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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lves of the Calla

The Dark Tower 5

(2003년 소설)

다크 타워 3탄 <The Waste Lands>가 나온 이래로 오랫동안 후속편이 안 나와서 팬들의 마음을 졸이게 했던 스티븐 킹은 4탄 <Wizard and Glass>를 한참 뒤에 발표하지만, 4탄이 나온 후 또 다시 5탄의 출간 소식은 기약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러던 와중에 킹은 산책을 나갔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죽음의 문턱을 경험하게 된다. 너무나 심각한 부상을 입었기에 각종 언론매체는 킹의 사고 소식을 알렸다(심지어 우리나라 신문에도 킹의 사고 소식이 실렸다!). 그러자 다크 타워 시리즈의 팬들은 킹이 위독한 상태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면서도 행여나 킹이 죽게 되면 다크 타워 시리즈가 영원히 미완성인 상태로 종말을 맞이할까봐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사람의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판국에 팬이란 사람들이 소설이나 걱정하고 있다니! 하지만 다크 타워의 완결을 누구보다도 더 바란 사람이 있었다. 바로 스티븐 킹이다.

가까스로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돌아온 스티븐 킹은 다크 타워 시리즈가 그 동안 얼마나 위태로운 상태에 있었는지 절절히 실감하게 된다. 사람의 목숨이란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법. 오늘 멀쩡하다가도 내일 꼴까닥할 수 있는 것이다. 한가롭게 산책 나갔다 죽을 뻔한 킹 본인이 그 사실을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잖은가. 스티븐 킹은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집필을 시작한 다크 타워 시리즈의 완결을 더 이상 미루다간 뜻밖의 사고로 완결을 짓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게다가 그는 일생을 바쳐 집필해온 다크 타워 시리즈가 그가 집필한 다른 단행본 소설보다 판매량이 떨어진다는 사실이 아쉬운 참이었다. 독자들은 완결되지도 않은 시리즈 소설을 선뜻 읽기가 불편한 것이리라 킹은 짐작한다. 그래서 그는 결심한다.

다크 타워 시리즈 집필에 열심히 매달려서 이번에는 시리즈를 꼭 완결시키자!

킹은 다크 타워 시리즈를 7탄으로 완결짓기로 하고, 5, 6, 7탄을 한꺼번에 집필해냈다. 그리하여 5탄은 2003년, 6, 7탄은 2004년에 미국에서 출간되었다.

다크 타워 5탄: 전원일기 버전


 배추 수확을 앞둔 양촌리 마을에 우체부 아저씨가 찾아온다.

그는 자그마한 배추밭에 서서 설악산 흔들바위 만큼 알차게 자란 배추들을 바라보고 있는 응삼이한테로 간다. 그는 응삼이한테 전기요금 고지서, 수도요금 고지서, 전화요금 고지서, 국민연금 고지서, 의료보험 고지서, 기타 등등 별의별 고지서들을 한아름 안겨준다. 방금 전까지 흐뭇해하던 응삼이의 얼굴에 잠시 짙은 그늘이 진다. 그러나 응삼이는 다시 배추밭을 바라보고는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그런데 우체부 아저씨가 아직도 그의 곁에 붙어있다.

"아니, 아저씨, 왜 아직도 우두커니 서계세요? 혹시 무슨 하실 말씀 있으신 거에요?"

"자네 말이 맞네." 우체부가 씁쓸한 웃음을 터뜨린다. 슬그머니 배추밭을 훑어본다.

"배추밭, 그렇다면 하실 말씀이란 게 혹시..."

"맞아. 늑대파."

"늑대파!"

"그들이 양촌리로 오고 있어. 내가 읍내에서 그들이 조직원들한테 연락하고 있는 것을 봤지."

응삼이는 입술을 꽉 다문 채 발 아래만 내려다보고 있다. 이윽고 그가 간신히 입을 연다. "얼마나 걸릴 까요?"

"한 달."

"한 달이면 우리 양촌리 마을에 도착한다..."

"부디 양촌리에 큰 탈 없기만을 바라겠네. 그럼 나는 바빠서 이만."

