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킹이 말하는 아카데미상의 의미

뉴스 2010. 3. 23. 23:51 posted by 조재형

☞ 잡지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에 스티븐 킹이 쓴 칼럼 "Stephen King on the Academy Awards"가 실렸습니다.

이 칼럼에서 킹은 아카데미상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매년 아카데미상 시즌이 되면 스티븐 킹은 생각합니다.
"극장 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만 아카데미상을 '사랑'하고, 영화를 진짜 '사랑'하는 사람들은 아카데미상을 '좋아하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 같아."

1년에 영화를 적어도 80편 정도는 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으로서, 킹은 자신이 두 번째 부류의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킹은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멋진 여배우가 멋진 드레스 입고 나오는 모습을 감상할 수는 있지만, 누가누가 예쁘게 차려입고 나왔는지 시시콜콜히 따져가며 관심을 보일 정도는 아닙니다.
아름다운 배우들이 시상식 자리에 앉아 잡담을 나누는 광경은 운동경기가 지루해질 때 TV에서 벤치에 앉은 운동선수들을 클로즈업하는 화면만큼이나 따분하고, 배우들이 시상식장으로 들어가는 레드카펫은 그저 비를 피하기위해 걸어야하는 통로정도로 보일뿐입니다.

게다가 2000년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의 "그린마일"이 작품상과 각색상 후보에 올랐던 때 이후로는 스티븐 킹 원작영화가 아카데미와 인연을 맺은 적이 없으니 킹은 더더욱 심드렁해지기만 합니다.

TV에서 아카데미상 시상식을 중계방송해줄 때면 킹은 간식을 먹으며 시청하다가 잠을 자게 되고, 시상식 결과는 대개 다음날 인터넷을 통해 확인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상을 탔는지, 얼마나 터무니없는 사람한테 상을 안겨주었는지 확인해보는 거죠.

수상결과는 대개 터무니없다고 느낄 때가 많지만, 뭐 어떻습니까. 상도 시상식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수상자는 중요하게 여길수도 있을 것입니다.
흥행업자는 분명히 중요하게 여기겠죠. 아카데미상 타면 극장흥행수입이 늘어날테니.

사실 중요한 것은 영화 자체입니다.
정말 좋은 영화들, 정말 재미있는 영화들말입니다(때로는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은 하지 못한 영화들을 뜻하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영화는 좋은 영화도 아니고 재미있는 영화도 아닙니다. 다들 아는 상식이지 않습니까?

때로는 "갱스터 러버(Gigli)"나 "Freddy Got Fingered"처럼 이례적으로 나쁜 영화가 출현해서 감탄을 자아내기도 합니다.
그렇게 역사적인 쓰레기 영화를 위해 골든라즈베리상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영화들은, 마이클 만 감독이 만은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ies)" 같은 영화들은 그저그런 영화일뿐입니다.
아카데미상한테도 외면당하고, 골든라즈베리상한테도 외면당하는 영화들이죠.

영화는 여러 사람의 협력으로 만들어지는 예술이고, 창의적인 사람들은 때때로 다른 사람들과의 협동작업에 잘 어울리지 못하기도 합니다.
조화로운 모습이 흔하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조화가 잘 이루어진 영화가 등장하면 킹은 숭고한 충만감을 느끼게 되고, 이런 충만감이, 또는 이런 충만감에 대한 기대가 킹의 눈길을 자꾸만 영화감상으로 이끌게 됩니다.

영화 "크레이지 하트(Crazy Heart)"에서 제프 브리지스의 연기가 훌륭했다는 것은 TV 프로그램에서 일일이 말해주지 않아도 다 아는 사실이지만, 그가 상을 타서 무슨 말을 한다한들 자신의 훌륭한 연기를 제대로 설명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펼친 훌륭한 연기는 오직 영화 속에서만 살아숨쉬는 것이고, 그의 곁에서 능력있는 영화인들이 그를 뒷받침해주었기에 그의 연기력이 빛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제프 브리지스가 복받은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