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wendy's Button Box

작품 감상문 2019. 3. 30. 19:42 posted by 조재형

Gwendy's Button Box

(2017년 중편소설)


미국의 세머테리 댄스 출판사는 장르소설, 특히 공포소설과 관련된 단행본과 잡지를 펴내는 출판사다.

이 출판사에서 스티븐 킹의 작품을 출간한 적이 있기 때문에 세머테리 댄스 출판사의 사장이자 작가로도 활동하는 리처드 치즈마는 스티븐 킹과 친분이 있는 사이다.

2017년 초 리처드 치즈마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스티븐 킹은 작년 여름에 쓰기 시작한 단편소설 하나가 완성이 되지않는다는 말을 했다.

스티븐 킹이 새 소설을 언급할 때면 자주 했던 반응대로 리처드 치즈마는 이메일 답장을 보냈다. "괜찮다면 그 소설을 나한테 보내주세요. 어떤 소설인지 굉장히 읽어보고 싶네요."

다음 날 저녁 스티븐 킹이 보낸 이메일에는 "그웬디"라는 파일이 첨부되어 있었고, 이메일 내용은 "그것을 가지고 당신이 하고 싶은대로 해봐요."

킹의 미완성 원고 파일을 즉시 읽어본 리처드 치즈마는 이메일 답장을 보냈다. "이 소설을 완성해보고 싶어요."

그렇게해서 스티븐 킹과 리처드 치즈마의 공동집필이 시작되었고, 두 작가가 소설 내용을 추가하며 원고 파일을 이메일로 주거니 받거니한지 한 달만에 중편소설 "Gwendy's Button Box"가 완성되었다.

이 소설에는 스티븐 킹의 초기작품에서 주된 배경으로 등장했던 캐슬록 마을이 오랜만에 등장한다.

캐슬록 마을에 사는 12살 소녀 그웬디는 운동을 하러 나갔다가 검은 옷을 입은 아저씨와 우연히 만나게 되는데, 아저씨는 버튼이 여러 개 달려있는 상자를 그웬디에게 주면서 잘 간수하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위험해보이면서도 묘한 매력이 있는 버튼 상자를 덥석 받아든 그웬디는 그 때부터 오랫동안 그 상자와 은밀한 관계를 맺게 된다.

중편소설 "Gwendy's Button Box"를 읽으면서, 스티븐 킹의 2014년 장편소설 "리바이벌"을 읽을 때와 비슷한 기분을 느꼈다.

"리바이벌"을 읽으면서 주인공이 오랜 세월을 살아나가는 이야기를 잔잔하게 그러내면서도 계속 독자의 궁금증을 유발해서 소설을 읽게 만드는 스타일을 인상깊게 느꼈는데, 중편소설 "Gwendy's Button Box"의 분위기도 비슷한 느낌이다.

중편소설 "Gwendy's Button Box" 제목을 보면 '그웬디'보다는 '버튼 상자'가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핵심인 것 같은데, 소설을 읽어보면 그웬디가 소녀에서 성인으로 성장해나가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그웬디가 만났던 검은 옷의 아저씨가 상자의 기능에 대해 말했던 내용이나 상자의 모양과 작동방식을 보면, 이 상자의 파워로 인하여 뭔가 엄청난 사건이 발생하고 그웬디가 그런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여기 저기 뛰어다니는 이야기가 연상이 되지만, 실제 소설은 그웬디가 생활하고 성장해나가는 세월을 잔잔하고 담담하게 묘사해나간다.

그웬디가 버튼 상자의 버튼을 함부로 마구 누른다면? 상자를 잃어버린다면? 소녀의 부모가 이 상자를 발견하게 된다면? 누가 상자를 훔쳐간다면? 상자가 그냥 갑자기 없어진다면? 상자가 저절로 작동하게 된다면?

상자를 둘러싼 여러 가지 위험스런 상황들이 있을 수 있지만, 소설은 그런 것보다는 그웬디의 인생에 더 집중한다.

성장담이 펼쳐지는 와중에 소설은 여러 번 상자를 언급하며 불안한 분위기를 조성하기는 하지만, 소녀와 상자가 서로에게 끼치는 긍정적인 영향력의 파워가 강해서 불안요소의 싹이 위험한 거목으로 성장하는 것을 방해(?)한다.

소설 속에서 상자가 파괴적인 힘을 발휘하는 장면도, 그웬디가 상자의 버튼을 활용하는 장면도 많이 나오지는 않는다.

그웬디가 상자의 버튼을 두 번째로 사용하는 장면은 사용하려고 마음먹은 동기를 보여주고 과정을 생략한 채 사용의 결과로 바로 이어져 독자를 깜짝 놀라게 해주지만, 과정이 생략된 탓에 왜 버튼을 눌렀는지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그웬디가 예전에 버튼을 첫 번째로 사용했을 때 사용에 따른 부작용을 인지하게 되었는데, 버튼을 두 번째로 사용하는 순간에는 그런 부작용이 발생해도 괜찮다고 생각했었나? 그웬디가 그런 무책임한 성격이었나? 아니면 그런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에 버튼을 편하게 눌렀나? 그런 확신을 가지게 된 이유는? 그런 부분들이 잘 납득이 가지 않는다.

두 작가의 공동집필이 순간순간 발생하는 위험을 강력하게 키우는 대신 순간순간 임기응변으로 금방 해소해버리는 식으로 단순하게 흘러간 것 같기도 하고, 두 작가가 중학교 진학을 앞둔 어린 소녀에게 너무 가혹한 운명을 부담지우고 싶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애초에 스티븐 킹 본인이 이야기를 전개시킬 동력을 잃었던 미완성 작품이다보니 완성된 이야기에서 공동집필에 대한 아쉬움이 더 부각되는 것 같기도 한데...

이런 것들은 소설을 읽은 후 한참 지나 현재 감상문을 적으면서 느끼는 단점이고, 막상 소설을 읽을 당시에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잘 읽었다.

강력한 사건들이 톡톡 튀는 이야기를 기대한 독자에게는 아쉽겠지만, 잔잔하게 흘러가는 작은 이야기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Gwendy's Button Box" 소설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