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과 몽상 / Nightmares & Dreamscapes

작품 감상문 2007. 5. 11. 23:59 posted by 조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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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ghtmares & Dreamscapes

(1993년 단편집)

Nightmares & Dreamscapes는 Night Shift와 Skeleton Crew에 이은 스티븐 킹의 세번째 단편집이다. 이 단편집은 나의 스티븐 킹 독서인생에서 두번째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이다. 첫번째로 중요한 작품은 It 이다. It은 내가 맨처음 읽은 킹의 작품이어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작품이고, Nightmares & Dreamscapes는 It을 읽고 나서 그 다음에 두번째로 읽은 킹의 작품이라서 두번째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작품이다. (너무 당연한 얘긴가?)

It을 읽고나서 킹이라는 작가에게 너무 반한 나머지 나는 한달동안을 벼르고 별려서 책방으로 달려가 Nightmares & Dreamscapes (제목이 너무 길어서 N&D로 줄여 부르고 싶다)를 샀다. 킹이라는 남자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서였다. (이거 완전히 연애감정 비슷해지는군.) 그리고는 단편집을 읽으며 너무 행복했다. 왜냐! 너무나도 푸짐한 킹의 단편들을 맘껏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N&D는 예전에 나왔던 단편집 Night Shift의 두배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을 자랑한다. N&D에 소개되는 단편은 총 24편이나 된다.

N&D는 스티븐 킹이 팬들을 위해 마련한 뷔페다. 맘껏 골라먹는 재미가 있는 뷔페. 나는 그 뷔페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즐기는 동안, 킹이라는 작가가 감탄할만한 독특한 상상력의 소유자이면서 그 상상력을 글로 풀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독특한 상상력의 소유자는 이 세상에 많고많지만 그 상상력을 글로써 효과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N&D 이후로도 그의 작품을 계속 구해서 읽어나가기로 결심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만약 내가 N&D를 못 읽었다면 킹이라는 작가는 한번 읽고서 그냥 지나치는 작가가 됐을 것이고, 그 결과 오늘날 여러분이 지금 방문하고 있는 이 홈페이지도 생겨나지 못했을 것이다. (너무 거창하게 표현하니까 마음이 뿌듯하다.)

N&D에 소개된 단편들은 모두다 하나같이 독특하고 나름대로의 분위기를 간직한 멋진 작품들이다. 우리나라에도 번역되어서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책 앞에는 킹이 쓴 서문이 나와 있고, 책 뒤에는 작가후기도 나와 있어서 그 둘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특히 작가후기에는 책 속에 소개된 주요단편들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어서 유익했다. 자 그럼 거두절미하고, 본격적으로 N&D의 세계를 탐사해 봅시다!


1. Dolan's Cadilac

매우 평범한 남자의 아내가 조폭두목 돌란에게 살해당한다. 가슴 속에 짐작할 수 없을 정도의 한을 품은 매우 평범한 남자는 캐딜락을 타고 다니는 돌란에게 복수할 기회만을 노린다. 그는 드디어 매우 평범하지 않은 특별한 복수방법을 생각해내게 되는데, 그 실행과정이 너무나 처절하다.

정날 너무나 멋진 소설이다. 소설 내내 흐르는 그 처절한 분위기는 읽는이를 압도한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평범한 남자와 돌란이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은 마치 옆에서 목격하는 것처럼 생생하게 전해진다. 그 짜릿한 감동의 순간!

어느날 스티븐 킹은 차를 타고 가다가 도로공사 중인 곳에서 교통체증에 시달린다. 그 때 킹의 차 바로 앞차가 캐딜락이었고, 그 근처에 하필 캐딜락만한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걸 보고 문득 킹의 머리 속에 Dolan's Cadilac의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한다. 그러나 이 소설은 막상 쉽게 쓰여지지 않았다. 킹은 팬들과 비평가들에게 수시로 과학적/기술적 세부묘사가 빈약하다는 비판을 들어왔다. (특히 그를 자주 괴롭힌 비평가 이름이 N&D 작가후기에 실명으로 지목된다.) 더우기 Dolan's Cadilac은 주인공의 복수과정에 매우 수학적이고 물리학적인 설명이 필요한 소설이어서, 킹은 많이 고심했다. 그러다 어려서부터 천재라는 말을 듣고 자란 그의 형 데이브 킹에게 도움을 청했다.

킹의 설명에 의하면, 형 데이브는 아이큐가 150이 넘고, 18살에 대학을 졸업해 곧장 고등학교 수학교사로 일했으며, 25살에 메인주 행정관리가 되었다. 정말 부러운 인생이 아닐수 없다. 형은 동생의 SOS 요청을 받고서 비디오테이프를 보내왔다. 그 테이프에는 움직이는 자동차의 물리적 특성에 관한 자세한 설명이 들어 있어서, 킹은 무사히 Dolan's Cadilac을 끝마칠 수 있었다. (킹에게 찍힌 그 비평가가 Dolan's Cadilac을 읽고 무슨 말을 했을지 궁금하다.) 형제는 용감했다...인가?

