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립쇼 / Creepshow

작품 감상문 2007. 5. 12. 00:45 posted by 조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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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epshow

(1983년 만화책)

1982년 미국에서는 "Creepshow"라는 영화가 개봉되었다. 스티븐 킹이 시나리오를 쓰고,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등의 영화로 유명한 죠지 로메로 감독이 연출한 영화다. 스티븐 킹은 어려서부터 보고 자란 B급 공포 영화들과 만화책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언급하곤 했는데, 이 영화는 그런 B급 공포가 무엇인지를 확실히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는 스티븐 킹과 킹의 아들 죠가 특별출연한다.

지금부터 소개하는 "Creepshow"는 82년도 영화를 만화책으로 옮긴 것이다. 이 만화책은 스티븐 킹의 취향대로 50년대 공포만화책의 형태로 만들어졌다. "Creepshow" 만화책 표지그림은 Jack Kamen이란 사람이 그렸는데, 이 사람은 50년대에 걸작 공포만화를 펴냈던 EC Comics 출판사에서 그당시 활동하던 유명한 만화가이다. "Creepshow" 만화책 본문그림은 또다른 킹의 작품 "늑대인간 Cycle of the Werewolf"와 "미래의 묵시록 The Stand"에서 일러스트를 담당했던 Berni Wrightson이 맡아서 스티븐 킹의 분위기와 50년대 공포만화의 분위기를 훌륭하게 표현해냈다.

만화책 표지그림을 보면 한 소년이 보름달 밤에 손전등을 옆구리에 끼고 "Creepshow" 만화책을 열심히 읽고 있는데, 창 밖에서는 두건을 쓴 뼈다구 인간이 소년을 흐뭇하게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다. 만화책 내용도 이런 표지그림 분위기에 걸맞게 시종일관 오싹하면서도 재미있게 펼쳐진다. 줄거리 전개는  The Creep이라는 이름의 괴물 캐릭터가 5편의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자 그럼 "Creepshow" 만화책의 5개 에피소드들을 살펴 봅시다.


1. Father's Day

베델리아는 수십년동안 휠체어 생활을 하는 아버지의 병수발을 해왔다. 아버지는 돈은 많지만 성질은 X같은 사람이었는데, 베델리아는 묵묵히 견뎌온 것이다. 어느날 그녀는 아버지에게 애인이 생겼다며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질투를 느낀 아버지는 어디론가 몰래 전화를 건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베델리아의 애인은 사냥하러 들어간 숲 속에서 총기사고로 사망한다. 그리고 아버지의 날(6월 셋째 일요일)이 되었다. 아버지는 휠체어를 두드리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오늘은 아버지의 날이야! 케이크 먹고 싶어, 베델리아! 내 케이크 어디 있어?!" 부엌에서 아버지의 날 케이크를 만들고 있던 베델리아는 애인을 살해한 아버지에 대한 적개심에 불타 올라 우발적으로 아버지를 살해한다.

7년후 아버지의 날. 베델리아는 술에 취한채 아버지의 무덤을 찾는다. 옛일을 생각하며 울적한 기분에 젖는데, 그때 무덤이 열린다. 그리고 아버지의 목소리가... "오늘은 아버지의 날, 케이크 먹고 싶어! 내 케이크 어디 있어, 베델리아?"

"Creepshow" 만화책의 첫부분을 장식하는 재미있는 이야기다. 저승에 가서도 케이크 맛을 잊지 못해 무덤 밖으로 튀어나오다니, 과연 인간이란 존재는 살기 위해 먹는 것인지 아니면 먹기 위해 사는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하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이야기 결말에 가서는 무덤에서 나온 아버지가 엽기적인 케이크를 손에 넣게 되는데, 그 맛이 어떨지 궁금하다. 스티븐 킹도 아버지의 날이 되면 자식들한테 케이크를 받을 텐데, 바로 그런 맛일까?

"Creepshow" 만화책에서는 심각한 욕설이 나올때마다 X@%☆!으로 표시해서, 만화책을 보는 청소년들의 정서순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참으로 세심한 배려라고 생각된다.


