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적 / The Talisman

작품 감상문 2007. 5. 12. 00:16 posted by 조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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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alisman

(1984년 소설)

(이 이야기는 실제 일어났던 사건입니다.) 성적추락때문에 부모님에게 심한 꾸중을 듣고서 밤 늦게까지 괴로워하며 우울해하던 중3학생 A군. 문득 창문을 보다가 비행접시가 마을 뒷산에 추락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A군이 뒷산으로 달려가보니 빛나는 비행접시에서 꼴뚜기처럼 생긴 우주인 둘이 나와서 A군에게 말을 건다. "우리는 맥도날드성운 햄벅THX-12 롯데리아행성에서 왔습니다. 평화롭던 치즈버거왕조를 쿠데타로 무너뜨리고 수십년동안 독재정치로 탄압하는 후렌치후라이장군에게서 도망온 것입니다. A군, 놀라지 마시오. 당신은 사실 후렌치후라이놈에게 억울한 죽음을 당한 치즈버거왕이 지구로 피신시킨 왕자 치즈버거 3세입니다. 지금 당신을 키우고 있는 부모는 친부모가 아니란 얘기죠. 그깟 성적때문에 애를 괴롭혀서야 계모, 계부가 아니고 뭐겠어요? 자, 롯데리아행성으로 갑시다. 지금 독재정권의 종말을 바라는 온 국민이 왕자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왕자님이 후렌치후라이를 물리치시고 우리 행성에 평화를 가져다주기를 말입니다. 자~ 그럼 렛츠고!" A군은 꼴뚜기 우주인에 이끌려 비행접시를 타고 우주를 날아간다. 지구의 부모님을 떠나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가슴이 설레여 두근거린다. 앞으로 펼쳐질 미지의 세계에서의 모험을 생각하며...

이 얼마나 가슴벅찬 이야기인가! 형편없이 무능력하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사실은 거대한 악에 맞서 평화를 지키기 위해 운명적으로 선택된 영웅이었다니. 이런 류의 모험담은 언제나 현실에 지친 사람들을 열광시켰고, 그 덕분에 수없이 많은 얘기들이 지금까지도 만들어지고 있다.

지금 소개하는 "The Talisman"도 운명적인 모험얘기를 다루고 있다. 스티븐 킹이 동료작가인 피터 스트라우브 Peter Straub와 함께 집필한 이 소설은 도서출판 밝은세상과 나나 출판사와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부적"이라는 제목으로 한국판을 출간했다.

열두살 소년 잭 소여. 잭은 불의의 사고로 아버지를 여의고, 한때 영화배우였던 어머니와 함께 텅빈 호텔에 숨어 지내고 있다. 아버지의 동업자가 자꾸만 어머니를 괴롭혔기 때문에 도망쳐 나온 것이다. 더욱 가슴아픈 건 어머니가 암으로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나날이 병색이 짙어가는 어머니를 보며 슬픔에 잠겨 있던 잭 소여는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된다.

현실세계와 연결되어 있는 마법세계가 존재하고 있으며, 현실세계의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마법세계에 분신이 있다는 것이다. 잭 어머니의 분신은 마법세계에서 여왕으로 존재하고 있는데, 잭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다.(그러니까 잭은 마법세계의 왕자님이시다.) 잭 어머니와 마법세계 여왕을 구하기 위해서는 부적이라고 불리우는 신비한 물체를 손에 넣어야만 한다. 자신이 부적을 손에 쥘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선택받은 인간임을 알게 된 잭은 두렵지만, 어머니와 여왕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마법세계로 뛰어든다. 효자 잭 소여. 그의 앞에는 마법세계와 현실세계를 오가는 엄청난 시련의 모험이 펼쳐지려 하고 있었다.

