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 없는 한밤에 / Full Dark, No Stars

작품 감상문 2013. 7. 26. 00:55 posted by 조재형

 

Full Dark, No Stars

(2010년 중편집)


예전에 나온 이병헌 주연 영화 제목처럼 "누구나 비밀은 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밝힐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을까?

아무리 멀쩡해보이는 사람일지라도 남들 앞에 밝힐 수 없는 개인적인 비밀들이 있을 것이다. 아주 사소한 비밀부터... 아주 심각한 비밀까지 다양한 수준의 비밀들이 존재할 것이다.

스티븐 킹의 2010년 중편집 "Full Dark, No Stars"는 사람의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에 은밀하게 또아리를 틀고 있는, 본인 조차도 외면하고픈 어두운 비밀을 4편의 이야기를 통해서 해부한다.

원제처럼 별빛 하나 없이 완전 시커먼, 인간 마음 속의 블랙홀 속에 짱박혀있는 4가지의 비밀들... 어디 한 번 구경해볼까나?


1. 1922

윌프레드 제임스는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평범한 농부다. 그런데 1922년에 경제적인 문제로 아내와 사이가 벌어지자 평생 해본 적 없는 일에 도전해보기로 결심한다. 그 도전과제는 아내 살인하기다.

스티븐 킹은 윌프레드가 아내를 살인하기로 결심하면서 겪는 시행착오 과정을 실감나게 묘사한다. 예상과 달리 실전에 돌입하자 돌발상황이 벌어져서 당황하면서도 어찌됐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애쓰는 윌프레드의 모습이 세밀하게 그려진다.

마음만은 프로 킬러였지만 막상 살인에 돌입하자 아마추어로서의 허술함이 드러나면서 윌프레드가 처절하게 수습해나가는 장면의 에너지가 강렬해서 책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런데 킹은 살인보다는 살인 이후 윌프레드가 겪는 인생 그 자체에 주력하면서, 중편집 "Full Dark, No Stars"에 수록된 4편의 이야기 중 가장 분량이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전체적으로 보면 소설 "1922"는 느린 속도로 진행되는 막장드라마 같은 느낌이다.

살인 이후 윌프레드한테는 여러 가지 위기의 순간들이 찾아오지만 그럭저럭 어떻게든 위기를 모면해나간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의 인생은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다.

이렇게 미묘하게 변화하는 윌프레드의 인생이 아내의 살인만큼 자극적이지는 않지만, 스티븐 킹은 공을 들여 끈기있게 이야기를 진행시켜나간다. 항상 느끼지만 누군가의 일상에서 느껴지는 무미건조한 분위기에서 불안과 걱정을 쭉쭉 뽑아내는 스티븐 킹의 솜씨는 대단하다.

옛날 미국 농부 아저씨의 인생 이야기가 천천히 꾸역꾸역 흘러나오는 소설이 현재 한국의 독자들에게 큰 흥미를 주기가 힘들수도 있겠지만... 욱하는 마음을 참지 못하고 인생에 크나큰 오점을 남기게 된 사람이 그에 대한 후유증으로 서서히 파멸해나가는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주는 스티븐 킹의 솜씨를 따라가다보면 쓸쓸한 인생이 이런건가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에 걸맞는 쓸쓸한 결말을 목격하게 된다. 나는 이 결말이 주는 여운이 참 맘에 들었다. 역시 스티븐 킹은 가차없지! 느긋하게 전개되던 이야기를 슬쩍 꼬집어주는 스티븐 킹의 배려(?)에 감동했다.

그리고 이 소설을 읽고 나니 "농업보다는 금융업이 짱이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2. Big Driver

미스터리 소설가 테스는 도서관 강연회를 마치고 집으로 간다. 손수 자동차를 운전하며 낯선 길을 가던 그녀는 그만... 최악의 험한 꼴을 당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어쩌다 이런 꼴을 당하게 된 것인지 심각하게 따져보기 시작한다.

"Big Driver"는 테스에게 큰 의문이 주어지고 그 의문을 풀어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마치 테스의 주위뿐만 아니라 그녀의 마음 속에도 카메라를 설치하여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독자한테 생중계하는 느낌이다.

험한 꼴을 당한데 대한 분노, 경악, 슬픔, 두려움, 아무튼 온갖 감정들이 그녀의 생각과 말을 통하여 흘러나온다. 심각한 일을 당했기 때문에 당연히 심각한 감정들이 표출되는데, 난 왠지 테스가 사후세계를 상상하며 본인이 비난받을 걱정을 할 때 그녀가 참 귀엽게 느껴지기도 했다;;;;

테스는 자신이 앞으로 어떠한 선택을 해야할지 많은 고민을 하게 되고 그 결과 그녀는~!

아아~ 장편이 아닌 소설은 스포일러를 피해 감상문을 쓰기가 힘들다;;;;;

테스가 자신의 결정을 행동으로 옮기는 과정이 매끄럽게 묘사된다. 수시로 그녀한테 위험이 닥쳐와서 정신없이 액션장면이 펼쳐지는 전개는 전혀 아니다. 그녀의 생각을 따라, 생각의 "수다"를 따라 그녀의 입장과 감정에 공감하며 이야기를 쫓아가는 즐거움이 있는 소설이었다.

그리고 모르는 길은 혼자 가면 위험하다는 교훈을 주는 소설이기도 하다;;;;;


3. Fair Extension

인생무상의 위기에 처한 데이브는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하다가 어떤 노점상을 만나게 된다.

