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오브 비홀더 [2] by 로드 설링

읽을꺼리 2007. 5. 9. 00:28 posted by 조재형

16. 실내. 병실. 밤. 자넷 타일러의 붕대얼굴 옆면을 근접촬영.

병실 끝에 의사와 간호사의 그림자가 보인다. 그들의 대화는 자세히 들리지 않는다. 웅얼거리는 그들의 말 속에서 가끔씩 "체온", "혈압", "갑상선", "주사"같은 단어들이 튀어나온다. 마침내 의사가 카메라와 침대쪽으로 한걸음 내딛는다. 얼굴은 어둠 속에 가려져 있다.


의사: (뒤를 돌아보며) 간호사, 11시쯤에 다시 체크해요. 그때가서 환자에게 진정제 투약하구.


간호사: 알겠습니다, 선생님.


의사가 침대로 다가서고, 카메라는 빙 돌아서 의사 뒤에 위치한다. 의사가 침대로 와서 자넷의 팔을 잡고 잠시 맥박을 잰다. 환자를 내려다보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의사: 오늘 저녁은 날씨가 따뜻했습니다, 미스 타일러.


자넷: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확실하진 않았지만.


의사: (옷깃을 매만지며) 아주 따뜻했어요, 진짜루. 얼마 안있으면 당신 붕대를 풀을 거에요. 좀 불편하더라도-


자넷: 얼굴에 붕대감고 있는 거 익숙해요.


의사: 그렇겠군요. 당신이 여기에 온 게... 벌써 9번째? 9번째던가?


자넷: 11번째죠.

(그녀의 붕대얼굴이 의사를 향하는 동안 잠시 침묵) 가끔씩 내 인생 전부를 어두운 동굴 속에서만 살아왔다는 생각을 해요. 벽이 죄다 엷은 거즈붕대로 이루어진 동굴. 동굴 입구에서 불어오는 바람에서는 항상 마취약과 소독약 냄새가 나죠.

(잠시 침묵) 선생님, 그래도 동굴 속의 삶은 편안해요. 너무나도 개인적인 삶이에요.

(얼굴을 돌린다) 아무도 나를 볼 수 없어요.

(잠시 침묵) 전 이제 희망이 없는거죠, 그렇죠, 선생님? 제 얼굴은 치료가 불가능할 거에요.


의사: (맥박 재던 환자 손목을 내려놓으며) 그렇게 단정짓긴 어렵습니다. 지금까지 당신의 증세는 약물이나 주사 또는 그 밖에 어떠한 치료법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실 미스 타일러 당신때문에 우리는 무척 괴로웠어요. 우리가 무슨 방법을 쓰든지 전혀 차도가 없으니. 하지만 우리는 이번 마지막 시도에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물론 장담은 못합니다.-결과는 붕대를 풀어봐야 알겠죠. 당신의 증세는 성형수술로 간단히 고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참 안타깝습니다. 골격, 피부타입... 수많은 요소들이 성형수술을 불가능하게 했습니다.


그가 몸을 돌린다. 카메라가 그의 움직임에 맞춰 원형으로 움직이므로, 화면에 그의 모습 전체가 잡히지는 않는다.


의사: (생각에 잠겨있다가) 11번째 입원이라.


침묵. 그는 침대 옆 작은 탁자로 가서, 탁자 위를 가볍게 두드려댄다.


17. 의사의 손가락 근접촬영.

손가락이 탁자를 두드린다.


18. 자넷이 있는 곳에서 몸을 축 늘어뜨린 의사쪽을 바라보는 시점.

침묵이 이어지다 결국 자넷이 침묵을 깨뜨린다.


자넷: 이번 치료가 마지막이죠? 이제 더이상 저는 치료받을 수 없겠죠.


의사: 11번까지가 규정이니까.

(어깨를 으쓱거린다) 11번 다음부터는 치료가 금지되어 있으니까.


자넷: 이제 어떡하죠?


의사: 흠, 미스 타일러는 마음이 조급해진 모양이군요. 이번에 마지막 시도로 했던 주사요법이 효과가 있을 겁니다. 붕대를 풀기 전까진 뭐라 딱 부러지게 말할 수는 없지만.


자넷: 그런데 이번에도 치료가 실패하면-그 땐 어떡해요?


의사: 그 땐 그때가서 또 방법이 있죠.


자넷: 어떤?


의사가 몸을 돌린다. 그의 등이 카메라에 잡힌다.


19. 의사의 등

(자넷을 바라보고 있다)


의사: 정말 몰라요?


