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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ximum Overdrive

(1986년 스티븐 킹 감독-각본-출연 영화)

예전에 동네 비디오가게에서 "슬립워커스"라는 영화를 빌려다 본 적이 있다. 스티븐 킹이 최초로 오리지널 영화시나리오에 도전한 작품이라고 해서 잔뜩 기대하고 봤다가 슬픔을 맛보았다. 이상하게 지루했던 그 영화에서 나를 사로잡았던 것은 엄마 슬립워커스로 열연한 여배우의 도발적 매력과 슬립워커스의 유혹을 받는 여학생으로 열연한 여배우의 건강한 에로틱이었다. 그 뿐. 그 영화는 두여성을 빼면 아무런 흥미도 느낄 수 없었다. 그런데 영화 중간쯤에 난 두번 놀라고 말았다.

첫번째 놀란건 스티븐 킹이 어벙한 묘지관리인으로 출연한 것이다. 그때는 킹이 영화카메오로 출연하는 것을 취미로 즐긴다는 사실을 몰랐던 때여서 너무 놀랐다. 킹은 영화속에서 묘지에서 일어난 사건에 놀라 현장에 출동한 경찰들에게 횡설수설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그때 경찰로 출연한 사람들은 영화감독들이다. 존 랜디스(런던의 늑대인간), 클라이브 바커(헬레이져), 토브 후퍼(텍사스 전기톱살인사건), 조 단테(그렘린). 하여간에 킹의 모습을 책표지의 고정된 사진이 아니라 움직이는 모습으로 자세히 볼 수 있어서 신기하고 기뻤다.

두번째로 놀란 건 킹의 연기력이 굉장히 뛰어났다는 것이다. 어리둥절해서 횡설수설하는 묘지관리인의 모습을 놀라울 정도로 리얼하게 연기하는 것을 보고 감동했던 기억이 난다.(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그는 배우소질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슬립워커스가 비록 지루한 영화였지만 킹의 열연을 본 것만으로도 돈내고 비디오테이프 빌려온 본전은 뽑았다는 생각이 들어 보람있었다. (그후로 내가 본 영화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작품으로는 Langoliers를 꼽고 싶다) 혹시나 조바심에서 하는 말이지만, 영화속 킹의 분위기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나 브래드 피트로 상상하는 우를 범하지 말도록 당부하고 싶다.

그후 시간이 흘러 나는 바로 지금 소개할 Maximum Overdrive에 관한 소문을 듣게 되었다. 이 영화는 킹의 단편집 Night Shift 중 Trucks라는 단편을 각색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Maximum Overdrive는 스티븐 킹이 시나리오를 썼을 뿐 아니라 직접 감독도 하고 출연도 했다는 사실이다.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춤까지 췄다. 킹의 팬이라면 정말 기대되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난 이 영화를 보는 것을 주저했다. 슬립워커스의 지루한 악몽이 되살아났을 뿐 아니라 이 영화가 미국개봉 당시 감독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별로 성공하지 못해서 "한눈팔지 말고 소설이나 써라!"라는 고마운 충고까지 울려 퍼졌던 문제작이라는 것이 맘에 걸렸다. 이 영화가 졸작이라는데 반대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오랜시간을 방황했는데, 결국 이 영화를 빌려보기로 결단을 내리고 말았다. 영화가 아무리 재미없더라도 슬립워커스처럼 흐뭇한 누나들이 출연할 것만 같았고, 아무리 엉망일지라도 킹의 감독실력을 확인하고 싶었으며, 감동적인 킹의 연기를 다시 한번 온몸으로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네 비디오가게로 달려 갔는데, 그런 영화는 없다는 주인아저씨의 말씀! 왜 이렇게 우리 동네는 문화의 불모지인지 가슴아팠다. 어쩔수 없이 그 후로도 오랜 시간을 방황하다 2001년에 들어서야 겨우 테이프를 구해서 볼 수 있었다.

국내출시명은 "맥시멈 오버드라이브"다. 위에 보이는 그림이 바로 국내출시 테이프표지다. 주인공인 에밀리오 에스테베스가 우리를 향해 강력한 눈초리로 말하는 것이 느껴지지 않는가? "이 영화를 꼭 보세요. 한마디로 죽음입니다. 제가 이렇게까지 망가지면서 찍은 영화는 이 영화가 처음입니다." 특이한 것은 테이프케이스에는 감독이 존 카펜터라고 나와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카펜터의 명성을 판매량과 연결시키기 위한 업체측의 잔머리인것 같은데, 킹의 팬으로서 정말 화나는 일이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는 친절하게도 한글자막으로 "스테핀 킹 감독"이라고 유머러스하게 진실을 말해준다)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르며 Maximum Overdrive를 보기 시작했다. 오프닝에 "스티븐 킹 영화 a film by Stephen King"이라는 자막이 떠오를때 얼마나 흥분되던지. 오냐 얼마나 졸작인지 내가 당당하게 평가해주마! 이 영화의 줄거리는 테이프케이스 뒷면에 자세히 나와있다.

[1987년. 지구는 거대한 혜성 RHEA-M의 궤도를 스쳐 지나간다. 바로 그때, 지구의 모든 기계가 반란을 시작한다. 인간의 의지로 움직이던 기계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동작하면서 옛주인들을 습격한다. RHEA-M 혜성의 영향권 내에 속한 8일간 지구는 일대 살육의 현장으로 변한다. 인간의 모습은 자취를 감추고 기계의 굉음만이 요란한 한 마을에 일단의 젊은이들이 RHEA-M의 무시무시한 파워에 대항하여 무기를 들었다.]

바로 이것이다. 저절로 움직이는 기계들에 맞서 싸우는 인간들의 처절한 투쟁! 기계라고 표현되었지만, 영화 속에서 주로 등장하는 것은 거대한 트럭들이다. 저절로 움직이며 사람죽이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트럭들이 고속도로 휴게소를 포위하게 되는데, 휴게소 안에 갇히게 된 사람들이 위기를 돌파하는 과정이 그려지고 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에밀리오지만, 트럭쪽에서도 주인공격인 트럭이 나온다. 장난감회사 운송트럭인데, 트럭 앞에는 커다란 악마얼굴이 붙어있고 뒷쪽에는 기분나쁜 삐에로(It의 페니와이즈?)가 그려져 있다. 이 놈이 화날때는 악마의 눈에 불이 켜진다. 이 매력적인 트럭을 앞세운 폭주트럭들이 사람들을 차례로 깔아뭉개는 장면들이 이 영화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이 사나운 트럭들의 공격(나중에는 건설장비들까지 달려온다) 앞에서 과연 에밀리오를 비롯한 사람들은 어떻게 몸부림칠 것인가.

