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미노커 / The Tommyknockers

작품 감상문 2007.05.12 00:40 posted by 조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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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ommyknockers

(1987년 소설)

스티븐 킹의 소설 "The Tommyknockers"는 교원문고를 통해 "토미노커"라는 제목으로 번역출간되었다.(한국판 표지는 심플하다 못해 단순하다.) 이 소설의 서문에는 킹이 어린 시절 들었다는 전래동요 한대목이 적혀 있는데, 킹의 설명에 의하면 토미노커란 단어는 사전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굶어죽은 광부의 유령을 뜻한다고 한다.

어젯밤에도 그젯밤에도

토미노커는, 토미노커는

문을 두드렸다네.

난 밖에 나가고 싶지만

용기가 없어.

난 토미노커를 제일 무서워하니까

길을 걷다 뭔가에 걸려 넘어진 적이 있나요? 참으로 안된 일이지만, 뭐 신세를 망칠 정도로 끔찍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스티븐 킹의 소설 "토미노커"는 뭔가에 걸려 넘어지는 바람에 신세를 망치게 되는 끔찍한 사례를 냉정한 시선으로 다루고 있다. 그러게 넘어져도 정도껏 넘어져야지. 하필이면...

헤이번 마을에 사는 소설가 보비 앤더슨은 깊은 산 속을 걷다가 땅바닥에 삐죽 튀어나온 금속조각에 걸려 넘어진다. 무심코 그 금속조각을 만져본 보비는 강한 울림을 느끼게 되는데, 그 후로 뭔가에 홀린 것처럼 자신의 몸을 혹사해 가면서 땅속의 금속물체를 꺼내기 위해 미친듯이 땅을 판다. 그러나 파내면 파낼수록 땅속 물체의 크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거대하다. 힘이 부친 그녀는 남자친구인 짐 가드너까지 작업에 끌어들이게 된다.

보비와 짐이 땅을 파서 금속물체가 모습을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헤이번 마을 주민들에게 이상한 변화가 생긴다. 그들은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천재가 되어간다. 건전지, 기계에서 떼어낸 모터, 라디오 속 회로판 같은 잡동사니들을 결합해서 엄청난 힘을 지닌 물건들을 발명해 낸다. 그 중에는 지구를 쑥밭으로 만들어 버릴만한 물건도 있다. 이상한 변화는 주민들의 육체까지도 잠식해서, 주민들은 점점 흉칙한 토미노커가 되어 버린다.

헤이번 마을 경찰관 루스는 이런 위험한 변화를 외부에 알려야 겠다고 결심한다. 토미노커가 되어버린 주민들의 견제에 시달리는 루스는 위험한 도박을 감행하기로 결심하는데... 한편 땅을 파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짐은 보비를 비롯한 다른 주민들과는 달리 이상한 변화에 시달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토미노커들의 소굴로 변해버린 헤이번 마을을 짐이 구원할 수 있을까? 그런데 짐은 자신의 인생에 자포자기 상태이고 알콜중독이면서, 게다가 주민들은 토미노커의 변화를 겪지 않는 짐을 죽이고 싶도록 싫어한다. 짐 가드너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게 되는데...

"토미노커"는 매우 긴 소설이지만, 이야기는 흥미롭고 긴장감 넘친다. 소설 초반에 멀리 떨어져 있던 짐이 자살을 시도하다 불현듯 보비의 신상에 위험이 닥친 것을 느끼고 헤이번의 보비 집까지 찾아가는 과정이 좀 늘어지는 느낌이 들지만, 일단 짐이 보비의 집에서 그녀가 사흘만에 초능력 타자기로 400쪽 분량의 장편소설을 완성시켰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부터는 손에 땀을 쥐는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스티븐 킹은 장편소설의 경우 너무 쓸데없이 많이 쓴다는 지적을 받는 경우가 있는데, "토미노커"의 경우도 분량이 무지 많다.(한국판은 3권짜리다.) 중요 캐릭터뿐만 아니라 스쳐지나가는 캐릭터에 관한 에피소드도 시시콜콜이 들추어 내는가하면, 줄거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데도 헤이번 마을이 형성된 역사적인 과정을 자세히 묘사하기도 한다. 내 생각으로는 이러한 서술방식이 지루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헤이번 마을이 토미노커들의 소굴로 변모해가는 오싹한 모습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또다른 킹의 작품 "Salem's Lot"에서 살렘즈랏 마을이 흡혈귀들의 소굴로 변모해가는 모습을 섬찟하게 그려냈던 것처럼.

그렇지만 분량이 긴 소설이어서일까? 마지막 결말부분에서 몇가지 아쉬운 점이 보였다.

짐은 결말에서 토미노커들의 추격을 받을 위기에 처해서 보비의 집을 탈출해 금속물체가 묻혀있는 곳으로 도망가려 하는데, 몸도 안좋은 사람이 그 시간이 없는 와중에 보비 집 옆에 붙은 죽음의 창고 안에 들어가서 시간을 지체하고야 만다. 개와 아이를 구해야한다는 명분이 붙어있는데, 내 생각으로는 토미노커들의 추격을 따돌리는 수단을 마련하려고 무리하게 스토리를 끼워맞춘 듯해서 어색하게 느껴진다.

짐은 결말에서 발굴이 끝난 금속물체에 접근하려 하는데, 토미노커들이 잡동사니들로 발명한 살인기계들의 치명적인 공격을 받게 되는 찰나에, 보이지않는 유령이 나타나서 경고를 하고 직접 짐의 손목을 잡아채서 총을 쏘아 기계를 처치한다. 그 장면에서 킹은 정말로 유령이 나타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짐이 헛것을 느낀 것인지 분명히 밝히지 않고 무심하게 다음 장면으로 휙 넘어가 버린다. 그 장면을 좀 더 명확히 밝혔더라면 의미심장한 장면이 되었을텐데 아쉽다.

또한 결말에서 짐은 땅속의 금속물체를 끄집어내려 애쓰면서 토미노커의 농간으로 사라져 버린 아이를 구하기 위해서라고 말하는데, 금속물체를 꺼내는 일이 아이를 구하는 일에 정확하게 어떻게 도움이 된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나만 모르는 걸까? 그렇다면 창피 -_-;;) 위험물질이 마을을 더이상 망치지 못하도록 금속물체를 끄집어 낸다면 이해가 가겠는데, 아이를 구하기 위해서라니. 토미노커의 농간으로 사라진 아이에 관한 에피소드는 소설 중간쯤에 등장하는데, 그후로 별 언급이 없다가 결말에 가서 갑작스럽게 중요한 -짐이 목숨을 걸만큼 중요한- 소재로 언급되니 혼란스럽다.

그 외에도 짐은 결국 어떻게 된 것인지, 사라진 아이는 그 후 어떻게 지내는지 잔뜩 미스테리만 남긴채 "토미노커"는 결말을 맺는다. 어쩌면 스티븐 킹이 "토미노커" 2편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 아닐까? 모든 의문을 2편에 갖고 가서 한꺼번에 팡!하고 터뜨릴려는 의도로? 만약 그렇다면 어서 빨리 2편을 써주길. 나는 이제 "토미노커"의 팬이다.

위에서 내 개인적인 불만을 장황하게 -정말 어수선하게- 늘어놓았지만. "토미노커"는 매우 재미있는 소설이다. 호흡이 긴 소설을 싫어하는 분에게는 권해드리기가 쑥스럽지만, 스티븐 킹 장편 특유의 치밀한 묘사 속에 드러나는 헤이번 마을의 공포를 맛보고 싶어하는 분에게는 추천작이다. 헤이번 마을의 비밀을 알게된 외부인들이 모험을 감행하다 위험에 휩싸이는 장면들과 결말에서 헤이번 마을에 군대가 출동하는 장면에서는 B급 특유의 정서가 엿보여서 나같은 B급 소년의 마음을 감동으로 파도치게 만든다.

