고양이들은 쏜살같이 도망치기 일쑤였다. 그 뒤로 좀 익숙해졌는지 아내와 동우가 장독대로 먹을 것을 던져주면 낼름낼름 받아 먹기는 하는데, 절대로 접근은 허용하지 않았다.

무료했던 아내와 동우는 매일매일 찾아오는 고양이들을 보는 것이 큰 낙이 되었다. 내가 집필실로 쓰는 골방에서 나올때마다 나를 붙들고 오늘도 고양이가 왔다갔다, 너무 귀엽다, 엄마고양이가 새끼고양이랑 꼭 같이 다니더라, 새우깡을 주었는데도 잘 먹더라 생선만 먹는 건 아닌가보더라, 고양이가 하품하는 거 봤냐... 하여튼 별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풀어 놓았다. 나는 가족들이 고양이 얘기를 하면서 얼굴에 웃음이 피어나는 것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시골생활이 얼마나 외로웠으면 도시에서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도둑고양이들한테 정을 쏟을까. 빨리 소설을 완성해서 서울로 돌아가야겠다고 다짐을 하게 만들었다. 어쨌든 가족들에게 웃음을 주는 고양이들이니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골방에 틀어박혀 소설을 쓰고 있는데, 동우가 문을 열고 나를 불렀다. "아빠 나와봐. 빨리빨리, 지금 나와야 돼." 왜 그러냐고 물었지만 동우는 자꾸 재촉하기만 했다. 아빠 글쓴다고 조용해야 되니까 TV 볼륨도 줄이던 애가 웬 호들갑인가 싶어서 마루로 나갔다.

마당에 아내가 쭈그린 채 앉아 있었다. 아내는 나를 돌아보고는 씩 웃으며 손으로 승리의 V자를 지어 보였다. 동우도 아내 곁으로 쪼르르 달려가 같이 쭈그려 앉았다. 무슨 일인데 저래?

아내와 동우 앞으로 세발자국 정도 떨어진 거리에 고양이 두 마리가 앉아서 열심히 새우깡을 먹고 있었다. 장독대에 있어야 할 고양이들이 어떻게 마당에 내려왔지?

"우리가 얘네들 길들였어. 동우랑 내가." 새우깡 봉지를 들고 있는 아내가 신이나서 말했다. "고양이들이 오늘도 장독대에 놀러 왔길래 새우깡을 던져 줬거든, 너무 잘 먹드라.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마당에 새우깡을 놓으면 마당으로도 내려 오겠다 싶은거야, 그래서 장독대 계단부터 시작해서 점점 더 아래쪽으로 새우깡을 놓았더니 고양이들이 처음엔 주저하더니만 이렇게 내려왔어. 어때 신기하지?"

좀 놀랍기는 해도 엄청나게 신기할 것까진 없었다. 이사온 지 꽤 지나서 우리 가족들 얼굴도 익숙해졌겠다, 나타나기만 하면 먹을 거 던져 주겠다, 고양이들이 마다할 이유가 없잖은가? 나는 한동안 아내와 동우 뒤에서 고양이들이 과자 먹는 것을 구경했다. 그러다 살짝 고개를 쳐든 어미 고양이와 눈길이 마주쳤다. 이사오던 날이 생각났다. 장독대 위에서 우리 가족을 내려다보며 음부를 애무하던 어미 고양이의 모습이. 순간적으로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고양이가 내 생각을 읽은 걸까? 과자를 오물오물 씹으면서 시선은 줄곧 나에게로 향해 있다. 나를 보고 야릇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것 같다. 착각이겠지.

"고양이가 자기 경계하나봐. 자기 나오니까 계속 쳐다보내. 아까까진 새우깡 먹느라 정신없더니만." 아내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혹시 자기 좋아하는 거 아냐? 애 하나 딸린 유부녀가 애 하나 딸린 유부남을 유혹하다?" 아내가 미소를 지으며 웃는다. 동우도 따라 웃는다. 이 녀석, 도대체 4살짜리 꼬맹이가 엄마 말이 무슨 뜻인지나 알고 웃는 걸까?