나는 길을 가다 아이디어를 찾아내서 이처럼 멋진 소설을 써내는 스티븐 킹의 꼼꼼하고 냉철한 관찰력에 감탄하고 말았다. 나도 길을 걸으면서 지나치는 여성들의 얼굴과 몸매를 꼼꼼하고 냉철하게 관찰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나중에 나도 킹처럼 뭔가 대단한 일을 저지르지 않을까?

Dolan's Cadilac은 영화제작이 진행되고 있다. 조폭두목 돌란역에 크리스찬 슬레이터가 예정되어 있다는데, 부디 소설만큼이나 분위기있고 처절한 영화가 탄생하기를 기대해본다.


2. The End of the Whole Mess

천재 동생을 둔 형이 동생의 착한 행동을 고백하는 형식의 소설이다. (천재동생의 실제 모델은 킹의 형 데이브였다.) 평화로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착하게 되어 전쟁도 사소한 다툼도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동생이 일을 저지른다. 그리고 동생의 바램대로 세상 모든 사람들이 착하게 변모하게 된다. 그러나 인위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진 일인만큼 세상사람들은 그만큼의 부작용에 노출되게 된다.

차분하게 전개되는 이 소설은 동생을 바라보며 연민을 느끼는 형의 시선이 잘 드러나있다. 동생의 행동으로 세상이 이상하고 끔찍한 모습으로 변하게 되는 과정이 진지한 분위기 속에 흥미롭게 묘사되었다. 특히 맨마지막 부분을 마무리짓는 스타일에서 킹의 솜씨가 돋보인다. 그 기괴하고 씁쓸한 분위기의 마무리가 나처럼 섬세한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만든다. 이 소설대로 인간들이 쓸모없게 되면 세상은 누가 지배하게 될까? 나는 닭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3. Suffer the Little Children

초등학교 여교사 미스 시들리는 아주 무서운 선생님이다. 수업중에 딴짓하는 아이들을 따끔하게 혼내주는 일에 발군의 실력을 보인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는 우연히 반 아이 중 한명이 괴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더 끔찍한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괴물로 변하는 아이들의 수가 점점더 늘어만 간다는 것이다. 이런 열악한 교육환경 속에서 과연 미스 시들리의 눈높이 교육은 무사히 실현될 수 있을 것인가?

Suffer the Little Children은 원래 78년도 킹의 첫 단편집 Night Shift에 수록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책의 분량이 너무 두꺼워질것을 우려한 편집자와의 투표 끝에 탈락하고만 비운의 단편이다. (그때 킹이 탈락후보로 생각한 작품은 Gray Matter였다. 맥주을 잘못 마신 아버지가 괴물로 변한다는 단편.) 이런 멋진 소설이 탈락이었다니! 난 이 소설이 매우 맘에 들었다. 주인공이 처한 위기상황이 점점더 그녀를 압박하는 전개가 흥미진진했다. 킹도 Suffer the Little Children이 레이 브래드버리라는 작가의 소설분위기를 간직하고 있어서 맘에 쏙 든다고 말했다. (레이 브래드버리는 SF작가라는 꼬리표가 붙어다니지만,-대표적으로 시공사에서 출간된 "화씨 451도"- 실제로는 SF보다는 다른 형식의 소설이 더 많다고 한다. 그의 소설 Something Wicked This Way Comes는 공포소설 베스트 10에 선정된 불후의 명작이다. 도대체 어떤 책인지 구경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


4. The Night Flier

3류잡지 기자가 비행기를 몰고 다니며 엽기적 살인행각을 벌이는 흡혈귀를 추적한다. 흡혈귀를 쫓는 사람의 심정은 어떤 것일까? 잠자다 깜짝 놀라 모기를 쫓는 혼란스런 아저씨의 심정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을까?

The Night Flier에서 기자로 등장하는 Richard Dees는 79년작 Dead Zone에서도 등장했던 인물이라고 한다. (나는 데드존을 아직 못읽어봤음.) 자칫하면 1회용으로 끝날수도 있었을 지나가는 캐릭터를 다시 불러내 재활용하는 킹을 통해 우리는 그의 섬세한 캐릭터사랑을 엿볼수 있다. (뭔 소리냐?)

비행기를 조종하는 흡혈귀가 등장하므로 비행기와 공항이 자주 등장하는 소설이다. 주인공 기자도 비행기를 몰게 되는데 그 격렬한 착륙순간의 묘사가 일품이다. 후반부에 기자가 흡혈귀와 직접 마주치게 되는 장면은 긴장감의 극을 달린다. 연약한 인간과 상대적으로 강자인 흡혈귀의 만남은 읽는이에게 인간은 약자일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마늘을 다져서 온몸에 마구마구 발랐더라면 흡혈귀도 조금은 무서워하지 않았을까? 마늘인간 대 흡혈귀의 대결이라...)

The Night Flier는 영화화되었으며, 국내에 "나이트 플라이어"라는 제목으로 비디오출시되었다. 동네 비디오가게에 가보면 있을 것이다. 만약 없다면 비디오가게에서 난동을 부려서 (자기 손을 깨물어 피를 쪽쪽 빨아먹는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주인아저씨가 테이프를 구해오게 만들자. 난 영화는 보지 못했지만, 국내 극장개봉 당시 영화잡지들의 평은 별로 호의적이지 못했다.


