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의 한 [1] by 조재형

읽을꺼리 2007. 5. 8. 23:42 posted by 조재형
한국 공포장르의 고전 "전설따라 삼천리"와 "전설의 고향"의 전통을 오늘날에 되살려, 고양이를 소재로 공포소설을 써 보았습니다. 많이 미흡한 작품이지만, 그러려니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 보세요.

경고: 소설 내용 중에는 자극적인 성묘사와 잔인한 살인장면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읽는 사람에 따라서는 정신적인 후유증이 생길 수도 있으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고양이의 한(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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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새 소설은 언제 나오나요?'

그 당시 만나는 문화계 인사들은 항상 이렇게 물었다.

그럼 나는 항상 거의 똑같은 대답을 해주었다. 한창 집필 중이죠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출판사에 원고를 넘길 날이 얼마 안 남았어요. 이번엔 정말입니다. 아, 정말이라니까요.

나는 소설가다. 3년동안 아무런 글도 못 쓰고 있는 한심한 소설가. 언제나 사람들 앞에서는 글을 쓰느라 바쁜 척 온갖 엄살을 다 떨면서도, 막상 집필할 때 쓰는 노트북 컴퓨터를 앞에 두고는 멍하니 게임이나 하고 포르노나 보고 있는. 뭐 간판만 소설가지 백수나 다름없다. 아니 백수인 것이 확실하다.

그래도 처음부터 내 인생이 이렇게 한심했던 것은 아니다. 이래뵈도 꽤 이름있는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나름대로 화려하게 등단했던 몸이다. 팍 까놓고 말해서 그때도 그 문학상을 주관하는 출판사에 아는 형이 있어서 돈을 발라가며 로비를 해서 얻은 상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내 작품이 문학상 수상작으로서의 자질이 어느 정도는 있었으니까 로비도 먹혀 들어간 것이다. 아무나 돈 싸들고 간다고 문학상을 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상을 탄 후 나는 5개월 뒤에 장편소설을 출간했다. 상을 수상했던 덕분인지 출판 불황이다 뭐다했어도 꽤 팔려 나갔다. 어떤 평론가는 나에게 '한국문학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거대한 재목'이라는 극찬까지 해주었다. 물론 내가 사주는 술을 떡이 되도록 처먹고 술김에 한 말이기는 해도. 그 후 1년 뒤 또 한 편의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번엔 반응이 없었다. 출판사도 나도 이만저만 실망한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기분 나쁘게 평론가와 신문기자들이 내 소설을 비난했다. 신인다운 패기 없이 같은 주제를 가지고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다고. 잔뜩 화가 난 나는 서둘러 5개월 뒤 단편소설집을 펴냈다. 이번엔 정말 300권도 팔리지 않았다. 출판사 사장마저 나를 외면하고 있었다.

나는 점점 더 초조해지고 있었다. 처음의 반짝 성공 후 실패를 거듭한 전업소설가로서 예전 작품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한 걸작을 내놔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들어 온종일 괴로워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게다가 그 동안 나는 결혼을 해서 아들까지 두고 있는 몸이었기에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 더욱 짓눌리고 있었다. 언제까지나 아내가 온갖 아쉬운 소리를 해대며 친정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을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빨리 뭔가 쓰자. 돈이 될만한 걸작을.

어떻게 쓰면 그렇게 될까?

내 머리 속은 돌멩이들로 가득 찬 듯이 무거웠다. 그 무거운 머리에서는 아무리 노력을 해봐도 단 한 줄의 글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하릴없이 3년을 놀았다. 웃음을 잃어 가는 아내와 날이 갈수록 성장해서 4살이 된 아들을 멍하니 쳐다보면서.

그러다 문득 환경을 바꿔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답답하고 삭막한 도시에서 벗어나 탁트인 시골에서 살면 도시생활로 무거워진 머리가 한결 가벼워지지 않을까? 환경을 바꾸면 생활이 바뀔테고, 그러면 안써지던 글도 잘 써지겠지. 유명한 소설가들도 다들 시골에서 전원생활을 하며 글쓰고 작품을 발표하면서 잘먹고 잘살고 있지 않던가?

