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마일 / The Green Mile

작품 감상문 2007. 5. 11. 23:16 posted by 조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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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reen Mile

(1996년 소설)

1996년에 스티븐 킹은 The Green Mile이란 소설을 낸다. 그냥 발표한 것이 아니라 소설 하나를 여러개로 쪼개서 시간을 두고 차례차례 하나씩 출간했다. 그래서 The Green Mile은 96년 3월에서 8월까지 한달에 한권씩 총6권짜리 얇은 책자로 출간되었다. 굉장한 자신감이거나 계산착오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옛날 같으면야 마땅한 오락꺼리가 없으니 재밌는 소설 기다리는 재미로 팔릴지 모르겠으나, 지금같이 TV, 영화, 비디오, 게임, 인터넷, 단란주점 등등 재밌는 것들이 지천에 널린 세상에서 6개월 내내 소설 나오길 기다려 꾸준히 구입한다는 것은 킹같은 거물작가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킹은 성공을 거두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려원에서 '그린 마일'이라는 제목으로 번역판을 내면서 미국에서처럼 징검다리출판을 시도했다. 내 기억으로는 미국에서의 한달에 한권보다는 출간주기가 빨랐던 것 같다. 번역판은 전반부는 한글번역으로, 후반부는 영문원본으로 나뉘어 있어서 영어학습에도 도움을 주었다. 그린 마일 1권 출간 당시에는 고려원에서 신문에 광고도 많이하고, 2권타기 이벤트도 열었었다. 그 이벤트는 1권을 읽고서 번역이 잘못된 곳을 찾아내어 엽서에 적어보내면 2권을 공짜로 주는 행사였다. 위의 표지는 한국판 그린마일 2권의 표지인데, 이벤트에 당첨되어서 받은 것이다.(그때 얼마나 기뻤던지~) 6권짜리 낱권이 다 출간된 뒤에 고려원에서는 영문원본만 빼고 6권을 하나로 묶어서 펴냈다. 스티븐 킹의 작품으로 영어공부를 해야겠다는 광기에 휩싸여 있거나, 집이 좀 잘산다는 경우가 아니라면 후에 나온 6권 통합본을 구입하는 것을 권하고 싶다.

폴 에지콤은 미국 대공황시절에 사형수감옥에서 교도관으로 근무한다. 사형수들을 다루므로 사형집행까지도 맡는다. 사형집행이 이루어지면 죄수가 감방에서 나와 전기의자까지 걷게 되는 복도가 초록빛이어서 그 복도를 그린 마일이라고 불렀다. 소설 The Green Mile은 폴 에지콤이 죄수들과 그린 마일을 함께 걸으며 겪은 일들을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격렬하게 그려내고 있다.

어느날 사형수감옥에 존 커피라는 덩치가 대단히 큰 흑인이 들어온다. 그는 쌍둥이 소녀 둘을 살해한 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들어온 것이다. 존 커피는 위압감을 느끼게 하는 덩치와는 달리 폴의 말에 순종한다. 저런 인간이 어떻게 잔인한 살인을 저질렀을까 할 정도로 순박한 면모를 보인다. 그 즈음에 사형수 감옥에 새로운 신입생이 나타난다. 한마리의 쥐. 그 쥐는 유난히 사람을 잘 따르더니 사형을 앞두고 있는 프랑스인 죄수와 붙어 지낸다. 그러나 프랑스인을 미워하는 낙하산타고 내려온 심술궃은 교도관이 잔인하게 쥐를 살해한다. 프랑스인은 울고불고 난리가 났는데, 존 커피가 특유의 순박한 목소리로 쥐의 시체를 자기에게 갖다 달라고 말한다. 그가 쥐를 배고파서 잡아먹는다거나, 쥐포로 만들어 감옥 구내식당에서 판매를 시작한다는 얼토당토않은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은 아니다. 좀 더 엄숙하고, 좀 더 신비스런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이야기는 마지막으로 갈수록 액션과 스릴을 동반하며 줄기차게 치고 올라온다.

이야기는 전반적으로 느긋하게 흘러가는 편이다. 등장인물도 좀 많아서 처음에는 헷갈릴 수도 있다. 난 그린 마일을 읽고서 너무 좋아서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었다가 뭐가뭔지 너무 복잡해서 모르겠다는 말과 함께 도로 돌려받은 적도 있다. 하지만 단순히 느리고 복잡한 스토리를 가졌다면 미국에서 6개월동안의 징검다리 출판이 성공적으로 끝나지는 못했을 것이다. 처음의 혼란스러움을 극복한다면 이 작품의 미덕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초반 스토리는 잔잔하게 흘러가지만 페이지가 늘어갈수록 생생한 캐릭터들간의 얽히고 설킨 인간관계가 주는 아기자기함과 기존 죄수의 사형집행과정, 새로운 싸이코죄수의 등장, 커피의 범행사실에 관한 진실 등이 밝혀지면서 스피드에 가속이 붙으며 때론 액션영화처럼 때론 추리영화처럼 때론 서스펜스영화처럼 읽는이를 자극시킨다. 다 읽고 난 뒤에는 놀라움과 함께 생명이란 무엇인지, 영원히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 죽음이란 무엇인지 등의 철학적인 생각들이 아주 잠깐 1000분의 1초 동안만이라도 머리 속에서 맴돌고 있을 것이다. (다들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스티븐 킹의 <The Green Mile>은 고려원 출판사에 이어 황금가지 출판사에서도 <그린 마일>이라는 제목으로 번역출간했다.

The Green Mile은 킹의 또다른 감옥소설 쇼쌩크탈출을 영화화했던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다. 소설에 충실하게 우직하게 만들어진 이 영화는 소설안보고 그냥봐도 참 감동적이다. 난 극장에서 봤었는데, 소설을 봐서인지 영화가 더 절절히 다가왔다. 흑인죄수 존 커피 역을  맡았던 보디가드출신의 배우("아마겟돈"이라는 영화에도 출연)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영화제에서 조연남우상에... 후보로 오르기도 했었다. 폴 에지콤 역은 톰 행크스가 맡아서 열연을 했는데, 그 중에서 화장실에서의 표정연기가 압권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미묘하게 떨리는 얼굴근육들의 몸부림. 그린 마일은 동네 비디오가게에 가면 있을테니 못봤다면 빌려보기를 추천한다. 동네 비디오가게에 없다면 그 가게는 200살 먹은 쥐들의 저주를 받아 곧 망하게 될 것이다.

이 영화는 <그린 마일>이라는 제목으로 DVD가 출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