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미녀들 / Sleeping Beauties

작품 감상문 2017. 12. 23. 21:48 posted by 조재형

Sleeping Beauties

(2017년 장편소설)


[※ 이 감상문에는 소설의 스포일러가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티븐 킹의 큰 아들 조 힐과 작은 아들 오웬 킹은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조 힐은 장르소설을, 오웬 킹은 일반소설을 집필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오웬 킹한테 좋은 아이디어가 있었는데 장르소설에 적합한 것이라서 아버지한테 말해주면 좋아할 것 같았다.

"세상 모든 여자들이 잠들어서 깨어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작은 아들의 아이디어를 들은 스티븐 킹은 아들에게 직접 글로 써보라고 권유하였고, 오웬 킹은 본인이 장르소설 집필에 익숙하지 않았기에 결국 아버지와 공동집필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이 아이디어를 TV 드라마 각본으로 집필했는데, 어떤 등장인물에게 관심이 생겨서 충분히 길게 다루어보고 싶은데도 드라마의 제한된 방송분량에 맞추느라 인물묘사를 충분히 할 수 없다는 점이 마음에 걸려서 드라마 각본 대신 소설 집필로 방향전환을 했다.

그래서 미국 양장본 원서로 700쪽이 넘는 장편소설 "Sleeping Beauties"가 스티븐 킹과 오웬 킹의 공동집필로 세상에 나왔다.

세상에 갑자기 여자들만 걸리는 전염병이 발생한다. 여자가 잠이 들게 되면 몸에서 실 같은 것이 쑥쑥 나와서 여자를 누에고치로 만들어버리고, 그런 상태로 계속 잠만 잔다. 이런 상태를 저지하기 위해 누에고치 조직을 손상시키게 되면 여자가 잠에서 깨어나 눈 앞에 보이는 상대를 살인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소설 "Sleeping Beauties"는 이런 수면병이 발생한 지구에서 둘링이라는 산골마을의 여자 교도소를 주요무대로 이야기를 전개시켜나간다.

둘링의 여자 교도소도 수면병으로 인하여 여자들이 하나둘씩 누에고치 상태로 변하는데, 얼마 전 교도소에 들어온 이브 블랙이라는 여자는 잠을 잤는데도 멀쩡한 몸으로 깨어난다.

수면병에 면역인 것처럼 보이는 이 여자의 정체는 무엇일까? 수면병을 막아줄 희망일까 수면병을 악화시키는 재앙일까? 여자들이 떠나가는 세상에 남은 남자들은 이브 블랙을 어떻게 할까?

결론적으로 말해서 내가 소설 "Sleeping Beauties"를 읽고 난 전체적인 소감은 간단하다.

재미없고 지루한 소설이었다.

소설 초반에는 수면병 발생이라는 사건 전개로 흥미로운 독서가 되었는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자꾸만 기운이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야기가 상승하려고 하면 다음 장면에서 다운시키고, 또 이야기가 상승한다 싶으면 다음 장면에서 다운시키는 상황이 반복된다.

소설 중간중간마다 흥미로운 사건들이 있고 그 꼭지점들을 향해 각각의 장면들이 이야기 흐름을 꾸준히 상승시키는 모습은 찾기가 힘들다.

소설 초중반에 심리묘사, 상황묘사가 상당히 많이 나오지만 이야기의 재미를 형성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위험한 순간이 발생하지만 쉽게 해소가 되고, 기대를 배반하는 허무한 결과를 나타낼 때가 많다.

"Sleeping Beauties"의 등장인물들은 행동보다 생각이 많은 사람들이다.

이야기를 전진시키는 속시원한 활동 대신 등장인물이 사색과 고민, 걱정, 과거 회상 같은 것에 매달리는 분량이 많다보니 이야기에 힘이 없다.