나는 원래 모험이야기를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이 소설 "부적"을 읽으면서 흥미진진했다. 어린 소년이 현실세계와 마법세계를 왔다갔다하며 두려움과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어머니를 위해 끝까지 애쓰는 모습이 소년을 방해하는 악역 캐릭터들과 맞물리면서 아슬아슬 긴장감을 자아내고 있었다. 잭 소여는 소설 속에서 열두살짜리가 겪기에는 엄청난 시련들을 툭하면 만나게 되는데, 사이비 기도원에서 사이비 목사한테 붙들려 고문을 당하는 장면에서는 너무 불쌍한 나머지 내가 직접 소설 속으로 들어가 잭을 구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만큼 소설 속에서는 잭이 시련을 겪으며 느끼는 고통이 절절하게 묘사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시련이 잭을 더욱더 성숙하게 만든다. 책을 읽는동안 잭 소여라는 캐릭터와 동고동락하다보니 나중에는 잭의 매력에 푹 빠질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고생하는 잭을 곁에서 도와주는 인물들이 여럿 등장한다. 잭에게 마법세계의 존재를 알려주는 스피디 파커, 마법세계에서 만나 현실세계까지 이끌려 온 늑대인간 울프, 잭의 둘도 없는 친구 리처드 등등. 특히 울프가 제일 강한 인상을 남긴다. 보름달이 뜨면 야수로 돌변하는 체질때문에 잭을 곤란하게도 만들지만, 순진한 아이같은 착한 마음씨에 위기의 순간에는 과감하게 잭을 챙겨주는 울프는 소설이 끝날때까지 잊혀지지 않는 캐릭터였다. 소설 마지막에 울프를 떠올리며 아련한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부분도 나온다.

죽도록 고생하는 잭을 위해 스티븐 킹과 피터 스트라우브는 스트레스를 해소시켜 주고 싶었을까? 소설 후반부에 잭은 우지 기관단총과 수류탄을 얻게 된다. 열두살 소년에게는 너무 위험한 물건이라서 나는 설마설마했는데... 잭은 생전 처음 만져보는 총기를 능숙하게 다루며 마구 학살을... 역시 선택받은 영웅은 틀리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너무 지나치다 싶은 폭력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소년의 나이에 걸맞게 최후의 대결에서는 언뜻 보면 유치한 듯한 액션도 등장한다. 상대에게 발을 걸어 넘어뜨린다거나, 몰래몰래 숨어다니며 돌멩이를 던지는 액션. 하지만 그런 액션들에도 온갖 양념을 쳐서 긴박감을 만들어내는 작가들의 솜씨가 돋보였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동화에서는 이상한 나라의 묘사가 흥미를 끌었듯, "부적"에서는 마법세계의 묘사가 독자들의 흥미를 자아낸다. 여왕이 시름시름 앓고 있는 거대한 천막, 쏟아진 포도주를 마시고 주민들이 고주망태가 된 마을, 날개달린 사람들, 가축을 돌보는 늑대인간, 시장에서 보여지는 다양한 모습들, 흡사 지옥같은 채석장 등등등. 때로는 신기하고, 때로는 위험한 마법세계의 모습이 실감나게 묘사되어서 잭의 모험이 더한층 흥미롭게 다가온다. 소설 속에서는 이런 세계가 하나가 아니라 수도없이 많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건 "부적"시리즈를 언제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작가들의 속셈일까 아닐까? 실제로 "부적"의 속편 "블랙하우스 Black House"가 2001년 9월에 출간되었다. "부적"을 읽다보면 블랙호텔이 등장하는 부분에서 킹의 다크타워시리즈를 연상케 하는데, "블랙하우스"에서는 다크타워시리즈와의 연관성이 좀 더 명확하게 묘사될 것이라고 한다. 다크타워시리즈의 팬들에게는 멋진 선물이 될 것이다.

나는 "부적"을 너무너무 재미있게 보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 소설에 대해 불평하기도 한다. "분량이 너무 많다, 페이지 낭비다." 내가 읽었던 페이퍼백의 경우 770페이지였다. 확실히 "부적"은 무척 긴 소설이고, 중간중간에 소설의 직접적인 전개와는 상관없는 에피소드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실제로 킹과 스트라우브는 쓰다보니 분량이 너무 많아져서 원래 이야기에서 절반정도를 삭제했다고 한다. 내 생각에는 770페이지에서 더 뺏더라면, 이야기에 대한 설득력이 오히려 떨어져서 잭의 모험이 실감나게 다가오지 못했을 것 같다. 지금이 딱 좋은 것 같다.

