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박사의 연구 [1] by 김동인

읽을꺼리 2007. 5. 9. 00:45 posted by 조재형

   김동인(1900~1951)님은 한국 소설계의 거장입니다. 학교 다닐 때 김동인님의 단편 "광염 소나타"를 읽고 뜨겁게 감동했었습니다. 그 작품 속에는 스티븐 킹이나 클라이브 바커 전혀 부럽지 않은 엄청난 광기의 세계가 숨어있었던 것입니다. 한국에도 이런 작가가 있었다니!

   지금 소개하는 "K박사의 연구"는 김동인님의 무서운(?) 이데올로기가 유감없이 표출된 굉장한 소설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K박사의 연구에 동참합시다. 두려워 말고~.

K박사의 연구 [1] by 김동인

(1929년 12월. 잡지 "신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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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선생은 이즈음 뭘하나?"

나는 어떤 날 K박사의 조수로 있는 C를 만나서 말 끝에 이런 말을 물어 보았다.

"노신다네."

"왜?"

"왜란?"

"그새 뭘 연구하고 있었지?"

"벌써 그만뒀지."

"왜 그만둬?"

"말하자면 장난이라네. 하기야 성공했지. 그렇지만 먹어 주질 않으니 어쩌나."

"먹다니?"

"글쎄. 이 사람아, 똥을 누가 먹어."

"똥?"

"자네 시식회에 안 왔었나?"

"시식회?"

C의 말은 전부 <?>였었다.

"시식회까지 모를 적에는 자네는 모르는 모양일세 그려. 그럼 내 이야기 해줄께 웃지 말구 듣게."

이러한 말끝에 C는 K박사의 연구며 그 성공에서 실패까지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     *     *     *     *     *     *     *     *     *     *

         맬더스라나.

        [사람은 기하학급으로 늘어 가고 먹을 것은 수학급으로밖에는 늘지 못한다]고 이런 말을 한 사람이 있지 않나. 박사의 연구도 이 말을 근본삼아 가지고 시작되었다네.

어떤 날(여름일세) 박사는 책을 보고 있고 나는 다른 생각을 하면서 같이 앉았었노라는데 박사가 머리를 번듯 들더니

"자네 똥 좀 퍼오게."

하데그려. 이게 무슨 말인지 알 수 있겠나. 그래서 똥이란 대변이느냐고 물었더니 대변 아닌 똥도 있느냐고 그래. 그래서 무슨 검사라도 할 일이 있는가 하고

"뉘 변을 말씀이외까."

했더니 벌꺽 성을 내면서 뉘 똥이던 퍼오라데그려, 너무 어망처망하여 가만 있었지. 글쎄(의사는 아니지만) 검사라도 할 양이면 뉘변이던 지적을 해야 하지 않는가. 그래서 박사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노라니깐 채근도 없어. 흥 잊었구나 하고 다시 앉으려 하니까,

"퍼왔나?"

하면서 일어서데그려. 자 이렇게 채근까지 하는 것을 보면 농담도 아니야, 할 수 없이 변소에 가서 내음새나는 것을 조금 퍼다가 박사께 드렸네그려. 그것을 힐끗 보더니 조금만 퍼왔다고 또 성을 내거든, 나도 슬그머니 결이 나데그려. 그래서 다시 가서 한 바가지 드북히 퍼왔지. 그러니깐야 만족하다는 듯이 웃더니 실험옷의 팔을 걷으면서 나도 연구실로 가자고 그래,

자네나 아다시피 내야 이학상 지식이야 어디 조금이라도 있나. 단지 박사의 서기로 들어가 있는 사람이니깐 좌우간 알던 모르던 따라 들어갔지. 박사는 똥을 떠 가지고 현미경으로 시험관에 넣어서 끓이며 세척하며 전기로 분해하며 별별짓을 다 해보더니 그래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지 저녁까지 굶어 가면서 밤새도록 가지고 그러데그려. 아무리 전기 환기 장치를 했다해도 그 내음새는 참 죽겠데. 코가 저리고 눈이 쓰리고 나는 참다 못해서 슬그머니 나와 버렸네그려. 그랬더니 새벽 두 시쯤 찾아. 그래서 가보니깐,

"이게 새 똥이냐, 낡은 똥이냐?"

또 묻데그려, 내니 어찌 알겠나, 변소에서 퍼온 뿐이지. 변의 신구야 알 리가 있겠나. 그래서 모르겠다고 그러니깐

"낡은 겐 모양이군. 다 썩었어. 낡은 게야."

혼자서 중얼중얼하더니 나더러 새 똥을 좀 누라데그려. 나도 성미가 그다지 곱지 못한 사람이라 마렵지 않노라고 해버리니깐 박사는 근심스러이 머리를 기웃기웃하더니,

"나두 그리 매렵지 않은걸.'

하면서 그릇을 가지고 저편 방에 가더니 마렵지 않다던 사람이 웬걸 그다지 누었는지 한 그릇 무더기 담긴 것을 가지고 들어오데그려, 아, 우습기도 하고 잠 못 자는 것이 일변 성도 나고 그래서 "밤참으로는 넉넉하겠읍니다."고 쏘아 주려다가 그래도 박사가 <마지메>하게 들여다보고 있는 것을 보니깐 그러지도 못하겠어. 그래서

"전 먼저 자겠읍니다."

하고 나와서 내 방으로 가서 자버렸지.

그 이튿날부터는 박사는 꼭 연구실에 틀어박히었는데 음식까지 그 내음새나는 방에서 먹고 하는데 오히려 불쌍하데, 땀을 빽빽 흘리면서 더러운 물건을 이리 주물고 저리 주무는 양은 우습기도 하거니와 한쪽으로 생각하면 그 사치하게 길러나고, 아무 고생이며 더러움을 체험해 보지 못한 박사가 연구 때문에 얼굴을 찌푸리고 내음새나는 방에서 음식까지 먹으며 밤잠까지 못 자며 돌아가는 것은 어떻게 엄숙해 보이기도 하고 존경할 생각도 나데.

이러구러 몇 달이 지났네. 무얼 하는지는 모르지만 대변을 분석해 가지고 무슨 유효성분을 얻어 보려는 것은 알겠데. 좌우간 낡은 똥은 쓸 수가 없다 해서 그 뒤부터는 집안 하인의 변까지 죄 그릇에 누어서 박사의 연구실로 들어가게 되었네그려. 그러니깐 변소는 늘 소변밖에는 아무것도 없었지. 집안 사람이래다 박사와 나와 행랑 식구 세 사람과 식모 하나 침모 하나와 사환애 둘이었는데, 때때로는 그 아홉 사람의 것으로도 부족될 때가 있어 그런 때는 박사는 가족이 이십 인이며 삼십 인이며 하는 사람들을 슬며시 부러워하는 기색까지 보이는데 연구 재료가 부족해서 박사가 안타까와 하며 발을 동동 구를 때는 너무 미안스러워서 될 수만 있으면 서너 동이씩 만들어 보고 싶데.

그러는 동안에 시골 계신 할머님이 세상을 떠나서 나는 시골 내려가서 한 달쯤 있다가 가을에야 다시 올라왔네그려. 그래서 곧 박사네 집으로 가서 짐을 풀은 뒤에 복동이(사환애)에게 물으니깐 박사는 역시 연구실에 있다 하기에 들어가서 인사를 드렸네, 박사는 무엇을 먹고 있었는데 몹시 반겨하면서 와서 같이 먹자고 그래, 오래간만에 맡으니깐 내음새는 꽤 지독하데,

연구실 한편 모퉁이에 조그만 책상을 놓고 거기서 박사는 점심을 먹고 있는데 나도 오라기에 교자를 하나 끄을고 그리로 갔지. 점심조차 떡 비슷한 것인데 맛은 <고깃국물을 조금 넣고 만들은 밥>이랄까 좌우간 그 비슷한 맛이 나는 아직껏 먹어 보지 못한 물건이야. 그래서 혹은 양식인가 하고 두어덩이 소금을 찍어서 먹으니깐

"맛 좋지?"

