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킹이 말하는 대중문화의 폭력성

뉴스 2007. 10. 10. 23:20 posted by 조재형

☞ 잡지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에 스티븐 킹이 쓴 칼럼 "A History of Violence"가 실렸습니다.

이 칼럼에서 스티븐 킹은 영화 등 미국 대중문화 속에 등장하는 허구의 폭력이 미국인들의 행동양식에(게다가 미국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회의적인 태도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쳤는지에 관한 논의가 진지하게 심사숙고해볼만한 문제인 것 같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킹은 개인적으로 그런 생각을 후다닥 해치워야 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조디 포스터가 나오는 폭력영화 "브레이브 원"을 보러 빨리 극장에 가야하니까.

킹은 자신만의 폭력의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의 소설들에서는 대개 사망자수가 많고, 특히 그의 두 소설, "스탠드"와 "셀"에서는 거의 지구상의 전인류가 말살당하기도 했습니다. 킹은 농담 삼아 그것에 대한 변명을 합니다. 자신이 맨날 사람이 줄기차게 죽어나가는 소설만 쓴 것이 아니라, 때로는 죽은 사람이 살아돌아오는, 마음이 푸근해지는 소설들을 쓰기도 했었다고. 대개 살아돌아온 시체는 산 사람을 먹어치우려고 그런 거지만, 그런 사소한 걸로 트집 잡지 말자고. 어쨌든 기적은 기적 아니냐고.

대중문화의 폭력성에 따른 윤리적 문제는 상당히 정기적으로 신문의 특집기사로 다루어지고 있는데, 그것이 그렇게 중요하게 취급될 만한 문제라고 킹은 말합니다. 그가 평생동안 피범벅이 나오는 대중문화 작품들에 탐닉했던 것이 분명히 그를 당혹스럽게 하고 때로는 그를 역겹게도 한다고 합니다.

킹은 자신이 왜 "브레이브 원" 같은 폭력영화들에 흥미를 느끼는 지 이유를 모릅니다. 다만 그는 그런 영화들이 가장 끔찍한 두려움들과 충동들을 감정 체계로부터 안전하게 배출시키는 마음의 배수로 역할을 해주길 기대할 따름입니다.

흔히들 입바른 소리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세상이 폭력에 물들어있으며, 그런 슬픈 현실을 언급하려는 영화들이 나쁜 예술품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또한 (스티븐 킹이 엄청나게 좋아했던 영화이기도 한) 케빈 베이컨 주연의 폭력영화 "사형 선고(Death Sentence)" 같은 영화들을 본 극히 소수의 사람들이 법을 무시하고 자기들 맘대로 폭력을 행사하고픈 충동을 어쩔 수 없이 느낄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지적들은 가정을 수호하기 위한 완벽한 방법으로서(그와 아울러 정원에 자꾸만 침입하는 성가신 다람쥐들을 제거하는 데도 효율적인 방법으로서) 반자동 소총을 소지하는 것이 안성맞춤이라고 주장하는 미국 총기협회 옹호론자의 궤변과 극단적으로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고 킹은 말합니다. 그들 모두가 세상이 폭력으로 물들어있다는 데는 동의한다는 거지요. 총기 소지자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기를 신중하게 책임감 있게 다룰 수 있다는 주장을 합니다. 폭력적인 대중문화의 옹호론자들도 그와 똑같은 주장을 합니다.

스티븐 킹은 때로는 폭력적인 영화들이 불안정한 사람들한테 영향을 끼치는 수가 있다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말합니다. (영화 "택시 드라이버"에 나온 조디 포스터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은 존 힝클리라는 남자가 레이건 대통령한테 총을 쏜 적도 있으니까.) 어떤 사람들의 마음은, 그 위험한 마음들은 바짝 마른 인화성 물질과도 같습니다. 그릇된 R 등급 영화 속에 나온 정당한 폭력행위가 그런 불안정한 개인들이 필요로 하는 불꽃을 일으킬 수도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미국이란 나라는 권총이 풍부하게 널려있기까지 하니까. 스티븐 킹은 버지니아 공대에서 32명을 살해한 조승희 사건을 예로 듭니다.

(영화 제목 마저도 폭력을 묵인하는 듯한) "브레이브 원" 같은 폭력영화들에 자신이 왜 흥미를 느끼는 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다만 그런 영화들이 가장 끔찍한 두려움들과 충동들을 감정 체계로부터 안전하게 배출시키는 마음의 배수로 역할을 해주길 기대할 따름이라고 스티븐 킹은 거듭 말합니다. "카타르시스"라는 그리스 단어가 있는데, 킹은 자신의 폭력적인 창작물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그 단어를 여러 번 사용해왔지만, 그것을 전적으로 신뢰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밝힙니다.

총싸움 영화들과 난도질 영화들이 우리 삶의 일부로 계속 남아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은 분명하고, 그것은 다음과 같은 우울한 생각을 암시합니다. "어쩌면 폭력에 대한 사랑은 인간 심성의 필수 요소이며, 우리의 더욱 선량한 자아로부터 떼어낼 수 없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폭력에 대한 사랑은 과거에도 그랬듯이 미래의 대중문화에서도 지속적으로 커다란 부분을 차지할 것입니다.

스티븐 킹은 이 칼럼이 올라온 인터넷 게시판에서 독자들끼리 의견을 말해보라고 권유합니다. 그런데 스티븐 킹은... 40분 뒤에 쇼를 즐기려 한답니다. "브레이브 원"에 나오는 조디 포스터가 나쁜 녀석들을 무자비하게 혼쭐내는 모습을 구경하러 극장에 갈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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