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저문 이후 / Just After Sunset

작품 감상문 2012. 3. 8. 01:24 posted by 조재형

 

Just After Sunset

(2008년 단편집)


스티븐 킹 단편집 "Just After Sunset"의 서문에서 킹은 단편소설을 쓰는 능력이 얼마나 잃어버리기 쉬운 것인지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한때는 단편소설 집필에 발군의 능력을 보였던 작가라도 자칫하면 그 능력을 잃고 단편소설계에서 멀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킹은 자신이 바로 단편소설 집필능력을 잃어버렸던 당사자라고 고백하며, 잃어버렸던 그 능력을 다시 되찾기까지의 사연을 자세히 소개한다.

그러고서 킹은 독자를 향해 넌지지 묻는다.

"단편소설 집필능력을 되찾고나서 쓴 단편소설들이 바로 이 단편집 'Just After Sunset'에 모여있습니다. 읽어보니 어때요? 독자님 맘에 드세요? 제가 단편소설을 제대로 쓴 것 같으신가요?"

그래서 나는 "Just After Sunset" 단편집에 수록된 단편 13편을 차근차근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이 단편집 좋을까 나쁠까?

뭐 사실 서문을 읽는 순간부터 이 단편집이 어떨지 짐작이 가긴 했지만... 내가 스티븐 킹 소설 한두 번 읽나... 스티븐 킹 아저씨 괜히 엄살 부리지 마셈~ ㅋㅋㅋ

자 아무튼 첫 번째 단편부터 살펴보자~!


1. Willa

열차가 탈선하는 바람에 어느 한적한 시골 기차역에 내려 다른 열차가 데리러오기를 기다리는 승객들이 있다. 이들 중 한 명인 데이빗은 약혼녀 윌라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된다. 그는 승객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약혼녀를 찾으러 야밤의 시골길을 홀로 걷게 되는데 과연 윌라를 찾을 수 있을까?

약혼녀를 찾기 위해 낯선 시골동네를 한밤중에 헤매다니는 남자의 불안감을 차분하게 묘사하는 소설이다.

자극적인 사건이 빵빵 터지는 내용이 아니고, 주인공이 시시각각으로 만나게 되는 일상적인(?) 상황과 그에 대한 주인공의 반응이 부드럽게 진행된다.

여러 소설과 영화에서 많이 다루어진 소재이기는 하지만, 이 단편에 전반적으로 흐르는 쓸쓸한 분위기와 애잔한 결말을 묘사하는 킹의 솜씨가 마음에 들었다.

단편소설 "Willa"는 스티븐 킹이 단편소설 집필능력을 되찾고나서 처음으로 쓴 단편이라고 한다. 이 단편을 읽고 나니 처음으로 쓴 단편이 이런 분위기와 결말을 갖추게된 이유가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한다.(물론 내가 작가의 마음을 어찌 100% 알겠냐마는;;;;;)

아마 내가 단편집 서문을 먼저 읽었기 때문에 이런 점에 더 공감을 하게 된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2. The Gingerbread Girl

큰 슬픔을 겪은 이후로 가정주부 에밀리는 달리기에 열중한다. 너무 몸을 혹사시킬 정도로 열중하는 것 같아 주위에서 만류할 정도가 되자 에밀리는 과감하게 가정을 박차고 나가 섬으로 간다. 그 곳에서 하고 싶은 달리기를 마음껏 하고 산다. 이 과정에서 같은 동네 사는 한 남자를 보게 되는데, 알고보니 이 남자는 나쁜 남자였다. 특히 여자들한테 "아주" 나쁜 남자였다.

이 단편소설은 에밀리의 달리기 간증과도 같다. 꾸준한 달리기를 통해 마음 속에 응어리진 슬픔이 어떻게 차츰 해소되는지 자세하게 묘사한다.

그러다 이 단편의 하일라이트! 나쁜 남자와의 달리기 추격전이 펼쳐진다. 평범한 가정주부라도 달리기를 열심히 하면 나쁜 남자가 이를 악물고 쫓아와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깔끔하게 보여준다.

스티븐 킹은 "걷는다"라는 소재를 가지고 장편소설 "롱워크(The Long Walk)"를 완성시킨바 있으니 "달린다"라는 소재를 가지고도 "The Gingerbread Girl"을 장편소설로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누구나 인정하듯이 글을 길게 쓰는 것은 스티븐 킹의 장기니까.

