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퍼레이션 / Desperation

작품 감상문 2007. 5. 11. 23:34 posted by 조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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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peration

(1996년 소설)

인터넷에 들어가보면 수많은 스티븐 킹 팬사이트가 있다. 대부분 킹의 작품에 대한 자신들의 감상을 적어놓고 있는데, 어떤 사람은 스티븐 킹의 96년 소설 Desperation에 대해 과거 작품의 소재들이 한데 모인 작품이라고 평하고 있다. Desperation에서는 초능력을 지닌 소년(The Shining과 Firestarter), 문학적 재능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소설가(Misery와 The Dark Half), 사이코 경찰(The Dead Zone과 Rose Madder), 갑자기 난장판이 되버린 작은 마을('Salem's Lot과 It)이 뒤섞여 있다는 것이다. 이런 짬뽕같은 구조 속에서 나온 Desperation은 역시 과거 작품과 같은 분위기를 지닌 작품일까? 아닙니다. Desperation은 물론이고 요즘 발표되는 킹의 작품들은 과거 작품들이 지닌 단순명쾌함 대신 뭔가 심오한 주제와 상징을 담고 있다. 대중문학에 자리잡고 있다가 점점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의 중간쯤 정도 되는 자리로 이동하고 있는 것 같다.(물론 문학을 대중문학이다 순수문학이다하고 구분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는 짓이다) 아마도 그건 스티븐 킹이 점점 나이를 먹어가면서 느끼는 감수성의 변화때문이 아닐까?

어떤 이는 이런 작품성향의 변화를 별로 안좋게 생각하기도 하지만, 난 옛날작품이나 현재작품 모두 그 나름대로 좋다. 변화하는 작품세계 속에서도 변치않는 것이 있으니까. 스티븐 킹의 기괴한 상상력과 지칠줄 모르는 창작열 말이다.(내 생각엔 엄청부자가 되어서도 계속 작품을 쏟아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 같다. 나같으면 맨날 놀러 다니겠다. PC방, 롯데월드, 만화가게, 백화점, 황토방사우나, 단란주점, 퇴폐이발소 등등)

네바다주에 데스퍼레이션이란 광산촌 마을이 있다. 광산에서 땅을 파내려 가다 오래전에 막혀 있던 우물을 발견하게 되고, 그 속에서 이제나 저제나 설레이며 외출을 기다리던 악마 탁Tak이 눈을 뜨게 된다. 그 결과 마을의 경찰 한명이 사이코로 돌변하여 마을 주민들을 학살하고, 마을을 지나가던 외부사람들을 하나둘씩 납치해서 경찰서에 가둬놓는다. 납치된 사람들은 탈출하려 몸부림치는데, 데스퍼레이션이란 마을은 온통 코요테(신지의 댄스그룹 코요테가 아니다), 거미, 전갈, 뱀, 대머리독수리 같은 것들이 포위하고 있다. 게다가 사이코경찰까지.

하지만 다행히도 탈출하는 사람들 속에 데이빗 카버라는 소년이 있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하나님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는 데이빗은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예를 들자면 통화불능 지역에서도 핸드폰통화를 가능하게 한다. 놀랍지 않은가? 인간 기지국이라니!) 데이빗의 도움으로 사람들은 탈출을 서두르는데... 아까도 말했듯이 코요테(댄스그룹 아님), 거미, 전갈, 뱀, 대머리독수리, 사이코경찰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는다. 그래서 결국엔....

데이빗을 통해 스티븐 킹은 신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 것 같다. 소설 Desperation 제4부 소제목은 "하나님은 잔인하다 God is cruel"이다. 하나님이란 존재는 인간에게 행복만을 안겨다주는 존재일까? 소설 속의 악마 Tak이 생물체 특히 인간의 몸을 빌려서 자신의 욕망을 분출하듯이, 하나님도 인간의 힘을 빌려서 자신의 욕망(맘에 안드는 악을 처단하는 것)을 채운다는 것이 소설 속에서 나오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때론 하나님은 선택된 인간의 희생을 강요하는 잔인한 존재라는 것이다.

