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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unslinger

The Dark Tower 1

(1982년, 2003년 소설)

아주아주 먼 옛날, 미국의 메인대학에 3명의 학생이 있었다. 그들은 어느 날 학교 도서관에서 원고용지로 쓰면 딱 좋을 다양한 색깔의 종이뭉치들을 얻게 된다. 노란 종이는 데이빗 라이언스, 파란 종이는 태비사 스프루스, 녹색종이는 스티븐 킹이 집으로 갖고 간다. (스티븐 킹은 그 원고종이가 "마법"의 종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그 종이를 가져간 3명의 학생 모두 오늘날 작가가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태비사와 스티븐은 부부 사이가 되었다.)

그 당시 스티븐 킹은 학교에서 가까운 곳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다. 그 집은 무섭도록 조용한 곳이었다. 왜냐하면 방을 같이 쓰던 3명의 룸메이트들이 성적불량으로 퇴학당했기 때문에, 킹이 자취집을 혼자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섭도록 조용했다. 킹의 증언에 의하면 마치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열개의 인디언 인형"에 나오는 마지막 생존자가 된 기분이었다고 한다.

킹은 대학 2학년 수업 때 로버트 브라우닝의 시 "Childe Roland"를 접하고서 강한 인상을 받고, 그 시를 토대로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여러가지 할 일이 많아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그러나 드디어 때가 왔다. 킹의 마음 속에 엄청난 작품을 써내고야 말겠다는 굳은 의지가 샘솟았다. 대학 4학년이던 1970년 3월의 어느 날 밤. 무섭도록 조용한 자취집에서 책상에 앉은 스티븐 킹은 낡은 타자기 속에 도서관에서 가져온 녹색의 "마법" 종이를 끼워 넣는다. 그리고는 한 줄의 강렬한 문장을 타자기로 썼다.

The man in black fled across the desert and the gunslinger followed.

검은 남자는 사막으로 도망쳤으며, 총잡이는 그 뒤를 쫓았다.

이것이 바로 스티븐 킹의 역작 "다크 타워 시리즈"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다크 타워 시리즈는 킹이 창조해낸 환상소설 시리즈로서, 계획상으로는 전체 시리즈가 약 3,000페이지 정도의 길고 긴 작품이 될 것이라고 한다. 다크 타워의 세계는 굉장히 매혹적인 이미지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킹의 팬이라면 꼭 읽어 볼 것을 강력추천한다. 킹이 대학생 시절부터 현재까지도 줄기차게 시리즈를 발표하고 있는 작품이어서 그의 소설인생의 진수가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소개할 책은 다크 타워 시리즈의 제 1편 "The Gunslinger"이다. 국내에는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최후의 총잡이", 잎새 출판사에서 "총잡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  "암흑의 탑: 건슬링거"(도서출판 귀인)라고 출간된 책도 있다.

"최후의 총잡이"는 12년 동안의 작업 끝에 완성을 본 작품이다. 위에서 소개한대로 "마법"의 종이에 첫 문장을 쓴 이후 킹은 그 자취집에서 "최후의 총잡이"를 약 3분의 1 정도 썼다. 그 이후에는 다른 작품들을 집필하느라 "최후의 총잡이"는 뒤로 미루어졌다. 그러나 "캐리 Carrie", "샤이닝 The Shining" 등의 장편소설들을 발표하는 와중에서도 킹은 단 한 순간도 다크 타워의 세계를 잊을 수가 없었다. (사실은 킹의 또다른 역작 "스탠드(The Stand)"를 집필할 때만은 잠시 다크 타워의 세계를 잊었다고 한다.) 그래서 틈틈이 꾸준한 작업 끝에 1970년에 시작한 작품을 1982년에 발표하게 되었다.

검은 남자는 사막으로 도망쳤으며, 총잡이는 그 뒤를 쫓았다. 총잡이의 이름은 롤랜드. 다크 타워 세계에 유일하게 남은 마지막 총잡이다. 그의 인생목표는 다크 타워(The Dark Tower)에 가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 전에 우선 검은 남자를 잡아야만 했다. 롤랜드는 검은 남자의 함정에 빠져 위기를 겪으면서도 집요하게 추격 중이다. 그러다 사막에서 제이크라는 어린 소년을 만난다. 제이크는 뉴욕에 사는 부잣집 도련님인데, 검은 남자의 음흉한 계획에 걸려들어 롤랜드의 세계로 오게 된 것이다. 롤랜드는 어린 소년을 험한 사막에 혼자 둘 수 없어 같이 동행하게 되는데, 마음 한구석이 찜찜하다. 검은 남자의 음모로 여기까지 왔다면 이 소년은 나를 해꼬지하려는 함정이 아닐까? 그러나 의젓하게 행동하는 제이크에게서 롤랜드는 차츰 정을 느끼게 되고, 끝없이 계속되는 추격 끝에 드디어 검은 남자와 만나게 된다.

