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 더 돔 / Under the Dome

작품 감상문 2010. 1. 12. 22:05 posted by 조재형

사용자 삽입 이미지

Under the Dome

(2009년 소설)

스티븐 킹이 1,000쪽이 넘는 장편소설 "Under the Dome"을 발표했을 때 나는 엄청난 전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두꺼운 책을 쓰기로 유명한 킹의 작품 중에서 "스탠드", "그것"에 이어 세 번째로 분량이 많은 소설이다(시리즈 등을 제외한 단독 장편소설 기준).

"Under the Dome"을 쓰느라 스티븐 킹이 공들인 시간과 노력과 에너지를 생각하니, 스티븐 킹 빠돌이의 벅찬 가슴은 진정될 줄을 몰랐다.

킹의 작품을 원서로 읽을 경우, 나는 대개 저렴한 문고본을 구해서 읽는다.
하지만 "Under the Dome"의 경우에는 도저히 문고본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교보문고에서 "Under the Dome" 원서 양장본을 판매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냉큼 달려가 구입하고 말았다.

교보문고에서 "Under the Dome" 원서 양장본을 받아들었을 때, 나의 작은 손에 느껴지던 묵직한 무게감은 책을 읽기도 전에 큰 만족감을 안겨주었다.
그리고는 열심히 책을 읽었다.

2009년 12월말에 구입한 책을 2010년 1월초에 다 읽었다.
햇수로 2년동안 책 읽은 게 자랑~
흥분하면서 책 읽다 책종이에 손가락 베인 건 안 자랑~ "Under the Dome"은 나의 피를 흡수한 첫 번째 스티븐 킹 책이 되었다... ㅜ_ㅜ

소설 "Under the Dome"은 두꺼운 분량에 걸맞게 100명이 넘는 등장인물이 출연한다.
수많은 등장인물의 이름이 헷갈릴까봐 두려운 독자를 배려해, 책 맨앞에는 주요 등장인물의 이름이 정리되어 있다.

"Under the Dome"은 메인 주 체스터스 밀 마을을 갑자기 거대한 투명 돔(Dome)이 덮쳐서 마을 주민 전체가 외부세상과 완전히 격리되어 버리는 불가사의한 현상을 이야기한다.

분량이 많은 소설이고 인간세상이 별안간 생지옥으로 변하고 정치와 종교가 주요소재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장편소설 "Under the Dome"은 킹의 또 다른 장편소설 "스탠드"와 비견되곤 하는데, 한정된 공간 안에 고립된 사람들이 옥신각신한다는 점에서 킹의 중편소설 "안개"가 연상되기도 한다.
(실제로 "Under the Dome"에서는 "안개"를 각색한 영화 "미스트"가 언급되기도 했다.)

20세기에 집필된 "스탠드"와 "안개"를 합쳐 21세기 버전으로 화려하게 만들면 "Under the Dome"이라는 옥동자가 탄생한다고나 할까?
"스탠드"나 "안개"와는 달리 "Under the Dome"은 인터넷과 휴대폰이 일상생활의 일부가 된 21세기 현대 미국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Under the Dome"의 등장인물들이 인터넷과 휴대폰에 매달리는 것을 본다면, "스탠드"와 "안개"의 등장인물들은 질투심에 불타오를게 분명하다.

미국 전역("스탠드")과 슈퍼마켓("안개")의 중간쯤 규모라고 할만한 마을 하나가 "Under the Dome"의 배경인데, "스탠드"의 미국 전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아보이기는 하지만 "Under the Dome"의 체스터스 밀 마을은 엄연히 2,000명이나 거주하는 곳이다.
2,000명이 거주하는 마을을 배경으로 100명이 넘는 등장인물을 출연시키며 1,000쪽이 넘는 분량 속에서 소설 "Under the Dome"의 이야기가 어떤 형식으로 진행될 것인지 나는 무척 궁금했다.

소설 "Under the Dome"은 에피소드가 나열되는 형식을 취한다.
에피소드마다 순서대로 번호를 매겨서 구분하는데, 비교적 짧은 분량의 에피소드가 많다.
두세쪽 정도 되는 짧은 분량의 에피소드가 수없이 모여들어 1,000쪽이 넘는 대형소설을 이루어내는 것이다.

덕분에 이야기의 속도감이 빠르다.
"이 에피소드만 읽고 쉬어야지"라고 생각하다가도 읽다보면 그 다음 에피소드도 읽게 되고, 또 그 다음 에피소드도, 또, 또, 또-
읽으면 읽을수록 이야기의 속도감에 휘말려서 꽤 많은 분량을 나도 모르게 해치우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프링글스 과자를 하나하나 집어먹다 보면 어느새 과자통이 바닥을 드러내는 경우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소설의 맨처음은 평화롭던 체스터스 밀 마을에 거대한 투명 돔이 생겨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엄청나게 강력한 장벽이 생겼지만 사람 눈에 안 보이는 탓에 벌어지는 불행한 사고들이 짧막짧막한 에피소드별로 숨가쁘게 진행된다.
"스탠드" 초반에 살인독감에 의해 사람들이 줄줄이 죽어나가는 모습들을 묘사하듯, 스티븐 킹은 기꺼이 체스터스 밀 마을도 아비규환의 현장으로 만들어버린다.
저 앞에 사람이 뻔히 보이는데도 투명 돔에 가로막혀 다가갈 수 없는 답답하고 허탈한 심정이 고스란히 내 마음에 전해졌다.

