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lass Floor

작품 감상문 2007. 5. 12. 00:37 posted by 조재형
사용자 삽입 이미지
 

The Glass Floor

(1967년 단편소설)

 리처드 바크먼이란 필명으로 발표된 킹의 소설 "통제자들 The Regulators" 영문판 뒷표지를 보면 리처드 바크먼이라고 박박 우기면서 젊은 시절의 킹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형 데이브가 찍은 사진이라는데, 굵은 뿔테안경의 스티븐 킹이 담배를 손에 쥐고 야심만만한 표정을 짓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웬지 웃음이 나온다. 그런데 킹 앞에 놓인 타자기 위로 책이 펼쳐져 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굵은 글씨의 제목이 눈에 보인다. "The Glass Floor". 과연 이게 뭘까? 너무 궁금했는데, 얼마후 나는 이 제목이 킹의 단편소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The Glass Floor"는 1967년 Startling Mystery Stories라는 잡지에 발표된 스티븐 킹의 단편소설인데, 킹에게는 너무나 의미깊은 작품이다. 정식으로 원고료를 받고서 발표한 최초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프로작가를 꿈꾸는 이에게 작품 원고료가 지급된다는 것은 자신의 실력을 정식으로 인정받았다는 것이니, 그동안 잡지사들로부터 퇴짜만 맞던 킹이 얼마나 감격했을지는 안봐도 훤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잡지에 실린 "The Glass Floor"를 보면 한쪽 구석에 편집인의 글이 붙어 있다. 읽어보면 잡지에 실리기까지 킹이 겪었을 땀과 눈물이 느껴지는 것 같다.

[스티븐 킹은 저희 잡지에 수차례 작품을 보냈었습니다. 그의 작품들 중 한편은 그에게 다시 돌려 보내면서도 정말 안타까운 심정이 들었습니다. 돌려보낸 이유가 잡지에 싣기에는 그 작품이 너무 길었다는 이유였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불굴의 의지가 그에게 결실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자 여기 문제의 그 작품이 잡지에 실을 수 있을만한 적절한 분량으로 다듬어져 오싹한 소설로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워튼은 시집간 여동생의 집에 찾아간다. 얼마전 여동생이 석연찮은 사고로 죽었는데, 서둘러 매장되었기 때문이다. 워튼은 어떻게 된 일이냐며 동생의 남편 레이너드를 추궁한다. 실랑이 끝에 레이너드는 자초지종을 털어 놓은다. 저택의 이스트룸에 여동생이 사다리를 가지고 청소하러 들어갔다가 떨어지는 바람에 목이 부러져 죽었다는 것이다. 워튼은 이스트룸에 들어가 봐야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레이너드는 한사코 말린다.

"이미 그 방은 폐쇄돼 있어요. 사고 직후에 내가 시멘트로 문을 막아 버렸으니까. 이스트룸에 들어가선 안돼요. 그 방은 바닥이 거울로 되어 있어요. 그 방에 들어가는 사람은 죽어요..."

레이너드의 말을 믿지 못하는 워튼은 문에 발라져 있는 시멘트를 긁어내고서 이스트룸에 들어간다. 레이너드의 말대로 바닥 전체가 거울로 되어 있는 방이다. 그리고 거울 위에 서있던 워튼은 어느 순간 문득 자신의 신변에 위험이 닥쳤다는 알아차리고 절규한다. "사람살려~~"

"The Glass Floor"는 굉장히 짧은 소설이지만, 결말을 읽는 순간 기괴한 쾌감을 느끼게 한다. 바닥이 온통 거울로 되어 있다는 기묘한 설정이 갖는 시각적인 면이 읽는이의 마음을 매혹시키다가 마지막에 가서 그 시각적인 면이 극대화되어 묘사되는 상황은 스티븐 킹이라는 초보작가의 앞날을 기대하게 만들어 버린다. 한마디로 원고료가 아깝지 않은 멋진 작품이다.

