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메르세데스 / Mr. Mercedes

작품 감상문 2014. 10. 25. 02:18 posted by 조재형

 

Mr. Mercedes

(2014년 장편소설)


한 여성이 몰던 자동차가 맥도날드 매장으로 돌진했다는 사고 소식.

스티븐 킹은 이 실제 사고 소식에서 영감을 받아 단편소설을 쓰기로 한다. 하지만... 쓰다보니 분량은 점점 늘어나 장편소설 "Mr. Mercedes"가 되었다!

실제 사고에서는 자동차가 맥도날드 매장을 들이받았지만, 스티븐 킹 소설 "Mr. Mercedes"에서는 취업박람회장을 들이받는다.

취업박람회장 앞에 모인 무직자들. 취업박람회 오픈시간에 남들보다 먼저 입장하기 위해 새벽녘부터 행사장 앞에 줄 선 절박한 무직자들.

새벽녘 취업박람회장 앞의 분위기를 묘사하는 것으로 소설 "Mr. Mercedes"는 인상적인 출발을 시작한다.

기온이 떨어져 쌀쌀해진 새벽에 줄 선 무직자들 중 한 명의 시점을 통하여 취업박람회 오픈을 기다리는 무직자들의 나른하면서도 초조한 상태를 슥슥 효과적으로 스케치하는 스티븐 킹의 글솜씨를 따라가다보니 이 소설에 대한 기대감이 점점 증폭되었다.

그러다 나타난다. 독일 "럭셔리" 자동차공학의 결정체! 메르세데스 벤츠. 새벽 안개를 뚫고 난데없이 출몰한 메르세데스 벤츠가 취업박랍회장 앞의 무직자들한테 돌진하는 그 강렬한 묘사가 압도적으로 펼쳐지더니......

이야기는 어떤 할아버지한테로 이동한다.

빌 호지스. 수많은 강력범죄를 소탕한 능력있는 형사였지만 퇴직 후 이제는 평범한 동네 백수 뚱보 할아버지로 탈바꿈하여 무기력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빌 호지스 할아버지.

어느 날 빌에게 편지 한 통이 도착한다. 취업박람회장으로 메르세데스 벤츠를 돌진시켜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달아나 미스터 메르세데스라고 불리는 범인이 보낸 편지다.

편지에서 범인은 자신을 체포하지 못한 빌의 무능력을 마구 조롱하고, 그런 편지에 자극받은 빌 할아버지는 뒤늦게나마 범인을 잡기 위한 행동에 나선다.

소설 "Mr. Mercedes"는 전직 형사가 범인을 잡기 위해 탐문수사를 벌이는 모습과 범인이 전직 형사한테 미끼를 던지고 치명적인 공격의 기회를 준비하는 모습을 순차적으로 보여주는데, 이 과정에서 빌과 범인은 밀고 당기는 심리게임을 펼친다.

이런 식으로 주인공과 범인이 서로 먼 발치에서 대치하는 소설은 작가의 필력이 정말 중요할 것이다. 직접적인 충돌 없이 등장인물들의 개별적인 활동만으로 독자한테 책장을 넘기게 할만한 자극과 동기를 부여한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스티븐 킹은 뭐 늘 그렇듯 노련하게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간다.

빌 호지스가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얻은 사소한 단서를 토대로 범인의 윤곽을 서서히 잡아나가는 와중에, 등장인물들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돌발상황이 발생하여 이야기의 흐름을 급격하게 변화시키기도 한다.

상황묘사의 달인 스티븐 킹의 손길을 거친 문장들이 매끈하게 이어져, 평범한 장면도 뭔가 불길한 예감을 연상하게 하는 분위기를 은은하게 풍겨대는 통에 책장을 넘기는 나의 손이 점점 바빠졌다.

그런데 소설 "Mr. Mercedes"에서 희생자를 죽음으로 몰고간 증거를 찾아내는 후반부 장면은 나한테 아쉽게 다가왔다.

운전할 때 얼굴에 뒤집어썼던 가면이 경찰 손에 들어가면 큰일날까봐 가면 뒷처리에 상당히 공을 들이던 주도면밀한 범인이 다른 범행증거를 없애지 않고 그대로 놔두고 있었다니.

물론 그 희생자의 죽음이 대외적으로 명분이 뚜렷하여 그런 증거를 경찰이 발견하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을 거라고 범인이 느긋하게 생각했을 수도 있겠지만... 희생자의 죽음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는 사람이 그 증거를 찾았을 때는 범인한테 위험하게 작용할만한 증거였고... 실제로 소설에서도 그 증거의 발견으로 인하여 범인의 정체가 급속도로 까발려진다.

스티븐 킹도 범인이 증거를 없애지 않고 방치한 부분이 마음에 걸렸던지 증거를 발견한 등장인물의 입을 통하여 "사람이 살다보면 깜빡 잊고 지낼수도 있는거지"라는 식으로 범인의 실책을 변호(?)하기까지 하는데... 소설 "Mr. Mercedes"을 읽으면서 유일하게 어색하게 다가온 장면이었다.

(이 증거가 희생자의 죽음에 일조를 했다는 것도 좀 어색하게 느껴졌다. 옛날 공포소설이나 고딕소설에 나올만한 트릭이었고, 희생자가 나이가 많고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다고는해도 그 증거가 활약을 펼칠 때마다 희생자가 괴로워하던 모습을 떠올리면... 어색한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아무튼 이 증거의 발견으로 인하여 이야기의 속도는 미칠듯이 빨라진다.

이때쯤되면 범인의 상태도 이판사판 막판으로 치닫는 때라서 범인도 빌 호지스도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이 없이 앞만 보고 질주하는 형국이 된다.

범인이 최후의 발악을 시작하고, 빌이 필사적으로 막으려고 발버둥치는 장면이 숨막히게 전개된다. 이 장면을 읽고 있으니 독자의 심장을 조이는 스티븐 킹의 악력에 감탄을 하게 되는데, 등장인물들이 느끼는 압박감을 독자인 내가 실시간으로 고스란히 전달받는 느낌이 들어서 자꾸만 흥분상태에 빠졌고, 그래서 이 책은 고혈압 환자들한테 안 좋은 것 같다. (결론이 이상해 -_-;;;;)

스티븐 킹이 쓴 범죄소설 "Mr. Mercedes"를 참 재미있게 읽었다. 등장인물들이 소기의 목적을 가지고 행동하는 과정에서 겪는 시행착오를 속도감 있게 묘사하며 후련한 기분을 느끼게 해준 작품이었다. (스토리가 간결하고 명확한 작품이라서 스포일러를 피해 감상문을 작성하자니 참 힘들다;;;;)

형사 시절 수사과정에서 선입견에 사로잡힌 나머지 제대로 된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반성하고 뒤늦게나마 최선을 다해 진실을 파헤치려 노력했던 빌 호지스 할아버지의 활약은 소설 "Mr. Mercedes" 한 작품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 소설은 3부작 시리즈로 기획된 작품이고 3부작 속에서 취업박람회장 사건이 여전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하는데, 소설 "Mr. Mercedes"에 이어 2015년에 등장할 2번째 작품이 어떤 내용으로 나올지 무척 기대된다.

p.s. 이 소설은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미스터 메르세데스"라는 제목으로 번역출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