5. Popsy

한 남자가 쇼핑센터에서 서성거리던 꼬마를 유괴한다. 꼬마를 차에 집어넣고 쏜살같이 운전해서 도주하는데, 꼬마가 손목에 채워진 수갑을 고장낼 정도로 무척 힘이 세다. 주사바늘로 겨우 꼬마를 진정시키지만, 꼬마가 자꾸만 "팝시가 와서 유괴범을 혼내줄것이다"라고 겁을 준다. 그럼에도 유괴범은 흔들리지 않고 운전을 계속 하는데, 뭔가 불길한 일이 일어나려 하고 있었다.

참으로 오묘하고 재미있는 소설. 군더더기없이 스피드있는 전개에 공포소설 특유의 분위기가 원없이 묻어나는 정통호러. 유괴범의 시점에서 사건이 벌어지니 흥미만점의 스릴이 만발한다.


6. It Grows on You

스티븐 킹 초기 작품들의 무대가 되었던 캐슬록마을 노인들이 모여서 언덕위의 집을 이야기한다. 캐슬록마을 언덕 위에는 집 한채가 서있다. 공장을 운영하는 부유한 남자의 집인데 공장이 다른 마을에 있어서 캐슬록 경제에 별 도움이 되지 않고, 굉장히 비대한 몸집의 부인이 있으며, 그 부인이 기형아를 출산했고, 언덕 위의 집을 지을때 캐슬록마을 사람들을 인부로 쓰지 않고 다른 마을사람들을 데려다 쓰는 등의 일로 캐슬록 마을사람들은 그 언덕 위의 집을 두고 별의별 안좋은 소문을 다 만들어낸다. 그런데 그 언덕 위의 집이 점점더 커진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오랜 세월을 지나는 동안 조금씩 조금씩 방이 늘어나고 새로 지붕이 올라가고 해서 집이 커지는 것이다. 과연 그 속에 숨어있는 기괴한 사연은?

It Grows on You가 처음 발표되었을 때는 캐슬록마을과 전혀 상관없는 얘기였지만, N&D에 수록하면서 킹이 캐슬록을 배경으로 다시 고쳐썼다고 한다. 노인들이 모여서 대화를 나누는 내용이므로 소설은 참으로 여유롭게 느리게 진행된다. 소설내용이란게 언덕 위 집에 이런저런 소문이 도는데 집이 또 커졌더라는 식으로 느릿느릿 반복되다보니 참을성없는 사람이라면 책을 덮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결말부분에 나오는 음산한 여인의 행동만으로도 충분히 참고 읽을만한 가치는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7. Chattery Teeth

세일즈맨이 집에 돌아가는 길에 아들에게 줄 선물로 태엽을 감으면 덜그럭거리며 걸어가는 이빨모양 장난감을 산다. 그리고 스티븐 킹의 음모에 의해 히치하이킹하는 껄렁껄렁한 소년을 차에 태워주게 된다. 자 이제 세일즈맨과 껄렁소년과 덜그럭이빨 사이에 진퇴양란-쓰리쿠션-삼각관계가 형성되고, 그들의 앞날에 처절한 폭력이 난무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이빨장난감이다. 그래서 기뻤다. (뭔 소리냐?)

이 소설은 두편의 에피소드가 합쳐진 믹 개리스 감독의 TV영화 "Quicksilver Highway"의 첫번째 에피소드로 만들어졌다.


8. Dedication

사고로 죽은 폭력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소설가로 키워낸 흑인여성이 주인공이다. 아들의 첫 소설책이 그녀에게 도착하자 감격한 그녀는 친구에게 자신이 아들을 재능있는 사람으로 태어나게 하려고 얼마나 "헌신"적인 행동을 했었는지 고백한다. 오래전에 막 아들을 임신했었을때 호텔청소원으로 일하던 그녀가 맡은 방에 유명한 소설가가 투숙한다. 아주아주 인간성이 나쁜 작자였다. 하지만 뱃속의 아이를 위해서라면 어떤 엽기적인 일이든지 할 수 있는 것이 어머니의 마음이라서...

킹이 Dedication을 쓰게 된 동기는 수년전에 아주아주 너무나 위대한 대소설가를 만났을 때였다.(지금은 고인이 된 그 양반의 이름을 킹은 밝히지 않았다.) 존경하던 그 사람을 만나고 보니 실망스럽게도 인간성이 개떡같은 사람이었다. 킹의 고민은 그때부터 계속된다. 그토록 훌륭한 작품을 탄생시킨 재능있는 소설가가 왜 인간성은 수준이하인 것일까? 고민끝에 킹은 Dedication을 쓰게 된다. 이 소설에서는 재능있는 소설가의 인격적 결함의 이유를 설명해주지는 않지만, 임신한 흑인여성이 겪게 되는 신비스런 체험이 스산하게 펼쳐지고 있다. 거기에다 의문에 싸인 할머니의 등장이 읽는이를 더욱 긴장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할머니의 과격한 활약상에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게 된다. 이 소설 너무 멋진 심리소설이다. 과격한 액션은 안나오지만 인물들의 심리가 빚어내는 음산한 분위기는 이 소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스티븐 킹 당신은 천재야!