"실없는 소리 하지도 마." 나는 머리 속을 뒤흔들던 고양이 거시기 생각을 떨쳐 버리고, 고양이 앞으로 다가섰다. 그저 아내 곁에 섰을 뿐인데, 어미 고양이가 입을 벌리고 캬∼하는 소리를 내더니 냅다 뛰어 달렸다. 어미의 울음소리에 즉시 반응한 새끼도 같은 방향으로 뛰었다. 새끼는 어미보다 뛰는 것이 좀 느린 듯 했다. 고양이들은 창고 옆에 난 계단을 뛰어 올라 늘상 앉아 있던 장독대 항아리 위에 앉았다. 어미가 나를 보고 또다시 캬∼하는 경계의 울음소리를 내더니, 고양이 두 마리 다 담장을 타고 우리 집 밖으로 뛰어 내렸다.

"아빠 때문에 고양이 도망갔다." 시무룩해진 동우가 투덜댔다.

"미안해서 어쩌냐. 괜찮아. 고양이들 또 올거야."

"아빠! 다음부터는 고양이들한테 오지마!" 동우가 자기 방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나는 멍하니 아내의 얼굴을 쳐다봤다. "내가 죽을 죄를 진 건가?"

"그럴지도." 아내가 능글맞은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어쨌든 고양이가 자기 좋아하는 건 아닌가봐. 자기 오니까 싫은 소리 내면서 달아나네. 아니지. 좋아하는 사람이 오니까 부끄러워서 숨은 건가? 혹시 유부녀가 한번 튕겨보는 거 아냐?"

"실없는 소리 하지도 마." 나는 아직도 고양이에게 미련이 남은 듯 쭈그리고 앉아서 마당에 떨어진 새우깡 쪼가리들을 쳐다보고 있는 아내의 등 뒤에 다가가 꼭 안아 주었다. "너 웃는 얼굴 보니까 참 좋다."

"내가 언젠 맨날 울었나?"

"지금 너 많이 힘든 거 알아."

"............"

"조금만 참자. 지금 쓰는 소설 다 쓰면 곧바로 서울로 돌아가자." 아내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었다. "이번 소설은 느낌이 아주 좋아. 꼭 대박 날거야. 나 믿지?"

"그럼 내가 널 믿어야지, 딴 남자 믿냐? 옆집 아저씨 믿어도 돼?"

난 낄낄대며 아내를 더욱더 꼭 안았다. 아내 블라우스 속으로 손을 집어 넣어 유방을 만지작거렸다. "나 니 가슴 너무 좋아. 세계 제일이야." 아내가 뻥치지 말라고 핀잔을 준다.

하지만 내 말은 진심이다. 아내를 처음 만나던 날은 정말로 뜨거운 여름이었다. 그날 몸에 착 달라붙는 티셔츠를 입은 아내를 보는 순간 난 그녀를 사랑하게, 아니 좀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그녀의 가슴을 사랑하게 되었다. 허전하게 작지도 않고 무식하게 커다랗지도 않은 딱 좋은 정도의 아름다운 그 가슴. 그 자리에서 나는 사랑의 포로가 되어 버리고야 말았다. 그때도 그랬듯이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난 아내의 가슴을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다. 만약 아내가 유방암에 걸려서 가슴을 제거해야 한다면? 난 아마 자살할지도 모르겠다. 우습게 들리겠지만 솔직한 심정이다.

"니 가슴 내 보물 제 1호야. 누구한테도 안뺏길거야." 아내의 유두를 비틀며 그녀를 더욱 힘차게 안았다. 아내가 몸을 움찔하며 얕은 신음소리를 냈다. 아내는 손에 힘이 들어갔는지 들고 있는 새우깡 봉지가 부스럭 소리를 냈다. 내가 아내의 유방을 제대로 작업중이라는 신호겠지. "이렇게 네 유방을 내 손으로 느끼고 있으면 정말 행복해. 그치만 더 행복할 때는 네 유방을 내 혀로 느끼고 있을 때야. 거기다 더더더 행복할 때는 네 유방을 내..."

"저기 좀 봐!"

느닷없는 아내의 큰소리에 부부간의 에로틱한 분위기는 깨졌다. 아내는 장독대를 가리키고 있었다.

장독대 항아리 위에 조금전에 도망갔던 고양이 두 마리가 태연히 앉아 있었다. 고양이들이 마당에 쭈그리고 앉아 부둥켜 안고 있는 우리 부부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난 고양이 따위에 관계없이 방금 전까지 훌륭하게 진행되던 유방 마사지를 계속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내는 내 손길을 뿌리치고 일어섰다. 엉거주춤하게 앉아있던 나는 일어선 아내의 히프를 잠시 멍하니 감상하다 힘없이 일어섰다.

"고양이들이 다 보고 있는데, 부끄럽잖아. 쟤네들 언제부터 저기 있던거지?"