나쁜 소식을 전하느라 식은 땀을 흘리던 우체부는 황급히 길을 떠나고, 응삼이는 마을 회의를 소집한다.

약 3시간 뒤, 양촌리의 거의 모든 남자들이 마을 회관에 모인다. 회의를 소집한 응삼이가 앞에 나가 마이크를 잡는다.

"양촌리 주민 여러분, 긴급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이렇게 마을 회의를 소집했습니다."

"혹시 응삼이 자네 장가간다는 얘기 아녀? 혹시 쌍봉댁하고 정분 난겨?" 회관 안에 폭소와 환호성이 넘쳐난다. 그러나 굳은 표정의 응삼이를 보고는 서서히 침묵 속에 빠져든다.

응삼이가 목에 힘을 주어 말한다. "늑대파가 양촌리로 오고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겁에 질려 수군거린다.

"우체부 박씨 아저씨가 전해준 확실한 소식입니다. 한 달 뒤 여기에 도착할 거라고 합니다." 응삼이가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뜬다. "여러분 모두 늑대파를 잘 아실 겁니다. 양촌리 주민이라면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죠. 늑대파는 깡패들입니다. 도시에 나가 깡패짓을 하다가 심심해지면 몇 년에 한 번씩 양촌리 마을에 쳐들어옵니다. 우리 양촌리 배추를 약탈하러 오는 거죠! 우리의 배추를 뺏어다가 장난치려고!"

응삼이가 주먹을 불끈 쥐며 열변을 토한다. "우리가 남의 도움을 바랄 수는 없습니다. 경찰이 인력 구조조정한답시고 양촌리에 남아있던 작은 파출소 마저 없애버린 지가 20년입니다. 경찰은 우리의 불행을 수수방관하기만 합니다. 고작 하는 일이라곤 늑대파가 우리 배추밭을 약탈한 뒤에 느긋하게 경찰차 타고 나타나 피해 상황를 수첩에 적어가는 일이 전부입니다. 그들이 다시 찾아오는 때는 또 다시 늑대파가 휩쓸고 간 뒤에 피해 상황이나 적어가려고 오는 때일 뿐이죠. 저는 농협에 빚이 7천만원 있습니다. 또 저는 매달 내야하는 세금 고지서들이 있습니다." 응삼이가 우체부 아저씨한테 받았던 고지서들을 앞에 집어던진다. "고지서가 10개도 넘습니다! 올해는 가뭄이 들어 고추, 깻잎이 말라죽어 3백만원 손해 봤습니다. 농사 밖에 모르는 저는 빚더미에 올라앉았습니다. 그런데 테레비를 보십시오! 좋은 나라 운동본부에 보니까 수십억 세금을 체납한 개자식은 집으로 찾아온 세무서 직원들 앞에서 거드름 피우며 온갖 땡깡을 피우더라구요. 세무서 놈들은 그 놈들 앞에서 굽신거리기나 하고!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같은 농사꾼들이 어디 세무서 직원 앞에서 큰소리 한 번 낼 수 있습니까? 어떤 놈들은 별별 나쁜 짓을 다해도 떵떵거리고 사는데, 우리는 그저 남들 앞에서 찌그러져 살아갈 뿐입니다.

그런데 이제 늑대파 놈들이 또 양촌리로 쳐들어 온다고 합니다. 우리의 피 같은 배추를 약탈하러요. 양촌리 배추가 어떤 배춥니까. 삼성 그룹 구내식당에서도 웃돈 얹어주며 사가는 고품격 배추의 선두주자 아닙니까! 배추는 양촌리의 희망이고 양촌리의 영혼입니다. 그런 귀중한 배추를 늑대파에게 고스란히 내줄 수는 없습니다. 더 이상 그럴 수는 없습니다. 저는 그 놈들과 맞서 싸우겠습니다. 양촌리의 희망과 영혼을 지키기 위해서! 여러분도 동참해 주십시오."

그러자 양촌리 마을의 유지인 김회장(최불암)이 자리에서 일어나 한 마디 한다.