결론적으로 말해서 나는 이 영화를 아주 재미있게 보았다. 졸작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킹이 조롱받을 정도로 잘못을 저지른 영화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슬립워커스보다는 10배정도 좋았다. 영화사이트 IMDB에 가보면 방문객들이 Maximum Overdrive에 점수를 준 결과가 나와있다. 1006명이 점수를 주었는데 평균을 내보니 10점 만점에 3.9점이다.(여러분도 지금 투표에 참가할 수가 있다. 나는 10점을 주려다 차마 그러지 못하고 울면서 뛰쳐나왔다.) 이 영화가 졸작이라고 인정받고 낮은 평가를 받는 것은 킹의 소설 속에서 보이는 실감나는 압도적인 공포가 없기 때문인 것 같다. 사실 이 영화는 엑소시트스나 오멘같은 영화에 비하면 코미디영화라고 불러도 손색없을 정도로 전혀 무섭지 않다. 그리고 원작소설을 읽은 팬이 아니라면 영화가 축축 처지면서 지루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킹은 최선을 다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분야를 열심히 만든 죄밖에 없다. 그는 B급영화의 열렬한 팬이다.

그가 집필한 호러비평서 Danse Macabre를 보면 킹이 얼마나 B급공포영화들에 애착을 가지고 성장했는지 잘 나와있다. 그는 극장에서 원숭이 털옷을 입고 어항을 머리에 뒤집어 쓴 괴물과 고무옷을 입고 기어가는 왕거머리 같은 괴물들이 나오는 B급 공포영화들을 관심있게 보며 소설가로 성장해 온 것이다. 그런 그가 생전 처음으로 만든 영화가 익숙한 B급 공포영화의 뒤를 따랐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듯 싶다. (Maximum Overdrive가 B급이라는 증거는 결정적으로 영화 맨뒤에 나오는 자막에 있다. 그 자막은 기계들의 반란이 어떻게 해결되는지를 설명해주는데, 읽어보면 황당해서 웃음이 터진다. B급이 아니고서는 시도할 수 없는 대담한 내용이니, 여러분도 직접 이 영화를 보고 내가 느꼈던 기분을 함께 하시길.)

나도 B급 영화의 열렬한 팬이다. B급 액션영화(LA용팔이), B급 공포영화(월하의 공동묘지), B급 에로영화(애마부인), B급 멜로영화(내가 버린 여자)를 너무도 사랑한다. B급 영화는 지루하면서도 허술한 내용전개가 역설적이게도 매력적으로 작용하여 인간의 굳어버린 가녀린 감정선에 불을 땡긴다. 그런 점을 나는 좋아한다. 그런 나 자신은 당연히 스티븐 킹의 B급영화 Maximum Overdrive를 미워할 수가 없다. 당당히 만점 10점을 주고 싶다. 너무 재밌어서 오랜만에 막 웃을 수 있었던 공포영화였다. 류승완 감독의 다찌마와 Lee를 보고 박수칠 수 있는 사람이라면, Maximum Overdrive를 보고도 감탄사가 튀어나올 것이다. "숨어있는 걸작"이라는 말과 함께.

Maximum Overdrive에는 여러 배우들이 나와 B급영화다운 연기를 펼치는데, 가장 돋보이는 사람은 뭐니뭐니해도 스티븐 킹이다. 영화 맨앞에 아주 짧게 등장하지만 확실하게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명연기를 보여준다. 킹이 다가선 현금지급기가 asshole이란 단어를 화면가득 쏟아내자 그는 화들짝 놀라는 연기를 펼치며 아내를 부른다. "여보, 얘가 나보고 asshole이라고 놀려!" 이 장면에서 킹의 아내 태비사가 출연했으면하고 바랬지만 나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서 영화 속에서는 에밀리오의 파트너로 거친 매력을 발산하는 누님 한분이 출연해 주셔서 너무 고마웠다. (전문용어로 이런 여성을 "야생녀"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러나 그 누님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배우는 막 결혼식을 올린 신부로 나온 여성이다. 성숙한 외모와는 달리 어쩌면 그렇게 예쁘고 앙증맞은 목소리를 낼 수 있는지 너무 신기하고  흥미진진했다. 내 생각에는 이 영화를 밝은 분위기로 만드는데 단단히 한몫 한 것 같다. 여러분도 영화를 직접 보고 이 분의 목소리를 들을때 어떤 기분이 느껴지는지 체험해 보셨으면 좋겠다. 이 분의 명랑한 목소리만으로도 이 영화를 강력추천!

Maximum Overdrive 영화음악은 유명한 락그룹 AC/DC가 맡아서 신나는 음악을 들려준다. 기계들이 휩쓸고 지나간 마을에 시체들이 즐비한 상황을 보여주는 끔찍한 장면에서 신나는 락음악이 울려퍼지는 것은 좀 이해가 안가지만, 상식을 뛰어넘는 느닷없는 부조화가 B급영화의 생명이라고 생각하면 수긍이 간다. 어쨌든 음악은 신났다.

킹의 팬이라면 Maximum Overdrive를 볼 것을 권하고 싶다. 하지만 오래전에 출시된 영화라 동네 비디오가게에서 찾으면 없는 경우가 허다할 것이다. 미국에서는 DVD로도 나와있으니 능력되시는 분들은 구해 보시길.(하지만 보고 나서 나를 비난하지는 말기 바란다. B급영화의 감수성을 이해하도록 노력해주시길 바란다.) 당장 구해다 볼 수 없다면 인터넷에서 예고편을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매우 짧은 예고편이므로 과도한 기대는 하지 말기를.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스티븐 킹은 Maximum Overdrive의 흥행실패를 거울삼아 다시한번 영화감독에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만약 그 말이 현실로 이루어져 영화를 만든다면 이번에는 과연 어떤 영화가 나올지 궁금하다. B급도 좋지만, 이번엔 좀 무섭게 만들었으면 좋겠다. B급으로 만들면 나는 좋지만, B급의 환상적인 심오한 세계를 낯설어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악몽으로 다가올 것이다.

통제자들 / The Regulators

작품 감상문 2007.05.11 23:49 posted by 조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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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gulators

(1996년 리처드 바크먼 소설)

언젠가 서울대 영문과에서 심각한 회의가 열렸었다고 한다. 회의주제는 "이번 학기 영문과 교재로 스티븐 킹 소설을 채택할 것인가 말것인가?" 거듭되는 국내석학들의 심사숙고 마라톤 회의 끝에 없었던 일로 하자는 걸로 회의는 끝나버렸다고 한다.

이 사례는 현대 영어권 문학에서 스티븐 킹이 차지하는 위치를 상징하는 듯하다. 킹은 미국에서도 통속소설로 취급하는 공포소설 작가다. 그의 작품들은 세련된 인문학적 지식을 토대로 하는 것도 아니고, 상류층 지식인들이 좋아할 만한 고상한 문체를 사용하는 것도 아니다. 그의 작품들은 50년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호러장르에 충실한 소재를 가지고 속어, 비어, 욕설을 거침없이 당당하게 표현한다. 그러나 삼류공포소설의 요소를 두루 갖춘 그의 소설은 미국 출판계는 물론 세계 출판계를 호령하는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우리나라에는 아직 힘이 미치지 못하고 있지만...) 그는 현대 미국 문학계의 빼놓을 수 없는 유명인사가 된 것이다. 예술적인 소설작품을 발표하는 미국 소설가들은 많지만, 그들이 대중들에게 끼치는 영향력은 스티븐 킹에 비하면 아주 미미한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예술작가인들 대중들이 읽어주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인가? 비평가들에게만 읽히고 비평가들에게만 칭찬받는 작품을 발표하는 일이 작가에겐 즐거울까? 그에 비하면 킹의 작품들은 "읽는" 재미를 위해 부담없이 누구나 선뜻 집어들게 하는 힘을 발휘한다. 그건 노벨문학상 작가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노벨문학상 작가는 읽는 의욕을 저하시키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러니까 스티븐 킹이 제일이다.(말도 안되는 논리지만 밀어 부치자.) 스티븐 킹은 이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소설가다!(역시 난 킹의 열렬한 팬이야.) 스티븐 킹만이 진정한 소설가다!(나도 이렇게까지 뻔뻔스러워질 수가 있구나.)

