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럴드의 게임 / Gerald's Game

작품 감상문 2019.03.10 21:27 posted by 조재형

Gerald's Game

(1992년 장편소설)


스티븐 킹은 사람이 어딘가에 갇혀버리는 상황을 보여주는 소설을 꽤 썼다.

사람이 초대형 투명 돔에 갇히기도 하고("언더 더 돔"), 한겨울의 호텔에 갇히기도 하고("샤이닝"), 슈퍼마켓에 갇히기도 하고("안개"), 넘버원 팬의 집에 갇히기도 하고("미저리")... 화장실에 갇히기도 한다("아주 비좁은 곳").

그래서 어떤 독자는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보며 도넛을 먹던 사람이 소파에 갇히게 되는 소설도 나오지 않을까하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스티븐 킹이 소파 감금 소설을 발표한 적은 없다... 아직까지는...

그런데 킹은 침대에 갇힌 사람에 관한 소설을 1992년에 발표한 적이 있다. 게다가 "투 머치 토커(?)"인 스티븐 킹은 침대에 갇히는 이야기로 "장편"소설을 만들어냈다.

그 많은 분량을 도대체 어떤 내용으로 채웠을까? 참 궁금했다.

나는 사람이 침대에 갇혀 고통받는 스티븐 킹의 1992년 장편소설 "Gerald's Game"을 집어들기 전, 소설에 관하여 아주 간단한 내용만 알고 있었다.

부부가 애정행위의 분위기를 북돋우기 위해 수갑을 소품으로 사용하기로 한다. 아내가 침대에 누운 채 양팔을 활짝 벌린 상태에서 수갑 두 개에 의해 양쪽 손목이 침대 기둥에 묶인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남편이 쓰러지고, 아내는 침대에 갇힌 상태로 고립된다. 그녀는 침대 탈출을 위해 노력한다.

이런 설정만 안 상태에서 "Gerald's Game" 소설을 읽기 시작했는데, 이야기가 내가 대충 미리 예상한 내용을 벗어나 전혀 뜻밖의 방향으로 전개되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리고 그런 뜻밖의 전개는 나에게 큰 감흥을 안겨주었다. 이 소설을 읽기 전에는 대작들 사이에 위치한 징검다리 소품 정도로 여겼는데, 스티븐 킹의 다른 유명작들에 뒤지지 않는 파워를 자랑했다.

요 몇년 새 읽은 다른 스티븐 킹 작품들을 넘어서는 강렬한 정서적인 감흥을 나에게 안겨다 준 작품이었다.

소설 초반에 침대에 묶인 제시가 남편과 날 선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읽으면서 슬슬 이 작품의 멋짐을 느낄 수 있었다.

수갑에서 벗어나고픈 제시의 심리, 그런 그녀가 남편에게 느끼는 징그러움과 혐오, 그런 감정을 담아 남편에게 쏘아대는 말투, 하지만 그런 그녀의 요청을 철벽방어하면서 오히려 역으로 치고 나오는 남편의 능글맞은 맞대응, 그리하여 두 사람 사이에서 달아오르는 감정의 맞대결.

부부간에 오가는 이 숨막히는 대화장면을 읽으며 스티븐 킹이 독자의 혼을 빨아들이는 재주에 감탄했고, 이 소설에 대한 기대치가 쭉쭉 올라갔다.

그러다 제시가 홀로 침대에 고립되는 순간이 찾아왔고, 소설 초반에 배경묘사로 언급되던 사소한 요소들이 차례차례 등장하며 소설의 긴장감을 묵직하게 끌어올렸다.

그런 요소들에 압도당하여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제시의 심리묘사가 소설 전체를 지배한다.

침대 탈출 액션만 기대한 독자라면 장편소설의 분량 내내 이어지는 심리묘사에 답답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탈출장면에만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 작품은 장편소설 대신 단편소설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스티븐 킹이 집중했던 것은 탈출장면의 전후를 아우르는 제시의 심리였고, 그 심리의 진행과정을 치밀하게 충분히 묘사하는 킹의 노력은 이 작품을 단편 대신 장편으로 몸집을 불리게 했으며, 나는 이 불어난 몸집에 크게 만족했다.

