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성잡지 GQ가 5월초에 스티븐 킹과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인터뷰에서 킹은 한창 이슈가 됐던 돼지독감과 소설 "스탠드"에 관하여 이야기합니다.

킹: (걱정스러울만큼 커다랗게 기침하며) 아이구, 미안합니다.

GQ: 진찰 한 번 받아보셔야겠네요.

킹: 아 예, 그래야죠.

GQ: 우리는 스티븐 킹 소설 "스탠드"를 여덟 번이나 읽었답니다. 그래서 이번에 사람들이 돼지독감에 걸리기 시작하자마자 눈치를 챘죠. "으흠, 우리는 이 일이 어떻게 끝날지 훤히 알아."

킹: 인터넷 서점 아마존에서는 이번 주에 "스탠드" 판매 순위가 10,000등이나 상승했더라고요. 하지만 돼지 독감과 개인적으로 친해지고 싶지는 않아요. (웃음)

GQ: "스탠드"를 1970년대에 쓰셨는데, 그 당시는 "생화학 무기 테러"라는 말 자체가 생소하기만 했죠. 슈퍼독감 아이디어를 어디서 얻으신겁니까?

킹: 연구실 실험을 받던 쥐가 몸을 벌벌 떨다 죽음에 이르는 무시무시한 영상을 보여주며, 시사 프로그램 "60분"이 생화학 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래서 나는 독감에 관한 자료를 찾아 읽기 시작했지요. 그랬더니 소름끼쳤습니다.

독감이 소름끼치는 질병인 이유는 독감에 걸려 면역성을 기른다한들 딱 그 종류의 특정한 독감에만 효과가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독감은 항원을 변형시켜서 다시 찾아오고, 바이러스의 침입으로부터 인간 세포를 지켜주리라 믿었던 항체들은 신종독감에 아무 소용없습니다.

소설 "스탠드"의 바탕이 된 아이디어는 독감이 인간의 신체 안에서 변이를 일으킬 것이란 거였고, 따라서 신체가 독감을 물리치려고 하자마자 그 독감이 다른 종류의 독감으로 변이를 일으킬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을 울고 불고 짜게할만큼 그럴듯한 아이디어였던 것 같아요.

GQ: 그 아이디어가 무척이나 무덤덤한 일상과 결합되어서 오싹한 것 같아요. 아, 내가 독감에 걸렸구나. 월차를 내고 쉬어야겠구나. 그러더니 별안간 갑자기...

킹: 그렇습니다. 게다가 현재 우리 사회 속에도 일정한 공포심이 형성되고 있어요. 다들 9/11 사태 증후군 때문이라고 부르지만, 그 보다는 시청률 경쟁에 목을 매는 케이블 채널 뉴스와 심야 뉴스의 탓이 더 큰 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뉴스에서 떠들어대는 소리 잘 아시잖아요. '혹시 피가 나는 증상이 있다면 바로 그 병일겁니다. 그리고 혹시 기침 나는 증상이 있다면 역시나 바로 그 병일겁니다.'

어제 CNN 뉴스에서 지도를 내보내서 이 돼지독감의 예상 진행 경로를 보여주더군요. 그러더니 미국 대륙의 하얀색 이미지가 녹색으로 물들기 시작하더니만 점차 빨간색으로 물들기 시작하고, 곧 이어 미국 전체가 빨갛게 변했습니다. 그런 보도 자세는 시청자에게 "스탠드" 소설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거란 생각을 심어줍니다. 아, 운동장 바깥에 쌓인 시체 더미를 불태우는 일이 일어나겠구나하는 식으로요. 하지만 필시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겁니다. 몇 주 지나면 다 알게 되겠죠. 당신은 이 소동이 언제까지 이어질 것이라 보십니까?

GQ: 제가 이렇게 인터뷰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아요. 통조림 식품을 사재기한 다음에 약속의 땅 볼더로 떠나야할 것 같은데 말이죠.

킹: 아이고, 우리는 마음 속으로 종말을 상상하고 있는 거에요. 그 뿐이에요. 온 나라, 온 세계의 종말. 뉴스가 그런 상상을 부추기죠. 내 생각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독감에 걸릴 것 같고, 많은 사람들이 하늘나라 구경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내 아내는 벌써부터 슈퍼마켓에 갈 때 위생 물티슈를 가져가더군요. 매장에 들어가기 전에 쇼핑카트의 손잡이를 빡빡 닦는 거죠. 정말이지 손을 깨끗이 닦고 다녀야해요. 내가 보기에 마스크는 눈꼽만치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런 물건에 너무 신경쓰진 마세요.

GQ: 마스크가 사람들한테 무척 인기있는 휴대품이 되고 있습니다. 이번 주에 맨하탄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더라고요.

킹: 그렇더군요. 모든 이들이 마침내 마이클 잭슨처럼 보이더군요.

GQ: 마이클 잭슨이 마스크 패션의 선구자였던 셈이죠 뭐. 그러니 그가 살인독감 마저 이겨낼 테죠. 마지막 생존자가 될 거에요.