Dedication은 그후 Dolores Claiborne이라는 작품을 쓰는데 밑거름이 된 작품이라고 한다.


9. The Moving Finger

한 남자가 자기집 화장실에서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를 듣게 된다. 조심조심 화장실에 가보니 세면대 물빠지는 구멍으로부터 손가락 하나가 삐죽 나와서 움직이고 있다. 그 손가락모양의 생명체는 세면대 밑의 구불구불한 파이프관을 타고서 구멍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그 손가락의 정체는 대체 뭘까? 보통사람같으면 경찰에 신고했겠지만, 소심한 주인공은 그만 자기 혼자서 손가락을 상대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불행이 시작된다.

너무너무 신기한 소설이다. 자신의 집 화장실 세면대에 손가락이 불쑥 나와 있다면 얼마나 공포스러울까? 발가락이었다면 코미디였겠지만, 손가락이었으니 공포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킹은 개인적으로 이 소설처럼 아무 이유없이 사건이 벌어지는 소설을 좋아한다고 한다. 괴물이 나타났는데 이유가 중요한가? 중요한 것은 이 괴물과 어떤 시간을 보내느냐하는 것이다. 나도 이렇게 단순과격한 면도 너무나 좋아한다. 그리고 이 소설 The Moving Finger는 아무이유없이 공포스런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남자의 이야기를 너무나 명확하게 흥미로운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역시 Simple is Beautiful이다.

이 소설의 끝부분은 명확한 결말을 보여주지는 않고 독자의 상상력을 꿈틀거리게 만든다. 화장실에서 기진맥진해 버린 우리의 주인공은 어떻게 되었을지 참 궁금하다.


10. Sneakers

계약직으로 음악스튜디오에서 믹싱일을 하는 남자가 겪는 오싹오싹 공포체험. 그가 스튜디오건물 화장실에 갔을때, 좌변기 첫째칸의 닫혀진 문 밑으로 운동화를 보게 된다. 변기에 앉아있는 사람(?)이 신고 있는 운동화. 여기까진 아무 이상이 없다. 그런데 그 후로 화장실에 갈때마다 항상 첫째칸의 닫힌 문 밑으로 그 운동화를 보게 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운동화 곁에는 죽은 파리들이 쌓이고. 과연 그 첫째칸에는 어떤 사람(?)이 앉아 있는 것일까? 아르바이트생은 그 생각에 괴로워하며 몸부림친다. 부르르르~

개인적으로 N&D에서 가장 오싹한 상황을 설정한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화장실에 갔는데 항상 같은 자리에 같은 사람이 앉아 있다면 너무 무서운 나머지 변비에 걸리지 않겠는가? 더우기 그 사람(?)의 신발 주위에 죽은 파리들이 널려 있다면 너무너무 무서운 나머지 그때의 변비는 유산균 요구르트 한상자로도 치유될 수 없는 불치병이 될 것이 틀림없다.

Sneakers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계속 첫째칸 속의 인물이 주는 긴장감이 이어지다가 결말이 너무 싱겁게 끝나는 감이 있다는 것이다. 과거의 어두운 비밀이 폭로되고나서 뭔가 또다른 사건이 이어질것 같은데 이제 그만~이라면서 끝을 내니까, 마치 나이트갔다가 댄스타임에 신나게 막춤만 추고 정작 부루스타임에서는 밖으로 쫓겨난 듯한 기분이다. 나이트에서 부루스를 추지 못했다면 나이트에 아니간 것만 못하지 아니한가!


11. You Know They Got a Hell of a Band

두 남녀가 자동차로 여행하다 그만 길을 잃고 Rock and Roll Heaven이라는 동네에 들어오게 된다. 그 동네는 유명한 락음악인들이 사는 동네였다. 죽은 음악인들이. 이 동네의 시장님은 누구일까요? 정답은 책 속에.

이 소설은 왜 락스타들은 어린 나이에 죽거나 약물과다 복용과 같은 끔찍한 상황에서 죽을까하는 의문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킹은 화려한 면에 가려진 그들의 어두운 면에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매우 심각하지는 않다. 이 소설은 킹을 비롯한 수많은 공포작가들이 즐겨쓰는 전형적인 낯선 마을이야기이다. 길을 잃고 낯선 마을에 들어섰는데 정말로 이상한 마을이더라는 형식. 그 낯선 마을의 공포를 이 소설은 락스타들을 이용해서 흥미롭게 보여준다.