The Regulators는 또다른 킹의 작품 Desperation과 한날 한시에 동시발표된 소설이다. 그만큼 두 소설간에는 비슷한 점이 많지만, 다른 점도 많다. Desperation이 스티븐 킹의 소설로 발표된데 비해서, The Regulators는 킹의 필명 리처드 바크먼 작품으로 발표되었다. 리처드 바크먼이라는 무명소설가는 1985년에 죽었지만, 아내가 뒤늦게 The Regulators 원고를 찾아낸 덕분에 96년에서야 출간되었다는 오묘한 설명과 함께. Desperation에 등장했던 수많은 인물들이 The Regulators에도 고스란히 등장한다는 것이 흥미롭다. 그러나 그때 그 설정 그대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인물설정을 색다르게 고쳐서 등장시켰기 때문에 Desperation을 막 읽고나서 The Regulators를 펴 든 독자라면 무척 산뜻한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래도 변치않는 인물(?)이 있다. Desperation에 이어서 Tak이라는 악령이 조금도 주눅들지 않은 당당한 모습으로 출연하고 있다.

1996년 7월 15일 오후 3시 45분. 화창한 여름 날씨에 젖어 있는 평화로운 중산층 주거지  poplar street. 두대의 밴 승합차량이 소리없이 들어와서는 주민들을 향해 총질을 해대기 시작한다. 총알세례 속에서 마을은 아수라장이 되고 사람들은 하나둘 목숨을 잃게 된다. 밴에서 총을 쏜 범인들이 나오는데, 놀랍게도 그들은 인간이 아니라 서부영화와 SF 애니메이션 주인공들이다. 더 놀라운 건 그때부터 마을이 점점더 이상하게 지형이 바뀌어 버린다는 것이다. 사막이 생기고, 선인장이 자라나고, 둥그런 덩굴뭉치들이 굴러다니고, 늑대 비스무리한 동물들이 어슬렁대고... 서부영화에 나오는 마을처럼 변모해 간다. 주민들은 고립된 상황 속에서 살 길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게 된다.

줄거리만으로 보면 참 만화적이다. 서부영화와 애니메이션 주인공들이 현실에 나타나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는다. 삼류만화같은 줄거리지만, 스티븐 킹은 이 소설을 절대로 삼류로 전락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소름끼치는 살육의 현장으로 독자를 이끌어 고립된 공간 속에서의 공포와 고통을 날것으로 맛보게 해준다. 밴에서 내린 괴물들이 벌이는 총격전 현장을 액션영화의 한장면처럼 역동적으로 묘사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The Regulators의 서문에 언급한 범죄소설가 짐 톰슨과 서부영화 감독 샘 페킨파의 모습들을 스티븐 킹 식으로 표현한 것 같다.

The Regulators는 소설 속에서 꼬마아이가 즐겨보는 서부영화 제목이기도 하다. 그 영화에서 한 총잡이가 이런 대사를 남긴다. "우린 이 마을을 지도에서 사라지게 만들거야!"

킹은 이 소설을 독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선사하기 위해 여러가지 자료들을  소설 중간중간 틈틈이 보여준다. 맨처음 우체국 소인이 찍혀있는 엽서로부터 시작해 일기, 신문기사, 영화평론서, 완구잡지 기사, 애니메이션 시나리오, 편지, 꼬마가 그린 그림(자동차에 탄 사람들이 집을 향해 총을 쏘고 있는 그림), 영화시나리오 등이 소설 속에 등장한다. 그 효과는 정말 대단해서 수많은 허구의 자료들을 접하는 동안 나는 이 소설이 진짜 일어났던 사건을 쓴 것처럼 실감나게 느껴졌다. 킹은 "읽는" 재미뿐만 아니라 "보는" 재미까지 선사하는 작가라는 것이 실감났다. 킹의 작품들을 보면 어느 순간 글씨체가 바뀐다거나 기호와 그림이 나오는 등 시각적인 면을 자극하는 부분이 많은데, 그런 점이 킹의 소설을 더 매력적으로 읽게 만든다.

Desperation의 Tak이 동물들을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능력을 주특기로 삼았던 데 반해, The Regulators의 Tak은 침투한 인간의 마음 속 생각을 현실에 구체화시켜 환상이 힘을 발휘하게 만든다. 그런 점은 It의 삐에로나 Four Past Midnight의 도서관경찰에 나오는 여자 도서관장과 통하는 부분이다. 어쩌면 그들은 서로 친척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행패를 부리면 스티븐 킹 조차도 말리지 못할 것이다.

The Regulators는 습격받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들을 차근차근 보여준다. 그 속에서는 서로를 도와주는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는가하면, 나 먼저 살겠다고 남을 못살게 구는 이기적인 사람의 모습도 묘사된다. 많은 등장인물들이 아웅다웅하며 움직이는 모습을 읽고 있으면 너무 재미있다.

그 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한 주민이 어깨부상을 당해서 피를 흘리며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이다. 주위 사람들이 도와주려고 하지만 환자는 고통때문에 마구 몸부림치며 정신을 못차린다. 사람들은 허리띠로 두 팔과 몸통을 한데 묶어 환자의 몸을 고정시키려 하는데 환자가 너무 발작하는 바람에 환자의 몸이... 이 소설을 읽으면서 참 복잡한 감정을 느꼈던 부분이다. 결과적으로는 매우 안쓰럽고 섬칫한 장면이지만, 옆에서 환자를 잡고 있다가 놀라는 등장인물의 모습을 생각하면 황당한 웃음이 삐질삐질 새어나왔다. 마치 상가집에 가서 문상하다가 살아생전 고인의 모습을 떠올리고는 상주 앞에서 왈칵 웃음이 터져나와 버리는 격이랄까. 여러분도 한번 그 부분을 읽어보시고 나처럼 황당한 기분을 느끼고 상큼해지시길 기원합니다.

이 소설은 그림으로 시작해서 그림으로 끝난다. 소설 앞머리에 나오는 그림은 총격전이 벌어지는 마을의 약도이다. 손으로 그려진 약도에는 집들이 꼼꼼하게 설명되어 있어서 소설을 읽는동안 많은 도움을 받았다. 소설을 읽다가 약도를 참고해서 '아 지금 얘네들이 있는 위치가 여기구나', '밴이 여기서 나와서 이리로 지나갔군'하는 식으로 구체적인 그림을 머리 속에 그려볼 수 있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국내번역판에는 이 약도가 빠져있어 아쉬웠다.)