하지만 킹은 단편소설로 소박하게 완성해놓았는데 그래서 나쁜 남자와의 추격전 분량이 다소 짧은 것에 아쉬움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끝부분의 결말이 참 맘에 들었다.

가슴벅찬 쾌감이 느껴질 정도였달까. 결말부분을 읽으면서 그 장면의 이미지가 눈 앞에 자연스럽게, 선명하게, 생생하게 그려졌다. 고독한 마라톤 경주에서 결승점을 통과한 후 맑고 깨끗한 물 한 잔을 들이킬 때의 심정, 시원하고 후련한 심정이 느껴졌다. 이 때만큼은 "The Gingerbread Girl"의 에밀리와 내가 일심동체였다.

끈질긴 달리기에 관한 소설 "The Gingerbread Girl".
소녀시대 노래 "Run Devil Run"을 틀어놓고 읽으면 더 감동적일 것이다.


3. Harvey's Dream

하비와 자넷은 부부다. 아주 오랫동안 부부여서 이제는 상대방한테 감흥도 별로 없는 나이든 부부. 아침에 자넷이 부엌에서 일을 하는동안 어느새 부엌에 온 하비는 자기가 어젯밤에 꾼 꿈에 대해 자넷한테 이야기한다. 그런데 하비가 어젯밤 꾼 꿈은 (스티븐 킹 소설이니까 당연하게도) 악몽이었다.

작가는 자기 나이대의 주인공 묘사에 제일 능숙하지 않을까? 나는 작가가 아니라 독자라서 작가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아무튼 그런 생각이 든다.

스티븐 킹은 이제 할아버지 나이가 돼서 그런지 나이든 사람들의 사랑, 이별, 죽음 등에 관하여 자주 언급하는 것 같고 능숙하게 다루는 것 같다.

단편소설 "Harvey's Dream"에 나오는 하비와 자넷 부부를 보면서 나는 스티븐 킹 부부를 떠올렸고 스티븐 킹 부부가 주연으로 출연한 단막극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정말 이 소설로 스티븐 킹 부부가 단편 드라마 찍었으면 좋겠다! 무척 어울릴듯~!)

자넷은 하비가 들려주는 어젯밤 꿈 이야기를 처음에는 심드렁하게 듣다가 차츰 귀를 기울이게 되는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비의 꿈 이야기로 시작한 이 단편소설이 보여주는 결말은 독자들의 상상력을 은은하게 자극한다.


4. Rest Stop

작가 존 다이크스트라는 화끈한 싸움꾼 캐릭터가 등장하는 장르소설을 필명으로 쓰는 사람이다. 작가 모임에 참석했다가 한밤중에 운전하며 집으로 가는 길인데 생리현상 해결을 위해 한적한 휴게소에 차를 세운다. 남자화장실에 들어가려는 순간 멈칫한다. 여자화장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들. 어느 여자와 어느 남자의 목소리. 심각한 대화내용을 엿들은 존 다이크스트라는 생리현상이 시급한 와중에 갈등하기 시작한다.

야밤의 여자화장실 앞에서 모르는 사람들의 대화를 엿들으며 마음 졸이는 존 다이크스트라의 심정을 나도 똑같이 느낄 수 있었다.

두 남녀의 일에 개입해야하나? 아니면 모른척 해야하나?

"작가라는 종족은 원래 이러이러한 사람이니까 그냥 모르는 척 하는게 당연한 거 아닌가?"라고 자기합리화하는 존 다이크스트라의 속마음 묘사가 재미있었다.

존 다이크스트라가 자신이 창조한 소설 주인공의 감정에 이입되어 마구 흥분하게 되는 상황묘사가 흥겹게 펼쳐지는 작품.

단편집 뒤에 실린 스티븐 킹 후기를 읽어보면 이 단편소설이 더욱 흥미롭게 느껴질 것이다.


5. Stationary Bike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는 리처드는 병원에 갔다가 평소에 몸관리 좀 잘하라하는 의사의 권고를 받는다. 인간의 신체 안에 살고 있는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해서 노폐물을 잘 처리하지만 인간이 운동도 안하고 무절제한 식습관이 계속되면 노폐물이 증가하여 노동자들의 처리능력이 저하되고 신체의 균형이 깨진다는 식으로 비유를 들어 설명하는 의사. 리처드는 의사의 비유에 강렬한 인상을 받게 되고 집에 돌아와 인간의 신체 안에서 뼈빠지게 일하는 노동자들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헬스장 자전거를 사서 열심히 운동을 하게 되는데 이로인해 기괴한 경험을 하기 시작한다.

