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ark Tower (다크 타워 7 완결편)

작품 감상문 2007. 5. 12. 23:05 posted by 조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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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ark Tower

다크 타워 완결편 7탄

(2004년 소설)

(※ 아래 첨부한 이미지들 출처는 http://www.cafepress.com/dtcstore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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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다크 타워 시리즈의 완결편 7탄 <The Dark Tower>를 읽게 되었다.

이 시리즈를 대하는 각별한 나의 사랑을 담아, 다크 타워 원서를 주로 문고본으로 구입하던 관례를 깨고 7탄은 특별히 반양장본으로 구입했다(7탄 원서를 구입하려는 분들께는 문고본 대신 이왕이면 양장본 내지는 반양장본을 구입할 것을 추천하고 싶다. 왜냐하면 양장본/반양장본에는 컬러 삽화들이 여러 개 들어있는데, 개인적으로는 7탄의 그림들이 무척 뛰어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1탄의 삽화를 그렸던 사람이 7탄도 맡아서 그렸다고 하는데, 정성 들여 그린 티가 팍팍 나는 감동적인 그림이었다. 적어도 나한테는 말이다.{그에 비해 5탄의 삽화는 대실망이었다.} 우리나라에 다크 타워 번역서가 출간된다면 이 삽화들도 같이 실렸으면 좋겠다는 것이 나의 작은 소망이다).

주문했던 7탄 원서를 서점에서 들고오는 동안, 다크 타워 앞에서 폼잡고 있는 총잡이 롤랜드의 모습이 그려진 책표지를 보며 떨리는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집에 와서 두근거리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며 책장을 넘기자 스티븐 킹의 인사말이 눈에 띄었다.

경청하는 귀가 없이 말하는 사람은 벙어리입니다.

그러므로 열성독자 여러분, 다크 타워 시리즈의 이 마지막 책을 여러분께 바칩니다.

긴 낮들과 유쾌한 밤들 되시길.

그리고 나는 다크 타워의 마지막 책 속으로 길고 긴 여행을 시작했다. 원서로 800페이지가 넘는 정말 두꺼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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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의 소설 <내 영혼의 아틀란티스(Hearts In Atlantis)>와 <불면증(Insomnia)>을 읽었던 독자라면, 7탄 <The Dark Tower>를 읽으며 각별한 재미를 맛볼 것이다. 본문 속에서 그 두 소설을 언급하는 장면이 있기 때문인데, 스포일러가 될 정도로 자세하거나 난해한 내용을 밝히는 것은 아니므로, 그 두 소설을 안 읽은 사람도 7탄을 즐기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그래도 읽어둔 사람이라면 7탄에서 느끼는 기쁨이 더욱 커질 것이다.

7탄이 시리즈의 완결편이기에 책 속에서는 중요한 일들이 정신없이 펼쳐진다. 그런데 이것들 중 몇몇에서는 고개가 갸우뚱해지기도 한다. 그것들은 7탄에서 발생한 장면일 수도 있고, 7탄 이전의 1,2,3,4,5,6탄에서 필연적으로 예고된 장면일 수도 있다. 그 몇몇 장면들이 나오기까지 킹은 때로 수십 페이지를 할애해가며 독자들의 기대감을 한껏 증폭시킨다. 그런데 막상 그 장면이 나오고 그것을 끝맺음하는 방식은 기대했던 것에 비해 단순하고 밋밋하다. 독자들을 크게 흥분시킬 만한 커다란 이벤트였기에 그렇게 허무하게 나타나는 몇몇 장면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든다.

왜 그럴까? 킹은 20세기 말에 죽음의 문턱을 넘을 뻔했던 대형 교통사고를 당한 뒤로, 미루어두기만 했던 다크 타워 시리즈를 완결해야 겠다는 강박감을 느꼈다. 그래서 4탄 이후로 공백기가 상당하던 다크 타워 5, 6, 7탄을 한꺼번에 완성해 버렸다. 7탄에 나오는 중요한 몇몇 장면들이 너무 급박하고 무미건조하게 마무리되는 것은 시리즈를 완성해야 겠다는 강박감 때문에 여유 없이 너무 급하게 집필했던 탓일까? 아니면 킹이 말한 대로 "나는 다크 타워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눈 앞에 떠오르는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적은 것이다"이기 때문일까? 정확한 이유가 뭔지는 나는 잘 모르겠다. 알면 점쟁이지.

