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킹의 가장 두꺼운 소설 10편

뉴스 2009. 11. 23. 22:49 posted by 조재형

☞ 시사주간지 "타임"에서 스티븐 킹이 집필한 가장 두꺼운 소설 10편을 선정했습니다.
(원서 양장본 기준, 시리즈 소설과 공동집필 소설은 제외.)

각 작품에 대해 스티븐 킹이 직접 자신의 의견을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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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드: 1,153쪽
그것:1,138쪽
Under the Dome: 1,072쪽
불면증: 787쪽
데스퍼레이션: 690쪽
캐슬록의 비밀: 690쪽
드림캐처: 620쪽
듀마 키: 607쪽
토미노커: 558쪽
자루 속의 뼈: 5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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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드: 무삭제 완전판, 1990년.

스티븐 킹: "스탠드" 최초 출간 당시 상당한 분량이 삭제되었다는 사실이 나를 무척 괴롭게 했습니다. 데블데이 출판사는 그 시절에 실제본 대신 본드제본 방식을 썼기 때문에 책 제작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내가 전해듣기로는 출판사에서 "스탠드" 원래 분량에 맞춰서 최대한 두꺼운 책을 만들려고 했더니 본드의 접착력이 감당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소설을 두 권짜리로 분권해서 만들어야한다는 것을 의미했고, 출판사는 그러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편집자가 나한테 와서 이렇게 말했답니다. "우리는 이 책을 400쪽 정도 삭제해야만 합니다. 책 제작 공정 때문에요. 작품의 질과는 아무 상관 없어요."

(세월이 흐른 뒤) 내가 그 삭제한 분량의 원고를 다른 편집자한테 보여주었더니 이런 반응을 보이더군요. "이제는 이 책을 다시 제작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스탠드'를 무삭제판으로 다시 내는 것이 가능해요." 그래서 나는 그 편집자 말을 믿고 책상 앞에 앉아 "스탠드"를 다시 썼습니다. IBM 전동 타자기의 한쪽 편에는 사용할 원고용지를 쌓아놓고, 반대 편에는 예전 "스탠드" 제본책에서 뜯어낸 종이들을 쌓아놓아서 재집필할 때 참고했습니다. 소설의 맨처음 부분부터 재집필을 시작했고 이야기 속 날짜들을 최근 날짜로 수정했고 새로운 장면을 추가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내가 했던 재작업에 관해 곰곰히 생각해보니 경악하게 되더군요. "에휴, 그거 완전 중노동이었어."

작가 로버트 블록이 사망했을 때, 사람들이 그 작가에 관해 기억하는 사실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영화로 만들어 유명해진 "사이코"의 원작자라는 것뿐이었어요. 그리고 사람들이 나를 소개할 때마다, "스탠드"를 쓴 사람이라고 소개하더군요. 요즘에는 여러 블로그에서 내 이름이 뜨면, 대개는 H1N1(신종플루)과 관련짓는 내용이에요. "스티븐 킹은 살인독감의 공포를 예언한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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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 1986년.

스티븐 킹: 그 당시에 나는 내 작품에 관한 리뷰와 기사를 굉장히 많이 읽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 리뷰/기사는 나를 공포소설가, 공포작가로서 부각시키더군요. 나는 이런 질문도 받곤 했습니다. "당신이 어렸을 때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런 무시무시한 이야기들을 쓰게 된 겁니까?" 나는 그런 질문에 조금이라도 정답을 생각해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기말고사 과제물로 공포스런 글을 써서 제출한다고 가정해보자. 모든 사람이 어렸을 때 무서워하는 온갖 괴물을 다 넣어서 말이지. 프랑켄슈타인, 늑대인간, 뱀파이어, 미라, 옛날 B급 영화에서 뉴욕을 삼켜버리던 초대형 괴생물체를 넣는다. 온갖 것들을 넣어 글을 써보는 것이다. 그러면 떠오르는 의문. '이런 글을 어떻게 전개시켜나갈 것인가?'" 그 의문에 대한 나름대로의 답변을 도출했습니다. "음, 이런 요소들을 동화처럼 써내려가면 좋겠다. 한 마을을 설정해놓고는 그 속에서 무시무시한 일들이 일어나는데도 마을 사람들이 그런 일들을 무시해버리는 상황을 묘사해보는 거지."