소설 속에서는 마을에 나타난 토미노커의 정체를 주인공들이 설명하는 부분이 있다. 토미노커들은 아이처럼 잘 싸우며, 사물을 -위험한 사물을- 만들어 내기만 할 뿐 그 사물이 불러 일으킬 영향력에 관해서는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그런 토미노커의 습성은 원자력발전소의 장점만 부각시키고 인체와 자연에 치명적이라는 단점을 은폐하려는 사람을 보면 광적으로 분노하는 짐 가드너의 행동과 맞물려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스티븐 킹이 창조한 토미노커는 결국 인간의 잔인하고 무책임한 면을 상징하는 존재로서 느껴지는 것이다. 인간은 이제까지 토미노커처럼 얼마나 나쁜 짓을 수없이 저질러왔던가? 핵폭탄, 세균병기, 스너프필름, 공장폐수, 자동차 매연, 지뢰매설 등등. 일을 저지르기만 하고 수습을 제대로 못하는 인간들이야말로 토미노커들과 다름없다.

"토미노커"에서는 스티븐 킹 자신이 간접적으로 언급되는 부분이 있다. 소설 속에서 마을 할아버지가 이상한 변화의 근거지를 찾다가 소설가 보비 앤더슨을 떠올리고는 이렇게 생각한다.

[뱅고어에 사는 또다른 작가의 작품들과는 달리 그녀의 소설에는 황당한 괴물들이 잔뜩 등장하지도 않았으며 더러운 욕설이 난무하지도 않았다.]

메인주 뱅고어에 살고 있는 스티븐 킹을 언급한 것이다. 이 문장을 통해 나는 두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스티븐 킹은 자신의 소설에 황당한 괴물들이 잔뜩 등장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며, 자신의 소설에 더러운 욕설이 난무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지금껏 그랬듯이 황당한 괴물들이 잔뜩 등장하고 더러운 욕설이 난무하는 작품들을 많이많이 발표해 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그런 스티븐 킹이 좋다.

"토미노커"와 관련해서 언급할만한 스티븐 킹의 1984년 단편소설이 있다. 제목은 "The Revelrations of 'Becka Paulson"이고, 롤링스톤 잡지에 발표되었다. 헤이번 마을에 사는 베카 폴슨이라는 가정주부가 실수로 자신의 머리에 총을 쏘게 되는데, 죽지 않고 살아 남아서 TV 위에 놓아둔 예수 그림과 대화를 할 수 있게 되고 결국 가정이 파탄난다는 내용이다. 이 단편은 나중에 무자비한 각색을 거친 후 "토미노커" 속의 한 장면으로 사용되었다.

"토미노커"는 4시간짜리 TV미니시리즈로 만들어 졌다. 우리나라에서는 KBS2에서 방영해 주었다. 나는 방영 당시 거의 시청할 기회가 없어서 -술 퍼먹고 다니느라고- 자세한 것은 모르는데, 인터넷에 올라온 평을 보면 별로라는 의견이 많다. 다행히도 이 미니시리즈는 우리나라에 <타미나커스>라는 제목으로 비디오가 출시되어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동네 비디오가게에서 찾아보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The Glass Floor

작품 감상문 2007.05.12 00:37 posted by 조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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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lass Floor

(1967년 단편소설)

 리처드 바크먼이란 필명으로 발표된 킹의 소설 "통제자들 The Regulators" 영문판 뒷표지를 보면 리처드 바크먼이라고 박박 우기면서 젊은 시절의 킹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형 데이브가 찍은 사진이라는데, 굵은 뿔테안경의 스티븐 킹이 담배를 손에 쥐고 야심만만한 표정을 짓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웬지 웃음이 나온다. 그런데 킹 앞에 놓인 타자기 위로 책이 펼쳐져 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굵은 글씨의 제목이 눈에 보인다. "The Glass Floor". 과연 이게 뭘까? 너무 궁금했는데, 얼마후 나는 이 제목이 킹의 단편소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The Glass Floor"는 1967년 Startling Mystery Stories라는 잡지에 발표된 스티븐 킹의 단편소설인데, 킹에게는 너무나 의미깊은 작품이다. 정식으로 원고료를 받고서 발표한 최초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프로작가를 꿈꾸는 이에게 작품 원고료가 지급된다는 것은 자신의 실력을 정식으로 인정받았다는 것이니, 그동안 잡지사들로부터 퇴짜만 맞던 킹이 얼마나 감격했을지는 안봐도 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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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에 실린 "The Glass Floor"를 보면 한쪽 구석에 편집인의 글이 붙어 있다. 읽어보면 잡지에 실리기까지 킹이 겪었을 땀과 눈물이 느껴지는 것 같다.

[스티븐 킹은 저희 잡지에 수차례 작품을 보냈었습니다. 그의 작품들 중 한편은 그에게 다시 돌려 보내면서도 정말 안타까운 심정이 들었습니다. 돌려보낸 이유가 잡지에 싣기에는 그 작품이 너무 길었다는 이유였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불굴의 의지가 그에게 결실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자 여기 문제의 그 작품이 잡지에 실을 수 있을만한 적절한 분량으로 다듬어져 오싹한 소설로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워튼은 시집간 여동생의 집에 찾아간다. 얼마전 여동생이 석연찮은 사고로 죽었는데, 서둘러 매장되었기 때문이다. 워튼은 어떻게 된 일이냐며 동생의 남편 레이너드를 추궁한다. 실랑이 끝에 레이너드는 자초지종을 털어 놓은다. 저택의 이스트룸에 여동생이 사다리를 가지고 청소하러 들어갔다가 떨어지는 바람에 목이 부러져 죽었다는 것이다. 워튼은 이스트룸에 들어가 봐야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레이너드는 한사코 말린다.

"이미 그 방은 폐쇄돼 있어요. 사고 직후에 내가 시멘트로 문을 막아 버렸으니까. 이스트룸에 들어가선 안돼요. 그 방은 바닥이 거울로 되어 있어요. 그 방에 들어가는 사람은 죽어요..."

레이너드의 말을 믿지 못하는 워튼은 문에 발라져 있는 시멘트를 긁어내고서 이스트룸에 들어간다. 레이너드의 말대로 바닥 전체가 거울로 되어 있는 방이다. 그리고 거울 위에 서있던 워튼은 어느 순간 문득 자신의 신변에 위험이 닥쳤다는 알아차리고 절규한다. "사람살려~~"

"The Glass Floor"는 굉장히 짧은 소설이지만, 결말을 읽는 순간 기괴한 쾌감을 느끼게 한다. 바닥이 온통 거울로 되어 있다는 기묘한 설정이 갖는 시각적인 면이 읽는이의 마음을 매혹시키다가 마지막에 가서 그 시각적인 면이 극대화되어 묘사되는 상황은 스티븐 킹이라는 초보작가의 앞날을 기대하게 만들어 버린다. 한마디로 원고료가 아깝지 않은 멋진 작품이다.

그러고보면 위에 소개한 한장의 흑백사진이 탄생하게 된 이유를 추측할 수 있을 것 같다. 킹은 난생처음으로 원고료를 받고서 잡지에 자신의 작품을 발표한다. 흥분의 도가니에 싸인 킹은 이 역사적인 순간을 사진으로 남겨서 영원히 간직하기로 결심한다. 촬영장소는 역작 "The Glass Floor"가 쓰여졌던 타자기 앞. 타자기 위에는 작품이 실린 잡지를 놓는다. 제목이 보이도록 잡지 22~23페이지를 펼쳐놓는 것도 빼먹지 않는다. 그런데 이걸로는 부족하다. 그렇다. 고뇌하는 작가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 한 손에 쓰디쓴 담배 한개비를 쥐고 있는 설정을 추가한다. 그림 완성이다. 킹은 형 데이브를 불러서 사진을 찍으라고 강요한다. 아니꼽지만 동생의 원고료가 탐이 난 형은 시키는 대로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폼나게 45도 각도로 몸을 틀고 있던 킹은 카메라를 향해 도발적인 강렬한 눈빛을 보낸다. "난 이제 세계 최고의 소설가가 될 것이다." 찰칵!