소설 맨끝에 나오는 그림은 꼬마아이가 그린 그림 한장이다.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참 뜨거워진다. 잔잔한 에필로그에 딱 어울리는 푸근한 그림이며, 현실에서 고통받던 사람이라도 부디 저세상(?)에서는 행복했으면 하는 바램이 생기게 만드는 그림이다. 저세상이란게 어떤 세상인지 스티븐 킹만이 자세히 알겠지만. 부디 행복하길...

첩혈쌍웅이나 영웅본색같은 홍콩영화 속 장면처럼 처절한 총격전이 일품인 The Regulators를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형제격인 Desperation이 넓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느라 좀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한 느낌이었다면, The Regulators는 고립된 일정한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총격전이기 때문에 빠른 속도감이 느껴지는 액션영화같아서 재밌게 읽을수 있다. 이 소설은 황금가지에서 "통제자들"이라는 제목으로 한국판이 출간되어 있다.

이 소설에서 한가지 아쉬운 점은 왜 마을이 서부시대로 변했는가이다. 사건의 발단이 되는 밴 승합차량은 SF애니메이션 MotoKops의 주인공들 것인데. 마을이 우주공간으로 변하고 우주기지같은 게 등장하고 그랬으면 더 재밌지 않았을까? 그러면 너무 소설이 삼류만화처럼 유치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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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ur Past Midnight

(1990년 중편소설 모음집)

Four Past Midnight은 아주 멋진 4편의 중편소설이 모여있는 작품집이다. 스티븐 킹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우연히 이 책을 읽게 된다면 다 읽고난 뒤에는 분명히 반드시 필연적으로 또는 운명적으로 킹의 팬이 돼버릴 것이다. 스티븐 킹의 또다른 중편모음집 Different Seasons가 다분히 감성적이고 정적이었다면, Four Past Midnight은 그와 반대로 정통호러에 딱 맞아떨어지는 기괴하고 역동적인 공포를 선사하고 있다. 이런 대단한 이야기꾼이 미국에 있다니,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정말 배아프다. 대한민국 소설가들 정말 분발해야 합니다.

이 소설집은 고려원출판사에서 "스티븐 킹, 미스터리 환상특급"이란 2권짜리 책으로 출간되었다. 표지디자인은 정말 맘에 안들지만, 어쨌든 책내용은 정말 끝내준다. 책 속에 담긴 4편의 소설 중 베스트를 하나 꼽으라면 난 도저히 못하겠다. 왜냐면 전부 다 좋으니까.

("스티븐 킹, 미스터리 환상특급"이 절판된 후 2018년에 "자정 4분 뒤"라는 제목으로 새로운 번역본이 출간되었다.)

자, 그럼 이제 Four Past Midnight에 등장하는 4편의 소설을 살펴봅시다.

*     *     *     *     *

<1. 소설을 훔친 남자 Secret Window, Secret Garden>

유명한 소설가 모튼 레이니. 부인이 바람피워서 사이가 틀어지는 바람에 본가에서 나와 여름별장에 와있다. 사랑하는 부인의 외도에 마음이 심란해서 글은 잘 안써지고 자꾸만 무기력해지는데, 어느날 누군가 별장 문을 두드린다. 밖을 나가보니 챙넓은 모자를 쓴 큰 덩치의 시골농부가 서있다. 자신을 존 슈터라고 밝힌 이 남자는 밤마다 소설을 쓰는 작가지망생이다. 그는 레이니의 오래전 단편소설 하나가 자신의 소설을 표절했다며 화를 낸다. 레이니는 슈터의 터무니없는 우격다짐에 자신의 단편이 최초로 실렸던 잡지 원본이 본가에 보관돼 있다며 며칠후에 오면 보여주겠다고 큰소리친다. 존 슈터는 거짓말이면 각오하라며 돌아가지만, 그는 레이니의 마음 속에 커다란 두려움을 심어주었다. 레이니는 본가에 있는 부인에게 잡지를 보내달라 부탁하려고 전화를 거는데, 연결이 되지 않는다. 그 후 한참만에 부인이 레이니에게 전화를 걸어온다. 부인이 울먹이면서 하는 말, "여보, 전 후회하고 있어요. 어쩌다가 우리가 스티븐 킹 소설의 주인공이 됐을까요? 덕분에 우린 파멸로 치닫고 있다구요!" 레이니는 두려움을 느끼면서 묻는다. "아니 왜 그러는 거야? 우리집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거야?"

그렇습니다. 생겼습니다. 이후 레이니에게는 믿겨지지 않는 폭력적이고 공포스러운 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잇달아 터진다. 레이니의 기억 속에는 정말 슈터의 소설을 표절한 기억이 없다. 그러나 점점 상황은 자신의 결백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쪽으로 변해가는데,,, 그러는 와중에 레이니는 되돌릴 수 없는 혼란의 구렁텅이로 빠져든다. 그러면서 후회한다. "어쩌다가 내가 스티븐 킹의 소설 주인공이 됐을까? 이렇게 미치고 환장할 줄은 정말 몰랐어!"

Secret Window, Secret Garden은 스티븐 킹의 장기가 잘 드러난 작품이다. 멀쩡하던 사람이 어쩌다 광인(속된 말로, 미친X)이 되어버렸을까라는 이야기를 심리적으로 집요하게 추적한 소설이다. 킹이 묘사한 레이니의 심리변화는 너무나 정교하고 섬세해서 마치 독자 자신이 레이니의 마음 속에 들어간 듯한 기분이 들 것이다. 소설을 다 읽은 뒤에 나는 레이니가 존 슈터의 정체를 충분히 알아차릴수도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레이니는 급격한 상황변화에 당황해서 점점 미쳐가고 있는 중이었으니 미처 그런데까진 생각못했던 것 같다. 하긴 나도 제정신이 아닐땐 정말 바보같은 짓을 하곤 하니까. (언젠가 글쎄 아무생각없이 보행자신호등이 빨간불인데 횡단보도를 건넜다. 파란불인 줄 알고서. 차들이 막 빵빵거리면서 쌩쌩 지나가는데도 난 도리어 그 차들을 욕했다. 뭐야 파란불인데 왜 차들이 안서는거야!)

이 소설은 조니 뎁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 졌다. <시크릿 윈도우(Seret Window)>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DVD 출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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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멈춰버린 시간 The Langoliers>

보스턴으로 비행하던 비행기에 심상치 않은 일이 발생한다. 잠자고 있던 승객들이 일어나보니 비행기 안에 다른 사람들이 없는 것이다. 좌석은 텅텅 비었고, 스튜어디스누나도 안보이고, 심지어 조종사도 없이 비행기는 날아가고 있었다. 잠에서 깨어난 사람들은 이 심상치 않은 사태에 관해 온갖 추측을 해댄다. 그때 미스테리 소설가인 승객이 논리적인 추리를 통해 정답을 말한다. "지금의 상황은 도저히 과학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건 틀림없이 우리가 그만 스티븐 킹의 세계로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스티븐 킹의 세계에서는 무슨 일이든 가능하니까요. 그 인간이 재밌는 소설을 쓰기 위해 일부러 우리를 이런 위기상황에 빠뜨린 것입니다."

