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틴 / Christine

작품 감상문 2007.05.12 01:37 posted by 조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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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ine

(1983년 소설)

스티븐 킹 소설 "Christine"의 첫문장을 보는 순간 나는 이 소설과 사랑에 빠질 것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것은 삼각관계에 빠진 사랑이야기다.]

삼각관계! 이 얼마나 인간의 본능을 자극하는 무시무시한 단어인가! 대중문화 속에서 너무나 흔하게 사용되는 소재이면서도, 언제나 열광적인 호응을 이끌어내는 효과만점의 소재다. 그런데 삼각관계의 한 축을 이루는 쪽이 인간이 아니라면? 괴물 자동차라면? 궁금하다면 스티븐 킹의 소설 "Christine"을 읽어보면 된다.

자동차는 흔히 여성적인 존재로 취급되곤 한다. 자동차 뒷부분을 보며 "엉덩이 예쁜데!"라고 한다거나, 멋진 곡선의 차체를 보며 "몸매 잘 빠졌네!"라고 말하기도 한다. 신차 발표회를 보면 차 옆에는 거의 항상 예쁜 누나들이 요염한 포즈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레이싱 경기장에 가보면 수영하다 달려왔는지 수영복만 입은 누나들이 자동차 사이를 설치고 다니기도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자동차는 여성, 특히 섹시한 여성의 화신인 것처럼 남성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렇다고는해도 대부분의 남성들은 여성을 연상시키는 멋진 자동차보다는 실제 여성을 더 선호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 여자보다 자동차가 더 좋다고 열변을 토하는 고등학생이 한명 있다.

고등학교 졸업반인 아니는 전형적인 왕따이다. 남학생들로부터도 여학생들로부터도 외면당하는 아니지만, 어린 시절부터 단짝 친구인 데니스가 항상 옆에서 챙겨주는 관계로 그럭저럭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

어느날 아니는 데니스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다 길 옆에 세워져 있던 크리스틴이라는 자동차를 보고는 첫눈에 반해 버린다. 아니는 크리스틴과 사랑에 빠진 것이다. 크리스틴은 완전히 고물이었고, 그 차의 주인인 리베이라는 기분나쁜 노인은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부르지만 크리스틴이 너무나 맘에 든 아니는 돈을 꿔가면서까지 크리스틴을 사고야만다. 데니스도 아니의 부모도 여러가지 이유로 아니가 자동차 사는 것을 만류하지만, 이제까지 착하게 순응하며 살아왔던 아니는 격렬하게 화를 내며 그들의 의견을 완강하게 묵살해 버린다. 아니는 그때부터 크리스틴에게 달라붙어 수리하는데 온 정성을 쏟아붓는다. 그리고는 고물덩어리였던 크리스틴을 전문가도 놀랄만한 솜씨로 완전히 새 자동차인 것처럼 복원시킨다. 아니는 크리스틴을 통해 삶의 힘을 얻는다.

그러는 동안 학교에는 레이라는 매력적인 여학생이 전학온다. 그전같으면 제풀에 포기했겠지만, 아니는 크리스틴을 만난 이후로 여드름도 싹 없어지고 활력이 넘쳤기 때문에 과감하게 대쉬해서 레이와 사귀는데 성공한다. 그렇치만 레이는 아니를 따라 크리스틴을 타보는 순간 깨닫는다. 크리스틴은 단순한 자동차가 아니라는 것을. 끔찍한 괴물이라는 것을. 크리스틴에게서 몇차례 기분나쁜 경험을 하게 되고 아니의 성격도 자동차때문에 다혈질로 변해가자 레이는 아니에게 말한다. "나와 크리스틴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해. 하나만 선택해서 나머지 다른 쪽은 잊어버려." 그러자 괴물 자동차인 크리스틴은 레이를 없애버릴 계획을 세운다. 이것이야말로 사랑의 삼각관계. 아니와 레이와 크리스틴을 잇는 공포의 삼각형이다.

그뿐이 아니다. 아니 곁에 크리스틴이 생긴 순간부터 별의별 일들이 벌어진다. 학교 깡패들이 아니가 고생해서 수리한 크리스틴을 다 때려부수고, 아니는 주차장 주인의 심부름으로 밀수에 가담하게 되고, 잇달아 발생하는 자동차 살인사건에 의심을 품은 형사가 아니를 찾아오고, 게다가 단짝친구인 데니스는 아니를 배신하기까지 한다. 아니와 크리스틴은 분노에 치를 떤다. "X새끼들아! 우리들의 앞을 가로막으면 가만두지 않겠어. 다 죽여버릴거야!" 그래서 정말로 죽음의 파티가 벌어지게 된다.

스티븐 킹의 소설 "Christine"은 스스로 움직이는 괴물 자동차라는 소재를 가지고 숨막히게 격렬한 스토리를 만들어낸 걸작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엔 그저 막연히 "괴물 자동차 소설이면 좀 유치하겠는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읽어보니 장난이 아니었다. 아니가 크리스틴을 보고 첫눈에 반해 버린 것처럼, 나도 소설 "Christine" 첫 페이지를 펼치는 순간부터 첫눈에 반해 버렸다. 마치 나와 스티븐 킹과 크리스틴과의 삼각관계랄까.

이 소설은 크게 3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첫부분은 데니스의 시점으로 전개되고, 두번째 부분은 다양한 사람들의 시점, 특히 아니의 시점으로 전개되고, 마지막 부분은 다시 데니스의 시점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리고 3부분으로 나뉜 소설은 또다시 각각의 소제목을 달고 있는 51개의 작은 단락들로 쪼개져 있다. 소제목 밑에는 항상 자동차를 주제로 한 팝송가사를 붙여 놓았는데, 그렇게까지 자동차를 주제로 한 노래가 많은지 처음 알았다. 인용된 팝송 중에는 밥 딜런의 노래 "From a Buick 6"도 있어서 흥미로웠다. (2002년 9월에는 "Christine"과 맞먹는 스티븐 킹의 또다른 괴물 자동차 소설 "From a Buick 8"이 발표될 예정이다.)

처음에는 데니스의 눈으로 소설이 전개되는 만큼 책을 읽는 독자는 아니와 크리스틴 사이에 벌어지는 은밀하고 무서운 일들을 자세히 알 수가 없다. 그저 천천히 조금씩 뭔가 안좋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은데 정확히 어떤 일들인지는 알 도리가 없는 것이다. 소설이 꽤 진행되고 나서도 크리스틴은 그저 보통 자동차인 것처럼만 등장해서 읽는 사람을 안달나게 만든다. 그렇지만 그 후로는 기분나쁜 노인 리베이와 크리스틴과의 과거, 착한 왕따소년에서 끝없는 분노의 화신으로 변해가는 아니, 크리스틴과 아니를 의심하는 형사의 집요한 접근, 아니를 배신하게 된 데니스의 뜨거운 청춘, 괴물 크리스틴의 무자비한 살육행위가 숨돌릴 틈없이 벌어져서 한도끝도 없는 긴장과 스릴을 선사한다.

우연히 마주친 악마의 자동차 크리스틴 때문에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아니의 모습이 무섭게 묘사되기도 하지만, 언뜻언뜻 자신의 변신을 후회하면서도 이제는 돌이킬 수 없음을 괴로워하는 아니의 모습에서 참 안됐다는 기분이 들었고, 이런 기분은 소설 끝에 가서도 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스티븐 킹은 여러 작품들 속에서 악의 힘에 굴복해서 괴물로 변해가는 인간들을 만들어 내면서도 그들의 인간적인 슬픔을 묘사해서 독자들로 하여금 동정적인 시선을 갖도록 만드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점이 킹의 작품을 매력적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한 요인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Christine" 후반부로 갈수록 눈에 띄는 것은 어릴적부터 붙어다니던 단짝친구인 아니를 배신하게 된 데니스의 마음이다. 소설 후반부는 데니스의 시점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배신으로 인해 죄인처럼 안절부절 못하는 데니스의 심정이 자세히 묘사되고 있다. 그로인해 벌어지는 데니스와 아니 사이의 눈에 보이지 않는 심리전이 박진감 넘친다. 특히 새해를 코 앞에 앞둔 12월 31일 밤,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주고받는 대화 속에 묻어나오는 일촉즉발의 위기감은 크리스틴의 스피드와 파워가 빚어내는 피의 살인극 못지않게 책을 읽는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말 속에 뼈가 있다"는 속담이 실감나는 장면이었다.