"The Glass Floor"는 1967년 말고도 킹이 완전히 슈퍼작가로서의 지위를 누리고 있던 1990년 Weird Tales 잡지에 또다시 수록된다. 이때 킹은 작품 앞에 서문을 썼는데, 여기에 소개하겠다.

1990년 잡지 "Weird Tales" 가을호 "The Glass Floor" 서문

제임스 딕키의 소설 "Deliverance"에 보면, 아주아주 깊숙한 오지마을에서 살아가는 한 시골남자가 차를 고치다가 수리공구로 그만 자기 손을 내리치게 됩니다. 강 하류로 내려간 사람들을 찾기 위해 마을에 왔던 도시남자가 손을 다친 그라이너라는 시골남자에게 괜찮냐고 묻습니다. 그라이너는 피범벅이 된 자기 손을 쳐다보더니 중얼거립니다. "생각보다는 별로 나쁘지 않구만."

바로 그 대사가 요즘 "The Glass Floor"를 다시 한번 읽어보고 제가 느꼈던 기분입니다. "The Glass Floor"는 정식으로 원고료를 받고 발표한 최초의 작품입니다. 이 오래된 작품을 Weird Tales에 다시 수록하면서 편집인 대럴 슈바이처는 제가 원하는대로 작품을 새로 고쳐써도 된다는 제안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뜯어 고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결정했습니다. 단어 두어개 정도를 바꾸고 문단 나누기를 손질한 것(처음 발표당시 인쇄상의 실수같은 것으로 방치됐던 부분을 교정했습니다.)만 빼면, 이 단편소설은 처음 발표 당시 그대로의 모습으로 선보이는 것입니다. 만약 제가 작품을 고치려고 마음 먹었다면, 결과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작품이 되어 버렸을 겁니다.

기억을 최대한 되살려 보건대, 스무번째 생일을 두어달 정도 남겨둔 1967년 여름에, 저는 "The Glass Floor"를 썼습니다. 그 당시 저는 매우 인기있던 작품집 Sexology와 두 종류의 공포/환타지 잡지에서 편집인으로 활동하던 로버트 A. W. 라운즈에게 작품을 팔려고 2년동안 무던히도 기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는 저의 수차례 원고투고를 친절하게 거절해 주었는데(그때 퇴짜맞은 작품 중 하나는 먼 훗날 "Night of the Tiger"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습니다.), 제가 마침내 "The Glass Floor"를 보내자 그는 잡지에 수록하는 것을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난생 처음으로 원고료라는 것을 35달러 받았습니다. 그때 이후로 원고료로 더욱더 많은 액수를 받아 왔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어마어마한 액수도 맨처음 원고료가 주었던 기쁨을 능가하지는 못했습니다. 허구헌날 퇴짜만 맞더니 마침내 누군가가 내 머리 속에서 만들어진 결과물에 진짜 돈을 지불하다니!

"The Glass Floor"의 처음 몇페이지는 대단히 서툴고 엉망인 수준입니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작가의 마음이 만들어낸 결과죠. 그렇지만 지금 다시 읽어보니 마지막 부분은 이제까지 제가 기억했던 것보다 훨씬 훌륭합니다. 미스터 워튼이 이스트룸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의 정체를 알게 되는 장면에서는 진짜 전율이 살아 숨쉬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점이 전반적으로 그저그런 수준인 이 작품을 몇십년이 흐른 지금 여러분에게 다시 선보이도록 제가 동의했던 이유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이 작품에는 종이인형같은 단순한 캐릭터를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흔적이 배어 있습니다. 워튼과 레이너드는 서로 신경전을 벌이지만, 둘 모두 "착한 사람"도 "나쁜 사람"도 아닙니다. 진정한 악당은 시멘트로 막혀버린 문 뒤에서 기다리고 있죠. 그리고 "The Glass Floor"가 끼친 기묘한 영향력은 저의 최근 작품 "사라진 도서관 The Library Policeman"에 남아 있습니다. 짧은 소설인 "사라진 도서관"은 올가을 발표되는 소설집 "Four Past Midnight"에 수록될 예정인데, 여러분이 그 작품을 읽게 된다면 지금 제가 말한 기묘한 영향력의 실체를 알게 되실 겁니다. 세월의 간격을 뛰어 넘어 같은 이미지를 또다시 목격하게 되는 경험은 짜릿한 기분이 들게 합니다.

"The Glass Floor"를 지금 여러분께 다시 선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젊은 작가들에게 메세지를 전하고 싶어서입니다. 지금 이 순간도 열심히 쓰고, 작품발표를 위해 노력하고, F&SF Midnight Graffiti나 Weird Tales같은 잡지들로부터 받은 거절통지서들을 수북히 쌓아놓고 있는 젊은 작가들에게 말입니다. 저의 메세지는 간단합니다. 여러분은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더욱더 발전할 수 있으며, 작품발표의 기회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작품 속에 작은 불꽃이라도 들어 있기만 하면, 그 어둠 속에  희미하게 빛을 내는 불꽃을 누군가가 조만간 알아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그 불꽃을 장작 속에 집어넣게 되면, 불꽃은 거대하고 강렬한 불길이 되어 활활 타오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제 실제경험이었고, 작은 불꽃 하나에서부터 저의 작가인생이 출발했었던 것입니다.

"The Glass Floor"의 아이디어를 떠올렸던 순간이 기억납니다. 다른 모든 아이디어와 마찬가지로 그냥 불쑥 생각났었죠. 요란벅적스런 대단한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친구를 만나러 길을 걷고 있다가, 아무런 이유없이 불쑥 '바닥이 거울로 되어 있는 방에 서있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머리 속에 떠오른 이미지가 너무 강렬해서 소설로 써야겠다고 마음 먹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돈을 염두에 두고 쓴 것이 아닙니다. 이 작품을 쓰게 된 덕분에 저는 글쓰기에 대해서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물론 제 기대만큼 완벽한 글쓰기 도사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이 작품은 제가 이루고 싶었고, 또 이루려고 열심히 애를 썼던 목표에서 많은 부분 부족한 점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작품에서 저는 두가지 귀중한 것을 얻었습니다. 5년동안 출판사들에게서 거절통지서의 홍수에 시달린 끝에 원고료를 받고 정식으로 발표하게 된 작품을 얻었다는 것과 작지만 소중한 작가경험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자 이제 "The Glass Floor"를 읽어 보세요. 딕키의 소설에 등장하는 그라이너라는 남자의 말처럼, 생각보다는 별로 나쁘지 않으니까요.

-- 스티븐 킹 --


분노 / Rage

작품 감상문 2007.05.12 00:31 posted by 조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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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ge

(1977년 리처드 바크먼 소설)

 1966년 고등학교 졸업반이던 스티븐 킹은 "Getting It On"이라는 소설을 쓰고 있었다. 그 후 까맣게 잊고 지내다 한참 후에 지하실 낡은 박스 안에서 썩어가던 그 소설 원고를 발견하게 되었고, 1971년에 원고를 완성시켰다. 1971년 킹은 "Getting It On" 원고를 Knopf 출판사에 투고하게 된다. 그러나 출판사측은 내용이 맘에 안든다는 이유로 출판 부적합 결정을 내린다. 그 후 스티븐 킹은 1974년 장편 데뷔작 "캐리 Carrie"의 대성공으로 유명작가가 되었고, 1977년에는 "Getting It On"을 "Rage"라는 제목으로 바꾼 다음 "스티븐 킹"이라는 이름을 "리처드 바크먼"이라는 필명으로 바꾸어 발표했다.

