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미노커 / The Tommyknockers

작품 감상문 2007. 5. 12. 00:40 posted by 조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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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ommyknockers

(1987년 소설)

스티븐 킹의 소설 "The Tommyknockers"는 교원문고를 통해 "토미노커"라는 제목으로 번역출간되었다.(한국판 표지는 심플하다 못해 단순하다.) 이 소설의 서문에는 킹이 어린 시절 들었다는 전래동요 한대목이 적혀 있는데, 킹의 설명에 의하면 토미노커란 단어는 사전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굶어죽은 광부의 유령을 뜻한다고 한다.

어젯밤에도 그젯밤에도

토미노커는, 토미노커는

문을 두드렸다네.

난 밖에 나가고 싶지만

용기가 없어.

난 토미노커를 제일 무서워하니까

길을 걷다 뭔가에 걸려 넘어진 적이 있나요? 참으로 안된 일이지만, 뭐 신세를 망칠 정도로 끔찍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스티븐 킹의 소설 "토미노커"는 뭔가에 걸려 넘어지는 바람에 신세를 망치게 되는 끔찍한 사례를 냉정한 시선으로 다루고 있다. 그러게 넘어져도 정도껏 넘어져야지. 하필이면...

헤이번 마을에 사는 소설가 보비 앤더슨은 깊은 산 속을 걷다가 땅바닥에 삐죽 튀어나온 금속조각에 걸려 넘어진다. 무심코 그 금속조각을 만져본 보비는 강한 울림을 느끼게 되는데, 그 후로 뭔가에 홀린 것처럼 자신의 몸을 혹사해 가면서 땅속의 금속물체를 꺼내기 위해 미친듯이 땅을 판다. 그러나 파내면 파낼수록 땅속 물체의 크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거대하다. 힘이 부친 그녀는 남자친구인 짐 가드너까지 작업에 끌어들이게 된다.

보비와 짐이 땅을 파서 금속물체가 모습을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헤이번 마을 주민들에게 이상한 변화가 생긴다. 그들은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천재가 되어간다. 건전지, 기계에서 떼어낸 모터, 라디오 속 회로판 같은 잡동사니들을 결합해서 엄청난 힘을 지닌 물건들을 발명해 낸다. 그 중에는 지구를 쑥밭으로 만들어 버릴만한 물건도 있다. 이상한 변화는 주민들의 육체까지도 잠식해서, 주민들은 점점 흉칙한 토미노커가 되어 버린다.

헤이번 마을 경찰관 루스는 이런 위험한 변화를 외부에 알려야 겠다고 결심한다. 토미노커가 되어버린 주민들의 견제에 시달리는 루스는 위험한 도박을 감행하기로 결심하는데... 한편 땅을 파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짐은 보비를 비롯한 다른 주민들과는 달리 이상한 변화에 시달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토미노커들의 소굴로 변해버린 헤이번 마을을 짐이 구원할 수 있을까? 그런데 짐은 자신의 인생에 자포자기 상태이고 알콜중독이면서, 게다가 주민들은 토미노커의 변화를 겪지 않는 짐을 죽이고 싶도록 싫어한다. 짐 가드너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게 되는데...

"토미노커"는 매우 긴 소설이지만, 이야기는 흥미롭고 긴장감 넘친다. 소설 초반에 멀리 떨어져 있던 짐이 자살을 시도하다 불현듯 보비의 신상에 위험이 닥친 것을 느끼고 헤이번의 보비 집까지 찾아가는 과정이 좀 늘어지는 느낌이 들지만, 일단 짐이 보비의 집에서 그녀가 사흘만에 초능력 타자기로 400쪽 분량의 장편소설을 완성시켰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부터는 손에 땀을 쥐는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스티븐 킹은 장편소설의 경우 너무 쓸데없이 많이 쓴다는 지적을 받는 경우가 있는데, "토미노커"의 경우도 분량이 무지 많다.(한국판은 3권짜리다.) 중요 캐릭터뿐만 아니라 스쳐지나가는 캐릭터에 관한 에피소드도 시시콜콜이 들추어 내는가하면, 줄거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데도 헤이번 마을이 형성된 역사적인 과정을 자세히 묘사하기도 한다. 내 생각으로는 이러한 서술방식이 지루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헤이번 마을이 토미노커들의 소굴로 변모해가는 오싹한 모습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또다른 킹의 작품 "Salem's Lot"에서 살렘즈랏 마을이 흡혈귀들의 소굴로 변모해가는 모습을 섬찟하게 그려냈던 것처럼.

그렇지만 분량이 긴 소설이어서일까? 마지막 결말부분에서 몇가지 아쉬운 점이 보였다.

짐은 결말에서 토미노커들의 추격을 받을 위기에 처해서 보비의 집을 탈출해 금속물체가 묻혀있는 곳으로 도망가려 하는데, 몸도 안좋은 사람이 그 시간이 없는 와중에 보비 집 옆에 붙은 죽음의 창고 안에 들어가서 시간을 지체하고야 만다. 개와 아이를 구해야한다는 명분이 붙어있는데, 내 생각으로는 토미노커들의 추격을 따돌리는 수단을 마련하려고 무리하게 스토리를 끼워맞춘 듯해서 어색하게 느껴진다.

