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침묵이 계속 되다가, 간호사 한 명이 기겁을 하며 어쩔줄을 모른다. 다른 간호사는 자기도 모르게 양손으로 얼굴을 가려서 눈 앞에 펼쳐진 믿을 수 없는 광경을 외면하려 애쓴다.
40. 의사의 손 근접촬영.
의사가 가위를 떨어뜨린다.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 어둠 속 다른 사람들 곁으로 피한다.
의사의 목소리: 안 변했어!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
41. 자넷 클로즈업.
그녀가 얼굴을 들어올린다. 그녀의 얼굴은 매우 아름답다. 그녀를 보면 누구나 호감을 가질만큼 매력적이다.
42. 자넷의 뒤에서 바라보는 시점.
그녀가 천천히 일어선다. 손을 들어올리더니, 고개를 숙여 양손에 얼굴을 묻는다. 주위는 조용한 가운데, 그녀가 최대한 감정을 억제하며 흐느낀다. 그러다 얼굴을 들어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죽 훑어보던 그녀가 갑자기 몸을 틀어 문을 향해 도망친다. 그러나 의사가 서둘러 앞을 막고 그녀를 붙잡는다.
의사: (병실 안에 있던 마취사에게) 빨리 주사를 놔요. 이렇게 돼서 정말 유감이군.
(간호사에게) 불 좀 켜요!
어둠 속에 있던 간호사가 전기 스위치쪽으로 간다.
43. 간호사의 손 근접촬영.
스위치를 켠다.
44-47. 두 명의 간호사, 마취사 그리고 의사의 모습이 차례대로 클로즈업된다.
각자의 얼굴이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다. 코, 눈, 입, 귀, 모든 것이 다. 마치 만화에 나오는 괴물같다. 그림이 생명을 얻어 살아난 듯한 모습들이다.
48. 마취사 근접촬영.
주사기를 들고 있는 마취사가 천천히 자넷에게 걸어간다. 그녀는 의사에게서 빠져나오려 몸부림치고 있다. 마취사가 주사바늘을 치켜드는 순간, 반항하던 자넷이 의사를 뿌리치더니 황급히 문을 열고 복도로 뛰쳐나간다.
49. 복도를 뛰어가는 자넷을 멀리서 촬영.
복도를 걸어가던 의사들과 간호사들을 놀래키며, 자넷이 달리고 있다. 그들 모두 방금 전 병실 안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상하고 흉칙스런 얼굴을 하고 있다.
50. 자넷의 병실 문 급접촬영.
의사가 뛰쳐나온다.
의사: (고함친다) 저 환자 잡아! 저 여자를 잡으라구!
51-53. 여러 각도에서 잡은 자넷의 모습.
그녀가 텅 빈 복도를 달린다.
54. 엘리베이터 운전원 근접촬영.
운전원이 엘리베이터 문을 여는 순간, 자넷이 그 앞을 지나간다. 다른 사람들처럼 운전원도 만화 괴물캐릭터같은 모습이다.
55. 수술실 의사 근접촬영.
수술실에서 나오던 한 의사가 수술마스크를 벗고 있을 때, 자넷이 그 앞을 뛰어간다. 그 의사 얼굴도 엘리베이터 운전원과 똑같다.
(자넷이 복도를 뛰어다니는 모습에 지도자 연설이 배경음으로 깔린다.
지도자의 목소리: 이제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다양성이 인정되는 사회라는 것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그 따위 사회는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정신나간 사람들은 여러분에게 소릴지르고 고함치고 헛소리를 해대면서 이제는 생명력을 잃어버린 퇴폐적인 과거시대의 모습들을 불러내,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에게 평등이란 것은 기회의 평등, 신분의 평등, 거창한 평등일 뿐입니다! 그들은 평등이라는 것이 형식과 신념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식으로 어처구니없이 불합리한 미친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가지 언어를 쓰고, 제멋대로 자라나서, 혼혈로 얽히고 설킨 수없이 다양한 인종들이 우리 지구를 뒤덮고 침투해서 타락시키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습니다!
(흥분해서 소리를 지른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오직 단 하나의 목표만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오직 단 하나의 표준! 오직 단 하나의 방식! 오직 단 한 종류의 인간! 오직 단 하나의 가치! 오직 단 하나의 도덕! 오직 단 하나의 규범! 오직 단 하나의 통치이념!
