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킹이 말하는 "스탠드" 출간 30주년

뉴스 2008. 11. 5. 02:42 posted by 조재형

☞ 스티븐 킹이 소설 "스탠드" 출간 30주년 인터뷰를 했습니다.

질문) 당신이 쓴 공포장르 비평서 "죽음의 춤(Danse Macabre)"에 나온 표현을 빌자면, "전세계적으로 특히 미국한테 불안했던 시기에" 집필된 소설 "스탠드"가 출간된 지 30년이 흘렀습니다. 우리는 현재 또 한 번 불안한 시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또 다시 종말 소설을 쓰고 싶어서 좀이 쑤시지 않습니까?

답변) 정말로 소설을 쓰긴 썼습니다. 나는 "언더 더 돔(Under the Dome)"이라는 아주 긴 소설의 초고를 집필 완료했는데, 그것이 세계 종말 같은 걸 다룬 작품은 아니지만, 아주 긴 소설이고 "스탠드"에서 나왔던 것과 똑같은 논점들을 일정 부분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좀 더 비유적인 방식으로 다루죠.

질문) 그것을 집필하면서, 어쨌든 "스탠드"를 염두에 두었나요?

답변)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스탠드"와는 다른 구성방식을 취하고 있으니까요. 그것에 관해 너무 많은 걸 말하고 싶진 않군요. 퇴고를 하고 더 다듬는 후속 작업을 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당신 말이 맞아요. 내가 "스탠드"를 집필하던 시기와 현재 시기의 정세가 매우 흡사합니다. 최근에 "닉슨랜드(Nixonland)"라는 책을 읽었는데, 닉슨의 선거운동과 매케인의 선거운동이 똑같아 보여서 무척 우울합니다. 마구 인기에 영합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철저하게 계산된 일들을 수없이 벌이고 있습니다. 정치계에 덜 알려진 평범한 사람을 부통령 자리에 앉혔습니다. 똑같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란 말이죠. 국민의 지지를 못 받는 전쟁문제도 있고, 경제문제도 있고, 석유문제도 있어요. 저쪽으로 떠나가는 온갖 문제들이 다시 이쪽으로 돌아오고 있단 말이죠. "스탠드"에서도 그런 현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인생은 둥근 바퀴와도 같다고요. 언제가 됐든 간에 인생이 빙글빙글 돌아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마련이라고요.

질문) 지난 30년간 미국인들의 사고방식이 훨씬 더 비관적으로 되었다고 보십니까?

답변) 미국인들은 원래 비관적이에요. 우린 항상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보니까 남들이 우리한테서 도둑질해갈까봐 무지막지한 근심 속에서 살아가죠.

질문) "스탠드"가 오늘날의 상황을 예언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전염병 바이러스의 위협은 1978년보다 지금이 더 현실감있게 느껴집니다. 테러, 종교분쟁, 환경문제, 민주주의 원칙의 왜곡. 그 모든 것들이 "스탠드"에 들어있습니다. "스탠드"가 집필 당시의 사회정세를 많이 반영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만, 집필하면서 미래를 예언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까?

답변) 그렇지는 않아요. 사람이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존재잖아요. 책이 얼마나 오랫동안 생명력을 가질 것인지, 그 책의 관심사가 얼마나 오랫동안 유효할 지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스탠드" 다음에 집필한 "저주받은 천사(Firestarter)"를 다시 펼쳐서 그 작품의 호소력이 이제는 어느 정도일지 확인해보고픈 마음이 자주 생기곤 해요. 그런데 어떤 책들은 미래를 예견하기도 합니다. "런닝맨(The Running Man)"이라는 내 소설은 제트 여객기를 강탈한 사내가 고층건물과 충돌하는 결말을 선보이는데, 9/11 사태가 터지고 나서 나한테 처음으로 든 생각은 이랬습니다. 맙소사, 어떤 놈이 그 장면을 정말로 실행에 옮겼네. 만약 내가 오늘날 "스탠드"를 집필했다면, 세균이 자살 테러 폭탄으로 방출되도록 설정했을 가능성이 높을 겁니다. 돌발적인 사고 대신 궁극의 테러행위로 참극이 빚어지도록 할테죠. "스탠드"가 발표될 당시엔, 우리 모두가 언제라도 돌발적인 사고가 터질 수 있다는 생각에 골몰했습니다. 체르노빌과 스리마일 섬 같은 데서 방사능 누출사고가 일어나던 시대였으니까요.