"응삼이 자네 뜻은 잘 알겠네. 하지만 늑대파 놈들이 잔인하기로 유명하다는 건 자네도 잘 알잖나. 그 동안 놈들은 배추에만 손댔지 마을 주민들한테는 손대지 않았잖아. 섣불리 나섰다가는 배추는 물론 마을 주민의 목숨도 위태로워질 걸세."

마이크를 쥔 응삼이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그의 눈에 분노의 핏발이 선다. "그럼 김회장님은 이번에도 순순히 배추를 늑대파한테 내주자는 말씀이십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하네. 게다가 특이하게도 그 놈들은 배추를 다 가져가는 것도 아니잖아. 어떤 변태적인 이유가 있는 지는 몰라도 배추 두 개당 하나씩만 빼앗아가잖나."

"아니, 반만 빼앗기니까 우린 반만 먹고 떨어지자 이겁니까? 배추는 우리의 자존심입니다. 그런 식으로 계산기 두드릴 일이 아니라구요."

"하지만 빼앗아간 배추 마저도 늑대파는 나중에 우리한테 돌려주잖나. 결국 우리는 배추를 다 갖게 되는 거야. 그저 배추의 반을 잠시 동안 놈들한테 맡겨둔다고 생각하면 맘이 편할 걸세."

"그것은 비겁한 변명입니다. 늑대파는 배추를 빼앗아서 나중에 시들어빠진 우거지로 만들어 갖다주잖아요. 김회장님은 그게 좋으세요? 한창 김장철에 높은 값에 팔 수 있었던 배추를 김장철이 훨씬 지난 다음에 썩어빠진 우거지로 받아서, 어디다 팔 수도 없어서 그냥 개밥으로나 주는 게 좋으시단 말씀이신가요? 그건 변명입니다. 폭력에 시달리다 시달리다 폭력을 합리화하기 위해 약자가 만들어내는 환상일 뿐이라구요!"

이 때 일용이가 조용히 일어선다. 그도 응삼이와 마찬가지로 늑대들이 양촌리 배추를 희롱하는 것에 대항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항상 일용 엄니(김수미)를 잘 돌봐주는 최불암 가족이 고마운 나머지 최불암 편을 들고야 만다. "이봐, 응삼이. 진정해. 나도 늑대파가 맘에 들지는 않아. 하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는 게 필요해. 우리는 농사꾼이야. 늑대파는 깡패라고. 어떻게 우리 같은 농사꾼들이 전문 파이터들과 맞서 싸울 수 있겠어? 그건 우리의 희생만 불러일으킬 뿐이야. 우리는 마을을 꾸려나가야 해. 우리가 없어지면 양촌리는 누가 지키지? 여자들과 아이들만 남은 마을을 원하는 거야? 우리가 마을을 꾸려나가는 것이 중요해. 배추는 어쩔 수 없는 희생양일 뿐이야. 배추에 마을의 목숨을 걸 수는 없는 거야. 자네는 테레비에서 이종격투기 경기를 너무 많이 봐서 현실 판단을 그르치고 있는 거라고. 응삼이 자네는 크로캅이 아니야, 나도 최홍만은 아니고."

응삼이는 너무 분해서 눈물이 날 것만 같다. 뭐라고 대꾸를 해야 할텐데, 확실한 대답이 생각나지 않는다. 일용이 말대로 그들은 결국 힘 없는 농사꾼인 것이다.

그 때 마을 회관 문이 활짝 열리고, 마을 입구에서 구멍가게를 꾸려나가는 쌍봉댁이 뛰쳐 들어온다.

"여러분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제 말 좀 들어보시랑께요."

"어허, 남자들이 중요한 회의하는 데 어디서 아녀자가 끼어드는겨!" 완고하기로 유명한 양촌리 할아버지 삼인방이 노발대달한다.