그 즉시 시골에서 살만한 집을 알아보았다. 까마득한 산골에 있는 시골집을 소개받았다. 맘에 쏙 들었다. 완전히 도시와 격리되어 모든 것을 잊고 집필에만 열중하기에는 그만이었다. 집주인이 도시로 이사가고 나서 오랫동안 비워놨던 집이라서 임대료도 거저나 다름없었다. 나는 아내에게 그 곳으로 이사가자고 졸라댔다. 딱 일년이야 그 동안 소설을 완성시켜서 그 다음엔 꼭 서울로 올라 올 거야. 도시에서만 자라난 아내는 망설였지만, 이번이 소설 인생에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기회라고 설득하는 내 앞에서 결국 오케이하고 말았다. 그녀도 백수로 망가져가는 내 모습을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간단히 집수리를 해놓고 우리 식구는 시골집으로 이사했다. 이삿집 트럭이 시골마을 입구에 도착했을 때는 마을 사람들이 나와서 환영까지 해주었다. 젊은 사람들은 죄다 떠나버려 노인들만 우글거리는 마을이라 우리 가족이 무척 반가웠을 것이다. 마을 청년회 회장이라는 사람의 나이가 64살이니 나는 이 마을에서 애기나 마찬가지였다. 작년에 칠순잔치를 했었다는 이장님은 젊은 사람들이 마을에 살게 돼서 기쁘다며 오래오래 이 마을에서 잘 살으라고 침을 튀겨가며 말했다. 물론 난 속으로는 '오래오래 여기서 썩으라니 택도 없는 소리 마슈!'라고 생각했지만, 공기좋은 곳에서 살게 되어서 너무 좋다고 괜히 기쁜 척을 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원래 내 계획은 딱 일년만 살다가 이 마을을 뜨려고 했었다. 끝내주는 소설 하나만 완성시키고 나면. 이 마을은 내게 있어 그저 성공을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우리집은 마을 뒷산 언저리에 있었다. 마을에서도 좀 떨어져 있어서 누군가 기를 쓰고 들르지만 않는다면 아주 조용하게 지낼 수 있는 곳이었다. 나무대문을 열고서 들어서니 넓은 마당을 지나서 마루가 보이고 그 양옆으로 방이 있었다. 왼쪽의 넓은 방은 안방이었고, 왼쪽의 작은 방 두개는 각각 내 집필실과 아들 녀석의 방이었다. 아내는 서울에서 전세로 살던 연립주택보다 시원시원하게 넓어서 좋다고 말하며 웃었다. 정말 좋아서 웃은건지 애써 좋은 척 했던 건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우리는 일을 저질렀고, 이제부터는 이 시골 구석에서 생활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동우녀석은 마당을 깡총깡총 뛰어 다녔다. 이사오기 전에는 동네 친구들과 헤어진다고 울고불고 난리였는데, 이제는 좀 괜찮아진 모양이다. 애들은 그게 좋다. 뭐든 안좋은 일들을 금방금방 잊을 수 있으니.

이삿짐 차가 가버리고 나서 아내와 나는 집 앞에 풀어놓은 자잘한 짐들을 부지런히 날랐다. 가구는 전에 살던 집주인이 남겨 놓고 간 것을 그대로 쓰기로 했다. 사치를 부리기엔 우리 가족은 가난했다.

"아빠 저거 봐!" 이불을 옮기려는데 동우가 내 바지를 붙잡고 소리쳤다.

마당 왼쪽에는 작은 창고가 있었고, 창고 옆에 붙은 시멘트계단을 올라가면 창고 지붕이 장독대였다. 집주인이 남겨놓고 간 커다란 항아리들이 조용히 앉아있는 곳이었다. 항아리 위에 고양이 두 마리가 엎드리고 앉아서 나와 동우를 쳐다보고 있었다. 노란 털 사이로 검은 줄이 쳐져 있는 귀여운 고양이들이었다. 하나는 꽤 컸지만, 나머지 하나는 새끼였다.

"엄마고양이랑 새끼고양인가봐." 작은 상자를 옮기던 아내가 나와 동우 옆에 와서 말했다. "너무 귀엽다 그치?"

"응 귀여워. 고양이, 고양이, 고양이다." 동우는 조금전까지 펄쩍 뛰어 다니던 것과는 달리 내 옆에서 얌전히 서 있었다.

고양이들은 움직임이 없었다. 굳은 표정으로 눈도 한번 깜빡거리지 않았다. 그냥 우리 가족을 바라볼 뿐이다.

