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티븐 킹 번역서를 꾸준히 출간하는 일본 문예춘추 출판사가 2024년이 스티븐 킹 데뷔 50주년이라는 것을 축하하여 "데뷔 50주년 기념! 스티븐 킹을 50배 즐기는 책"을 무료 전자책으로 출간했습니다.

이 책에는 스티븐 킹 번역서의 번역가와 편집자의 대담, 스티븐 킹 소설 대표작 가이드, 2018년 단편소설 "Laurie" 번역문 등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 스티븐 킹의 2021년 장편소설 "빌리 서머스"가 대만에서 번역출간되었습니다.

페어리 테일 / Fairy Tale

작품 감상문 2023. 5. 5. 23:41 posted by 조재형

F a i r y   T a l e

(2022년 장편소설)


어렸을 때 사고로 어머니를 잃은 17세 소년 찰리는 다른 차원의 세계로 갈 수 있는 통로를 발견하게 된다.

스티븐 킹 장편소설 "Fairy Tale"은 찰리가 이 통로를 이용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는 이세계 모험담이다.

다른 차원의 세계에 관하여 조금이나마 예습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던 찰리는 신비로운 통로를 지나 그 세계를 여행하면서 나름대로 목적이 있었다.

그것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목적이었기에, 찰리의 여정을 따라가는 동안 나는 찰리가 무사히 그 목적을 완수할 수 있을지, 완수하더라도 과연 좋은 일만 있을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책을 읽어나갔다.
(스티븐 킹의 1983년 장편소설 "애완동물 공동묘지"에서 자연의 섭리를 거스른 주인공이 어떤 안좋은 일을 겪었는지 자꾸 생각이 났다...)

다른 차원의 세계를 여행하면서 찰리는 낯선 풍경과 낯선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이 세계가 마치 동화 나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됨과 동시에 모든 것이 강력한 악의 힘에 오염되어 썩어버렸고 현재도 더 썩어들어가고 있으며 누군가가 악을 막지 않는다면 이 곳이 완전한 파멸로 치달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찰리는 낯선 세계에서 공주, 귀족, 평민 같은 여러 계층의 사람들을 만날수록 이들이 구원자가 출현하기를 기대하고 있으며, 그 사람들의 눈길이 갑자기 나타난 찰리를 주목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부담감을 느낀다.

찰리는 자기가 디즈니 영화의 왕자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상황이 계속 찰리를 고단한 영웅의 길로 인도한다.

그래서 악의 세력과 맞서는 투쟁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데, 소설 후반에 찰리의 행동이 이해가 안가서 고개를 상당히 갸웃거리게 되었다.

소설 마지막에는 세상의 파멸을 막기 위한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찰리가 동료와 함께 다급하게 이동해야하는 상황이 나오는데, 그 촉박한 순간에 찰리가 자꾸 샛길로 빠지자고 요구하는 것이다.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면 세상이 망하는 것이고, 그 임무를 완수하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어떤 방법을 사용해야하는지 확실하지 않은 위험한 상황인데도 동료의 반대를 무릅쓰고 샛길로 빠지자고 조르는 찰리를 보고 있자니 "쟤 왜 저래?"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혹시 샛길로 빠지면 세상의 파멸을 막는 임무에 도움이 되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샛길로 빠진 주인공이 하는 것은 파멸 방지 임무와 별 관련이 없었다. 일의 우선순위를 무시하고 저지른 일치고는 영양가가 없었다.

그리고 나중에 찰리는 공주의 지인들과 대화하면서 갑자기 그들의 비겁함에 대하여 모질게 비난을 하는데, 이쪽 세계가 약속된 구원자를 기다리는 세계관으로 짜여져있고 이 지인들에게는 악의 무리 때문에 생긴 개인적인 아픔과 사정이 분명히 있을텐데도 그것을 무시하고 급발진해서 이들을 비난하는 찰리를 보고 있자니 "쟤 왜 저래?"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공주한테는 "아이고 우리 아름다운 공주님, 우쭈쭈 우쭈쭈~"하면서 좋은 말만 건네는 모습과 너무 대조적이어서 어리둥절한 느낌만 든다.

소설 후반부의 이런 이해되지 않는 찰리의 행동만 제외하면 "Fairy Tale" 소설을 전체적으로 재미있게 잘 읽었다.

다른 세상으로 이동 가능한 통로를 만나기 전까지 찰리 주변의 이상한 사건들을 쌓아나가는 분위기도 좋았고, 다른 세상으로 넘어와서 목표 지역까지 가는 과정에서 신비롭고 기괴한 상황들을 보여주는 연출도 좋았다.

악의 세력 한가운데로 떨어져 고난을 겪고 떨쳐 일어나 투쟁하는 이야기도 좋았고, 책을 다 읽고 나니 찰리와 함께 실제로 그 황폐한 동화의 나라에 여행을 다녀온 것 같은 기분까지 들었다.

장편소설 "Fairy Tale"에는 부상당한 노인이 다리 재활치료를 받으며 심한 고통에 몸부림치는 장면이 실감나게 나오는데 이 부분을 읽으며 나는 자연스럽게 스티븐 킹을 떠올렸다.

1999년 산책을 나갔다가 교통사고를 당하여 심각한 부상을 당했던 스티븐 킹은 수술받은 후 꽤 오랫동안 재활치료를 받아야 했는데, 2002년 스티븐 킹은 개인적으로 글쓰기는 계속 하겠지만 책 출간활동은 더 이상 하지 않겠다면서 작가 은퇴 선언을 해버린다.

장편소설 "Fairy Tale"이 나온 것만 봐도 지금은 작가 은퇴 선언이 말도 안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2002년 당시의 스티븐 킹은 은퇴 선언에 무척 진지했다.

나중에 한 인터뷰에서 스티븐 킹은 은퇴 선언을 했던 이유를 밝혔는데, 교통사고 때문에 재활치료를 받으면서 오랫동안 계속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다보니 기분이 너무 안좋아서 충동적으로 은퇴 선언을 하고 말았던 것이라고 한다.

작가 은퇴를 진지하게 공표할 정도로 지독하게 자신을 괴롭혔던 통증의 아픈 기억을 바득바득 끄집어내서 "Fairy Tale" 소설 쓰는데 활용하다니...

다른 직업도 마찬가지겠지만, 작가라는 직업도 참 지독하다는 생각이 든다;;;

p.s. 이 작품은 2023년에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페어리 테일"이라는 제목으로 번역출간했다.

☞ 스티븐 킹의 1973년 단편소설을 각색한 영화 "The Boogeyman"의 새로운 예고편이 공개되었습니다.

☞ 스티븐 킹이 리처드 바크먼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1979년 장편소설 "롱 워크"가 미국에서 한정판 양장본으로 출간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