18살 고교생 찰리 데커. 오전에 수학수업을 듣던 중 교장실로 불려간다. 찰리는 과학선생님을 스패너로 후려쳐서 죽을뻔하게 만든 사건으로 교장에게 추궁을 듣던 중 불성실한 태도를 보여 교장을 격분하게 만들고 급기야 학교에서 사라지라는 명령을 받는다. 마음에 동요를 일으킨 찰리는 사물함에 숨겨 두었던 권총을 빼들고 수학수업이 한창인 교실에 들어와서는 수학선생님을 총으로 쏴 죽이고, 반 친구들을 인질로 잡는다. 그때부터 학교는 몰려드는 경찰, 방송국 기자들, 구경꾼들로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교실을 점거한 찰리는 자신에게 쩔쩔매는 선생들과 경찰들을 실컷 갖고 놀더니, 친구들한테 자신의 불행한 성장기를 털어 놓는다. 찰리가 사적인 비밀을 털어놓자 신기하게도 인질로 잡힌 친구들도 하나둘씩 사적인 비밀을 털어 놓으며 공감대를 형성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인질 중에는 거만한 모범생 테드 존스가 끼어 있는데, 그는 자신의 컴플렉스인 사적인 비밀을 털어놓기를 거부하며, 찰리와 친구들의 행동을 비난한다. 그러자 반 친구들은 교실 커텐을 전부 내려서 밖에서 교실 안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그리고는 모두 하나가 되어 테드에게 달려 들어서는...

나는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별로 기분이 안 좋았고, 읽고 나서도 별로 기분이 안 좋았다. "Rage"는 대단히 폭력적인 정서를 품고 있는 소설이다. 직접적인 폭력장면은 별로 등장하지 않지만, 소설 전반에 흐르는 폭력적인 분위기가 읽는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거침없이 등장하는 기성세대에 대한 조롱과 억눌렸던 울분이 거친 폭력의 형태로 분출되는 과정이 찰리라는 학생의 시점을 통해 적나라하게 묘사되고 있다. 기존의 도덕관념/사회관념에 만족하며 살고 있는 사람이 이 소설을 읽는다면 반도 못 읽고서 책을 집어 던져버릴 것이다.

"Rage"에서 찰리는 불행한 과거 속에서 살아온 불쌍한 아이로 묘사된다. 그는 자신의 아픔을 제대로 말할 상대조차 없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부당하게 대접받으며 살아왔다는 생각에 답답해하던 찰리는 교장실에 불려간 그날 완전히 감정의 폭발을 일으키게 된다. 찰리는 교실을 점거한 후 자신의 처지를 후련하게 털어놓고 친구들도 한편이 되자 기분이 좋아진다. 그들이 고백하는 내용들은 학교가 재수없다, 선생도 재수없다, 부모도 재수없다, 섹스가 궁금하다 등과 같이 학창시절에 누구나 생각해 보게 되는 주제들이다. 그러고 보면 "Rage"라는 소설은 학생들이 서로 흉금을 터놓고 속시원히 욕을 하고 낄낄대며 스트레스를 푸는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 폭력이 강렬하게 분출되는 이유는 처음 "Rage" 집필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스티븐 킹의 울분이 뿜어져 나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홀어머니 밑에서 넉넉치 못한 생활을 하며, 낮에는 학교다니고 밤에는 공장다니고, 소설가가 되겠다고 투고하는 원고들마다 맨날 퇴짜나 맞고 다니니 앞날이 막막한 킹은 마음 속으로 한이 억수로 맺혔겠지. 아마도 대학을 졸업하고 몇년뒤 떼돈을 버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줄 미리 알았더라면 "Rage"같은 엄청난 분노의 소설은 태어나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교실을 점거한 찰리가 뒤늦게나마 친구들과 하나가 되어 솔직한 대화를 나누는 것은 흐뭇한 일이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선생님 둘을 살해하고, 교장을 발광하게 만들고, 카운셀러 선생님을 질질 짜게 만들고, 경찰서장을 바보로 만들게 된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비협조적인 테드에게 집단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은 나에게 충격이었다. ("오늘 인질수업의 교훈은 뭘까?"하고 묻는 찰리에게 반 친구들이 테드를 손봐주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는 과정은 좀 느닷없고 어색하다.) 개인적인 비밀을 다 공개하는 분위기에서 한 개인이 그것을 거부하는 것에 대해 집단폭력이 가해지는 것을 바라보며 아름다움을 느끼는 찰리. 나는 이 소설에서 학생이 선생을 살해하는 장면보다 집단폭력 장면이 더 충격적으로 느껴졌다. 성난 집단이 화풀이를 위해 한 개인을 처단하는 것은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소설 후반부에 찰리가 군중 속에 뒤섞여 폭력적인 흥분을 맛보는 것을 상상하며 울부짖는 장면도 나온다.)

소설 마지막에서 학교를 떠나 모처에서 생활하고 있는 찰리가 "작은 비밀이 하나 생겼는데 기분이 좋다 다시 사람이 된 듯하다"고 말하는 장면은 무얼 뜻하는 건지. 기껏 학교에서는 자신의 부끄러운 비밀을 다 까발려 놓고는 이제는 도리어 비밀이 생긴 것을 기뻐하고 있으니. 비밀은 인간의 본능이라는 뜻일까? 인간은 변덕이 죽끓듯 한다는 뜻인가? 이랬다가 저랬다가 왔다갔다하다가 '나 한순간에 새됐어'하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라는 것인가? "Rage"의 결말은 여러가지로 해석이 다양하게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찰리는 과연 정상인이 된 것인가? 더욱더 사이코가 된 것인가? 찰리가 가해자고 인질친구들이 피해자인가? 아니면 반대로 찰리가 결국 피해자고 인질친구들이 가해자인가?

이제까지 말했듯이 "Rage"는 대단히 위험한 소설이다. 현재의 사회에 만족하며 활기차게 살아가고 있는 바른생활 사나이와 바른생활 소녀에게는 이 소설을 권하고 싶지 않다. 읽다가 분개한 나머지 미국대사관에 정식으로 항의하고 싶어질 테니까. 현실이 무척이나 불만이고 괴로워서 '확 전쟁이나 나서 세상 다 뒤집어 엎어져라'하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을 적극 추천하고 싶다. 그런 사람이라면 이 소설이 삶의 활력소가 될 것이다.

"바른생활"과 "현실파괴"의 극단적인 세계관을 벗어난 그냥 보통사람이라면 "Rage"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이 가진 장점은 바로 재미있다는 것이다. 너무나 폭력적인데도 읽다보면 끝까지 다 읽을 수 밖에 없다.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어서. 나도 끝까지 다 읽고야 말았다. 나는 주인공 찰리가 불쌍하다고 느껴지지만 그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이 전혀 맘에 들지는 않는다. (기성세대를 위협하는 고등학생이 등장하는 소설에 찜찜해하는 이유는 내가 나이를 먹은 탓일까? 그럴지도...) 그런데도 재미를 느끼고 끝까지 이 소설을 읽게 되는 것은 솔직한 폭력이 전해주는 섬칫한 재미때문인 것 같다.

스티븐 킹은 이 소설이 매우 폭력적이고, 실제로 소설내용과 유사한 고등학교 총기 살인사건이 발생했다는 이유로 "Rage"의 출간을 중지시켰다.(젊은 시절 직접 이 소설을 창조한 어른의 눈으로 보기에도 이 소설이 위험하다고 생각되었던 것은 나이탓일까 아닐까?) 그래서 오늘날 "Rage"를 미국의 일반서점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헌책은 쉽게 구할 수 있다. 나도 "Rage"가 수록된 "The Bachman Books"를 인터넷서점 아마존이 연결시켜준 헌책 딜러한테서 구입했다.("The Bachman Books"에는 리처드 바크먼의 초기소설 4편 Rage, The Long Walk, Roadwork, The Running Man이 수록되어 있다.)