"엄마고양인지 아빠고양인지 그냥 보고 어떻게 알아?" 언제나 새끼 옆에 붙어 있는 동물을 보면 누구나 암컷일거라고 짐작한다. 수컷은 언제나 새끼를 팽개치고 다니는 책임감 없는 나쁜 놈이라는 법칙이라도 존재하는 것 같다. 남자는 다 그런거라고. 정말 섭섭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알아 거시기 까봤어?' 라고 아내에게 묻고 싶었지만, 아이 교육상 좋지 않을 것 같아서 그만 두었다. "아빠고양이가 엄마고양이가 시장간 동안 새끼고양이를 돌봐주고 있는 지도 모르잖아. 동우야 그치?"

"글쎄, 내 동물적인 직감으로는 엄마고양이가 맞는 것 같애."

동물적인 직감? 요즘 네 살짜리 꼬마들은 어디서 그런 끔찍한 표현을 배우는 걸까? TV에서 그런 것도 가르쳐 주나?

"2 대 1! 우리가 이겼다. 엄마고양이 만세!." 아내가 동우녀석의 손을 흔들며 좋아했다. "아빠가 졌네~."

나는 다수결의 횡포라고 맞서고 싶었지만, 이내 단념했다. 고양이한테 고추가 달렸냐 안 달렸냐하는 사소한 일로 다 큰 남자어른이 -'한국문학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거대한 재목'이라고까지 불렸었던 재능 있는 소설가가- 말다툼을 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난 그렇게 유치한 놈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골똘히 한다는 자체가 나의 유치함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갑자기 나는 머리가 복잡해 졌다. 고양이 한 마리로 나의 정체성이 흔들리다니.

그 때, 어른고양이가 웅크리고 있던 몸을 위로 쭉 폈다. 그러더니 엉덩이를 깔고 항아리 위에 앉아서 뒷다리를 양옆으로 활짝 벌렸다. 하얀 배가 드러난 가운데, 벌어진 다리 가운데에서 짙은 빛깔의 갈라진 속살이 우리 가족을 향해 얼굴을 내밀었다. 고양이는 더 확실하게 보여 주려는 듯, 앞다리로 허벅지 살을 당겼다 놓았다 주물럭거렸다. 허벅지의 움직임에 따라서 고양이의 갈라진 속살은 금붕어의 주둥이처럼 뻐끔뻐끔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했다. 새끼고양이는 자기 엄마가 얼마나 터무니없이 음탕한 짓을 하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무표정하게 엄마의 성기와 놀라고 있는 우리 가족을 번갈아 쳐다봤다.

우리 가족이 자기를 두고 아빠니 엄마니 하는 소리를 알아 들었나? 나는 어미 고양이의 돌발행동에 어쩔 줄 몰라하며 신음소리같은 말 한마디를 내뱉었다. "엄마고양이 맞네."

아내는 멍하니 고양이 거시기를 구경하며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동우도 엄마처럼 넋이 나가있긴 마찬가지였다. 이런 상황을 네 살짜리 사내아이한테 보여 주는 것이 교육적으로 옳은 걸까? 얘는 지금 고양이 거시기를 보고서 어떤 의미를 느낄 수 있는 걸까? 그런 것도 TV에서 가르쳐 주었을까?

"고양아 니들 여기 사니? 만나서 반갑-" 어색한 상황을 무마시키려고 나는 아무말이나 내뱉었다. 장독대 앞으로 몇걸음 나서며 인사를 하려고 손을 들었다.

두 마리의 고양이들은 내가 앞으로 나가려고 발을 떼는 순간 이미 몸을 움찔거렸다. 어미 고양이가 앉아있던 몸을 순식간에 웅크렸다. 고양이들은 장독대에 붙어 있는 낮은 담장으로 올라가 달리더니 우리집 지붕으로 훌쩍 뛰어 올랐다. 담장과 지붕 사이는 거리가 1미터는 좀 넘는 것 같았는데도, 고양이들은 아무 문제없이 지붕에 안전하게 착륙했다. 고양이들은 지붕 위에서 우리 가족의 얼빠진 모습을 힐끔 쳐다보더니, 반대편 지붕으로 사라져 버렸다. 우리집 뒤에 있는 산으로 가는 것 같았다.

