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인간 / Cycle of the Werewolf

작품 감상문 2007. 5. 11. 23:40 posted by 조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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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cle of the Werewolf

(1983년 소설)

'남자는 늑대, 여자는 여우'라는 말이 있다. 거친 늑대와 꾀많은 여우를 남녀에 비유한 것이 과연 적절한 것인지 난 잘 모르겠지만, 하여간 많은 사람들이 이 말에 공감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런 동물적 특성을 확대해석하여 우리나라에서는 여우같은 여자를 구미호로 만들어 버리고, 서양에서는 늑대같은 남자를 늑대인간으로 만들어 버렸다.

늑대인간! 보름달만 되면 홀연히 나타나 낮게 깔리는 으르렁거림과 함께 억센 발톱과 강한 이빨로 애건 어른이건 할 것 없이 저세상으로 보내버리는 막가파 괴물. 은으로 만든 총알로만 처치할 수가 있다는 예민한 체질의 소유자. 늑대도 아닌 것이 인간도 아닌 것이 늑대인간이라는 이름으로 온세상을 터프하게 피바다로 만들고 다닌다. 드라큘라가 괴물계의 신사같은 존재라면, 늑대인간은 괴물계의 터프가이라 할만하다.

Cycle of the Werewolf는 스티븐 킹이 늑대인간을  소재로 쓴 소설이다. 우선 이 소설은 매우 짧은 소설이다. 미국판 버전 중에는 128페이지짜리도 있다고 하는데, 한국판도 단지 179페이지 정도이다. 본문 중의 글씨도 큼직큼직하고 중간중간 삽화가 들어 있는데도 길이는 매우 짧다. 길이가 짧기 때문에 그만큼 소설이 압축되어 있어서 속도감있게 전개된다. 인물 심리묘사, 배경묘사, 등장인물들의 대화같은 요소들이 꼭 필요한 정도만 남기고 생략되어 있어서 장면전환이 신속하고, 소설 속 사건들이 "내가 먼저 전개할꺼야 내가 먼저 전개할꺼야"하고 서로 다투는 듯이 사건들의 전개가 끊임없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나도 책을 잡고서 여유있게 단 2시간만에 다 읽어버리고 말았다.(난 책을 느리게 읽는 편이다.) 하지만 이렇게 짧다고 뭔가가 빠진 듯한 허전한 기분은 들지 않았으며, 오히려 너무 흥미진진하고 재밌었다.

이 소설은 1년 열두달을 소제목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소설의 목차가 1월로 시작해서 12월로 끝나고 있다. 소설 속 배경은 타커즈 밀스라는 작은 마을. 1월의 눈보라치는 어느날 으슥한 농장 창고에서 한 남자가 늑대인간의 습격을 받아 참혹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시작으로 12월까지 늑대인간의 희노애락을 그려내고 있다. Cycle of the Werewolf의 주인공은 늑대인간과 더불어 그에 맞서는 마티 코즐로프라는 인물이다. 1월부터 6월까지는 늑대인간에게 희생되어가는 인간 및 동물들(돼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가, 7월이 되어서야 마티 코즐로프가 등장한다. 그는 10살짜리 소년으로서 하반신마비 장애인이어서 전동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 1월부터 시작된 사람들의 잇따른 죽음에 불안을 느낀 마을이 7월 독립기념일 밤의 불꽃놀이를 취소한데 낙담한 마티는 밤에 혼자나가서 불꽃놀이를 하다가 늑대인간과 마주치게 된다. 이것을 계기로 둘 사이에 진한 우정이 꽃피고...는 절대! 아니고, 늑대인간은 휠체어에서 폭죽을 터뜨리고 있던 마티를 덮쳐 버린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마티는 그후 할로윈데이(10월 31일)에 우연히 늑대인간의 정체를 알게되고, 놈에게 대담한 방법으로 시비를 걸어 버린다. 과연 이 겁없는 10살짜리 소년은 인정사정 보지 않고 애건 어른이건 닥치는대로 저세상으로 보내 버리는 늑대인간을 어떻게 저세상으로 보내 버릴 수 있단 말인가! 정답은 이 소설의 12월에 밝혀진다.(12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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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cle of the Werewolf는 짧지만 만만치 않은 재미를 선사하는 멋진 소설이다. 특히 마티가 7월의 사고를 단서로 늑대인간의 정체를 알게 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단순하지만 짜릿한 장면이다.) 시간적으로 열두달에 걸친 이야기인 만큼 각 달마다 타커즈 밀스 마을의 풍경묘사와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짧지만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다. 그와 더불어 이 소설에 생기를 불어 넣어주는 요소가 있었으니, 바로 각 달마다 나오는 일러스트이다.

Berni Wrightson이라는 사람의 일러스트인데, 흑백으로 그린 마을의 모습들과 컬러로 그린 소설 속 사건모습들이 읽는이의 기분을 한껏 고조시켜준다. 전형적인 미국풍의 그림들인데, 소설이 묘사하고 있는 광기에 찬 늑대인간의 분위기를 멋지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그림은 9월에 나오는 그림이다. 늑대인간이 돼지우리를 습격하고 난 뒤의 아수라장을 간단하지만 효율적으로 엽기스럽게 묘사하고 있다. 상상이 가시죠? 늑대가 물어뜯고 난 돼지시체들이 널부러진...  (Berni Wrightson은 Creepshow와 The Stand 같은 킹의 작품에도 참여했다고 한다.)

Cycle of the Werewolf는 각색작업을 거쳐 영화로 만들어졌다. 영화제목은 Silver Bullet이었다. 이 영화의 개봉과 함께 미국에서는 Silver Bullet 시나리오가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었다. Silver Bullet은 국내에 "악마의 분신"이라는 제목으로 비디오와 DVD로 출시가 되어 있다.

난 Silver Bullet을 TV에서 봤다. 아주 오래전 아마 내가 초등학생인가 중학생때 KBS2에서 대낮에 방송됐었다. 사실 마티가 전동휠체어를 타고 도로 위를 질주하는 장면과 그 밖의 몇장면만 부분적으로 기억나고, 그 영화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 때만 하더라도 스티븐 킹이란 작가를 몰랐기 때문에 그 영화가 가지는 의미를 미처 깨닫지 못한채 TV에 집중하지 못하고 영화를 보다말다 계속 딴짓을 했었다.

하지만 내가 확실히 기억하는 그 영화의 한 장면이 있다. 영화 초반부에 한 섹시한 누나가 잠옷을 입고 잠자는 부분이다. 그러다 부시럭거리는 소리에 일어나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늑대인간의 밥이 되고 만다. 놀라서 휘둥그레진 누님의 두눈, 난폭하게 덮치는 검은 늑대인간, 무참히 찢겨나가는 누님의 잠옷, 비명을 지르는 누님의 빨간 입술, 곧이어 클로즈업되는 기분나쁜 늑대인간의 눈동자. 그당시 내 나이에는 너무 충격적이었는지 아직까지도 잊혀지지 않고 있다.(사실 내가 집중해서 본 것은 늑대인간이 아니라 누님이었다. 누니이이이이이임~!) 

영화에 대해 얘기하다 소설얘기를 하나 빼먹은 것 같다. Cycle of the Werewolf는 한국판이 출간되었다. 도서출판 혜민에서 "늑대인간"이라는 간단하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제목으로 펴냈다. (작가이름이 "스테판 킹"으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