하고 묻데그려, 그래서 괜찮다고 하니깐

"똥내도 모르겠지?"

하고 또 묻데그려.

"?"

아닌게 아니라 내음새가 좀 나기는 하는 것을 이 방안의 공기 탓이라고 하고 그냥 먹었네그려.

그렇지만 박사의 그 말을 듣고 나니깐 혀 아래서 맑은 침이 핑그르르 돌더니 걷잡을 새 없이 구역이 나겠지. 그래서 변소로 가려고 일어서려다 그만 그자리에 욱하니 토하여버렸네.

"왜 그러나? 왜 그래 야 복동아, 수남아."

하면서 박사는 일어서서 나를 붙들어다가 소파에 뉘이려데그려. 아, 결도 나고 성도 나고 그래서 괜찮다고 하고 박사를 밀쳐 버리고 대체 그 먹은 것이 무엇인가고 물었네. 둔감한 박사는 내가 토한 원인을 그 때야 처음으로 알은 모양이데그려.

"먹은 것? 응 그것 말인가? 그것 때문에 토했나? 난 또 차멀미로 알았군. 그건 순전한 자양분일세. 하하하하하(박사는 웃을 경우에는 웃을 줄을 모르고, 웃지 않을 경우에는 잘 웃는 사람이라네) 건락(乾酪), 전분 지방 등 순전한 양소화물(良消化物)로 만들은 최신최량원식품(最新最良原食品)."

"원료는- 그- "

"그렇지 자네도 아다시피 그- "

나는 그 말을 채 듣지도 않고 다시 일어서면서 토했지. 좀 메스껍기도 하고 성도 나는 김에 박사의 얼굴을 향하여 토했네그려. 박사도 놀란 모양이야.

"아- 이 사람두. 야 수남아- 복동아- "

그때 결나는 것을 보아서는 박사를 한 대 쥐어박고 싶기는 하지만 꿀꺽 참고 내 방으로 돌아와서 이불을 쓰고 눕고 말았지. 그뒤 사흘 동안을 음식 하나 못 먹고 앓았네. 글쎄 구역에 음식을 어찌 먹겠나. 아무것이라도 뱃속에 들어만 가면 잠시를 머물러 있지 않고 도로 입으로 나오데그려. 아무것을 먹어도 그 내음새가 나는 것 같아.

박사는 미안한지 진토제를 주면서 잠시도 내 곁을 떠나지 않고 몸소 간호하겠지. 그러면서 연거퍼 자양분만 뽑아서 정제한 것이니깐 아무 불쾌할 리가 없다고 설명해 주네그려. 아닌게아니라 그러고 보니깐 나도 미안하데. 무슨 악의로써 내게다가 그것을 멕인 바도 아니오. 박사 자기도 먹으면서 내게도 좀 준 것이니 말하자면 원망할 것도 없어 박사의 말마따나 무슨 부정한 것이 섞인 배도 아니오, 과학의 힘으로써 가장 정밀히 만들은 것이겠으매 웬만한 음식점의 음식들보다는 훨씬 깨끗할 것일세. 그저 내 비위에 맞지 않는다는 것뿐이지...... 그것을 책임 관념상 박사가 그렇게 미안해 하는 것을 보니깐 오히려 내가 미안해 오데그려. 그래서 사흘째 되는 날 일어났지.

"그 음식이 더럽다는 것이 아니라 내 비위에 맞지 않는 것뿐이니깐 그 마음상만 고치면 되겠지요."

그리고 일어나서 먹기 싫은 음식을 억지로 먹으면서 연구실에 드나들기 시작하였네그려. 처음에는 참 역하데, 박사는 점심은 역시 손수 만들은 음식을 먹는데 그것을 보기만해도 구역이 탁탁 가슴에 치받치는데 참 못견디겠어. 박사는 먹기는 먹으면서도 미안한지,

"이게 어떻담, 하하하하하."

하면서 먹고 해.

그러는 가운데도 박사는 실험을 거듭하여 몇 가지 조미료를 가해서 맛에 대한 연구를 쌓데그려, 그리고 한 가지의 조미료를 더 넣을 때마다 자기가 몸소 맛 본 뒤에는 연대감정인으로 차마 내게는 먹어 보래지 못하고 복동아, 수남아 하여 가지고는 애들에게 먹어 보래지, 그애들이야말로 ありがためりわく(지나친 친절)야, 얼굴이 벌개지면서 주인의 명령이라 거역지는 못하고 입에 조금 넣는처럼 한 뒤에는 삼키지도 않고

"먼저번 것보담도 더 좋은걸요."

하고는 달아나고 하는 양은 가련해. 그럴 때마다 정직한 박사는 <득의만면>해 가지고 그러려니 그러려니 하면서 상금으로써 그애들에게 오십 전씩 준다네, <감정료>지.

박사의 말을 의지하건대 똥에는 음식의 <불능소화물> 즉 섬유며 <결체조직>이며 각물질이며 <장관내분비물의 불요분(不要分)> 즉 코라-고산(酸), 띄스린 <담즙점액소>들 밖에 부패산물인 스캇톨이며 인들이며 지방산들과 함께 아직 많은 건락과 전분과 지방이 남아 있는데 그것은 사람 사람에게 따라서 혹은 시간을 따라 각각 다르지만 그 양소화물이 삼 할에서 내지 칠 할까지는 그냥 남아서 홍문으로 나온다네그려. 그리고 그 대변 가운데 그냥 남아 있는 자양분은 아무도 돌아보는 사람이 없이 헛되이 썩어 버리는데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추출할 수만 있다 하며는 그야말로 식료품 문제에 위협 받는 인류의 큰 복음이 아닌가. 그래서 연지구지하여 그 방식을 발견하였다나. 말하자면 석탄의 완전연소와 마찬가지로 자양분의 완전소화를 계획하여 성공한 셈이지, 즉 대변을 분석해서 그 가운데 아직 삼 할 혹은 칠 할이나 남아있는 자양분을 자아내어 그것을 다시 먹자는 말일세그려.

그러니까 사람이 하루에 세 끼씩 먹는 가운데 두 끼는 보통 음식을 먹고 한 끼분은 그 새로운 주식품을 먹으면은 이 지구상의 식료원품이 삼 할 이상 늘어가는 셈 아닌가. 이 지구에 지금보다 인구가 삼 할쯤 한 오천만 명쯤은 더 많아져도 박사의 연구가 실현만되면 걱정이 없는 셈일세그려. 맬더스도 이후에 이런 천재가 나타날 줄은 몰랐기에 그런 걱정을 했지.

좌우간 그러는 동안에 조미(調味)에 대한 연구까지 끝나지 않았겠나. 나는 첫번 모르고 한 번 먹을 뿐 그 뒤에는 절대로 입에 대지도 않았고 박사도 내게는 권하지도 않았으니깐 모르지만 내음새는 마지막에는 꽤 좋은 내음새가 나데. 스끼야끼 비슷하고도 더 침이 도는 내음새야, 내음새뿐으로는 구미도 들데, 그만큼 되었으니깐 이제 남은 것은 <발표>라 하는 과정일세 그려. 박사는 어림도 없이 발명 경로를 신문에 발표한  뒤에 시식회를 열겠다고 그래. 그것을 내가 우쩍 말렸지. 나는 먹어도 못 보았지만 짐작컨대 맛은 괜찮은 모양인데-

그러니깐 그 맛있는 것을 먼저 먹여 놓은 뒤에 이것의 원료를 발표해야지. 먼저 원료를 발표하면 시식회에는 한 사람도 나오지도 않을 것일세그려. 그렇지 않나. 그래서 말렸더니 박사도 그럴듯한지 내 의견대로 하자고 그러더먼. 그리고 박사와 나와 의논한 결과 그 발명품의 이름은 박사의 이름을 따라 ○○병(餠)이라 하기로 하고 그 ○○병에 대한 성명서를 박사가 초(草)하였네. 지금 똑똑히 기억지는 못하지만 대략 이런 뜻이야.