내가 7탄 독후감 초반에 이런 단점을 이야기하는 것은 한 가지 이유에서다. 그런 단점을 감안하더라도 나는 이 7탄 <The Dark Tower>가 너무나 맘에 들었기 때문이다.

다크 타워 시리즈를 읽었던 사람이라면, 이 시리즈를 좋아하게 된 사람이라면, 롤랜드를 비롯한 그의 동료들한테 무척이나 애정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 그들이 7탄에서도 대활약을 펼치는데 어찌 좋아하지 않을쏘냐! 그렇다. 7탄에서도 롤랜드 일행들의 총질은 알콩달콩 계속된다. 특히나 다크 타워를 무너뜨리기 위해 힘쓰는 나쁜 녀석들의 근거지를 찾아가 기습을 감행하는 장면이 인상에 남는다. 근거지 주변에서 잠복하고 있다가 확! 덮칠 때의 그 흥분감, 매캐한 화약 연기를 남발하며 사방팔방으로 총알을 난사하는 롤랜드 일행의 멋진 액션, 적들의 시체가 쌓여만가는 그 아수라장을 묘사하는 킹의 글솜씨가 어우러져 독자의 머리 속에 감동의 회오리 바람을 사정 없이 일으킨다. 그 와중에 좌충우돌 질주하는 불 자동차들의 등장은 맛있는 요리에 풍미를 더하는 맛소금과도 같았다.

그런데 킹이 그의 여러 소설들 속에서 인용하곤 하는 격언이 하나 생각난다. "잘못될 가능성이 있는 일은 결국 잘못되게 마련이다." 시리즈가 진행되는 동안 롤랜드의 앞길에 불행이 닥칠 것이라는 것이 수차례 암시되었는데, 킹이 그 암시를 실현시키겠다고 작정한 듯 7탄 <The Dark Tower>에는 불행한 일들이 여러 차례 일어난다. 읽다 보면 "역시 이 책은 완결편이구나"하는 생각이 새삼 들어버릴 정도이다. 8탄을 염두해둘 필요가 없는 마지막 책이다보니 인정사정 없이 줄거리가 진행되는 구나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그리고 그런 불행한 일들 앞에서 나는 슬픔을 느꼈다.

그토록 많은 불행을 겪으며 총잡이 롤랜드는 전진한다. 그 전진의 백미는 7탄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롤랜드의 여행길이다. 누군가는 그 부분이 쓸데없이 길어서 지루했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자신한테 일어난 불행들을 마음 속으로 삭히며, 외부의 척박한 자연환경을 인내하며, 육체와 정신이 한계에 다다를 정도로 자신을 혹사시키며, 황폐한 땅을 한 없이 걸어가는 롤랜드의 모습은 나에게 깊은 연민을 느끼게 했다. 만약 스티븐 킹이 그 장면을 짧게 썼더라면 그것이 오히려 나에게는 안 좋았을 것이다. 나는 그 장면이 길어서 좋았다. 결국 다크 타워 시리즈 전체가 롤랜드의 긴 여행길이었잖은가. 나는 1,2,3,4,5,6탄을 거치며 그 긴 여행을 즐겼잖은가. 7탄에 와서 그 긴 여행이 줄거리의 신속한 진행을 위해 희생되는 것은 싫다. 7탄 후반부의 그 길고 긴 여행 장면을 읽으며 나는 외로운 롤랜드를 바로 옆에서 '아주' 오랫 동안 지켜보는 경험을 만끽했다.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고, 하나도 따분하지 않았다("그건 네가 스티븐 킹 빠돌이기 때문일 뿐이잖아!"라는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것 같지만, 무시하기로 하자).

롤랜드가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운 운명을 감수하며 여행을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 여행은 어떤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인가? 그렇다. 누구나 짐작하는 바대로...

... 롤랜드, 드디어 다크 타워 앞에 서다!