아내 태비사한테 이런 말을 한 적도 있습니다. "내가 '그것'이라는 소설을 쓰고 싶은데 말이지, 우리는 지금 시골에 살고 있잖아. 난 도시에 관해서, 도시 전체가 악귀에 홀린 것에 관해서 소설을 쓰고 싶은 거니까, 포틀랜드나 뱅고어 쪽으로 이사가는 게 좋겠어." 우리 부부는 서로를 멀뚱히 쳐다보았고, 나는 아내만 허락해준다면 뱅고어가 딱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곳은 정말 심오한 역사를 품고 있는 드센 도시였으니까. 그래서 나는 가을 내내 뱅고어를 돌아다니며, 소설에 포함시키고 싶은 여러 장소에 관해 어떤 사실을 알고 있는지 주민들한테 물었습니다. 그렇게해서 듣게 되는 이야기들을 경청하려고 했지요.

그 사람들의 이야기가 진실인지 아닌지는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믿는 것에 대해서만 신경썼어요. 여러 세대를 거치며 전해내려온 이야기들에 대해서만 신경썼습니다. 그리고 그 해 가을에 관해 가장 분명하게 기억하는 것은 뱅고어의 그림처럼 멋진 공동묘지 두 곳을 걸어다녔던 일입니다. 멋진 경치가 보이던 언덕에서 내려가보니 배수로 속으로 쓸려들어간 썩은 꽃 무더기가 눈에 띄었습니다. 1미터 내지 1미터 50센티 정도의 깊이로 쌓여있더군요. 악취가 굉장했습니다. 난 생각했죠. "그래, 이것도 소설 속에다 집어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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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r the Dome, 2009년.

스티븐 킹: 나는 무능한 권력에 염증을 느꼈습니다. 분명히 나는 좌파 성향입니다. 이라크전을 수행하는 것에 정당성이 있다고는 믿지 않습니다. 그리고 9/11 사태가 터지고 나자, 부시 행정부는 때린 놈을 찾아낼 능력도 없으면서 무작정 거리를 헤매고 다니는 화난 어린애처럼 굴었습니다. 그래서 부시 행정부는 고개를 돌려 제일 처음 눈에 띈 용의자를 냅다 후려갈기고 본 것입니다. 진정으로 '올바른' 사람들이 필요한 시기에 때로는 터무니없이 부정한 사람들이 권력을 잡는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나는 그런 점을 소설 속에 많이 집어넣었습니다. 집필을 시작하며 난 이렇게 말했어요. "소설 'Under the Dome' 배경이 되는 마을의 지도자들한테 부시-체니 행정부의 모습을 강하게 반영하고 싶다." 그 결과 빅 짐 레니라는 악인이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또 다른 악인 앤디 샌더스도 좋았어요. 그는 적극적으로 악행을 일삼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무능할 뿐이죠. 그게 바로 내가 항상 조지 W. 부시한테 느꼈던 감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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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증, 1994년.

스티븐 킹: 대형할인점인 월마트와 아마존과 타겟이 현재 벌이는 도서가격 할인 전쟁이 전국적인 도서 체인점을 동네서점 신세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에 걱정스럽습니다. 그리고 동네서점이야 그야말로 간신히 버티고 있는 상황이구요. 도서 체인점 보더스가 "글쎄, 우리는 가격 할인 전쟁이 두렵지 않다, 서점 본연의 서비스를 완벽하게 제공하면 그만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니 저절로 탄식이 흘러나옵니다. "아 하나님 맙소사, 존슨 대통령이 베트남전 승리를 말하는 것 마냥 허무하구나." 내가 보기엔 미국 소비자는 서점 본연의 서비스 따위 별로 신경쓰지 않습니다. 소비자는 마이클 코넬리 소설이든 세라 페일린 자서전이든 자기가 관심있는 책을 손에 넣기만하면 그만입니다. 나는 평소에 소설가 제임스 패터슨을 별로 존경하지 않지만, 그가 지금 상황을 가장 적절하게 말했습니다. 할인점들이 귀한 보석의 가치를 깎아내리고 있다고 말했지요. 다음엔 또 얼마나 심각이 일이 벌어질지 누가 알겠습니까?

