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뱀파이어 / American Vampire

작품 감상문 2014. 6. 15. 22:49 posted by 조재형

American Vampire

(2010년 만화)


작가 스콧 스나이더는 미국 역사 속에서 암약한 뱀파이어의 이야기를 "American Vampire"라는 만화로 만들어보고자 했고, 만화출판사에서 출판에 긍정적인 답변을 하자 스티븐 킹한테 이메일을 보냈다.

"내가 이러이러한 미국 뱀파이어 만화를 만들려고 하는데 추천사를 부탁드립니다"라는 내용의 이메일이었는데, 스티븐 킹은 스콧 스나이더가 설명한 "American Vampire" 만화의 독특한 비전에 깊은 인상을 받은 나머지 아예 이 만화의 스토리를 일부 집필하게 되었다.

스티븐 킹은 어렸을 때 만화를 많이 접해보았지만 현대 미국만화의 형식에는 익숙하지 않아서 "American Vampire" 각본 집필 당시 주위의 조언을 받아가며 작업했는데, 만화출판사에서 보내준 "Northlanders"와 "Scalped" 만화의 각본도 참고하고 아들인 조 힐이 스토리를 담당한 만화 "Locke & Key"를 전부 읽어보기도 했다.

만화 "American Vampire"는 2010년에 출간이 시작되어 현재까지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는데, 스티븐 킹은 만화 1부에서만 스토리를 담당했다.

나는 스티븐 킹의 이야기가 궁금했으므로 "American Vampire" Vol. 1을 구입했고, 이 책은 만화 1부의 1~5호를 모아놓은 통합본이다.

1부 통합본에 수록된 서문에서 스티븐 킹은 로맨스물에서 사랑 때문에 고민하는 꽃미남으로 묘사되는 등 최근 대중문화 속 뱀파이어의 이미지가 말랑말랑해진 것에 아쉬움을 표현한다.

킹이 생각하는 뱀파이어는 피에 굶주린 살인자, 악당, 사냥꾼이며, 그러한 특징을 미국 역사와 결부지어 시리즈만화로 구상한 스콧 스나이더의 색다른 시도에 감명받아 1부 각본 집필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만화 1부는 스티븐 킹이 각본을 쓴 1880년 서부시대 이야기와 스콧 스나이더가 각본을 쓴 1925년 무성영화 시대의 헐리우드 이야기가 번갈아가며 진행된다.

스티븐 킹이 쓴 이야기는 1880년에 미국 땅에 등장한 최초의 "미국" 뱀파이어 이야기다.

온갖 약탈을 일삼아 악명을 떨치던 무법자 스키너 스윗은 결국 붙잡히게 되는데 탈출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돌발적인 상황으로 인하여 최초의 "미국형" 뱀파이어가 된다.

기존에 미국 땅에서 암약하며 부와 피를 축적하던 "유럽형" 뱀파이어는 햇빛이 약점이었지만, 스키너 스윗은 대낮에도 당당하게 돌아다닐 수 있는 강점을 지녔다.(하지만 이런 특징이 약점으로 작용하는 시기도 존재한다.)

스티븐 킹의 이야기는 미국 뱀파이어의 출현을 경계해서 제거하려는 유럽 뱀파이어들의 위협에도 맞서고, 악연으로 얽힌 서부시대 탐정 제임스 북과의 대결에도 맞서며 미국 뱀파이어의 위력을 유감없이 발산하는 스키너 스윗의 거친 모습을 그려낸다.

만화 1부를 읽다보면 미국 뱀파이어 스키너 스윗이 뱀파이어가 되고 나서 꼼짝달싹 할 수 없는 상태가 꽤 오랜기간 지속되는데도 유럽형 뱀파이어들이 스키너를 직접적으로 확실하게 처단하지 않고 애매한 방법을 구사해서 훗날 분란의 불씨를 남겨두는 상황이라던가, 스키너를 비롯한 뱀파이어들의 치명적 약점이 어디까지일까(목을 자르면 죽나? 불에 타면 죽나?) 등 여러가지 궁금증이 들기는 하지만... 스티븐 킹이 집필한 1부의 이야기는 미국 최초의 뱀파이어가 탄생하고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여러 상황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낸다.

오랜 세월 봉인당했다가 부활한 스키너가 한 마을을 활개치고 다니며 피바다로 만들어버리는 이야기, 스키너가 자신과 악연을 맺은 인간한테 나름대로 우아하게 뱀파이어식 복수를 선사하는 이야기 등이 술술 진행된다.

게다가 스티븐 킹의 1부 스토리 마지막에서는 스키너한테 복수를 당했던 인간측에서 뭔지 알 수는 없지만 어떻게든 반격을 할 것 같은 분위기를 팍팍 풍기며 이야기를 마무리짓기 때문에 다음 2부의 이야기를 무척 궁금하게 만든다.(물론 2부부터는 스티븐 킹이 각본에서 손을 떼지만...)

만화 1부의 절반을 차지하는 스콧 스나이더가 쓴 이야기도 무척 좋았다.

무성영화시대의 헐리우드에서 스타를 꿈꾸며 힘든 엑스트라 생활을 꾸려나가던 아가씨가 유럽 뱀파이어들의 제물로 전락하는 상황에서 스키너 스윗과 인연을 맺고 위험한 현실을 헤쳐나가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리고 만화 1부에서 스티븐 킹과 스콧 스나이더의 각본을 그림으로 그려내는 라파엘 앨부커크의 작화도 무척 뛰어나다.

미국 만화를 읽다 보면 한국 독자들에게는 낯설게 느껴질 것 같은 그림체를 종종 만나게 되는데, 만화 "American Vampire"의 그림체는 내 취향에도 딱 맞아떨어져서 만화를 읽는 내내 눈이 즐거웠다.

스케치 자국이 슥슥 남겨져있는 인물과 배경이 간략한듯 하면서도 세밀하게 그려져있는 모습이 좋았다. 또 뱀파이어들이 재빠르게 날고 뛰어다니며 폭발까지 종종 일어나는 역동적인 여러 장면들을 시원시원하게 화끈하게 풀어나간 그림체가 탁월했고, 그림체에 어울리도록 컬러도 멋지게 입혀졌다.

스티븐 킹까지 참여한 스토리도 좋고 그림도 좋아서 다른 이들 맘에도 쏙 들었는지, 이 만화 "American Vampire"는 2010년 출간된 최고의 신작 만화시리즈로 아이즈너상을 수상했다.

1880년대 이야기에서 시작된 만화 "American Vampire"는 이제는 1960년대까지로 배경이 확장되고, 뱀파이어를 사냥하는 조직까지 출현해서 이야기에 긴장감을 더해가고 있는 것 같아서 기회가 된다면 1부 다음의 이야기도 읽어보고 싶다~!

p.s. 이 만화는 시공사에서 "아메리칸 뱀파이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번역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