마을 주민들이 여러 가지 사고 뒤 드디어 돔의 존재를 깨닫게 되자, 소설은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돔에 갇힌 탓에 주민들이 겪는 비극을 생생히 전달한다.
그 중 일부는 직접적으로 돔 때문에 생겨나는 비극이고, 일부는 돔을 핑계로 이기적인 인간들이 벌이는 "나쁜 짓" 때문에 생겨나는 비극이다.

돔이 마을을 덮친 뒤로 피가 그칠 때가 없다.
스티븐 킹은 마을에서 일어나는 더러운 일들을 독자들을 향해 에피소드별로 융단폭격한다.
가나다라마바사~를 노래하듯, ABCDEFG~를 노래하듯 소설 "Under the Dome"의 속도감과 리듬감은 참 뛰어나다.
마치 마하의 속도로 비행하는 크루즈 미사일을 보는 것만 같다. 지형에 따라 오르막과 내리막을 종횡무진 누비고 다니며 오로지 목표를 향해 앞만 보고 냅다 달리는 것이다.

이 소설에 나오는 수많은 등장인물 중 주인공격인 사람을 꼽으라면 "데일 바바라"를 들 수 있다.
그는 체스터스 밀의 식당에서 요리사로 일하는 외지인인데, 예전에 이라크전 참전 경험이 있는 군인이었다.
마을에 돔 사태가 일어나자 어떻게든 해결해보기 위해 애를 쓰지만 너무 힘든 상대를 만나게 된다.

이 소설의 악역 "짐 레니"와 사사건건 부딪히게 되는 것이다.
짐 레니는 중고차 판매장을 운영해 돈을 버는 기업가이기도 하지만, 마을 행정위원으로 일하는 정치가이기도 하다.
체스터스 밀을 좌지우지하는 실세여서 공권력을 자신의 손 안에 장악하고 있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듣고 싶은 말만 듣는 고집스런 성격의 소유자.
(짐 레니가 자신의 근거 없는 자신감을 여고생 농구경기에 빗대어 설명하는 부분이 압권이다. 이 부분을 묘사하는 스티븐 킹의 문장이 참 매끄럽고 날렵하다.)
게다가 교회 집사이기도 하다.

이렇다보니 소설에 짐 레니가 등장하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나는 대한민국 서울에 살고 있는 어떤 사람이 생각나서 무척 괴로웠다.
체스터스 밀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비상식적인 일들이 현재 대한민국 사회와 자꾸 겹쳐보이는 듯한 착각에 시달리기도 했다. -_-;;

소설 "Under the Dome"이 정치와 종교에 대한 스티븐 킹의 비판 또는 조롱을 담고 있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나의 반응이 그럴듯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완전 "같기도" 천국이다;;;

아무튼 데일 바바라가 뭔가 할라치면 짐 레니가 자꾸만 딴죽을 건다.
바바라가 군인 출신이라 화끈한 활약을 보여줄 것 같은 기대감이 들기도 하지만, 마을의 경찰력을 장악한 짐 레니 앞에서는 완전 고양이 앞의 쥐 신세일 수 밖에 없다.
돔 사태 마저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데 악용하는 짐 레니의 막강한 악역 파워가 소설 내내 눈부시게 빛난다.
짐 레니의 막무가내식 생각과 행동은 선량한 독자들을 반드시 분노와 짜증의 감정에 샤워하도록 만들 것이다.
스티븐 킹은 정말이지 나쁜 인간을 창조하는데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다. -_-;;

어떤 독자들은 데일 바바라가 결국엔 007이나 제이슨 본 같은 일당백의 괴력을 발휘해서 짐 레니를 막 쥐어패줄 것이라 기대할지도 모르겠지만...

스티븐 킹은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독자들이 소설 초중반의 자잘한 에피소들을 신나게 먹어치우는 동안 마음 속에 품었을법한, 주인공의 활약상에 대한 기대감을 박살내버린다.
킹은 데일 바바라 마저도 수많은 등장인물 중 하나라는 점을 부각시키며, 돔 아래서는 모든 인간이 다 나약한 존재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증명해낸다.

어떻게?

독자들이 기대하던 이야기의 흐름을 과감하게 꺾어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꺾인 이야기의 흐름이 어리벙벙해진 독자의 눈 앞에 대단히 장엄한 모습으로 격렬하게 돌진해온다.
체스터스 밀 마을 전체가 파국을 향해 치닫는다.
킹은 모든 사람들을, 주인공격인 데일 바바라 마저도 열외 없이,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넣는다.
이런 일을 벌이며 스티븐 킹은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냉혹하게 이야기를 전개시켜나간다.