이 노점상은 무엇이든 연장을 해주는 것이 본인의 전문분야라고 자기소개를 하는데, 데이브는 그만... 노점상의 말을 믿고 거래를 하게 된다.

이상한 장사꾼과 거래를 한다는 점에서 "Fair Extension"은 킹의 장편소설 "캐슬록의 비밀(Needful Things)"을 생각나게 한다. 어쩌면 "Fair Extension"에 나온 장사꾼은 "Needful Things"에 나온 장사꾼과 같은 동네 출신일지도 모르겠다.

소설 "Fair Extension"은 이상한 장사꾼과 거래를 한 후 데이브에게 일어나는 인생의 변화를 보여준다. 과학적으로 설명 불가능한 거래가 실행된 대가로 한 가정이 말 그대로 풍비박산이 나게 되는데, 풍비박산 나는 다양한 장면들을 읽고 있노라면 스티븐 킹이 남의 불행을 다양하게 보여주려고 아이디어를 짜내면서 역설적으로 참 재미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Fair Extension"에서 붕괴되는 가정의 한 구성원이 언젠가부터 불행해진 인생을 한탄하면서 "내가 신의 노여움을 사서 이렇게 되었나보다"고 울분을 토해낼 때는 "신의 노여움을 산게 아니라 당신이 스티븐 킹 소설에 캐스팅되었기 때문에 이 지경이 되었다"라고 알려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이 소설은 기묘한 거래의 혜택을 만끽한 데이브의 소감으로 끝이 나는데, 왠지 그 이후의 이야기가 더 남았을 것 같아서 궁금하다. 기묘한 거래가 종료되었을 때 데이브는 어떻게 되는지, 데이브가 그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하게 될 지 궁금해진다.

스티븐 킹 아저씨, "Fair Extension" 2부 집필해주세요. -_-;;;;


4. A Good Marriage

회계사 남편을 만나 20년 넘게 행복한 결혼생활을 해온 달시는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미처 깨닫지 못했던 남편의 숨겨진 정체를 알게 된다. 남편은 유명한 연쇄살인범이었다. 남편의 정체를 알게 되자 달시는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중편집 "Full Dark, No Stars"에 실린 4가지 이야기 중 "A Good Marriage"를 가장 흥미롭게 읽었다.

비록 내가 남편에 자식까지 있는 중년여성은 전혀 아니지만, "A Good Marriage"를 읽는 내내 내가 만약 달시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생각이 강해질수록 소설 속에서 과연 달시는 어떤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궁금해서 흥미진진하게 소설을 읽어나갔다.

이왕 행복한 결혼생활을 해왔으니 남편의 죄를 그냥 모른 척하고 넘어갈 것인가, 아니면 경찰에 신고할 것인가?

달시는 어쩔 수 없이 본인 나름대로 선택을 하게 되고, 그로 인해 벌어지는 일들을 스티븐 킹은 역시나 강렬하면서도 섬세한 글빨로 거침없이 묘사한다.

그 묘사가, 인물의 심리와 행동에 대한 그 묘사가 무척이나 매력적이어서 말 그대로 도저히 책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고, 이 소설을 읽고 나서는 강한 여운에 사로잡혀 "스티븐 킹 짱~!"을 외칠 수 밖에 없었다.

대단한 반전을 내세우는 소설은 아니지만, 그런 것이 없어도 강력한 핵폭탄을 독자의 마음 속에 투하하는 멋진 소설이었다.

그리고... 셱스에 대한 기대감 앞에서 모든 남자는 이성이 마비된다는 평소 나의 지론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소설이었다;;;


5. Under the Weather

스티븐 킹 중편집 "Full Dark, No Stars"에는 4편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미국에서 2010년 양장본이 출간되었을 때는 그랬는데, 2011년에 문고본이 출간될 때는 "Under the Weather"라는 짧은 단편소설이 추가되었다.

최근 자꾸만 악몽을 꾸는 브래드라는 남자가 어느 날 몸이 아픈 아내를 두고 집을 나선 이후 벌어지는 답답한 상황들을 그려내는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고 나니 "단단한" 상상력이 어떤 것인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_-;;;


이로써 스티븐 킹 중편집 "Full Dark, No Stars"를 다 살펴보았다.

4편의 이야기(그리고 1편의 보너스 이야기) 속에서 다양한 등장인물이 간직한 어둠의 비밀을 엿보는 경험이 흥미로웠다.

인간의 일상에서 불길한 것들을 무궁무진하게 포착해서 매혹적인 소설을 만들어내는 스티븐 킹의 솜씨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멋진 책이었고, 이 책의 후기에 나온 스티븐 킹의 말대로 "Full Dark, No Stars"를 통해 어둠의 세계에 충분히 몸을 담그고 있었으니 이제는 빛의 세계를 접하는 균형감각을 발휘해서 소녀시대 4집 앨범을 들어야겠다.

아이 갓 어 보이 멋진~♪ 아이 갓 어 보이 착한~♬

그러고는 또 다른 스티븐 킹 책을 집어들고 어둠의 세계를 접하고, 그 다음엔 소녀시대 일본 2집 앨범으로 빛의 세계를 접하고, 그 다음엔 또 스티븐 킹 책으로...

이것을 스티븐 킹과 소녀시대의 균형이론이라 정하고 세계평화를 위해 널리 퍼뜨리고 싶다;;;;;

p.s. Full Dark, No Stars는 황금가지출판사에서 "별도 없는 한밤에"라는 제목으로 한국어판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