"지들이 본다고 뭘 알겠어?"

"아까 네가 한 말 고양이들이 다 엿들었겠다."

"뭐, 네 유방에 대한 나의 감상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던거? 야 여기서 장독대까지 거리가 있는데 어떻게 듣냐? 그리고 큰소리도 아니고 우리 둘만 듣게 작게 말했는데."

"고양이들은 귀가 좋잖아."

"지선이 유방 한 세트는 상훈이 보물 제 1호다! 이런 말을 들어버렸다구? 설마 들었더라도 무슨 말인지도 잘 모른텐데 뭐." 나는 아내에게만 들릴만한 작은 목소리로 고양이들을 향해 말했다. "고양이들아, 정말 지선이 말대로 니들이 그렇게 귀가 좋아서 내 말이 들린다면 오른손 들어봐라."

새끼고양이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저 인형처럼 꼼짝않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어미 고양이의 귀가 쫑긋거렸다.

그리고 그 고양이는 정확히 오른쪽 앞발을 들어올렸다. 나의 명령이 있기 전까지는 장독대 항아리 위에 굳게 딛고 서 있던 오른쪽 앞발을.

"어머, 상훈이 네 말 다 알아들었나봐. 그렇게 작은 소리로 말한건데. 그리고 사람 말도 무슨 뜻인지 다 아나봐." 아내가 감탄했다.

나도 감탄했다. 정말 아내의 말이 다 맞는 것 같았다. 우리 집에 천재 고양이가 놀러 오다니! 놀라움과 경이의 감정이 나를 휘감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고양이는 들어올린 앞발로 코를 부비더니 다시 항아리 위에 내려 놓았다.

"뭐야? 그냥 코 간지러워서 손으로 긁은거니?" 아내는 실망한 나머지 고양이한테 하소연을 하고 있었다. "아니지. 혹시 내 남편 말 듣고 손 들었다가 때마침 코가 간지러워서 긁은거였니? 그렇겠지? 자 그럼. 이번엔 내가 명령한다! 옆에 앉은 네 새끼 등을 긁어봐!"

고양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미도, 새끼도.

"거봐, 쟤네들이 뭘 알겠어? 그냥 짐승이지 뭐. 그 손에 들고 있는 새우깡이나 던져줘. 고양이들이 그거 먹고 싶어서 힘들게 또 여기까지 온거지, 지선이 밑에서 머슴 살려고 온 거 아니다."

아내가 주먹으로 내 팔을 툭 쳤다. 나는 낄낄거리고 웃으며 아내 입술에 살짝 키스하고는 집필실로 쓰는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고양이 때문에 -그리고 나의 보물 제1호를 마사지 하느라- 글쓰기가 너무 오래 지체되었다. 잠시 팽개쳐 두고 나온 소설을 계속 써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글쓰는 리듬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조급한 감정이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시골집으로 이사오고 나서 처음 느끼는 기분이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집필실에 들어가면서 옆방의 동우에게 고양이가 다시 돌아왔다고 말해주는 것을 잊지는 않았다. 동우는 언제 토라졌냐는 듯 활짝 웃으며 나에게 "진짜야?"라고 물으며 마당으로 뛰어 나갔다. 아내와 동우가 던지는 새우깡 세례를 받으며 고양이들이 장독대에서 마당으로 내려왔다. 아내와 동우는 환호성을 질렀다. (아내는 미련을 못 버렸는지 고양이한테 명령을 내렸다. "새우깡을 만지지는 말고 혀로만 핥아라!" 이번에도 실패.)

나는 바깥의 소란스러움을 뒤로 한 채, 집필실 책상 위에 놓여진 노트북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 보았다. 쓰다만 소설을 찬찬히 읽어보았다. 소설 속의 주인공 남성이 창녀 취급하는데 대해 화가 난 여대생이 난리를 치는 장면이었다.

날 우습게 보지마! 이제까지 네가 시키는대로 다 해왔다고 내가 바본 줄 알아? 이거 왜 이래, 새꺄! 너를 그때 처음 보았을 때부터 난 생각했어. 날 건드리면 널 가만 두지 않겠다고. 웃어? 그래, 웃을 수 있을 때 실컷 웃어. 넌 내가 어-얼마나 무서운 년인지 몰라!

