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무도 / Danse Macabre

작품 감상문 2007. 5. 11. 01:58 posted by 조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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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se Macabre

(1981년 공포예술비평서)

 이 책은 소설이 아니다. 1950년대부터 1980년까지 미국 대중예술 중 공포장르만 모아서 일반독자들이 부담없이 읽을 수 있도록 소개한 책이다. 영화, TV, 라디오, 소설 중에서 스티븐 킹이 직접 고른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1957년 킹이 열살때 극장에서 '지구 대 비행접시'라는 외계인 침략영화를 보다가 미국보다 먼저 소련인들이 스푸트니크 인공위성을 쏘아올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공포로부터 시작해 그가 성장하면서 공포스럽게 체험한 작품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미국 공포장르에서 우리가 모르는 고전들을 접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고전들에서 스티븐 킹 작품들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킹도 결국 혼자서 자신의 세계를 창조한 것이 아니다. 먼 옛날부터 활동한 선배들의 영향 속에서 창조적 모방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열어간 것이다.

부록에는 킹이 추천하는 영화와 소설의 목록이 쫙 깔려있다. 강추천작에는 친절하게도 *표시를 해 주었다. 킹의 추천작들을 접해 본다면 킹 소설의 근간을 이루는 공포가 어디로부터 비롯되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추천목록에서 한국의 독자들도 알만한 작품을 보자면, 영화에는 에일리언,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엑소시스트, 신체강탈자들의 침입, 할로윈,죠스 등이 있다. 소설로는 사이코, 파리대왕, 로즈마리의 아기,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등이 있다.

책의 결말부분에 가면 대중예술에서 표현되는 폭력이 실제 범죄를 유발시킨다는 세간의 비난에 대해서 스티븐 킹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부분이 있다. 킹이 의견을 말하면서 간간이 실제 일어났던 일들을 소개했는데 몇가지를 살펴 보기로 하자.

1) 옆집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는 주민의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했다. 문제의 옆집에서 경찰이 발견한 것은 온통 피로 가득한 난장판이었다. 그리고 더욱 끔찍한 사실도. 그 집에 사는 젊은 남자가 아주 담담하게 범행사실을 인정했다. 파이프몽둥이로 자기 할머니를 살해한 후 목을 절단했다는 것이다.

"할머니 피가 필요했어요." 그 젊은이가 경찰에게 조용히 얘기했다. "나는 뱀파이어에요. 할머니 피가 없었으면, 난 이미 죽었을거에요."

경찰은 그의 방에서 뱀파이어와 관련된 잡지기사, 만화책, 소설책들을 찾아냈다.

2) 1960년 오하이오. 외롭게 생활하고 있던 한 청년이 '사이코'라는 영화를 다섯번이나 보고서 극장문을 나섰다. 이 청년이 집에 돌아와서는 자기 할머니를 칼로 찔러 살해했다. 나중에 의사는 시체에서 칼자국을 40군데나 발견했다.

왜 그랬지? 경찰이 물었다.

목소리들. 청년이 대답했다. 목소리들이 나한테 그렇게 하라고 말해 주었어요.

3) 1980년 1월. 한 여자와 그녀의 어머니가 여자의 생후 3개월된 아기문제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기가 울음을 그치지 않는 것이다. 아기는 항상 울기만 했다. 두사람은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합의를 보았다. 엑소시스트라는 영화에 나오는 어린 소녀처럼 여자의 아기도 악마에게 홀린 것이 분명했다. 그들은 침대에 누워 울고 있는 아기에게 가솔린을 뿌리고서 악마를 몰아내기 위해 불을 붙였다. 화상치료 병원으로 옮겨진 아기는 3일동안 숨이 붙어 있었다. 그러다 결국 세상을 뜨고 말았다.