질문) "스탠드" 속에서 정치에 관한 문제는 결코 먼 나라 얘기가 아닙니다. 일단 전염병 사태가 휩쓸고 나자, 사회를 수습해야하니까 말이죠. 어떤 식으로든 "스탠드"를 정치소설로 여기십니까?

답변) 그 작품을 그런 식으로 인식했었죠. 나는 항상 정치적인 소설가였고, 정치적 사항들이 항상 나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저주받은 천사"도 정치소설이에요. "데드 존(The Dead Zone)"도 정치소설이구요. "데드 존"에서는 자니 스미스가 미래에 그렉 스틸슨이란 정치인이 핵전쟁을 일으킬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우리 집에선 TV에 새라 페일린이 나올 때마다 웃음꽃을 피우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TV에 여자 그렉 스틸슨이 나왔어."

질문) 당신의 영향력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현대 미국의 대중문화에 그토록 지속적인 영향력을 끼친 사람으로 다른 사람을 떠올리기가 힘들 정도인데 말이죠.

답변) 그렇게 된 이유 중 일부는 자연스런 세월의 흐름에서 생긴 일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생겨난 베이비 붐 세대이고, '늙은' 베이비 붐 세대에요. 1947년에 태어났죠. 내가 노인 중에서 가장 늙은 축에 든다고 할 순 없겠지만, 그 정도 나이에 가까워진 셈입니다. 나는 열심히 글써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베이비 붐 세대의 첫 번째 사람이니까, 자연스레 눈에 띄는 사람, 대표주자가 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베이비 붐 세대 중에서 나보다 먼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어윈 쇼, 제임스 미치너, 허먼 욱 같은 더 예전 세대 작가들의 뒤를 이은 다른 사람이 딱히 생각나지가 않습니다. 나는 베스트셀러 책들을 집필한 사람이면서 베트남전 반대 데모에 참여했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내 자신이 중요시했든 아니든 간에, 나는 그러한 시대적 감수성을 제일 먼저 표출시켰던 것입니다. 그러자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에 반응을 보였고, 드디어 자기들이 아는 대중음악에 관하여 글을 쓰는 사람이 출현했다는 식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작가생활 초기에 나는 비평가들한테 심한 비난을 받기만 했습니다. 나는 무자비하게 비평의 주먹질에 흠씬 두들겨맞기만 했습니다. 내 책들이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에 그런 대우를 더 많이 받았던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의 성공이 대중문화계에 효력을 끼치고 있었기 때문에 비평가들이 몹시 혐오감을 가졌던 것 같아요. 나는 그 전에 나왔던 작가들에 비해 낯선 존재였습니다. 비평가들이 편안해하던 것은 죄다 기성작가들이었습니다. 스티븐 킹은 반짝 인기를 얻었을 뿐이니까, 그 녀석은 두통약 엑세드린이나 자동차 부동액 프레스톤 같이 세속적인 것에 관해 이야기할 뿐이니까 그 녀석의 작품을 조금도 진지하게 취급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리뷰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그런 리뷰들이 전혀 고려하지 못했던 것은 새로운 세대의 존재였어요. TV에서 자양분을 섭취한 거대한 세대가 부상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죠.

질문) "스탠드"를 집필하는데 어떤 특별한 경험이 있었습니까?

답변) 대부분 그 작품은 콜로라도에 살 때 집필했고, 그 당시 신문과 TV 뉴스는 네바다에 있는 화학 폐기물과 화학 무기에 관해 열띤 논의를 벌였습니다. 그래서 그 점이 "스탠드"를 집필 중이던 나의 마음 속에서 줄곧 맴돌았어요. 그리고 그 당시 콜로라도는 기독교 근본주의 지역에 속해있어서 라디오 설교자가 아주 많았는데, 어느 날 밤 어떤 라디오 설교자가 열변을 토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모든 세대마다 한 번씩은 전염병이 엄습할 것이다." 그러자 나는 영적인 것과 과학기술적인 것 사이에 분열이 일어나는 현상을 떠올리기 시작했고, 그것이 "스탠드"의 커다란 주제가 되었습니다.

질문) "스탠드" 확장판의 머리말에서, 그 소설을 "암울한 기독교적 세계관"에 관한 작품이라고 부르기도 하셨습니다. 그것은 어떤 의미였습니까?