여대생의 마지막 대사를 되뇌이며 한동안 생각에 잠겼던 나는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머리 속이 회오리 바람이 몰아 치는 것처럼 들썩거렸다. 조금 전의 불안감은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이렇게 소설이 잘 써지다니.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내 자신도 못 믿을 정도였다. 신이 난 나는 더욱더 집필 속도를 올렸다. 고양이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Operation Moo [8] by 잭 히트

읽을꺼리 2007.05.08 23:35 posted by 조재형

Operation Moo [8] by 잭 히트

 뉴에이지 현상이 범람하는 지금의 현실에서는 놀랄만큼 다양한 선택의 기회가 널려 있다. 뉴에이지 전문서점 안을 거닐다 보면 갖가지 분야의 책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외계와의 영적 교감, 기(氣)의 결핍현상, 다른 차원에서 온 천사들, 외계인 납치, 악마퇴치, 예언능력, 시간여행, 수맥탐사, 전생체험, 기적, 수정구슬 치료법, 최면술, 고대 점성술, 최첨단 점성술, 심령사진, 약초치료, 영혼과의 대화, 성모마리아 출현, 환생, 악마숭배, 마법사, 텔레파시, 독심술, 인간 자연발화, 잠재의식 일깨우기, 영혼 불러오기, 염력, 손금보기, 예수 재림, 유년기의 악몽으로 퇴화, 공중부양, 꿈 해몽.. 우리가 알고 있는 합리적인 서양문명의 관점에서 보면 좀 당황스러울 수도 있으니 이쯤에서 분야소개는 마치겠다.

위와 같은 각각의 뉴에이지 분야들은 기꺼이 돈을 내고 관련서적과 비디오를 구입해 주는 열렬한 팬들을 가지고 있다. 몇몇 분야들, 예를 들어 천사같은 분야들은 수십명의 작가를 넉넉하게 먹여 살린다. 다른 분야들은 돈벌이가 별로 신통치 못하다. 초자연적 세계의 밑바닥 인생같은 존재들인 것이다. -인간 자연발화, 츄파카브라 괴물, 소 의문사 그리고 그 밖의 분야들이 여기게 속한다. 이런 분야들은 오직 단 한명의 작가에게만 돈을 벌어다 준다. 벅스 카운티에 사는 한 여성작가의 경우를 보아서 알 수 있듯이, 한 분야를 혼자 독차지하니 벌이가 꽤 짭짤하다.

앞서 언급했던 "차 앞유리창 구멍 전염병"을 생각해 보면, 오늘날 소 의문사 이론들을 부추긴 원동력은 고도로 발달한 기술로 무장한 언론매체들인 것이다. 1960년대 후반에 첫 발생한 소 의문사 이야기가 일단 거미줄처럼 넓게 퍼진 언론의 위력을 얻어서 시골 지역을 휩쓸기 시작하면, 소 의문사 이야기는 다양한 내용들로 부풀려져서 이 마을 저 마을을 떠돌게 되는데, 결국 첫번째 사건을 다양한 형식으로 변형시킨 것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열풍은 1980년까지 계속되다 켄 롬멜의 보고서로 인해 기세가 주춤했었는데, 그 이유는 당시 독자들이 소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돈을 지불하는 풍토에 의문을 제기하는 FBI 수사관을 신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1980년대 후반 컴퓨터 출판과 최근의 인터넷 발달 덕분에, 이제는 누구도 켄 롬멜의 말에 신경쓰지 않는다.

현재의 독자들은 필요한 정보를 스스로 찾아 볼 수가 있으며, 주류 출판사들이 시장성이 있다고 판단할 만한 이슈들을 조직적으로 만들어 내고 있다. 어디에 살고 있던지 간에(치마요, 무스 죠, 벅스 카운티), 사람들은 서로서로 인터넷 등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소 의문사는 좋은 이야기꺼리가 된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세상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정보들 중에서 기꺼이 돈을 지불할 수 있는 작은 상품인 것이다. 이제 곧 그 이야기보따리가 또다시 입을 열게 된다. 린다 몰튼 호위의 새로운 소 의문사 책이 출간될 예정인 것이다. 그녀는 새 책의 제목을 "너무도 기묘하다 High Strangeness"로 정해 놓았다.

