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킹이 말하는 TV 토크쇼의 실패

뉴스 2010. 2. 18. 22:44 posted by 조재형

☞ 잡지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에 스티븐 킹의 칼럼 "Stephen King Talks About 'The Jay Leno Show'"가 실렸습니다.

이 칼럼에서 킹은 방송인 "제이 리노"에 관하여 말합니다.

제이 리노는 NBC 방송국에서 1992년부터 밤 11시 35분의 심야 토크쇼 "투나잇 쇼"를 진행해온 유명 방송인입니다.

라이벌 방송사에서 제이 리노를 스카웃해가려는 시도가 잇따르자, NBC 방송국은 2009년 9월, 황금시간대인 밤 10시에 토크쇼 "제이 리노 쇼"를 신설합니다.
하지만 황금시간대를 장악한 다른 방송국의 막강한 프로그램들 때문에 시청률 싸움에서 밀리자 "제이 리노 쇼"는 결국 2010년 1월에 폐지되었고, 제이 리노는 다시 "투나잇 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스티븐 킹은 "솔직히 말해 '제이 리노 쇼'가 망해서 기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제이 리노를 싫어하는 것은 전혀 아니라고 밝히며, 오히려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제이 리노가 예전에 '투나잇 쇼'를 진행할 때 킹은 그 방송에 출연해서 제이 리노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킹은 그에게서 좋은 인상을 받았고 직접 만나보면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이라고 느꼈습니다.

킹이 출연 순서를 기다리며 대기실에 있었는데, 제이 리노가 대기실로 찾아와 인사를 건넸습니다.
제이 리노는 킹을 만나 무척 반갑다고 말하며, 전반적인 심야방송의 단점을 비판하고 특히 '투나잇 쇼'를 예로 들어 비판했던 킹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가 그 사실을 미리 밝힌 것은 행여나 토크쇼에서 그것과 관련해 난처한 질문이 나올까봐 킹이 걱정할까 싶어 배려한 것입니다.

제이 리노가 킹에게 말했습니다.
"그 문제로 전혀 걱정하실 거 없습니다. 우리는 서로 즐겁게 이야기 나누려고 여기에 모인 거잖아요."

킹은 '제이 리노 쇼'가 폐지돼서 제이 리노가 즐겁지 못할 것이라 말합니다.
방송을 통해 사람들을 즐겁게 해준다는 자부심에 상처를 입었으니까요.

킹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킹이 각본을 쓰고 제작에도 참여한 TV시리즈 '스티븐 킹의 킹덤'이 2004년 ABC 방송국에서 시청률 하락으로 폐지되었을 때, 좋은 기회를 날려버렸다는 자괴감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 때문에 킹은 몇 달동안 우울증에 시달렸는데, 겉으로는 남들 앞에서 웃고 다녔습니다.

킹은 현재 제이 리노도 그 옛날 킹의 모습과 똑같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이 리노에 대한 호감과는 별개로 스티븐 킹은 NBC 방송국이 황금시간대에 제이 리노의 토크쇼를 방영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황금시간대에 방영되는 리얼버라이어티 프로그램들도 싫은데 토크쇼까지 밀고 들어오다니!

황금시간대에 방송된 '제이 리노 쇼'는 무미건조한 개그와 연예인들의 자기 홍보로 가득한 맛없는 음식과도 같았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시청자의 뇌를 자극할만한 요소가 전혀 없었습니다.

밤 11시 30분이라면 대부분의 미국인이 잠자리에 들 시간이라 조금은 나른하게 흘러가는 토크쇼가 잘 먹히겠지만, 토크쇼가 황금시간대에 방송된다면?

잘 먹힐리가 없습니다. 절대로.

킹은 '제이 리노 쇼'가 망한 것이 기쁩니다.
사실 킹은 처음엔 '제이 리노 쇼'가 성공할까봐 걱정했습니다. '제이 리노 쇼'가 시청률을 잡아먹는 괴물이 돼버리면 다른 방송국들도 황금시간대에 유사한 토크쇼를 마구 양산해내는 최악의 사태가 일어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제이 리노 쇼'의 실패.
'제이 리노 쇼'의 모든 방영분을 다 합해도 비슷한 시간대에 방영되는 드라마 한 편보다 재미가 없었습니다.

킹은 리얼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싫어하는데, 리얼을 표방하면서도 리얼한 것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그저 출연자들이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펼칠뿐이죠.

킹은 '투나잇 쇼' 같은 토크쇼 스타일도 싫어하는데, 별다른 재미난 구성 없이 홍보의 도구에만 머무는 한계를 지녔기 때문입니다.

NBC 방송국은 '제이 리노 쇼'의 빈 자리를 양질의 드라마로 채울 수 있을까?
그런 일은 꿈에서나 일어나겠죠.
그 빈자리는 리얼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나 장수 드라마의 구태의연한 후속편 등으로 채워지는 것이 현실일테죠.

그래도 일단은 황금시간대에 지긋지긋한 토크쇼가 실패해서 다행입니다.
안 그랬으면 타 방송사의 성공작을 그대로 베끼는 방송계의 풍토대로 토크쇼 천지가 돼버렸을테니.
시청자들은 위험한 총알을 피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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