다행히도 승객 중에는 비행기조종사가 끼어 있어서 비행기를 무사히 착륙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비행기 연료 등등의 문제로 차마 원래의 보스턴으로 가지 못하고, 스티븐 킹이 살고 있는 동네인 메인주 뱅고어공항에 불시착할 수 밖에 없었다. (미스테리 소설가의 외침. "거봐 이게 다 스티븐 킹의 각본대로라니까!) 공항에 착륙해서 또 놀랄 일이 있었다. 공항도 비행기와 마찬가지로 아무도 없는 버려진 공간이었던 것이다. 외부와 전혀 연락이 안되는 상황 속에서 승객들은 멀리서 뭔가가 갉아먹는 듯한 작은 소리들을 듣게 된다.

그런데 승객 중에 크레이그 투미라는 사내가 있는데, 그는 반드시 보스턴으로 가야만 했다. 평생 참을 수 없는 압력에 시달려 왔던 그는 반드시 보스턴으로 가서 압력을 터뜨려야만 했다. 그런데 승객들이 멋대로 킹의 각본대로 뱅고어에 착륙시키자 화가 난 그는 사이코로 돌변해 버린다. 그는 갉아먹는 소리의 정체를 알고 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 아빠가 들려주던 얘기 속의 주인공. 얘야 게으른 사람들을 혼내주러 랭골리어들이 쫓아온단다. 크레이그는 랭골리어들에게 먹히지 않기 위해 승객들을 위협해 비행기를 이륙시키려 한다. 하지만...

정말 멋진 소설이다. 낯선 상황에서 제한된 시간 안에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박력있게 전개된다. 특히나 등장인물들이 굉장히 많은 데도 불구하고, 무리없이 자연스럽게 소설을 전개하는 작가의 노련한 솜씨가 돋보였다. 그리고 비행기와 공항에 관한 많은 자료들이 글 속에 녹아있어서 비현실적인 소설을 더욱 현실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난 읽는동안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고 말았다. 이런 굉장한 소설을 쓸 수 있다니 노벨문학상감이다!

The Langoliers는 TV 미니시리즈로 제작되었다. AFKN에서도 방였했었고, KBS1에서도 했었다. 그리고 친절하게도 방송에서 미처 못본 사람들을 위해 비디오로 출시되었다. 출시제목은 "스티븐 킹의 랭골리얼". (좀 유머러스한 제목이죠?) 데이빗 모스가 비행기 조종사로 출연해서 중후한 연기를 펼친다.(그는 "그린마일"에서 간수역으로 출연했고, 현재 또다른 스티븐킹 원작영화 "Hearts in Atlantis"에도 출연중이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영화 속에서 돋보이는  사람은 크레이그 투미역을 연기한 배우같다. 특유의 종이찢는 장면에서 보여주는 표정연기는 "뽕을 맞지 않고서야 맨정신으로 어떻게 저런 표정을 지을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진지하고 오묘하다.

일부 의견들을 들어보면 영화후반부의 랭골리어들 모습이 패크맨같이 생긴 것이 너무 조잡해서 영화를 삼류로 전락시켰다는 얘기들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난 그런 모습이 좋았다. 마치 천안 호도과자에 이빨을 달아놓은 것 같은 모습이 한국적으로 보여서 더욱 정감이 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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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라진 도서관 The Library Policeman>

샘 피블스는 급한 사정이 생겨서 도서관에서 책 두권을 빌리게 된다. 도서관장인 아델리아라는 여자는 기분나쁜 태도로 만약 반납일을 어기면 도서관경찰을 보내겠다고 말한다. 일이 꼬이기 시작해서 샘은 책을 잃어버리게 되고 반납일을 지키지 못하게 된다. 그러자 농담인 줄로만 알았던 무서운 도서관 경찰이 샘의 집에 들이닥친다. 도서관 경찰은 오늘밤 12시까지 반납하지 않으면 벌을 내리겠다고 협박한다. 이제 샘은 정신없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 책을 반납할 방법을 짜내기 시작한다. 그러는 중에 도서관장 아델리아라는 인물은 정상대로라면 도저히 만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더 무서워진 샘은 미친듯이 반납을 위해 광분하기 시작한다.

The Library Policeman은 줄곧 음산한 분위기가 감도는 소설이다.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도 태연히 일어나는 현실에 주인공도 당황하게 되고, 읽고 있는 독자도 당황하게 된다(전문용어로 더블당황). 초자연적인 존재로부터 느낄 수 있는 공포가 스멀스멀 온몸을 타고 올라오는듯한 느낌이 들게 만든다.(인터넷에 올라온 감상문 중엔 아델리아라는 여자가 남의 악몽을 현실로 구체화시키는 능력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 킹의 소설 "It"에 나오는 삐에로 페니와이즈와 부부사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The Library Policeman에서는 킹 소설 특유의 마음 속에 상처를 안고 사는 보통사람들의 이야기가 오싹하게 펼쳐지는 가운데, 킹의 상처가 얼핏 들여다보이기도 하는 것 같다.(순전히 내 개인의 느낌. 킹이 아기였을때 아버지는 가출해서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소설 속에서 데이브라는 간판업자가 아델리아의 요청에 의해 도서관포스터를 그리게 된다. 포스터의 그림은 증기롤러차에 깔려 죽는 소년의 모습이었다. 데이브가 그때를 회상한다.

"난 주정뱅이가 가장 잘하는 짓을 했지. 그 술을 쭉 들이켠 뒤 시키는 대로 하는 거. 난 일종의... 열병 같은 것에 사로잡혔어. 난 싸구려 물감으로 두시간 가까이 그림을 그렸어. 그 여자의 책상 여기저기에 물과 물감을 흘리면서. 그런 것에는 털끝만치도 신경을 쓰지 않았지. 그렇게 해서 그려낸 그 그림은 나로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거였어... 하지만 생생하게 기억이 나. 그건 신발을 신은 채 랠폴 가에서 쭉 뻗은, 그리고 머리가 햇빛에 녹은 버터조각처럼 납작하게 눌려진 어린 소년의 모습이었어. 증기 롤러차를 몰고 있는 사내는 실루엣만 보이도록 처리했는데 그는 뒤를 돌아보고 있었어. 이빨을 드러낸채 히쭉 웃으며. 그 녀석의 모습은 그 뒤로도 내가 그 여자를 위해 그려준 포스터들에 번번이 나타나곤 했지. 그놈은 샘 당신이 말한 그 포스터, 그러니까 낯선 사람의 차는 타지 말라는 그 포스터에도 나와요. 운전을 하는 녀석.