자넷: (작은 소리로) 알아요.


의사: (침대로 다가서며) 물론 미스 타일러도 이러한 규정들이 왜 존재하는 것인지 충분히 이해하겠죠? 우리들 모두는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이 될 수 있도록 가능한 한 많은 기회를 부여받을 수 있습니다. 당신이 이제까지 입원하면서 들어간 시간과 돈과 노력을 생각해 봐요. 그 모든 것이 다 당신의 외모를-


그가 갑자기 말을 멈춘다. 적당한 말을 찾느라 고심하는 듯 고개를 떨군다.


자넷: 제 외모를?


의사: (손짓하며) 외모를 정상으로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당신의 희망대로.


20. 다른 각도에서 찍은 자넷.

팔꿈치로 몸을 지탱하며, 그녀가 침대에서 일어난다.


자넷: 선생님? 저, 밖에 나가도 돼요? 잔디밭에 좀 앉아있으면 안될까요? 아주 잠깐동안만. 꽃향기를 맡고 싶어요. 그냥... 그냥 맑은 공기를 느끼고 싶어요. 난 그저... 그저...

(그녀는 침대에 꽂꽂이 앉아있다. 목소리 톤에 힘이 들어가고 긴장감이 생기면서 거칠어진다) 믿고 싶은 거에요, 선생님! 나는 지금 정상이다라고 믿고 싶다구요. 지금처럼 밤에 밖에 나가 어둠 속에 앉아있으면, 모든 세상이 어둡다라는 걸 실감하게 되잖아요. 나도 남들처럼 어두운 세상의 일원이 되는 거에요. 얼굴에 붕대를 감은 괴상하고, 추하고, 보기 흉한 여자가 아니에요... 붕대때문에 혼자서만 어둠의 세계 속에 사는 유별난 존재가 아닌 거에요.


카메라가 그녀의 얼굴을 근접촬영한다. 이제 그녀의 목소리는 찢어질듯 날카롭고 불안정하다.


자넷: 나도 똑같아지고 싶어! 보통 사람들처럼 되고 싶다구요. 도와주세요, 선생님.

(흐느끼는 목소리로) 제발 저를 도와주세요.


카메라가 선회하며 어둠 속에 서있는 의사를 주시한다. 잠깐동안의 침묵 끝에, 의사가 조용히 말한다.


의사: 미스 타일러,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내 말 알겠어요? 혼자가 아닙니다. 당신과 같은 불행을 타고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당신같은 외모를 가진 사람들. 최후에 선택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만... 만약 이번에 했던 마지막 치료가 실패로 돌아간다면... 당신은 마음 편히 당신과 같은 종류의 사람들이 모여있는 특별구역으로 갈 수 있습니다.


자넷: (괴로운 목소리로) 나같은 사람들이라니!

(잠시 침묵) 모여 있다구요, 선생님? 모여 있는 게 아니죠, 격리돼 있는 거죠. 선생님 말씀은 갇혀있다는 걸 뜻하는 거에요. 선생님은 지금 수용소를 말하는 거잖아요.

(슬픔과 분노로 인해 날카롭게 고함지른다) 기형아들을 가둬놓는 수용소!


의사: (자넷에게 소리지르며) 미스 타일러! 정부는 자비를 베풀고 있어요. 당신이 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 것도 바고 그 때문입니다. 정부는 당신을 위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다 취하고 있는데. 그런데도 미스 타일러 당신은 이성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다니. 당신이란 존재는 원래대로라면 도저히 살 수 없단 말입니다...

(잠시 머뭇거리다 황급히 입을 연다) 정상인들과 함께는 도저히.


21. 자넷을 근접촬영.

붕대가 실룩거린다. 그 속의 얼굴이 일그러지기라도 하는 듯이.


자넷: 저도 사회에서 정상인들과 잘 살아갈 수 있어요. 마스크를 쓰거나 이렇게 붕대를 감고 다닐 수 있잖아요. 난 아무한테도 피해를 주지 않는다구요. 난 그저 조용히 내 삶을 살면 그만이에요. 일자리를 얻어서. 아무 일이나.

(격앙된 목소리로 변하며) 도대체 당신들이 잘 나면 얼마나 잘 낫길래. 이 놈의 정부란 건 또 뭐야? 이 모든 규정과 법규와 관습을 누가 만든 거죠? 정상인들과 다르게 생겨먹은 사람들은 격리돼야 한다니. 선생님, 정부는 하나님이 아니잖아요.