- THE END -

Operation Moo [7] by 잭 히트

읽을꺼리 2007.05.08 23:34 posted by 조재형

Operation Moo [7] by 잭 히트

펜실바니아에서 있었던 린다 몰튼 호위와의 인터뷰가 거의 끝나갈 무렵, 그녀와 나는 저널리스트의 애환에 대해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었었다. 나는 그녀의 다큐멘터리들과 마찬가지로 훌륭하게 만들어진 그녀의 책들에 찬사를 보냈다. 그녀의 책들은 일반 하드커버 책보다 거의 두배 크기이고, 광택나는 고급종이에 인쇄되어 있다. 편집도 완벽하다; 각 페이지들이 깔끔하게 다듬어져 있다. 모든 책 속에는 4색 컬러 사진들이 첨부되어 있다. (사진 대부분은 몸통 속이 텅 빈 소 시체의 엉덩이를 찍은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책들이 독일에서도 번역출간될 예정이며, 일본과 오스트레일리아 출판을 위해 협상 중에 있다고 알려 주었다. 그리고 나서 그녀가 해 준 말 한마디는 내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 책들과 관련된 모든 일들을 직접 처리해요." 그녀의 책들을 출판해 온 출판사는 책 타이틀 페이지에 나와 있는대로 "LMH 프로덕션"이다. -그러니까 LMH는 린다 몰튼 호위 그녀의 이름이고, 그 출판사는 그녀 혼자 운영하는 회사다. 그 출판사는 그녀의 집 2층에 있었다. 호위는 나에게 그녀의 출판제국 사무실을 구경시켜 주었다.

그녀를 따라서 2층에 올라가보니, 한쪽 벽면이 그녀의 사진들로 채워져 있어서 그녀의 지나온 삶이 어떠했는지 알려 주었다. 어떤 사진에서는 미스 아이다호로 뽑힌 아름다운 젊은 시절의 그녀 모습이 있었다. 또다른 사진 속에서 그녀는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에미상을 비롯해 이제까지 그녀가 받은 상들이 놓여 있었다. 또다른 사진 속에서는 영화배우 로버트 레드포드가 그녀의 수상을 축하해 주고 있었다. 그 옆 액자 속에는 TV가이드 잡지에서 떼어낸 페이지 한쪽이 들어 있었는데, 그녀가 제작한 첫번째 소 의문사 다큐멘터리 "이상한 수확" 방송날짜를 알려주는 내용이었다. 사무실 책상들 위에는 갖가지 연구자료들과 서류들이 널려 있었다. 서류 보관함들이 죽 늘어서 있었는데, 아무래도 전세계의 소 의문사 관련자료가 들어 있는 것 같았다. 사무실 한쪽 구석에서는 거대한 컴퓨터 한대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는 윗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가리키며, 그 곳은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영상 편집실이라고 말했다. 1989년부터 그녀는 2년에 한번씩은 꼬박꼬박 책을 출간하거나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왔다.

미국에서 일어난, 아니 어쩌면 전세계에서 일어난 소 의문사 소식이 그녀의 사무실을 피해가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소 의문사 뉴스가 사무실에 접수되면, 호위는 피해 목장주에게 9페이지짜리 소 의문사 조사서류를 팩스로 보내서 자신의 자료들을 업데이트하는 데 이용한다. 나는 그 조사서류에 적혀 있는 질문들을 살짝 들여다 보는데 성공했다. 11번 질문은 이랬다. "의문사한 소가 발견된 현장에서 정체불명의 빛이나 하늘을 날아다니는 물체를 목격하셨습니까?" 질문들 대부분은 "절단"과 "조직 제거"에 관한 것이었다. 물론 그 어떤 조사서류든지 목장주에게 "말끔하게 속 알맹이가 없어져 버린 항문/직장"에 대해 물어 보는 것이 당연하다. 안 물어보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은가?

나는 호위에게 그녀의 책과 다큐멘터리가 얼마나 팔렸는지 물었다. 그녀는 '외계인의 수확'이란 책이 만부, '또다른 진실을 엿보다'란 책(현재 초판 인쇄물량이 판매 중이다.)이 이천부 팔렸다고 대답했다. 두편의 다큐멘터리는 각각 2천카피 정도. 이 판매수치들은 해외판매와 그녀의 강연료 수입을 제외한 것이다. 한가지 내가 덧붙이고 싶은 말은, 그녀의 책과 다큐멘터리 비디오는 가격이 꽤 비싸다는 것이다. '또다른 진실을 엿보다'는 39.95달러, '외계인의 수확'은 40달러다. 다큐멘터리 비디오는 각각 35달러, 30달러다. 작가로서 호위는 책 판매금액의 약 15%정도를 인세로 받는다. 그러나 그녀는 출판사를 직접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나머지 판매금액 85%도 고스란히 자기 차지가 되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뒤, 나는 전자계산기를 꺼내들고 앉아서 메모를 적었다:

10,000 X $40.00 = $400,000

 2,000 X $39.95 =   $79,900

 2,000 X $35.00 =   $70,000

 2,000 X $30.00 =   $60,000

                          $609,900

나는 마침내 소 의문사의 마지막 미스테리를 풀었다고 믿는다.