- 생거(M.Sanger)라 하는 폭녀가 나타나서 산아제한을 주장한 것을 일부 인도주의자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거기도 상당한 근거가 있는 것을 어찌하랴. 위생관념이 많아 가면서 년(年)년이 사람의 죽는 율은 주는데 그에 반하여 이 지구는 더 커지지 않으니까 여기 사람의 나아갈 세 가지의 길이 생겼으니 하나는 <도로 옛날로 돌아가서 이 세상에서 위생이라 하는 것을 없이하고 살인기관으로 전쟁을 많이 하여 사람의 수효를 도태하는 것>이요, 또 하나는 <사람의 출세(出世)를 적게 하는 것>이요, 나머지는 <아직껏 돌아보지 않던 데서 식원료를 발견하는 것>이다. 여인인 생거는 이미 있는 인명을 없이하자 할 용기는 못 가졌었다. 여인인 생거는 신국면 발견이라 하는 천재적 두뇌도 못 가졌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고식적 구제책을 발견하였으니 그것이 <산아제한론>이다.

그러나 독창력과 발명력을 가진 오인은 그러한 고식책으로써는 만족지 못할지니 오인의 연구는 여기서 비롯하였다. 오인의 매일 배설하는 대변에는 아직 많은 자양분이 남아 있으니 그 전분량의 삼 할 내지 칠 할-평균 잡아서 오 할 약(弱)이나 되는 자양분은 헛되이 땅 속에서 썩어 버린다.

(그리고 대변에 대한 분석표며 그 밖 숫자가 있지만 그것은 약해 버리세.)

이것을 헛되이 썩여 버릴 필요는 없다. 이것을 자아낼 수만 있다 하면 자아내어 가지고 오인의 식탁에 올리는 것이 오인의 가장 정당한 행위라 아니할 수 없다. 각 가지로 각 방면에서 일어나는 온갖 고식적 문제도 그 근본을 캐자면 인류의 식료품 결핍이라는 무서운 예감 때문에 생겨난 신경과민적 부르짖음이라 할 수 있으니 인류의 생활이 유족하여지면 온갖 문제와 그 문제의 근본까지 저절로 사라질 것이다. 오인의 연구는 여기서 출발하였다.

(그리고 연구의 경로도 약해 버리지.)

이러한 동기 아래서 이러한 경로를 밟아서 생겨난 이 ○○병을 귀하의 식탁에 바치노니 고평(高評)을 바란다. 운운,

이것을 인쇄소에 보내서 썩 맵시나게 인쇄를 해왔겠지, 그리고 크리스마스를 기회로 박사댁에서 시식회를 열기로 각 방면에 초대장을 보냈네그려. 그 초대장에는 그저 ○○병이라 할 뿐 원료며 그 동기에 대해서는 찍소리도 없는 것은 다시 말할 필요는 없겠지.

크리스마스 한 사나흘 전부터는 꽤 분주하데. 겨울이라 대변의 자양분이 썩을 염려는 없어, 그래서 소제부에게 부탁해서 열 통을 사들였네그려, 그리고 그것을 분석하고 처리하고 하노라고 사나흘 동안은 박사, 나, 수남이, 복동이 임시 조수 두 사람, 모두 다 똥속에서 살았네그려, 더럽기가 짝이 있겠나, 에이 구역나, 생각만 해도 구역이 나서 못 견디겠네, 박사도 미안하긴 한 모양이야, 누가 청하지도 않는데 연방 조선호텔 한턱 쓰지하면서 복동아, 수남아, 하면서 돌아가네그려, 크리스마스 전날은 밤까지 새워 가면서 모두 만들어 놓은 뒤에 당일 아침에는 집을 씻느라고 또 야단이지 글쎄 이 방 저 방 할 것 없이 모두 똥내가 배어 들은 것을 어찌하나. 아닌게아니라 독한 놈의 내음샌데 배어들은 다음에는 빠지질 않아, 물로 약품으로 씻다못해서 마지막에는 향수를 막 뿌려서 내음새를 감추도록 해버렸지.

[2]편으로 이어집니다.

아이 오브 비홀더 [3] by 로드 설링

읽을꺼리 2007. 5. 9. 00:39 posted by 조재형

39. 어둠 속에 서있는 병실 안의 사람들.

무거운 침묵이 계속 되다가, 간호사 한 명이 기겁을 하며 어쩔줄을 모른다. 다른 간호사는 자기도 모르게 양손으로 얼굴을 가려서 눈 앞에 펼쳐진 믿을 수 없는 광경을 외면하려 애쓴다.


40. 의사의 손 근접촬영.

의사가 가위를 떨어뜨린다.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 어둠 속 다른 사람들 곁으로 피한다.


의사의 목소리: 안 변했어!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

 

41. 자넷 클로즈업.

그녀가 얼굴을 들어올린다. 그녀의 얼굴은 매우 아름답다. 그녀를 보면 누구나 호감을 가질만큼 매력적이다.


42. 자넷의 뒤에서 바라보는 시점.

그녀가 천천히 일어선다. 손을 들어올리더니, 고개를 숙여 양손에 얼굴을 묻는다. 주위는 조용한 가운데, 그녀가 최대한 감정을 억제하며 흐느낀다. 그러다 얼굴을 들어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죽 훑어보던 그녀가 갑자기 몸을 틀어 문을 향해 도망친다. 그러나 의사가 서둘러 앞을 막고 그녀를 붙잡는다.


의사: (병실 안에 있던 마취사에게) 빨리 주사를 놔요. 이렇게 돼서 정말 유감이군.

(간호사에게) 불 좀 켜요!


어둠 속에 있던 간호사가 전기 스위치쪽으로 간다.


43. 간호사의 손 근접촬영.

스위치를 켠다.


44-47. 두 명의 간호사, 마취사 그리고 의사의 모습이 차례대로 클로즈업된다.

각자의 얼굴이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다. 코, 눈, 입, 귀, 모든 것이 다. 마치 만화에 나오는 괴물같다. 그림이 생명을 얻어 살아난 듯한 모습들이다.


48. 마취사 근접촬영.

주사기를 들고 있는 마취사가 천천히 자넷에게 걸어간다. 그녀는 의사에게서 빠져나오려 몸부림치고 있다. 마취사가 주사바늘을 치켜드는 순간, 반항하던 자넷이 의사를 뿌리치더니 황급히 문을 열고 복도로 뛰쳐나간다.


49. 복도를 뛰어가는 자넷을 멀리서 촬영.

복도를 걸어가던 의사들과 간호사들을 놀래키며, 자넷이 달리고 있다. 그들 모두 방금 전 병실 안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상하고 흉칙스런 얼굴을 하고 있다.


50. 자넷의 병실 문 급접촬영.

의사가 뛰쳐나온다.


의사: (고함친다) 저 환자 잡아! 저 여자를 잡으라구!

 

51-53. 여러 각도에서 잡은 자넷의 모습.

그녀가 텅 빈 복도를 달린다.


54. 엘리베이터 운전원 근접촬영.

운전원이 엘리베이터 문을 여는 순간, 자넷이 그 앞을 지나간다. 다른 사람들처럼 운전원도 만화 괴물캐릭터같은 모습이다.


55. 수술실 의사 근접촬영.

수술실에서 나오던 한 의사가 수술마스크를 벗고 있을 때, 자넷이 그 앞을 뛰어간다. 그 의사 얼굴도 엘리베이터 운전원과 똑같다.

(자넷이 복도를 뛰어다니는 모습에 지도자 연설이 배경음으로 깔린다.