"최후의 총잡이" 주인공 롤랜드는 소설 속에서 전통적인 착한 영웅상과는 완전히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수십명의 적들에 맞서 쌍권총으로 대항하느라 총알 장전-발사-총알 장전-발사를 기계적으로 반복하며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어린 아이를 포함해서 수십명에게 대학살을 감행하는 롤랜드에게서는 냉정하고 메마른 이미지가 느껴진다. (어린 아이는 롤랜드의 총에 머리가 날아갔는데, 겁도 없이 주인공의 허벅지에 칼침을 놓았으니 죽어도 할말 없다. 감히 엑스트라가 주인공님의 옥체에 흠집을 내다니!) 특히 롤랜드가 남자의 정에 잔뜩 굶주린 여자 귀신과 환각제를 복용한 채로 거래를 나누는 장면에 가면, 롤랜드는 정의사회 구현, 권선징악, 자연보호, 쓰레기 분리수거, 파란 마음 하얀 마음 등과 같은 것들에는 눈꼽만큼의 관심도 없이 오직 생존본능에 충실한 거친 사내라는 것이 확실해진다.

소설 속에서는 틈틈이 롤랜드의 어린 시절이 언급되어서 그가 현재의 비정한 성격을 가지게 된 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엄격한 선생님 밑에서 행해지던 혹독한 총잡이 훈련, 아버지의 부하인 마법사 마튼과 바람을 피우는 엄마, 홧김에 치루게 되는 목숨을 건 성인식 결투. 어린 시절에 경험하는 반항과 분노의 감정이 드러나고 있다.

"최후의 총잡이"를 시리즈 소설 중 한 작품이 아니라 그냥 완전한 하나의 작품으로서만 본다면 아주 불친절하고 허전한 작품으로서 기억될 수도 있다. 도대체가 소설 속에서 꼬리를 물고 나타나는 의문들을 명확하게 알려 주지도 않고서 끝을 맺기 때문이다.

롤랜드는 왜 다크 타워에 가려고 하는가? 정체를 전혀 알 수 없는 검은 남자를 죽어라 기를 쓰고 쫓게 된 이유는? 다크 타워 세계는 오래 전에 거대한 변화를 일으켜서 황폐해 졌다고 하는데 정확한 원인은? 롤랜드가 어릴 때 살던 나라에 혁명이 일어나서 총잡이들이 전투에 동원되었다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무슨 혁명? 롤랜드의 아버지는 살해되었고 나중에 롤랜드가 복수했다고 하는데 그 정확한 내막은? 사랑하는 여인 수잔이 불에 타 죽는 것을 무기력하게 지켜보아야만 했던 이유는? 총잡이 훈련을 같이 받았던 단짝 친구들이 죽은 이유는? 거기에다 롤랜드가 "마지막" 총잡이가 된 사연은?

수많은 의문들이 생겨나지만 대부분 설명없이 그냥 지나치거나 모호하게 처리되어 버린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총잡이"는 다크 타워 시리즈의 첫번째 작품이고, 다크 타워 시리즈는 어림잡아 총 3,000페이지 분량의 긴 작품이기 때문이다. 겨우 제 1편에서 모든 것을 다 풀어낼래야 낼 수도 없을 것이다. 게다가 스티븐 킹은 "최후의 총잡이"를 쓸 당시 롤랜드와 다크 타워 세계에 대해 속속들이 잘 알지도 못했다. "최후의 총잡이" 소설 뒤에 실려 있는 작가 후기에서 킹은 위에 열거한 의문들에 대해 "사실 나도 잘 몰라요"라고 답하고 있다. 그는 그저 머리에 떠오르는대로 손이 가는 대로 그때그때의 감정에 충실해서 작품을 써내려간 것이다. 이런 그에게 왜 1편에 설명이 부족하냐고 따지는 것은 겨울에 추위를 너무 타는 체질이라서 빨간 내복을 7559벌 껴입은 사람한테 우선 팬티만 벗어달라고 재촉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고 다크 타워 시리즈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여러가지 궁금한 점들은 다크 타워 2편, 3편, 4편....을 거듭하면서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후의 총잡이"는 롤랜드와 제이크가 검은 남자를 잡기 위해 사막을 건너고 산을 타고 어둠의 터널을 지나는 길고긴 과정을 담고 있어서 처음부터 무자비한 총싸움같은 것을 기대한 사람에게는 지루하게 느껴질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속에는 아기자기한 모험이 들어있어서 쏠쏠한 재미를 경험할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마지막 후반부에는 이 책의 백미, 정수, 결정체, 핵심, 노른자위, 전략 요충지라고 할 수 있는 긴장되고 웅장하고 매력적인 장면이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

