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 러 (The Killer) by 스티븐 킹

읽을꺼리 2007. 5. 9. 00:17 posted by 조재형
  "킬러"는 스티븐 킹이 소년 시절에 잡지 편집인 Forrest J. Ackerman에게 투고했다 퇴짜맞은 단편소설입니다. 하지만 "킬러"는 결국 1994년 잡지 "Famous Monsters of Filmland"에 실리고야 말았습니다. 소년의 꿈이 어른이 되어서 이루어지다... 멋지네요. 단편소설 "킬러"와 관련된 애뜻한 사연은 킹의 글쓰기 지침서 "유혹하는 글쓰기 On Writing"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습니다.(영문 원고 윗쪽에는 킹이 Ackerman에게 적어준 사인이 보이네요.)

※ 영문 원고 아래에 한글로 번역해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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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  러 (The Killer)  by 스티븐 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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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갑작스럽게 정신을 차렸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지금 군수공장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자기 이름도, 하고 있던 일이 무엇이었는지도 기억할 수 없었다. 그는 아무것도 기억해낼 수 없었다.

그가 있는 곳은 조립라인과 컨베이어 벨트, 그리고 기계부품들이 내는 철컥-철컹 소리가 맞물려 돌아가는 커다란 공장이었다.

그는 기계가 자동으로 포장해 놓은 상자에 담겨있던 완성품 총들 중에서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가 얼마 전까지 이 조립기계를 작동시키고 있었던 것이 확실했다. 그러나 지금은 기계가 작동을 멈추고 있다.

순간적으로 총을 집어드는 느낌이 그에게는 자연스러웠다. 그는 좁은 통로를 따라 공장 안을 천천히 돌아다녔다. 어떤 남자가 총알을 포장하고 있었다. "나는 누구지?" 그는 더듬거리며 천천히 말했다.

총알 포장하던 남자는 계속 일만 했다. 고개를 들어 쳐다보지도 않았고, 남의 말을 들었다는 아무런 표현도 하지 않았다.

"나는 누구야? 도대체 나는 누구냔말야?" 그는 소리쳤다. 둥근 천장의 공장 안에 그가 내지른 고함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아무것도 변하는 것은 없었다. 사람들은 아무런 대꾸도 없이, 그저 작업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그는 포장작업하는 남자의 머리를 총으로 후려쳤다. 작업하던 남자는 머리 깨지는 소리를 내며 앞으로 고꾸라졌고, 총알들이 공장 바닥으로 쏟아졌다.

그는 총알 하나를 집었다. 가지고 있던 총에 딱 맞는 총알이었다. 그는 총알들을 총 속에 채워 넣었다.

위에서 쿵쾅거리는 발소리가 들려서 올려다보니, 윗층 통로를 따라 걷고 있는 한 남자가 보였다. "나는 누구야!?" 그는 대답을 들을 수 있으리라곤 생각지도 않은 채 소리질렀다.

그런데 윗층 남자가 아래를 내려다보더니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는 총을 위로 들어올려 두번 쏘았다. 도망치던 남자가 멈추더니 곧 무릎을 꿇으며 쓰러졌다. 그렇지만 쓰러지기 전 그 남자는 벽에 붙은 빨간 단추를 눌러 버렸다.

사이렌 소리가 커다랗고 우렁차게 울려대기 시작했다.

"킬러! 킬러! 킬러!" 확성기가 쩌렁쩌렁 울부짖었다.

공장 안의 일꾼들은 고개를 쳐들지도 않았다. 그저 묵묵히 작업만 열심히 하고 있었다.

그는 사이렌과 확성기 소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뛰어 다녔다. 문이 보이자, 그쪽을 향해 달려갔다. 문을 열어보니 제복을 입은 네 사람이 서 있었다. 그 사람들이 그를 향해 괴상하게 생긴 에너지 총을 쏘아댔다. 총에서 발사된 번갯불이 그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총을 세번 쏴서 반격했다. 제복인간들 중 한명이 쓰러졌고, 들고 있던 에너지 총이 바닥에 떨어져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는 반대쪽으로 도망쳤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다른 문에서 튀어나와 쫓아왔다. 그는 정신없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들이 사방에서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 빠져나가야만 했다!

그는 윗층을 향해 높이 더 높이 올라갔다. 하지만 윗층에는 더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는 꼼짝없이 덫에 걸린 꼴이 되었다. 총알이 다 떨어질 때까지 그는 총을 난사했다.

사람들이 그를 향해 모여들었다. 일부는 위에서 내려왔고, 일부는 아래에서 올라왔다. "제발! 쏘지마! 나는 그저 내가 누군지 알고 싶을 뿐이야!"

사람들이 에너지 총을 쐈다. 에너지 빔들이 그를 덮쳤다. 모든 것이 까만 어둠 속에 묻혀 버렸고...

*     *     *     *     *     *     *

난동을 부린 녀석을 실은 트럭의 문이 닫혔다. 경비원들이 트럭이 굴러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잊을만하면 꼭 놈들 중 한 놈이 킬러로 홰까닥 돌아버리는구만." 경비원들 중 한 명이 말했다.

"난 도무지 이해가 안되네." 옆에 있던 또다른 경비원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저 놈을 잡을 때 말야. 저 놈이 했던 말. --"나는 그저 내가 누군지 알고 싶을 뿐이야." 그런 말을 하더라구. 그러니까 진짜 사람처럼 보이는거 있지. 요즘에는 사람들이 말이야 로봇들을 너무 잘 만드는 거 같애."

경비원들이 커브길을 돌아 사라져가는 로봇 수리 트럭을 지켜보고 있었다.

--  The End  --