킹: 그거 멋진데. 지구에 마지막 남은 단 하나의 인간, 반짝이 달린 장갑을 끼고서 폐허 사이를 활보하다.

GQ: 그런데 세상의 종말이란 생각이 강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건 무엇 때문일까요? 우리 시대에 세상이 종말을 맞이할 것이란 생각에 우리가 열심히 몰두하는 이유는 뭘까요?

킹: 글쎄 내 경험을 말하자면, "스탠드"를 집필하면서 안도감 비슷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국제관계와 경제 문제, 석유 가격, 주택 대출금 상환으로 골치 아프게 꼬인 매듭을 힘겹게 푸는 대신, 그 매듭 속으로 척척 달려들어 단칼에 댕강 잘라버리는 거였죠. 그러면 현실 문제로 고민하는 일 따위 없어지잖아요. 그렇게 간단하게. 그리고 나는 그런 식의 긴급사태가 일어나는 게 좋을 것도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죽이고 있었으니까. 우리의 과학기술은 과학기술이 야기시키는 문제점들을 처리할만한 도덕적 능력을 훨씬 앞질러버렸습니다. 우리가 아직도 너무나 뒤쳐져있는 나머지 줄기세포를 어떻게 다루어야할지 결정을 못 내리고 있잖아요? 휠체어에 앉은 전신마비 환자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고 휠체어에 달린 빨대를 훅훅 불어대는 와중에 우리는 아직도 줄기세포 연구가 신학적으로 용인되는지를 논쟁 중입니다. 또한 기꺼이 자살테러를 감행하는 과격파 이슬람교도들을 우리가 도대체 어떻게 다루어야하는 걸까요? 우리가 환경오염을 어떻게 다루어야하는 걸까요? 그리고 물론 사람들은 다들 마음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지요. "글쎄, 세상이 어찌되든 나는 생존자가 되겠지."

GQ: "만약 나 같은 사람들만 살아남는다면, 세상은 낙원이 될 거야."

킹: 그런데 조만간 비상사태가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는 그 동안 잘못 울린 경보를 너무나 많이 봐서(Y2K, 조류독감), "어휴, 저거 다 개소리야, 아무 일도 안 일어날 거야"라고 안도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렇지만 가까운 시기에 또 다시 스페인 독감 사태가 진짜로 일어날 것이고, 독감이 사람들을 사망하게 할 것입니다. 나한테는 예지력이 정말로 있단 말이에요. 내 소설 "런닝맨"의 결말 장면이 몇 년 전에 현실로 일어났다는 것을 기억하시라고요.

GQ: 그 밖에 당신의 작품 속 사건들 중에서 몇 년 후에 현실화될 것 같은 게 있습니까?

킹: 글쎄, 한 가지 있죠. 너무 길게 이야기할만 것은 못 됩니다. 누구나 알만한 거니까. 그런데 인간이 세계의 어느 도시에 핵무기를 터뜨린 지 거의 65년이 흘렀습니다. 그런 일이 또 일어나리란 것을 누구나 압니다.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났더니 어느 누가 바그다드나 이슬라마바드에 핵무기를 터뜨렸다는 소식을 듣게 될 테죠. 아니면 북한이 허접한 핵미사일을 진짜로 발사해서 도쿄의 일부를 날려버렸다는 소식이 들려오던지. 아마도 사망자수는 체르노빌 사태 때보다는 많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끔찍한 정신적 충격을 안겨줄테죠. 그러니까 우리가 처한 상황을 잘 둘러보라고요. 얼마 전에 뉴욕 시티에서 제트기가 저공비행을 하니까,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온갖 난리가 벌어졌잖습니까.

GQ: 그런데 당신은 책에서 핵무기의 위협을 결코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잖아요. 그 대신 생화학 무기로 인한 재난을 펼쳐냈어요.

킹: 글쎄, 생화학 무기는 짧은 시기가 지나면 저절로 소멸하고, 뒤에 남겨진 세상은 멀쩡합니다. 그에 반해 만약 실제로 핵전쟁이 일어난다면, 우린 전부 끝장일 거에요. 그런데 그거 아십니까? 세상은 다시 복구될 것입니다. 우리가 사라질 지라도 세상은 다시 복구될 거에요.

GQ: 그럴테죠. 인간은 가도 세상은 남는다는 당신의 말이 맞았으면 좋겠네요. 어떤 종말이 일어나든 간에, 제가 살아남아서 그 복구된 세상을 감상하진 못할 것 같지만.

킹: 글쎄요, 누가 알겠습니까? 당신이 행운의 생존자가 될 수도 있겠죠.

GQ: 저기요, 이상한 일이 있어요. 제가 요새 꿈을 자주 꿉니다. 그 꿈이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틀림없이...

킹: 어서 네브라스카로 가서 늙은 흑인 할머니를 찾아보셔야 겠네요.

GQ: 맞아요. 저도 바로 그 생각을 했다고요. 어서 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