답변) 나는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나서 적그리스도라는 개념을 믿도록 가르침 받았습니다. 가톨릭 가정에서 자란 아내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어린 아이를 가톨릭 교회로 인도하면 그 아이는 영원히 가톨릭의 아이가 될 것이라는 게 가톨릭 교회의 태도라구요. 그게 좋기만 한 건 아닙니다. 우리들은 뭐든지 어렸을 때 배운 것을 곧이곧대로 믿으며 성장하지만 그 덕분에 평생 흔적이 남게 됩니다. 아름다운 흔적일지 흉칙스런 흔적일지는 보는 사람 눈에 달린 거죠.

나는 그런 개념에 관심이 있습니다. 특히나 신약성경에서 제시하는 아주 식견 있는 도덕률에 관심이 갑니다. 기본적으론 그리스도가 설교한 것이죠. "너의 이웃과 사이좋게 지내고 모든 것을 나누어주고 나를 따르라." 그래서 우리는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에 관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오늘날 하원의회에서 활동하는 착한 기독교 공화당원이 구제금융 법안에 악담을 퍼붓는 상황이 닥친 것에 관하여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물론 그리스도는 모든 것을 월스트리트 금융가에 나누어주라고 설교한 적이 없으니, 기독교 공화당원들도 언성을 높일 맛이 나겠지요.

나는 그 모든 것들을 "스탠드" 속에서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신에게 정당한 대우를 해주자는 취지에요. 사색적인 여러 소설 속에서 너무도 빈번하게도 신한테 슈퍼맨에 나온 크립토나이트 암석 같은 취급을 합니다. 그런 현상은 소설 "드라큘라"까지 거슬러올라가는데, 누군가가 드라큘라 백작의 얼굴에 십자가를 내던지자 백작이 물러나 성 안으로 달아나버립니다. 그런 건 종교가 아닙니다. 그건 부적 같은 주술이죠. 나는 그것보다는 더 나은 행동을 취하고 싶었습니다. 신앙으로 역경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인지 탐구해나가고 싶었습니다. 신앙생활은 우리 대부분이 매일 하는 거니까요. 그런 탐구를 기독교 정신이라고 부르진 않을 거에요. 난 그러고 싶었습니다. 나는 그것이 신을 향한 여정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질문) 당신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한 가지 맥락이 있습니다. 신에 관해서 지속적인 내적 논증을 시도하는 것. 내 생각으로는, 당신의 새 단편집에 수록된 "아야나(Ayana)"라는 단편소설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것 같습니다.

답변) 신은 미스터리입니다. 신이라는 개념에 관해 나를 가장 흥미롭게 하는 것은 그 미스터리에요.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그런 개념을 떠올리는 것조차 신비롭고 압도적이고 경외로운 일이 될 테고, 진지하게 여겨야만할 것입니다. 말하는 뱀들과 물고기 뱃 속에 갇혀 사는 사람들이 나오는 동화 위로 세상이 스스로 무너지고 있다고 정치 코미디언 빌 마허가 기독교를 신랄하게 비판할 때 그가 어떤 이유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가 갑니다. 나는 그 취지에 무척 공감하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가 살아가는 우주의 체계를 떠올려보면 사물을 움직이는 어떠한 원동력이 존재한다는 관념 또한 무척 설득력 있습니다. 그것은 기독교 소설 "레프트 비하인드" 시리즈를 쓴 제리 젠킨스와 팀 라헤이에의 신은 아닐 것이고, 알카에다의 신도 아닐 것이고, 아브라함의 신도 아닐 것이지만, 사물을 매우 원활하게 움직일 수 있는 존재일 것입니다. 우리가 인식하는 우주의 질서, 유기적으로 연동되는 천지만물, 여러 사물이 함께 맞물려돌아가는 방식은 지배적인 위치에 있는 어떠한 원동력이 존재할 거란 관념을 설득력 있게 합니다.

어릴 때부터 줄곧 나를 흥미롭게 했던 또 하나의 사항은 내 소설 "데스퍼레이션"에서 노골적으로 표현한 바대로 신은 잔인하다는 관념입니다. 나는 늘 마음 속으로 마더 애비게일을 모세와 동일시했고, 바위에서 물을 이끌어낸 공로를 무엄하게도 자신한테 돌렸던 한 가지 이유, 그 한 가지 잘못 때문에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것을 금지당한 모세 이야기에서 신은 잔인하다는 인식을 가졌습니다. 나는 그런 것들을 활용해서 두 가지를 말하고 싶었어요. 첫째, 신화적 존재는 난해하고 인생을 관통하는 난해한 도덕적 행로를 제시한다. 둘째, 그 신화적 존재는 과학기술의 신, 마이크로칩의 신, 휴대폰의 신보다 궁극적으로는 더욱 생산적이고 더욱 친환경적이다.