그것은 정말이지 벅찬 감동의 순간이었다. 롤랜드도 그랬지만, 나도 역시 감동했다. 그가 일생을 바친 목표가 실현되는 순간이었으니까. 드디어 다크 타워가 코 앞에 있다니. 롤랜드는 그 순간에 괜히 쿨한 척 한답시고 "안녕, 다크 타워야?"라는 식으로 우물거리지 않았다. 그는 다크 타워를 마주하게 된 자신의 애환을, 슬픔과 기쁨을 마음껏 입 밖으로 외치며 다크 타워를 향해 행진한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행진한다. 그 장면이 전해주는 전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나의 뇌세포들을 짜릿하게 만들었다. 그는 다크 타워에 다가선다... 다가선다...

그 이후에 일어나는 일은 내 입으로 말하지 않겠다. 비록 이 감상문을 쓰는 지금은 우리나라에 다크 타워가 완결출간되지는 않았지만, 언젠가는 우리나라 독자들이 직접 책을 읽고 책의 결말을 확인하게 되리라 믿는다. 롤랜드가 심심하면 하는 말대로, 카(Ka)가 힘을 발휘해 주리라 믿는다. 카의 힘을 받아 반드시 우리나라에 다크 타워 시리즈가 출간되고 완결되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다크 타워 시리즈의 번역자는 번역하는 동안 즐겁기도 하고 고통스럽기도 한 오묘한 기분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 긴 책을 번역하며 일관성을 유지하고 마감의 압박과 씨름하는 것이 정말 큰 일일 테니까. 하지만 결국 번역을 끝내고 나면 무한한 기쁨과 오르가즘에 휩싸여 한 10년은 젊어보이는 동안이 될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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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탄 <The Dark Tower>을 읽고 나니 시리즈 소설의 맨마지막 권이 겪는 운명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사실 시리즈 소설의 마지막 책은 아무리 잘 써봐야 본전이라고 생각한다. 독자들이 그 마지막 책을 읽으며 기대하는 것은, 심지어 그 책을 읽기도 전에 기대하는 것은 그 책의 결말이 얼마나 자신의 예상을 충족시켜주느냐이기 때문에. 상당수의 독자들이 책의 진행 과정을 느긋하게 음미하기 보다는 대부분의 관심을 마지막 결말에 집중시키는 경향이 있다.

시리즈 소설이 처음 나왔을 때는 독자들이 작가에게 끌려다닌다. 작가가 풀어놓은 재미있는 이야기 전개에 흠뻑 빠져들어 즐거워한다. 하지만 시리즈가 계속되어 책이 늘어갈수록 독자는 자기 나름대로의 결말을 예상하게 되고 때로는 그런 자신의 결말을 작가에게 강요하기도 한다. 독자는 더 이상 작가에게 끌려다니기를 거부하고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오히려 작가를 끌고 다니고 싶어한다("미저리"의 애니 윌크스는 작가를 흉기로 위협하기도 하더구만!). 시리즈 마지막 책의 결말이 독자가 상상한 결말대로 흐르면, 또는 상상했던 결말보다 더욱 화려한 (해피 엔딩) 결말로 흐르면, 독자는 환호한다. 반면에 시리즈 마지막 책의 결말이 독자가 상상한 결말과 상반되면, 또는 상상했던 결말보다 더욱 암울한 (나쁜 엔딩) 결말로 흐르면, 독자는 작가에게 아쉬움을 표현하고 때로는 욕을 하기도 한다. 이건 사실 좋다 나쁘다고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길고 긴 시리즈 소설을 읽는 동안 독자는 소설 속 캐릭터들을 친구로 여기게 되고 결말에 가서는 그들이 행복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는 법이니까. 나 역시도 그런 사람이니까.

7탄 <The Dark Tower>의 결말 바로 앞에서, 스티븐 킹은 독자들에게 경고를 한다. 정말로 본문 속에서 경고를 한다. 후회할 지도 모르니 이쯤에서 책을 덮으라고. 하지만 비싼 돈 주고 산 책을 거의 끝에 다 와서 기꺼이 중단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킹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거의 100%에 육박하는 독자들이 책을 끝까지, 마지막 한 글자까지 박박 긁어서 읽었을 게 틀림없다. 그런 다음엔... 킹의 경고에 공감하거나 공감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였겠지.