2. The Lonesome Death of Jordy Verrill

시골 외진 곳에 사는 가난한 조디 베럴의 집 옆으로 운석이 떨어진다. 조디 베럴은 너무너무 신이 난다. 운석을 가져다 연구소 같은 곳에 팔면 큰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 무슨 불행인가! 운석이 너무 뜨거워서 찬물을 끼얹었는데, 그만 운석이 둘로 쪼개져 버린다. 게다가 쪼개진 운석에서 흘러나온 뜨겁고 끈적한 액체에 손을 데이기까지 한다. 낙담한 조디. 나중에 본드로 운석을 붙여야 겠다고 생각하고 집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더 큰 불행이 조디를 기다리고 있었다. 운석액체를 만졌던 손을 시작으로 해서 조디의 온몸에 풀이 자라기 시작한다. 사람은 자연보호 자연은 사람보호라는 속담이 있는데, 온몸에 풀이 돋아난 조디는 과연 사람이란 말인가 자연이란 말인가? 이런 어이없는 사태를 맞이한 조디는 외로운 선택을 하게 된다.

제목 그대로 쓸쓸한 여운을 남기는 슬픈 이야기다. 주인공 조디 베럴에게 연민을 느낄 정도로. 운석이 몰고 온 공포스런 상황 앞에서 괴로워하는 조디의 처지가 짧지만 강렬하게 묘사되고 있다. 이상한 물건은 만지지 말고, 가까운 군부대나 경찰서에 신고하는 것이 옳바른 행동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이야기였다.

"Creepshow" 영화 속에서는 스티븐 킹이 조디 베럴을 연기했다! 스토리상으로 보건대 조디 베럴은 외로운 죽음을 연기해야 하므로 상당한 연기력이 필요한 배역이다. 킹이 어떻게 연기했을지 무척 궁금하기만 하다.

"The Lonesome Death of Jordy Verrill"은 1976년 Cavailer잡지에 "Weeds"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스티븐 킹의 단편소설을 토대로 하고 있다. 물론 소설쪽이 만화쪽보다 더 자세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3. The Cr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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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수인 스탠리는 대학건물 청소부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우연히 지하실 계단 밑에서 오래된 나무상자를 발견했으니 와서 봐달라는 것이다. 그 즉시 달려간 스탠리는 청소부와 함께 나무상자를 꺼낸다. 상자에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1834년 북극탐험> 청소부는 나무상자를 열다가 상자 속에 반짝이는 다이아몬드같은 게 있다며 냉큼 손을 집어 넣는다. 바부탱이! 반짝이던 것은 괴물의 눈이었다! 상자 속의 괴물이 청소부의 손을 덮석 물어버린다. 그리고는 청소부를 상자 안으로 끌어들여 먹어치운다. 뼈까지 몽땅. 게다가 괴물은 교수의 말을 우습게 여긴 버릇없는 제자까지도 디저트로 먹어치운다.

놀란 스탠리 교수는 나무상자로부터 도망쳐서 친구인 헨리를 찾아간다. 스탠리의 괴물 이야기를 들어버린 헨리는 마음 속으로 음흉한 계획을 세워 버린다. 스탠리 교수를 혼수상태에 빠뜨린 뒤, 헨리는 음흉한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앞서 소개한 조디 베럴의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이번 이야기의 교훈도 명확하다. 이상한 물건은 만지지 말고, 가까운 군부대나 경찰서에 신고하는 것이 옳바른 행동이라는 것이다.

"The Crate"는 "Creepshow" 만화책의 다섯가지 에피소드 중 가장 많은 피가 난무하는 이야기다. 그러면서도 줄거리 전개에 아기자기한 맛이 넘치는 재미있는 작품이다. 단순하게 끝날 수도 있었던 소재를 가정문제와 연결지어 풀어낸 스티븐 킹의 재치있는 솜씨가 좋았다.

"The Crate"는 영화나 만화보다 앞서서 1979년 Gallery magazine에 "The Crate"라는 단편소설로 발표되었다. 소설쪽이 만화쪽보다 줄거리나 인물심리묘사 면에서 더 자세하고 치밀하다. 그래도 만화쪽의 시각적인 면이 돋보이는 부분도 있다. 에피소드 후반부에 상자 속의 괴물이 마지막 희생자를 덮칠때를 묘사한 Berni Wrightson의 그림 한컷! 오싹하면서도 에로틱하기까지 한 그 장면은 매우 강렬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Creepshow" 만화책을 읽게 되는 분들은 그 명장면을 놓치지 마시길.