질문) 당신의 새 단편집 속에서, 수많은 등장인물이 그들 나름대로 자연스런 죽음과 대면하게 됩니다. 늘 죽음과 대면하는 예술가는 나이가 들수록 증가하는 죽음에 대한 불안감에 어떻게 정면으로 맞서나갑니까? 음침한 호기심으로 가득한 참호 속에서 보낸 당신의 세월이 나이가 들어도 당당해지도록 당신을 적절히 준비시켰다고 생각하십니까?

답변) 단편소설 "아야나"를 얘기해볼께요. 그 단편과 관련된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집필할 때 나는 편집자 헤이디 피틀러의 의뢰로 "미국 단편소설 걸작선"에 수록될 단편들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우리 둘은 특별한 점을 발견했죠. 상당히 많은 이야기들이 나이 들고 연약해져 암 같이 치명적인 문제들을 겪는 부모를 난생 처음으로 직시하게 된 사람들이 집필한 거였어요. 죽어가는 부모를 돌보는 것이 이야기를 이끄는 중심이었습니다. 나는 치료된 자와 치료되지 않는 자를 다루는 단편소설 "아야나"를 쓰기 시작하면서, 죽어가는 늙은 부모를 등장시켜야겠다고 생각했고, 결국 그렇게 했답니다.

질문) 세상의 종말과 관련된 개인적인 질문입니다. 만약 당신이 사는 동안 인간 문명사회를 붕괴시킬 대재앙을 꼽는 도박판에 참여하게 된다면, 당신은 어떤 대재앙에다 판돈을 걸겠습니까?

답변) 핵무기. 의문의 여지가 없죠. 핵무기가 진짜 사람들한테 폭발을 일으킨 뒤로 5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니 믿을 수가 없다고, 정말 우라지게 믿을 수가 없다고 탄식하곤 합니다. 세상에는 핵무기가 너무 많아요. 누군가가 핵무기를 훔치거나 남는 부품으로 핵무기를 만들어서 배낭에다 담아가지고, 봄베이나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에다 터뜨릴 겁니다.

질문) 당신의 새 단편집에 실린 "졸업식 오후(Graduation Afternoon)"라는 이야기랑 비슷하군요. 그 단편 상당히 인상적이더라구요. 대단히 많은 미국인들이 천국과 지옥의 존재를 믿습니다. 사후세계가 어떨지 당신이 예상하고 있는 게 있습니까?

답변) 아니오. 그런 예상은 해보지 않았습니다. 사후세계의 존재를 확신하지 않고 있어요. 그래도 한 번 예상해보죠. 만약 그런 게 있다면, 내 생각은 이렇습니다. 무엇을 생각하든 그대로 얻게 될 것이라구요. 자살폭탄 사건을 일으키는 사람들, 만약 그들이 정말로 죽으면 천국에 가서 71명의 처녀와 함께 살 거라고 믿는다면, 아마도 그들은 사후세계에서 그렇게 되겠죠 뭐.

인간의 마음은 이번 생을 마감한 뒤에 안심이 될만한 것을 꿈으로 창조해내도록 정해져있다는 관념을 토대로 상상해본 거에요.

질문) 그렇다면 우리가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군요. 그런데 그런 생각은 본인이 사후세계에 관해 상상한 것을 진심으로 믿어야한다는 것을 암시하네요.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세요.

답변) 그건 이렇게 생각해봅시다. 인간의 뇌를 수많은 방이 딸린 웅장하고 거대한 도서관이라고 생각해봐요. 수십 억 수천 억 권의 책들로 가득하고, 무수히 많은 방이 있어요. 그런데 그 모든 방의 맨끝에 작은 상자가 있는데 이런 문구가 적혀있습니다. "비상시 손잡이를 당기시오." 그게 바로 밖으로 나가는 문입니다. 문이 열려 밖으로 나가면, 당신이 원했던 바를 그대로 얻게 되는 겁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뇌 속에서 일어나는 어떤 화학작용은 당신이 원하던 바로 그 특별한 꿈을 인생의 맨끝에서 당신한테 전해주도록 정해져있으니까요. 만약 당신이 (공포소설가 H.P. 러브크래프트가 창조한) 시공을 초월하는 거대한 신 요그 소토스를 기대하고 있다면, 그 분께서 마중나오실 테죠. 900명의 눈 먼 악단이든 뭐든 졸개들을 이끌고서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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