지도자의 목소리: 이제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다양성이 인정되는 사회라는 것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그 따위 사회는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정신나간 사람들은 여러분에게 소릴지르고 고함치고 헛소리를 해대면서 이제는 생명력을 잃어버린 퇴폐적인 과거시대의 모습들을 불러내,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에게 평등이란 것은 기회의 평등, 신분의 평등, 거창한 평등일 뿐입니다! 그들은 평등이라는 것이 형식과 신념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식으로 어처구니없이 불합리한 미친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가지 언어를 쓰고, 제멋대로 자라나서, 혼혈로 얽히고 설킨 수없이 다양한 인종들이 우리 지구를 뒤덮고 침투해서 타락시키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습니다!

(흥분해서 소리를 지른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오직 단 하나의 목표만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오직 단 하나의 표준! 오직 단 하나의 방식! 오직 단 한 종류의 인간! 오직 단 하나의 가치! 오직 단 하나의 도덕! 오직 단 하나의 규범! 오직 단 하나의 통치이념!

(또다시 언성이 높아진다) 우리는 인정할 수 없습니다... 과거시대의 감상주의가 침투해 우리의 확고한 의지를 무력화시키려는 상황을 결코 인정해서는 안됩니다. 다양성을 원하는 욕구가 암세포처럼 퍼지는 것을 우리는 과감히 제거해야만 합니다!


56. 뛰어가는 자넷.

복도를 따라 달리고 있다.

아이 오브 비홀더 [2] by 로드 설링

읽을꺼리 2007. 5. 9. 00:28 posted by 조재형

16. 실내. 병실. 밤. 자넷 타일러의 붕대얼굴 옆면을 근접촬영.

병실 끝에 의사와 간호사의 그림자가 보인다. 그들의 대화는 자세히 들리지 않는다. 웅얼거리는 그들의 말 속에서 가끔씩 "체온", "혈압", "갑상선", "주사"같은 단어들이 튀어나온다. 마침내 의사가 카메라와 침대쪽으로 한걸음 내딛는다. 얼굴은 어둠 속에 가려져 있다.


의사: (뒤를 돌아보며) 간호사, 11시쯤에 다시 체크해요. 그때가서 환자에게 진정제 투약하구.


간호사: 알겠습니다, 선생님.


의사가 침대로 다가서고, 카메라는 빙 돌아서 의사 뒤에 위치한다. 의사가 침대로 와서 자넷의 팔을 잡고 잠시 맥박을 잰다. 환자를 내려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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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오늘 저녁은 날씨가 따뜻했습니다, 미스 타일러.


자넷: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확실하진 않았지만.


의사: (옷깃을 매만지며) 아주 따뜻했어요, 진짜루. 얼마 안있으면 당신 붕대를 풀을 거에요. 좀 불편하더라도-


자넷: 얼굴에 붕대감고 있는 거 익숙해요.


의사: 그렇겠군요. 당신이 여기에 온 게... 벌써 9번째? 9번째던가?


자넷: 11번째죠.

(그녀의 붕대얼굴이 의사를 향하는 동안 잠시 침묵) 가끔씩 내 인생 전부를 어두운 동굴 속에서만 살아왔다는 생각을 해요. 벽이 죄다 엷은 거즈붕대로 이루어진 동굴. 동굴 입구에서 불어오는 바람에서는 항상 마취약과 소독약 냄새가 나죠.

(잠시 침묵) 선생님, 그래도 동굴 속의 삶은 편안해요. 너무나도 개인적인 삶이에요.

(얼굴을 돌린다) 아무도 나를 볼 수 없어요.

(잠시 침묵) 전 이제 희망이 없는거죠, 그렇죠, 선생님? 제 얼굴은 치료가 불가능할 거에요.


의사: (맥박 재던 환자 손목을 내려놓으며) 그렇게 단정짓긴 어렵습니다. 지금까지 당신의 증세는 약물이나 주사 또는 그 밖에 어떠한 치료법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실 미스 타일러 당신때문에 우리는 무척 괴로웠어요. 우리가 무슨 방법을 쓰든지 전혀 차도가 없으니. 하지만 우리는 이번 마지막 시도에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물론 장담은 못합니다.-결과는 붕대를 풀어봐야 알겠죠. 당신의 증세는 성형수술로 간단히 고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참 안타깝습니다. 골격, 피부타입... 수많은 요소들이 성형수술을 불가능하게 했습니다.


그가 몸을 돌린다. 카메라가 그의 움직임에 맞춰 원형으로 움직이므로, 화면에 그의 모습 전체가 잡히지는 않는다.


의사: (생각에 잠겨있다가) 11번째 입원이라.


침묵. 그는 침대 옆 작은 탁자로 가서, 탁자 위를 가볍게 두드려댄다.


17. 의사의 손가락 근접촬영.

손가락이 탁자를 두드린다.


18. 자넷이 있는 곳에서 몸을 축 늘어뜨린 의사쪽을 바라보는 시점.

침묵이 이어지다 결국 자넷이 침묵을 깨뜨린다.


자넷: 이번 치료가 마지막이죠? 이제 더이상 저는 치료받을 수 없겠죠.


의사: 11번까지가 규정이니까.

(어깨를 으쓱거린다) 11번 다음부터는 치료가 금지되어 있으니까.


자넷: 이제 어떡하죠?


의사: 흠, 미스 타일러는 마음이 조급해진 모양이군요. 이번에 마지막 시도로 했던 주사요법이 효과가 있을 겁니다. 붕대를 풀기 전까진 뭐라 딱 부러지게 말할 수는 없지만.


자넷: 그런데 이번에도 치료가 실패하면-그 땐 어떡해요?


의사: 그 땐 그때가서 또 방법이 있죠.


자넷: 어떤?


의사가 몸을 돌린다. 그의 등이 카메라에 잡힌다.


19. 의사의 등

(자넷을 바라보고 있다)


의사: 정말 몰라요?


자넷: (작은 소리로) 알아요.


의사: (침대로 다가서며) 물론 미스 타일러도 이러한 규정들이 왜 존재하는 것인지 충분히 이해하겠죠? 우리들 모두는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이 될 수 있도록 가능한 한 많은 기회를 부여받을 수 있습니다. 당신이 이제까지 입원하면서 들어간 시간과 돈과 노력을 생각해 봐요. 그 모든 것이 다 당신의 외모를-


그가 갑자기 말을 멈춘다. 적당한 말을 찾느라 고심하는 듯 고개를 떨군다.


자넷: 제 외모를?


의사: (손짓하며) 외모를 정상으로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당신의 희망대로.


20. 다른 각도에서 찍은 자넷.

팔꿈치로 몸을 지탱하며, 그녀가 침대에서 일어난다.


자넷: 선생님? 저, 밖에 나가도 돼요? 잔디밭에 좀 앉아있으면 안될까요? 아주 잠깐동안만. 꽃향기를 맡고 싶어요. 그냥... 그냥 맑은 공기를 느끼고 싶어요. 난 그저... 그저...

(그녀는 침대에 꽂꽂이 앉아있다. 목소리 톤에 힘이 들어가고 긴장감이 생기면서 거칠어진다) 믿고 싶은 거에요, 선생님! 나는 지금 정상이다라고 믿고 싶다구요. 지금처럼 밤에 밖에 나가 어둠 속에 앉아있으면, 모든 세상이 어둡다라는 걸 실감하게 되잖아요. 나도 남들처럼 어두운 세상의 일원이 되는 거에요. 얼굴에 붕대를 감은 괴상하고, 추하고, 보기 흉한 여자가 아니에요... 붕대때문에 혼자서만 어둠의 세계 속에 사는 유별난 존재가 아닌 거에요.


카메라가 그녀의 얼굴을 근접촬영한다. 이제 그녀의 목소리는 찢어질듯 날카롭고 불안정하다.


자넷: 나도 똑같아지고 싶어! 보통 사람들처럼 되고 싶다구요. 도와주세요, 선생님.