그래도 뭐니뭐니해도 이 소설 최고의 볼거리는 맨마지막에 등장한다. 계속되는 의문의 자동차 살인극을 끝내려는 인간과 크리스틴의 대결! 결전의 시간이 될때까지 차근차근 준비를 해나가는 인간의 모습을 지켜보며 느껴지는 두근두근 떨리는 기분. 그리고 마침내 인간과 괴물 자동차 크리스틴의 대격돌!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아수라장의 묘사가 일품이다. 자동차가 충돌하고 부서지고 깨지고 발악하는 격한 순간이 연약한 인간의 죽음을 무릅쓴 절박한 저항과 어우러져 속도감있게 그려지고 있다.

이 소설 끝에는 짧은 에필로그가 있다. 크리스틴과의 한판 승부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을 적어놓은 것인데, 스티븐 킹의 대부분의 작품이 그렇듯 우울한 분위기로 엔딩을 마무리하고 있다. 에필로그를 읽고나서 나는 이 소설이 전해준 깊은 여운에 흠뻑 젖어 잠시동안 멍한 상태에 빠져 있었다. 나를 멍한 상태에 빠져 있게 만든 또 한가지 이유는 킹이 에필로그 마지막에 "Chrisine" 2탄을 암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Christine"을 너무나 인상깊게 흥미롭게 읽었다. 제발 킹이 2탄도 꼭 써주었으면 좋겠다. (사실 킹이 2탄을 써주길 바라는 작품이 한둘이 아니다. 그런 작품들 2탄만 다 써도 킹은 평생 심심하지 않을 것이다.)

"Christine"은 국내에 번역출간되었다. 인의출판사에서 "살아있는 크리스티나"라는 제목으로 펴냈다. 지금은 구하기가 쉽지 않은데, 도서관이나 헌책방같은 데서 만나게 되면 꼭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책을 읽는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을 것이다.

소설 "Christine"에는 돈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다. 출판계에는 선인세제도가 있다. 작품이 완성되기도 전에 출판사측에서 작가에게 미리 일정액의 인세를 지급하는 것이다. 소설이 완성될 때까지 작가는 경제적으로 생활에 안정이 되어 집필에 전념할 수 있고, 출판사는 다른 출판사를 따돌리고 미리 작품의 출판권을 확보할 수 있어서 양쪽에 이익이 되는 제도이다. 선인세로 지급되는 액수는 작가의 유명세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스티븐 킹같은 거물작가의 경우 선인세로만 백만달러 이상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킹은 "Christine"을 집필하면서 선인세로 딱 1달러만 받았다. 그대신 작품이 완성되었을 때 받게 될 정식인세를 올려받는 것으로 출판사측과 계약을 맺었다.(그 정식인세가 몇 %였는지는 모르겠다.) 이 1달러 선인세 계약으로 인해 킹이 예전 작품들 출간때보다 더 경제적으로 이익이 되었는지는 자세히 알려져있지 않다. 그렇지만 그 후로 다른 작품에 대해서도 선인세를 1달러만 받았다는 얘기가 없는 걸 보니 별로 재미를 못 본 것 같다.

"Christine"은 공포영화의 거장 존 카펜터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었다. 국내에는 "크리스틴"이란 제목으로 비디오 출시되어 있다. 동네 비디오가게 주인이 영화에 대해 상당한 수준의 안목을 갖추고 있다면 꼭 소장하고 있을 것이다.

사실 나는 소설 "Christine"을 읽고 나서 영감을 얻어 멋진 이야기를 한편 만들어냈다. 제목은 "살아있는 홈페이지". 대강의 줄거리를 여러분께 소개해 보고자 한다.

주인공인 "나"는 인터넷에 홈페이지를 하나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다. 거의 매일같이 접속해서 홈페이지를 둘러보고, 게시판에 글도 올리고, 틈나는대로 업데이트도 성실히 하는 등 홈페이지 운영에 정성을 쏟고 있는 것이다. 마치 애인 돌보듯이. 그러던 중 "나"는 제1983회 세계 꽃미남 선발대회 참가상에 빛나는 남들보다 월등히 뛰어난 수려한 외모로 인해, 국제적인 음악그룹 핑클의 리더 "효리"와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핑클 팬클럽 남학생들의 눈물을 무시한 채 "나"와 "효리"는 한여름 해운대 해수욕장의 전기난로보다 뜨거운 사랑을 만끽한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나"는 홈페이지 관리에 소홀하게 되어, 홈페이지는 넓고넓은 정보의 바다 인터넷 한가운데 외롭게 홀로 남겨지게 된다. 홈페이지는 자신이 버림받은 것이 "효리"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그녀를 마구마구 미워한다. "나"와 "효리" 그리고 홈페이지 사이에 사랑의 삼각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효리"만 없어지면 "나"의 사랑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한 홈페이지는 "효리"를 살해하려 한다. 그러나 가까스로 죽음의 문턱에서 탈출한 "효리". "나"는 "효리"와의 사랑을 지켜내기 위해 핑클멤버들의 응원을 등에 업은 채, 홈페이지와 목숨을 건 죽음의 대결을 펼치게 된다. 결국 "나"와 홈페이지의 결투는...

Roadwork

작품 감상문 2007.05.12 01:34 posted by 조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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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adwork

(1981년 리처드 바크먼 소설)

스티븐 킹의 소설 속에는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사이코로 돌변하는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정상인 것처럼 보이는 캐릭터가 있다고 치자. 그 사람은 과거에 작은 마음의 상처들을 입었지만 현재까지는 그럭저럭 별 탈없이 살아왔다. 그런데 갑자기 엄청난 일에 시달리게 된다. 그 일은 대부분 제한된 시일까지 끝마쳐야 하는 일인데, 그 사람은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우왕좌왕 헛걸음만 하거나 급기야는 모든 걸 포기하고 자포자기의 상태로까지 전락한다. 게다가 과거의 상처들이 되살아나 그 사람을 더욱 심란하게 만든다. 결국 운명의 시간은 닥쳐오고, 얼마전까지 멀쩡하던 한 사람의 정신은 완전붕괴되어, 그렇잖아도 험악하게 돌아가는 스티븐 킹의 세계에 또 한명의 사이코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결과적으로는 망나니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사이코에게도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지금 소개하는 "Roadwork"는 스티븐 킹이 리처드 바크먼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세번째 소설로서, 위에서 말한 사이코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절절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바트 도즈는 세탁공장을 관리하며 부인과 단란한 가정을 꾸려나가고 있는 40살의 정상적인 시민이다. (도즈가 관리하는 블루 리본 세탁공장은 킹의 데뷔작 "캐리 Carrie"에서 캐리의 엄마가 근무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도즈가 삶의 터전을 이루고 살던 지역에 고속도로 공사가 예정되어 있어서 모든 사람들이 시 당국이 제시한 철거 보상금으로 새로운 터전을 찾아 떠나야만 한다. 이전대상에는 도즈의 집은 물론이고 세탁공장까지 포함돼있다. 그는 새로 이사할 집을 구하러, 새로 이전할 공장부지를 구하러 바쁘게 돌아다니...는 척만  열심히 한다. 그 결과 이사계획은 엉망진창이 돼버린다. 도즈는 20년동안 정붙이며 살아온 곳을 떠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런 그를 이해못하는 주위 사람들은 -심지어 아내까지도- 등을 돌리게 되고, 그는 혼자 남겨진다. 시에서는 철거예정일까지 집을 비우라고 독촉하는데, 도즈는 충동적으로 엉뚱한 짓을 벌이고 다닌다. 한방이면 사람 머리를 날려 버린다는 더티 해리의 매그넘 권총과 한방이면 코끼리도 죽일 수 있다는 웨더비 라이플을 구입하는 것도 모자라 다이너마이트의 60배 위력을 가졌다는 폭약까지 구입한다. 그리고는 대책없이 빈둥거리기만 한다. 결국 운명의 철거일은 다가오고야 만다.