[8]편으로 이어집니다.

Operation Moo [6] by 잭 히트

읽을꺼리 2007.05.08 23:32 posted by 조재형

Operation Moo [6] by 잭 히트

The Zenetic 잡지를 통해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기도취에 빠진 이론들이 난무하는 소 의문사현상 분야에서 작은 사실 하나에도 경계를 늦추지 말라는 것. 그 뒤 1994년의 유타TV 프로를 보고 있을 때, 리포터로 나온 로슨이 롬멜이라는 사람을 언급하는 것을 들었다. 로슨은 그 사람에 대해서 "소 의문사를 경험한 모든 목장주들에게 비웃음꺼리가 된" 얼간이라는 식으로 말했다.

켄 롬멜은 전직 FBI 수사관으로서, 냉정하고 조직적으로 그리고 과학적으로 소 의문사를 조사한 유일한 인물이었다. 1980년 법무부 명령 79-D-5-2-S를 부여 받아 길고긴 조사를 수행한 그는 싸구려 종이커버에 묶여 있는 최종 보고서를 제출했는데, 그 보고서는 곧장 무사안일의 정부조직이 쏟아낸 수많은 논문들이 쌓여 있는 창고 속에 묻혀 버렸다.

현재 롬멜은 산타페에 살고 있다. 그를 만나기 위해 나는 플라자 블랑카라는 신흥 거주지역에 위치한 그의 집을 찾아갔다. 그의 집 안으로 들어간 나는 감사장, 공로상, 그가 좋아하는 만화그림같은 것들이 들어 있는 장식액자들로 치장된 그의 사무실로 안내받았다. 그동안 수많은 FBI 수사관들을 인터뷰해 본 경험으로 따져보건대, 롬멜은 고전적인 타입이었다. 그는 고지식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직설적으로 말했으며, 그의 말 속에서 농담이라곤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는 맺고 끊음이 아주 분명했다. 그는 건장한 체격에 키도 컸으며, 조깅용 반바지에 테니스신발을 신고 있었다. 그는 나와 인터뷰를 끝내고 나면, 매일 하던대로 3마일 달리기를 할 거라고 말했다. 그는 72살이다. 당신에게 켄 롬멜은 파티에 같이 갈 사람으로는 영 아니겠지만, 만약에 테러리스트가 집에 쳐들어와 당신 엄마를 인질로 잡고 있다면, 집 앞마당에 확성기를 손에 들고 서 있을 사람으로 당신은 기꺼이 그를 선택할 것이다.

"문제는 이런 거죠." 롬멜이 말했다. "예전에 경험하지 못했거나 겪어봤어도 그냥 무시하고 지나쳤던 이상한 현상을 목격한 목장주들과 정신나간 경찰들이 있다는 겁니다. 자기 순찰차가 어디 있는지도 못찾아서 헤매고 다니는 보안관 멍청씨가 이렇게 말합니다. '소 시체에 레이저 수술을 한 것 같은 흔적이 보입니다.' 기자들은 그런 말들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기자들은 그 말을 대중들에게 계속 떠벌리게 되는 겁니다. 내가 만약 기자라면 보안관에게 묻겠어요. '보안관님, 당신은 레이저 수술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길래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하지만 현실에서는 '레이저 수술같은'이나 '정교한 외과수술의 흔적이 보이는' 등의 말들이 술술 나오고 있습니다. 언론은 그런 말들을 사랑하죠. 그런게 언론의 속성입니다. 예전에 작성했던 보고서 속에서 한 저널리스트를 언급했었는데, 그녀가 막 화를 냅디다. 자기를 바보같이 묘사했다나."

롬멜이 보고서 하나를 보여 주었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롬멜은 깔끔하게 (의사가 수술할때 배를 가르듯이) 한 기자가 기사를 작성하는 과정을 낱낱이 해부했다. 사소한 사실을 과장하고 중요한 세부사항을 고의로 누락시킴으로써 미스테리한 사건을 만들어내는 모습이 자세하게 드러나 있었다.

롬멜은 수백건의 소 의문사 자료를 연구했고, 연구기간동안 일어났던 뉴멕시코의 의문사 현장 수십군데에 개인적으로 찾아가 보기도 했었다.