(흐느끼는 목소리로) 제발 저를 도와주세요.


카메라가 선회하며 어둠 속에 서있는 의사를 주시한다. 잠깐동안의 침묵 끝에, 의사가 조용히 말한다.


의사: 미스 타일러,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내 말 알겠어요? 혼자가 아닙니다. 당신과 같은 불행을 타고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당신같은 외모를 가진 사람들. 최후에 선택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만... 만약 이번에 했던 마지막 치료가 실패로 돌아간다면... 당신은 마음 편히 당신과 같은 종류의 사람들이 모여있는 특별구역으로 갈 수 있습니다.


자넷: (괴로운 목소리로) 나같은 사람들이라니!

(잠시 침묵) 모여 있다구요, 선생님? 모여 있는 게 아니죠, 격리돼 있는 거죠. 선생님 말씀은 갇혀있다는 걸 뜻하는 거에요. 선생님은 지금 수용소를 말하는 거잖아요.

(슬픔과 분노로 인해 날카롭게 고함지른다) 기형아들을 가둬놓는 수용소!


의사: (자넷에게 소리지르며) 미스 타일러! 정부는 자비를 베풀고 있어요. 당신이 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 것도 바고 그 때문입니다. 정부는 당신을 위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다 취하고 있는데. 그런데도 미스 타일러 당신은 이성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다니. 당신이란 존재는 원래대로라면 도저히 살 수 없단 말입니다...

(잠시 머뭇거리다 황급히 입을 연다) 정상인들과 함께는 도저히.


21. 자넷을 근접촬영.

붕대가 실룩거린다. 그 속의 얼굴이 일그러지기라도 하는 듯이.


자넷: 저도 사회에서 정상인들과 잘 살아갈 수 있어요. 마스크를 쓰거나 이렇게 붕대를 감고 다닐 수 있잖아요. 난 아무한테도 피해를 주지 않는다구요. 난 그저 조용히 내 삶을 살면 그만이에요. 일자리를 얻어서. 아무 일이나.

(격앙된 목소리로 변하며) 도대체 당신들이 잘 나면 얼마나 잘 낫길래. 이 놈의 정부란 건 또 뭐야? 이 모든 규정과 법규와 관습을 누가 만든 거죠? 정상인들과 다르게 생겨먹은 사람들은 격리돼야 한다니. 선생님, 정부는 하나님이 아니잖아요.


의사: (굳은 목소리로) 미스 타일러, 제발!


자넷: 정부는 하나님이 아니에요. 정상인들과 다르게 태어난 사람들을 죄인 취급할 권리가 정부한테는 없어요. 보기 흉하게 생긴 걸 범죄라고 주장할 권리가 정부한테는-


의사: (고함을 지르며) 미스 타일러, 무례한 언행을 당장 멈추시오! 지금, 미스 타일러, 지금 즉시!


카메라가 자넷을 비춘다. 그녀는 침대에서 빠져나와 머리를 푹 숙인 채 잠시동안 가만히 서있다. 그리고는 손을 앞으로 내민 채 천천히 병실을 가로질러 창문 앞에 선다. 창문을 만지고는, 붕대가 감겨있는 뺨을 창문에 갖다댄다.


22. 외부에서 창문을 바라보는 시점.

자넷의 손이 창틀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서 열려있는 창문 아랫부분에 닿는다. 열린 틈으로 그녀의 손이 들락날락거린다.


자넷: (조용한 소리로) 바깥세상의 밤이 느껴져요. 밤 공기가 느껴져요. 꽃냄새도 맡을 수 있어요.

(의사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양손이 얼굴붕대를 만지고 있다. 아주 작은, 조용한 소리로) 제발 이것 좀 풀어주세요. 제발 이것 좀 벗겨주세요.

(그러다 고함을 지른다) 이것 없애달란 말야!


그녀가 고함치며 붙잡고 있던 붕대를 손톱으로 마구 할퀸다.


23. 실내. 접수 데스크 뒤 작은 방 벽에 붙어있는 표시장치.

표시장치에 "307"이라는 숫자가 번쩍번쩍거린다. 배경음으로 붕대를 풀어달라고 외치는 자넷의 고함소리가 들린다. 간호사가 급히 카메라 앞을 지나간다. 카메라가 자넷의 병실을 향해 복도를 달려가는 간호사 뒤를 쫓아간다.


24. 실내. 창문 밖에서 병실 안을 들여다보는 시점.

의사가 난폭하게 몸부림치는 자넷의 몸과 한쪽 팔을 잡고 있다. 이제 막 병실로 뛰어들어온 간호사가 자넷의 나머지 한쪽 팔을 잡는다. 두사람이 환자를 침대로 끌고 간다. 이 장면은 판토마임처럼 인물들의 움직임이 강조돼야 한다. 마침내 침대에 눕혀진 자넷이 얌전해진다. 간호사는 병실 문을 지나 밖으로 나간다.

 

25. 실내. 복도. 접수대에 앉아있는 간호사가 보임.

읽고 있는 잡지표지에 간호사 얼굴이 가려져 있다. 자넷의 간호사가 카메라 앞을 지나 접수대 간호사에게 걸어간다.


자넷의 간호사: 의사 선생님이 307호 환자 붕대를 풀기로 결정했어. 선생님이 마취사를 준비시켜 달래.


26. 다른 각도에서 촬영한 접수대 간호사.

그녀가 몸을 돌린다.


간호사 2: 알았어. 그런데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말야, 이런 얼굴기형아들을 배려한답시구,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는 것 같아. 이런 돌연변이들은 애초에 처음부터 확 추방시켜버리는 게 좋잖아?


간호사 2가 다시 잡지를 집어들고는 앉아있는 의자를 다른 방향으로 돌린다.


27. 간호사 2의 등이 보임.

그녀의 어깨 뒤에서 촬영.


자넷의 간호사: 그게 정말 네가 원하는 거야? 만약 네가 그 환자랑 같은 처지였더라도 그랬을까?


간호사 2가 황급히 인터컴 호출기 버튼을 누른다.


간호사 2: 마취사, 이리로 와주세요. 307호입니다. 그래요. 환자가 난폭해질지 모르니까.


28. 실내. 복도의 접수 데스크. 밤.

간호사 한 명과 병원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잡역부 한 명이 빈둥거리고 있다. 잡역부가 손목시계를 들여다 보더니, 접수 데스크에 붙어있는 카운터 위에 놓인 커다란 TV를 쳐다본다.


잡역부: 오늘밤에 지도자께서 연설을 하신다는데. 좀 있으면 하겠다.


그가 일어나서 TV를 켜고는 담배에 불을 붙인다.


29. 성냥 근접촬영.

성냥이 재떨이로 들어간다. 바로 맞은편에 있는 TV 화면 속에는 멀리서 찍은 책상이 보이고, 책상 뒤편에는 어떤 조직을 상징하는 문양이 붙어 있다. 책상에 누군가 앉아있는데, 너무 멀어서 자세히 볼 수는 없고 대략적인 형체만 보인다. 아나운서의 엄숙한 목소리가 나온다.


아나운서: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신사숙녀 여러분, 우리의 지도자십니다.


청중들의 환호성과 박수소리가 나온 뒤, 방금 소개받은 신사의 우렁찬 음성이 들린다.


지도자의 목소리: 안녕하십니까, 신사숙녀 여러분. 오늘밤 나는 여러분에게 영광스러운 통일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하나로 통합된 우리 사회가 주는 궁극의 기쁨과 환희에 대해서 말입니다. 여러분은 물론 과거에 인간의 역사가 방향을 잃고 비생산적으로 타락하고 감상적으로 치우친 나머지, 의견의 차이가 자연스러운 것이며 사회를 건전하게 이끌어간다는 믿음이 팽배하던 시절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실 겁니다. 우리는 또한 그 시절에는 인간은 각자가 다른 존재이고, 개개인의 생각은 다양해서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것이 당연시되어, 세상은 이런 이질적인 요소들이 한데 모여 조화를 이룬다는 이상하고 유치하고 정신나간 생각이 존재했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가 깨달은 것은...