12, Home Delivery

섬마을 처녀 매디는 강압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탓에 매사에 수동적이고 나약한 성격이다. 그러다 섬마을 청년을 만나 결혼하면서 사랑의 힘으로 비로소 자신과 남편의 삶에 긍정적인 자신감을 갖게 된다. 그러나 첫아이를 임신하고 얼마 안되서 남편은 새우잡으러 바다에 나갔다 거센 파도에 휩쓸려 익사한다. 무너지는 매디의 마음. 그러나 이야기는 이제부터다. 온세상이 왠일인지 좀비세상이 된 것이다. 무덤에서 기어나온 좀비가 세상사람들을 공격하더니 급기야는 백악관을 공격해 대통령까지도 먹어치운다. 매디가 사는 섬도 비상사태다. 하나뿐인 마을무덤에서 좀비들이 뛰쳐나온 것이다. 그리고 불쌍한 주인공 매디에게도 두려운 선택의 순간이 돌아오고야 말았다. 그녀의 비극에 누구나 마음이 아플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좀비라는 캐릭터를 매우 좋아한다. 외모같은 겉치례에 별로 신경쓰지 않는 그 소탈한 모습.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절대로 뛰어다니지 않은 그 여유로움. 먹을 것이 생기면 모두 모여 함께 뜯어먹는 정다운 공동체의식. 세상사람들이 좀비와 같은 자세로 살아간다면 이 세상은 지금보다 백배정도 나은 모습이 될 것이라고 감히 생각한다.

Home Delivery에는 내가 좋아하는 좀비가 우글우글 등장한다. 그래서 신났다. 게다가 보너스로 우주전쟁이야기도 나온다. 그래서 또 신났다. B급 호러소설다운 활기찬 소재와 사건전개가 기분 좋았다. 그런데 안그래도 불쌍하게 성장한 여주인공이 너무도 가혹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그래서 마음이 아팠다. 왜 착한 사람들은 행복을 얻기가 이다지도 힘든 것인가? 재기발랄한 B급 호러소설 속에 단단히 자리잡고 있는 슬픔의 정서로 인해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슬픔을 승화시켜 희망을 잉태시키는 작가의 긍정적인 시선에 나도 모르게 기쁨의 눈물이 한줄기 흘렀다. (뭔 소리냐?)

킹은 조지 로메로 감독의 좀비영화 3부작을 모티브로 해서 동료작가들과 단편집을 펴내기로 하고서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그래서 탄생한 단편집의 이름은 "Book of the Dead".


13. Rainy Season

한 부부가 7년에 한번씩 이상한 비가 쏟아지는 마을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된다. 그런데 하필 그 부부가 마을에 묵게 된 날이 7년에 한번 있는 바로 그 날일 줄이야! 역시 N&D의 13번째 소설 속 주인공다운 억세게 재수나쁜 부부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마을사람들 말대로 이상한 비가 쏟아지게 된다. 이름은 들어봤나? 두꺼비-비. 콩쥐의 밑빠진 항아리를 막아주던 그 착한 두꺼비와는 전혀 차원이 다른 두꺼비들이 7년만에 공중낙하를 시작했다.

거친 매력을 발산하는 이 소설에 관해 별로 할 말은 없다. 그러나 한가지 당부하고 싶은 말은 있다. 낯선 마을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됐을때는 반드시 "오늘이 그 날인가요?"하고 물어보아야 한다. 그래서 "네, 오늘이 바로 그 날입니다"라는 대답을 듣게 되면 그 즉시 그 마을에서 도망나와야한다. 재수없게 걸리면 죽음이니까.


14. My Pretty Pony

하얀 사과꽃이 아름답게 휘날리는 과수원에서 할아버지가 어린 손자에게 시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강의를 시작한다. 인간의 일생을 통해 3종류의 시간을 경험하게 되며, 시간이란 성질 고약한 조랑말과 같아서 정신 똑바로 차리고 지켜보지 않으면 금방 달아나버리고 만다는 내용의 강의였다. 꼬마가 할아버지의 오묘한 사상을 전부다 깨달은 것 같지는 않지만, 어쨌든 두사람은 서로의 입장에 만족하고 밥먹으러 집으로 돌아간다.

80년대 초반 리처드 바크먼(스티븐 킹의 필명)은 My Pretty Pony라는 소설을 완성하려고 기를 쓰고 있었다. 그 소설은 살인 청부업자가 의뢰를 받고서 동료들과 함께 결혼식장에 난입해 범죄조직의 거물들을 살해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의뢰가 성공적으로 끝난뒤 의뢰인이 배신을 해서 청부업자의 동료들을 하나씩 죽이고 청부업자마저도 쫓기는 신세가 된다. 그 청부업자의 필사적인 질주가 장엄하게 펼쳐지는 내용이었는데, 그만 리처드 바크먼이 집필 도중 죽고 말았다. 죽은 리처드가 남긴 원고는 6번째 챕터까지 완성한 My Pretty Pony와 조지 스타크라는 필명으로 완성시킨 Machine's Way 뿐이었다. (Machine's Way는 후에 스티븐 킹의 이름을 달고 The Dark Half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스티븐 킹은 My Pretty Pony가 너무도 형편없는 소설이어서 폐기처분했는데, 그 속에서 아주 인상깊은 장면이 있었다. 소설중 청부업자가 어린시절을 떠올리며 할아버지의 가르침을 회상하는 장면이었다. 킹은 그 회상장면만을 뽑아내 My Pretty Pony라는 같은 제목의 단편소설을 만들어 발표하게 되었다.