의사: (굳은 목소리로) 미스 타일러, 제발!


자넷: 정부는 하나님이 아니에요. 정상인들과 다르게 태어난 사람들을 죄인 취급할 권리가 정부한테는 없어요. 보기 흉하게 생긴 걸 범죄라고 주장할 권리가 정부한테는-


의사: (고함을 지르며) 미스 타일러, 무례한 언행을 당장 멈추시오! 지금, 미스 타일러, 지금 즉시!


카메라가 자넷을 비춘다. 그녀는 침대에서 빠져나와 머리를 푹 숙인 채 잠시동안 가만히 서있다. 그리고는 손을 앞으로 내민 채 천천히 병실을 가로질러 창문 앞에 선다. 창문을 만지고는, 붕대가 감겨있는 뺨을 창문에 갖다댄다.


22. 외부에서 창문을 바라보는 시점.

자넷의 손이 창틀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서 열려있는 창문 아랫부분에 닿는다. 열린 틈으로 그녀의 손이 들락날락거린다.


자넷: (조용한 소리로) 바깥세상의 밤이 느껴져요. 밤 공기가 느껴져요. 꽃냄새도 맡을 수 있어요.

(의사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양손이 얼굴붕대를 만지고 있다. 아주 작은, 조용한 소리로) 제발 이것 좀 풀어주세요. 제발 이것 좀 벗겨주세요.

(그러다 고함을 지른다) 이것 없애달란 말야!


그녀가 고함치며 붙잡고 있던 붕대를 손톱으로 마구 할퀸다.


23. 실내. 접수 데스크 뒤 작은 방 벽에 붙어있는 표시장치.

표시장치에 "307"이라는 숫자가 번쩍번쩍거린다. 배경음으로 붕대를 풀어달라고 외치는 자넷의 고함소리가 들린다. 간호사가 급히 카메라 앞을 지나간다. 카메라가 자넷의 병실을 향해 복도를 달려가는 간호사 뒤를 쫓아간다.


24. 실내. 창문 밖에서 병실 안을 들여다보는 시점.

의사가 난폭하게 몸부림치는 자넷의 몸과 한쪽 팔을 잡고 있다. 이제 막 병실로 뛰어들어온 간호사가 자넷의 나머지 한쪽 팔을 잡는다. 두사람이 환자를 침대로 끌고 간다. 이 장면은 판토마임처럼 인물들의 움직임이 강조돼야 한다. 마침내 침대에 눕혀진 자넷이 얌전해진다. 간호사는 병실 문을 지나 밖으로 나간다.

 

25. 실내. 복도. 접수대에 앉아있는 간호사가 보임.

읽고 있는 잡지표지에 간호사 얼굴이 가려져 있다. 자넷의 간호사가 카메라 앞을 지나 접수대 간호사에게 걸어간다.


자넷의 간호사: 의사 선생님이 307호 환자 붕대를 풀기로 결정했어. 선생님이 마취사를 준비시켜 달래.


26. 다른 각도에서 촬영한 접수대 간호사.

그녀가 몸을 돌린다.


간호사 2: 알았어. 그런데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말야, 이런 얼굴기형아들을 배려한답시구,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는 것 같아. 이런 돌연변이들은 애초에 처음부터 확 추방시켜버리는 게 좋잖아?


간호사 2가 다시 잡지를 집어들고는 앉아있는 의자를 다른 방향으로 돌린다.


27. 간호사 2의 등이 보임.

그녀의 어깨 뒤에서 촬영.


자넷의 간호사: 그게 정말 네가 원하는 거야? 만약 네가 그 환자랑 같은 처지였더라도 그랬을까?


간호사 2가 황급히 인터컴 호출기 버튼을 누른다.


간호사 2: 마취사, 이리로 와주세요. 307호입니다. 그래요. 환자가 난폭해질지 모르니까.


28. 실내. 복도의 접수 데스크. 밤.

간호사 한 명과 병원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잡역부 한 명이 빈둥거리고 있다. 잡역부가 손목시계를 들여다 보더니, 접수 데스크에 붙어있는 카운터 위에 놓인 커다란 TV를 쳐다본다.


잡역부: 오늘밤에 지도자께서 연설을 하신다는데. 좀 있으면 하겠다.


그가 일어나서 TV를 켜고는 담배에 불을 붙인다.


29. 성냥 근접촬영.