지도자의 목소리가 배경으로 깔리는 가운데, 카메라는 TV 속 지도자를 지나 병원 복도를 향한다. 지도자 연설은 앞으로 전개될 붕대 푸는 장면에서도 계속해서 배경음으로 깔린다.


30. 자넷의 병실 문을 다른 각도에서 촬영.

 

31. 실내. 병실. 밤.

자넷은 이제 병실 중앙에 놓인 의자에 앉아있다. 머리 위에서 하나뿐인 조명이 스포트라이트처럼 앉아있는 그녀를 비추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낮게 중얼거리고 있다. 그들이 그녀 앞을 걸어서 지나칠 때마다, 그녀의 붕대 위로 잠깐잠깐씩 그들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사라진다. 가끔씩 배경음으로 외부의 TV에서 흘러나오는 지도자 연설이 들려오고 있다. 그러다 병실 안에 있는 의사와 다른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대화가 중단된다. 의사의 몸이 카메라 앞으로 나온다. 카메라가 그의 오른손을 비춘다. 손에는 가위를 들고 있다.


의사: 미스 타일러,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이성적으로 행동하겠다고 약속해줘요. 짜증을 내지 마시오. 화를 내지 말아요. 그리고 폭력을 써서도 안됩니다. 알아 듣겠어요?


자넷이 고개를 끄덕인다.


의사: 이제 내가 어떻게 할 건지 정확히 알려 주겠어요. 우선 당신 머리 왼쪽편에 있는 붕대를 자를 겁니다. 그런 다음 아주 천천히 붕대를 풀어나가는 것이죠. 이 과정은 느린 속도로 진행돼서, 당신이 빛에 적응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그 동안의 주사치료가 당신 시력에 영향을 끼쳤을테니까. 붕대를 푸는 동안 당신은 계속 눈을 뜬 상태를 유지하면서, 붕대가 한꺼풀씩 벗겨질 때마다 당신 눈 앞의 빛이 어떻게 보이는지 나에게 말해줘야 합니다.


자넷: (차분한 소리로) 알겠습니다.


32. 다른 각도에서 자넷의 옆얼굴 촬영.

자넷 얼굴 뒤로 의사의 몸이 보인다. 의사가 손에 쥔 가위를 치켜 올린다.


의사: 미스 타일러, 만약 지금부터 당신이 조금이라도 움직이거나 우리를 감정적으로 대하기 시작하면, 나는 지체없이 간호사들이 당신을 붙들고 마취사가 진정제를 투여하도록 만들 거에요. 알겠어요?


자넷: (중얼거리며) 약속해요... 가만 있을께요.


의사: 좋아요. 그럼 시작합시다.


가위가 의사 몸 앞으로 올라와서 카메라쪽으로 접근한다. 가위가 커다랗게 확대되어 화면을 가득 채운다. 가위가 움직이고, 절단된 붕대가 자넷의 머리에서 풀려나가면서 화면을 지나간다.


의사: 미스 타일러, 이제 빛이 보입니까?


자넷: 아주 조금. 보이는 게... 보이는 건 회색빛이에요.


의사: 좋아요, 계속 얌전히 있어줘요.


또다시 붕대 한꺼풀이 화면을 가로질러 풀려지고나서 붕대의 움직임이 멈춘다.


의사: 지금은 어때요, 미스 타일러?


자넷: 더 밝아졌어요. 아주 많이.


의사: 머리 위 조명등을 올려다 보세요.


33. 조명등을 올려다보는 시점.

붕대를 통해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태양빛이 보인다.


34. 의사 어깨 너머로 자넷 얼굴을 내려다보는 시점.

또다시 의사가 붕대 한꺼풀을 풀어버린다.


의사: 이번엔 어때요, 미스 타일러?


자넷: 밝아요, 아주 밝아요.


의사: 좋아요.

(계속 붕대를 풀다가 멈춘다) 미스 타일러, 이제 마지막으로 붕대 한 겹만 남았습니다.


자넷이 고개를 든다.


자넷: 보여요... 선생님 윤곽이 보여요. 아주 희미하지만... 선생님이 보여요.


의사: 미스 타일러, 이제 마지막 한 겹을 풀을 겁니다. 거울을 가져다 줄까요?


침묵이 흐른다.


자넷: 아뇨. 고맙지만 사양할래요. 거울 필요없어요.


병실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보려는 듯이, 자넷이 얼굴을 들어 두리번거린다.


35. 병실 안 사람들을 주욱 비추는 카메라.

마취사 한 명, 간호사 두 명이 어둠 속에 묻혀있다. 긴장한 채 움직임없이 서있다.


36. 다른 각도에서 찍은 자넷.

그녀의 머리 뒤에서 바라보는 시점. 의사가 마지막 붕대를 잡는다.


의사: 미스 타일러, 이제 마지막 붕대를 풀 차례입니다. 하지만 그러기 전에 지금 내가 하는 말을 기억해줘요. 미스 타일러? 내 말 듣고 있어요?


자넷: 네, 듣고 있어요.


의사: 이제까지 우리는 최선을 다해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서 당신을 치료했습니다. 이제 붕대를 풀었을 때, 치료가 성공했으면 모든 것이 다 잘 된 겁니다. 아무런 문제도 없는거죠. 그렇지만 명심해야 됩니다. 만약 이번 마지막 치료도 예상했던 결과를 달성하는 데 실패한 것이면, 당신은 당신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에서 길고 편안한 인생을 살게 되는 겁니다. 이제 곧 우리는 결과를 확인하게 됩니다. 당신을 사회로 무사히 복귀시키느냐... 아니면-


의사의 말이 중단됨.


37. 카메라가 어둠 속에 서있는 병실 안 사람들을 주욱 비춘다.

병실 안 사람들의 모습에 뒤이어 엷은 붕대만 걸치고 있는 자넷의 얼굴이 보인다. 자넷의 얼굴이 명확하게 드러나진 않지만, 눈, 코, 입같은 이목구비의 윤곽을 어느 정도 볼 수 있다.


자넷: 의사 선생님?


의사: 말해봐요.


자넷: 만약 내가 여전히... 여전히 얼굴이 추한 상태면, 그 땐 어떤 다른 조치가 취해질 수도 있나요? 내 생명이... 내 생명이 제거될 수도 있어요?


의사: 어떤 경우에는 말입니다, 미스 타일러... 정부는 삶을 포기한 사람들에게 생명을 끊어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결정이 내려지려면 여러가지 조건들이 고려돼야 합니다.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하죠. 나이... 신체조건... 내 생각엔 당신이라면 당신같은... 당신같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있는 집단으로 옮겨지는 쪽이 유력할 것 같군요.


자넷: 그럼 치료가 실패하면 선생님은 저를 그 곳으로 보낼거라는 뜻인가요?


의사: 결국 그렇게 되겠죠. 미스 타일러, 이제 붕대를 풀겠어요. 얌전히 있어야 됩니다. 눈을 계속 뜬 채로.


38. 의사 뒤에서 바라보는 시점.

의사가 마지막 붕대를 풀기 시작한다. 첫번째 붕대끈이 머리 꼭대기에서 풀려나가고, 두번째 붕대끈이 풀리면서 자넷의 이마가 드러난다. 그 다음 붕대끈이 풀리자 그녀의 눈썹과 눈 윗부분 일부가 드러난다.


의사: 자, 미스 타일러. 이제 진짜 마지막까지 왔습니다. 당신에게 행운이 함께 하길 바랍니다.


의사가 마지막 붕대를 풀기 시작한다.

[3]편으로 이어진다.