부적 / The Talisman

작품 감상문 2007.05.12 00:16 posted by 조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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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alisman

(1984년 소설)

(이 이야기는 실제 일어났던 사건입니다.) 성적추락때문에 부모님에게 심한 꾸중을 듣고서 밤 늦게까지 괴로워하며 우울해하던 중3학생 A군. 문득 창문을 보다가 비행접시가 마을 뒷산에 추락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A군이 뒷산으로 달려가보니 빛나는 비행접시에서 꼴뚜기처럼 생긴 우주인 둘이 나와서 A군에게 말을 건다. "우리는 맥도날드성운 햄벅THX-12 롯데리아행성에서 왔습니다. 평화롭던 치즈버거왕조를 쿠데타로 무너뜨리고 수십년동안 독재정치로 탄압하는 후렌치후라이장군에게서 도망온 것입니다. A군, 놀라지 마시오. 당신은 사실 후렌치후라이놈에게 억울한 죽음을 당한 치즈버거왕이 지구로 피신시킨 왕자 치즈버거 3세입니다. 지금 당신을 키우고 있는 부모는 친부모가 아니란 얘기죠. 그깟 성적때문에 애를 괴롭혀서야 계모, 계부가 아니고 뭐겠어요? 자, 롯데리아행성으로 갑시다. 지금 독재정권의 종말을 바라는 온 국민이 왕자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왕자님이 후렌치후라이를 물리치시고 우리 행성에 평화를 가져다주기를 말입니다. 자~ 그럼 렛츠고!" A군은 꼴뚜기 우주인에 이끌려 비행접시를 타고 우주를 날아간다. 지구의 부모님을 떠나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가슴이 설레여 두근거린다. 앞으로 펼쳐질 미지의 세계에서의 모험을 생각하며...

이 얼마나 가슴벅찬 이야기인가! 형편없이 무능력하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사실은 거대한 악에 맞서 평화를 지키기 위해 운명적으로 선택된 영웅이었다니. 이런 류의 모험담은 언제나 현실에 지친 사람들을 열광시켰고, 그 덕분에 수없이 많은 얘기들이 지금까지도 만들어지고 있다.

지금 소개하는 "The Talisman"도 운명적인 모험얘기를 다루고 있다. 스티븐 킹이 동료작가인 피터 스트라우브 Peter Straub와 함께 집필한 이 소설은 도서출판 밝은세상과 나나 출판사에서 "부적"이라는 제목으로 한국판을 출간했다.

열두살 소년 잭 소여. 잭은 불의의 사고로 아버지를 여의고, 한때 영화배우였던 어머니와 함께 텅빈 호텔에 숨어 지내고 있다. 아버지의 동업자가 자꾸만 어머니를 괴롭혔기 때문에 도망쳐 나온 것이다. 더욱 가슴아픈 건 어머니가 암으로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나날이 병색이 짙어가는 어머니를 보며 슬픔에 잠겨 있던 잭 소여는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된다.

현실세계와 연결되어 있는 마법세계가 존재하고 있으며, 현실세계의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마법세계에 분신이 있다는 것이다. 잭 어머니의 분신은 마법세계에서 여왕으로 존재하고 있는데, 잭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다.(그러니까 잭은 마법세계의 왕자님이시다.) 잭 어머니와 마법세계 여왕을 구하기 위해서는 부적이라고 불리우는 신비한 물체를 손에 넣어야만 한다. 자신이 부적을 손에 쥘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선택받은 인간임을 알게 된 잭은 두렵지만, 어머니와 여왕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마법세계로 뛰어든다. 효자 잭 소여. 그의 앞에는 마법세계와 현실세계를 오가는 엄청난 시련의 모험이 펼쳐지려 하고 있었다.

나는 원래 모험이야기를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이 소설 "부적"을 읽으면서 흥미진진했다. 어린 소년이 현실세계와 마법세계를 왔다갔다하며 두려움과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어머니를 위해 끝까지 애쓰는 모습이 소년을 방해하는 악역 캐릭터들과 맞물리면서 아슬아슬 긴장감을 자아내고 있었다. 잭 소여는 소설 속에서 열두살짜리가 겪기에는 엄청난 시련들을 툭하면 만나게 되는데, 사이비 기도원에서 사이비 목사한테 붙들려 고문을 당하는 장면에서는 너무 불쌍한 나머지 내가 직접 소설 속으로 들어가 잭을 구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만큼 소설 속에서는 잭이 시련을 겪으며 느끼는 고통이 절절하게 묘사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시련이 잭을 더욱더 성숙하게 만든다. 책을 읽는동안 잭 소여라는 캐릭터와 동고동락하다보니 나중에는 잭의 매력에 푹 빠질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고생하는 잭을 곁에서 도와주는 인물들이 여럿 등장한다. 잭에게 마법세계의 존재를 알려주는 스피디 파커, 마법세계에서 만나 현실세계까지 이끌려 온 늑대인간 울프, 잭의 둘도 없는 친구 리처드 등등. 특히 울프가 제일 강한 인상을 남긴다. 보름달이 뜨면 야수로 돌변하는 체질때문에 잭을 곤란하게도 만들지만, 순진한 아이같은 착한 마음씨에 위기의 순간에는 과감하게 잭을 챙겨주는 울프는 소설이 끝날때까지 잊혀지지 않는 캐릭터였다. 소설 마지막에 울프를 떠올리며 아련한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부분도 나온다.

죽도록 고생하는 잭을 위해 스티븐 킹과 피터 스트라우브는 스트레스를 해소시켜 주고 싶었을까? 소설 후반부에 잭은 우지 기관단총과 수류탄을 얻게 된다. 열두살 소년에게는 너무 위험한 물건이라서 나는 설마설마했는데... 잭은 생전 처음 만져보는 총기를 능숙하게 다루며 마구 학살을... 역시 선택받은 영웅은 틀리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너무 지나치다 싶은 폭력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소년의 나이에 걸맞게 최후의 대결에서는 언뜻 보면 유치한 듯한 액션도 등장한다. 상대에게 발을 걸어 넘어뜨린다거나, 몰래몰래 숨어다니며 돌멩이를 던지는 액션. 하지만 그런 액션들에도 온갖 양념을 쳐서 긴박감을 만들어내는 작가들의 솜씨가 돋보였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동화에서는 이상한 나라의 묘사가 흥미를 끌었듯, "부적"에서는 마법세계의 묘사가 독자들의 흥미를 자아낸다. 여왕이 시름시름 앓고 있는 거대한 천막, 쏟아진 포도주를 마시고 주민들이 고주망태가 된 마을, 날개달린 사람들, 가축을 돌보는 늑대인간, 시장에서 보여지는 다양한 모습들, 흡사 지옥같은 채석장 등등등. 때로는 신기하고, 때로는 위험한 마법세계의 모습이 실감나게 묘사되어서 잭의 모험이 더한층 흥미롭게 다가온다. 소설 속에서는 이런 세계가 하나가 아니라 수도없이 많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건 "부적"시리즈를 언제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작가들의 속셈일까 아닐까? 실제로 "부적"의 속편 "블랙하우스 Black House"가 2001년 9월에 출간되었다. "부적"을 읽다보면 블랙호텔이 등장하는 부분에서 킹의 다크타워시리즈를 연상케 하는데, "블랙하우스"에서는 다크타워시리즈와의 연관성이 좀 더 명확하게 묘사될 것이라고 한다. 다크타워시리즈의 팬들에게는 멋진 선물이 될 것이다.

나는 "부적"을 너무너무 재미있게 보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 소설에 대해 불평하기도 한다. "분량이 너무 많다, 페이지 낭비다." 내가 읽었던 페이퍼백의 경우 770페이지였다. 확실히 "부적"은 무척 긴 소설이고, 중간중간에 소설의 직접적인 전개와는 상관없는 에피소드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실제로 킹과 스트라우브는 쓰다보니 분량이 너무 많아져서 원래 이야기에서 절반정도를 삭제했다고 한다. 내 생각에는 770페이지에서 더 뺏더라면, 이야기에 대한 설득력이 오히려 떨어져서 잭의 모험이 실감나게 다가오지 못했을 것 같다. 지금이 딱 좋은 것 같다.

