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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사이코
American Psycho

(1991년 소설)


미국 소설가 브렛 이스턴 엘리스는 1985년에 첫 장편소설 "Less Than Zero"를 발표하여 미국 문학계를 이끌어갈 기대주라는 호평을 받으며 비평가들과 독자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얻었다고 한다.

그는 1987년에 두 번째 장편소설 "The Rules of Attraction"을 펴냈는데, 데뷔작만큼의 호응을 얻지 못하자 위기감을 느끼게 된다.

엘리스는 스티븐 킹의 팬이기도 하다(그의 다섯번째 장편소설 "Lunar Park"는 스티븐 킹 소설 "샤이닝"의 설정을 노골적으로 차용해서 유령 이야기를 그려내기도 했다).

그럿 탓인지 킹이 그러하듯 엘리스도 예전 작품에 등장시킨 인물이나 배경을 새 작품에 재등장시키는 것을 좋아한다.

소설 "The Rules of Attraction"의 주인공에게는 형이 있는데, 소설 속에서 잠깐 나왔다 사라지는 역할이었다.
엘리스는 바로 이 형, 패트릭 베이트먼을 주인공으로 해서 세 번째 장편소설을 야심차게 집필하게 된다.

그리하여 1991년도에 발표한 소설이 "아메리칸 사이코(American Psycho)"다.

이 소설은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근무하는 부유한 여피족 패트릭 베이트먼의 일상을 주인공의 1인칭 시점을 통해 다룬다.

베이트먼은 날마다 뉴요커 친구들과 어울리며 명품에 둘러싸인 화려한 인생을 산다.
소설 초반에 등장하는 출근 준비 장면이 압권이다. 잠에서 깨어나 무슨 상표의 오디오를 켜고 무슨 상표의 TV를 켜고 무슨 상표의 샴푸를 쓰고 무슨 상표의 각질 제거제를 쓰고 무슨 상표의 속옷을 입고... 출근 준비를 하는 동안 주인공이 접촉하는 온갖 유명 브랜드의 명칭과 장점이 집요하게 나열된다.

베이트먼의 이러한 명품 나열하기는 소설 내내 계속된다. 그는 집착하듯 유명 브랜드에 매달려 산다.
그래서 나중에는 명품 브랜드가 마치 내 친구 이름인 것 마냥 친숙하게 들릴 지경이 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것은 베이트먼뿐만 아니라 잘 나가는 뉴요커 친구들의 공통된 일상인 것을.
이들은 만나기만 하면 요즘 잘 나가는 레스토랑, 패션, 클럽, 모델 등에 관해 수다를 떨고, 자신들의 겉모습을 꾸미는 일에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그런데 패트릭 베이트먼한테는 잘 노는 여피족 이외에 남들이 모르는 또 다른 이미지가 있다.

그는 연쇄살인범이다.
살인충동을 억누르지 못하고 먹잇감을 찾아 뉴욕을 어슬렁거린다. 먹잇감을 발견하면 해치운다.

그러고는 또 다시 월스트리트 금융인의 생활로 돌아간다. 그러다 먹잇감을 발견하면 또 ...

소설 "아메리칸 사이코"는 이러한 베이트먼의 이중생활을 소설 처음부터 끝까지 건조한 문체로 자세하게, 정밀하게 묘사한다.
1인칭 시점을 이용해 주인공이 현재 시제로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는 형식이 작품의 분위기에 딱이다.

그런데 장르소설의 전매특허인 연쇄살인범이 소재로 사용되기는 하지만 이 소설은 일반적인 장르소설이 아니다.
장르소설의 재미를 기대하고 이 작품을 읽었다간 큰코 다친다(그러려면 우선 코가 커야겠지? -_-;;).

살인 장면이 많이 나오지 않는다. 게다가 소설이 한참 진행된 다음에야 첫 살인 장면이 나온다.
베이트먼이 섹시한 여자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만 섹스 장면도 많이 나오는 편이 아니다.
수사관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연쇄살인범이 통쾌하게 권선징악의 철퇴를 맞는 명확한 스토리 전개도 보이지가 않는다.

소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베이트먼이 사회생활을 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과정에서 위태롭게 표출되는 불안한 심리의 나열이다.
세탁소에 가서 세탁물을 제대로 빨라고 항의한다든가, 비디오 대여점에 비디오를 반납한다든가, 뉴요커 친구들과 저녁 약속을 정하느라 서너명이서 각자의 전화를 붙들고 단체 통화로 횡설수설한다든가 클럽 화장실에서 마약을 하며 우정을 다진다든가하는 일들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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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브렛 이스턴 엘리스

그런데 이런 일상들 틈틈이 삽입된 적은 수의 살인 장면과 섹스 장면에서 작가 브렛 이스턴 엘리스는 "정직한" 묘사로 독자의 마음에 충격을 일으킨다.
마치 하드고어 공포영화와 하드코어 포르노영화 필름을 한 프레임 한 프레임 "정성스럽게" 독자의 눈 앞에다 대고 줄줄이 나열하는 것만 같다.
작가는 이런 장면들을 묘사하며 절대 움츠러들지 않는다(나는 이런 자세를 지닌 작가다 좋다, 정말 좋다).
연쇄살인범 베이트먼의 행동과 이런 행동을 벌이며 느끼는 심리를 적나라하게 까발린다.