국내에는 아직 다크 타워 시리즈가 완결출간되지 않아 국내 팬들의 반응은 알 수 없다. 해외의 스티븐 킹 관련사이트에는 역시나 다크 타워 7탄 <The Dark Tower>의 결말에 대해 많은 의견이 나와있다. 좋다는 의견도 있지만, 대실망이었다라든가 돈이 아까웠다는 의견도 있다. 아마도 실망하는 독자들은 7탄의 결말이 롤랜드의 박진감 넘치는 총격전으로 화려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끝맺음하기를 원했을 지도 모르겠다.

7탄의 결말에 대한 나의 느낌은... 난 정말 맘에 들었다! 난 정말 감동했다! 난 정말 대만족이었다!("그건 네가 스티븐 킹 빠돌이기 때문일 뿐이잖아!"라는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것 같지만, 이번에도 역시 무시하기로 하자.)

7탄은 정말 두꺼운 책이었다. 하지만 어느 새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그 책을 거의 다 읽어가고 있었다. 자꾸만 책을 뒤적여 남은 페이지수를 헤아리게 되었다. 남은 페이지가 점점 줄어들어가는 것을 보는 것이 안타까웠다. 재미있게 읽어왔던 다크 타워 시리즈가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나타나는 스티븐 킹의 경고. 그 경고를 뛰어넘어 지켜보는 "진짜" 결말. 그것을 읽고 나서 책을 덮고 바깥으로 나가 바람의 쐬었다. 결말에 흥분하느라 과열되었던 머리를 식혔다. 왜 흥분했냐고? 실망해서였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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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다, 실망이 아니다. 감동적인 결말을 접한 후 머리 속에 벅차오르는 기분 좋은 압력 때문에 흥분했던 것이었다. 나는 스티븐 킹의 책들을 읽고 나면 배부른 포만감을 느끼곤 했는데, 다크 타워 시리즈를 완전히 끝내고 나니 그 포만감이 너무도 거대해서 도저히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그 결말은 해피 엔딩이 아니었지만, 지독하게 나쁜 엔딩도 아니었다. 살짝, 아주 살짝 희망의 씨앗을 심어놓은 깜찍한 결말이었다. 하지만 그와 아울러 막막한 기분과 아련한 슬픔이 감도는 눈물 겨운 결말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내 맘 속에선 감동의 화산 폭발이 일어났다. 결말에 대한 내 느낌을 글로 설명하자니 뭔가 복잡하게 뒤죽박죽된 것 같은 어지러운 분위기가 되는데, 그건 아마도 다크 타워 시리즈와 그 시리즈의 등장인물들한테 보냈던 나의 애정이 각별했기 때문인 것 같다.

시리즈를, 그 시리즈의 등장인물들을 영원히 놓치고 싶지 않았지만, 나는 책을 덮으며 마음 속 가득한 포만감을 느끼며 기꺼이 7탄의 결말에 환호성을 보냈다. 바깥에 머리를 식히러 나와있던 나의 환호성을 세찬 겨울바람이 멀리 실어날랐다. 내 환호성이 롤랜드에게까지 도달해서 그에게 격려가 되었으면 좋겠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다크 타워 시리즈의 세계관이, 다크 타워라는 것 자체가 스티븐 킹이 생각하는 "완벽" 또는 "이상"의 경지를 구체적으로 표현한 형상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킹의 작가 인생이야말로 완벽에 도달하기 위한 도전의 연속이고, 그 수많은 도전의 결과물로 수많은 작품들이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킹은 1974년에 <캐리>로 정식 데뷔한 이래로 한 해도 빠짐없이 작품을 발표했다(유일하게 1976년엔 작품 발표가 없었는데, 그 이듬해에는 공백을 만회하듯 2작품을 발표했다). 한 해 평균 거의 2작품씩 발표한 셈인데, 1987년에는 무려 4작품(다크 타워 2탄 태로우 카드, 미저리, 용의 눈, 토미노커)씩이나 발표하기도 했고, 교통사고를 당해 죽을 뻔한 해에도, 그 사고 후유증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던 그 이듬해에도 여지없이 킹의 책들은 출간되었다. 엄청난 다작 작가다.