N&D에 소개된 My Pretty Pony는 줄거리에서 금방 느낄 수 있듯이 굉장히 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건조한 단편소설이다. 공포소설도 아닐뿐더러 별다른 사건도 일어나지 않아서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읽지 않으면 수면제로 작용하기 쉬운 위험한 소설이다. 철학개론과 같은 두꺼운 인문학 서적을 만화책 보듯이 즐기며 읽을수 있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이 소설에 도전해 볼 것을 권한다. 후회는 없을 것이다.


15. Sorry, Right Number

유명한 공포소설가의 아내 캐이티는 어느날 저녁 전화 한통을 받게 된다. 상대방은 막 흐느끼며 "제발- 빨리..."라는 어리둥절한 말만 남긴채 전화를 끊어버린다. 캐이티는 전화했던 사람이 자기가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 주인공을 찾기위해 돌아다닌다. 그리고 결국 전화했었던 주인공을 알게 된다.

Sorry, Right Number는 소설이 아니라 시나리오다. 그 목적에 걸맞게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하던 TV시리즈 Amazing Stories (SBS에서 방영했었고, 국내에 비디오로도 출시됨.) 중 한편으로 제작되기 위해 이 시나리오는 보내졌다. 그러나 스필버그는 좀 더 밝은 분위기의 시나리오를 원한다면서 슬프게도 킹의 시나리오를 퇴짜놓았다. (스필버그, 좀 먹고 살만하다고 이래도 되는거냐!) 결국 이 시나리오는 Monsters라는 또다른 TV시리즈 중 한편으로 제작되어 방송을 탔다.

스필버그는 싫어했지만, 나는 Sorry, Right Number를 읽고서 너무 좋았다. 시나리오의 흐름을 따라 아무 생각없이 읽어나가던 나를 깜짝 놀라게 하면서 묵직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었다. 해피엔딩도 좋지만 슬픈 엔딩을 겪고나면 나의 감정도 한층 성숙해지는 느낌이 든다.


16. The Ten O'clock People

골초 애연가인 피어슨은 문득 사람행세를 하며 돌아다니는 괴물들을 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자기뿐만 아니라 다른 골초 흡연자들도 괴물들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조직을 결성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고, 피어슨은 그 조직의 모임에 참석하게 된다. 그리고 모임은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스티븐 킹은 1992년 여름 어느날 정확히 10시에 길을 걷다가 으리으리한 빌딩 앞에서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담배피는 장면을 목격한다. 대부분의 빌딩들이 실내금연인 관계로 담배피는 사람들은 할 수 없이 휴식시간을 이용해 밖에 나와 담배를 피는 것이다. 당연히 그 신기한 광경은 킹의 머릿 속에서 The Ten O'clock People이라는 멋진 소설로 만들어졌다.

이 소설은 보기에 따라선 위험한 소설이다. 마치 흡연을 조장하는 것 같기도 하다. 골초가 되어서야 이 세상의 위험한 진실을 볼 수 있게 된다는 설정이 참으로 오묘하다. 하지만 그런 쓸데없는 걱정을 떨쳐버리기만 한다면, 이 소설은 신나는 소설임에 틀림없다. 특히 결말부분에서 주인공이 골초로서의 자아를 인식하고 사회 속에서 자신의 진정한 역할을 찾아 맹렬하게 활동하는 모습은 흐뭇하다 못해 담배라도 한대 권해주고 싶은 욕구를 느끼게 해준다. (도대체 뭔 소리냐?)


17. Crouch End

영국의 Crouch End 경찰서에 행색이 엉망인 미국여성이 뛰어 들어와 울부짖는다. "제 남편을 찾아주세요. 괴물들이 제 남편을 잡아갔어요!" 그녀는 영국경찰들에게 미국에서 남편과 함께 영국여행왔다가 Crouch End라는 마을에서 괴물들에게 쫓긴 얘기를 들려준다.

낯선 마을의 공포가 숨가쁘게 펼쳐지는 소설이다. 낯선 상황에서 사람이 느끼는 감정의 격렬함이 잘 묘사되어 있으며, 마을 입구에서 놀고 있는 두명의 무서운 어린이들이 보여주는 소름끼치는 상황들은 이 소설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이 소설을 읽고나니 낯선 여인에게서 그녀의 향기를 맡을 수도 있겠구나하는 소설과 전혀 상관없는 쓸데없는 생각이 들었다.


18. The House on Maple Street

엄마가 재혼을 했는데, 새아빠는 매우 독선적인 사람이어서 제멋대로인데다가 엄마를 슬프게 만든다. 이런 새아빠를 속수무책으로 바라보아야만 하는 아이들. 그러나 어느날 아이들은 집안 내부에서 무언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집 속에서 무엇인가가 막 자라나고 있었다. 과연 이 집의 운명은 어찌될 것인지...

스티븐 킹은 삽화집을 선물받았다. The Mysteries of Harris Burdick. 킹뿐만 아니라 아내 태비사도 독특한 삽화가 즐비한 그 삽화집을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킹, 태비사, 아들 오웬은 삽화집에서 맘에 드는 그림을 하나씩 골라서 그 그림을 소재로 이야기를 한편씩 써보기로 했다. 그 결과 킹이 만들어낸 얘기가 The House on Maple Street이다. (N&D에는 이 소설의 소재가 되었던 삽화가 책 3분의 2 지점쯤에 끼워져 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아이들의 과격한 플레이가 인상적인 소설이다. 결말에 가면 가정이 평화를 되찾은 듯해서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아이들은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셈이 되어서 기분이 묘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책 속에 들어있는 예쁜 삽화를 보고 있으면 동화틱한 기분이 들어 이 소설이 더할나위없이 유쾌하게 느껴지는 등 읽는이의 컨디션에 따라 무궁무궁진한 감정의 변화를 만끽할 수 있는 신비한 소설이다.