(또다시 언성이 높아진다) 우리는 인정할 수 없습니다... 과거시대의 감상주의가 침투해 우리의 확고한 의지를 무력화시키려는 상황을 결코 인정해서는 안됩니다. 다양성을 원하는 욕구가 암세포처럼 퍼지는 것을 우리는 과감히 제거해야만 합니다!
56. 뛰어가는 자넷.
복도를 따라 달리고 있다.
57-59.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한 TV 스크린들.
자넷이 죽 늘어선 스크린들을 지나 달려간다. 각각의 스크린에는 다양한 각도에서 찍은 지도자 얼굴이 보인다. 지도자의 목소리는 단조롭고 알아듣기 힘들지만, 연설은 계속되고 점차로 흥분의 강도가 높아진다.
60. 다른 각도에서 촬영한 자넷.
자넷이 텅 빈 홀 한가운데 멈춰서서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61-63. TV 스크린이 차례차례 선보인다.
화면이 바뀔수록 스크린이 점점 더 크게 확대된다. 자넷을 향해 소리지르는 지도자 얼굴이 보기 흉하게 일그러진다.
64. 자넷의 등 근접촬영.
TV소리를 차단하려는 듯, 자넷의 손이 귀를 틀어막는다.
65. 멀리서 자넷을 내려다보는 시점.
마지막 복도를 따라 달리는 자넷이 코너를 돌자마자 멈춰선다. 카메라가 위로 이동하며, 그녀 위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엄청나게 커다란 TV 스크린을 비춘다. 스크린을 가득 채운 지도자 얼굴이 잔뜩 일그러진 채 소리를 지르고 고함을 치고 있다.
66. 자넷의 손 근접촬영.
그녀가 본능적으로 벽에 붙은 벤치 근처의 재떨이를 잡는다.
67. 다른 각도에서 촬영.
재떨이를 힘껏 집어던진다.
68. TV 스크린 근접촬영.
재떨이가 지도자 얼굴에 명중해서, 스크린이 산산조각난다. 부서진 TV에서는 연기가 피어나고, 그 와중에도 지도자의 연설소리가 계속 흘러나온다.
지도자의 목소리: 단 하나의 표준을 세우고, 그 표준을 엄격히 지켜나가는 것이 우리 사회에 반드시 필요합니다. 다양성은 우리를 약하게 만듭니다. 불일치는 우리를 파괴시킵니다. 우리가 정한 표준에서 일탈하는 행위를 순순히 허용하는 것은 국가를 파탄시키고 저 사악한 인간들에게 굴복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로 통합되는 것을 존중하고 보호해야 합니다. 하나로 통합되는 것만이 생존의 길입니다.
69. 다른 각도에서 찍은 자넷.
스크린을 지나 복도를 뛰어간다.
70. 양쪽을 밀어서 여는 이중문 근접촬영.
문에는 어떤 방인지 설명해주는 아무런 표시도 붙어있지 않다. 자넷이 문을 밀치고 뛰어들어간다.
71. 실내. 방.
방 안으로 뛰어들어온 자넷이 눈 앞에 보이는 것에 충격과 두려움을 느끼고 뒷걸음질친다. 비명을 지르는 자넷이 물건이 아무렇게나 쌓여있는 구석진 곳에 이르러 천천히 주저앉더니 울부짖기 시작한다. 그녀가 목격한 괴물의 발과 다리가 그녀에게 접근한다. 자넷이 무서워서 몸서리친다. 그 때, 의사가 방으로 들어와 자넷 옆으로 와서 그녀를 위로한다.
의사: 미스 타일러, 무서워말아요. 이 쪽은 앞으로 당신이 살게 될 그룹의 대표자에요. 신통하게도 그를 잘도 찾아왔군요. 자 이제 정신차려요 -그는 당신을 해칠 사람이 아니니까.
의사가 겁에 질린 자넷을 일으켜 세운다.
72. 자넷 클로즈업.
그녀가 낯선 남자를 응시한다. 그녀의 얼굴에 혼란스러운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73. 방 안 전체가 드러남.
월터 스미스가 조명이 비치는 밝은 곳으로 걸어 들어온다. 심플한 바지와 셔츠를 입고 있는 이 남자는 매우 매력적인 젊은 남자다.