오히려 "부적"은 분량보다는 사건전개가 단순하다는 특징이 있다. 위기의 순간에는 다른 세계로 도망치면 된다는 공식이 여러차례 반복된다. 마법세계에서 현실세계로, 현실세계에서 마법세계로. 그러나 책을 읽는 동안에는 이런 특징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긴장감이 내내 지속되었다. 솜씨좋은 작가의 스토리는 단순하고, 서투른 작가의 스토리는 복잡하다는 말이 있다. 서투른 작가일수록 독자의 눈을 끌기 위해 자꾸만 스토리를 복잡하게 꾸며내는 바람에 줄거리를 이끌어가지 못하고, 얽혀버린 줄거리 속에 파묻힌다는 것이다. 나는 단순한 전개를 반복하면서도 770페이지까지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 스티븐 킹과 피터 스트라우브의 솜씨가 그저 놀랍기만 하다. 여러분도 꼭 "부적"을 읽어보고, 길고긴 이야기 끝에 잭 소여가 영롱한 부적을 손에 쥐는 감동의 순간을 지켜봤으면 좋겠다. 770페이지까지 이어졌던 잭의 모험을 읽었던 것이 결코 시간낭비가 아니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속편 "블랙하우스"가 너무나도 읽고 싶어질 것이다. "부적"의 결말이 다소 갑작스럽게 끝나버린 듯해서 그 후로 잭 소여의 인생이 어떻게 되었는지 참 궁금하다. "블랙하우스" 읽고 싶어라~.

아참! 위에서 말한 A군이 현재 어떻게 되었는지 설명하는 걸 빼먹을뻔 했네. A군은 현재 서울 근교의 모 정신병원에서 입원치료 중이며, 요즘 상태가 호전되어서 자신이 지구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 피터 스트라우브 Peter Straub에 대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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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가 했었던 가장 끔찍한 일은 뭐지?

# 너한테 그런 걸 말하고 싶진 않아. 하지만 나에게 일어났었던 가장 끔찍한 일을 얘기해 줄께... 가장 소름끼치게 무서웠던 일을...

한 남자가 동네 놀이터에서 혼자 놀고 있던 여자아이를 납치한다. 차를 몰아 멀리까지 와서는 모텔에 투숙하게 되는데, 그날 밤 남자는 칼을 들이대며 잠든 여자아이를 깨우고서 질문을 던진다.

"너는 도대체 뭐냐?"

"다 알면서 왜그래."

"너는 도대체 뭐냐니까?"

"나는 너다."

"아니야. 나는 나야. 너는 너구."

"나는 너야..."

갑자기 모텔방이 뉴욕거리로 변해버린다. 그 거리에는 오래전에 죽었던 형이 칼을 든 남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위 내용은 피터 스트라우브의 소설 "Ghost Story"의 첫부분이다.

"부적"을 다루는 김에 킹과 함께 공동집필했던 피터 스트라우브라는 작가를 간단히 소개하겠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미국에서도 공포소설이 그리 인기있는 장르가 아니다.(미스테리/서스펜스 소설이 최고인기다.) 스티븐 킹을 비롯한 몇몇 작가들만이 팔릴 뿐, 다른 공포작가들은 그야말로 파리만 날리고 있다. 그 재능있는 몇몇 작가들 중 한명이 바로 피터 스트라우브이다.

스티븐 킹이 집필한 비평서 "죽음의 춤(Danse Macabre)"을 보면 공포소설에 관해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피터 스트라우브의 "Ghost Story"를 그야말로 격찬하는 부분이 장황하게 펼쳐지는데, 그 두사람이 친구사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교보문고에서 팔던 "Ghost Story"를 사서 읽어 보았다. 읽어보니... 앗 이렇게 재미있다니! 그 후에 또다른 스트라우브의 작품 "The Throat"도 읽어 보았는데, 역시 이번에도 앗 이렇게 재미있다니! 역시 킹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부적"을 공동집필할만한 재능있는 작가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피터 스트라우브의 소설작품으로는 "Ghost Story", "Shadowland", "The Talisman", "Koko", "The Hellfire Club" 등이 있다.

"Ghost Story"는 국내에 <고스트 스토리>라는 제목으로 번역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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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rts in Atlantis

(1999년 소설집)

 고등학교 졸업반이 된 스티븐 킹은 돈을 벌기 위해 공장에서 일했다. 낮에는 학교가서 수업받고, 그 후로는 거의 자정이 될 때까지 단순하지만 위험한 공장 일에 시달리는 생활을 매일 반복하며 돈을 벌었다. 소설가의 꿈을 키우며 투고하는 원고들은 허구헌날 퇴짜맞고, 고된 일상은 한도끝도 없이 계속되자, 킹은 삶에 지친 젊은 대한민국 청년들이 마지막 탈출구로 생각하는 일을 결심하게 된다. "확 군대나 가버릴까?" 그 당시 60년대는 베트남전이 한창이어서 대학에 들어가지 못한 청년들은 징집되어 전쟁터로 보내지던 시기였다. 킹은 엄마에게 군대 가겠다고 말했다. 전쟁을 직접 겪고 나면 멋진 소설을 쓸 수 있을 거라는 흐뭇한 계획과 함께.

킹의 엄마는 그 말을 듣고 버럭 화를 냈다. "병신같은 소리하지마, 스티븐. 너같이 눈도 안좋은 애가 어딜 간다는 거냐. 전쟁터에 나갔다간 제일 먼저 총맞아 죽을 거다. 죽은 다음에 소설 쓸래?"

결국 킹은 엄마의 뜻대로 할 수 밖에 없었다. 장학금을 신청하고, 대출을 받고, 공장에서 일해서 번 돈으로 겨우겨우 대학에 진학했다. 그리고 대학에서 베트남전을 지켜보았다.

킹에게 베트남전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60년대는 어떤 의미로 기억되고 있을까? 킹은 자신의 생각을 담아 1999년에 "Hearts in Atlantis"라는 소설집을 발표했다. 그 소설집을 우리나라에서는 문학세계사에서 "내 영혼의 아틀란티스"라는 제목으로 번역출간하였다.

"내 영혼의 아틀란티스"는 5편의 소설이 모여 있는 소설집이다. 각 작품마다 시간과 장소는 다르지만, 과거의 사건과 인물들이 불쑥불쑥 등장해서 작품들간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주면서 스티븐 킹이 생각하는 60년대가 미국인들에게 남긴 교훈을 독자들에게 이야기해 준다. 그럼 5편의 소설을 차근차근 살펴 보도록 합시다.


<1960년. 노란 코트를 입은 험악한 사나이들 Low Men in Yellow Coats>

11살 소년 바비 가필드는 "인생은 불공평해"라고 말하기를 좋아하는 홀어머니와 함께 살며, 돈에 쪼들려 산다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지 실감하며 지내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바비가 사는 아파트에 테드 브로티건이라는 노인이 이사를 온다. 바비는 테드와 친해지는데, 테드가 노란 코트를 입은 사나이들에게 쫓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바비는 테드와 같이 있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상황은 점점 불리하게 돌아가고, 바비의 인생에 커다란 변화가 생긴다.

"노란 코트를 입은 험악한 사나이들"은 "내 영혼의 아틀란티스"에 실린 5편의 소설 중 가장 길다. 그리고 이 소설집에서 유일하게 공포소설이라고 부를만한 작품이다. 직접 읽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나머지 4편의 작품들은 공포소설이 아니고 순수소설이다. 내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이 소설집에서 첫번째 이야기가 제일 재미있고 흥미진진했다.

 테드는 거의 매일 아파트에 숨어 지내는데, 바비는 그를 대신해 밖에 나가 노란 코트의 사나이들이 오는지 망을 봐주게 된다. 놈들이 나타나면 특별한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에 조금만 주의깊게 살펴 본다면 그들의 접근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특별한 일들이라는 것이 아주 별나서, 아주 사소한 것에도 의미를 부여해서 불안감을 만들어 내는 킹의 솜씨에 잔잔한 흥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은 테드와 노란 코트의 사나이들이 만들어 내는 긴장감 외에도 바비가 여자친구 캐롤 거버, 남자친구 존 설리반, 그리고 윌리 시어먼을 비롯한 불량학생들과 겪는 사건들이 맞물려 돌아간다. 그리고 이 사건들을 통해 바비는 점점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고 성장의 아픔을 겪게 된다. 이 소설 끝에 가면 독자들은 바비라는 소년과 한마음이 되어 그의 아픔에 슬픔을 느끼게 될 것이다. (슬픔을 못 느꼈다면 이 소설을 대충대충 건성으로 읽은 것이다.)

