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킹의 영국신문 인터뷰

뉴스 2011. 11. 26. 20:19 posted by 조재형

☞ 스티븐 킹이 영국신문 The Scotsman과 인터뷰를 했습니다.

이번 인터뷰는 메인 주 뱅고어에 있는 스티븐 킹 저택에서 오전 8시 즈음에 진행되었습니다.

스티븐 킹은 윗층 서재의 책상 의자에 앉았는데, 이 곳은 평소에 킹이 집필을 하는 공간은 아닙니다.
평소에는 뱅고어 공항 인근에 있는 개인 사무실에서 매일 아침마다 글을 씁니다.
하지만 인터뷰가 있던 날은 드물게 찾아오는 쉬는날이어서 집에서 인터뷰가 진행되었습니다.

킹의 서재 책상 위에는 아내 사진, (스티븐 킹이 농담으로 금연보조제라고 부르는) 이쑤시개통,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 기념품이 있습니다.
벽면 선반에는 2,000권에 육박하는 책으로 가득합니다.
한쪽 벽에는 리타 헤이워드가 출연한 옛날영화 "길다(Gilda)" 포스터가 붙어있는데, "쇼생크 탈출" 영화를 연출한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이 준 선물입니다.

스티븐 킹 신작 장편소설 "11/22/63"은 영어교사 제이크 에핑이 시간여행을 통해 케네디 대통령 암살을 막으려고 노력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실제 케네디 대통령 암살 당시 킹은 어디서 뭘하고 있었을까?

"나는 장례식 영구차를 개조한 차량에 타고 있었습니다. 네 정말이에요.
난 아주 쬐그만 마을에 살았는데, 비포장된 흙길만 잔뜩 있고 고등학교가 없는 스코틀랜드의 어느 쬐그만 마을을 떠올려보시면 됩니다. 중학교는 하나 있었는데, 교실이 딱 4개였죠.
마을 가까이 있는 고등학교에 다녀야했는데 버스가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학부모들이 돈을 모아서, 영구차를 개조한 저질 리무진을 몰고 다니는 사람을 고용했습니다. 덕분에 나를 비롯한 학생 10명이 가장 가까이 위치한 고등학교까지 20킬로미터를 통학할 수 있었죠.
운전사는 진짜 과묵한 사람이었는데, 차에서 라디오를 튼 적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그게 정말 싫었어요. 사랑하는 록앤롤 음악을 들을 수 없었으니.
라디오를 틀어준 적이 딱 2번 있었는데, 하나는 쿠바 미사일 위기사태때였고, 그 다음엔 학교수업 끝나고 그 차에 올라탔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차에 탔더니 라디오가 켜져있었고 우리는 학교가 끝난 해방감에 맘껏 장난치고 있었는데, 운전사가 한 마디 하더군요. '대통령이 죽었어.'
그러자 차 안이 완벽하게 조용해졌습니다. 평소에는 우리한테 전혀 말을 하지 않던 그 운전사가 계속 말을 했습니다. '대통령을 죽인 그 개새끼가 잡히면 살인당하겠지.'
그리고 실제로 암살범이 체포되었고 어떤 사람이 암살범을 살인하는 상황이 벌어졌죠."

그 날 킹이 집에 돌아와보니 평생 공화당원이었던 어머니가 민주당 대통령 암살소식에 울고 있었습니다.

대통령 암살과 관련해서 온갖 소문이 돌았고, 특히 체포당한 암살범 오스왈드를 잭 루비라는 사람이 총으로 쏴죽이자 소문이 더욱 극성을 부렸다고 스티븐 킹은 기억합니다.
"나라 전체가 활동을 멈추었습니다. 9/11 사태 때와 비슷했고, 충격이 끊이질 않았죠.  9/11 사태의 비행기들이 세계무역센터 빌딩에 충돌하고나서 이틀 후 다른 비행기가 뉴욕 증권거래소 빌딩에 충돌했으면 상황이 어땠을지 상상해보세요. 오스왈드가 살해당했을 때 상황이 딱 그랬다니까요."

스티븐 킹이 2살 때 아버지 도널드 킹은 담배 산다고 집을 나갔다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수십 년 후 스티븐 킹은 아버지가 다른 여자와 결혼해서 새로운 가정을 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가출해버린 스티븐 킹 집은 가난했지만 어머니는 돈을 모아서 킹에게 중고 타자기를 사주었습니다.
비록 타자기 글쇠 중 "n"이 빠져있었지만, 킹은 그 타자기를 통해 청소년 시절의 불안을 쏟아냈습니다.