"Roadwork"에서는 도즈가 자신이 사는 곳에 광적인 애정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TV가 귀하던 시절, 집에 TV를 들여놓기 위해 그와 아내가 얼마나 힘들게 돈을 모았는지, 잡일하는 직원으로 입사해서 지금의 관리직에 오르기까지 회사에서 얼마나 애환을 겪었는지 등등 그는 한 지역에서 20년 넘게 살아오면서 쌓아온 뿌듯한 추억이 가득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와서 시 당국에서는 고속도로 건설예정지로 지정되어 곧 철거예정이니 썩 물러가란다. 정든 곳을 떠나 낯선 곳으로 떠나란다. 시 당국의 명령이므로 그래야한단다. 평범한 시민이여, 보상금이나 먹고 떨어져라! 분노할 수 밖에 없는 도즈.

이 소설은 도즈의 집 철거예정일을 석달 앞 둔 시점부터 하루하루 도즈의 일과를 마치 일기처럼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도즈는 자신조차도 자기가 벌이는 일을 이해할 수가 없지만, 하여튼 차근차근 파멸을 향해 움직이게 된다. 고의로 이사를 외면해버림으로써 남들은 보상금을 받아 다 이사가버렸는데도 불구하고 텅 빈 동네의 텅 빈 집에 혼자 남아서 술마시고 TV나 보면서 시간을 죽이고 있다. 도즈의 표현대로 무덤에서 사는 인생인 것이다.

이렇게 폐인이 되어가는데, 우연히 만나게 된 라스베가스에 가는 길이라는 여대생에게는 자신에게도 어울릴듯한 훈계를 늘어놓는다. 약물중독을 끊어라, 너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한다, 세상은 네가 생각한 것처럼 만만하지 않아... 이렇게 남에게는 옳은 말도 잘 하면서 왜 자신의 삶은 파괴시키는 걸까? 정말 단순히 오랫동안 살아온 집을 떠나기 싫어서인가?

도즈에게는 찰리라는 어린 아들이 있었는데, 오래전에 뇌종양으로 죽었다. 뇌종양이 너무 심했던 탓에 수술도 할 수 없었고, 그저 무기력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아야만 했었다. 끔찍히도 사랑했던 아들이기에 아들의 죽음을 막기 위해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었던 것에 항상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왔다. 그런데 이제 시 당국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집까지 잃게 될 위기에 처한다. 이번만은 순순히 물러날 수 없다. 사랑하는 찰리는 무기력하게 떠나보내고야 말았지만, 사랑하는 내 집은 무기력하게 떠나보내지 않겠다.

"Roadwork"는 철거 당일에 벌어지는 도즈와 경찰간의 격렬한 총격전이 압도적으로 묘사된다. 그전까지 조용히 진행되던 소설이 마지막에 가서 극악으로 치닫는 것이다. 그 순간까지도 도즈는 자신의 마음과 행동에 확신을 가지지 못하지만, 이제까지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충동적으로 벌여놓은 일들이 어쩔 수 없이 그를 총격전의 한복판으로 몰고가 버린다.

이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우울하지만, 마지막 결말은 더더욱 우울하다. 도즈가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그는 순전히 개인적인 이유로 시 당국에 저항했다- 언론에 의해 시 당국이 벌인 도로공사의 치부가 드러난다. 하지만 그뿐이다. 사건은 금새 잊혀지고 사람들은 이제껏 그래왔듯이 일상에 파묻혀 버린다. 언론은 가끔씩 사회의 어두운 진실을 캐내지만 일회용일 뿐이다. 사람들은 언론이 보여주는 일회용 진실에 흥분하지만 그런 사람들의 흥분도 일회용일 뿐이다. 언론도 사람들도 그 진실을 쉽게 잊어버리고 행복하게 잘 살아간다. 이른바 냄비근성.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사람사는 데 돌아가는 사정은 다 거기서 거기다. (여담이지만 예전에 TV에서 자신이 속한 조직의 비리를 고발했던 공무원을 보았다. 그는 즉시 공무원사회에서 쫓겨났고 생계를 위해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칫솔 파는 일을 했다. 나는 그 때 진실을 밝힌 용기있는 행동이 무시당하는 우리 사회에 분노했었다. 나중에 그는 복직을 청원하는 소송을 제기했다는데, 그 이후 소식은 모르겠다. 사실 요즘은 그 사람이 어떻게 지내는지 TV도 나도 별 관심없다. 하하하! 우리나라 월드컵 16강 들어야 하는데. 하하하! 요즘은 왜 고소영이 드라마에 안나오는거지? 하하하! 하하하!)

도로공사에 대항해 벌이는 도즈의 투쟁과 언론과 사람들의 무성의가 맞물리면서 "Roadwork"는 정말 우울하고 슬프게 끝을 맺는다.

이 소설은 대단히 느리게 진행되는 심리소설이다. 한 사람의 무기력한 폐인이 살아가는 일상을 계속해서 보여주니 지루한 구석이 꽤 많다. 이 소설은 전형적인 공포소설이 절대 아니다. 마지막의 격렬한 총격전과 후반부에 나오는 화염병 사건을 제외하면 변변한 액션장면도 없다. 사실 나도 가끔씩 책을 읽다가 졸았다.(나이 탓인가? -_-a;;;)

게다가 이 소설을 창조한 스티븐 킹 마저도 개인적인 이유로 이 소설을 좋게 평가하지 않고 있다. "공포소설을 쓰는 것도 좋지만, 이제는 진지한 소설을 쓸 때가 됐지 않느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쩔쩔매던 시절에 쓴 작품이기도 하고, 어머니의 죽음을 경험한 뒤 인간이 겪는 고통의 실체는 무엇인지 고민하며 쓴 작품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Roadwork"는 심각한 주제의식을 가진 진지한 소설을 만들기 위해 의도된 작품이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Roadwork"가 아주 좋았다. 확실히 이 소설은 재미있는 "공포소설"은 아니지만, 좋은 "소설"임에는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책을 다 읽고 난 뒤 느꼈던 그 무거운 침묵은 간간이 지루하기도 했던 이 소설을 꾹 참고 읽었던 나 자신의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소설이건 만화건 영화건 드라마건 3페이지/3분마다 한번씩 개그나 액션, 에로가 나와줘야 읽을 맛/보는 맛 난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는 권하고 싶지 않은 작품이지만, 가벼운 일상에 길들여진 자신에게 묵직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고 싶은 분들에게는 추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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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rawing of the Three

The Dark Tower 2

(1987년 소설)

 다크 타워 시리즈 1편 "최후의 총잡이 The Gunslinger"에 이어 2편 "The Drawing of the Three"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작품은 잎새 출판사를 통해 "태로우 카드", 황금가지 출판사를 통해 "세 개의 문"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출간되었다. (이 감상문은 내가 잎새 출판사의 책을 읽고 나서 쓴 것이므로, 감상문 속에서 책 제목을 "태로우 카드"로 통일할 것이다.)

1편 "최후의 총잡이"에서 검은 남자가 너무나 속을 썩인 나머지 폭삭 늙어버린 우리의 주인공 최후의 총잡이 롤랜드. 롤랜드는 바닷가 모래해변에서 넋을 놓고 있다 얼떨결에 괴물의 습격을 받고 치명적인 신체손상을 입게 된다. 상처의 감염으로 점점 죽어가는 롤랜드는 검은 남자의 예언이 이루어지길 기다리며 정처없이 바닷가를 걸어가게 된다.

1편 마지막에서 검은 남자는 롤랜드에게 7장의 태로우 카드(tarot card)를 차례로 보여주며 롤랜드의 미래를 점쳐 주었었다. 2편 "태로우 카드"에서는 7장의 카드 중 3번째 "포로 The Prisoner", 4번째 "그림자 여인 The Lady of Shadows", 5번째 "죽음 Death"을 롤랜드가 끈질기게 헤쳐나가는 여정을 보여주게 된다.

죽을 힘을 다해 바닷가를 걷던 롤랜드는 잇달아 3개의 문과 만나게 된다.

첫번째 문을 열고 들어간 곳은 1980년대 후반의 뉴욕. 그 곳에서 롤랜드는 헤로인의 포로가 된 마약쟁이 에디를 만나게 된다. 에디는 조폭두목의 심부름으로 마약을 운반 중인데 마약 수사관들에게 의심을 사게 되고, 게다가 조폭들도 그가 배신한 것으로 오해하고 총을 들고 달려들 기세다.