공포장르에서 불길한 그림이 주인공을 압박하는 이야기는 많았고 스티븐 킹 본인도 다른 작품에서 불길한 그림 소재를 다루기도 했지만, 나는 특히 이 단편소설 "Stationary Bike"에 등장하는 노동자들 그림이 상당히 인상 깊었다.

리처드가 강력한 충동에 휩싸여 그려낸 이 가상의 노동자들 그림이 풍기는 이상한 분위기가 어쩐지 나의 상상력도 무지하게 자극했고 "Stationary Bike"를 읽는 내내 자꾸만 이 그림이 떠올랐다.

이 단편 속에서 다른 그림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제일 처음 등장하는 노동자들 그림이 압도적이었다.

그리고 소설을 읽으면 읽을수록 주인공 리처드가 결국엔 필연적으로 겪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예상되어 그 기대감에 책장을 넘기는 손길이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아주 자극적인 결말을 기대했던 독자는 이 단편에 실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나!) 나는 힘껏 달려나갈 것만 같은 거친 움직임을 보이던 이야기가 여유있게 산책을 하는듯한 결말처리가 좋았다.

이 단편소설을 읽고 나면 우리사회를 뜨겁고 달구었고 현재도 달구고 있는 "성장이 먼저냐 분배가 먼저냐"의 문제를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6. The Things They Left Behind

우리나라에서는 1995년에 삼풍백화점이 붕괴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사망했다.

한국의 어느 스티븐 킹 독자는 "스티븐 킹이 만약 한국인이었다면 분명히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을 소재로 소설을 썼을 것이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는데, 나도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스티븐 킹이 쓰는 삼풍백화점 소설은 어떤 내용일지 궁금해졌다.

그런데 나는 스티븐 킹이 아니니까 어떤 내용의 소설이 나올지 도저히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이번에 스티븐 킹 단편소설 "The Things They Left Behind"를 읽고 나니 스티븐 킹의 삼풍백화점 소설은 어떤 모습일지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미국에서는 2001년에 9/11 테러가 일어나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빌딩이 붕괴되었다.

단편소설 "The Things They Left Behind"의 주인공 스콧은 세계무역센터 빌딩에 있는 사무실에 근무했었는데 다행스럽게도 9/11 테러가 일어나던 날에는 사무실에 없었기 때문에 화를 면했다. 화를 당한 것은 스콧의 직장 동료들이었다. 그런데 9/11 테러 이후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스콧은 일상생활에서 9/11 테러의 유산과 자꾸만 마주치게 되고, 아무리 기를 쓰고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나지지 않아 미치고 환장하게 된다.

미국인들에게 9/11 테러가 대단히 충격적인 사건인 것은 분명하다.

9/11 테러라는 커다란 소재를 다루면서도 스티븐 킹은 이 단편에서 흥분하지 않고 차분한 어조를 유지한다.

과거의 기억 때문에 괴로워하는 주인공을 통해 그 과거의 기억을 하나하나 차근차근 독자한테 보여준다.

그런데 잊고 싶지만 자꾸만 찾아오는 지독한 과거를 주인공은 어떻게 떨쳐낼 수 있을까?

이 부분에서 정말 나는 감탄했다. 결말이 대단히 "자연"스러웠던 것이다.

주인공이 뭔가 영웅적인 활약을 펼치는 것도 아니고, 목숨을 내걸고 운명의 힘겨루기를 하는 것도 아니다.

평범한 일반인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도리를 담담하게 수행하는 주인공 스콧의 모습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자극을 사용하지 않고도 충격을 전달할 수 있다니, 스티븐 킹 아저씨 짱 먹으셈~ 두 번 먹으셈~


7. Graduation Afternoon

제니스의 고등학교 졸업파티가 남자친구네 집에서 펼쳐진다. 그런데 남자친구네 집에서 놀던 제니스한테 일생일대의 큰 사건이 벌어지고 제니스의 멘탈이 붕괴된다.

주인공이 평범한 일상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거대한 사건과 만나게 되는 상황을 짧고 굵게 묘사하는 단편소설이다.

다른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스티븐 킹도 머릿 속에 떠오른 이미지를 글로 100% 표현할 수 없는 답답한 심정을 종종 내비치곤 하는데, 이 단편 "Graduation Afternoon"에서 제니스가 아무런 예고도 없이 거대한 사건과 접촉하게 되는 순간의 묘사가 압권이다.