쌍봉댁은 그들을 달래기 위해 구멍가게에서 가져온 '사랑과 우정의 상징' 양파링을 한 봉지씩 건넨다. 겨우겨우 할아버지들이 화를 누그러뜨린다. 첫 번째 할아버지는 쌍봉댁이 건넨 양파링을 우정으로 받아들이고, 두 번째 할아버지는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세 번째 할아버지는 사랑 45%, 우정 55%로 받아들인다.

쌍봉댁이 그윽한 눈길로 응삼이를 바라본다. 용감한 응삼씨, 제가 뒤에서 항상 지켜보고 있어요, 화이팅이에요! 그러고는 마을 회관에 모인 남자들을 향해 말한다.

"여러분! 늑대파를 물리칠 방법이 있습니다. 지금 양촌리 마을 5.5킬로미터 밖에 방위들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방위들한테 늑대파를 물리쳐달라고 부탁하면 되요."

그러자 최불암의 막내 아들이자 양촌리 청년회장인 유인촌이 일어나 점잖게 타이른다. "쌍봉댁 아주머니, 아주머니께서 응삼이한테 마음이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응삼이 편을 들고 싶으신 거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야부리를 치시면 안되죠. 방위는 수십년 전에 없어졌습니다. 병무청에 전화 한 번만 때려보면 다 알 수 있는 현대인의 상식이란 말입니다. 방위가 지금 있을리가 없지요. 혹시 공익이랑 헷갈리신 것 아닙니까?"

"아니, 내가 무식하기로서니 그런 것도 모를까봐서 그래? 우리 마을 옆을 지나가고 있는 사람들은 방위 맞어. 내가 확실히 물어봤다니까. 게다가 그냥 방윈 줄 알아? '전투'방위란 말야! 특공무술로 단단히 무장하고 칼퇴근의 자존심으로 약자를 위해 싸우는 전설의 전투방위란 말야!"

전투방위! 양촌리 사람들은 오래 전에 멸종된 줄로만 알았던 전투방위가 실존한다는 소리에 동요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자 그 여세를 몰아 쌍봉댁이 열변을 토한다. "늑대들한테 당하고 살지 맙시다. 전투방위들의 도움을 받아 녀석들을 물리칩시다. 전투방위들한테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하자구요. 이번이 절호의 기회입니다. 고추 달고 세상에 태어났으면 다들 고추 값을 해야할 거 아냐. 맨날 고추 자랑만 하지 말고 진짜로 고추 힘 좀 내보라구요, 다들!"

쌍봉댁의 파워풀한 연설에 감동 받은 사람들이 39초간 침묵에 휩싸인다. 그러자 노마 아빠(이계인)가 일어나 쌍봉댁의 말에 지지를 표한다. "쌍봉댁 말이 맞수다! 옛말에 이르기를 고추가 서 말이래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잖수!"

그러자 7초간 침묵이 흐른 후 누군가 소리친다. "노마 아빠 고추부터 꿰어보지 그래?!" 마을 회관 안이 폭소의 도가니로 변한다. 쌍봉댁은 얼굴을 붉히며 손으로 살며시 미소 짓는 입술을 가린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며 응삼이는 희망을 느낀다. 이번에야 말로 늑대파들을 물리칠 운명의 기회라는 것을 깨닫는다. 양촌리는 늑대파를 이겨낼 것이다. 그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이번에는 꼭 이겨낼 것이다.

다크 타워 5탄 <Wolves of the Calla>는 존 스터지스 감독의 영화 "황야의 7인"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황야의 7인"은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7인의 사무라이"를 리메이크한 것이다). 그래서 5탄의 무대가 되는 칼라 브린 스터지스 마을의 이름은 존 스터지스 감독의 이름에서 따왔다.

평범한 농촌 마을 칼라에 자꾸만 늑대들이 처들어와 약탈을 하자 농부들은 더 이상 당하고만 살 수 없다는 절박한 위기감을 느끼고 때마침 다크 타워를 향해 마을 주변을 지나고 있던 최후의 총잡이 롤랜드 일행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이에 요청을 수락한 롤랜드 일행이 마을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늑대들과 대결을 펼치는 것이 다크 타워 5탄의 주된 줄거리다.