"들고양인가?" 아내가 막 잠에서 깨어난 듯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니, 산에 사니까 산고양이라고 해야 할까? 하는 짓이 꽤 야한데?"

"잘 씻지 않아서 가려웠나봐. 자자, 얼른 짐 다 나르고 푹 쉬자."

우리 가족은 다시 이삿짐을 나르기 시작했다. 내 손에 잡힌 짐은 동우의 그림책을 끈으로 묶어놓은 것이었다. 맨 위에 묶인 그림책 제목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피카츄 조심해! 냐옹이 화났다! 포켓몬스터의 주인공 노란 피카츄가 고양이한테 목을 물리는 그림이 표지였다. 목을 물린 피카츄가 괴로운 비명을 지르는데 피카츄를 데리고 다니는 모자 쓴 소년은 그 뒤에서 뭐라고 막 소리지르고 있었다.

냐옹아 피카츄를 죽여! 목을 뜯고 피를 마셔! 이제부터 냐옹이 네가 주인공이다! 피카츄같이 순해빠진 놈은 필요없어. 너처럼 잔인한 놈이 난 좋아!

그림책 표지 속의 고양이 이름이 냐옹이던가? 확실히는 잘 모르겠다. 동그란 얼굴 주위로 수염이 삐죽 튀어나온 그 고양이 그림을 보고 있느려니 방금 전의 고양이들이 생각나서 기분이 묘해졌다. 특히 어미 고양이가 인상에 남았다. 암컷 고양이의 거시기도 인간과 똑같이 생겼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해 주었기에.

그러나 어수선한 이삿짐 정리를 하느라 고양이 생각은 이내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2.

시간이 지날수록 시골집으로 이사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매일 집필실에 눌러 앉아 노트북 컴퓨터로 글을 써나갔다. 글을 쓰는 속도는 내가 생각해도 놀랄 정도로 꾸준히 빨라지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 3년을 백수로 지내며 글 한줄 못쓰고 빌빌대던 사람이 정말 나였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집필 중인 작품의 제목은 "마지막엔 누구나 혼자가 된다". 사업에 실패하고 노숙자로 전락한 한 중년남성이 방황하던 여대생과 만나 격렬한 사랑을 나눈다는 내용이었다. 이 작품에서 나는 밑바닥까지 몰락한 인간이 얼마나 처절하게 거칠어질 수 있는지 묘사하고 싶었다. 이전의 내 작품성향보다 많이 과격한 작품이었다. 내 계획대로만 완성된다면 오랜 동안의 공백을 일거에 무너뜨리는 문제작이 탄생할 것이다. 계획대로만 완성된다면.

나로서는 글이 잘 써져 신났지만, 사실 아내와 동우에겐 많이 미안했다. 모두들 자극적인 도시생활이 그리울텐데도 묵묵히 참고 견뎌 주었다.

그래도 아내와 동우가 힘들어 하는 모습이 자꾸만 눈에 띄었다. 두 사람은 나를 위해 희생하고 있었다. 그들은 웃음을 점점 잃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런 가족들의 모습을 애써 외면했다. 불후의 명작으로 태어날 나의 소설을 위해. 정말 난 웃긴 놈이다.

다행스럽게도 아내와 동우에게 가끔씩 웃음을 되찾아 주는 존재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앞에서 얘기했던 고양이였다. 이사오던 날 마주쳤던 고양이.

엄마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

그 고양이들은 항상 장독대 항아리 위에 앉아서 마당에서 얼쩡거리는 우리 가족을 커다랗고 둥근 눈으로 쳐다 보았다.

반가운 마음에 우리 가족이 한발짝이라도 장독대 쪽으로 다가가면 고양이들은 쏜살같이 도망치기 일쑤였다. 그 뒤로 좀 익숙해졌는지 아내와 동우가 장독대로 먹을 것을 던져주면 낼름낼름 받아 먹기는 하는데, 절대로 접근은 허용하지 않았다.