물론 이 묘사가 스티븐 킹의 머릿 속에 있던 이미지를 100% 표현한 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제니스의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이 감지하는 현장 분위기를 나도 100% 똑같이 느끼는듯한 기분에 젖어들었다.

마지막 결말의 강렬한 이미지를 날카롭게 제시하려는 목표에서 만들어진 소설이니 나의 이런 반응이야말로 스티븐 킹이 100% 만족할만한 것이 아닐까?


8. N.

N.이라는 가명으로 소개되는 사람이 있다. N.은 취미 삼아 사진 찍으러 시골에 갔다가 인적없는 어느 벌판에서 의문의 돌덩이들이 원형으로 늘어선 것을 목격하게 되고 그 광경에 도사린 공포의 초자연현상에 고스란히 노출당하게 된다. 이후 N.은 일상생활에서 이상한 강박관념에 시달려 신경정신과 치료까지 받게 되는데, 돌덩이들이 늘어선 벌판에 "의무적"으로 찾아가야하는 상황까지 겪게 된다.

역동적인 사건을 빵빵하게 터뜨리는 소설이 아니라 기이한 현상으로 인해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주인공 내면의 고통과 갈등을 자세히 끈적하게 묘사하는 소설이다.

일상생활에서 겪는 개인적인 강박관념 때문에 괴로운데 이 세상의 운명을 혼자서 책임지고 있다는 책임감 때문에 더욱 괴로워하고, 강박관념 증상을 (일시적으로나마) 해소시키는 귀여운(?) 방식 덕분에 찾아온 일시적인 평화에 감사하다가도 결국엔 사라지지 않을 것이 확실한 강박관념을 대하는 두려움 때문에 황폐해지는 주인공의 마음상태가 흥미롭게 묘사된다.

평소에 외출하고 나면 집 현관문을 혹시 잠그지 않은 것은 아닐까, 가스밸브를 열어놓고 나온 것은 아닐까하는 식으로 강박관념에 종종 시달리는 독자라면 단편소설 "N."을 읽으며 주인공 N.의 강박관념이 전염되지 않을까하는 강박관념에 시달리지는 않을까?

단편소설 "N."은 마블코믹스에서 플래시 애니메이션과 만화책으로 제작하기도 했다.


9. The Cat from Hell

살인청부업자 핼스턴은 부잣집 할아버지한테서 이상한 제의를 받는다. "지옥에서 온 고양이를 죽여줘~!"

"The Cat from Hell"은 1977년 남성잡지에 발표되었던 작품인데, 간단한 설정을 신속하게 전개해서 불길한 결말을 멋지게 선사한다.

지옥에서 온 고양이가 살인청부업자를 이리저리 갈구는 상황에 대한 묘사가 좋았고, 결말부분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문장이 상당히 깔끔해서 결말 이후에 벌어질 일들을 상상하게 만든다.

이 단편소설은 1990년 옴니버스 영화 "어둠 속의 외침(Tales from the Darkside: The Movie)"에 사용되기도 했다.


10. The New York Times at Special Bargain Rates

가정주부 앤은 우연히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된다. 그리고 전화를 걸어온 상대방과 이상한 대화를 나누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인연이 오랫동안 이어지는 이야기는 늘 좋다. (난 천성이 로맨틱 가이인듯. -_-;;;)

흔한 소재를 다루었지만 이 소재를 이끌어나가는 스티븐 킹의 문장력이 좋다.

한 문장에 또다른 문장이 계속 이어지면서 일정한 흐름이 생겨나 독자가 느긋하게 파도타기하는 듯한 그 분위기.

그리고 엉뚱하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을 개입시켜 담담하게 끝내는 결말 덕분에 이 짧은 분량의 소설이 긴 여운을 남긴다.


11. Mute

세일즈맨 모네트가 성당에 찾아가 과거에 일어난 일을 신부한테 고해성사한다. 예전에 가정문제 때문에 잔뜩 화가 난 상태로 한밤중에 운전을 하다가 모네트는 히치하이킹하는 남자를 차에 태우게 된다. 이 상황을 모네트가 열심히 고해성사하자 어느덧 신부는 모네트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게 된다.

신부처럼 나도 모네트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고 말았다.

모네트는 그냥 개인적인 이야기를 심각하게 늘어놓는데 자꾸만 듣는이(그리고 읽는이)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렇게 나는 모네트의 이야기에 집중하다가 갑자기 예상치 못한 쪽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어 깜짝 놀랐다.