불안정한 롤랜드, 불안정한 다크 타워는 주위에서 지켜보기엔 너무나 딱한 모습이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게 불안정하기에 끊임없이 완벽의 길을 추구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롤랜드도, 다크 타워도 "완벽"한 상태였으면 굳이 힘들게 움직일 필요가 없겠지. 그러면 이야기는 만들어지지 않겠지. 불안정하기에 안정을 갈구하고, 안정을 향한 모험을 시도하고, 빡센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그러고도 "완벽"한 "이상"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계속 굶주려하고, 계속 발버둥치며 낙원을 향한 발걸음을 거두지 못하는 것이다. 열심히 사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에 일정한 결과물들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것이 "완벽"한 결과물은 아닐 지라도 열심히 "이상"을 추구한 결과물이며, 앞으로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품은 소중한 결과물인 것이다.

물론 그런 끝없는 시행착오에 환멸을 느낄 때도 있겠지. 다 때려치우고 엎어버리자는 "새빨간" 광기가 꿈틀댈 때도 있겠지. 하지만 "이상"을 바라보는 (굶주렸지만) 낙천적인 눈길은 "새하얀" 열정으로 몹쓸 놈의 광기를 넘어서고야 마는 것이다.

"완벽"을 지향하는 굶주린 스티븐 킹. 불안정한 스티븐 킹. 그러기에 작품을 쏟아내는 스티븐 킹. 나는 그런 스티븐 킹이 좋다. 나는 개인적으로 다작이야말로 작가의 진정한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명작을 집필했다한들 게으른 작가보다는 성실한 작가가 좋다. 그래서 나는 다작을 하는 킹이 좋고, 다작의 결과로 (적어도 나한테는) 재미있는 작품들을 무궁무진하게 쏟아내는 킹이 좋다. 나는 스티븐 킹이 "다크 타워"라는 "이상"을 꿈꾸는 소년이라 생각하고, 그가 그런 꿈을 꿀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다크 타워 시리즈가 나온 것이, 그 시리즈가 오랜 세월 동안 쓰여졌다는 것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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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렇게 개인적인 감상을 지독하리만치 길게 주절주절 늘어놓았는데, 이제 와서 못할 말이 뭐가 있겠나. 숭고한 문학적 가치니, 정치적 공정성이니, 사회를 향한 프로파간다니 하는 것들은 나한텐 다 소용없다. 나는 솔직히 말해서, "정말" 솔직히 말해서, 이 세상에서 스티븐 킹이 가장 위대한 작가라고 생각한다구!(응? 내가 그런 놈이라는 건 이미 다들 안다구?) 오즈의 위대한 마법사?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마법사는 스티븐 킹이라구!

아, 속이 후련하다. 팬심으로 대동단결하세~!

다크 타워 시리즈라는 길고 긴 작품을 완성한 킹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이 작품을 완성하는 오랜 세월 동안, 때로는 타자기, 때로는 워드프로세서, 때로는 노트북 컴퓨터 앞에 앉아 한 번에 한 단어씩 쳐서 그 두꺼운 작품을 만들어낸 작업이 실로 엄청난 대공사였을 것이다. 아아, 나도 이처럼 엄청나게 길고 멋진 시리즈 소설을 쓰고 싶어진다. 아, 바로 지금 제목도 떠오른다. <조재형과 3,000 궁녀>. 아, 그건 평생 걸려도 완성하지 못할 벅찬 작품일까? 그럼 이건 어떨까? <조재형과 40인의 도둑>. 이 정도면 집필할만 하지 않을까?

재형이가 마법의 주문을 외쳤다. "열려라 참깨!"

그러자 전원이 "섹시 글래머 미녀"로 구성된 도둑 40명이 그 누구한테도 공개한 적 없는 마음의 문을 활짝 열었고, 기꺼이 훌러덩 훌러덩-

음... 역시 나는 소설을 쓰면 안되겠다. -_-;;

다크 타워 시리즈를 읽는데 도움이 될만한 참고서적 두 권을 소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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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브 빈센트가 쓴 <The Road to the Dark Tower>.