테드는 바비에게 윌리엄 골딩의 소설 "파리대왕"을 추천해 준다. 무인도에 표류한 아이들이 동물적인 본능에 사로잡혀 탐욕스런 살인을 벌인다는 내용이다. 여러분도 시간이 있으면 "파리대왕"을 한번 읽어보시길. "파리대왕"은 "내 영혼의 아틀란티스" 맨끝 이야기까지 줄기차게 등장하면서 이 소설 전체의 주제를 상징적으로 나타내준다.

"노란 코트를 입은 험악한 사나이들"은 스티븐 킹이 창조한 다크타워의 세계와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소설 속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이상한 세계의 묘사에 의아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크타워에 대해 몰라도 소설 이해에는 별 지장이 없으니, 그러려니하고 자연스럽게 읽어나가면 된다. (물론 다크타워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이 소설 속에서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바비의 엄마다. 그녀는 맨날 바비를 구박하고 심지어는 소설 속에서 여러차례 심각한 분위기를 초래하는 인물로 그려지는데, 나쁜 사람같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참 인간적으로 연민을 느끼게 된다. 무책임한 남편의 죽음으로 힘겹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험한 꼴을 당하고도 아들 앞에서 의연해져야 하는 그녀에게 누가 돌을 던질 수 있단 말인가? 돌 대신 돈다발을 던져주기 바란다.

나는 이 소설의 주인공 바비가 불가사의한 어둠의 힘과 접촉한 뒤로 거친 폭력성향에 사로잡히는 것을 보면서 또다른 킹의 소설 "로즈 매더"의 여주인공이 결말부분에서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끌어 안고 사는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스티븐 킹 소설의 주인공들은 엄청난 공포와 위기를 겪고 나면 인간의 연약함에 좌절을 느끼고 어둠의 감정에 끌려 다니는 걸까? 킹을 개인적으로 만나서 물어보고 싶어진다.


<1966년. 내 영혼의 아틀란티스 Hearts in Atlantis>

두번째 소설 "내 영혼의 아틀란티스"는 이 소설이 수록된 소설집과 제목이 같다. 그만큼 이 소설집의 주제가 잘 드러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도박의 세계에 와있는 듯한 느낌이 더 강하게 들지도 모른다.

이 소설은 대학 신입생 피트 라일리가 기숙사에서 트럼프카드 놀이의 일종인 하트에 빠져 학업도 팽개치고 노름에 목숨거는 상황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낙제를 받아 학교에서 쫓겨나면 꼼짝없이 베트남전에 끌려가야하는 상황인데도 기숙사 친구들과 하트에만 열중한다.(하트가 그렇게 좋은건지 체험해 봅시다. 컴퓨터에 보면 지뢰찾기, 솔리테어같은 미니게임들과 함께 나란히 하트게임이 들어있으니 즐겨보시라. 내가 하트게임을 하는 상대는 고소영, 김희선, 김혜수! 만약 컴퓨터에 하트게임이 깔려 있지 않다면 인터넷 게임자료실을 뒤지면 금방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하트로 청춘을 보내고 있는 동안 캠퍼스의 학생들 중에는 반전데모에 열심인 이들도 있다. 피트가 사귀고 있는 캐롤 거버(첫번째 이야기에서 바비의 여자친구로 등장했던 인물)도 그런 운동권학생 중 한명인데, 피트는 그런 그녀를 불안하게 지켜보고 있다. 어느날 캠퍼스에 둥근 원 속에 새발자국이 찍힌 것 같은 모양을 한 평화의 기호와 함께 베트남전을 비난하는 낙서가 그려지고, 기숙사에서는 낙서의 범인을 색출하기 위해 학생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은다. 그리고 그 곳에서 벌어지는 재치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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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두번째 소설은 소설집과 같은 제목을 한 것부터 시작해 여러가지로 범상치 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학업을 중단하고 엄마에게로 돌아간 캐롤은 한번 읽어보라면서 피트에게 "파리대왕" 소설책을 보내주는데, 그 책 속에 위의 배너에 보이는 암호 "사랑+평화=정보"를 써넣었다. 도대체 그게 뭔 뜻이란 말인가?("정보"라는 단어는 미국의 고전 TV시리즈 "죄수"라는 생소한 프로에서 따온 말로서, 한국의 독자인 나로서는 그저 대책없이 그런가보다할 뿐이다.) 단순과격한 B급예술의 세계를 동경하는 B급소년인 나로서는 이런 심오한 상징과 주제 앞에서는 자꾸만 작아진다. 암호의 뜻은 잃어버린 인간의 낙원 아틀란티스대륙으로 가는 정보를 얻으려면 사랑과 평화가 꼭 있어야 한다는 뜻인가? 사랑과 평화가 함께 하면 유익한 정보가 굴러 들어올 것이라는 뜻인가? 모르겠어...모르겠어...

더 당황스러운 건 주인공 피트는 캐롤이 적어 보낸 이 암호를 보고는 막 울어버린다는 것이다. 아니 얘가 왜 우는 걸까? 스티븐 킹이 어떤 의미를 넣어서 집필한 부분일텐데, 난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괴로웠다. 남들이 재미있는 얘기를 하면서 막 낄낄 웃고 난린데, 나 혼자 못 알아듣고 눈만 껌뻑껌뻑 어리둥절해하는 듯한 느낌에 빠져 괴로웠다. 역시 난 B급이 체질이야. 나에게는 "미녀와 왕송충이"같은 소설이 어울리는데. (더 당황스러운 건 이 암호가 소설집 끝에서 또다시 등장한다는 것이다. 도대체 뭔 뜻이길래...)

소설 마지막에서 세월이 흘러 나이 든 피트와 친구가 "그때 우리는 누구나 우리가 현재의 모습과는 다른 무엇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그게 아니었지", "황금인간이라고 생각했지. 나중엔 정신을 차렸지만 말이야." 등등의 말을 할 때도 혼란은 계속됐다. 도대체 무엇을 반성하고 있는 것인지? 하트나 치며 사회에 관심을 두지 않던 거? 반전데모하던 거? 사랑과 평화의 의미를 잘못 이해하던 거? 나에게는 의문의 연속이었다.

이 소설은 베트남전을 경험못한 미국의 신세대 젊은이들이 선뜻 공감하기 어려운 정서를 깔고 있다고 생각한다. 소설의 많은 부분을 하트얘기로 채우고 정작 베트남전과 반전데모에 관련된 주제는 심오한 암호같은 표현들에 가려져 버린 것 같다. 뭔가 아련한 슬픔같은 것이 느껴지는 것 같은데, 그게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소설의 3분의 2까지는 정말 좋았다. 세상에 이렇게 재미있는 소설이 있네하고 감탄하며 읽었지만, 마지막 3분의 1- 피트가 캐롤의 암호를 보는 순간부터 내가 감당키에는 버거운 관념의 세계로 올라가 버린다.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을 좀 더 명확하게 표현했더라면 좋았을텐데. 내 생각엔 스티븐 킹이 자기 세대의 과거사를 "우린 그땐 그랬었지!" 식으로 좋게좋게 표현하다보니 좀 오버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난 이 소설에서 심각한 주제는 지나치고 그냥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사랑, 질투, 집착, 두려움, 때늦은 후회)를 느끼며 편안하게 읽었다.