그렇게 강도가 센 장면들이 지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듯 베이트먼은 천진난만하게 자기가 휘트니 휴스턴과 필 콜린스의 노래를 좋아한다면서 그들의 각종 앨범과 수록곡들의 매력을 몇 페이지씩이나 주절거린다.

집요한 심리묘사가 이어지는 만큼 소설 "아메리칸 사이코"는 독자들도 집요한 마음으로 끈기있게 읽기를 요구한다.

소설이 진행되면서 즐거운 여피족과 음산한 연쇄살인범 사이에서 위태롭게 줄타기를 하던 베이트먼의 지리멸렬한 인생은 더욱 위태로운 상황으로 악화되어간다.
너무 악화된 나머지 이제는 그가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도 힘들어지기까지 한다. 그리고 독자들마저도 그렇게 된다!
1인칭 시점의 소설을 읽으며 베이트먼의 심리를 따라가던 독자들은 어느덧 자신들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버린 것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맞이하게 되는 결말은... 안개 속에 들어와버린듯 명확하게 보이는 것이 없다.
명확하다고 믿었던 것마저 의심을 품게 된다.
독자들은 베이트먼뿐만 아니라 그의 주변 사람들이 한 언행까지도 의심하게 될 것이다.

많은 것들이 불명확하게 보이지만 한 가지 명확한 것이 있다.
패트릭 베이트먼의 인생은 계속 된다는 것. 위험하게 계속 된다는 것.

"아메리칸 사이코"는 원래 미국에서 사이먼앤슈스터 출판사가 펴내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출판일이 다가오면서 타임지 등의 언론매체에 소설 리뷰가 실리고 소설 본문 중 일부가 공개되자 여성들에 대한 잔혹한 묘사 등을 문제 삼아 출판사로 항의가 쏟아져들어왔다.
사이먼앤슈스터는 작가에게 이미 30만 달러의 선인세를 지급했는데도, 결국 출판을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자 그 즉시 빈티지 출판사가 냉큼 출판권을 사들였고, 책이 정식으로 출간되자 독자들로부터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덕분에 작가 브렛 이스턴 엘리스는 수많은 살인 협박을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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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아메리칸 사이코"는 크리스찬 베일이 나오는 영화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우리나라에는 소설보다는 영화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당연하게도" 영화는 원작소설의 압도적인 분위기를 살려내지 못했다. 원작대로 만들었으면 X등급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나는 영화를 먼저 보았을 때 영화가 참 끝내준다고 생각했는데, 원작소설을 읽어보니 영화는 그냥 장난일 뿐이었다.

(엘리스의 소설 "아메리칸 사이코"에 맹비난을 퍼부운 사람들 중에는 여성 운동가 글로리아 스테이넴도 있는데, 그녀는 크리스찬 베일의 새어머니다.
엄마가 원작소설을 욕했는데, 아들은 그 소설로 만든 영화 속에서 사이코 살인마를 열심히 연기하다니 세상은 정말 요지경이다.)

영화는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는데, 소설은?
우리나라에서는 출판되기 "정말" 힘든 소설이다. 보수적인 검열의 칼날이 날아다니는 우리나라에 소설 "아메리칸 사이코"를 내줄 용감한 출판사 어디 없나요? -_-;;
창작의 자유, 출판의 자유라는 면에서 미국과 우리나라 사이에 넘을 수 없는 차원의 벽이 존재한다는 것은 참 슬픈 현실이다.

소설 "아메리칸 사이코"를 읽으며 오랜만에 독서의 기쁨을 느꼈다.
내 취향을 정곡으로 찌르는 멋진 작품이었다.
겉은 물질적으로 화려하면서도 내면은 썩어들어가는 인간의 이중성을 여러 가지 면에서 짜릿하게 보여준 소설이었다.

이 소설이 1991년에 발표됐는지라 세월의 흔적이 엿보인다. 소설 속에서 CD 플레이어는 나와도 MP3 플레이어는 나오지 않고, 케이블 방송은 나와도 인터넷은 나오지 않는다.
브렛 이스턴 엘리스가 20세기의 아메리칸 사이코를 창조했으니 이젠 어느 누구라도 21세기판 아메리칸 사이코를 창조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과연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문화환경도 더욱 발전해서 우리나라 작가가 "코리안 사이코"를 "당당히" 발표하는 날이 꼭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