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킹이 말하는 대통령 선거와 TV

뉴스 2008. 11. 7. 01:39 posted by 조재형

☞ 잡지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에 스티븐 킹의 글 "The HD Candidates"가 실렸습니다.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가 나오기 전, 10월말에 잡지에 실린 이 글에서 스티븐 킹은 TV가 미국 대통령 선거에 끼친 영향력을 이야기합니다.

2008년도에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드라마는 대통령 선거운동이었습니다.
그것을 지켜보는 것에 중독된 사람들은 온갖 명언, 실언, 눈물을 맛보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킹은 자신도 대통령 선거운동에 중독된 사람 중 하나였다고 실토합니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선거운동에 관해 수많은 말을 쏟아냈습니다.
그런데 TV 평론가들 조차 선거운동에 끼친 TV의 영향력에 관해서는 별 말이 없었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너무나 구태의연한 주제라서 언급할 필요를 못 느꼈을 지도 모르겠지만, 스티븐 킹이 보기엔 대통령 후보 TV 토론이 시작된 이래로 올해 대통령 선거는 두 후보간의 대조적인 이미지가 너무도 극명하게 TV에서 드러났습니다.

과거와는 달리 전문가들의 의견은 별로 쓸모가 없었습니다. 그저 지루한 수다를 반복할 뿐.
그런데 TV가 보여준 이미지들이 대중들에게 더욱 쓸모있고 재미있는 정보를 제공했습니다. (존 매케인의 축 늘어진 뺨과 버락 오바마의 불쑥 튀어나온 귀를 HD급 화질로 시청할 수 있게 됐습니다.)
대중들은 TV 덕분에 예전보다 훨씬 많은 것들(좋은 이미지들/나쁜 이미지들)을 볼 수 있게 됐는데, 대통령 후보들이 어떻게 대처하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정보량이었습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버락 오바마는 대형 방송국에서 활동하는 진지하고 총명한 뉴스 앵커처럼 보입니다. 반면에 존 매케인은 소형 방송국에서 활동하며 지역 스포츠팀과 채권 발행 의혹에 관해 호들갑떠는 좀 어수선한 시사 해설가처럼 보입니다.
조지프 바이든은 방송 카메라가 정면에서 비출 땐 잘 생기고 활기차게 보이지만, 카메라가 뒤에서 비추면 대머리 진 부위가 드러나면서 15년 더 늙어보이게 됩니다. 새라 페일린은 외모가 멋져보이지만, 입만 열었다하면 영화 "파고"에서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했던 것 같은 싱거운 소리를 냅니다. "오케바리~!"

지속적으로 TV에 노출되었기 때문에 더 도드라져보이는 언어 습관이 양쪽 후보 모두에게 있습니다.
매케인은 연설 도중 주의를 환기시킬 때마다 "나의 친구들이여"라는 말을 너무 짜증나게 남용합니다.
오바마는 "그리고"라는 간단한 단어를 말할 때마다 추락하는 비행기 소리를 흉내내는 어린애처럼 말끝을 길게 끄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한 그는 별뜻 없이 "당신도 알다시피"라는 표현을 쓰는 것을 지나치게 좋아합니다.

TV가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가장 큰 대조적 이미지는 두 후보의 피부색 차이가 아닙니다.
한 후보는 TV의 근본적인 힘을 직관적으로 파악하고 다른 후보는 그러지 못한다는  것을 TV가 대조적으로 드러내보입니다.

매케인은 얼굴을 찡그리고, 불안정한 표정을 짓고, 파충류 같이 불쾌한 이미지를 풍기는 미소를 빈번하게 불쑥불쑥 선보입니다.
그는 카메라나 청중을 쳐다보는 것을 회피하고 원고로 고개를 돌려버립니다.

오바마는 비록 고전적인 미남형과는 거리가 멀지만(불룩 튀어나온 저 귀를 보라), 따스한 온기와 총명함과 세심한 배려심을 발산합니다.
메모를 할 때 그가 졸린 듯한 표정을 짓는 것이 카메라에 포착되는 경우는 드뭅니다.
더욱 중요하게도 오바마는 다른 사람이 말할 때 조용히 있을 줄 아는 자세를 지녔습니다. 질문자나 논쟁 상대의 말을 마구 가로막는 경우가 드뭅니다.
매케인은 성격상 남의 말을 꾹 참고 듣지 못하는 듯 보입니다.

TV에서 더 나은 모습을 선보이기 때문에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 선거에서 이길 것이라고 스티븐 킹이 말하는 것인가?
어떤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는데는 그것보다는 더 나은 이유가 수천 가지 있을 수 있겠지만... 킹은 TV가 좌지우지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합니다.
킹은 그 현실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케인은 경제 위기 때문이 아니라 TV에서 선보인 꼬장꼬장한 노인네 이미지들 때문에 대통령 선거에서 질 것입니다.

TV의 힘은 어느 정도인가? 스티븐 킹이 예를 듭니다.
대통령 후보간의 마지막 TV 토론이 끝나고 다음 날 아침, 킹은 호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중이었는데, 사업가 타입의 남자가 옆에 서있었습니다.
킹이 그에게 후보 토론을 시청했느냐고 물었더니 봤다는 대답이 나왔습니다. 어느 후보가 이길 거 같냐는 물음에 그가 대답했습니다.

"오바마. 매케인은 이길 수가 없어요. 적어도 TV에서는 어림도 없지요. 그 양반은 마냥 이상한 모습만 보여주니까..."

그러자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그의 얼굴 표정이 밝아지더니 아침 TV에서 그 후보 토론의 진정한 스타를 봤다고 말했습니다. 조 워젤바커. 배관공 조라고도 불리는 사나이. 토론 중이던 대통령 후보들 사이에서 배관공 조의 이름이 마치 배드민턴 공처럼 이리저리 불려졌던 것입니다.

"배관공 조가 누굴 닮았는지 알아요?" 엘리베이터에서 나가기 전에 사업가 양반이 킹한테 물었습니다. "드라마 '쉴드(The Shield)'에 나오는 그 악질 경찰 있잖아요! 마이클 치클리스요!"

간단히 말해 바로 그것이 존 매케인이 질 수 밖에 없는 이유일 것입니다.
상대 후보는 뉴스 앵커처럼 보이고, 매케인을 지지하는 만인의 영웅은 때론 살인도 서슴치않는 악질 경찰처럼 보이고, 매케인 본인은 같은 또래의 나이 많은 시민들한테 당뇨병 관리에 관해 잔소리하는 노인 방송인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미국을 세운 건국의 아버지들이 원했던 바가 아니겠지만 요즘 현실이 그런 걸 어쩌겠냐고 스티븐 킹은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