흠... 하나님께 연락할 방법이 없으니 스티븐 킹이 제대로 된 사실을 적은 것인지 확인할 길이 없어 아쉽다. 소설끝부분에는 가족이 몰살당하고 자신의 생명마저도 위협받았던 한 등장인물에게 하나님이 조퇴서를 내준다. "조퇴를 허가함"이라니. 어째서 수업이 다 끝나갈때 쯤 -절대자의 각본에 따라 한 인간의 인생이 비참함의 극을 달릴때 쯤- 에야 조퇴서를 내주는 것일까? 하나님(정확하게는 스티븐 킹이 생각하는 하나님)은 나처럼 썰렁하고 잔인한 블랙유머의 소유자인 것 같다. (어쨌거나 공포장르에 등장하는 악마들은 동물 대신 인간의 몸을 선호하는 것 같다. 아무래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이 많으니까.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른다거나, 수업시간에 몰래 잠을 잔다거나, 발렌타인데이에 배추 다섯포기를 선물한다거나, 이웃집 불난데 구경가서 god노래를 부른다거나. 이런 것들을 개, 고양이, 얼룩말, 말미잘같은 동물들의 몸으로는 할 수 없으니까. 내가 악마라도 인간을 선호하겠다. 아~ 난 왜 이렇게 쓸데없는 얘기를 길게 늘어놓는 걸까. 내가 미워어어어~)

Desperation의 등장인물들 중 인상깊었던 사람은 조니 마린빌이라는 작가이다. 스티븐 킹의 작품들 속에서 작가라는 직업이 꽤 많이 등장하지만 조니 마린빌처럼 인상적인 인물은 처음이었다. 난 Desperation을 꽤 오래전에 읽었는데도, 아직까지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을 정도니까. 소설 속에서 그는 아주 무기력한 속물작가로 묘사되는데, 나중에는 그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인상깊었던 것은 조니의 마지막 대사이다. "하나님, 저를 용서하소서. 전 비평가들이 정말 싫어요!" 이제까지 소설 전개와 상관없이 뜬금없는 그런 대사가 튀어 나와서 난 어리둥절했었다. 아마도 등장인물의 입을 빌어 스티븐 킹은 자신의 심정을 고백하고 싶었나보다. 얼마나 비평가들에게 시달렸으면.(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당연한 것이다. 비평가들이 만장일치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작가라면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지 최고의 공포소설가는 아닐 것이다. 비평가들의 기준은 문학적이고 예의바른 고상함이니까.) 하지만 스티븐 킹 힘을 내시길. 나같이 멀고먼 코리아라는 나라의 불량청년까지도 당신을 열렬히 응원하고 있으니.

Desperation에서는 죽은 사람들이 사는 나라가 등장하는데, 난 아직까지 좀 의문을 가지고 있다. 그 나라에 살고 있는 인물 중 하나는 지금 데스퍼레이션마을에서 탈출하려고 기를 쓰고 있는 팔팔하게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아직 살아있는 사람이 왜 죽은 사람들의 나라에 있는거지? 희망이 없는 무기력한 삶을 사는 사람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상징적인 표현인가? 내가 좀 단순한 성격인 관계로 쫌만 복잡해도 대충대충 넘어가는 성격이라 이 소설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도대체 왜 살아있는데도 그런 재미없는 나라에 미리 가서 살아야하는걸까? 으~~ 머리아프다. 빨리 넘어가자. 휘리릭~~~!

이제까지 잡담이 좀 길었지만, 어쨌든 Desperation은 재미있으면서도 묵직한 여운을 남기는 소설이다. 결말을 읽게 되면 누구나 깊은 여운에 푹 잠길 것이다. 우연과 필연이 교차하는 인간의 삶 속에서 믿음과 신뢰가 어떤 식으로 형성되고 무너져내리는가를 킹 특유의 치밀한 심리묘사와 거친 상상력으로 풀어낸 멋진 작품이다. 그리고 혹시라도 멀리 여행갔다가 작은 마을에서 사이코경찰에게 잡혀 고립될 수도 있으니(악을 무찌르라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서) 그때를 대비해 미리 준비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인간의 삶이란 언제든 우스꽝스런 상황에 빠질수도 있으니까.

Desperation은 황금가지에서 "데스퍼레이션"이라는 제목으로 번역판이 출간되어 있다. 서점에 가면 구할 수 있을 것이다. Desperation과 쌍벽을 이루는 The Regulators라는 작품도 권하고 싶다. The Regulators에는 Desperation에 나왔던 인물들이 역할을 바꾸어서 다시 등장한다. 줄거리는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좀 다른 줄거리이다. 그래서 Desperation을 읽어봤다면 무척 색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사랑스런 악마 Tak도 다시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