그러고보면 위에 소개한 한장의 흑백사진이 탄생하게 된 이유를 추측할 수 있을 것 같다. 킹은 난생처음으로 원고료를 받고서 잡지에 자신의 작품을 발표한다. 흥분의 도가니에 싸인 킹은 이 역사적인 순간을 사진으로 남겨서 영원히 간직하기로 결심한다. 촬영장소는 역작 "The Glass Floor"가 쓰여졌던 타자기 앞. 타자기 위에는 작품이 실린 잡지를 놓는다. 제목이 보이도록 잡지 22~23페이지를 펼쳐놓는 것도 빼먹지 않는다. 그런데 이걸로는 부족하다. 그렇다. 고뇌하는 작가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 한 손에 쓰디쓴 담배 한개비를 쥐고 있는 설정을 추가한다. 그림 완성이다. 킹은 형 데이브를 불러서 사진을 찍으라고 강요한다. 아니꼽지만 동생의 원고료가 탐이 난 형은 시키는 대로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폼나게 45도 각도로 몸을 틀고 있던 킹은 카메라를 향해 도발적인 강렬한 눈빛을 보낸다. "난 이제 세계 최고의 소설가가 될 것이다." 찰칵!

"The Glass Floor"는 1967년 말고도 킹이 완전히 슈퍼작가로서의 지위를 누리고 있던 1990년 Weird Tales 잡지에 또다시 수록된다. 이때 킹은 작품 앞에 서문을 썼는데, 여기에 소개하겠다.

1990년 잡지 "Weird Tales" 가을호 "The Glass Floor" 서문

제임스 딕키의 소설 "Deliverance"에 보면, 아주아주 깊숙한 오지마을에서 살아가는 한 시골남자가 차를 고치다가 수리공구로 그만 자기 손을 내리치게 됩니다. 강 하류로 내려간 사람들을 찾기 위해 마을에 왔던 도시남자가 손을 다친 그라이너라는 시골남자에게 괜찮냐고 묻습니다. 그라이너는 피범벅이 된 자기 손을 쳐다보더니 중얼거립니다. "생각보다는 별로 나쁘지 않구만."

바로 그 대사가 요즘 "The Glass Floor"를 다시 한번 읽어보고 제가 느꼈던 기분입니다. "The Glass Floor"는 정식으로 원고료를 받고 발표한 최초의 작품입니다. 이 오래된 작품을 Weird Tales에 다시 수록하면서 편집인 대럴 슈바이처는 제가 원하는대로 작품을 새로 고쳐써도 된다는 제안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뜯어 고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결정했습니다. 단어 두어개 정도를 바꾸고 문단 나누기를 손질한 것(처음 발표당시 인쇄상의 실수같은 것으로 방치됐던 부분을 교정했습니다.)만 빼면, 이 단편소설은 처음 발표 당시 그대로의 모습으로 선보이는 것입니다. 만약 제가 작품을 고치려고 마음 먹었다면, 결과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작품이 되어 버렸을 겁니다.

기억을 최대한 되살려 보건대, 스무번째 생일을 두어달 정도 남겨둔 1967년 여름에, 저는 "The Glass Floor"를 썼습니다. 그 당시 저는 매우 인기있던 작품집 Sexology와 두 종류의 공포/환타지 잡지에서 편집인으로 활동하던 로버트 A. W. 라운즈에게 작품을 팔려고 2년동안 무던히도 기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는 저의 수차례 원고투고를 친절하게 거절해 주었는데(그때 퇴짜맞은 작품 중 하나는 먼 훗날 "Night of the Tiger"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습니다.), 제가 마침내 "The Glass Floor"를 보내자 그는 잡지에 수록하는 것을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난생 처음으로 원고료라는 것을 35달러 받았습니다. 그때 이후로 원고료로 더욱더 많은 액수를 받아 왔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어마어마한 액수도 맨처음 원고료가 주었던 기쁨을 능가하지는 못했습니다. 허구헌날 퇴짜만 맞더니 마침내 누군가가 내 머리 속에서 만들어진 결과물에 진짜 돈을 지불하다니!