짐은 결말에서 발굴이 끝난 금속물체에 접근하려 하는데, 토미노커들이 잡동사니들로 발명한 살인기계들의 치명적인 공격을 받게 되는 찰나에, 보이지않는 유령이 나타나서 경고를 하고 직접 짐의 손목을 잡아채서 총을 쏘아 기계를 처치한다. 그 장면에서 킹은 정말로 유령이 나타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짐이 헛것을 느낀 것인지 분명히 밝히지 않고 무심하게 다음 장면으로 휙 넘어가 버린다. 그 장면을 좀 더 명확히 밝혔더라면 의미심장한 장면이 되었을텐데 아쉽다.

또한 결말에서 짐은 땅속의 금속물체를 끄집어내려 애쓰면서 토미노커의 농간으로 사라져 버린 아이를 구하기 위해서라고 말하는데, 금속물체를 꺼내는 일이 아이를 구하는 일에 정확하게 어떻게 도움이 된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나만 모르는 걸까? 그렇다면 창피 -_-;;) 위험물질이 마을을 더이상 망치지 못하도록 금속물체를 끄집어 낸다면 이해가 가겠는데, 아이를 구하기 위해서라니. 토미노커의 농간으로 사라진 아이에 관한 에피소드는 소설 중간쯤에 등장하는데, 그후로 별 언급이 없다가 결말에 가서 갑작스럽게 중요한 -짐이 목숨을 걸만큼 중요한- 소재로 언급되니 혼란스럽다.

그 외에도 짐은 결국 어떻게 된 것인지, 사라진 아이는 그 후 어떻게 지내는지 잔뜩 미스테리만 남긴채 "토미노커"는 결말을 맺는다. 어쩌면 스티븐 킹이 "토미노커" 2편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 아닐까? 모든 의문을 2편에 갖고 가서 한꺼번에 팡!하고 터뜨릴려는 의도로? 만약 그렇다면 어서 빨리 2편을 써주길. 나는 이제 "토미노커"의 팬이다.

위에서 내 개인적인 불만을 장황하게 -정말 어수선하게- 늘어놓았지만. "토미노커"는 매우 재미있는 소설이다. 호흡이 긴 소설을 싫어하는 분에게는 권해드리기가 쑥스럽지만, 스티븐 킹 장편 특유의 치밀한 묘사 속에 드러나는 헤이번 마을의 공포를 맛보고 싶어하는 분에게는 추천작이다. 헤이번 마을의 비밀을 알게된 외부인들이 모험을 감행하다 위험에 휩싸이는 장면들과 결말에서 헤이번 마을에 군대가 출동하는 장면에서는 B급 특유의 정서가 엿보여서 나같은 B급 소년의 마음을 감동으로 파도치게 만든다.

소설 속에서는 마을에 나타난 토미노커의 정체를 주인공들이 설명하는 부분이 있다. 토미노커들은 아이처럼 잘 싸우며, 사물을 -위험한 사물을- 만들어 내기만 할 뿐 그 사물이 불러 일으킬 영향력에 관해서는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그런 토미노커의 습성은 원자력발전소의 장점만 부각시키고 인체와 자연에 치명적이라는 단점을 은폐하려는 사람을 보면 광적으로 분노하는 짐 가드너의 행동과 맞물려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스티븐 킹이 창조한 토미노커는 결국 인간의 잔인하고 무책임한 면을 상징하는 존재로서 느껴지는 것이다. 인간은 이제까지 토미노커처럼 얼마나 나쁜 짓을 수없이 저질러왔던가? 핵폭탄, 세균병기, 스너프필름, 공장폐수, 자동차 매연, 지뢰매설 등등. 일을 저지르기만 하고 수습을 제대로 못하는 인간들이야말로 토미노커들과 다름없다.

"토미노커"에서는 스티븐 킹 자신이 간접적으로 언급되는 부분이 있다. 소설 속에서 마을 할아버지가 이상한 변화의 근거지를 찾다가 소설가 보비 앤더슨을 떠올리고는 이렇게 생각한다.

[뱅고어에 사는 또다른 작가의 작품들과는 달리 그녀의 소설에는 황당한 괴물들이 잔뜩 등장하지도 않았으며 더러운 욕설이 난무하지도 않았다.]

메인주 뱅고어에 살고 있는 스티븐 킹을 언급한 것이다. 이 문장을 통해 나는 두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스티븐 킹은 자신의 소설에 황당한 괴물들이 잔뜩 등장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며, 자신의 소설에 더러운 욕설이 난무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지금껏 그랬듯이 황당한 괴물들이 잔뜩 등장하고 더러운 욕설이 난무하는 작품들을 많이많이 발표해 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그런 스티븐 킹이 좋다.

"토미노커"와 관련해서 언급할만한 스티븐 킹의 1984년 단편소설이 있다. 제목은 "The Revelrations of 'Becka Paulson"이고, 롤링스톤 잡지에 발표되었다. 헤이번 마을에 사는 베카 폴슨이라는 가정주부가 실수로 자신의 머리에 총을 쏘게 되는데, 죽지 않고 살아 남아서 TV 위에 놓아둔 예수 그림과 대화를 할 수 있게 되고 결국 가정이 파탄난다는 내용이다. 이 단편은 나중에 무자비한 각색을 거친 후 "토미노커" 속의 한 장면으로 사용되었다.

"토미노커"는 4시간짜리 TV미니시리즈로 만들어 졌다. 우리나라에서는 KBS2에서 방영해 주었다. 나는 방영 당시 거의 시청할 기회가 없어서 -술 퍼먹고 다니느라고- 자세한 것은 모르는데, 인터넷에 올라온 평을 보면 별로라는 의견이 많다. 다행히도 이 미니시리즈는 우리나라에 <타미나커스>라는 제목으로 비디오가 출시되어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동네 비디오가게에서 찾아보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