두번째 문을 열고 들어간 곳은 1960년대 초 뉴욕. 그 곳에서는 오데타 홈즈라는 휠체어를 탄 흑인여성을 만나게 된다. 그녀의 몸 속에는 데타 워커라는 또하나의 인격이 어두운 그림자처럼 도사리고 있다. 하나의 몸을 두고 오데타와 데타는 번갈아 나타나게 되는데, 오데타와 데타는 서로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오데타는 마음씨 좋고 이성적인데 반해, 데타는 굉장히 감정적이고 폭력적이다. 이 둘을 다독거리느라 롤랜드는 죽을 지경이 된다.

세번째 문을 열고 들어간 곳은 1970년대 중반의 뉴욕. 그 곳에서는 타인을 죽음에 빠뜨리는 것이 조용하게 흘러가던 우주에 파문을 일으켜 새로운 우주를 창조하는 것이라는 망상에 빠져있는 변태 회계사 잭 모트를 만나게 된다. 알고보니 잭은 롤랜드가 1편 "총잡이"에서 만났었던 제이크를 살해하려고 한다. 롤랜드는 고민에 빠진다. 만약 여기서 제이크를 구해주게 된다면 제이크는 다크타워 세계에 안가게 되고 그 결과 1편에서 겪었던 제이크와의 모험들이 전부 무효가 되어 버리는 시간의 모순에 빠질 수도 있는 것이다. 게다가 롤랜드는 바닷가 괴물에 당한 상처로 인해 완전히 죽음의 문턱에 다다랐기 때문에 어서 빨리 치료약을 구해야만 한다. 가뜩이나 몸이 아파 죽겠는데, 롤랜드의 머리 속은 상당히 복잡해진다.

이 모든 세 개의 관문을 무사히 헤쳐나가야만 하는 의무와 책임이 롤랜드의 어깨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롤랜드의 말로 카(Ka), "운명"이니까.

다크 타워 시리즈 2편 "태로우 카드"는 정말 너무너무 재미있는 작품이다. 만약 "재미있는 소설 찾기 세미나"가 열린다면 "최우수 모범사례"로 선정될 만하다. 그만큼 총잡이 롤랜드가 마법의 문을 통해 다크 타워 세계와 현대 뉴욕 세계를 번갈아 오가면서 펼치는 모험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과 쾌감을 선사한다.

"태로우 카드"에서는 전편과 달리 롤랜드가 다크 타워 세계를 많이 여행하지 못한다. 다른 차원의 뉴욕으로 통하는 3개의 문을 들락날락거리느라 바빠서 그렇기도 하고, 몸이 아파서 기어다는 것조차 힘에 겨울 정도가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엎친데 덮친 격으로 오데타 홈즈와 데타 워커 사이의 변덕스런 취향에 장단을 맞추느라 반죽음 상태에 이를 지경이다. 이렇게 다크 타워 세계에서 치료약이 없어 무기력하게 시름시름 죽어가는 롤랜드의 처절한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정말 나도 모르게 분통이 치밀었다. 내가 자비를 들여 약을 사다 기증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 작품 속에서는 다크 타워 세계보다는 뉴욕에서 롤랜드가 벌이는 활약상이 비중있게 처리되고 있는데, 총에서 뿜어 나오는 화약냄새가 진동한다. 뉴욕 거리를 누비며 조폭들과 경찰들의 총알세례에 맞서 싸우는 롤랜드의 냉철하고 빈틈없는 총격전을 접하다 보면, 소설 속에서도 언급되지만 정말 롤랜드가 "터미네이터"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거친 총싸움 액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에 흠뻑 빠져들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태로우 카드"가 무식하게 총으로만 밀어 붙이는 소설만은 아니다. 소설 속에서는 각각의 인물들과 사건들이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히고 설켜서 롤랜드를 둘러싼 "카"의 세계가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소설 후반부에서 이렇게 산적한 고민거리들을 한번에 화끈하게 날려버리는 롤랜드의 처절한 활약상을 읽고 있노라니, 나도 모르게 감탄에 감탄을 거듭할 수 밖에 없었다. 소설이 전해줄 수 있는 최고의 재미가 퍼덕퍼덕 살아 숨쉰다!

"태로우 카드"에서는 처음으로 20세기 문명 -황폐한 다크 타워 세계와는 달리 물자가 풍부하다- 을 접하게 된 어리둥절한 롤랜드의 모습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기도 하다. 특히 에디가 전해준 콜라를 난생 처음으로 먹어본 롤랜드가 놀라움과 충격에 휩싸이며 허겁지겁 콜라를 들이키는 장면에서는 코믹한 기분까지 들게 된다. 이렇게 맛있는 물이 있다니! 뉴욕의 총기상점에서 총알을 구경하고 놀라는 장면은 또 어찌나 웃기던지. 총알이 이렇게 많아!?

한편으론 소설 속에서 시종일관 냉정하고 괴팍하게 행동하는 롤랜드에게서 언뜻언뜻 비쳐지는 여린 모습들이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거대한 운명의 무게를 등에 짊어지고 다녀야하는 힘겨운 고통의 몸부림 같은 것이 보인다. 그는 힘들다고 운명을 떨쳐버릴 수도 없는 것이다. 자신이 다크 타워의 세계로 끌고 온 사람들에게서 문득 애정을 느끼면서도, 다크 타워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냉정해져야 하는 롤랜드는 참으로 불쌍한 인물인 것이다.

이 작품은 스토리가 선명해서 굉장히 너무너무 재미있다는 말 밖에는 더이상 할 말도 없고, 그래도 억지로 더 말하는 것은 이렇게 재미있는 소설의 스토리를 미래의 독자들에게 홀라당 노출시키는 바보같은 짓이 될 것이다. 한가지는 확실하다. 스티븐 킹의 팬이라면 "태로우 카드"를 꼭 읽어야 한다. 킹의 팬이 아니더라도 "태로우 카드"를 읽어두는 것이 몸에 좋다. 이렇게 끝내주게 재미있는 소설을 모른채 살아간다는 것은 인생의 즐거움 한가지를 잃어버리는 것이 될테니까. 그리고 "태로우 카드"를 읽게 되면 다크 타워 3편을 꼭 읽고 싶어질 것이다. 아주 많이. 다크 타워 3편아, 기다려라! 내가 간다! 반드시 읽어주마! 이토록 불같은 의욕에 불타오르게 된 나 자신이 무서울 뿐이다.

롱 워크 / The Long Walk

작품 감상문 2007.05.12 01:00 posted by 조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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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ong Walk

(1979년 리처드 바크먼 소설)

"나는 모든 미국인들에게 시간 날때마다 걸어다녀 보라고 권유하고 싶습니다. 건강에 좋으니까요. 게다가 재미도 있습니다." (존  F. 케네디, 1962년)

아주아주 먼 옛날, 국가 안보에 내가 꼭 필요하다는 강력한 요청을 받고, 나는 군대에 들어갔다. 그리고는 훈련소에서 모진 고문...이 아니고 훈련을 받았다. 맨마지막 훈련은 행군이었다. 배낭 매고 총 들고 그냥 걷는 것이다. 부대장은 행군을 위해 운동장에 모인 훈련병들에게 힘찬 어조로 연설을 했다. "이제까지 여러분이 훈련소에 와서 받은 여러가지 훈련들은 모두다 지금의 행군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기 위한 준비운동에 불과했다. 부디 훈련을 통해 다져진 체력과 강인한 군인정신을 발휘해서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행군을 성공적으로 끝마치길 바란다. 자, 그럼 이제 렛츠 고~ 고~ 고~!"