무료했던 아내와 동우는 매일매일 찾아오는 고양이들을 보는 것이 큰 낙이 되었다. 내가 집필실로 쓰는 골방에서 나올때마다 나를 붙들고 오늘도 고양이가 왔다갔다, 너무 귀엽다, 엄마고양이가 새끼고양이랑 꼭 같이 다니더라, 새우깡을 주었는데도 잘 먹더라 생선만 먹는 건 아닌가보더라, 고양이가 하품하는 거 봤냐... 하여튼 별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풀어 놓았다. 나는 가족들이 고양이 얘기를 하면서 얼굴에 웃음이 피어나는 것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시골생활이 얼마나 외로웠으면 도시에서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도둑고양이들한테 정을 쏟을까. 빨리 소설을 완성해서 서울로 돌아가야겠다고 다짐을 하게 만들었다. 어쨌든 가족들에게 웃음을 주는 고양이들이니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골방에 틀어박혀 소설을 쓰고 있는데, 동우가 문을 열고 나를 불렀다. "아빠 나와봐. 빨리빨리, 지금 나와야 돼." 왜 그러냐고 물었지만 동우는 자꾸 재촉하기만 했다. 아빠 글쓴다고 조용해야 되니까 TV 볼륨도 줄이던 애가 웬 호들갑인가 싶어서 마루로 나갔다.

마당에 아내가 쭈그린 채 앉아 있었다. 아내는 나를 돌아보고는 씩 웃으며 손으로 승리의 V자를 지어 보였다. 동우도 아내 곁으로 쪼르르 달려가 같이 쭈그려 앉았다. 무슨 일인데 저래?

아내와 동우 앞으로 세발자국 정도 떨어진 거리에 고양이 두 마리가 앉아서 열심히 새우깡을 먹고 있었다. 장독대에 있어야 할 고양이들이 어떻게 마당에 내려왔지?

"우리가 얘네들 길들였어. 동우랑 내가." 새우깡 봉지를 들고 있는 아내가 신이나서 말했다. "고양이들이 오늘도 장독대에 놀러 왔길래 새우깡을 던져 줬거든, 너무 잘 먹드라.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마당에 새우깡을 놓으면 마당으로도 내려 오겠다 싶은거야, 그래서 장독대 계단부터 시작해서 점점 더 아래쪽으로 새우깡을 놓았더니 고양이들이 처음엔 주저하더니만 이렇게 내려왔어. 어때 신기하지?"

좀 놀랍기는 해도 엄청나게 신기할 것까진 없었다. 이사온 지 꽤 지나서 우리 가족들 얼굴도 익숙해졌겠다, 나타나기만 하면 먹을 거 던져 주겠다, 고양이들이 마다할 이유가 없잖은가? 나는 한동안 아내와 동우 뒤에서 고양이들이 과자 먹는 것을 구경했다. 그러다 살짝 고개를 쳐든 어미 고양이와 눈길이 마주쳤다. 이사오던 날이 생각났다. 장독대 위에서 우리 가족을 내려다보며 음부를 애무하던 어미 고양이의 모습이. 순간적으로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고양이가 내 생각을 읽은 걸까? 과자를 오물오물 씹으면서 시선은 줄곧 나에게로 향해 있다. 나를 보고 야릇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것 같다. 착각이겠지.

"고양이가 자기 경계하나봐. 자기 나오니까 계속 쳐다보내. 아까까진 새우깡 먹느라 정신없더니만." 아내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혹시 자기 좋아하는 거 아냐? 애 하나 딸린 유부녀가 애 하나 딸린 유부남을 유혹하다?" 아내가 미소를 지으며 웃는다. 동우도 따라 웃는다. 이 녀석, 도대체 4살짜리 꼬맹이가 엄마 말이 무슨 뜻인지나 알고 웃는 걸까?

"실없는 소리 하지도 마." 나는 머리 속을 뒤흔들던 고양이 거시기 생각을 떨쳐 버리고, 고양이 앞으로 다가섰다. 그저 아내 곁에 섰을 뿐인데, 어미 고양이가 입을 벌리고 캬∼하는 소리를 내더니 냅다 뛰어 달렸다. 어미의 울음소리에 즉시 반응한 새끼도 같은 방향으로 뛰었다. 새끼는 어미보다 뛰는 것이 좀 느린 듯 했다. 고양이들은 창고 옆에 난 계단을 뛰어 올라 늘상 앉아 있던 장독대 항아리 위에 앉았다. 어미가 나를 보고 또다시 캬∼하는 경계의 울음소리를 내더니, 고양이 두 마리 다 담장을 타고 우리 집 밖으로 뛰어 내렸다.

