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하프 / The Dark Half

작품 감상문 2007. 5. 12. 00:48 posted by 조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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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ark Half

(1989년 소설)

교원문고에서 "다크 하프"라는 제목으로 번역출간한 킹의 소설 "The Dark Half" 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감사의 글이 적혀 있다.

리처드 바크먼의 도움에서 강한 영감을 받았다. 만약 그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 소설은 쓰여지지 못했을 것이다.

리처드 바크먼은 스티븐 킹의 필명. 한 서점 직원이 진실을 폭로하기 전까지 스티븐 킹은 필명을 이용해 남들 몰래 몇 작품을 출간한 적이 있었다. 그런 일을 생각한다면 "다크 하프"라는 멋진 소설을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글쓰기에 재능이 있는 새드 버몬트라는 소년이 뇌수술을 받게 된다. 참새소리가 환청으로 들리는 등 뇌종양으로 의심되는 증상을 보여 종양제거 수술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머리를 열고 보니 종양이 아니었다. 소년의 뇌 속에는 인간의 신체 일부분이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깜짝 놀라는 수술실 사람들에게 수술 담당의사가 친절히 설명해준다.

"쌍둥이로 태어나지 않는 아이들 중의 많은 수가 원래는 쌍둥이로서의 삶을 시작합니다. 그런 경우는 열명 중 두명까지도 갈 수 있어요. 남은 하나의 태아는 어떻게 되느냐고요? 강한 쪽이 약한 쪽을 흡수하는 거죠."

엄마 뱃속에서 쌍둥이 중 한쪽이 다른 한쪽을 먹어 치웠다는 얘기다. 어찌됐든 제거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난다. 그 후 세월은 흘러 새드 버몬트는 어여쁜 여성과 결혼해 이제 쌍둥이 아빠가 되었다. 그리고 소설가이기도 하다. 새드는 자신의 이름으로 문학소설들을 발표했지만 비평가들만 좋아할뿐 팔리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마음이 이끄는대로 조지 스타크라는 필명으로 폭력적인 범죄소설을 잇달아 발표했는데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하지만 필명에 의지하는 것에 회의를 느낀 새드는 공개적으로 필명을 폐기처분한다.

그러자 조지 스타크를 버리는데 관여했던 사람들이 연달아 죽음을 당하고, 살인현장에서는 새드의 지문과 함께 "참새들이 다시 날고 있다"라는 낙서가 발견된다.

마음이 혼란스러워진 새드의 마음이 동요한다. '작품을 쓸 때의 너는 도대체 누구냐? 그 때의 너는 도대체 누구냐?'

새드는 어린 시절에 들었던 참새 소리를 다시 듣게 된다. 덕분에 참새들과 만나게 된다. 덕분에 조지 스타크와도...

"다크 하프"는 나에게 짜릿한 충격을 선사해준 멋진 소설이다. 새드 버몬트의 필명인 조지 스타크가 현실세계에 나타나 새드를 궁지로 몰아넣고, 게다가 새드와 조지 사이에는 감정이 연결되어 있어서 서로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는 설정이 스티븐 킹과 리처드 바크먼의 사례와 맞물려 묘한 재미를 불러 일으킨다.

소설 내내 새드와 조지 사이의 생존을 위한 투쟁이 흥미로웠다. 둘의 처지는 극과 극이다. 새드는 조지의 이름으로 발표한 작품이 성공해서 풍족한 삶을 누리고 글쓰기를 계속 하고 있지만, 조지는 글쓰는 능력을 잃어버렸고 그 때문에 점점 죽어가고 있다. 그래서 조지는 새드로부터 글쓰는 능력을 가져 오려고 한다. 정말 그렇게 된다면 과연 새드는 어떻게 될 것인가?

스티븐 킹은 쉴새없이 작품을 쏟아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따져보면 일년에 거의 두 작품 정도를 발표해왔다. 그래서 난 가끔 화도 난다. 아무리 열심히 킹의 작품을 읽어도 그가 작품을 발표하는 스피드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킹은 인터뷰 도중 면전에서 욕을 먹은 적까지 있다. "당신같은 인간은 소설가가 아냐. 당신은 그저 소설 산업이야!"

글을 쓰지 못하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조지 스타크의 모습에서, 글쓰는 능력을 잃는 순간 파멸할 수 밖에 없는 새드 버몬트의 모습에서, 나는 스티븐 킹도 어쩌면 그런 처지가 아닐까하는 낭만적인 생각을 했다. 글을 쓰지 못하면 죽는다! 살기 위해선 계속 글을 써야 한다! 이 얼마나 낭만적인 설정인가. 소설가로서 더할 나위 없는 극적인 설정인 것 같다. 스티븐 킹이 열심히 글을 써서 쉴새없이 작품을 발표하는 열정과 성실함과 재능이 비난받을 일이던가? 열심히 살려고 애쓰는 사람한테 격려는 못해줄 망정 욕을 해서야 쓰겠느냐고 명심보감 제 4장 인지상정(人地上正) 편에 굵은 글씨로 적혀 있다.

새드와 조지의 대결은 마치 스티븐 킹과 리처드 바크먼의 대결을 보는 것 같아 흥미로웠다. 소설 속에서는 끊임없이 벌어지는 조지의 폭력적인 범죄행각과 그 와중에 속수무책으로 끌려 다니는 새드의 처지가 긴장과 스릴을 선사해 주었다. 당하기만 하던 새드가 처음으로 조지의 마음 속으로 들어갔다가 예기치 못한 상황에 부딪치는 장면도 끝내주게 짜릿하다. 그리고 소설 후반부에 벌어지는 새드 대 조지의 글쓰기 대결 장면은 정말 극적이었다. 글쓰기 대결을 통해 벌어지는 심리적 긴장감은 도저히 책읽기를 멈출 수 없게 만들었다.

"다크 하프"에서는 참새가 중요한 존재로 언급된다. 소설 첫부분에서 소년 새드의 머리 속에서 들리는 환청으로 등장하더니 마지막 결말장면에서는 수백억마리가 등장해 말그대로 스펙터클한 장관을 연출한다. 참새가 소설 고비고비마다 신비스러운 존재로 등장하는 덕분에 소설 속에 악몽같이 몽롱하고 불안한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더해 주었다. 참새같이 그냥 지나치기 쉬운 작은 소재로도 중요한 의미를 부여해서 소설을 더욱 맛깔스럽게 만드는 것. 그런 것이 바로 진정한 소설가의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다크 하프"가 소설가와 필명 사이에 벌어지는 폭력을 다루고 있는 만큼, 스티븐 킹은 이 작품을 스티븐 킹과 리처드 바크먼 공동집필로 발표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출판사의 반대로 그냥 스티븐 킹의 이름으로만 출간되었다. 도대체 왜 출판사는 리처드 바크먼의 이름이 들어가는 것을 반대했을까? 리처드가 진짜로 살아나기라도 해서 스티븐을 매장시킬까봐? 오오~ 그러면 안돼지. 역시 출판사는 현명한 선택을 한 것이로구만.

소설 "다크 하프"는 조지 로메로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었으며 국내에도 "다크 하프"라는 제목으로 비디오 출시되었다. 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이라고는 못하겠지만, 볼만한 영화라고 한다. 동네 비디오 가게에 가서  찾아보고 만약 없다면 동네 참새들을 붙들고 하소연을 해보자. 진짜 불쌍하게 보였다면 참새들이 감동해서 어디선가 구해서 물어다 줄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신문 사회면에 다른 동네 비디오 가게가 참새들의 습격을 받고 피바다가 되었다는 기사가 실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