나는 부대장이 괜히 훈련병들을 겁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걷는 것이 뭐가 힘들단 말인가? 나는 예전부터 걷는 것을 좋아해서 웬만한 거리는 걸어다니길 좋아했기 때문에, 행군이 별로 대수롭지 않았다. 그러나! 처음의 여유는 시간이 흐르면서 사라졌다. 군화 속 발바닥에서 무수히 탄생과 소멸을 반복하는 물집들을 상대하는 동안, 걷는다는 것이 죽을만치 힘들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러고 있으려니 이제까지 깨닫지 못했던 아주 사소한 존재들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었다. 잠깐동안의 휴식시간에 먹던 초코파이는 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었다. 난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가 몰고 가는 스쿠터 뒤에 타고 가던 하얀 원피스를 입은 민간인 소녀는 이 세상에서 제일 이쁜 여성이었다. 난 눈물을 흘렸다. 밤하늘에 무수히 깔려있는 초롱초롱 별님들을 바라보며 불러보는 여행스케치의 "별이 진다네"라는 노래는 이 세상에서 제일 감동적인 노래였다. 난 눈물을 흘렸다. 행군을 하며 걷는 내내 눈물에 얼굴을 묻었다.

그렇다. 군대를 다녀온 남자라면 걷는다는 것이 눈물에 얼굴을 묻을 정도로 힘든 일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스티븐 킹도 걷는 괴로움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킹도 힘들게 걸어본 경험이 있는 걸까?

"The Long Walk"는 스티븐 킹이 고등학교 졸업반이던 1966년 가을에 시작해서 대학 신입생이던 1967년 봄에 완성한 소설이다. 킹은 이 소설을 67년 가을에 랜덤하우스 출판사가 주최한 소설 경연대회에 응모했다가... 미역국을 먹는다... 생일도 아니면서... -_-;;; 마음에 상처를 입은 킹은 "The Long Walk"가 아주 형편없는 수준의 소설이라고 생각해 버린다. 그 후 세월이 흘러 인기작가로 성공한 킹은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리처드 바크먼이라는 필명으로 "Rage"라는 소설을 출간한다. 출판사측에서는 리처드 바크먼의 두번째 소설은 어떤 작품이냐고 물어보게 되는데, 킹은 이때 "The Long Walk"를 떠올린다. 그래서 이 소설은 리처드 바크먼의 두번째 소설로 출간되고 만다. 그렇다. 킹은 어린 시절 홧김에 "The Long Walk"가 형편없는 소설일거라고 단정해버리고 말았지만, 사실은 그 후로도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형편없는 소설이 아니니까. 아주 훌륭한 소설이니까. 하늘만큼 땅만큼.

미래의 미국은 말 한번 잘못하면 군인들한테 끌려가는 무서운 사회가 돼버린다. 이런 사회에서 전국민이 열광하는 끝내주는 스포츠가 있었으니 이름하여 롱워크(the Long Walk) 경주. 매년 엄격한 신체검사와 심리검사를 거쳐 TV 중계로 소년들을 선발해서 롱워크 경주에 내보낸다. 주인공 레이 개러티를 비롯한 백명의 소년들이 올해의 롱워크에 참여하게 된다. 매년 경주를 진행하는 사람은 메이저(the Major)라는 군인인데, 국민들에게는 물론 롱워크에 참가한 선수들한테서도 존경과 열광의 대상으로 군림하는 스타다.

롱워크 경주의 규칙은 간단하다. 길을 따라서 끝까지 걷는 사람이 우승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전국민이 열광할리 없다. 롱워크 선수는 시속 4마일 아래로 속도가 떨어지면 안된다.(4마일≒6킬로미터) 속도를 위반할 때마다 경고를 받는다. 그렇지만 그 후 한시간동안 또다른 경고를 받지 않으면 전에 받은 경고는 없던 것으로 처리된다. 시시한가? 여기 또다른 살 떨리는 규칙이 존재한다. 경고는 세번까지만 허용된다. 경고가 네번까지 누적되면 그 즉시 현장에서 죽는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살해된다". 그렇다! 롱워크는 결국 목숨을 걸고 하는  스포츠였던 것이다. 죽을 힘을 다해 끝까지 걷지 않으면 죽는다. 1명만 남고  99명 전부 다. 과연 그 한명은 누가 될 것인가? 이러니 전국민이 흥분하지 않겠는가?

롱워크 우승자에게는 상이 주어진다. 그 상이란 우승자가 원하는 것은 뭐든지 다. 역시 죽음을 헤치고 거머쥔 우승에 걸맞는 화끈한 상이다.

개러티를 비롯한 백명의 소년이 롱워크 출발선에 집결해서 번호표를 받고 경기를 시작하는 것으로 소설 "The Long Walk"는 시작된다.(개러티의 번호는 47번, 스티븐 킹이 태어난 해는 1947년, 우연의 일치인가? 작가의 유머인가?) 그리고 소설은 계속해서 소년들이 걷는 모습을 경기가 끝날 때까지 끈질기게 추적한다. 물론 그들이 경고 누적으로 차례차례 죽어나가는 모습도.

이 소설을 읽다보면 때로는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소설 내내 주로 소년들이 걷는 모습만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화끈한 액션장면을 기대한 사람에게는 권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차근차근 소설을 읽어나가다 보면 이 작품이 가지는 독특한 모습에 빨려 들어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오랫동안 걷는 사람에게 어떤 신체적 변화가 생길 수 있는지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신체적 변화에 발맞춰서 황폐해지는 사람의 심리가 더욱 처절하게 묘사되고 있다. 주인공 개러티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이야기 진행에 푹 빠져들다 보면, 처음 경기 시작때는 선수들끼리 농담도 하면서 마치 소풍가는 기분으로 걸어가는 모습에서 차츰 선수들이 하나둘 죽어나가는 순간이 오고 남은 선수들끼리 때로는 적으로 때로는 친구로 극한 상황 속에서 걸어야만 하는 상황 속에 자신이 실제로 참여하는 듯한 체험까지도 하게 된다. 나는 그랬다. 후반부로 갈수록 주인공을 둘러싼 소년들이 죽음을 맞이하는 그 순간에 주인공 개러티가 느끼는 슬픔과 분노와 체념의 감정에 동화된 나머지 가끔씩은 달아오른 감정을 식히기 위해 나는 책을 잠시 덮어야 했다.

내내 우울하게 전개되던 분위기에 걸맞게 이 소설의 결말도 우울하게 끝난다. 결말까지 오게 되면 더이상 우승자가 어떤 상을 받고 싶어할까 따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된다.-사실 궁금하기는 하지만. 결말부분에서 보여지는 극한의 묘사는 일품이다. 결국 롱워크의 우승자 조차도 더 나아가서는 우리 모든 인간들도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단지 죽음 앞에 한발자국씩 점점 더 가까워지는 것일 뿐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러고보면 롱워크 경주는 우리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생각이 든다. 롱워크 경주가 시작되면 좋은 싫든 살기 위해서는 기를 쓰고 걸어야만 하듯이, 우리 인생도 자신의 의지에 의해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일단 세상에 태어나면 살기 위해 기를 쓰고 아웅다웅해야만 하는 것이다. 나를 비롯한 우리 모든 인간은 인생이라는 틀 안에서 롱워크 경주선수들인 것 같다. 죽기 싫으면 걸어라. 계속 걸어라. 죽을 때까지 걸어라... 걷지 않으면 인생 끝장이다.

롱워크 경주는 전국민의 인기 스포츠이기 때문에 선수들이 지나가는 길에는 동네 주민들이 총출동해서 구경나와 있다. 각양각색의 구경꾼들 모습이 소설 속에서 무척 자주 언급되어 지는데, 그들 중에는 선수들을 염려하고 격려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예를 들면 수박을 들고 나와 선수들에게 전해주려다 경찰의 제지를 받고 한바탕 해프닝를 벌이는 아저씨- 대다수의 사람들은 죽음을 맞이할 것이 확실한 롱워크 선수들에 대한 호기심과 흥분을 느끼며 열광하는 사람들이다. 공개처형을 보러나온 사람들의 심리인 것이다. 그들은 선수가 경고를 4번 받아 군인들한테 살해당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 좋아서 아주 난리를 친다. 처음엔 구경나온 사람들한테 기분좋게 손을 흔들어 주던 롱워크 선수들은 차츰 시간이 지날수록 구경꾼들의 속마음을 깨닫고서 냉소적으로 대하기 시작한다.