성냥이 재떨이로 들어간다. 바로 맞은편에 있는 TV 화면 속에는 멀리서 찍은 책상이 보이고, 책상 뒤편에는 어떤 조직을 상징하는 문양이 붙어 있다. 책상에 누군가 앉아있는데, 너무 멀어서 자세히 볼 수는 없고 대략적인 형체만 보인다. 아나운서의 엄숙한 목소리가 나온다.


아나운서: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신사숙녀 여러분, 우리의 지도자십니다.


청중들의 환호성과 박수소리가 나온 뒤, 방금 소개받은 신사의 우렁찬 음성이 들린다.


지도자의 목소리: 안녕하십니까, 신사숙녀 여러분. 오늘밤 나는 여러분에게 영광스러운 통일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하나로 통합된 우리 사회가 주는 궁극의 기쁨과 환희에 대해서 말입니다. 여러분은 물론 과거에 인간의 역사가 방향을 잃고 비생산적으로 타락하고 감상적으로 치우친 나머지, 의견의 차이가 자연스러운 것이며 사회를 건전하게 이끌어간다는 믿음이 팽배하던 시절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실 겁니다. 우리는 또한 그 시절에는 인간은 각자가 다른 존재이고, 개개인의 생각은 다양해서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것이 당연시되어, 세상은 이런 이질적인 요소들이 한데 모여 조화를 이룬다는 이상하고 유치하고 정신나간 생각이 존재했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가 깨달은 것은...


지도자의 목소리가 배경으로 깔리는 가운데, 카메라는 TV 속 지도자를 지나 병원 복도를 향한다. 지도자 연설은 앞으로 전개될 붕대 푸는 장면에서도 계속해서 배경음으로 깔린다.


30. 자넷의 병실 문을 다른 각도에서 촬영.

 

31. 실내. 병실. 밤.

자넷은 이제 병실 중앙에 놓인 의자에 앉아있다. 머리 위에서 하나뿐인 조명이 스포트라이트처럼 앉아있는 그녀를 비추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낮게 중얼거리고 있다. 그들이 그녀 앞을 걸어서 지나칠 때마다, 그녀의 붕대 위로 잠깐잠깐씩 그들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사라진다. 가끔씩 배경음으로 외부의 TV에서 흘러나오는 지도자 연설이 들려오고 있다. 그러다 병실 안에 있는 의사와 다른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대화가 중단된다. 의사의 몸이 카메라 앞으로 나온다. 카메라가 그의 오른손을 비춘다. 손에는 가위를 들고 있다.


의사: 미스 타일러,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이성적으로 행동하겠다고 약속해줘요. 짜증을 내지 마시오. 화를 내지 말아요. 그리고 폭력을 써서도 안됩니다. 알아 듣겠어요?


자넷이 고개를 끄덕인다.


의사: 이제 내가 어떻게 할 건지 정확히 알려 주겠어요. 우선 당신 머리 왼쪽편에 있는 붕대를 자를 겁니다. 그런 다음 아주 천천히 붕대를 풀어나가는 것이죠. 이 과정은 느린 속도로 진행돼서, 당신이 빛에 적응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그 동안의 주사치료가 당신 시력에 영향을 끼쳤을테니까. 붕대를 푸는 동안 당신은 계속 눈을 뜬 상태를 유지하면서, 붕대가 한꺼풀씩 벗겨질 때마다 당신 눈 앞의 빛이 어떻게 보이는지 나에게 말해줘야 합니다.


자넷: (차분한 소리로) 알겠습니다.


32. 다른 각도에서 자넷의 옆얼굴 촬영.

자넷 얼굴 뒤로 의사의 몸이 보인다. 의사가 손에 쥔 가위를 치켜 올린다.


의사: 미스 타일러, 만약 지금부터 당신이 조금이라도 움직이거나 우리를 감정적으로 대하기 시작하면, 나는 지체없이 간호사들이 당신을 붙들고 마취사가 진정제를 투여하도록 만들 거에요. 알겠어요?


자넷: (중얼거리며) 약속해요... 가만 있을께요.


의사: 좋아요. 그럼 시작합시다.


가위가 의사 몸 앞으로 올라와서 카메라쪽으로 접근한다. 가위가 커다랗게 확대되어 화면을 가득 채운다. 가위가 움직이고, 절단된 붕대가 자넷의 머리에서 풀려나가면서 화면을 지나간다.


의사: 미스 타일러, 이제 빛이 보입니까?


자넷: 아주 조금. 보이는 게... 보이는 건 회색빛이에요.


의사: 좋아요, 계속 얌전히 있어줘요.