롬멜은 현장 목격자들에게 질문을 해보면 처음의 진술이 번복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고 알려 주었다.

"내가 이렇게 물어보죠. '저기 보이는 게 물어뜯은 자국 아닌가요?', '뭔가가 씹어 먹은 것 같이 보이지 않습니까?' 그러면 목장주들은 조용해지더니 결국 내가 말한 사실을 인정해 버립니다."

그는 1979년 뉴멕시코 둘체에서 목격됐던 유명한 사건의 경찰기록도 검토했었다. 그 기록에서는 '600파운드짜리 황소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것이 발견되었고, 비행기같은 종류의 운송수단에 의해 그 곳에 떨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나는 둘체로 갔습니다." 롬멜이 말했다. "작은 마을이더군요. 식당 앞에 순찰차가 서있는 걸 보고, 식당 안으로 들어갔죠. 사건 보고서를 작성했던 게이브 발데즈 경관이 앉아 있더군요. 내 신분을 밝히고 자리를 같이 했습니다. 물어봤죠. '발데즈 경관, 나는 당신이 훌륭한 경찰관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나무에 걸린 소 시체 사진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 사람이 곧바로 툴툴거립디다. '사실은... 소는 나무에 걸려 있지 않았는데. 소는 그냥 나무 밑에 있었어요.' 이마을 저마을에서 벌어지던 현장수사라는 게 이런 식이었던 겁니다."

대다수의 소 의문사 현장에서, 소 시체는 새똥으로 덮여 있었는데, 그것은 독수리같이 고기를 먹어치우는 새들이 소 시체 위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이다. (얼마 전에 보았었던 '화산'이라는 황소 시체에는 말라버린 회색 새똥이 먼지가 되어 뒤덮여 있었다.) 날아다니는 새들은 의문사 현장에 가해자의 발자국이 없는 이유를 간단하게 설명해 준다. 롬멜이 찾아가 본 수십명의 전문가들 말에 따르면, 새들이 시체를 뜯어 먹은 자리는 작은 구멍이 생기게 되는데, 새들은 털이 붙어있는 부위는 좋아하지 않고 외부로 드러난 부드러운 부위를 먹기 좋아하는 습성이 있다... 부드러운 조직들. 항문 직장, 생식기, 눈알, 혀같은 조직들. 그리고 사후에 동물들의 다리는 특유의 뻣뻣한 자세로 단단하게 굳어지는데, 그때 특별한 변화가 생긴다.

"사후에는 시체에서 가스가 발행하기 때문에 조직들이 늘어지게 됩니다." 수의사의 말을 인용해 롬멜이 보고서에 기록한 내용이다. "그 결과 물어뜯긴 상처 주위나 이빨로 찢어진 흔적이 날타로운 도구로 잘라진 것 같이 보일 수가 있다. 특히 털이 자라지 않는 부드러운 조직들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아니, 그렇다면 내장은 어떻게 없어진 거지? 최대한 점잖게 설명해 보겠다. 소 시체 몸통 안에 가스가 차오르게 되면, 부드러운 조직들에 나있는 구멍으로 폭발해 버린다. 그럼 새들은 약삭빠르게 터진 구멍으로 와서 손쉽게 즐거운 잔치를 벌일 수 있게 되고, 그 놈들이 떠난 자리에는 텅텅 빈 구멍만 남게 되는 것이다. 그 모습은 누군가가 표현한 대로 "항문에 진공청소기를 꽂아놓고 몸통 속을 모조리 빨아들이고 난 것 같은" 결과를 낳게 된다.

그러면 소들은 왜 죽는 거지? 여러가지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롬멜은 나무 근처에서 시체로 발견된 소들의 경우 벼락을 맞은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른 소들은 바이러스나 일반적인 소의 질병(붉은 물 병, 검은 다리 병, 물 찬 배 병 등등)으로 죽었을 수도 있다. 뉴멕시코에는 larkspur같은 독성식물이 백종류도 넘는다고 롬멜이 알려 주었다. 굶주린 소가 그런 식물들을 먹었다가는 독에 감염되어 버린다. 흔히 소 시체들은 죽은지 하루나 이틀이 지나서야 발견된다. 그래서 비밀스런 방문객들이 날아와서 작업을 치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발자국을 남기지 않은 채.) 이런 일들이 벌어지게 되면, 소 시체의 피는 시체 밑부분으로 쏠려 응고되어 버리는데, 목격자의 눈에는 피가 증발해 버린 것 같이 느껴져 버린다.