선수들과 구경꾼 사이의 가장 극적인 장면이라면 후반부에 나오는 주인공 개러티의 에피소드다. 개러티는 계속해서 걷다보니 기진맥진해져 있는데, 미리 약속했던 장소에서 구경꾼들 속에 서있는 엄마와 여자친구의 모습을 보게 된다. 개러티는 엄마와 여자친구에게 다가간다. 엄마와 여자친구의 손을 잡는다. 이제 경주는 안중에도 없다. 그저 사랑하는 사람의 품에 안겨 휴식을 취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총을 든 군인이 개러티에게 경고를 준다. 경고 하나. 잠시 후 경고 둘. 잠시 후 경고 셋. 주위를 둘러싼 구경꾼들이 열광한다. 한 인간의 죽음이 임박한 것이다. 중계방송하는 TV카메라도 그런 모습을 열심히 화면에 담아 방송한다. 정말 안타까운 장면이었다.

'The Long Walk"는 국내에 "롱 워크"(황금가지출판사), "롱워크"(희성출판사) 또는 "완전한 게임"(반도기획)이라는 제목으로 한국판이 출간되었다. 여러분도 이 작품을 읽고서 내가 마지막 장면에서 느꼈던 그 아스라한 감정을 느껴봤으면 좋겠다. 이 작품을 강력추천한다. 고등학생의 신분으로서 이런 멋진 소설을 쓴 스티븐 킹의 재능이 부럽기만 하다. 나는 고등학생 때 그저... 여자생각 뿐이었는데...

이 소설은 아직까지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영화로 만들면 의미심장한 주제가 살아 숨쉬는 멋진 영화가 탄생할텐데 왜 능력있는 감독들이 나서지 않는지 모르겠다. 자칫 잘못하면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모습만 보여주고 끝나는 지루한 영화를 만들 수도 있다는 위험성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나는 불현듯 롱워크 경주가 아주 친숙하게 느껴졌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나는 물론이고 여러분 모두다 아주 오래전에 죽음의 경주를 했었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정자가 난자를 만나러 가는 죽음의 경주말이다. 롱워크가 걷는 경주라면, 우리가 체험했었던 경주는 꼬리로 헤엄치기였다. 평균 3억마리의 정자가 경주에 참가하게 되는데, 예선전을 통해 10% 약 3천만마리의 정자가 본선에 진출하게 되고, 본선에서는 결국 단 하나의 정자만이 난자에 골인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뒤처진 나머지 2억9천9백9십9만9천9백9십9마리의 정자는 죽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롱워크 경주가 아니던가! 우리 모두는 이렇게 수많은 죽음을 뒤로 한 채 세상에 태어나게 된 것이다. 그렇게 힘든 과정을 거쳐 태어났기에 인간의 생명은 누구나 존엄하고 고귀한 것이며, 자살을 통해 세상을 떠나려는 사람은 어쩌면 이 세상에 태어났을 수도 있었을 2억9천9백9십9만9천9백9십9명의 죽음을 헛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 열심히 살자구요~. 3억명과 겨뤄서 우승을 거머쥔 강인한 우리들이니까. 이런 생각을 하니까 자꾸만 엉덩이의 꼬리뼈가 간지럽다. 꼬리뼈가 그 옛날의 활약상을 회상하는 것일까?

센트리 스톰 / Storm of the Century

작품 감상문 2007.05.12 00:57 posted by 조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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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m of the Century

(1999년 시나리오)

스티븐 킹은 이제까지 발표한 작품들의 아이디어가 맨처음 떠올랐던 순간을 대부분 기억하고 있다고 말한다. "It"의 스토리는 나무 다리를 건너며 자신의 발자국 소리를 듣다가 "The Three Billy Goats Gruff"라는 전래동화가 연상되면서 소설을 생각해냈다. "쿠조 Cujo"는 병에 걸린 세인트 버나드 개를 직접 목격했을 때이다. "Pet Sematary"는 킹의 딸 나오미가 기르던 고양이가 집 근처 도로에서 차에 치여 죽었을 때 딸이 슬퍼하는 모습을 보며 생각해 냈다.

그런데 몇몇 작품들은 어떻게 아이디어가 떠올랐는지 기억할 수가 없다. 그런 작품들은 특별한 아이디어로 인해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이미지로 인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마음 속에 우연히 강렬한 하나의 그림이 떠올랐는데, 그 이미지가 머리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남아서 저절로 캐릭터가 생겨나고 스토리도 생겨나서 하나의 작품이 만들어진 것이다. 킹 본인 조차도 그런 식으로 소설이 탄생하는 것에 대해 미스터리라고 말한다. "그린 마일 The Green Mile"이 그런 작품에 속한다. 킹의 머리 속에 감옥 안에 서있는 몸집이 큰 흑인 죄수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그 흑인은 캔디와 담배를 실은 낡은 손수레가 굴러오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도대체 이 흑인은 무슨 사연이 있길래 감옥에 갇혀 있을까? 이야기는 킹의 머리 속에서 저절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Storm of the Century"는 스티븐 킹이 시나리오를 쓴 미니시리즈로서,1999년 미국 ABC방송을 통해 3부작 미니시리즈로 방송되었다.

킹이 시나리오를 쓰게 된 동기도 "그린 마일"처럼 감옥을 배경으로 하는 강렬한 이미지로부터 시작되었다. 감옥 안의 간이침대에 앉아 있는 백인 남자의 이미지. 발꿈치는 침대 가장자리에 걸쳐 놓고, 팔은 두 무릎 위에 올려져 있으면서 두 눈은 깜빡거리지 않는다. 킹은 상상의 날개를 폈다. 이 남자는 "그린 마일"의 흑인죄수 존 커피같은 선량한 인간이 아닐거야. 아주 나쁜 사람. 어쩌면 사람이 아닐지도 몰라. 감옥 안의 남자 이미지는 사라지지 않고 항상 킹을 괴롭혔다. 운전하는 중에도, 눈검사를 받으러 간 병원 대기실에 앉아 있을때도, 심지어는 한밤 중 불이 꺼진 방 안에서 침대 위에 누워 있을 때도. (밤에 그런 이미지가 떠오르면 무서웠다고 한다.) 그 남자는 항상 감옥 안 침대에 앉아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킹의 머리 속에서 차츰 이야기가 만들어져 갔다. 그 남자는 감옥에 갇혀 있다. 그 감옥은 리틀 톨 아일랜드라는 섬에 있는 동네 슈퍼 뒤에 붙어 있다. 왜 감옥이 슈퍼에 있는 거지? 작은 섬마을에는 정식 경찰이 없고, 대신에 그 마을 주민이 마을 경찰을 맡아서 파트 타임으로 근무를 하기 때문이지. 그럼 리틀 톨 아일랜드의 마을 경찰은 누구? 당연히 동네 슈퍼 주인인 마이크 앤더슨이다. 마이크가 그 기분 나쁜 남자를 체포해서 자기 슈퍼 안에 직접 만들어 놓은 유치장 안에 가두어 놓았다. 그 기분 나쁜 남자는 침대 위에 가만히 앉아있다. 그리고 기다린다... 무엇을? 사상 최대의 폭풍을!

1996년 10월 경이 되자 킹은 리틀 톨 아일랜드 섬마을 전체를 무대로 하는 이야기를 써야 겠다는 조급한 마음에 시달렸다.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하는 작품은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써도 되지만, 이미지를 기반으로 하는 작품은 적당한 때에 써버리지 않으면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었다.

"Salem's Lot" 같은 작품들을 통해 한 마을 전체를 무대로 하는 이야기를 많이 써왔음에도 불구하고 킹은 막상 "Storm of the Century"를 쓰려고 하자 이야기의 거대한 스케일에 눌려 좌절을 겪을 뻔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마음 속에 짜릿한 자극이 생겨서 1996년 12월에 집필을 시작하고야 만다. 그 짜릿한 자극이란 섬마을같은 작은 공동체의 정서를 그려내겠다는 의지였다. 섬마을은 주민들 간에 학연, 지연, 혈연 등과 같은 것들에 의해 끈끈한 유대관계로 맺어져 있어서, 외부인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정서가 뿌리내리고 있다. 마을에 위기가 닥칠 때면 한마음 한뜻으로 똘똘 뭉친다. 여기서 스티븐 킹의 질문: 그렇다면 그렇게 공동의 이익을 위해 하나로 뭉치는 것이 항상 옳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일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킹은 마을 경찰 마이크 앤더슨의 아내가 남편을 꽉 껴안으며 속삭이는 소리를 상상했다. "여보, 유치장 안의 그 남자를 죽여 버려요." 킹은 전율을 느꼈다. 그것이 자극이 되어 "Storm of the Century"는 무사히 집필될 수 있었다.

