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에서 / Elevation

작품 감상문 2019. 4. 28. 23:33 posted by 조재형

Elevation

(2018년 중편소설)


스티븐 킹은 자신에게 영향을 끼친 선배 작가 중 한 명으로 리처드 매드슨을 꼽았으며 매드슨이 쓴 작품들에 대한 애정을 표현해왔다.

미국에서 2002년 출간된 리처드 매드슨의 단편집 "Nightmare At 20,000 Feet"에 스티븐 킹이 서문을 썼는데, 1950년대 미국에서 죽어가던 공포소설계에 혜성처럼 등장하여 혁신을 이룩한 리처드 매드슨의 업적을 마구 찬양하면서 이런 표현까지 했다.

사람들이 (공포)장르에 관하여 이야기할 때면 내 이름을 제일 먼저 언급하는 것 같은데, 리처드 매드슨이 없었다면 나는 이 장르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음악계에서 베시 스미스를 엘비스 프레슬리의 어머니라고 표현하는 것 만큼이나 리처드 매드슨은 나의 아버지다.

이 정도면 스티븐 킹이 리처드 매드슨을 얼마나 존경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고, 스티븐 킹 팬으로서 호기심이 생긴 나는 리처드 매드슨의 작품을 여러 편 찾아서 읽었다.

그러다 리처드 매드슨의 1956년 소설 "줄어드는 남자(The Shrinking Man)"를 인터넷서점 아마존에서 전자책으로 구입해서 읽다가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줄어드는 남자"는 매일 꾸준히 몸이 작아지는 남자를 묘사하는 소설인데, 오래 전 작품이라서 소설 속에 등장하는 소품이나 배경 같은 것들이 시대상을 반영하기는 하지만, 소설의 아이디어가 이야기에 녹아들면서 발생하는 사건과 그 사건에 반응하는 등장인물의 심리묘사에서 낡은 느낌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줄어드는 남자"를 읽다가 어느 순간 스티븐 킹의 최신소설을 읽고 있는듯한 기분까지 느끼기도 했다. (지하실에 갇힌 주인공이 잡지 표지의 모델 사진을 보며 좌절된 성적 욕망에 괴로워하는 장면이나 주인공이 양아치들한테 붙잡혀 정체가 탄로나는 장면 등은 지금 생각해도 소름 돋는다.)

그 정도로 훌륭한 소설이었고, 스티븐 킹이 리처드 매드슨을 존경하는 이유를 실감할 수 있었다.

스티븐 킹의 2018년 중편소설 "Elevation"은 리처드 매드슨의 "줄어드는 남자"를 오마주하는 작품이다.

중편소설 "Elevation"의 머리말에는 "리처드 매드슨을 생각하며"라고 적혀있고, "줄어드는 남자"처럼 "Elevation"의 주인공도 매일 꾸준히 몸무게가 줄어든다.

그리고 두 소설 모두 주인공의 이름이 스콧 캐리다.

미국에서 스티븐 킹 중편소설 "Elevation" 출간소식이 발표되었을 때, 이 소설의 대략적인 스토리는 아래와 같이 공개되었다.

1) 캐슬록 마을에 사는 스콧 캐리는 외형상 큰 변화는 없지만, 매일 꾸준히 체중이 줄어들고 있다. 더 이상한 것은 체중을 재는 시점에 아무리 무거운 옷을 껴입고 있든 벗고 있던지간에 체중계에서 측정한 몸무게가 동일하다.

2) 스콧 캐리는 이웃에 사는 레즈비언 부부와 작은 다툼을 벌이고 있는데, 마을 주민들의 선입견 때문에 식당을 운영하는 레즈비언 부부가 마을을 떠나게 될 운명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그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한다.

1번과 2번의 내용이 하나의 이야기 속에 어떻게 잘 융화되었을지 궁금했는데, 소설을 다 읽은 지금은 주인공 스콧 캐리가 참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설에도 자주 나오지만 매일 체중이 줄어든다는 것은 언젠가 체중이 0이 된다는 것인데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이웃을 도와줄 마음이 생길 수가 있지? 내가 당장 죽을 판인데 어떻게? 나 같은 사람은 그렇게 못할 것 같다.

"줄어드는 남자"의 스콧 캐리에 비하면 "Elevation"의 스콧 캐리는 형편이 좋기는 하다.

"줄어드는 남자"의 주인공은 체중 변화와 함께 신체도 줄어들면서 경제적 문제도 찾아오고 사회는 물론 가정 내에서도 고립되는 처지에 놓이는 비참한 형편이지만, "Elevation"의 주인공은 체중 변화에도 불구하고 외형에 큰 변화가 없고 마을 주민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혼자 살기에 넉넉한 큰 집에 살면서 경제적으로도 문제가 없다.