메인대학교 장학금을 탔을 무렵 킹은 이미 장편소설 2편을 완성시킨 상태였는데, 그 중 하나가 "분노(Rage)"라는 작품이며 18살 고등학생이 교사 2명을 총으로 쏘고 동급생들을 인질로 잡는 내용입니다.
이 소설은 나중에 필명인 "리처드 바크먼"을 이용해 출간되었는데, 현재는 스티븐 킹 소설 중 유일하게 절판된 작품입니다.

"오리건 주에서 한 학생이 학교에 총을 가져와 총기사고가 일어났는데, 9/11 사태가 일어나기 전이라서 요즘 같은 안전의식이 없던 시절이죠.
이 학생이 교실 문을 벌컥 열고 두세 명을 총으로 쏴죽였습니다. 본인이 자살하지는 않았어요. 그대로 체포당했는데 지금쯤은 감옥에 있거나 정신병원 같은 데 있겠죠.
경찰이 이 학생의 사물함에서 소설 '분노'를 발견하고 나자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젠 그만. 이 소설을 그대로 놔두지 않을래. 일부러 부담스런 상황을 만들고 싶진 않아.'
소설 '분노'는 내 인생의 어느 특정 시기에 나온 것입니다. 그 작품 집필을 시작했을 때 18살이었고 18살때부터 24살, 25살때까지 나는 여러 가지 혼란스런 감정에 수없이 시달렸습니다. 결혼을 해서 어엿한 성인으로 자립하기 전까지는 분노를 수없이 느끼며 살았던 거에요. 소설 '분노'는 그런 상황에서 나온 것이었고 그 당시의 나에게, 또 현재의 내가 보기에도 '분노'를 비롯한 리처드 바크먼 소설들은 내 사정을 표현하면서도 사람들이 읽고 싶어할만한 이야기로 전달하려는 노력이 담긴 정말 솔직한 작품들입니다.
책을 읽으면 다른 상황에서는 하지 않았을 어떤 행동을 하도록 사람을 부추긴다는 생각에 나는 늘 부정적이었습니다. 그 어떤 행동을 하게된 사람들은 책에서 방아쇠를 발견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위험한 상태에다 촉진제를 추가한 것과 비슷한 것이지만, 나는 그런 상황의 일부분을 담당하고 싶지는 않았고 소설 '분노'를 절판시켜야한다는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해버렸죠."

스티븐 킹은 자신의 필명인 리처드 바크먼을 이용해 분위기가 암울한 소설을 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벼랑 끝에 몰린듯 처절한 분위기로 글을 쓰는 작가들이 있습니다. 우선 생각나는 작가는 제임스 엘로이가 있고, 찰스 윌러포드(Charles Willeford)도 있군요.
찰스 윌러포드 분위기가 나는 리처드 바크먼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미국적인 생활에 도사린 어두운 면을 보여주는... 위태로운 사립탐정, 진짜 어둠의 분위기를 마구 풍기는 남자가 나오는 소설을 쓰고 싶네요. 장면이 눈에 선합니다. 어느 이름 모를 미국 도시의 탐정 사무실에 앉아있는 이 남자, 칙칙한 하늘, 칙칙한 비가 창문을 때리고. 바로 그런 분위기...
하지만 그 소설의 나머지는 레이먼드 챈들러 같은 하드보일드 소설의 어조로 무척 근사하게 흘러갈 겁니다. 레이먼드 챈들러가 창조한 사립탐정 필립 말로를 떠올려봐요. 다만 내 소설의 탐정은 아주 X같이 타락한 사람일테죠."

한 때 스티븐 킹은 집필활동을 줄여야겠다고 말하기도 했고 작가 은퇴 가능성까지 언급한 적도 있었지만, 왕성한 창작력은 여전합니다.
이제 킹은 매일 글을 쓰지 않으면 기분이 나빠지기까지 합니다.

"습관이 된 거죠. 습관을 중단하게 되면 금단증상이 나타나서 안 좋은 부작용을 일으킵니다. 불면증이나 가족한테 짜증내기 같은 거요. 나는 여전히 이야기를 좋아하고 이야기는 나를 흥미로운 세상으로 데려가줍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서점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이야기를 글로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