이제까지 두번째 이야기에 대해 별로 안좋은 얘기들만 죽 늘어 놓았지만, 사실 이 소설은 정말 재미있다. 진짜다.(불꽃튀는 러브신도 나온다.) 철없는 대학 신입생들과 하트도박과 평화기호 낙서사건이 어울려 돌아가며 아기자기한 재미를 선사한다. 특히 기숙사 안에서 낙서의 범인색출을 놓고 벌어지는 기숙사측과 학생들의 기싸움/말싸움은 소설읽기의 재미를 선사해 주었다. 여러분도 꼭 이 소설을 읽어 보고 자신만의 느낌을 가져보기를 추천한다. 여러분이 이 소설을 읽고나면 나를 욕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렇게 멋진 소설에 도대체 흠잡을 데가 어디있느냐고. 그때는 제가 단순미학을 추구하는 B급소년이라는 것을 감안해서 용서해주시길 바래요. (나쁜 점만 말하다가 막판에 가서야 좋은 얘기를 늘어놓다니. 마치 병주고 약 준 느낌이다. 스티븐 킹 미안해요. 나중에 만나면 한잔 살께요. 막걸리 좋아하시죠?)


<1983년. 장님 윌리 Blind Willie>

세번째 이야기 "장님 윌리"는 첫번째 이야기에서 바비와 캐롤을 괴롭히던 불량학생들 중 한명인 윌리 시어먼이 주인공이다. 이 소설은 그의 하루 일과를 집요하게 추적한다.(너무 집요해서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는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부상을 입고 시력이 약해진다.(그러나 완전 장님은 아니다.) 현재는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가는 곳마다 가명을 쓰고 변장을 하고는 거리에서 상이용사 장님으로 행세하며 구걸을 한다. (수입은 굉장히 좋다. 사무실까지 갖추고 있을 정도니.) 사업에 어려운 점은 좀 있지만 그런대로 참아 넘기며, 집에서는 사랑받는 남편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며 하루 일과를 평화롭게 마감한다.

이 소설은 윌리가 겪는 베트남전의 상처와 혼란을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그토록 괴로워하는 베트남전이지만 그걸 구실로 거리에서의 구걸에 이용하는 모습은 참 아이러니하다. 먹고 살려고 과거의 악몽을 매일같이 끄집어내 돈벌이에 이용하다니. 참으로 끔찍한 인생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자신의 모습을 가명 속에 감추고 사는 일에 익숙해진 것 같다. 소설 마지막에 가면 그는 자신의 사업에 방해되는 일을 해결하기로 결심하는데, 그때마저도 가명을 지어내서 자신을 합리화시킨다. 그야말로 전쟁이 만들어낸 모순적 인간이라 할만하다.

이 소설은 1994년 다른 작가들과의 공동작품집 "Antaeus No 75/76"과 1997년 킹의 한정판 소설집 "Six Stories"에 실렸었던 것을 "내 영혼의 아틀란티스" 분위기에 맞게 고쳐 쓴 것이다.


<1999년. 우리는 왜 월남에 갔던가 Why We're in Vietnam>

네번째 이야기 "우리는 왜 월남에 갔던가".

첫번째 이야기에서 바비 가필드의 친구로 나왔던 존 설리반의 이야기다. 그는 지옥같던 월남전에서 돌아온 뒤로 중고차 판매를 하며 그럭저럭 지내지만, 수십년 전 전쟁의 악몽으로부터 전혀 자유롭지 못하다. 전쟁터에서 동료가 살해했던 베트남 할머니 귀신이 그를 졸졸 따라 다니기까지 한다. 그런 그가 동료 참전용사의 장례식에 갔다오는 길에 일생일대의 초자연적 현상과 만나게 된다.

존이 동료의 장례식장에서 예전의 부대장교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과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겪는 일이 번갈아가며 서술되는 형식으로 소설이 진행된다. 소설 내내 전쟁의 후유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가 흘러 나온다. 그리고 소설은 그런 전쟁 후유증은 죽을 때까지 갖고 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환상적"으로 보여준다.

앞서도 말했듯이 "내 영혼의 아틀란티스"에서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은 소설은 첫번째 얘기 "노란 코트를 입은 험악한 사나이들"이었지만, 가장 인상깊게 읽은 소설은 네번째 얘기 "우리는 왜 월남에 갔던가"이다. 흔히 문학평론가들이 남미문학을 말할 때 '마술적 리얼리즘'이란 용어를 쓰곤 하는데, 그게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이 네번째 얘기가 그런 용어에 딱 어울릴 것 같다. 네번째 이야기 마지막 부분에 가면 환상이 극에 달해 도리어 현실처럼 느껴지는 장면이 등장한다. 나는 그 장면에서 흐르는 강렬한 에너지에 이끌려 마구 폭주하며 읽었었다. 요근래 책을 읽으며 흥분해 보긴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그 장면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에 대해 입도 뻥끗 안하겠다. 여러분도 모두들 책을 구해서 읽어보고 나와 같은 감정을 느껴봤으면 좋겠다. 정말 멋져!


<1999년. 밤의 거룩한 장막이 내리다 Heavenly Shades of Night are Falling>

마지막 다섯번째 이야기 "밤의 거룩한 장막이 내리다"는 아주 짧다. 다섯번째 소설이라고 말하기보다는 앞선 네가지 이야기들을 차분하게 정리하는 에필로그 정도로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들이 과거의 중요한 장소와 물건들과 뜻하지 않게 만나게 되어 지난 날들을 돌아보고 아련한 감정한 빠진다는 내용이다. 잔잔한 마무리가 소설집의 끝을 장식하며, 독자들의 머리 속에 앞의 네가지 이야기들을 다시 한번 생각나게 만들고, 마음 속을 따뜻한 감정으로 물들게 할 것이다.


평소 킹의 작품들 속에서 -예를 들자면 Different Seasons같은 작품들- 비쳐지던 문학적 감성을 사랑했던 독자라면, "내 영혼의 아틀란티스"가 멋진 선물이 될 것이다. 그만큼 이 소설집은 킹이 거친 공포의 세계를 잠시 접어두고, 메마른 인간의 마음과 아픔의 인생을 직접적으로 다룬 문학소설이다. 평소 킹은 자신이 그저그런 대중소설 작가라고 겸손하게 말하곤 했지만(그의 진짜 속마음은 알 길이 없다), 이번 소설집은 그의 능력이 결코 공포장르에만 제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렸다.

"내 영혼의 아틀란티스"는 "공포소설"로서의 재미는 덜하지만, "소설"로서의 재미는 뛰어나다. 많은 사람들이 이 소설집을 통해 스티븐 킹의 감수성과 가까워지는 기쁨을 누리길 기대한다.

"내 영혼의 아틀란티스"는 안소니 홉킨스 주연으로 영화화되었다. 국내에는 "하트 인 아틀란티스"라는 제목으로 비디오와 DVD가 출시되었다. 원작소설을 읽고난 후 영화를 보게 되면 감회가 새로울 것이다.

마지막으로 "내 영혼의 아틀란티스"와 관련있는 작품을 하나 소개하면서 이 감상문을 끝맺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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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의 "출판인생 25주년 기념파티"에서는 참석자들에게 얇은 책 한권이 선물로 주어졌다. 그 책은 킹이 설립한 출판사 Philtrum Press에서 펴낸 것인데, 검은색 표지에 평화의 기호가 그려져 있었다. 책의 제목은 "The New Lieutenant's Rap". "내 영혼의 아틀란티스" 중 네번째 이야기 "우리는 왜 월남에 갔던가"를 킹이 다시 쓴 것인데, "우리는 왜 월남에 갔던가"보다 분량이 더 많고 줄거리도 좀 다르다고 한다. 그리고 "The New Lieutenant's Rap"은 킹이 직접 손으로 쓴 자필원고가 그대로 인쇄되어 있다. 더 좋은 것은 이 책과 함께 평화의 기호 장식이 달린 목걸이도 선물로 따라왔다는 것이다. 기념파티에 모인 사람들 정말 좋았겠다. (이제 알겠죠? 킹과 개인적으로 친하게 되면 공짜선물의 행운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그 후 "The New Lieutenant's Rap"은 킹의 팬들 사이에서 수집용으로 거래되었는데, 가격이 수천달러를 호가한다. (이제 알겠죠? 그 기념파티에 모였던 사람들이 선물받은 책을 팔아 한몫 단단히 챙겼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