소설 속에서도 언급되지만, 롤랜드 일행이 칼라 마을에서 겪는 일들은 다크 타워 4탄 <Wizard and Glass>에서 젊은 시절의 롤랜드 일행이 겪었던 모험을 연상시킨다. 마을로 들어가 이곳 저곳을 둘러보며 마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여유로운 행동을 통해 여러가지 정보를 얻고 마지막에는 나쁜 세력과 한바탕 굵고 짧은 액션 대결을 펼치는 것이다.

<Wolves of the Calla>에서 롤랜드 일행이 보고 듣는 칼라 마을의 이색적인 여러 광경들이 독자의 호기심을 잔뜩 북돋아준다. 마법과 과학이 제멋대로 널부러진 듯한 마을의 환경 속에서 도를 깨우치기라도 한 듯 알듯 모를듯한 미소를 짓는 롤랜드의 색다른 모습이 인상적이다. 마을 속에서 롤랜드 일행이 수집한 정보들을 짜맞추고 늑대들과의 대결 계획을 차근차근 진행시키는 믿음직한 롤랜드의 모습. 정보를 통제하고 때로는 정보를 누설하고 때로는 정보를 위조해내는 그의 첩보활동이 느릿느릿 여유롭게 진행되는 스토리 전개에 맛깔스런 조미료 역할을 한다.

그러고는 마침내 롤랜드 일행이 칼라 마을 주민들과 힘을 합쳐 수십 마리의 늑대들과 맞서싸우는 대결의 순간! 오옷, 너무 짜릿했다. 권총에서 나오는 매캐한 화약 연기 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 자극적인 싸움의 현장을 묘사하는 강렬한 묘사가 내 맘을 설레게 했다. 나는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쉬지 않고 그 장면을 거침없이 읽어나갈 수 밖에 없었다. 멋져! 멋져! 멋져!

그 대결의 현장에서 마을 여자들이 사용하는 무기가 또 인상적이다. 행주대첩에서 아녀자들이 사용했다는 행주치마 이래로 칼라 마을의 여자들이 늑대들한테 사용하는 무기가 나를 흥분시켰다. 아, 누나들 너무 멋지셔요.

<Wolves of the Calla>는 대부분의 분량을 롤랜드 일행이 칼라 마을에서 펼치는 첩보전에 할애하고 맨마지막에 늑대들과의 대결을 보여주는 구조로 되어있는데, 그런 틈틈이 또 다른 모험을 배치하고 있다. 롤랜드 일행은 다크 타워의 존재를 연상시키는 장미를 구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 장미는 이제 불가사의한 위험에 처해있는데, 롤랜드 일행이 힘을 쓰지 않으면 장미는 죽고 말 것이다. 그래서 롤랜드 일행은 칼라 마을을 구하랴, 장미를 구하랴, 시간은 촉박하기만 한데 골치 아프게 머리를 짜내야 하는 어수선한 상황에 처한다. 캬캬캬, 주인공들의 고생은 독자들의 행복이다.

이 장미를 구하려 애쓰는 과정에서 선보이는 여러 장면들이 스티븐 킹 팬들에게는 너무나도 짜릿한 쾌감을 전해줄 것이다. 시간과 공간을 거침없이 휘저어 다니는 와중에 엿보이는 여러가지 설정들과 등장인물들과 사건들의 연속이 앞선 다크 타워 시리즈 전반을 뒤돌아보게 만듬과 동시에 그런 요소들을 가지고 앞으로 다크 타워 6탄에서 펼쳐내 보일 킹의 이야기를 너무나도 궁금하게 만든다.

다크 타워 5탄에서는 롤랜드 일행이 자꾸만 강박증에 시달린다.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말을 하는 와중에도 그들의 강박증은 없어질 줄을 모른다. 불쑥 이상한 말을 내뱉고 그러고는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잘 몰라서 불안해하고 때로는 짐짓 무시해버리는 척하는가 하면, 위험이 닥쳤을 때마다 그런 이유 없는 강박적인 말이 불쑥 튀어나와서 위험을 벗어나게 되는 상당히 안이해보이는 스토리 전개를 보여준다. 롤랜드 일행이 그런 강박증 때문에 답답해하기도 했지만, 책을 읽고 있는 나도 답답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그러나 스티븐 킹은 답을 주지 않는다. 답은 다음 번 다크 타워 책들 속에 나오게 되겠지. 아아, 호기심에 불타는 나 같은 독자는 속만 태울 뿐이다. 어흑.