우리 아버지는 내가 태어난 지 일년쯤 되었을 때 우리 어머니 곁을 떠났어. 땡전 한푼 안 남겨 준 채. 지금에서야 생각이 나는데 내가 그 포스터들 속에서 그리려 했던 사람은 바로 우리 아버지였어. 난 그를 음흉한 사내라고 부르곤 했지. 난 아델리아가 알 수 없는 어떤 방법을 통해 나를 자극해서 그 사람의 이미지를 환기시키게 하지 않았나 싶어. 내가 두번째로 그린 포스터를 가져 갔을 때 그 여자는 여간 좋아하지 않았어. 그 여자는 흡족하게 웃으며 말하더군..."

그러고보니 간판업자의 이름도 의미심장하다. 스티븐 킹의 형 이름이 데이브니까. 음... 꼬투리를 잡으려니까 끝이 없구나. 이제 그만. 아무튼 도서관경찰이란 아이디어를 한국의 수많은 비디오가게에서도 이용하면 어떨까? 연체손님때문에 동네 비디오가게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데. "손님 대여기일을 어기시면 비디오경찰을 보낼겁니다 그러니 제때제때 반납하세요 빌려가놓고 이사를 가버린다던가 따위의 허튼 수작을 부리시면 비디오경찰이 찾아가서 벌금을 받아낼 겁니다 비디오경찰이 받는 벌금은 돈이 아니에요 당신의 가장 무서웠던 과거의 기억을 다시 한번 끄집어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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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환상카메라660 The Sun Dog>

케빈은 15살 생일선물로 폴라로이드카메라를 선물받는다. 그런데 카메라는 찍을때마다 계속 이상한 사진만 토해낸다. 벌판에 개 한마리가 서있는 사진. 고장이라고 생각한 캐빈은 팝 메릴이라는 음흉한 노인이 운영하는 수리점에 카메라를 가져간다. 그리고 팝은 계속 똑같은 사진들 속에서 무서운 진실을 밝혀낸다. 사진 속의 개가 카메라를 향해 점점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계속 사진을 찍는다면 결국엔? 팝은 마음 속으로 캐빈 몰래 음흉한 속임수를 계획한다.

예전에는 The Sun Dog에 대해 참 단순한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뭐야 계속 사진찍는 얘기뿐이잖아! 그런데 이번에 다시 한번 읽어봤더니 너무 놀라운 소설이었다. 계속 사진찍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과정이 굉장히 디테일하면서 흥미롭게 전개되고 있었다(너무 디테일해서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각 인물들의 심리가 빚어내는 사건의 전개가 한편으로는 우스꽝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오싹한 전율을 느끼게 해주었다. 후반부에 팝이 벌이는 무의식적인 행동은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것이었다. 무서워서 멀리 하려는 카메라를 뻐꾸기시계라고 생각하고 막 만지작거린다. 그는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에서 카메라의 노예가 되어버린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넋이 나간다는 사실은 정말 두려운 것이겠지.(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 TV에서 처음으로 고소영을 보았을 때, 핑클 봤을때, 김희선 봤을때, 소유진 봤을때, 박지윤 봤을때... 이런! 따져보니까 그런 경험이 너무 많으네.)

The Sun Dog에서 가장 압권인 부분은 마지막 결말부분이다. 팝의 수선가게에서 벌어지는 아수라장을 너무도 생생하게 묘사한 부분인데, 새삼 스티븐 킹의 묘사력에 감탄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나같으면 그런 장면을 써봐야 한 여섯줄이나 일곱줄 정도면 더이상 쓸 말이 없을 것 같은데, 스티븐 킹은 몇페이지에 걸쳐서 처절하게 글을 쏟아내고 있었다. 정말 일급 소설가는 아무나되는 것이 아닌것 같다. 그 결말부분은 정말 강추천이다. 글로써 생생한 이미지를 표현해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확실히 보여준다.

The Sun Dog을 읽으면서 사진 속에 나오는 개가 언급될 때마다 난 킹의 소설 "Cujo"가 생각났다. 광견병에 걸려서 몸부림치다 파멸을 맞이한 불쌍한 개, 쿠조. 아니나다를까 The Sun Dog에서도 쿠조가 여러차례 언급된다. 그렇구나! The Sun Dog의 개는  쿠조가 죽어서 다시 살아난 것이었구나. 그렇다면 사진 속의 벌판은 저승세계? 사차원의 세계? 안드로메다성운 시리우스별 옆의 제3위성 따르빠따카쁘루띠야? 어찌됐든 난 쿠조를 다시 볼 수 있게 되어 너무 기뻤다. 그래서 난 주인공 캐빈보다 돌아온 쿠조를 더 응원하고 있었다. 물론 결말이야 누구나 짐작이 가겠지만.

The Sun Dog은 결말에서 아직 캐빈이 사진 속의 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암시를 주고 있다. 쿠조가 "I'll be back!"을 노리고 있다는 뜻인데, 나는 스티븐 킹이 반드시 The Sun Dog의 뒷이야기를 써주었으면 좋겠다. 쿠조를 다시 만나봤으면 좋겠다. 하지만 킹은 너무 오래전 소설이라서 자기가 이 소설의 끝부분에 속편을 암시했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을거라는 불길한 생각이 든다. 편지라도 써서 부탁해 볼까?

늑대인간 / Cycle of the Werewolf

작품 감상문 2007.05.11 23:40 posted by 조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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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cle of the Werewolf

(1983년 소설)

'남자는 늑대, 여자는 여우'라는 말이 있다. 거친 늑대와 꾀많은 여우를 남녀에 비유한 것이 과연 적절한 것인지 난 잘 모르겠지만, 하여간 많은 사람들이 이 말에 공감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런 동물적 특성을 확대해석하여 우리나라에서는 여우같은 여자를 구미호로 만들어 버리고, 서양에서는 늑대같은 남자를 늑대인간으로 만들어 버렸다.

늑대인간! 보름달만 되면 홀연히 나타나 낮게 깔리는 으르렁거림과 함께 억센 발톱과 강한 이빨로 애건 어른이건 할 것 없이 저세상으로 보내버리는 막가파 괴물. 은으로 만든 총알로만 처치할 수가 있다는 예민한 체질의 소유자. 늑대도 아닌 것이 인간도 아닌 것이 늑대인간이라는 이름으로 온세상을 터프하게 피바다로 만들고 다닌다. 드라큘라가 괴물계의 신사같은 존재라면, 늑대인간은 괴물계의 터프가이라 할만하다.

Cycle of the Werewolf는 스티븐 킹이 늑대인간을  소재로 쓴 소설이다. 우선 이 소설은 매우 짧은 소설이다. 미국판 버전 중에는 128페이지짜리도 있다고 하는데, 한국판도 단지 179페이지 정도이다. 본문 중의 글씨도 큼직큼직하고 중간중간 삽화가 들어 있는데도 길이는 매우 짧다. 길이가 짧기 때문에 그만큼 소설이 압축되어 있어서 속도감있게 전개된다. 인물 심리묘사, 배경묘사, 등장인물들의 대화같은 요소들이 꼭 필요한 정도만 남기고 생략되어 있어서 장면전환이 신속하고, 소설 속 사건들이 "내가 먼저 전개할꺼야 내가 먼저 전개할꺼야"하고 서로 다투는 듯이 사건들의 전개가 끊임없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나도 책을 잡고서 여유있게 단 2시간만에 다 읽어버리고 말았다.(난 책을 느리게 읽는 편이다.) 하지만 이렇게 짧다고 뭔가가 빠진 듯한 허전한 기분은 들지 않았으며, 오히려 너무 흥미진진하고 재밌었다.