지금 소개하는 "Storm of the Century"는 킹이 쓴 시나리오가 책으로 출간된 것이다. 시나리오를 읽고서 영상화 된 미니시리즈와 비교해 보는 것도 매우 흥미있는 경험일 것이다.

30 실내: 낮에는 탁아소로 사용하는 앤더슨의 집 계단

 

여전히 피파는 계단 손잡이 기둥 사이에 머리가 걸려서 꼼짝 못하고 있다. 아이들을 돌보는 몰리가 피파가 있는 계단에 앉아 피파를 위로하고 있다. 아이들이 피파를 쳐다보며 주위에 둘러서 있다. 몰리가 피파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나머지 한 손으로는 잼이 발라져 있는 피파의 빵을 들고 있다.

 

몰리

이제 괜찮아질거야, 피파. 마이크 아저씨랑 네 아빠가 금방 이리로 올거니까. 마이크 아저씨가 널 꺼내줄거야.

 

피파

어떻게요?

 

몰리

나도 잘은 모르지만, 무슨 마술같은 거겠지.

 

피파

나 배고파요.

 

몰리가 계단 손잡이 기둥 사이로 팔을 뻗어 빵을 피파의 입으로 가져간다. 피파가 받아 먹는다. 다른 아이들이 그 광경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아이들 중에는 질 로비쳑스의 5살 난 아들이 있다.

 

해리 로비쳑스

앤더슨 아줌마. 피파한테 빵 먹이는 거 내가 해봐도 돼요? 나 뱅고어 축제 때 놀러 갔다가 원숭이한테 먹이 준 적도 있거든요.

 

지켜보던 아이들이 웃는다. 피파는 기분이 좋지 않다.

 

피파

해리! 난 원숭이가 아냐! 난 어린이야. 원숭이가 아니라구!

 

돈 빌스

얘들아 여기 좀 봐. 나는 원숭이야!

 

계단 밑에 있던 돈이 네살짜리 어린애 특유의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펄쩍펄쩍 뛰면서 겨드랑이를 긁어댄다. 그러자 다른 아이들도 똑같이 따라하기 시작한다.

 

피파

나는 원숭이가 아냐!

 

그리고는 울어버린다. 몰리가 피파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뭔가 위로의 말을 해주려 하지만 쉽지 않다. 계단 기둥 사이에 머리가 끼어버리는 것은 불쌍한 일이다. 거기에다 원숭이라고 놀림까지 받는 것은 더더욱 불쌍한 일이다.

 

몰리

너희들 모두 가만 있어! 지금 당장 그만 둬! 나쁜 짓이야. 피파를 슬프게 만들었잖니!

 

대부분의 아이들이 멈추지만, 고약한 말썽장이 돈은 계속 몸을 긁어대며 날뛰고 있다.

 

몰리

돈, 그만 해. 나쁜 짓이야.

 

랠피

우리 엄마가 나쁘다고 그러잖아.

 

랠피가 돈을 붙잡으려 하지만, 돈이 뿌리친다.

 

돈 빌스

나는 원숭이로 변신한다!

 

돈은 두배는 더 심하게 원숭이 짓을 하고 있다. 랠피를 약올리려고... 물론 랠피의 어머니도 약올리려고. 그때 문이 열리고, 마이크와 햇치가 들어온다. 햇치는 단번에 상황을 알아차리고 두여움과 안도의 감정이 교차하며 딸에게 달려간다.

 

피파

아빠아아아!

 

피파가 빠져 나오려고 또다시 머리를 뒤로 잡아 당긴다.

 

햇치

피파! 가만 있어! 그러다 귀라도 떨어지면 어쩔려고 그래?

 

랠피

(마이크에게 달려간다.)

아빠! 피파가 머리 걸렸는데, 돈은 원숭이 변신하는 걸 자꾸만 계속해요!

 

랠피가 아버지 품으로 뛰어 오른다. 햇치가 어린 소녀를 잡아 먹으려는 끔찍한 계단으로 올라가, 피파 옆에 무릎 꿇고 앉는다. 몰리가 등 뒤로 남편 마이크를 쳐다보며 눈빛으로 메시지를 보낸다. "제발 이것 좀 어떻게 해봐요!"

 

머리를 땋아내린 작고 귀여운 소녀가 마이크의 바지 주머니를 잡아 당긴다.

 

샐리 갓소

앤더슨 아저씨. 나는 원숭이 되는 거 금방 그만 뒀어요. 아줌마가 말하자마자 금방.

 

샐리가 몰리를 가리킨다. 마이크가 부드럽게 소녀를 떼어놓는다. 그러자 4살짜리 소녀 샐리는 엄지 손가락을 입 속에 쏙 집어 넣는다.

 

마이크

잘 했다 샐리. 랠피, 이제 내 품에서 내려와야겠다.

 

그는 랠피를 내려 놓는다. 그 즉시 돈 빌스가 와서 랠피를 밀어 버린다.

 

랠피

야! 너 왜 그래?

 

돈 빌스

잘 난 척 하지마!

 

마이크가 돈 빌스를 번쩍 들어올려 서로의 눈과 눈이 마주 보게 된다. 병신같은 돈은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돈 빌스

난 아저씨가 하나도 안 무서워! 우리 아빠는 마을 읍장이야! 아저씨 월급은 우리 아빠가 주는 거라구!

 

돈이 혀를 길게 빼더니 마이크의 얼굴에 대고 마구 흔들어댄다. 에벨레벨레~. 마이크의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마이크

남을 밀면 너도 밀리게 돼있어. 돈 빌스, 잘 기억해둬라. 인생의 교훈이니까. 남을 밀면 너도 밀리게 된다.

 

돈은 무슨 뜻인지 이해는 못하지만, 마이크의 무서운 목소리 톤에는 반응한다. 결국 꼬마는 망나니짓을 또 저지르고 다니겠지만, 어쨋든 지금은 얌전해졌다. 마이크는 돈을 내려놓고 계단 쪽으로 걸어간다. 마이크 뒤로 보이는 반쯤 열린 문에는 "어린이 집"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문 안쪽의 방에는 작은 탁자들과 의자들이 놓여 있다. 천정에는 다양한 색깔의 모빌들이 매달려 있다. 그 곳은 몰리의 탁아소 교실이다.

 

햇치가 딸아이 머리 꼭대기를 밀고 있다.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 피파는 영원히 머리가 끼어 있을 거라 생각하고는 또다시 두려움에 벌벌 떤다.

 

햇치

우리 귀염둥이가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피파

하이디 세인트 삐에르가 날 이렇게 만들었어요.

 

마이크가 손을 뻗어 햇치를 옆으로 물러나게 한다. 햇치는 성공하길 기대하며 마이크의 행동을 지켜본다.

때는 한겨울. 장소는 리틀 톨 아일랜드라고 불리는 작은 섬. 이 곳은 또다른 킹의 작품 "돌로레스 클레이본 Dolores Claiborne"의 무대가 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아내가 운영하는 탁아소에서 일어난 작은 소동을 해결한 마을 경찰 마이크 앤더슨은 자신의 가게이면서 마을 경찰 사무실도 겸하고 있는 동네 슈퍼마켓으로 돌아온다. 곧 큰 폭풍이 몰아칠 거라는 일기예보 때문에 마을 주민들이 생필품을 사느라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살인사건이 일어났다는 제보가 들어온다. 슈퍼마켓 안은 대충격! 거의 70년 동안 이 작은 섬마을에는 살인사건이 없었기 때문이다. (돌로레스 클레이본의 남편이 죽었던 것도 제외시키자. 살인인지 사고사인지 끝내 결론이 안났으니까.) 마이크는 현장으로 출동한다. 마을에 사는 한 할머니를 지팡이로 수십차례 후려쳐서 살해한 사건이었다. 범인은 섬마을 사람이 아니라 처음보는 남자였는데, 도망치지 않고 태연하게 살인이 일어난 방에 앉아 있다. 범인의 이름은 앙드레 리노지. 마이크는 리노지를 체포해서 슈퍼 뒤쪽에 마련된 유치장에 가두어 버린다. 리노지가 마이크에게 침착한 목소리로 말한다. "내가 원하는 것을 주면 순순히 물러가겠다." 뭔 소리냐? 마이크는 무시해 버린다.