제시가 고립된 상태에서 하는 이런저런 생각이 엮어내는 흐름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다양한 상황을 창출해내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흥미로웠다.

소설 내내 심리묘사가 이어지지만 지루해서 그만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아니라, 이 다음의 상황이 어떻게 될 지 궁금해서 자꾸만 다음 페이지를 서둘러 읽고 싶어졌다. (스티븐 킹은 한창 달아오르는 분위기에서 장면을 절묘하게 절단하는데 도사다. 나는 다음 장면을 읽기 위해 낑낑대면서 책장을 서둘러 넘길 수 밖에 없다.)

제시가 살아오면서 겪은 음산한 일들에 대해 회고하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침실의 분위기에 두려움을 느끼고, 꿈과 현실과 상상이 얽히고설키면서 나중에는 어느 것이 꿈이고 현실이고 상상인지 애매해지는 순간에 혼란스러워하는 모습들이 음산하게 펼쳐진다.

그러다 침대에서 탈출하느라 몸부침치는 장면을 읽을 때는 너무 실감나서 소설 본문을 한 번 보고 내 몸을 한 번 보기를 반복하면서 마치 내가 고통을 겪고 있는 것처럼 끙끙거렸다.

그리고 스티븐 킹 소설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건데, 나는 스티븐 킹이 꿈을 묘사하는 부분을 참 좋아한다.

"Gerald's Game" 소설을 읽을 때도 주인공 제시가 침대에 장시간 묶인 상태에서 잠을 잘 때마다 등장하는 꿈의 내용을 엄청 몰입해서 읽었다.

금방이라도 안 좋은 일이 벌어질 것 같은(실제로 안 좋은 일이 벌어지게 되는!) 꿈 속의 상황을 끈적하게 묘사하는 스티븐 킹의 글솜씨는 언제 접하게 되더라도 나에게는 효과 만점이다.

스티븐 킹 소설을 오랜 세월동안 읽었어도 꿈 장면이 등장하면 내 마음은 기분좋은 긴장감으로 젖어든다.

나는 "Gerald's Game" 소설을 인터넷 서점 아마존에서 전자책으로 구입해서 읽었는데, 전자책 본문의 하단에는 소설을 현재 몇 %까지 읽었는지 표시가 되어있다.

소설 후반을 읽다가 마침내 제시의 위기가 해소되었을 때 나는 이제 소설이 끝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문득 전자책 하단을 보니 독서 진행률이 73%로 표시되어 있었다.

응? 소설이 완전히 끝난 게 아니였어?

그래서 소설을 또 계속 읽어나가다가, 그제서야 제시의 위기가 해소된 것 같아 이제 소설이 끝이겠거니하고 전자책 하단을 보니 독서 진행률은 80%였다.

응? 여기서 더 쓸 말이 있단 말이야? 스티븐 킹, 당신은 대체 무엇을 위해 이 소설을 이렇게까지 길게 진행시키는 것인가요?

나의 호기심은 애타는 마음으로 책장을 훌훌 넘기게 만들었다. 그러다 만나게 되는 이 소설의 끝장면은- 내 마음을- 쿵!쿵!쿵! 폭발하게 만들었다.

우와~ 스티븐 킹은 이 장면을 보여주고 싶어했구나.

뜻하지 않게 거대한 감동을 주는 장면을 접하게 되니 바쁘게 책장을 넘기던 손을 놓고 한 동안 결말의 감동이 주는 여운을 곱씹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다른 사람은 다르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나한테는 "Gerald's Game"의 결말이 굉장히 멋있고 굉장히 감동적이었다.

내가 보기에 소설 작가들을 아주 단순하게 두 종류로 분류한다면, 이야기라는 무대 위의 조명을 끄는 작가와 끄지 않는 작가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

조명을 끄는 작가는 이야기 무대의 조명을 켜두다가 독자가(또는 작가 자신이) 불편해할만한 장면이 나오면 조명을 꺼버린다.