19. The Fifth Quarter

현금수송차량이 괴한들에게 털리고, 강탈당한 돈은 섬에 묻혀진다. 돈이 묻힌 지점을 표시한 지도는 4조각으로 나뉘어져 괴한들끼리 나누어 갖고서 나중에 함께 모여 돈을 찾기로 하는데, 고새를 못참아 괴한들간에 남의 지도조각을 뺏기 위한 음모가 벌어져 살인에까지 이른다. 이에 용감히 행동에 나선 우리의 주인공은 돈을 위해 지도조각을 찾아나선다. 그러나 지도를 가진 괴한들의 저항은 만만치 않다.

한편의 멋진 범죄소설이다. 지도를 찾기위한 죽음의 액션이 심각하게 펼쳐진다. 후반부에 컴컴한 집안에서 벌어지는 육탄전은 읽는이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 것이다.

이 소설을 두고 킹은 이렇게 말했다. "바크먼의 소설. 아니면 혹시 조지 스타크의 소설." 그러나 이 소설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는 바크먼 외에 킹이 비밀리에 간직했던 또다른 필명 John Swithen을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리처드 바크먼에, 조지 스타크에, John Swithen까지. 킹은 필명창조에 중독되어 있는 것일까? 다음번에 새로운 필명을 만들때는 "조재형"으로 해주었으면 좋겠다.


20. The Doctor's Case

추리소설 역사상 가장 유명한 명탐정 셜록 홈즈. 그의 곁에는 항상 홈즈의 명석한 추리력에 가려 별로 빛을 못보는 동료 왓슨(직업은 의사)이 있었다. 홈즈를 바라보는 왓슨의 눈빛은 어느샌가 싸늘한 장동건 눈빛이 되어 "내가 니 시다바리가!?"라는 말을... 차마 내뱉지는 못하고, 그냥 홈즈를 부러운 눈길로 지켜보아야만 했었다. 그런 왓슨이 100살을 바라보는 연로한 노인이 되어(홈즈는 오래전 사망), 예전에 홈즈와 함께 맡았던 한 사건을 회상한다. "그때 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홈즈보다 먼저 사건을 해결했었지. 흐흐흐..."

해운업으로 엄청난 부자가 된 앨버트 헐. 그는 집안에선 아내와 세 아들에게 폭군이었다. 그러던 그가 자신이 병에 걸려 죽을 것임을 예감하고 새로운 유언장을 작성한다. 그리고 어느날 아침 식구들을 모아놓고 새로운 유언장 내용을 읽어준다. 아내와 세 아들에게 땡전 한푼 줄 수 없다는 내용. 망연자실한 가족들을 뒤로 하고 헐은 자신의 서재로 들어가 문을 잠근다. 그리고 얼마뒤 서재 안에서 비명소리가 들려 사람들이 가보니 헐이 등에 칼이 꽂힌채 숨져있었다. 꼭꼭 잠겨진 서재에서의 살인. 이건 홈즈가 그토록 좋아하는 완벽한 밀실살인 아니던가! 그래서 홈즈와 오늘의 주인공 왓슨이 출동한다. 그리고 왓슨은 홈즈보다 앞서서 사건의 미스테리를 해결한다. 과연 범인은 누구인가? 참고로 헐의 가족들 중에서 막내아들 이름이 스티븐이다. 뭔가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The Doctor's Case는 킹이 쓴 추리소설이다. 일생일대의 활약을 보인 왓슨을 주인공으로 해서 밀실살인의 비밀을 하나하나 흥미롭게 풀어나간다. 소설 분위기는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는 홈즈와 경시청 경찰 레스트레이드 사이의 밀고 당기는 신경전 덕분에 경쾌하고 밝은 분위기를 보여준다. 거기다 난생처음 사건을 해결하는 왓슨의 감개무량이 더해져 분위기는 완전 UP! (그전까지 레스트레이드는 맨날 헛다리만 짚는다며 왓슨을 무시했었다.) 하지만 결말에 가서 사건의 어두운 진실 앞에서 홈즈, 왓슨, 레스트레이드 세사람이 내리는 용기있는(?) 결단은 읽는이의 가슴 속을 촉촉히 적셔준다. 수긍이 가는 멋진 결말이었다고 생각한다.


21. Umney's Last Case

대공황 시절 갱들이 판치고 온갖 추악한 범죄가 벌어지고 있을때, 여기 거친 매력을 발산하며 의뢰받은 사건해결을 위해 거칠게 생활하는 하드보일드 사립탐정 엄니가 있다.(나는 이상하게도 주인공 이름을 말할때마다 왠지 전원일기 생각이 난다. 일용엄니.) 사립탐정 엄니는 어느날 문득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불길하게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혼란스러워진다. 참담한 심정으로 탐정사무실에 앉아있는데, 왠 노인이 한명 들어온다. 그의 손에는 작은 플라스틱 가방같은게 들려있다. 그게 뭐지?