아이 오브 비홀더 [1] by 로드 설링

읽을꺼리 2007. 5. 9. 00:25 posted by 조재형

아이 오브 비홀더  by 로드 설링

(The Eye of the Beholder)

   환상특급(The Twilight Zone)은 1959~1965년 사이에 미국에서 방영된 TV시리즈입니다.(KBS TV에서 방영했던 것은 80년대에 다시 제작된 시리즈입니다.) 환상특급은 로드 설링(Rod Serling)이라는 걸출한 작가가 창조해냈으며, 각각의 에피소드가 풀어놓는 상상을 초월하는 이야기에 많은 사람들이 흠뻑 빠져들었다...고 스티븐 킹이 쓴 공포문화 비평서 "죽음의 춤(Danse Macabre)"에 적혀 있습니다.

   지금 소개하는 아이 오브 비홀더(The Eye of the Beholder)는 설링이 쓴 각본이며, 1960년 11월 11일에 방영되었습니다. 환상특급의 에피소드들 중 걸작이라고 평가받는 작품입니다.


       1. 오프닝 화면


나레이션: 인간의 지식을 초월한 5차원의 세계가 있다. 그 곳은 우주처럼 광활하며, 영원처럼 시간의 한계가 없다. 그 곳은 빛과 그림자, 과학과 미신, 인간 공포의 밑바닥과 인간 지식의 꼭대기 사이에 위치한 중간세계. 그 곳은 상상력이 빚어낸 차원의 세계. 우리는 그 곳을 환상특급의 세계(The Twilight Zone)라 부른다.


인간의 눈이 황혼녘의 불타는 태양으로 변하는 오프닝 화면 등장.


2. 실내. 병실. 밤.

병실 안에는 덜렁 침대와 그 옆의 작은 탁자뿐이다. 카메라가 천천히 침대로 접근하다 침대에 누워있는 자넷 타일러를 내려다보는 시점에서 고정된다. 그녀의 얼굴은 완전히 붕대로 칭칭 감싸져 있고, 입있는 곳만이 살짝 붕대가 벌어져 있다. 그녀는 움직이지 않는다. 고요한 어둠 속에서 살아있기를 단념하고 그녀의 신체 일부분임을 포기라도 하는 듯이, 그녀의 양손은 힘없이 축 늘어져 있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곧이어 약병들을 실은 수레가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붕대얼굴이 소리나는 쪽으로 움직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3. 병실 안쪽에서 문쪽을 바라보는 시점.

간호사가 들어와 문 옆에 수레를 놓아둔다. 침대를 비추는 조명의 위치로 인해 병실 가장자리는 어둡게 되어 있고, 그 때문에 간호사는 검은 실루엣으로만 보이고 얼굴은 드러나지 않는다. 간호사의 목소리에는 직업적인 무뚝뚝함과 지루해하는 느낌이 배어있다.


자넷: 간호사?


간호사: 수면제 가져왔어요.


자넷: 벌써 밤인가?


간호사: 9시 30분입니다.


4. 다른 각도에서 촬영한 자넷

그녀의 얼굴이 천장을 바라본다.


자넷: 오늘 낮은 어땠죠?


간호사: 뭐가요?


자넷: 아름다운 날이었어요? 해가 나왔나요? 날씨는 따뜻했을까?


5. 카메라가 간호사쪽으로 이동

카메라가 간호사 등쪽을 찍는다. 간호사가 침대로 와서 붕대를 감은 여자에게 약을 먹인다.


간호사: 따뜻한 편이었어요.


자넷: 구름은요? 하늘에 구름이 있었어요?


간호사가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목소리에는 지겨운 기색이 역력하다.


간호사: 있었겠죠 뭐. 맨날 하늘만 쳐다보고 사는 게 아니라서 잘 몰라요.


간호사가 수면제 약병을 주머니에 넣고는, 온도계를 흔든다.


자넷: 난 구름을 보는 걸 많이 좋아했어요. 구름을 오랫동안 쳐다보고 있잖아요, 그러면 구름이 재미있는 모양으로 변해요. 간호사 언니도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죠? 배, 사람, 양치는 목장... 별의별 모양이 다 나와요. 정말이에요. 아주 오랫동안 구름을 보고 있으면요.


간호사: 이제 체온을 재겠어요.


간호사가 자넷의 입쪽으로 체온계를 움직인다.


자넷: 저기, 물어보고 싶은 게 하나 더 있는데...


간호사: 뭐요?


자넷: 언제쯤... 언제쯤이면 이 붕대를 풀 수 있을까요?


6. 체온계 근접촬영

자넷 입으로 향하던 체온계를 다시 간호사가 가져간다.


7. 다른 각도로 길게 찍은 화면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 질문에 반응해서 몸을 돌리는 간호사. 자넷의 머리가 간호사쪽을 향한다.


자넷: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간호사: 그러니까... 의사 선생님께서 환자분의 얼굴을 고칠 수 있을지 없을지 결정할 때 붕대를 풀거에요.


자넷: (조용한 목소리로) 오. 내 생각엔... 내 생각엔 내 얼굴상태가 무척 심각한 것 같아요. 그렇죠?


8. 간호사 어깨 너머에서 자넷을 바라보는 시점.


간호사: 더 상태가 안좋은 환자도 있었어요.


자넷: 그치만 내 얼굴도 무척 심각해요. 그렇죠? 상태가 아주 안좋다는 거 나도 알아요. 옛날부터 그랬어요... 내가 아주 어린 꼬마였을 때부터... 사람들이 전부다 나를 피해다녔어요. 맨처음으로 충격받았던 때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요. 어린애가 나를 보더니 비명을 질러댔어요.


9. 붕대얼굴 옆면을 근접촬영.

자넷이 또다시 고개를 돌린다.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럽지만, 절망과 고통 그리고 분노의 감정이 실려있다.


자넷: 나는 아름다워지는 걸 원치 않아요. 그림처럼 예쁘게 보이고 싶은 맘은 추호도 없어요. 나는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없어요.

(잠시 침묵) 내가 원하는 건 그저... 그저 사람들이 나를 볼 때마다 비명을 지르지만 않았으면 좋겠어요.

(붕대얼굴이 간호사쪽을 향한다) 언제죠? 언제쯤이면 붕대를 벗을 수 있어요?


10. 간호사 뒤에서 바라보는 시점.

간호사가 자넷의 입에 체온계를 물리고는 몸을 돌린다. 가까이서 지켜보는 카메라는 간호사의 얼굴 아래 몸통부분을 찍고 있다. 간호사가 카메라를 지나서 병실 가장자리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 카메라 고정.


간호사: 내일쯤. 어쩌면 그 다음날. 자넷은 지금까지 아주 오랫동안 기다려왔잖아요... 이제와서 이틀을 더 기다리나 몇 주를 더 기다리나 상관없잖아요?


11. 침대쪽을 향하는 시점.

자넷의 얼굴이 끄덕거리며, 상관없다는 뜻을 표시한다. 간호사가 시계를 보더니 침대로 와서 환자 입에서 체온계를 빼내 흔든다. 그리고는 카메라를 지나 병실 밖으로 나간다.


12. 실내. 병원 복도. 밤.

길고, 밋밋하고, 동굴같은, 터널같아 보이는 복도다. 흐릿한 조명 밑을 지나는 사람들-의사, 간호사, 환자-은 어둠 속에 묻혀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자넷의 병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접수 데스크가 있다. 그 곳에는 간호사 한명이 카메라를 등진 채 앉아있다.


13. 복도 끝에서 멀리 떨어진 접수 데스크를 보는 시점.

자넷과 같이 있던 간호사가 카메라 뒤에서 나타나 데스크로 걸어간다.


14. 인터컴 호출기를 멀리서 촬영.

카메라가 간호사 뒤에 머문 채, 접수 데스크 위의 인터컴쪽으로 이동.


15. 간호사의 손 클로즈업.