"독자관객 여러분, 이 장면은 굳이 볼 필요가 없어요. 너무 폭력적인/음란한/더러운/부도덕한 장면이니까요. 잠시 무대조명을 끄고 있을게요."

그리고 그 장면이 지나가면 다시 무대의 조명을 켜고 무대 공연을 이어나간다.

이런 식의 연출을 선호하는 작가들이 있고, 이들을 지지하는 독자들이 있다. 그런데 이들 중에는 이렇게 조명을 끄는 것이 소설의 작품성을 높여준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으며, 더 극단적으로 변하게 되면 조명을 끄지 않고 켜두는 작가와 소설에 대해서 비난을 하다하다 검열과 차단과 처벌과 금지를 부르짖기까지 한다.

스티븐 킹은 여간해선 이야기 무대의 조명을 끄지 않는 작가다. 세상의 이목이 두려워 불편한 장면을 표현하는 것을 꺼리고 가리고 치워버리는 대신 과감하게 노출시킨다.

이런 탓에 스티븐 킹을 변태, 사이코, 쓰레기라고 부르며 혐오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스티븐 킹의 이야기를 지지하고 선호하는 사람들도 많다. 많으니까 스티븐 킹이 슈퍼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겠지.

나? 나는 당연히 스티븐 킹이 무대 위의 조명을 환히 밝히는 것을 좋아한다. 스티븐 킹이 연출하는 무대공연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으면 나는 무대의 맨앞줄 정중앙 좌석을 차지하게 위해 부리나케 뛰어갈 것이다!

그리고 강렬한 조명이 집중된 그 무대 위에서는 기묘하게 생긴 키다리 남자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가방을 열어 그 안에 든 물건을 독자관객들을 향해 보여줄 것이다. 가방 속에 든 수많은 뼈다귀와 목걸이와 반지 같은 장신구를 하나하나 꺼내들며 그것들에 엃힌 사연들을, 그 불편한 진실들을 누구나 들을 수 있는 커다란 목소리로 외칠 것이다.

불편한 진실.

소설 "Gerald's Game"의 결말을 읽으며, 나는 스티븐 킹이 이 결말을 통해 불편한 진실을 향해 쫄지 않고 마주 대할 수 있는 용기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예전에 스티븐 킹에 대해 잘 모를 때 장편소설 "그것"의 마지막 장면을 읽고 거대한 감정의 폭풍에 휩싸였던 것과 흡사한 기분을 느꼈다.

그래서 "Gerald's Game" 소설 후반의 이 문장을 노려보며 한 동안 상념에 젖어들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진실을 향해 (키보드의) 삭제 버튼을 누르지 않을 것이다. 그 진실이 어떤 사람들한테는, 심지어 그녀 본인한테까지도 아무리 역겹게 받아들여진다해도 말이다. 그녀는 그것을 그 모습 그대로 놓아둘 것이다.

이 문장이 "Gerald's Game" 소설이 전하고자하는 메시지를 대표해주는 것 같았고, 더 나아가 오랜 세월동안 스티븐 킹이 소설을 쓰면서 마음 속에 간직한 창작의 원칙을 대표해주는 것 같았다.

침대 위에 반라의 여자가 묶여있다는 설정으로 이렇게 큰 감흥을 주는 소설을 만들어낸 스티븐 킹 아저씨. 난 그저 당신의 소설을 응원하고 좋아할 수 밖에 없습니다~~ ♡_♡

소설 "Gerald's Game"은 2017년 넷플릭스 영화로 공개되었다.

원작소설의 여러 장면을 영상으로 보는 즐거움은 있지만, 스티븐 킹이 소설에서 공들여 묘사했던 여러가지 부분이 축소되거나 제외되다보니 영화의 완성도에 아쉬움이 남는다. 원작소설을 읽지 않고 영화를 보게 되는 사람이라면 침대 탈출장면까지는 재미있게 보겠지만, 그 이후의 후반 장면에 대해서는 어리둥절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