질문: 당신은 줄거리를 미리 짜놓고 집필하는 소설과 줄거리를 미리 짜놓지 않고 집필하는 소설의 장단점에 관해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불면증"이 미리 짜놓은 줄거리 없이 집필한 소설이었다며, 되돌아보면 "불면증"은 결과적으로 "별로 활력이 없는" 작품이 된 것 같다고 느낌을 적었더군요.

스티븐 킹: 작가가 장편소설의 줄거리를 미리 짜놓으면, 특히나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장편소설을 쓰려고 하면, 작품이 어떤 식으로 끝이 날 것인지 알게 되죠. 그리고 만약 작품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를 원하는 게 느껴지면, 작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미리 정해놓은 진행방향으로 몰고 가고자 합니다. 하지만 작품이 원하는 대로 놔두는 게 더 낫습니다. "불면증"을 집필하다가 "나의 개인적인 목적을 위해 작품을 왜곡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던 게 기억납니다. 이 소설의 악역 캐릭터가 예정된 진행방향에서 너무나 일탈하고 싶어했는데, 나는 그것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그를 내가 원하는 바대로 몰고 갔어요. 그리고 그 결과, 이 작품에 대한 나의 믿음이 약화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작품에 대한 믿음을 잃으면, 독자들도 작품을 믿지 못할 게 당연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현실적으로 작가와 작품이 서로 너무 멀어져버린 티가 날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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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퍼레이션, 1996년.

스티븐 킹: 나는 종교를 믿는 집안에서 자라났고, 소설 "데스퍼레이션" 속에서 신에게 합당한 대우를 해주고 싶었습니다. 초자연적 요소가 있는 소설들을 보면, 슈퍼맨을 물리치는 크립토나이트 광석이나 뱀파이어를 물리치는 성수 같은 존재로 신을 다루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그냥 신의 이름을 꺼내며 "신의 이름으로 이루어질지어다"라고 말하기만 하면, 악의 존재는 사라져버리죠. 하지만 인간의 삶 속에서 실질적인 힘을 발휘하는 신에게는 그런 소설 장면보다 휠씬 더 복잡한 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점을 "데스퍼레이션"에서 말하고 싶었지요. 선한 사람이 승리하도록 신이 항상 의도하는 것은 아니에요.

"신은 확실한 계획을 갖고 있다"거나 "이것은 더욱 커다란 선을 위한 것이다" 같이 상투적인 개념을 쓰더라도 이야기를 잘 엮어나갈 수도 있다는 걸 늘 말하고 싶었습니다. 지금 당장은 고통을 겪더라도 이 세상에 선을 지향하는 세력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계속 버리지 않는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렇다고해도 "네가 믿는 신보다 내가 믿는 신이 훨씬 강하다"를 외치는 교회로 모든 사람들이 달려가야한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그런 독선적인 믿음이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분쟁에 절반쯤 책임이 있어요. 어쩌면 더 많은 책임이 있을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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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슬록의 비밀, 1991년.

스티븐 킹: 야박한 평을 받았던 내 소설들 중에서도 "캐슬록의 비밀"은 비평가들이 핵심을 헛짚는 바람에 내가 가장 큰 실망감을 느꼈습니다. 이 소설에 대한 아이디어는 한꺼번에 떠올랐습니다. "누군가 마을에 찾아와서는 마을 주민들이 각자의 이익의 위해 서로에게 나쁜 짓을 하도록 시킨다면 어떤 이야기가 만들어질까?"

내가 보기엔, 완성된 소설은 "탐욕도 미덕이고, 소비도 미덕이다"라는 레이건 행정부 시대의 사회풍조를 풍자하고 있었어요. 나한테는 참으로 유쾌한 작품 컨셉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가 전개되는, 블랙코미디 방식이 흥미롭기도 했구요. "캐슬록의 비밀"은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어떻게든 손에 넣어야 좋다는 미국 사회의 풍조를 강하게 풍자했습니다. 나는 그런 풍조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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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캐처, 2001년.

스티븐 킹: (교통사고를 당한 뒤라) "드림캐처"를 쓰는 내내 고통에 시달렸습니다. 소설 원고를 컴퓨터나 타자기의 자판으로 칠 수가 없을 정도였어요. 양편에 베개를 받쳐넣은 의자에 앉아 글을 썼는데, 특히 내 오른편 몸상태가 말이 아니었죠. 오른편 엉덩이가 항상 너무나 아팠고, 오른쪽 다리는 불이 붙은 듯 난리였답니다. 숙면을 취할 처지도 아니었어요. 너무나 많은 진통제를 복용하는 데도 별로 효과가 없었습니다. 그 와중에 "드림캐처"를 쓸 때면 작품의 매력에 푹 빠져들었습니다.