아이러니하게도 여기서 체스터스 밀의 혼란을, 마을 주민들의 비극을 묘사하는 킹의 화려한 묘사가 눈부시게 빛난다.
수없이 많은 문장을 쏟아내며 과거 시제와 현재 시제를 마음껏 오가는 스티븐 킹의 스타일이 현장감을 증폭시켰다.
전체적인 상황을 슥슥 그려나가면서도 구체적인 디테일 마저도 놓치지 않는 묘사의 달인, 스티븐 킹의 진면목이 느껴질 수 밖에 없다.

이 와중에 독자는 자꾸만 궁금증이 밀려오게 된다.
과연 돔은 어떻게 될 것인가? 등장인물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킹이 이야기의 몸집을 무턱대고 부풀려놓은 것만 같고,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것만 같다.
속도감 있는 이야기를 읽다보니 어느새 1,000쪽을 훌쩍 지나 마지막 페이지가 자꾸만 가까워지는데, 절망스런 분위기만 한가득이다.

그러다... 킹이 어둠 속에 한줄기 희망의 빛을 툭 던지는 순간... 나는 책을 읽다말고 고개를 들어 입을 벌렸다. 그 자세로 5초간 가만히 있었다.
"역시 스티븐 킹이 짱이다. 오오, 스티븐 킹 신이시여~~~"

앞서 언급한 대로 소설 "Under the Dome"은 주인공의 무자비한 액션을 기대한 독자들을 배신하는 이야기 전개를 보여주지만, 그런 기상천외한 전개 덕에 더욱 여운이 남는 결말을 선사한다.
누군가는 호불호가 갈리는 결말이라고 말하겠지만, 나로서는 무척 만족스런 결말이었다.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쏟아져나오는 덩치 큰 이야기의 줄기를 끈질기게 이끌어가며, 등장인물들의 마음 속에 심어놓은 떡밥들을 아름답게 수확해내는 기분 좋은 결말이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나니 좋은 이야기를 읽었다는 기쁨이 밀려오면서도, 이 이야기가 더 길게 영원히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1,000쪽이 넘는 두꺼운 책이었지만, 그만큼 나의 마음을 깊게 몰입하도록 만든 작품이었다.
2009년과 2010년에 걸쳐 "Under the Dome"을 읽는 동안, 너무 재밌어서 잠자는 시간 마저 아껴가며 책을 읽었다.
마지막 결말 부분을 읽을 때는 정말이지 흥분의 도가니였다. 스티븐 킹의 숨가쁜 문장을 뒤따라가는 나의 두 눈이 미친듯이 날뛰고 있었다;;;

스티븐 킹은 원래 돔이 마을을 습격하고 나서 1년동안 벌어지는 일을 쓸 계획이었다가 스케일이 너무 커지는 것 같아서 기간을 축소시켰다고 하는데, "Under the Dome" 1년 버전도 써달라고 스티븐 킹한테 마구 조르고만 싶다. -_-;;;

"Under the Dome"이 출간 되기 전 투명한 돔이 마을을 덮어 고립시킨다는 설정이 공개되었을 때, 어떤 이들은 심슨가족 극장판 애니메이션과의 유사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스티븐 킹은 이 "고립"의 설정을 심슨가족이 나오기도 전에 떠올렸다는 사실을 밝혔다.
1978년에 "Under the Dome"이라는 제목으로 소설을 쓰다가 너무 부담이 돼서 포기했고, 1982년에는 "The Cannibals"라는 제목으로도 써봤다가 또 역시 포기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2007년 호주 여행을 하러 비행기를 타는 동안 예전의 아이디어가 다시 떠올라 재집필을 결심했고, 그렇게해서 2009년에 장편소설 "Under the Dome"이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이다.

의심하는 사람들을 위해, 스티븐 킹은 "The Cannibals"의 원고 일부를 스티븐 킹 공식사이트에다 두 차례에 걸쳐 공개해놓았다.

스티븐 킹 소설 "그것"을 인상깊게 읽었던 독자라면 "Under the Dome"을 읽다가 반가움을 느낄 것이다.
"그것"에 등장했던 악마(?)의 기호가 "Under the Dome"에도 등장해서 기묘한 분위기를 조성해준다.

리 차일드의 소설 "잭 리처" 시리즈를 인상깊게 읽었던 독자라면 역시나 "Under the Dome"을 읽다가 반가움을 느낄 것이다.
스티븐 킹은 잭 리처 시리즈의 팬인데, "Under the Dome"에 잭 리처를 언급하는 장면이 있다.

소설 "Under the Dome"을 읽고 나니 스티븐 킹이 참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환갑이 지난 할아버지가 쓴 1,000쪽이 넘는 대형소설이 나의 마음을 이리도 기분 좋게 쥐고 흔들다니.

게다가 이 할아버지는 "Under the Dome" 집필을 끝내고 현재 또 다른 신작소설을 집필 중이다.

게다가 그 다음에 쓸 소설도 두 개나 정해놓았고, 어느 것을 먼저 쓰면 좋겠느냐고 독자들한테 투표를 실시하기까지 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지치지 않는 킹의 창작력이 존경스럽다.

내가 이런 작가의 팬이라서 행복하다.

p.s. 이 책은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언더 더 돔"이라는 제목으로 번역출간하였다(전3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