이 소설은 1년 열두달을 소제목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소설의 목차가 1월로 시작해서 12월로 끝나고 있다. 소설 속 배경은 타커즈 밀스라는 작은 마을. 1월의 눈보라치는 어느날 으슥한 농장 창고에서 한 남자가 늑대인간의 습격을 받아 참혹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시작으로 12월까지 늑대인간의 희노애락을 그려내고 있다. Cycle of the Werewolf의 주인공은 늑대인간과 더불어 그에 맞서는 마티 코즐로프라는 인물이다. 1월부터 6월까지는 늑대인간에게 희생되어가는 인간 및 동물들(돼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가, 7월이 되어서야 마티 코즐로프가 등장한다. 그는 10살짜리 소년으로서 하반신마비 장애인이어서 전동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 1월부터 시작된 사람들의 잇따른 죽음에 불안을 느낀 마을이 7월 독립기념일 밤의 불꽃놀이를 취소한데 낙담한 마티는 밤에 혼자나가서 불꽃놀이를 하다가 늑대인간과 마주치게 된다. 이것을 계기로 둘 사이에 진한 우정이 꽃피고...는 절대! 아니고, 늑대인간은 휠체어에서 폭죽을 터뜨리고 있던 마티를 덮쳐 버린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마티는 그후 할로윈데이(10월 31일)에 우연히 늑대인간의 정체를 알게되고, 놈에게 대담한 방법으로 시비를 걸어 버린다. 과연 이 겁없는 10살짜리 소년은 인정사정 보지 않고 애건 어른이건 닥치는대로 저세상으로 보내 버리는 늑대인간을 어떻게 저세상으로 보내 버릴 수 있단 말인가! 정답은 이 소설의 12월에 밝혀진다.(12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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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cle of the Werewolf는 짧지만 만만치 않은 재미를 선사하는 멋진 소설이다. 특히 마티가 7월의 사고를 단서로 늑대인간의 정체를 알게 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단순하지만 짜릿한 장면이다.) 시간적으로 열두달에 걸친 이야기인 만큼 각 달마다 타커즈 밀스 마을의 풍경묘사와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짧지만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다. 그와 더불어 이 소설에 생기를 불어 넣어주는 요소가 있었으니, 바로 각 달마다 나오는 일러스트이다.

Berni Wrightson이라는 사람의 일러스트인데, 흑백으로 그린 마을의 모습들과 컬러로 그린 소설 속 사건모습들이 읽는이의 기분을 한껏 고조시켜준다. 전형적인 미국풍의 그림들인데, 소설이 묘사하고 있는 광기에 찬 늑대인간의 분위기를 멋지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그림은 9월에 나오는 그림이다. 늑대인간이 돼지우리를 습격하고 난 뒤의 아수라장을 간단하지만 효율적으로 엽기스럽게 묘사하고 있다. 상상이 가시죠? 늑대가 물어뜯고 난 돼지시체들이 널부러진...  (Berni Wrightson은 Creepshow와 The Stand 같은 킹의 작품에도 참여했다고 한다.)

Cycle of the Werewolf는 각색작업을 거쳐 영화로 만들어졌다. 영화제목은 Silver Bullet이었다. 이 영화의 개봉과 함께 미국에서는 Silver Bullet 시나리오가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었다. Silver Bullet은 국내에 "악마의 분신"이라는 제목으로 비디오와 DVD로 출시가 되어 있다.

난 Silver Bullet을 TV에서 봤다. 아주 오래전 아마 내가 초등학생인가 중학생때 KBS2에서 대낮에 방송됐었다. 사실 마티가 전동휠체어를 타고 도로 위를 질주하는 장면과 그 밖의 몇장면만 부분적으로 기억나고, 그 영화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 때만 하더라도 스티븐 킹이란 작가를 몰랐기 때문에 그 영화가 가지는 의미를 미처 깨닫지 못한채 TV에 집중하지 못하고 영화를 보다말다 계속 딴짓을 했었다.

하지만 내가 확실히 기억하는 그 영화의 한 장면이 있다. 영화 초반부에 한 섹시한 누나가 잠옷을 입고 잠자는 부분이다. 그러다 부시럭거리는 소리에 일어나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늑대인간의 밥이 되고 만다. 놀라서 휘둥그레진 누님의 두눈, 난폭하게 덮치는 검은 늑대인간, 무참히 찢겨나가는 누님의 잠옷, 비명을 지르는 누님의 빨간 입술, 곧이어 클로즈업되는 기분나쁜 늑대인간의 눈동자. 그당시 내 나이에는 너무 충격적이었는지 아직까지도 잊혀지지 않고 있다.(사실 내가 집중해서 본 것은 늑대인간이 아니라 누님이었다. 누니이이이이이임~!) 

영화에 대해 얘기하다 소설얘기를 하나 빼먹은 것 같다. Cycle of the Werewolf는 한국판이 출간되었다. 도서출판 혜민에서 "늑대인간"이라는 간단하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제목으로 펴냈다. (작가이름이 "스테판 킹"으로 되어 있다.)

데스퍼레이션 / Desperation

작품 감상문 2007.05.11 23:34 posted by 조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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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peration

(1996년 소설)

인터넷에 들어가보면 수많은 스티븐 킹 팬사이트가 있다. 대부분 킹의 작품에 대한 자신들의 감상을 적어놓고 있는데, 어떤 사람은 스티븐 킹의 96년 소설 Desperation에 대해 과거 작품의 소재들이 한데 모인 작품이라고 평하고 있다. Desperation에서는 초능력을 지닌 소년(The Shining과 Firestarter), 문학적 재능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소설가(Misery와 The Dark Half), 사이코 경찰(The Dead Zone과 Rose Madder), 갑자기 난장판이 되버린 작은 마을('Salem's Lot과 It)이 뒤섞여 있다는 것이다. 이런 짬뽕같은 구조 속에서 나온 Desperation은 역시 과거 작품과 같은 분위기를 지닌 작품일까? 아닙니다. Desperation은 물론이고 요즘 발표되는 킹의 작품들은 과거 작품들이 지닌 단순명쾌함 대신 뭔가 심오한 주제와 상징을 담고 있다. 대중문학에 자리잡고 있다가 점점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의 중간쯤 정도 되는 자리로 이동하고 있는 것 같다.(물론 문학을 대중문학이다 순수문학이다하고 구분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는 짓이다) 아마도 그건 스티븐 킹이 점점 나이를 먹어가면서 느끼는 감수성의 변화때문이 아닐까?