게다가 "Elevation"의 주인공은 키우고 있는 고양이와 아무 문제없이 잘 지낸다! "줄어드는 남자"의 주인공은 고양이 앞에서 사냥감 취급을 받는데.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줄어드는 남자"의 주인공은 너무 불쌍하다 ㅜ_ㅜ)

"Elevation"의 스콧 캐리는 이혼한 전처한테 주기로 한 돈을 잘 줘야겠다고 다짐하는 등 몸무게가 비정상적으로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한다.

나 같으면 어차피 죽을 운명인데 나를 얽매던 약속이나 의무 따위는 무시하고 나의 행복을 위해서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을 것 같은데, "Elevation"의 스콧 캐리는 이웃집 레즈비언 부부의 인생까지 걱정해주고 걱정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들의 생활에 변화를 주기 위해 노력하다니 참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중편소설 "Elevation"에는 따뜻한 성인동화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한 사람의 노력으로 인심이 흉흉하던 마을에 따뜻한 인정이 흐르게 된다는 식의 분위기. (그래서 해외 독자의 감상 중에는 이 소설의 장르가 "공포"로 분류되는 것에 어리둥절해하는 의견도 있다.)

스콧 캐리가 캐슬록 마을에서 옆집 부부가 처한 현실을 처음으로 실감하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실상을 확인하는 장면이 술술 펼쳐진다. (나는 이 장면을 지하철 안에서 읽었는데, 주인공의 심리묘사를 슥슥 그려나가는 스티븐 킹의 글빨에 심취하여 독서에 열중한 나머지 내려야할 지하철 정거장을 지나치고 말았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ㅜ_ㅜ)

그러다 스콧 캐리가 이벤트에 참가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이 장면을 읽으며 스티븐 킹의 필력에 또 감탄했고, 이 장면을 중편소설 "Elevation"의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한다.

평범하게 진행될 수 있었던 이야기에 스티븐 킹은 작은 굴곡을 주더니만, 그 굴곡을 쥐고 흔들면서 이야기를 의외의 방향으로 끌고 나갔고, 결국 그 장면을 굉장히 드라마틱하게 마무리시킨다.

크~ 역시 이야기의 마법사! 스티븐 킹 짱~!!!

옆집 부부를 도와주려는 이야기가 훈훈하게 흘러가다보니, 독자인 나는 스콧 캐리의 개인적인 체중 변화가 치명적인 상황이라는 것을 잘 느끼지 못할 때가 많고, 소설 막판에 주인공의 상태가 악화되는 장면이 나오게 되면 당연히 나와야하는 장면이라는 것을 이해하면서도 훈훈하던 이야기의 분위기가 갑자기 이상하게 어두워진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소설 속에서 여러 번 체중감소에 대한 두려움이 언급되기는 하지만, 스콧 캐리는 "비정상적인 상황에 처해있기는해도 그래도 기분은 어째서인지 OK야~!!!"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집에 혼자 있는 동안 본인의 미래에 관하여 비참한 기분을 느끼며 머리를 쥐어뜯는 장면 같은 것은 나오지 않는다.)

그러다 맞이하게 되는 "Elevation" 소설의 결말은...

"줄어드는 남자" 소설의 결말은 한계선을 돌파하여 그 이상까지 보여주는 묘사 덕분에 독자에게 경이로움을 선사하지만, "Elevation" 소설의 결말은 한계선에 도달하기 전에 이야기를 끝내서 "아... 이게 이야기의 끝인가..."하는 뭔가 어정쩡한 기분을 느꼈다.

"Elevation" 소설에서는 "미스터리"라는 단어가 자주 언급되는데, 이야기의 결말이 주인공의 상황을 말 그대로 미스터리에 묻어버린채 막을 내린다.

주인공이 옆집 부부를 돕는 일에 성공할 것인가보다는, 멈추지 않고 진행되는 체중 감소가 결국 주인공과 그를 둘러싼 물리적인 환경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에 더 관심이 많던 나로서는 "Elevation" 소설의 미지근한 끝맺음에 아쉬움이 남는다. 이야기의 전개가 조금 더 나아갔으면 좋았을 것 같은데.

그래도 한 사람의 노력으로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나누어주는 훈훈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중편소설 "Elevation"을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p.s. 2019년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중편소설 "Elevation"을 "고도에서"라는 제목으로 번역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