"이건 워드프로세서라는 물건이지. 지금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는 물건이니 네가 모르는게 당연해. 내 운동화가 리복이라는 걸 모르는 것처럼."

당신 누구야?

"나는 너를 창조한 사람이다."

그리고 엄니는 신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그의 인생은 송두리채 꺽인채 파멸을 향해 치닫게 된다.

Umney's Last Case는 내 생각에 단편집 N&D에서 가장 멋진 분위기의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주인공 탐정의 삶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한순간에 무너져내리는 상황이 건조한 문체 속에 진지하고 애처롭게 묘사된다.

스티븐 킹은 이 소설 속에서 대학시절부터 존경했던 하드보일드 소설가 레이몬드 챈들러의 문체를 시험해 보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Umney's Last Case에는 암울하고 무겁지만 그래서 더욱 매력적인 분위기를 가진 인물들, 배경들이 잘 묘사되고 있다. 스티븐 킹은 이 소설이 N&D에 수록된 작품들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간다고 말했다. 소설 전반부에 엄니가 주변건물들, 주변인물들이 예전과 달라진 모습을 보이는 것에 갈등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하루아침에 바보가 돼버린 느낌이었겠지. 만약 내가 어느날 잠에서 깨어보니 사람들이 나를 톰 크루즈라고 부르고, 내 방이 단란주점으로 개조되어 있고, TV에서는 나를 파렴치범으로 공개수배하고 그러면 나도 미쳐버릴 것 같다. 이 소설에서 무엇보다 맘에 드는 것은 결말부분이다. 엄니의 앞으로의 행동을 암시하는 마무리는 짜릿한 전율을 느끼게 해준다. 정말 강추!


22. Head Down

Head Down은 소설이 아니라 수필이다. 킹의 아들 오웬이 속해있는 야구팀이 리틀야구대회에 출전해서 경기를 벌이는 모습을 따뜻한 시선으로 묘사한 수필이다.

개인적으로 이 글을 읽으며 야구에 관련된 영어단어가 수시로 튀어나와서 너무 골치아팠다. 게다가 왜 그리도 분량이 많은지... 야구를 주제로 쓴 글이 어떤 모습을 보일 수 있는지 궁금한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수필이다.

정작 이 수필에서 내가 관심을 가진 것은 야구가 아니라 수필 첫페이지에 있는 한줄의 문장이었다.

Owen is broad-shouldered and heavily built, like his old man.

(오웬은 자기 아버지를 닮아 떡 벌어진 어깨에 다부진 체격을 갖추고 있다.)

농담인가, 진담인가? 이 짧은 문장을 통해 나는 스티븐 킹이 평소에 자기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역시 스티븐 킹도 인간이었다.


23. Brooklyn August

이번엔 소설도 아니고 수필도 아니고 시다. 야구를 주제로 한 시. 야구를 주제로 쓴 시가 어떤 모습을 보일 수 있는지 궁금한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시다.


24. The Beggar and the Diamond

너무나도 불쌍한 행색의 거지가 비참한 인생을 사는 것을 본 천사가 너무 슬퍼서 하늘나라에 있는 신에게 찾아온다. 신은 천사의 말을 듣고는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다이아몬드를 거지가 있는 바로 옆에 떨어뜨려준다. 그러나 거지는 바로 옆의 다이아몬드를 보지 못하고 답답하게 딴소리를 해댄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보고 당황한 천사에게 신은 알쏭달쏭한 화두를 던져준다.

N&D에 나오는 모든 단편을 다 읽었다. 그러면 바로 뒤에 스티븐 킹이 쓴 작가후기가 나온다. 작가후기도 다 읽었다. 휴~ 이 책 다 읽었네하고 방심하고 있으면 깜짝 놀라게 된다. 작가후기 바로 뒤에 The Beggar and the Diamond라는 아주 짧은 단편이 떡하니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단편은 킹이 독자들을 위해 마련한 깜짝선물같은 것이다. 아니면 멋진 레스토랑에서 식사후에 나오는 상큼한 아이스크림 디저트같은 것이라고 표현해도 킹은 화내지 않을 것이다.

The Beggar and the Diamond는 힌두교 설화를 킹이 각색한 것이다. 아주 짧은 글이지만 읽고 나면 이게 무슨 뜻을 담고 있는 글일까하고 고개가 갸우뚱해지게 만든다. 아마도 읽는이에 따라서 다양한 느낌을 받을 것 같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읽고나면 매우 재밌다는 점이 마음에 쏙 드는 단편이다.


끝났다. 드디어 Nightmares & Dreamscapes의 모든 단편들을 모조리 소개해버린 것이다. 정말 길고긴 투쟁이었다. 이젠 더 쓸 말도 더 쓸 힘도 없다. 이젠 쉬고 싶다. 푹~.

p.s. 이 단편집은 2019년 우리나라에 "악몽과 몽상"이라는 제목으로 번역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