4. Something to Tide You Over

리처드는 아내가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처절한 응징을 가하게 된다. 아내와 애인을 바닷가 모래해변에 파놓은 구덩이에 묻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다 묻지는 않고 목만 내놓게 만들었다. 점점 파도는 해변으로 밀려 오는데, 리처드는 숨을 오래 참으면 살 수도 있다는 하나마나한 위로를 남기고는 구덩이 옆에 비디오카메라를 설치해 놓고 집으로 돌아간다. 리처드는 거실에서 해변의 비디오카메라와 연결된 TV 화면으로 구덩이에서 목만 내놓고 있는 사람이 밀려오는 파도에 익사하는 광경을 지켜보며 흡족해 한다. 그날 밤, 그는 해변으로 나가서 카메라를 회수하지만 자신이 죽게 만든 사람들의 시체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는 시체들이 파도에 휩쓸려 갔겠거니하는 안이한 생각을 하고는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한다. 하지만 그때 물방울을 뚝뚝 떨어뜨리며 샤워실로 다가오는 두 사람(?)이 있었으니...

"Something to Tide You Over"는 스티븐 킹이 어린 시절 즐겨 읽었다는 공포만화책의 전형적인 줄거리를 따르고 있는 이야기다. 바람난 음탕한 아내를 복수하는 남편, 그 남편을 복수하기 위해 저승에서 돌아온 아내의 복수. 그렇다면 죽어서 저승에 간 남편은 저승에 먼저 온 아내를 또 복수할까? 그렇게되면 두번 복수당한 아내도 또다시 남편에게 복수를 하고, 그럼 남편은 또 복수를... 그럼 아내도 질세라 또 복수를... 복수의 악순환이 끝없이 펼쳐지는 것일까? 흐흠... 저승에 가서도 최소한 심심하지는 않겠군.

"Something to Tide You Over"는 자신이 계획한 살인을 비디오 카메라를 이용해 생중계로 시청한다는 기묘한 착상을 선보이고 있는데, 그 덕분에 이야기 전체에 독특한 분위기를 선사해 주고 있다. 마지막 장면의 고요한 분위기와 어울려 길게 여운을 남기는 에피소드다.


5. They're Creeping Up on You

프랫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냉정한 사업가다. 그런데 어느날 밤 문제가 하나 생겼다. 항균처리가 완벽하다는 자신의 집에 바퀴벌레가 돌아다니는 것이다. 바퀴벌레가 돌아다니는데 어떻게 항균처리가 완벽하다고 할 수 있지? 프랫은 바퀴벌레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갑자기 옆건물의 불이 전부 꺼진다. 그러더니 다시 불이 들어오는 것 같더니만, 잠시후 다시 정전이 되어 버린다. 도대체 무슨 일이? 그리고는 이번엔 프랫의 집안이 정전이 되어 암흑 속에 빠져든다. 어둠 속에서 프랫은 사태를 직감한다. "그들"이 찾아온 것이다.

이번 에피소드는 다른 말이 필요없다. "바퀴벌레 군단의 습격". 이 한마디면 충분하다. 바퀴벌레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유감없이 보여준다. 우리 인간은 바퀴벌레를 혐오스런 생물로 보는데, 과연 바퀴벌레들은 우리 인간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설마 아무 생각이 없지는 않겠지. (아무 생각이 없다면 바퀴벌레들한테 정말 실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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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epshow" 만화책의 뒷표지에는 수염이 덥수룩한 킹의 사진이 나와 있다.(이 사진은 스티븐 킹의 공포문화 비평서 "죽음의 춤 Danse Macabre"의 표지로 사용되기도 했다.) 사진을 보고 있으면, 킹의 작품들이 공포스럽다는 생각에 앞서 스티븐 킹이라는 인간 자체가 공포라는 생각이 든다. 사진을 찍을 당시 대체 무슨 안좋은 일이 있었기에 저런 몰골을 했을지 궁금하다.

언젠가 일본의 스티븐 킹 팬사이트에 들어가 봤더니, "Creepshow" 만화책 일본어판 출간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그만큼 "Creepshow" 만화책은 스티븐 킹의 독특한 B급 정신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재미있는 책이다. 심각하지 않은 재미있는 이야기들의 잔치. 어서 빨리 한국에서도 번역출간되어 많은 이들이 볼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