"아빠 때문에 고양이 도망갔다." 시무룩해진 동우가 투덜댔다.

"미안해서 어쩌냐. 괜찮아. 고양이들 또 올거야."

"아빠! 다음부터는 고양이들한테 오지마!" 동우가 자기 방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나는 멍하니 아내의 얼굴을 쳐다봤다. "내가 죽을 죄를 진 건가?"

"그럴지도." 아내가 능글맞은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어쨌든 고양이가 자기 좋아하는 건 아닌가봐. 자기 오니까 싫은 소리 내면서 달아나네. 아니지. 좋아하는 사람이 오니까 부끄러워서 숨은 건가? 혹시 유부녀가 한번 튕겨보는 거 아냐?"

"실없는 소리 하지도 마." 나는 아직도 고양이에게 미련이 남은 듯 쭈그리고 앉아서 마당에 떨어진 새우깡 쪼가리들을 쳐다보고 있는 아내의 등 뒤에 다가가 꼭 안아 주었다. "너 웃는 얼굴 보니까 참 좋다."

"내가 언젠 맨날 울었나?"

"지금 너 많이 힘든 거 알아."

"............"

"조금만 참자. 지금 쓰는 소설 다 쓰면 곧바로 서울로 돌아가자." 아내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었다. "이번 소설은 느낌이 아주 좋아. 꼭 대박 날거야. 나 믿지?"

"그럼 내가 널 믿어야지, 딴 남자 믿냐? 옆집 아저씨 믿어도 돼?"

난 낄낄대며 아내를 더욱더 꼭 안았다. 아내 블라우스 속으로 손을 집어 넣어 유방을 만지작거렸다. "나 니 가슴 너무 좋아. 세계 제일이야." 아내가 뻥치지 말라고 핀잔을 준다.

하지만 내 말은 진심이다. 아내를 처음 만나던 날은 정말로 뜨거운 여름이었다. 그날 몸에 착 달라붙는 티셔츠를 입은 아내를 보는 순간 난 그녀를 사랑하게, 아니 좀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그녀의 가슴을 사랑하게 되었다. 허전하게 작지도 않고 무식하게 커다랗지도 않은 딱 좋은 정도의 아름다운 그 가슴. 그 자리에서 나는 사랑의 포로가 되어 버리고야 말았다. 그때도 그랬듯이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난 아내의 가슴을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다. 만약 아내가 유방암에 걸려서 가슴을 제거해야 한다면? 난 아마 자살할지도 모르겠다. 우습게 들리겠지만 솔직한 심정이다.

"니 가슴 내 보물 제 1호야. 누구한테도 안뺏길거야." 아내의 유두를 비틀며 그녀를 더욱 힘차게 안았다. 아내가 몸을 움찔하며 얕은 신음소리를 냈다. 아내는 손에 힘이 들어갔는지 들고 있는 새우깡 봉지가 부스럭 소리를 냈다. 내가 아내의 유방을 제대로 작업중이라는 신호겠지. "이렇게 네 유방을 내 손으로 느끼고 있으면 정말 행복해. 그치만 더 행복할 때는 네 유방을 내 혀로 느끼고 있을 때야. 거기다 더더더 행복할 때는 네 유방을 내..."

"저기 좀 봐!"

느닷없는 아내의 큰소리에 부부간의 에로틱한 분위기는 깨졌다. 아내는 장독대를 가리키고 있었다.

장독대 항아리 위에 조금전에 도망갔던 고양이 두 마리가 태연히 앉아 있었다. 고양이들이 마당에 쭈그리고 앉아 부둥켜 안고 있는 우리 부부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난 고양이 따위에 관계없이 방금 전까지 훌륭하게 진행되던 유방 마사지를 계속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내는 내 손길을 뿌리치고 일어섰다. 엉거주춤하게 앉아있던 나는 일어선 아내의 히프를 잠시 멍하니 감상하다 힘없이 일어섰다.

"고양이들이 다 보고 있는데, 부끄럽잖아. 쟤네들 언제부터 저기 있던거지?"

"지들이 본다고 뭘 알겠어?"

"아까 네가 한 말 고양이들이 다 엿들었겠다."

"뭐, 네 유방에 대한 나의 감상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던거? 야 여기서 장독대까지 거리가 있는데 어떻게 듣냐? 그리고 큰소리도 아니고 우리 둘만 듣게 작게 말했는데."