어떤 이는 이런 작품성향의 변화를 별로 안좋게 생각하기도 하지만, 난 옛날작품이나 현재작품 모두 그 나름대로 좋다. 변화하는 작품세계 속에서도 변치않는 것이 있으니까. 스티븐 킹의 기괴한 상상력과 지칠줄 모르는 창작열 말이다.(내 생각엔 엄청부자가 되어서도 계속 작품을 쏟아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 같다. 나같으면 맨날 놀러 다니겠다. PC방, 롯데월드, 만화가게, 백화점, 황토방사우나, 단란주점, 퇴폐이발소 등등)

네바다주에 데스퍼레이션이란 광산촌 마을이 있다. 광산에서 땅을 파내려 가다 오래전에 막혀 있던 우물을 발견하게 되고, 그 속에서 이제나 저제나 설레이며 외출을 기다리던 악마 탁Tak이 눈을 뜨게 된다. 그 결과 마을의 경찰 한명이 사이코로 돌변하여 마을 주민들을 학살하고, 마을을 지나가던 외부사람들을 하나둘씩 납치해서 경찰서에 가둬놓는다. 납치된 사람들은 탈출하려 몸부림치는데, 데스퍼레이션이란 마을은 온통 코요테(신지의 댄스그룹 코요테가 아니다), 거미, 전갈, 뱀, 대머리독수리 같은 것들이 포위하고 있다. 게다가 사이코경찰까지.

하지만 다행히도 탈출하는 사람들 속에 데이빗 카버라는 소년이 있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하나님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는 데이빗은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예를 들자면 통화불능 지역에서도 핸드폰통화를 가능하게 한다. 놀랍지 않은가? 인간 기지국이라니!) 데이빗의 도움으로 사람들은 탈출을 서두르는데... 아까도 말했듯이 코요테(댄스그룹 아님), 거미, 전갈, 뱀, 대머리독수리, 사이코경찰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는다. 그래서 결국엔....

데이빗을 통해 스티븐 킹은 신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 것 같다. 소설 Desperation 제4부 소제목은 "하나님은 잔인하다 God is cruel"이다. 하나님이란 존재는 인간에게 행복만을 안겨다주는 존재일까? 소설 속의 악마 Tak이 생물체 특히 인간의 몸을 빌려서 자신의 욕망을 분출하듯이, 하나님도 인간의 힘을 빌려서 자신의 욕망(맘에 안드는 악을 처단하는 것)을 채운다는 것이 소설 속에서 나오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때론 하나님은 선택된 인간의 희생을 강요하는 잔인한 존재라는 것이다.

흠... 하나님께 연락할 방법이 없으니 스티븐 킹이 제대로 된 사실을 적은 것인지 확인할 길이 없어 아쉽다. 소설끝부분에는 가족이 몰살당하고 자신의 생명마저도 위협받았던 한 등장인물에게 하나님이 조퇴서를 내준다. "조퇴를 허가함"이라니. 어째서 수업이 다 끝나갈때 쯤 -절대자의 각본에 따라 한 인간의 인생이 비참함의 극을 달릴때 쯤- 에야 조퇴서를 내주는 것일까? 하나님(정확하게는 스티븐 킹이 생각하는 하나님)은 나처럼 썰렁하고 잔인한 블랙유머의 소유자인 것 같다. (어쨌거나 공포장르에 등장하는 악마들은 동물 대신 인간의 몸을 선호하는 것 같다. 아무래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이 많으니까.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른다거나, 수업시간에 몰래 잠을 잔다거나, 발렌타인데이에 배추 다섯포기를 선물한다거나, 이웃집 불난데 구경가서 god노래를 부른다거나. 이런 것들을 개, 고양이, 얼룩말, 말미잘같은 동물들의 몸으로는 할 수 없으니까. 내가 악마라도 인간을 선호하겠다. 아~ 난 왜 이렇게 쓸데없는 얘기를 길게 늘어놓는 걸까. 내가 미워어어어~)

Desperation의 등장인물들 중 인상깊었던 사람은 조니 마린빌이라는 작가이다. 스티븐 킹의 작품들 속에서 작가라는 직업이 꽤 많이 등장하지만 조니 마린빌처럼 인상적인 인물은 처음이었다. 난 Desperation을 꽤 오래전에 읽었는데도, 아직까지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을 정도니까. 소설 속에서 그는 아주 무기력한 속물작가로 묘사되는데, 나중에는 그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인상깊었던 것은 조니의 마지막 대사이다. "하나님, 저를 용서하소서. 전 비평가들이 정말 싫어요!" 이제까지 소설 전개와 상관없이 뜬금없는 그런 대사가 튀어 나와서 난 어리둥절했었다. 아마도 등장인물의 입을 빌어 스티븐 킹은 자신의 심정을 고백하고 싶었나보다. 얼마나 비평가들에게 시달렸으면.(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당연한 것이다. 비평가들이 만장일치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작가라면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지 최고의 공포소설가는 아닐 것이다. 비평가들의 기준은 문학적이고 예의바른 고상함이니까.) 하지만 스티븐 킹 힘을 내시길. 나같이 멀고먼 코리아라는 나라의 불량청년까지도 당신을 열렬히 응원하고 있으니.

Desperation에서는 죽은 사람들이 사는 나라가 등장하는데, 난 아직까지 좀 의문을 가지고 있다. 그 나라에 살고 있는 인물 중 하나는 지금 데스퍼레이션마을에서 탈출하려고 기를 쓰고 있는 팔팔하게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아직 살아있는 사람이 왜 죽은 사람들의 나라에 있는거지? 희망이 없는 무기력한 삶을 사는 사람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상징적인 표현인가? 내가 좀 단순한 성격인 관계로 쫌만 복잡해도 대충대충 넘어가는 성격이라 이 소설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도대체 왜 살아있는데도 그런 재미없는 나라에 미리 가서 살아야하는걸까? 으~~ 머리아프다. 빨리 넘어가자. 휘리릭~~~!

이제까지 잡담이 좀 길었지만, 어쨌든 Desperation은 재미있으면서도 묵직한 여운을 남기는 소설이다. 결말을 읽게 되면 누구나 깊은 여운에 푹 잠길 것이다. 우연과 필연이 교차하는 인간의 삶 속에서 믿음과 신뢰가 어떤 식으로 형성되고 무너져내리는가를 킹 특유의 치밀한 심리묘사와 거친 상상력으로 풀어낸 멋진 작품이다. 그리고 혹시라도 멀리 여행갔다가 작은 마을에서 사이코경찰에게 잡혀 고립될 수도 있으니(악을 무찌르라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서) 그때를 대비해 미리 준비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인간의 삶이란 언제든 우스꽝스런 상황에 빠질수도 있으니까.

Desperation은 황금가지에서 "데스퍼레이션"이라는 제목으로 번역판이 출간되어 있다. 서점에 가면 구할 수 있을 것이다. Desperation과 쌍벽을 이루는 The Regulators라는 작품도 권하고 싶다. The Regulators에는 Desperation에 나왔던 인물들이 역할을 바꾸어서 다시 등장한다. 줄거리는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좀 다른 줄거리이다. 그래서 Desperation을 읽어봤다면 무척 색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사랑스런 악마 Tak도 다시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