등장인물 묘사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느릿느릿 힘겹게 진행시키다 소설 막판에 가서 허둥지둥 속도를 내며 "끝"을 내는 것을 보고 있자니, 작가들이 긴 분량의 소설을 쓰다 피로감을 느끼고 서둘러 마무리지은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소설 "Sleeping Beauties" 맨앞에 등장인물 이름을 정리한 목록이 제공될 정도로 이 작품에 많은 인물이 나오는데, 저마다 자신의 과거 사연을 늘어놓는데 열심이지만 별로 재미가 없다. 어떤 인물의 사연이 소설 초반에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나와서 주요인물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존재감이 없어지더니 막판에 허무하게 퇴장하기도 한다. 여자 교도소 재소자들의 과거사연이 줄줄이 소개되지만 나중에는 잘 구분이 안될 정도로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

소설을 읽다보면 문득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는데, 이 작품에는 여자가 남자를 비난하는 문장이 많이 나온다. 본인 인생이 망가진 것도 남자 때문이고, 이 세상이 불합리한 것도 다 남자 때문이라는 식이다. (남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언급도 찔끔 나오기는 하지만 말 그대로 찔끔이고 여자 등장인물들의 남자 비난 홍수에 휩쓸려 사라진다.)

나는 처음에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소설 막판에 나오는 한 장면을 읽는 순간 실상을 깨닫고 절망에 빠졌다.

기어가던 이야기 진행이 막판에 교도소 쟁탈전이 벌어지면서 그나마 상승기류를 타는가 싶었는데 그런 장면이 나오다니...

이제까지 소설 진행과정에서 여성들을 지키느라 고생을 잔뜩하던 소년이 여성의 성기와 관련된 비속어를 사용하게 되고 옆에 있던 여자 인물은 그 소년을 "따끔하게" 훈계하는 장면. (작가는 정의를 구현하는 여자 인물이 부정적으로 표현되면 안된다고 생각했던 것인지 그 여자가 소년을 따끔하게 훈계하기는 했지만 과도한 폭력은 행사하지 않았다고 친절하게 부연설명까지 해놓았다.)

이야기의 막판 상승기류와 안맞는 그런 생뚱맞은 장면을 끼워넣느라 무려 한 챕터를 할애하는 것을 보고 그제서야 나는 깨달았다.

"Sleeping Beauties"의 작가는(또는 작가들은) 남성 위주의 사회에 만연한 여성 혐오를 고발해야겠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착한 짓을 일삼던 소년한테까지도 여성 혐오를 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그래야 여성의 입장을 한 문장이라도 더 대변해줄 수 있으니까.

그렇다고 소설 "Sleeping Beauties"가 여성 인권에 대하여 심도 깊은 고찰을 하는 것도 아니다. 이 여자 저 여자 등장해서 본인의 마음에 담긴 남자에 대한 혐오감을 생각과 입으로 뱉어내는 단순한 배설 수준에 그친다.

설마설마했는데 소설 "끝까지" 남자에 대한 불평과 조롱이 단조롭게 반복되는 것을 보고 짜증만 났다.

이 소설에서 세상의 모든 여자가 한꺼번에 잠들었으니 남자들이 여자의 소중함을 깨닫게 될 것이고, 이것은 예전부터 이어진 여성 차별에 대하여 발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작가는, 작가들은 그렇게 생각했던 것일까?

이런 식으로 단순하게 감정적인 배설만 푸짐하게 쌓아놓는다고 공감이 생기지는 않는다. 이 소설의 빈약한 이야기 구조에 한 몫하는 원인 중 하나로 두드러져 보일 뿐이다.

"Sleeping Beauties"의 이야기에는 빈 틈과 의문이 잔뜩이다.

여자 교도소에 수면병에 면역이 있는 신기한 여자가 있다는 소문이 둘링 마을에 파다하게 퍼지는 것으로 서술되는데, 휴대폰과 인터넷이 정상작동하는 상황이니 마을 외부로 소문이 퍼지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둘링 외부에서 이 소문을 접했다면 많은 외지인들이 둘링 교도소로 몰려드는 전개가 이어지지 않았을까?

하지만 소문은 둘링 마을 주민들의 마음에서만 파문을 일으킨다. 마치 작가들이 소설의 규모가 커지는 것을 막으려고 투명한 방어막을 둘링 마을 주변에 쳐놓은 것만 같다.

수면명이라는 소재 자체는 흥미롭지만 소설의 이야기 흐름은 지지부진한테, 막판에 여자 교도소 쟁탈전을 흥미롭게 만들려고 한 탓인지 갑자기 마약상 형제를 등장시켜 교도소를 둘러싼 양쪽 무장세력을 흔드는 제3세력으로 만든다.