오히려 "부적"은 분량보다는 사건전개가 단순하다는 특징이 있다. 위기의 순간에는 다른 세계로 도망치면 된다는 공식이 여러차례 반복된다. 마법세계에서 현실세계로, 현실세계에서 마법세계로. 그러나 책을 읽는 동안에는 이런 특징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긴장감이 내내 지속되었다. 솜씨좋은 작가의 스토리는 단순하고, 서투른 작가의 스토리는 복잡하다는 말이 있다. 서투른 작가일수록 독자의 눈을 끌기 위해 자꾸만 스토리를 복잡하게 꾸며내는 바람에 줄거리를 이끌어가지 못하고, 얽혀버린 줄거리 속에 파묻힌다는 것이다. 나는 단순한 전개를 반복하면서도 770페이지까지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 스티븐 킹과 피터 스트라우브의 솜씨가 그저 놀랍기만 하다. 여러분도 꼭 "부적"을 읽어보고, 길고긴 이야기 끝에 잭 소여가 영롱한 부적을 손에 쥐는 감동의 순간을 지켜봤으면 좋겠다. 770페이지까지 이어졌던 잭의 모험을 읽었던 것이 결코 시간낭비가 아니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속편 "블랙하우스"가 너무나도 읽고 싶어질 것이다. "부적"의 결말이 다소 갑작스럽게 끝나버린 듯해서 그 후로 잭 소여의 인생이 어떻게 되었는지 참 궁금하다. "블랙하우스" 읽고 싶어라~.

아참! 위에서 말한 A군이 현재 어떻게 되었는지 설명하는 걸 빼먹을뻔 했네. A군은 현재 서울 근교의 모 정신병원에서 입원치료 중이며, 요즘 상태가 호전되어서 자신이 지구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 피터 스트라우브 Peter Straub에 대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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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가 했었던 가장 끔찍한 일은 뭐지?

# 너한테 그런 걸 말하고 싶진 않아. 하지만 나에게 일어났었던 가장 끔찍한 일을 얘기해 줄께... 가장 소름끼치게 무서웠던 일을...

한 남자가 동네 놀이터에서 혼자 놀고 있던 여자아이를 납치한다. 차를 몰아 멀리까지 와서는 모텔에 투숙하게 되는데, 그날 밤 남자는 칼을 들이대며 잠든 여자아이를 깨우고서 질문을 던진다.

"너는 도대체 뭐냐?"

"다 알면서 왜그래."

"너는 도대체 뭐냐니까?"

"나는 너다."

"아니야. 나는 나야. 너는 너구."

"나는 너야..."

갑자기 모텔방이 뉴욕거리로 변해버린다. 그 거리에는 오래전에 죽었던 형이 칼을 든 남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위 내용은 피터 스트라우브의 소설 "Ghost Story"의 첫부분이다.

"부적"을 다루는 김에 킹과 함께 공동집필했던 피터 스트라우브라는 작가를 간단히 소개하겠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미국에서도 공포소설이 그리 인기있는 장르가 아니다.(미스테리/서스펜스 소설이 최고인기다.) 스티븐 킹을 비롯한 몇몇 작가들만이 팔릴 뿐, 다른 공포작가들은 그야말로 파리만 날리고 있다. 그 재능있는 몇몇 작가들 중 한명이 바로 피터 스트라우브이다.

스티븐 킹이 집필한 비평서 "죽음의 춤(Danse Macabre)"을 보면 공포소설에 관해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피터 스트라우브의 "Ghost Story"를 그야말로 격찬하는 부분이 장황하게 펼쳐지는데, 그 두사람이 친구사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교보문고에서 팔던 "Ghost Story"를 사서 읽어 보았다. 읽어보니... 앗 이렇게 재미있다니! 그 후에 또다른 스트라우브의 작품 "The Throat"도 읽어 보았는데, 역시 이번에도 앗 이렇게 재미있다니! 역시 킹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부적"을 공동집필할만한 재능있는 작가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피터 스트라우브의 소설작품으로는 "Ghost Story", "Shadowland", "The Talisman", "Koko", "The Hellfire Club" 등이 있다.

"Ghost Story"는 국내에 <고스트 스토리>라는 제목으로 번역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