나는 욕실, 화장실을 중심으로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지는 이야기를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난 그런 이야기를 직접 써보고 싶었는데, 우리가 우리 인생에서 접하게 되는 정말로 무시무시한 소식의 상당수를 화장실에서 얻게 된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기를 발견하기도 하고, 변기 안에서 피가 보이기도 하고, 거울을 보다 불현듯 "제기랄, 나 대머리 되려나봐!"라고 울부짖기도 하잖아요. 그런 모든 일들이 화장실에서 일어납니다. 진정으로 사람들을 겁에 질리게 하는 일의 절반쯤은 무방비 상태의 장소에서 접하게 됩니다. 바지를 내린 채 들어가있는 화장실에서는 어느 누구도 무방비 상태가 될 수 밖에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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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마 키, 2008년.

스티븐 킹: 나는 고양이를 멋지게 그릴 능력이 없는 사람의 입장에서 소설 "듀마 키"를 집필해야 했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고양이를 그려줄 수는 있지만, 내가 미리 말해주지 않으면 당신은 어떤 고양이 그림이 나올지 상상도 못하겠지요. 그러니 사실 그것은 소망을 어느 정도 만족시키느냐의 문제였습니다.

소설 "데스퍼레이션"이 고통과 불행으로 가득한 작품이라면, "듀마 키"는 희망을 강하게 드러내는 작품입니다. 희망찬 세상 속에 들어온 기분이었거든요. 이 두 소설은 내가 교통사고 후 회복하는 과정에서 느낀 감정의 양극단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듀마 키"를 쓸 때는 심신이 전보다 훨씬 더 나아진 기분을 느꼈고, 그런 점이 소설 속에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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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미노커, 1987년.

스티븐 킹: "토미노커"는 아주 오래 전에 집필하려다 포기한 작품 중 하나였습니다. 대학 졸업반 시절에 어떤 남자가 비행접시 위로 넘어지는 아이디어를 떠올렸어요. 15~20쪽 정도를 쓰다가 포기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유는 기억나지 않네요. 아마 소설 "Under the Dome"의 경우와 비슷할 것 같습니다. 이야기의 스케일이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나도 거대했기 때문이겠죠. 그래서 집필을 중단한 거겠죠. 이야기가 몇 쪽 원고로 완성될 지는 신만이 알겠지요. 세월이 흐른 뒤 그 아이디어가 다시 생각났고 아이디어가 내포한 가능성에 매혹당하고 말았습니다.

집필을 하면서 이런 생각을 하던 게 기억납니다. "소설 속의 두 캐릭터가 땅 속에서 비행접시를 발굴해 다시 날게 할 수 있다면, 그들은 스스로 세계 평화를 지키는 보안관이 되겠다고 결심했다가 그런 이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정말로 무시무시한 일을 저지른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권력은 부패하게 마련이고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하게 마련이니까." 하지만 결과적으로 소설은 그런 식의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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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루 속의 뼈, 1998년.

( 스티븐 킹이 바이킹 출판사에서 스크리브너 출판사로 거래처를 옮기고 난 후 처음으로 발표한 소설이 "자루 속의 뼈"입니다.)

스티븐 킹: 나는 바이킹 출판사에서 밀려나고 말았습니다. 푸트남 출판사의 필리스 그랜이 바이킹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나보다 더 많은 판매량을 올리던 작가 톰 클랜시까지 데려왔기 때문입니다. 바이킹 출판사에서는 대형 베스트셀러 작가를 두 명이나 관리하기엔 힘겹다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그 바람에 내가 자리를 떠야했지요. 손익을 따지는 면에서는 그 당시 바이킹의 결정이 이해가 가기는 합니다. 비록 그 이후로 톰 클랜시는 작품활동이 뜸해지긴 했지만요. 그런데 내가 현재 계속 거래하는 스크리브너 출판사 사람들은 작가의 명성보다는(특히나 싸구려 통속소설적인 명성보다는) 작품 자체를 더 중요시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나는 그들을 대단히 신뢰합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그들이 나의 명성을 회복시켜준 셈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