하지만 이 마약상 형제가 교도소 무력 쟁탈전에 겁없이 뛰어드는 명분이 터무니없고, 실제로 이들 형제가 마지막에는 우리가 뻘짓하고 있는 거 아닐까하고 뒤늦게 깨닫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제까지 한 노력이 있는데 이제 와서 포기하기에는 늦었다는 이유로 뻘짓을 계속한다. 그리고 본인들의 최초 목표에 다가가지도 못한 채 종말을 맞는다.

이야기를 진행시키려고 갑자기 끌어다 등장시키고 퇴장시키는 인물들이 상당하지만 다들 뭔가 허무한 모습을 보이기 일쑤다.

신기한 나무, 그 나무 주변의 동물들 같이 이야기에서 적극적인 활약을 할 것처럼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소재가 등장하지만 예쁜 장식품 역할에 머문다.

지루한 이야기를 그래도 참고 읽게 만드는 것은 교도소에 틀어박힌 신비로운 여성 "이브 블랙" 때문이다. 그녀의 정체가 뭔지, 이야기를 어떻게 끌고 갈지 궁금하게 만들지만, 책을 다 읽고 나면 이 소설의 부실함에 대한 상당한 지분이 이브 블랙에게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Sleeping Beauties"의 이야기 전개에 힘이 없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이브 블랙이 이야기를 이상하게 몰고 간다는 것이다.

교도소 쟁탈전에 참가하는 양쪽 무력세력의 남자들은 이브 블랙의 말을 꾸물꾸물 수행하는 부품에 불과하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정신과 의사마저 이브 블랙의 말을 떠받들며 허우적거리더니 소설 마지막까지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다.

이브 블랙이 본인은 여자 대표고 정신과 의사는 남자 대표여서 여자 대표 살리기 게임에 참가하라고 주장하는 것이 뜬금없는데, 남자 폭도들이 순수한 자기를 죽일 것이 뻔하니 자기를 지키라고 하지만, 실제로 교도소에 찾아오는 것은 잔뜩 흥분한 어중이떠중이 폭력남들이 아니라 경찰이다.

이브 블랙에 대한 소문이 마을에 파다하게 퍼지자 교도소에 맡겨둔 살인 용의자 이브 블랙의 상태를 확인하게 해달라고 경찰이 요청하지만, 정신과 의사는 이브 블랙의 말대로 경찰들을 나쁜 편으로 규정하고 경찰에게 이브 블랙의 진실을 알리고 협력을 부탁하는 시도를 아예 하지 않음으로써 무력투쟁의 불씨를 만든다.

경찰 대표를 음주상태로 만들고 이를 부추기는 부하를 등장시켜서 경찰쪽을 나쁘게 치장하려는 서술이 이어지지만, 경찰의 실질적 리더에게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 "빨리 와서 나를 죽이라"고 부추기는 것은 어이없게도 이브 블랙이다.

그렇다. 둘링 마을 남자들이 교도소를 둘러싸고 유혈투쟁을 벌이는 것은 순전히 이브 블랙의 부추김 때문이다. 유혈투쟁 막판에 이 모든 것이 이브 블랙의 테스트라는 대사가 튀어나오지만, 수면명이 전세계에 발생한 것 때문에 둘링 마을 남자들이 총싸움을 하도록 테스트하는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이브 블랙은 본인이 그저 힘없는 심부름꾼이라고 하면서도 자기에게 이 일을 시킨 존재가 무엇인지는 모르겠다고 태연히 말한다. 진짜 모르는 것인가, 모르는 척하는 것인가? 장난하나? 자기 때문에 남자들이 싸움에 휘말리고 목숨을 잃었는데. 남자들이 죽어나가는 것쯤은 별로 관심 없다는 것인가? (이브 블랙은 그저 휴대폰 게임에만 몰두할뿐이다.) 게다가 유혈투쟁의 와중에 누에고치 상태로 잠든 여자들의 목숨도 날아가버린다.