또다시 붕대 한꺼풀이 화면을 가로질러 풀려지고나서 붕대의 움직임이 멈춘다.


의사: 지금은 어때요, 미스 타일러?


자넷: 더 밝아졌어요. 아주 많이.


의사: 머리 위 조명등을 올려다 보세요.


33. 조명등을 올려다보는 시점.

붕대를 통해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태양빛이 보인다.


34. 의사 어깨 너머로 자넷 얼굴을 내려다보는 시점.

또다시 의사가 붕대 한꺼풀을 풀어버린다.


의사: 이번엔 어때요, 미스 타일러?


자넷: 밝아요, 아주 밝아요.


의사: 좋아요.

(계속 붕대를 풀다가 멈춘다) 미스 타일러, 이제 마지막으로 붕대 한 겹만 남았습니다.


자넷이 고개를 든다.


자넷: 보여요... 선생님 윤곽이 보여요. 아주 희미하지만... 선생님이 보여요.


의사: 미스 타일러, 이제 마지막 한 겹을 풀을 겁니다. 거울을 가져다 줄까요?


침묵이 흐른다.


자넷: 아뇨. 고맙지만 사양할래요. 거울 필요없어요.


병실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보려는 듯이, 자넷이 얼굴을 들어 두리번거린다.


35. 병실 안 사람들을 주욱 비추는 카메라.

마취사 한 명, 간호사 두 명이 어둠 속에 묻혀있다. 긴장한 채 움직임없이 서있다.


36. 다른 각도에서 찍은 자넷.

그녀의 머리 뒤에서 바라보는 시점. 의사가 마지막 붕대를 잡는다.


의사: 미스 타일러, 이제 마지막 붕대를 풀 차례입니다. 하지만 그러기 전에 지금 내가 하는 말을 기억해줘요. 미스 타일러? 내 말 듣고 있어요?


자넷: 네, 듣고 있어요.


의사: 이제까지 우리는 최선을 다해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서 당신을 치료했습니다. 이제 붕대를 풀었을 때, 치료가 성공했으면 모든 것이 다 잘 된 겁니다. 아무런 문제도 없는거죠. 그렇지만 명심해야 됩니다. 만약 이번 마지막 치료도 예상했던 결과를 달성하는 데 실패한 것이면, 당신은 당신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에서 길고 편안한 인생을 살게 되는 겁니다. 이제 곧 우리는 결과를 확인하게 됩니다. 당신을 사회로 무사히 복귀시키느냐... 아니면-


의사의 말이 중단됨.


37. 카메라가 어둠 속에 서있는 병실 안 사람들을 주욱 비춘다.

병실 안 사람들의 모습에 뒤이어 엷은 붕대만 걸치고 있는 자넷의 얼굴이 보인다. 자넷의 얼굴이 명확하게 드러나진 않지만, 눈, 코, 입같은 이목구비의 윤곽을 어느 정도 볼 수 있다.


자넷: 의사 선생님?


의사: 말해봐요.


자넷: 만약 내가 여전히... 여전히 얼굴이 추한 상태면, 그 땐 어떤 다른 조치가 취해질 수도 있나요? 내 생명이... 내 생명이 제거될 수도 있어요?


의사: 어떤 경우에는 말입니다, 미스 타일러... 정부는 삶을 포기한 사람들에게 생명을 끊어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결정이 내려지려면 여러가지 조건들이 고려돼야 합니다.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하죠. 나이... 신체조건... 내 생각엔 당신이라면 당신같은... 당신같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있는 집단으로 옮겨지는 쪽이 유력할 것 같군요.


자넷: 그럼 치료가 실패하면 선생님은 저를 그 곳으로 보낼거라는 뜻인가요?


의사: 결국 그렇게 되겠죠. 미스 타일러, 이제 붕대를 풀겠어요. 얌전히 있어야 됩니다. 눈을 계속 뜬 채로.


38. 의사 뒤에서 바라보는 시점.

의사가 마지막 붕대를 풀기 시작한다. 첫번째 붕대끈이 머리 꼭대기에서 풀려나가고, 두번째 붕대끈이 풀리면서 자넷의 이마가 드러난다. 그 다음 붕대끈이 풀리자 그녀의 눈썹과 눈 윗부분 일부가 드러난다.


의사: 자, 미스 타일러. 이제 진짜 마지막까지 왔습니다. 당신에게 행운이 함께 하길 바랍니다.


의사가 마지막 붕대를 풀기 시작한다.

[3]편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