의사: 자넷, 이 쪽은 미스터 스미스에요. 월터 스미스. 미스터 스미스는 북쪽에 있는 마을 공동체를 대표해서 이 곳까지 왔습니다. 오늘밤 당신을 마을 공동체로 데려가기 위해서. 이제부터 당신은 당신과 같은 종류의 사람들과 함께 살 수 있게 된 거요.
74. 다른 각도에서 촬영한 스미스.
그가 자넷에게 다가간다. 자넷 등 뒤에서 바라보는 시점이어서 스미스의 얼굴이 정면으로 보인다. 그의 얼굴은 매력적일 뿐만 아니라 친절하고 인정많고 한없이 착하게 생겼다. 그가 웃는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상냥하다.
스미스: 미스 타일러?
자넷이 얼굴을 든다.
스미스: 제가 살고 있는 곳은 아주 아름다운 마을이고, 훌륭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당신도 가보면 우리 마을을 좋아하게 될 겁니다. 당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게 될 겁니다. 당신도 놀랄만큼 금새 마을과 사람들에 적응하게 될 거에요. 사랑받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느낄 수 있을 거에요.
자넷은 이제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스미스는 의사에게 이제 안심하고 자기에게 맡기라는 눈길을 보낸다.
75. 다른 각도에서 찍은 실내.
의사가 방을 나가고 문이 닫힌다.
76. 스미스 근접촬영.
스미스: 미스 타일러? 이제 당신 짐을 챙기러 가볼까요? 우린 이제 아무때나 여길 떠날 수 있답니다.
카메라가 아주 천천히 선회하다가 자넷 타일러 얼굴 정면에서 멈춘다. 그녀의 모습은 살아있는 초상화를 보는 것처럼 아름답다. 조각같은 모습이다. 상냥하고, 아름답고, 여성스러운 젊은 얼굴.
자넷: 미스터 스미스?
스미스: 네?
자넷: 왜... 왜 우리는 이렇게 흉칙스런 모습으로 태어났을까요?
스미스: (슬픈 표정으로 미소 지으며) 모르겠어요, 미스 타일러. 전혀 모르겠어요.
(잠시 침묵) 하지만 제가 한가지 알려 드릴까요? 별로 중요한 얘기는 아니지만. 옛말에 이런 게 있어요... 아주 아주 오래된 격언이에요. 아름다움은 제 눈에 안경이다(Beauty is in the eye of the beholder: 다른 사람에게는 아름답지 못해도 자기 마음에만 들면 아름답게 보인다). 우리가 이 곳을 떠나갈 때... 마을로 이동할 때... 계속 이 격언을 마음 속에 새겨두세요. 그렇게 한번 해봐요, 미스 타일러. 마음 속으로 되풀이해서 격언을 말해보세요. 아름다움은 제 눈에 안경이다.
(잠시 말을 멈추고, 자넷의 손을 잡는다) 이제 움직여 봅시다. 당신 짐을 챙기고 나면, 이 곳을 떠나는 겁니다.
두사람이 이중문으로 걸어간다. 남자가 여자를 위해 문을 열어주고, 두사람은 복도로 나간다. 끝도없이 계속될 것만 같은 텅 빈 넓은 복도로. 두사람이 카메라를 지나 복도를 걸어가면서 멀어지는 동안, 카메라 위치는 계속 고정돼있다.
설링의 목소리: 지금 이 순간 마음 속에 몇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이 곳은 어디고, 여기는 어떤 시대인가? 추한 것이 표준이 되고, 아름다움이 표준에서 벗어난 일탈로 취급되는 이 곳은 어떤 세상인가? 여러분은 해답을 원하십니까? 해답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아주 오래된 격언 하나가 우리들에게 진리를 말해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름다움은 제 눈에 안경이다. 지금 이 순간, 아니 지금으로부터 백년이 흐른 뒤에도 변함없는 진리입니다.
(잠시 침묵) 우리가 사는 지구에서는... 아니 인간의 생명이 존재하는 어느 곳이든, 어쩌면 수많은 별들 사이에서도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로 남을 것입니다.
(잠시 침묵) 아름다움은 제 눈에 안경이다. 환상특급(The Twilight Zone)에서 전해드리는... 오늘의 교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