4) 1977년 보스턴. 한 청년이 갖가지 주방도구를 사용해 여자를 살해했다. 경찰은 그 청년이 스티븐 킹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브라이언 드 팔머 감독의 영화 '캐리'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 영화에서 캐리라는 여자 주인공은 코르크마개를 따는 송곳과 감자껍질 벗기는 칼을 포함한 수많은 주방도구로 자기 엄마를 살인한다. 캐리가 미사일처럼 날려보낸 주방도구들에 의해 엄마는 말그대로 벽에 박혀 죽는다.

5) 1969년 로스 앤젤레스. 나중에 심장마비로 욕조 안에서 사망하게 되는 가수 짐 모리슨은 The End라는 노래 끝부분에서 '죽여, 죽여, 죽여'라고 읊조리며 노래했다. 10년후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은 지옥의 묵시록이란 영화의 처음부분에 그 노래를 삽입했다.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칼로 도려낸 사람의 귀를 손에 들고 수줍게 웃고 있는 미군 병사의 사진을 게재했다. 그리고 로스 앤젤레스 근교에서 꼬마아이가 손가락으로 동생의 눈을 뽑아냈다. 꼬마가 얘기하기를 자기는 단지 바보 삼총사(Three Stooges)라는 코미디시리즈에서 보았던 두손가락으로 눈찌르기를 흉내내려 했었다고 한다. TV에서는 바보 삼총사가 그런 행동을 해도 아무도 다치는 사람이 없었다고 꼬마는 울면서 말했다.

6) "당신의 영화 '사이코'의 샤워장면에서 보여지는 폭력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평론가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에게 물었다.

"'내사랑 히로시마' 영화에서 나오는 오프닝 장면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히치콕이 도리어 질문을 던졌다. 1959년 당시 미국인들의 기준으로는 대단히 혐오스럽게 받아들여지던 그 오프닝장면에서는 엠마뉴엘 리버와 엘리지 오까다가 벌거벗은 채 서로를 껴안고 있다.

"그 오프닝장면은 영화의 완성도를 위해 필요한 장면이었죠." 평론가가 대답했다.

"'사이코'의 샤워장면도 마찬가집니다." 히치콕이 대답했다.

7) 1980년 볼티모어. 한 여자가 버스를 기다리며 책을 읽고 있었다. 베트남에 참전했었고 약물중독 경력도 있는 전직군인이 여자에게 다가왔다. 그는 아직도 지난 시절의 전투현장에 와있는듯이 착각하는 정신질환을 앓아왔다. 그녀는 예전에도 버스정류장 근처에서 그 남자를 본 적이 있었다. 때로는 이리저리 건들거리기도 하고, 때로는 비틀거리기도 하고, 때로는 큰소리로 거칠게 주위에 있지도 않은 사람을 부르기도 했다. "알겠습니다, 대장!" 그녀는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버스를 기다리는 그녀를 그가 공격해 왔다. 나중에 경찰은 그가 마약 살 돈을 구하려고 그랬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그 이유 따위는 별 상관없게 됐다. 그의 목적이 무엇이었건 그는 죽어버렸으니까. 불행히도 그가 고른 상대는 터프한 여자였다. 그녀는 호신용으로 칼을 지니고 있었다. 반항하는 과정에서, 여자는 칼을 사용했다.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는, 전직군인이었던 흑인이 하수구 도랑에 죽은채로 누워 있었다.

그때 무슨 책을 읽고 있었던 거지요? 나중에 기자가 여자에게 물었다. 그녀는 기자에게 스티븐 킹의 소설 The Stand를 보여 주었다.

자 그럼 대중예술이 폭력을 일으킨다는 주장에 대해 공포소설의 왕 스티븐 킹은 어떤 대답을 했을까요? (사실 읽은지 하도 오래돼서 잊어먹었다. -_-) 그리고 당신의 의견은?

p.s. 원서에 관해 이 감상문을 쓰고 나서 몇 년 후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이 책의 한국어판 "죽음의 무도"를 번역출간하였다.
         번역자는 바로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