그제서야 실감하게 되었다. 아 맞다, 모네트는 고해성사하러 온거지, 안 좋은 일이 있었으니 고해성사를 하는 거였겠지.

모네트가 겪은 일의 결말을 읽고 나니 모네트가 고해성사하면서 표출하는 개인적인 감정에 공감이 갔다.
고해성사하기 전까지 모네트는 어디다 하소연할 데가 없어서 무척 답답했을듯;;;

그리고 모네트와 신부 사이에서 오고가는 대화를 읽다보면 어쩐지 두 사람의 순수한(순진한?) 일면이 드러나는 블랙코미디를 보는 것 같아 재미있었다.


12. Ayana

주인공 남자가 겪은 다양한 기적에 대한 이야기. 아버지가 병에 걸려 돌아가시기 직전에 아야나라는 어린 소녀가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나 아버지를 회복시키는 기적을 행하고 떠나간다. 주인공 남자는 이후에 기적이 일어나는 다양한 현장체험을 하게 된다.

단편소설 "Ayana"는 기적을 선사하는 사람들, 기적을 선사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주인공 남자의 아버지가 목숨을 부지하는 기적이 일어나자 주인공 남자의 가족들이 보이는 반응들이 유쾌한데, 좋은 일이 갑자기 펼쳐지는 장면은 항상 기분 좋다.

이 단편소설은 특별히 격렬한 사건 없이 담담하게 일상적으로 서술되는 이야기라 밋밋하게 여길 수도 있겠지만, 평범한 인간이 두려운 운명 앞에서 기적을 대하는 감정이 따뜻하게 그려져 좋았다.

기적을 주는 사람도, 기적을 받는 사람도 결국엔 평범한 인간이었다.

이 단편소설을 읽고 나니 스티븐 킹의 소설 "그린마일"이 생각났다.


13. A Very Tight Place

이 단편소설은 제목만 해석해도 줄거리가 떠오른다.

주인공이 아주 비좁은 곳에 갇혀 낑낑대는 이야기~!

제목만 봤을 때는 짧은 분량일 것 같았는데, 막상 읽고 보니 분량이 꽤 길다.

주인공 커티스가 비좁은 공간에 갇히기까지의 사연을 꼼꼼하게 느긋하게 펼쳐내보이다가 쿠쿵!

갇힌다. 아주 비좁은 곳에.

그리고 살기 위해 죽기살기로 몸부림친다.

"A Very Tight Place"는 이 단편집에서 제일 격렬하고 자극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단편소설이다.

컨디션이 안 좋을 때 읽으면 오바이트할 정도로 괴로운 소설인데, 이 단편을 단편집의 맨끝에 배치한 것은 스티븐 킹의 의도적인 배려일까? (오오~ 스티븐 킹 아저씨는 배려의 왕~!)

갑자기 비좁은 공간에 갇혀버린 후 탈출시도하는 과정에 대한 묘사가 진짜 탁월해서 굉장히 집중해서 책을 읽게 된다.

캬~ 진짜 읽으면서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

환갑 넘으신 할아버지가 이렇게 발랄하고 역동적인 작품을 술술 쓰다니 진짜 재능이라는 것의 존재를 실감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재능이라는 것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무뎌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실감할 수 밖에 없다.

이 단편을 읽고 나면 "똥밭에서 굴러도 저승보다 이승이 낫다"는 말도 저절로 실감날 것이다.


단편집 "Just After Sunset"에 실린 13편의 작품을 다 살펴보았다.

단편집 서문에서 단편소설 쓰는 능력을 잃어버린 적이 있다고 걱정한 스티븐 킹의 말은 역시 훼이크였음이 드러났다.

다양한 소재, 다양한 분위기의 작품들을 이렇게 쏟아내다니, 읽는 동안 정말 행복하잖아~!
(차라리 단편집 읽고 감상문 쓰는 게 괴롭다. 단편소설 감상문은 스포일러를 피해서 살살 쓰는 것이 참 힘들다.)

단편집 "Just After Sunset" 이후로 스티븐 킹은 여러 편의 단편소설을 꾸준히 발표했다.

이 단편들도 다 모여서 앞으로 단편집이 되겠지. 아 기대된다. 항상 기대된다.

늘 나에게 가슴 두근거리는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스티븐 킹.
아저씨가 이 세상에서 제일 최고에요~!

p.s. 이 책은 "해가 저문 이후"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번역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