이브 블랙이 남자들의 폭력성을 소설 내내 그토록 강조하면서도 교도소의 총격전을 "고의로" 부추겨서 남자들을 죽어나가게 만든 장본인이 이브 블랙이고 이러한 고의적인 "테스트"를 왜 하는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수면병이 발생했으면 이브 블랙이든 누구든 능력있는 존재가 고치면 되는거지 엉뚱하게 왜 산골마을 남자들을 배틀로얄하게 부추기는 것일까?

그와 연관되어 이브 블랙이 주관하는 여자들만의 투표도 의문 투성이다.

이브 블랙은 딴세상으로 가버린 둘링 마을 여자들의 선택으로 그들이 현실세계로 돌아올 수 있고 수면병 사태를 멈출 수 있다고 말한다.

왜 하필 둘링 마을 여자들이, 그 소수의 여자들이 전체 인류의 운명을 결정지을 투표를 할 수 있는 권리와 부담을 져야하는 것일까?

워싱턴 사는 여자들 무시하나요? 텍사스 사는 여자들도 무시하나요?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여자들도 자신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둘링 마을 소수 여자들의 선택대로 운명이 결정지어져야 하다니? 도대체 왜 둘링 마을 여자들이 인류의 생사 결정권을 쥐고 있는 것일까?

둘링의 여자들을 왔던 길로 그냥 돌려보내는 대신 투표를 강요하는 이유가 대체 무엇인가?

이브 블랙은 둘링 여자들의 의사에 따라 현실세계로 돌아올 수 있다고 하지만, 100% 찬성 대신 한 명이라도 반대표를 던지면 현실세계로 복귀할 기회가 영영 없어지는 상당히 지저분한 투표다. 남고 싶은 사람은 남고 떠나고 싶은 사람은 떠나는 자유가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단체행동을 조장한다. 이런 투표에서 소수의견을 고집하는 사람은 다수의 원수가 될 수 밖에 없고 주눅들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조건이 지저분한 투표가 이브 블랙의 주도로 진행되는데, 둘링의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둘링의 여자들도 이브 블랙의 말에 토를 다는 일없이 고분고분 얌전히 따른다.

반대표가 나올 가능성을 원천봉쇄할 작정인지 비밀투표 대신 공개투표가 진행된다.

둘링 마을 여자들을 폐허로 몰아넣어 현실사회와 격리시키고 현실사회가 돌아가는 사정을 전혀 알 수 없게 하더니, 이브 블랙은 여자들 앞에서 간단하게 말로 설명하는 것으로 그간의 현실사회 상황 해설을 마치고 투표를 진행한다. 이브를 따라온 여자의 부연설명을 통해 남자들간의 유혈투쟁이 있었다는 설명이 나오지만 정확한 사망자 명단이 제공되지 않는다. 여자들은 현실사회의 지인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투표에 임하게 된다.

이브 블랙이 둘링 마을의 남자들을 양쪽으로 갈라놓고 이간질시킨 덕분에 발생한 유혈투쟁으로 남자들은 물론 여자들까지 목숨을 잃게 되었다는 내용도 투표하는 여자들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공개투표이고 여자들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킬만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기 때문에, 투표는 100% 참석에 100% 찬성이라는 결과를 제공한다. (이브 블랙의 진실을 알았다면 여자들은 투표를 하는 대신 이브 블랙을 폭행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유혈투쟁 끝에 감옥 앞에 모인 남자들이 이브 블랙을 죽일지 살릴지 토론배틀을 벌이는 장면부터 딴세상 여자들이 공개투표를 벌이는 장면은 마치 엉성한 학예회 연극을 보는 것 같다.

남자들끼리 왜 피를 흘리며 싸워야하는지, 딴세상 여자들이 왜 불합리한 투표에 동원되어야하는지 의문만 잔뜩 생기고, 유혈투쟁과 공개투표의 결과가 나오는 순간 속이 시원해지는 카타르시스는 느껴지지 않고 그저 작가의 의도대로, "답정너" 시나리오대로 서둘러 위기를 봉합했다는 느낌만 든다.