마지막에 가면 드디어 롤랜드는 검은 남자와 만나게 되는데, 흥분해서 총을 가지고 설쳐대는 롤랜드에게 검은 남자는 "형씨, 흥분하지 말고, 우리 대화로 풀읍시다."라며 토끼고기를 내놓는 등 갖은 접대를 다한다. 그리고는 태로우 카드(tarot card)로 롤랜드의 미래를 예언해 주고, 다크 타워의 존재에 대해 설명해 준다. 이 장면이 "최후의 총잡이" 중 핵심장면이면서 다크 타워 시리즈 전체의 세계관을 설명하는 중요한 암시를 해준다. 굉장히 웅장하고 흥분되고 눈 앞이 번쩍번쩍거리는 듯한 전율이 느껴지는데 (이 장면을 읽으면서 내가 느꼈던 굉장한 감정을 정확히 글로 설명할 수 없어서 안타깝다.), 다크 타워의 세계를 설명하면서 호수 속의 물고기, 알 속의 병아리, 잘려진 풀잎 한포기 등 온갖 상징과 비유를 총동원해서 우주의 생성과 인간의 생명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최고의 존재 다크 타워를 설명한다. (나는 영문판으로 읽어서 이 장면들을 번역판에서는 어떻게 우리말로 풀어냈을지 궁금하다.)

그리고 "최후의 총잡이"는 제 2편을 암시하며 막을 내리게 된다. 그리고 당장 2편을 구해다 읽고 싶다는 강한 유혹에 몸부림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최후의 총잡이"는 마약같은 작품이 틀림없다. 종이와 활자로 이루어진 강력한 마약. 향정신성 의약품 소설. 아~ 나는 이제 다크 타워 세계의 중독자가 되었단 말인가~.

소설 속에서 묘사되는 다크 타워 세계는 황폐하고 비참한 이미지로 표현되고 있다. 롤랜드가 들렀던 마을은 마치 서부시대 마을을 연상시키는 분위기인데, 사람들은 하나같이 거칠고 음흉하고 빛이 바랜듯한 모습이다. 한편으로는 우리의 현실세계가 수백년, 수천년, 수만년이 흐른 뒤에 변해버린 폐허같은 모습들이 보이기도 한다. 비틀즈의 "헤이 쥬드" 노래가 흘러 나오고, 버려진 지하철 역이 등장하는 식이다. 과학과 마법이 똑같이 전설로서만 존재하는 세계. 하지만 한쪽 구석에서는 엄연히 과학과 마법이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세계. 다크 타워의 세계.

이런 타크 타워 세계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어떤 것이 좋을까? 롤랜드는 사막을 지나던 중 한 남자를 만나서 같이 식사를 하게 된다. 그런데 이 남자가 터프하게 생긴 외모와는 달리 얌전하게 식사 전 기도를 올리는 것을 보고 롤랜드는 흥미를 느낀다. 그래서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터프 기도를 본 김에 퀴즈를 하나 낸다. "당신은 사후세계를 믿으시오?" 터프남이 대답한다. "여기가 사후세계지 뭐." 멋진 표현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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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은 나중에 다크 타워 5, 6, 7탄을 집필하면서 1탄에 대해 염려스런 마음이 생겼다. 1탄을 집필했을 때는 다크 타워 시리즈가 어떻게 진행될 지 전체적인 구조를 알지 못했었기 때문에 수십 년이 지나 집필하게 된 다크 타워 시리즈 후반부와 제대로 연결이 안 되는 부분들이 있었다. 그래서 킹은 시리즈의 전체적인 연관성을 이어나가기 위해 2003년에 1탄 "최후의 총잡이" 개정확장판을 출간하기에 이르렀다. 이 개정확장판이 최초 출간판에서 전체적인 이야기 구조가 많이 바뀐 것은 아니다. 전체적인 모습은 유지하면서 기존의 등장인물과 사건을 시리즈 뒷부분과 매끄럽게 이어지도록 부분적인 변화를 주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변화라면 개정확장판에서 마법의 숫자 19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1탄에 나오는 요소들이 거의 다 그렇듯이 19에 대해 자세한 설명은 안 해주고 독자들의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이 마법의 숫자 19는 다크 타워 시리즈의 후반부에 등장해서 그 정확한 의미를 알려주게 될 것이다.

다크 타워 시리즈는 영화화된 적이 없다. 그러니 동네 비디오 가게에 가서 테이프 달라고 행패를 부리고 떼를 써도 소용없다. 스티븐 킹의 팬을 자처하는 영화감독들이 많으니 언젠가는 영화화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킹의 팬들에게는 톨킨의 "반지의 제왕" 영화화와 맞먹는 굉장한 사건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