"The Glass Floor"의 처음 몇페이지는 대단히 서툴고 엉망인 수준입니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작가의 마음이 만들어낸 결과죠. 그렇지만 지금 다시 읽어보니 마지막 부분은 이제까지 제가 기억했던 것보다 훨씬 훌륭합니다. 미스터 워튼이 이스트룸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의 정체를 알게 되는 장면에서는 진짜 전율이 살아 숨쉬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점이 전반적으로 그저그런 수준인 이 작품을 몇십년이 흐른 지금 여러분에게 다시 선보이도록 제가 동의했던 이유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이 작품에는 종이인형같은 단순한 캐릭터를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흔적이 배어 있습니다. 워튼과 레이너드는 서로 신경전을 벌이지만, 둘 모두 "착한 사람"도 "나쁜 사람"도 아닙니다. 진정한 악당은 시멘트로 막혀버린 문 뒤에서 기다리고 있죠. 그리고 "The Glass Floor"가 끼친 기묘한 영향력은 저의 최근 작품 "사라진 도서관 The Library Policeman"에 남아 있습니다. 짧은 소설인 "사라진 도서관"은 올가을 발표되는 소설집 "Four Past Midnight"에 수록될 예정인데, 여러분이 그 작품을 읽게 된다면 지금 제가 말한 기묘한 영향력의 실체를 알게 되실 겁니다. 세월의 간격을 뛰어 넘어 같은 이미지를 또다시 목격하게 되는 경험은 짜릿한 기분이 들게 합니다.

"The Glass Floor"를 지금 여러분께 다시 선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젊은 작가들에게 메세지를 전하고 싶어서입니다. 지금 이 순간도 열심히 쓰고, 작품발표를 위해 노력하고, F&SF Midnight Graffiti나 Weird Tales같은 잡지들로부터 받은 거절통지서들을 수북히 쌓아놓고 있는 젊은 작가들에게 말입니다. 저의 메세지는 간단합니다. 여러분은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더욱더 발전할 수 있으며, 작품발표의 기회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작품 속에 작은 불꽃이라도 들어 있기만 하면, 그 어둠 속에  희미하게 빛을 내는 불꽃을 누군가가 조만간 알아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그 불꽃을 장작 속에 집어넣게 되면, 불꽃은 거대하고 강렬한 불길이 되어 활활 타오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제 실제경험이었고, 작은 불꽃 하나에서부터 저의 작가인생이 출발했었던 것입니다.

"The Glass Floor"의 아이디어를 떠올렸던 순간이 기억납니다. 다른 모든 아이디어와 마찬가지로 그냥 불쑥 생각났었죠. 요란벅적스런 대단한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친구를 만나러 길을 걷고 있다가, 아무런 이유없이 불쑥 '바닥이 거울로 되어 있는 방에 서있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머리 속에 떠오른 이미지가 너무 강렬해서 소설로 써야겠다고 마음 먹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돈을 염두에 두고 쓴 것이 아닙니다. 이 작품을 쓰게 된 덕분에 저는 글쓰기에 대해서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물론 제 기대만큼 완벽한 글쓰기 도사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이 작품은 제가 이루고 싶었고, 또 이루려고 열심히 애를 썼던 목표에서 많은 부분 부족한 점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작품에서 저는 두가지 귀중한 것을 얻었습니다. 5년동안 출판사들에게서 거절통지서의 홍수에 시달린 끝에 원고료를 받고 정식으로 발표하게 된 작품을 얻었다는 것과 작지만 소중한 작가경험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자 이제 "The Glass Floor"를 읽어 보세요. 딕키의 소설에 등장하는 그라이너라는 남자의 말처럼, 생각보다는 별로 나쁘지 않으니까요.

-- 스티븐 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