스티븐 킹 소설 "스탠드"에서는 전염병을 누가 만들었고 어떤 식으로 세상에 퍼져나갔는지 설명이 되어있고 선과 악이 선명하게 드러나 독자들이 상황에 공감하는 것이 쉬웠기 때문에, 거대한 악을 물리치기 위해 개인이 희생을 선택하는 것을 보면서 연민과 감동을 느낄 수가 있지만, 소설 "Sleeping Beauties"는 중요한 것들이 설명되지 않고 의혹만 불러일으키면서도 등장인물들에게 중요한 결정을 강요하고 순순히 따르도록 유도하기 때문에 나름대로 극적인 장면을 마련해도 "스탠드" 소설 같은 감흥이 생기지 않는다.

마치 내가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걷고 있는데 생전 처음보는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 "국가를 위해 당장 3천만원을 기부해줘. 자세한 것은 알 필요 없어. 3천만원을! 어서 빨리! 국가를 위해!"라고 강요하는 듯한 기분이다.

소설 마지막에서 이브 블랙이 주도한 이 모든 부조리한 상황들을 숭고하고 가치있는 이벤트였다는 식으로 서술할 때는 어이가 없다는 생각만 든다.

이 소설을 끝까지 읽게 되면 주인공인 여자 보안관의 모습 때문에 또 어이가 없어진다.

집에 수영장 만드는 일을 남편이 자기한테 상의도 없이 진행했다고 시무룩하더니만 소설 마지막에서 아기의 양육문제를 자기 혼자서 독단적으로 처리하는 모습.

남편이 바람 피웠다는 생각으로 배신감에 몸부림치더니만 정작 자신이 새 애인의 맛을 보더니 애인을 사무치게 그리워하고 애인의 자식을 애지중지하느라 남편을 무시하는 모습.

보안관이 흑인을 죽인 것은 살인무기를 든 낯선 사람을 동료의 지원 없이 혼자서 빠른 시간 내에 판단하고 처리해야하는 상황에서 발생한 사고인데도 백인경찰이 무고한 흑인을 부당하게 사살한 사례와 본인을 연관시키는 오바를 하면서 죄책감에 몸부림치는 모습. (이 장면을 읽으면 문제의 흑인을 어색하고 이상한 방식으로 사망시킨 작가의 의도가 느껴져서 기분이 안좋다. 그렇다. 뱀은 작가의 대리인이었던 것이다. 소설 마지막에 갑자기 흑인차별의 메시지를 멋지게 던지기 위한 포석이었다. 여성차별의 메시지를 소설 내내 잔뜩 던지는 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던듯.)

스티븐 킹이 피터 스트라우브와 공동집필한 "부적" 시리즈 소설을 읽을 때는 각각의 장면을 누가 썼는지 의식하지 않고 읽었다. 마치 한 사람이 집필한듯 자연스럽게 느껴져서 소설에 몰입하여 만족스런 경험을 했다.

하지만 스티븐 킹이 오웬 킹과 공동집필한 "Sleeping Beauties"를 읽을 때는 "이렇게 이상하고 어색한 장면을 도대체 누가 쓴 거지? 아버지가? 아들이?"라는 의문이 들 때가 많았다.

전세계의 여자가 다 잠들어버린다는 것은 엄청난 가능성을 가진 좋은 소재였지만, 작가가(작가들이) 이야기가 상승하지 않고 가라앉는데도 무기력하게 대처하고 오히려 여성찬양, 남성비판 같은 메시지 전달에 몰두하여 아예 이야기를 침몰시켜버리기에 소설 "Sleeping Beauties"는 용두사미로 끝난다.

사실 이야기만 재미있으면 단점들은 너그럽게 눈감아주게 되지만, 이 소설은 이야기가 부실하기 때문에 여러 단점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버린다.

대실망이다.

내가 스티븐 킹의 이름이 붙은 소설에 그냥 실망도 아니고 "대"실망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렇다고해도 나는 앞으로도 스티븐 킹의 소설을 계속 읽을 것이다.

스티븐 킹은 오랜 세월동안 여러 작품을 통해 작가로서의 능력을 증명한 훌륭한 작가니까.

하지만 내가 오웬 킹의 소설을 읽을 일은 없을 것이다.

p.s.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이 소설을 2020년에 "잠자는 미녀들"이라는 제목으로 번역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