의문사 현상이 하필 1960년대에 시작된 이유가 무엇일지 질문하자, 롬멜은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시작된 경제적 변화와 연관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하루 일당 1달러짜리 카우보이는 사라져 버렸습니다." 롬멜이 말했다. "그 이전에는 카우보이들 인건비가 쌌고, 그렇게해서 고용된 카우보이들은 밤이고 낮이고 항상 소들을 지켰죠. 소가 철조망에 찔려 깊은 상처를 입거나 병에 걸리면, 그 즉시 카우보이가 조치를 취했어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에 와서는 부업으로 적은 수의 소들을 키우는 파트타임 목장주들이 파트타임 카우보이를 고용하게 되었습니다. 목장주들이 소들과 떨어져 살거나 따로 본업으로 하고 있는 직업이 있기 때문에, 그들의 목축업은 부업으로 전락해 버린 것입니다. 독성식물을 먹었거나 상처를 입고 병균에 감염된 소가 며칠씩 안보여도 눈치를 못 챌 수 밖에 없지요. 그래서 소가 죽어버리면 새들이 와서 먹어치우게 되고, 하루나 이틀 지나 어슬렁거리며 나타난 목장주는 부실관리의 결과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롬멜이 제시한 의문사의 마지막 증거는 어느 6월 오후 뉴멕시코의 카슨 국립공원에서 발견된 것이었다. 산림 감독관들과 동행했던 그는 larkspur를 먹고 독이 온몸에 퍼져 죽은 소들이 있는 현장에 도착했다. 그들은 시체들을 사진에 담았다. 3일만에 검정파리들(blowflies)이 모든 시체들을 전형적인 소 의문사 시체들로 만들어 놓았다. (그 과정이 차곡차곡 사진에 찍혔다.) 혀, 눈과 같은 그 유명한 "부드러운 조직들"이 "수술로 인해 제거"된 듯한 전형적인 소 의문사 시체로.

검정파리들의 짓이었다.

"사람들이 기상천외한 일들을 생각해 내는 이유는 제 생각으로는 현재 우리들 삶이 매우 지루하고 단조롭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롬멜이 계속 말을 이어갔다. "소 의문사에 대한 얘기는 별다른 해가 되지 않으면서 자극적인 기분을 느끼게 해줍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서로에게 거짓말을 해대는 거죠." 내가 외계인과 손잡은 연방정부나 비밀 생체실험을 하는 제약회사를 소재로 음모이론을 얘기하는 인터넷상의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고 있을 때, 롬멜이 소 의문사에 열광하는 전형적인 타입의 인간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도시 근교에 거주하면서 시간이 남아돌아 주체를 못하는 중산층 사람. 그리고 의문사관련 책과 비디오를 보며 빈둥거리거나 인터넷으로 자기가 생각해 낸 상상들을 떠벌리고 다니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

그리고 그런 종류의 사람들은 롬멜을 좋아하지 않는다. TV프로그램 Sightings 제작진이 몇주전에 그에게 전화했었다. 그들은 소 의문사에 대한 프로를 만들려 하고 있었고, 황소 '화산'의 시체를 카메라에 담으려고 뉴멕시코에 갈 예정이라고 했다.

"Sightings 제작진은 의문사에 관한 내 생각을 확실히 알 수 있을 정도로 나와 오랫동안 통화를 했죠." 롬멜이 그 후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 다음에 그들은 다시는 나에게 전화하지 않았어요. 한번도 전화 안했죠."

롬멜의 보고서가 발간되고 나서 한동안은 소 의문사 발생빈도가 극적으로 줄어 들었다.

"생각해봐요." 롬멜이 말했다. "한 전직 FBI 수사관이 소들을 해꼬지하던 외계인들을 혼내줬었다니 굉장하죠?" 그러나 법무부 명령 79-D-5-2-S로 인해 작성됐던 보고서에 먼지가 푹푹 쌓여만 가던 1980년대 중반이 돼서는 의문사 발생건수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 돼버렸는지는 롬멜도 풀지 못한 수수께끼였다. 할 수 없이 그는 내가 차를 타고 가는 것을 보고 나서 조깅하러 가는 수 밖에 없었다. 묵고 있던 래디슨호텔로 돌아와 호텔 벽돌벽을 보는 순간, 나는 주머니에서 꺼낸 전자계산기로 마지막 수수께끼를 해결하고야 말았다. 이제 당신께 그 해답을 알려 드릴께요.

[7]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