"고양이들은 귀가 좋잖아."

"지선이 유방 한 세트는 상훈이 보물 제 1호다! 이런 말을 들어버렸다구? 설마 들었더라도 무슨 말인지도 잘 모른텐데 뭐." 나는 아내에게만 들릴만한 작은 목소리로 고양이들을 향해 말했다. "고양이들아, 정말 지선이 말대로 니들이 그렇게 귀가 좋아서 내 말이 들린다면 오른손 들어봐라."

새끼고양이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저 인형처럼 꼼짝않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어미 고양이의 귀가 쫑긋거렸다.

그리고 그 고양이는 정확히 오른쪽 앞발을 들어올렸다. 나의 명령이 있기 전까지는 장독대 항아리 위에 굳게 딛고 서 있던 오른쪽 앞발을.

"어머, 상훈이 네 말 다 알아들었나봐. 그렇게 작은 소리로 말한건데. 그리고 사람 말도 무슨 뜻인지 다 아나봐." 아내가 감탄했다.

나도 감탄했다. 정말 아내의 말이 다 맞는 것 같았다. 우리 집에 천재 고양이가 놀러 오다니! 놀라움과 경이의 감정이 나를 휘감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고양이는 들어올린 앞발로 코를 부비더니 다시 항아리 위에 내려 놓았다.

"뭐야? 그냥 코 간지러워서 손으로 긁은거니?" 아내는 실망한 나머지 고양이한테 하소연을 하고 있었다. "아니지. 혹시 내 남편 말 듣고 손 들었다가 때마침 코가 간지러워서 긁은거였니? 그렇겠지? 자 그럼. 이번엔 내가 명령한다! 옆에 앉은 네 새끼 등을 긁어봐!"

고양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미도, 새끼도.

"거봐, 쟤네들이 뭘 알겠어? 그냥 짐승이지 뭐. 그 손에 들고 있는 새우깡이나 던져줘. 고양이들이 그거 먹고 싶어서 힘들게 또 여기까지 온거지, 지선이 밑에서 머슴 살려고 온 거 아니다."

아내가 주먹으로 내 팔을 툭 쳤다. 나는 낄낄거리고 웃으며 아내 입술에 살짝 키스하고는 집필실로 쓰는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고양이 때문에 -그리고 나의 보물 제1호를 마사지 하느라- 글쓰기가 너무 오래 지체되었다. 잠시 팽개쳐 두고 나온 소설을 계속 써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글쓰는 리듬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조급한 감정이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시골집으로 이사오고 나서 처음 느끼는 기분이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집필실에 들어가면서 옆방의 동우에게 고양이가 다시 돌아왔다고 말해주는 것을 잊지는 않았다. 동우는 언제 토라졌냐는 듯 활짝 웃으며 나에게 "진짜야?"라고 물으며 마당으로 뛰어 나갔다. 아내와 동우가 던지는 새우깡 세례를 받으며 고양이들이 장독대에서 마당으로 내려왔다. 아내와 동우는 환호성을 질렀다. (아내는 미련을 못 버렸는지 고양이한테 명령을 내렸다. "새우깡을 만지지는 말고 혀로만 핥아라!" 이번에도 실패.)

나는 바깥의 소란스러움을 뒤로 한 채, 집필실 책상 위에 놓여진 노트북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 보았다. 쓰다만 소설을 찬찬히 읽어보았다. 소설 속의 주인공 남성이 창녀 취급하는데 대해 화가 난 여대생이 난리를 치는 장면이었다.

날 우습게 보지마! 이제까지 네가 시키는대로 다 해왔다고 내가 바본 줄 알아? 이거 왜 이래, 새꺄! 너를 그때 처음 보았을 때부터 난 생각했어. 날 건드리면 널 가만 두지 않겠다고. 웃어? 그래, 웃을 수 있을 때 실컷 웃어. 넌 내가 어-얼마나 무서운 년인지 몰라!

여대생의 마지막 대사를 되뇌이며 한동안 생각에 잠겼던 나는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머리 속이 회오리 바람이 몰아 치는 것처럼 들썩거렸다. 조금 전의 불안감은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이렇게 소설이 잘 써지다니.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내 자신도 못 믿을 정도였다. 신이 난 나는 더욱더 집필 속도를 올렸다. 고양이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