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바이벌 / Revival

작품 감상문 2015. 1. 9. 02:16 posted by 조재형

R e v i v a l

(2014년 장편소설)

 

장편소설 "Revival" 출간 당시 진행된 인터뷰에서 스티븐 킹은 자신을 나이가 들어 구속이 느려진 강속구 투수에 비유한다.

젊었을 때는 머리 속에 셀수 없이 많은 이야기 아이디어로 가득 차서 이야기들이 서로 집필받게 해달라고 난리를 쳐댔고, 그 결과 "캐리", "살렘스 롯", "샤이닝", "애완동물 공동묘지" 같은 작품들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집필되어 쭉쭉 출간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나이가 들어 한두 가지 이야기 아이디어를 느긋하게 굴려가며 집필을 하게 되었다.

"내가 공을 던지는 속도가 좀 줄어들었죠. 나이가 들면서 (강속구 대신)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을 이용해야할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내가 필요할 때는 아직도 강속구를 던질수 있습니다. 난 늙었지만 죽은 사람이 아니에요. 그러니 난 여전히 공을 힘껏 뿌려댈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Revival'은 강속구입니다. 그럼요, 그렇고 말구요."

스티븐 킹은 본인의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장편소설 "Revival"을 꼿꼿한 공포소설이라고 소개하며, 책을 구입하려는 독자들한테 마음 단단히 잡수시라고 농담을 하기까지 했다.

그렇다. 장편소설 "Revival"은 스티븐 킹의 초기 공포소설 분위기를 원하던 독자들한테 스티븐 킹이 힘껏 던진 돌직구다.

킹은 어렸을 때 아서 메이첸, 메리 셸리, H.P. 러브크래프트 같은 작가들의 고전 공포소설을 읽고 느꼈던 압도적인 공포감에서 영감을 받아 장편소설 "Revival"을 집필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Revival"을 읽고 나서 서양 고전 공포단편소설의 기승전결 형식 중 기승전을 길게 늘여놓은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길게 늘인 기승전의 내용은 주인공 제이미의 인생으로 가득 차 있다.

작은 시골마을에 사는 6살 소년 제이미는 마을에 새로 부임한 제이콥스 목사를 만나게 되고, 비밀스런 전기의힘을 연구하는 제이콥스 목사와 불가사의한 인연을 오랜 세월동안 이어가게 된다. 때로는 본인의 의지로... 때로는 타인의 의지로...

소설 "Revival"은 제이미 소년이 어린이에서 청소년, 성인으로 성장하는 동안 기타와 만나 사랑에 빠지고 기타리스트로서 음악에 심취하다 방황하고 다시 정신을 차리는 여정을 차근차근 풀어나가는데, 아마추어 밴드에서 기타 치던 경험까지 있는 스티븐 킹은 기타와 인간의 애정관계를 한껏 묘사해나간다.

공포스런 사건의 연속을 기대한 독자들 중에는 이런 음악인생 역정에 답답함을 느낄 수도 있을텐데, 자신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여러가지 수상한 상황까지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주인공 제이미의 성격도 그런 답답함에 일조할 것이다.

소설 후반부에서 제이미를 만난 제이콥스 목사는 광활한 지역에 충분한 전기를 공급하는 것이 가능한 초소형 장치를 만들어냈다고 자랑하는데, 막상 제이미는 그러려니하고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 식이다.

본인까지 포함해서 여러 사람들이 비밀스런 전기의 힘에 노출되어 기괴한 체험을 하게 되었지만, 제이미는 스티븐 킹과 제이콥스 목사의 배려(?)만 아니었으면 평생을 무난하게 살다 행복하게 죽었을 것만 같다.

공포소설이라고 하면 악랄한 적에 맞서 목숨을 걸고 맞서는 주인공의 절박함 같은 것이 나올 것 같지만, 제이미한테는 그런 것이 다소 부족하고, 주인공이 "Revival" 결말에 나오는 공포의 현장과 대면하게 되는 것은 주인공으로서의 "사명감"보다는 이왕 이렇게 된 거 끝은 보고싶다는 "호기심"에 의한 것이다.