게다가 <Wolves of the Calla>에서는 롤랜드 일행한테 균열이 생기기까지 한다. 외부의 요소로 인한 균열이 아니라 내부의 요소로 인한 균열인 것이다. 착한 마음, 굳센 체력을 유지해도 다크 타워에 갈까말까한 판국에 동료들 사이에 균열까지 생기다니! 과묵하지만 항상 능력있는 롤랜드 마저도 그 균열 앞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내비치다니 이거 참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과연 롤랜드 일행이 계속 뜨거운 동료애를 유지할 수 있을 런지 귀추가 주목된다.

아, 그리고 다크 타워 5탄을 읽기 전에 킹의 또 다른 소설 <살렘스 롯>을 읽어두는 게 좋다. <Wolves of the Calla>에서는 여러 페이지에 걸쳐 <살렘스 롯>의 내용을 자세하게 까발리고 있으니까. 스포일러 있어도 상관없는 분들한테는 아무렇지도 않겠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은 반드시 미리 <살렘스 롯>을 읽어두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을 것이다.

스티븐 킹은 다크 타워 3탄 <황무지(The Waste Lands)>를 통해 이야기의 최고 절정에서 갑자기 책을 끝내버림으로써 독자들을 미치고 환장하게 만든바 있는데, 이번 다크 타워 5탄도 그에 못지 않은 카리스마를 뽐낸다. 늑대들과의 대결이 끝나고 이제 이야기를 차분하게 마무리지을 분위기겠거니 하는 마음이 들 때면 갑자기 이야기가 급반전되어 위기가 형성되고... 엄청난 비밀이 폭로되더니... 거기서 책은 끝난다. 그러고는 스티븐 킹이 말한다. "독자 여러분, 다크 타워 6탄을 기대하셔용~♥♥" 아아, 미치겠어. 궁금해. 궁금해. 도대체 다음 이야기는 어떻게 되는 거야?

다크 타워 5탄 <Wolves of the Calla>는 그 전의 1, 2, 3, 4탄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전개를 위한 복선들을 깔아놓는 관문이다. 과거의 설정들 위에 새롭게 깔리는 여러 가지 기묘한 설정들. 다크 타워 팬이 어찌 이런 멋진 모습을 외면할 수 있으랴. 예전에는 다크 타워 시리즈를 순서에 상관없이 아무 책이나 먼저 읽어도 된다고 생각했었는데, 5탄을 읽고 나니 시리즈는 역시 순서대로 읽어야만 한다는 것을 실감했다. 순서대로 읽지 않는다면 5탄이 선보이는 여러가지 설정들에서 짜릿한 쾌감을 얻는 기회를 놓치게 될 것이다(예를 들어 5탄을 먼저 읽고 나중에 3탄을 읽으면 슬픈 독서가 된다).

다크 타워 5탄을 읽고 나니 롤랜드 일행이 다크 타워로 가는 여정을 어떻게 진행시켜 나갈지 너무나 설레였다. 호기심으로 충만했고 너무도 궁금했다. 그래서 서점으로 달려가 다크 타워 6탄을 구입하고 말았다.

아아, 6탄도 읽어야지. 안 읽으면 미칠 것 같다. 나는 다크 타워에 얽매인 노예가 된 것 같다. 롤랜드, 나 좀 도와줘! 스티븐 킹 아저씨가 나를 중독자로 만들어 버렸어! 나 좀 도와줘! 다크 타워 시리즈 읽느라 연애할 시간도 없어!(아, 이건 비겁한 변명인가... -_-;;)

2006년 9월 24일 작성.

p.s. 2017년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이 소설을 "칼라의 늑대들"이라는 제목으로 번역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