간호사가 인터컴 버튼을 누른다.


간호사: 닥터 버나디. 307호 환자 저녁 상태입니다. 현재 휴식중. 체온변화 없음.


의사 목소리: (인터컴을 통해 나옴) 고마워요, 간호사. 나중에 내려가 볼께요.


간호사가 버튼에서 손을 뗀다.


간호사 2: 그 여자 얼굴 봤어? 307호?


간호사: 그랬지. 내가 만약 그런 얼굴이었으면, 스스로 무덤을 파서 몸을 던져버렸을거야. 불쌍한 인간이지. 그 지경이 돼서도 살려고 발버둥치는 사람들이 있다니!

(잠시 침묵) 담배 있어?


카메라 앞으로 담뱃갑이 지나간다. 자넷의 간호사 손이 담뱃갑을 받아들고서 담배 한개비를 꺼낸 뒤, 카메라 시야를 벗어난다. 성냥불 켜지는 소리가 들리고, 담배연기가 피어오른다. 카메라가 휙 돌아가며 연기 사이로 길게 늘어진 복도와 자넷의 병실쪽을 비춘다. 여기서 카메라 고정. 카메라 뒤에서 나와 복도쪽으로 걸어가던 간호사 둘이 순간적으로 굳어진다. 정지화면과 함께 환상특급의 사회자 겸 대본작가인 설링의 목소리가 나온다.


설링의 목소리: 잠시동안 시간과 공간을 정지시켰습니다.


자넷의 병실에서 설링이 걸어나온다. 설링 뒤에는 돌처럼 굳어버린 간호사 둘이 서있다.


설링: 여러분은 조금전 미스 자넷 타일러를 만나보셨습니다. 그녀는 지금 아주 개인적인 어둠의 세계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녀의 얼굴을 뒤덮고 있는 붕대의 사이즈, 두께, 길이로 이루어진 세계인 것입니다. 잠시후 우린 다시 이 병실 안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그리고 붕대 속 얼굴을 보게 될 것입니다.

(잠시 침묵) 명심하세요. 앞으로 무엇을 보게 되더라도 놀라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이 곳은 평범한 병원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307호 환자도 평범한 여성이 아니니까요. 이 모든 것이 환상특급의 세계 속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307호 환자 미스 자넷 타일러와 함께 환상특급의 세계 속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킬 러 (The Killer) by 스티븐 킹

읽을꺼리 2007. 5. 9. 00:17 posted by 조재형
  "킬러"는 스티븐 킹이 소년 시절에 잡지 편집인 Forrest J. Ackerman에게 투고했다 퇴짜맞은 단편소설입니다. 하지만 "킬러"는 결국 1994년 잡지 "Famous Monsters of Filmland"에 실리고야 말았습니다. 소년의 꿈이 어른이 되어서 이루어지다... 멋지네요. 단편소설 "킬러"와 관련된 애뜻한 사연은 킹의 글쓰기 지침서 "유혹하는 글쓰기 On Writing"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습니다.(영문 원고 윗쪽에는 킹이 Ackerman에게 적어준 사인이 보이네요.)

※ 영문 원고 아래에 한글로 번역해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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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  러 (The Killer)  by 스티븐 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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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갑작스럽게 정신을 차렸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지금 군수공장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자기 이름도, 하고 있던 일이 무엇이었는지도 기억할 수 없었다. 그는 아무것도 기억해낼 수 없었다.

그가 있는 곳은 조립라인과 컨베이어 벨트, 그리고 기계부품들이 내는 철컥-철컹 소리가 맞물려 돌아가는 커다란 공장이었다.

그는 기계가 자동으로 포장해 놓은 상자에 담겨있던 완성품 총들 중에서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가 얼마 전까지 이 조립기계를 작동시키고 있었던 것이 확실했다. 그러나 지금은 기계가 작동을 멈추고 있다.

순간적으로 총을 집어드는 느낌이 그에게는 자연스러웠다. 그는 좁은 통로를 따라 공장 안을 천천히 돌아다녔다. 어떤 남자가 총알을 포장하고 있었다. "나는 누구지?" 그는 더듬거리며 천천히 말했다.

총알 포장하던 남자는 계속 일만 했다. 고개를 들어 쳐다보지도 않았고, 남의 말을 들었다는 아무런 표현도 하지 않았다.

"나는 누구야? 도대체 나는 누구냔말야?" 그는 소리쳤다. 둥근 천장의 공장 안에 그가 내지른 고함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아무것도 변하는 것은 없었다. 사람들은 아무런 대꾸도 없이, 그저 작업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그는 포장작업하는 남자의 머리를 총으로 후려쳤다. 작업하던 남자는 머리 깨지는 소리를 내며 앞으로 고꾸라졌고, 총알들이 공장 바닥으로 쏟아졌다.

그는 총알 하나를 집었다. 가지고 있던 총에 딱 맞는 총알이었다. 그는 총알들을 총 속에 채워 넣었다.

위에서 쿵쾅거리는 발소리가 들려서 올려다보니, 윗층 통로를 따라 걷고 있는 한 남자가 보였다. "나는 누구야!?" 그는 대답을 들을 수 있으리라곤 생각지도 않은 채 소리질렀다.

그런데 윗층 남자가 아래를 내려다보더니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는 총을 위로 들어올려 두번 쏘았다. 도망치던 남자가 멈추더니 곧 무릎을 꿇으며 쓰러졌다. 그렇지만 쓰러지기 전 그 남자는 벽에 붙은 빨간 단추를 눌러 버렸다.

사이렌 소리가 커다랗고 우렁차게 울려대기 시작했다.

"킬러! 킬러! 킬러!" 확성기가 쩌렁쩌렁 울부짖었다.

공장 안의 일꾼들은 고개를 쳐들지도 않았다. 그저 묵묵히 작업만 열심히 하고 있었다.

그는 사이렌과 확성기 소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뛰어 다녔다. 문이 보이자, 그쪽을 향해 달려갔다. 문을 열어보니 제복을 입은 네 사람이 서 있었다. 그 사람들이 그를 향해 괴상하게 생긴 에너지 총을 쏘아댔다. 총에서 발사된 번갯불이 그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총을 세번 쏴서 반격했다. 제복인간들 중 한명이 쓰러졌고, 들고 있던 에너지 총이 바닥에 떨어져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는 반대쪽으로 도망쳤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다른 문에서 튀어나와 쫓아왔다. 그는 정신없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들이 사방에서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 빠져나가야만 했다!

그는 윗층을 향해 높이 더 높이 올라갔다. 하지만 윗층에는 더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는 꼼짝없이 덫에 걸린 꼴이 되었다. 총알이 다 떨어질 때까지 그는 총을 난사했다.

사람들이 그를 향해 모여들었다. 일부는 위에서 내려왔고, 일부는 아래에서 올라왔다. "제발! 쏘지마! 나는 그저 내가 누군지 알고 싶을 뿐이야!"

사람들이 에너지 총을 쐈다. 에너지 빔들이 그를 덮쳤다. 모든 것이 까만 어둠 속에 묻혀 버렸고...

*     *     *     *     *     *     *

난동을 부린 녀석을 실은 트럭의 문이 닫혔다. 경비원들이 트럭이 굴러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잊을만하면 꼭 놈들 중 한 놈이 킬러로 홰까닥 돌아버리는구만." 경비원들 중 한 명이 말했다.

"난 도무지 이해가 안되네." 옆에 있던 또다른 경비원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저 놈을 잡을 때 말야. 저 놈이 했던 말. --"나는 그저 내가 누군지 알고 싶을 뿐이야." 그런 말을 하더라구. 그러니까 진짜 사람처럼 보이는거 있지. 요즘에는 사람들이 말이야 로봇들을 너무 잘 만드는 거 같애."

경비원들이 커브길을 돌아 사라져가는 로봇 수리 트럭을 지켜보고 있었다.

--  The En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