주인공이 주변상황에 잘 적응하고 순응해나간다는 인상을 받기도 하지만, 나는 고전 공포단편소설의 기승전 분량을 길게 늘여놓은 것 같은 제이미의 일생 이야기를 두근거리며 재미있게 읽었다.

스티븐 킹의 필력이 날아다니기 시작하면 평범한 일상도 결과가 어찌될 지 알 수 없는 미스터리로 돌변해버리니... 너무 좋아 정말 좋아 -_-;;;

제이미 인생의 모든 장면마다 미세한 전류가 흐르는 것을 감지한 느낌이랄까. 미세한 전류가 치명적인 것은 아니지만, 다음 페이지를 넘겼을 때 갑자기 전류가 급상승하여 독자의 심장을 순식간에 찍어누를 것만 같은 긴장감과 기대감에 중독이 되어 소설을 읽어나갔다.

이런 긴장감을 부각시켜주는 것은 나름 무난한 인생을 살아가는 제이미 앞에 잊을만하면 나타나는 제이콥스 목사의 힘이 크다.

평생을 비밀스런 전기의 힘을 연구하는 것에 헌신하며 제이미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한테 기적과도 같은 선행(?)을 베풀지만, 어쩐지 뭔가 어설픈 돌팔이 과학자 같은 분위기를 팍팍 풍기는 제이콥스 목사가 등장할 때마다 이야기의 끈이 팽팽하게 당겨졌고, 목숨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전기 연구에 매진하는 그 끈질긴 노익장은 정말이지 대단하다.

제이콥스 목사가 왜 그토록 집요하게 제이미를 찾아댔는지 이유가 밝혀지는 순간에 느껴지던 전율이 너무도 짜릿해서 난 그저 아련한 목소리로 스티븐 킹 짱을 외칠 수 밖에 없었다. 스티븐 킹 아저씨, 아주 그냥 날 가지세요;;;;

제이미와 제이콥스 목사가 이어나가는 길고 긴 기승전을 지나면 짧은 결말이 등장한다. 이 짧은 결말을 위해 길고 긴 기승전이 차곡차곡 적립된 것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티븐 킹은 장편소설 "Revival"의 결말에서 장엄한 공포의 광경을 독자에게 대접한다. 짧은 순간이지만 그 공포의 광경은 웅장하기만 하다.

서양의 고전 공포소설 분위기를 상당히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 결말의 순간에 압도적인 공포감을 느낄 수 있겠지만, 처녀귀신 같은 것에 공포 반응이 오는 일반적인 한국의 독자들한테는 "Revival" 결말의 공포 효과가 감소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도 "Revival" 결말의 그 극적인 광경을 읽는 동안 공포를 "체험"한다기보다는 공포를 "구경"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히려 나한테는 결말의 그 웅장한 광경보다는 그 뒤에 짧게 이어지는 후일담 이야기가 더 흥미로웠다. 소설의 길고 긴 기승전을 통해 이어져온 제이미의 일생을 뒤돌아보게 하면서 현재 세상 곳곳에서 벌어진 무서운 일들을 슥슥 펼쳐놓는 모습이 좋았다.

소설 "Revival"은 스티븐 킹의 초기 공포소설의 분위기를 좋아하는 독자들을 향해 스티븐 킹이 던진 강속구였는데, 그 공을 받은 나의 포수 글러브에 전달된 느낌은 강속구는 아니지만 꽉찬 스트라이크였다고 할 수 있겠다.

자 이제 또 그 다음에 스티븐 킹 아저씨가 던지는 공은 어떤 재미있는 구질일지 다음 소설이 기대된다.

스티븐 킹 아저씨, 2015년에도 건강하게 공 팍팍 던져주세요. 어떤 공이든, 얼마나 많은 공이든 다 받아낼 자신 있다구요~!!

p.s. 이 작품을 2016년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리바이벌"이라는 제목으로 번역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