그날 밤 눈보라를 동반한 사상 최대의 폭풍이 리틀 톨 아일랜드를 덮친다. 섬은 외부와 완전히 고립돼 버리고, 주민 대부분은 마을에 설치된 대피소로 몰려든다. 그리고 주민들이 하나둘씩 석연치 않은 이유로 죽음을 맞이한다. 살인현장을 비롯한 마을 곳곳에는 이상한 문구들로 뒤덮혀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주면 순순히 물러가겠다.] 마이크는 두려운 눈길로 리노지를 바라본다. 리노지는 유치장 침대에 걸터 앉아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다. 리노지 당신이 원하는 것은 뭐지?

나는 "Storm of the Century" 시나리오를 읽으며 정말 짜릿한 흥분을 느꼈다. 리노지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주민들을 하나둘씩 살해하며 점점 마을 사람들의 마음에 공포를 불러 일으키는 사건 전개가 긴장감 있게 전개되었다. 특히 폭풍이 몰아치던 날 밤, 마을 주민들이 동시에 꾸게 되는 악몽이 인상에 남는다. 악몽 속에서 TV리포터가 등장해 리틀 톨 아일랜드의 미래 모습을 보여주며 리노지가 원하는 것을 주지 않으면 1587년 버지니아의 로아노크 섬처럼 만들어 버리겠다고 협박하는 모습이 섬칫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인터넷에서 조사한 내용을 소개하겠다.

[출처: The Compton's Encyclopedia]

1587년 버지니아주 로아노크 섬으로 114명의 영국 사람들이 이주했다. 새로운 땅을 개척하려는 시도였던 것이다. 존 화이트라는 사람이 개척단의 리더였다. 섬 개척은 무척 험한 일이었고 시간이 지나자 물자가 부족해졌다. 존은 물자를 구하러 잉글랜드로 갔다. 그런데 3년이 지나서야 다시 섬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가 로아노크 섬에 돌아왔을 때 섬에는 사람의 흔적이 없었다. 살아있는 사람도 죽은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단지 사람들이 사용하던 물건들만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마치 사람들만 공중으로 증발해 버린 것처럼. 존이 찾아낸 유일한 단서는 섬의 나무 하나에 새겨져 있는 "CRO"라는 글씨였다. 존은 그 세 글자가 로아노크 섬에서 가까운 Croatoan 섬을 쓰려던 것으로 생각하고서, 그의 가족과 동료 영국인들을 찾기 위해 크로아토안 섬으로 찾아갔다. 하지만 그 곳에서도 사라져버린 사람들을 찾을 수 없었다.

버지니아주 로아노크시 관계자는 스티븐 킹이 뭔가 착각하고 있다고 말한다. 로아노크는 1671년까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킹이 버지니아 로아노크와 노스 캐롤라이너 로아노크를 혼동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시나리오 속에서 킹은 로아노크의 나무에 새겨진 글씨는 "CROATON"이라고 설명한다. 시나리오 후반부에 리틀 톨 아일랜드에서도 "CROATON"이란 글씨가 발견된다.)

역사적 사실이야 어쨌든 리틀 톨 아일랜드 사람들은 악몽을 꾸고 난 뒤 엄청난 두려움에 벌벌 떤다. 시나리오 후반부에 가면 드디어 리노지가 받기를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밝혀지게 된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과연 어떻게 할 것인지 회의를 하게 된다. 정의와 인간성을 위해 사악한 괴물 리노지에 맞서 싸우자는 소수파와 현실적 사정을 감안해서 리노지에게 원하는 것을 줘버리자는 다수파가 맞선다. 이 부분이 작품의 절정을 이루는 클라이막스이면서 위에서 소개한 킹의 생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명장면이다: 공동의 이익을 위해 하나로 뭉치는 것이 항상 옳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일까? 결국 마을 사람들은 결정을 내리게 되고 그들 앞에 음흉한 미소의 리노지가 나타나 묻는다. 내가 원하는 것을 줄 것인가? 아니면 리틀 톨 아일랜드도 로아노크 섬처럼 될 것인가?

"Storm of the Century"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마치 소설을 읽는 것 같았다. 대사 중간중간 사이에 스티븐 킹이 친절하게 자세한 설명을 써놓아서 실감나게 몰입하도록 도와주었다. 이 곳은 돌로레스 클레이본의 섬입니다, 우린 이 사람의 무례한 행동을 이해해야 합니다 바로 전 날에 남편이 죽었잖아요, 지금 이 여성이 아이들에게 읽어주고 있는 동화는 제 소설 "샤이닝 The Shining"의 꼬마 주인공 대니 토랜스가 무지 좋아하던 동화입니다...

나는 이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너무 재미있어서 시간가는 줄 몰랐다. 시시각각 마을 사람들을 조여오는 공포가 스피드있게 펼쳐져서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될까 궁금한 나머지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마치 내가 폭풍이 몰아치는 섬마을 대피소에 와있는 듯한 현장감이 팍팍 느껴졌고... 그리고 읽고 난 뒤에는 깊은 감동의 물결이 내 마음 속을 가득 채웠다. 마음 속에 아련한 슬픔이 느껴지는 게 마치 오래 전 처음으로 킹의 소설 "It"을 읽고 난 뒤의 기분 같았다. 그만큼 시나리오에서 느껴지는 여운이 엄청났다. 특히 시나리오 결말에 가면 폭풍이 섬을 휩쓸고 지나간 뒤 10년 후의 이야기가 짧게 펼쳐진다. 그 부분에서 보여지는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특히 마이크 앤더슨이 겪게 되는 일은... 정말 가슴 아팠다.

"Storm of the Century" 시나리오는 나에게 있어 최고였다. 소설과는 달리 등장인물들의 대사 위주로 전개되는 시나리오의 특성에 내가 그만 홀라당 넘어간 것일지도 모르지만. 이 작품은 아들이 전기톱으로 엄마의 몸통을 절단내는 식의 영화를 공포장르의 최고라고 생각하는 하드 고어 팬에게는 추천하지 않는다. 시시하다고 불평이 쏟아질 것이다. 그렇지만 공포장르가 인간의 마음 속에 슬픔의 감동을 전해줄 수 있다는 것을 믿고 기꺼이 감동에 동참할 준비가 된 사람들에게는 강력추천한다. 혹시라도 스티븐 킹이 "Storm of the Century" 속편을 쓰게 된다면 정말정말정말 대찬성이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영상으로 옮긴 미니시리즈는 과연 어떤 수준일까?

미니시리즈 "Storm of the Century"는 2001년 국내에 "센트리 스톰"이라는 제목으로 비디오 출시되었다. 미국에서는 런닝타임 248분에 테이프 2개짜리로 출시되었지만, 국내에는 달랑 테이프 1개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스티븐 킹의 인지도가 낮아서 테이프 2개로 출시할 경우 대여율이 저조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는 아직 비디오를 보지 못해서 어느 부분이 잘려 나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예 출시가 안되는 것보다는 잘렸더라도 출시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외국사이트에 올라온 평을 보면 이제껏 방송된 스티븐 킹 미니시리즈 중 최고라는 호평까지 들을 정도이니 비록 국내판은 삭제판이더라도 동네 비디오가게에서 빌려볼 것을 권유하고 싶다. 만약 비디오 가게에 테이프가 없다면?

비디오 가게 한복판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서 3박 4일동안 단식농성에 들어갈 것을 추천한다. 놀란 가게 주인이 왜 그러냐고 물으면 "내가 원하는 것을 주면 순순히 물러가겠다. [센트리 스톰] 테이프를 어여 가져다 주오."라고 대답하자. 그러면 보고 싶은 비디오 테이프를 손에 넣게 되던가 아니면 가게 주인한테 맞아 죽던가 결판이 날 것이다.

그러다 결국 국내에 이 미니시리즈가 "스티븐 킹의 센트리 스톰"이라는 제목으로 DVD가 출시되었다. 당연히 이 DVD에는 비디오와 달리 삭제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