해외 스티븐 킹 팬들한테는 스티븐 킹 관련서적을 집필하지 않은 유일한 스티븐 킹 전문가로서 알려져 있던 베브 빈센트가 처음으로 쓴 관련서적이 바로 <The Road to the Dark Tower>다. 다크 타워 5,6,7탄이 출간되기 전에 킹의 양해를 얻어 원고를 미리 읽은 후 쓴 책이다. 다크 타워 시리즈가 세상에 나오게 된 비하인드 스토리, 시리즈 각 편에 대한 비평, 다크 타워 시리즈와 관련 있는 킹의 다른 소설들에 대한 설명 등이 나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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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 퍼스가 쓴 <Stephen King's The Dark Tower: A Concordance>.

킹은 다크 타워 4탄 발표 이래로 공백기간을 거친 후 5,6,7탄을 한꺼번에 집필하기에 앞서, 그 동안 집필한 다크 타워 책들 속의 여러 요소들을 색인으로 정리해서 집필에 참고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자료정리원으로 고용한 사람이 로빈 퍼스다. 로빈 퍼스는 놀라울만큼 꼼꼼한 자세로 시리즈 속의 복잡한 요소들을 깔끔하게 정리해냈고, 이에 감탄한 킹은 로빈이 정리한 자료들을 책으로 출간해도 좋다고 승락했다. 그래서 나온 책이 바로 <Stephen King's The Dark Tower: A Concordance>다. 처음에는 1,2,3,4탄을 정리한 1권과 5,6,7탄을 정리한 2권으로 나왔는데, 나중에 통합본이 출간되었다. 이 책에는 다크 타워 시리즈 속에 나타난 지명, 언어, 캐릭터들에 대한 해설과 지도가 실려있다. 언젠가는 우리나라에서 다크 타워 시리즈를 맡게 될 번역자가 이 책을 참고하면 복잡한 용어들을 번역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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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으로 다크 타워 책을 접한 것은 대학 다닐 때였다. 학교 가는 도중에 용산 미군 기지 옆에 있는 외국서적 헌책방이 보였다. 스티븐 킹의 팬이 된 지 얼마 안됐던 그 당시의 나는 해외 중고서적을 싼 값에 구입할 수 있었기에 그 책방을 애용하곤 했다(사실 그 책방의 주력 품목은 누런 서류봉투에 담아서 팔던 "빨간" 잡지였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그 책방 아저씨는 스티븐 킹 책이 인기 상품이라는 이유로 다른 단행본들에 비해 1,000원이나 비싸게 팔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바가지 쓴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해서 처음 입수한 다크 타워 책이 3탄 <황무지>였다. 그게 시리즈 소설인 지도 모르고 구입했는데, 다 읽고 나서는 홀라당 반해 버려 1탄부터 (새책으로! 구해) 차근차근 읽어나갔던 것이다.

다크 타워 시리즈를 처음 집필한 1970년에는 대학 졸업반이었던 스티븐 킹이 7탄 <The Dark Tower>를 완성한 2004년에는 손주를 둔 할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다크 타워 책을 처음 접했던 당시에는 동시상영 극장에서 에로영화 보는 것이 취미인 대학생이었던 내가 다크 타워 완결편을 다 읽고 난 지금은 정력 감퇴 때문에 비아그라를 먹을까 시알리스를 먹을까 고뇌하는 중년 아저씨가 되어 버렸다.

다크 타워와 함께 하는 시간이 스티븐 킹한테도, 나한테도 길고 긴 시간이었다.

하지만 한 점 후회 없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나는 감사한다. 총잡이 롤랜드와 글잡이 스티븐 킹한테. 당신들 덕분에 나에게는 긴 낮들과 유쾌한 밤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정말 행복했습니다.

다크 타워 시리즈를 다 읽고 나니, 나한테 한 시대가 가고 새로운 시대가 도래한 듯한 터무니 없이 무지 거창한 기분까지 든다. 다크 타워 시리즈를 지났어도 나에게는 앞으로 더 읽어야 할, 기꺼이 행복하게 읽을 스티븐 킹 책들이 쌓여있다. 나는 스티븐 킹의 전작품 읽기라는 "이상"을 향해 또 다시 전진할 것이다.

신나는 모험에는 결코 끝이 없다. 영원히, 언제까지나 현재 진행형이다. 우히히~ 신난다 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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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2월 16일 작성.

p.s. 다크 타워 시리즈를 7탄으로 완결지은 스티븐 킹은 그 후 2012년 다크 타워 8탄 "The Wind Through the Keyhole"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